2024-09-10

이태준 : 소설 <해방 전후>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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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감상
이태준 : 소설 <해방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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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8. 23. 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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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전후
【해설】

   이태준(李泰俊)의 단편소설. ‘한 작가의 수기’라는 부제(副題)가 붙어 있는 <해방 전후>는 1946년 8월 문학가동맹의 기관지였던 [문학] 창간호에 발표된 이태준의 자전적 단편소설이다.

   같은 해 좌익 계열의 조선문학가동맹이 주관하는 해방 기념 조선문학상에 지하련(池河連)의 <도정(道程)>과 함께, '구 문단의 지도적 작가의 한 사람이었던 작가 자신이 새로 문학 운동과 민주주의 운동에 가담하여 투쟁하는 가운데서 체험한 바 제(諸) 사실을 기록한 것'이란 이유로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 작가의 수기'란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이 시기의 작품으로 작가 자신의 가탁적(假託的) 인물인 주인공 '현'을 통해 해방 전과 후의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일제의 탄압이 최고조에 달한 일제강점기 말에 최소한의 자기를 지켜내는 고뇌를 그린 후, 해방 직후의 혼돈된 상황에서 적절하고 정당한 방향을 찾아 문학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실천하는 문제를 차분하게 그려나갔다.

   특히 주인공 현과 대립적 인물로 김직원 노인을 등장시켜, 양자의 관계를 통해 옛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태동할 수밖에 없는 해방 직후의 상황을 잘 묘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끝으로 이태준은 월북(越北)하고, 이후 그의 문학은 이전의 작품 경향과는 전혀 다른 생경한 구호만 나열하는 목적 문학으로 바뀌고 만다.

【개관】

▶작가 : 이태준

▶갈래 : 단편소설

▶배경 :

- 시간 : 해방 전후의 1∼2년

- 공간 : 서울과 철원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의의 : 해방을 전후한 문단의 상황은 물론, 작가의 행적(문학적 전향)을 알 수 있는 작품

▶주제 :

- 해방 후 지식인의 이념적 갈등

- 일제 강점기 하의 한 문인의 갈등

▶발표 : [문학](1946)

【등장인물】

▶현 : 순수 문학자에서 해방 후 좌익 계열에 가담하는 소설가

▶김직원 : 철원에 사는 보수적이고, 완고한 유학자(儒學者-향교직원). 해방이 되자 영친왕을 모셔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성】

▶발단 : 호출장을 받고 서(署)에 출두한 현은 시국을 위해 일할 것을 강요당한다.

▶전개 : 강원도 철원으로 집을 옮긴 후 낚시로 소일하던 중 김직원을 만나 그와 교우(交友)한다.

▶위기 : 8.15 직후 친구의 연락을 받고 서울로 온다.

▶절정 : '현'은 좌익 계열의 '조선 문화 건설 중앙 협의회'에 관여한다.

▶결말 : 김직원과 대화를 통해 이념적으로 서로 화합할 수 없음을 확인한다.

【줄거리】

   『일제 말기, 무슨 사상가도 주의자도, 무슨 전과자도 아니었지만 시국에 대해 소극적이고 가급적 협조를 않던 작가 '현'은 살던 집을 세 놓고 강원도 산읍으로 들어간다. 창씨 개명이나 친일 작품 혹은 일어(日語) 창작을 거부했지만 그렇다고 대동아 전기(傳記)의 번역마저 거절하지는 못하던 그였다. 시국의 혼란을 피하기 위함이었으나 산골 역시 평온하기는커녕 일제의 감시가 더욱 심한 곳이었다. 감시의 눈을 피해 낚시로 소일하던 그는 그곳에서 김직원을 만나 교우한다.

   마침 문인 보국회에서 주최하는 문인 궐기 대회에 참석은 하지만, 자신이 연설할 차례가 다가오자 대회장을 빠져 나온다. 일제(日帝)도 길어야 1년이라는 생각에 갈피를 못 잡는 그는 자신의 문학을 반성한다. 이럴 즈음 주재소에서는 출두를 명령하여 각종 시국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음을 경고한다.

   전국 유도(儒道) 대회와 관련해 김직원이 잡혀 들어가고 서울 친구의 전보를 받고 상경하던 '현'은 일제의 패망과 조선의 독립 소식을 듣는다.

   8월 17일 새벽에 서울에 도착한 그는 서울의 여러 정황에 불쾌해 한다. '조선 문화 건설 중앙 협의회'를 찾은 그는 마침 기초(起草)하고 있던 그들의 선언문을 읽고 발기인(發起人)으로 서명한다. 울려 퍼지는 '적기가(赤旗歌)' 속에 고민하던 '현'은 '조선 인민 공화국 절대 지지'라는 현수막 사건을 통해 자기 비판과 함께 정세를 판단하고,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 '프로 예맹'과의 통합을 계획한다.

   좌익과 우익의 반탁, 찬탁 데모로 어수선한 가운데 김직원이 다시 나타나 서울을 떠난다고 말한다. 그를 보며 '현'은 중국의 문인 왕국유(王國維)를 생각한다.』

 

   『현은 무슨 사상가도, 주의자도, 무슨 전과자도 아니었다. 시골 청년들이 어떤 사건으로 잡히어서 가택 수색을 당할 때, 그의 저서가 한두 가지 나온다든지, 편지 왕래한 것이 한두 장 불거진다든지, 서울 가서 누구를 만나 보았느냐는 심문에 현의 이름이 끌려든다든지 해서, 청년들에게 제법 무슨 사상 지도나 하고 있지 않나 하는 혐의로 가끔 오너라 가너라 하기 시작한 것이 인젠 저들의 수첩에 준요시찰인(準要視察人) 정도로는 오른 모양인데, 구금을 할 정도라면 당장 데려갈 것이지 '호출장'이니 '시달서'니가 아닐 것은 짐작하면서도 번번이 불안스러웠고 더욱 이번에는 은근히 마음 쓰이는 것이 없지도 않았다.

   일반 지원병 제도와 학생 특별 지원병 제도 때문에 뜻 아닌 죽음이기보다, 뜻 아닌 살인, 살인이라도 내 민족에게 유일한 희망을 주고 있는 중국이나 영미나 소련의 우군을 죽여야 하는, 그리고 내 몸이 죽되 원수 일본을 위하는 죽음이 되어야 하는, 이 모순 된 번민으로 행여나 무슨 해결을 얻을까 해서 더듬고 더듬다가는 한낱 소설가인 현을 찾아와 준 청년도 한둘이 아니었다.

   현은 하루 이틀 동안에 극도의 신경 쇠약이 된 청년도 보았고, 다녀간 지 한 일주 일 뒤에 자살하는 유서를 보내온 청년도 있었다. 이런 심각한 민족의 번민을 현은 제 몸만이 학병 자신이 아니라 해서 혼자 뒷날을 사려해 가며 같은 불행한 형제로서의 울분을 절제할 수는 없었다. 때로는 전혀 초면들이라 저 사람이 내 속을 떠보려는 밀정이나 아닌가 의심하면서도, 그런 의심부터가 용서될 수 없다는 자책으로 현은 아무리 낯선 청년에게라도 일러주고 싶은 말은 한 마디도 굽히거나 남긴 적이 없는 흥분이곤 했다.

   그들을 보내고 고요한 서재에서 아직도 상기된 현의 얼굴은 그예 무슨 일을 저지르고만 불안이었고, 이왕 불안일 바엔 이왕 저지르는 바엔 이 한 걸음 절박해 오는 민족의 최후에 있어 좀더 보람있는 저지름을 하고 싶은 충동도 없지 않았으나, 그 자신 아무런 준비도 없었고, 너무나 오랫동안 굳어 버린 성격의 껍데기는 여간 힘으로는 제 자신이 깨트리고 솟아날 수 없었다. (하략)』

 

   『문단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소설가 현한테로 경찰서의 시달서가 날아들었다. 호출장이 위압적이라 해서 바뀐 것인데, 이를 받고 보면 미상불 불안하다. 무슨 죄가 있대서가 아니라 시국이 험한 판에 무슨 꼬투리를 잡아 책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대문서 고등계의 쓰루다 형사는 현에게 시국에 협력하지 않는 걸 지적하며 누구라도 방관적 태도는 용서받지 못할 거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현은 적당히 핑계 대고 물러 나와 출판사로 향했다. 일본을 위한 번역을 맡고 있는 일이 여간 꺼림칙하지 않았다. 전세는 기울어 연합국의 승리가 예견되는 시점이기에 더욱 그랬다.

   궁리 끝에 솔가하여 강원도 어느 산골로 내려갔다. 믿고 찾아온 사람은 서울로 장기 출장을 가고, 그의 소개로 향교 직원인 상투 튼 노인 김직원의 배려를 입게 되었다. 징용이나 면해볼까 했던 기대가 물거품이 될는지 모른다. 켕기는 마음으로 낚시에 소일삼으려 했으나 그 또한 여의치 않았다.

   한가하게 낚싯대나 들고 나가는 게 순사부장 눈을 거슬렸던 것이다. 마침 서울에서 '문인보국회'명의로 궐기대회에 참가해달라는 장문의 전보가 날아들었다. 주재소와 방공 감시초장인 우편국장이 어서 올라가라고 채근한다. 강직한 성품의 김직원도 징용 면하려거든 뻗대지 말라는 충고가 있어 도리 없이 상경을 해야만 했다.

   대회장 부민관 단상은 으리으리했다. 국민복에 예장을 단 총독부, 조선군 무슨 각하에다 일본 작가, 만주국 작가가 대거 착석해 있다. 현은 국방색 아닌 옷에 각반도 치지 않은 차림새로나마 단상에 올라 대회 순서 하나를 맡아야 했는데 그것이 아주 못마땅했다. 현은 대회장을 살그머니 빠져나와 변소에 숨었다가 칼 찬 발짝 소리 때문에 질겁을 한다.

   어떻든 현은, 가네무라 순사가 상경 길에 고쳐달라던 회중시계를 손보아서 시골로 내려갔다. 당국에서는 잠시 잠잠하더니 주재소 호출이 또 떨어졌다. 순사부장은 현을 경방단이나 방공 감시에도 뽑지 않는 것은 나라를 위해 글을 쓰라는 뜻이었는데 협력이 없다고 다그친다. 낚시질은 그만두라는 엄명이다.

   현은 더욱 의기소침해져 김직원 영감과만 자주 왕래한다. 그는 보수적인 사람이라 국호를 대한으로 되찾고, 영친왕으로 하여금 조선인 부인을 얻게 해 전주 이씨 왕조를 복고했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한다. 그 또한 군청에서 춘천서 열리는 유생대회 참가를 종용받고 있으나 거절한다. 상투며 복색을 바꾸라는 청에도 나이든 핑계로 회피한다. 결국 읍으로 불려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다.

   김직원이 유치 당한 지 나흘째 날이 8월 15일이었다. 현은 서울 친구로부터 다급히 상경하라는 전보를 받고 올라가는 버스 속에서 일본 패전 소식을 듣는다. 꿈인가 생시인가 싶지만 서울 거리는 여전히 일본군의 삼엄한 경계 아래 놓여 있었다.

   그는 먼저 자신이 연을 맺고 있는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를 찾아갔다. 이후 국내 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해갔다. 차차 미군이 진주하고, 이에 따라 망명 정객, 독립 투사들이 속속 귀국했다. 수없는 정파가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사이에 좌우익 대립이 첨예해졌다. 삐라가 난무했다. '조선문화건설'에 대립되는 좌익 문학인들의 '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이 조직되어 문인들도 두 파로 쪼개졌다.

   게다가 '문협' 내에도 이탈파가 생겨 의장이나 서기장의 허락도 없이 공공연히 '조선인민공화국 절대 지지'란 플래카드가 나붙어서 현이 나서서 철거했다. 이러자 현을 아끼는 동료 문인들은 현이 이용만 당하는 꼴이니 문협을 탈퇴하라고 권유한다. 게다가 삼상회의의 조선 신탁 통치안이 선포되자 서울 거리는 찬탁과 반탁 데모로 영일이 없다. 현은 친구와 함께 반탁 강연에 나섰고 그 원고가 어느 신문에 게재되기도 했다. 그러나 차츰, 이 견해가 국제 정세상 현명한 판단이 아님을 깨닫고는 찬탁으로 기울었다. 이것이 항간의 화젯거리가 된 모양이었다.

   어느 날, 김직원이 회관으로 현을 찾아왔다. 현은 여간 반가운 게 아니어서 음식점으로 모셨다. 그때 노인은 유치 당해서 상투가 잘릴 뻔한 걸 가까스로 모면한 전말이며, 현의 식솔이 철원까지 나와 기다린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그러다가 현을 보고 공산당으로 넘어갔느냐고 힐문한다. 아니라고 했지만, 공산당이 조선 독립을 방해한다며 현의 태도를 못 미더워한다.

   한동안 김직원이 소식을 끊더니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탁치 문제로 시끄러울 때였다. 그가 전날의 정리 때문에 인사를 아니 할 수 없어 왔다는 말을 하며 배웅도 한사코 사양하고 분연히 떠나갔다. 현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청나라의 우국지사 왕국유를 떠올려본다. 바람은 차나 부드러운 봄바람이 느껴지는 철이다. 동료들이 '프로예맹'과의 합동도 성사시켜 '전국문학자대회' 준비에 골몰해 있는 사이에 현은 담배를 꺼내 문다.』

【감상】

   이 소설은 작가 이태준의 1943∼1945년 사이의 삶이 직접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전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비록 현이란 이름의 등장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작가가 광복 전 낙향했던 철원이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고, 광복 후 전국문학자대회니, 신탁통치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의 문학인들의 모임이 그대로 서술되고 있다는 점에서 자전적인 성격을 벗어날 수 없다. 소설 속에서는 김직원으로 대표되는 보수적 민주주의 경향과 사회주의편에 서는 현의 입장이 화해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해방공간의 혼돈과 대립을 반영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순수열정이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민족적 단결과 통합을 계속 기대한다는 점에서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되지 않았음이 드러나고, 조직적이고 의도적 단체의 구성을 강행하려는 공산주의 젊은 문필가들을 오히려 나무라고 민주진영과의 통합을 역설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분명한 태도나 선택이 유보된 전향성을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소설은 해방공간에서 빚어지고 있었던 문필가들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며, 작가의 지향이 소극적이고 불분명한 채 순수열정만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고착화되고 한국전쟁 이후의 정세가 대립으로 굳어지면서 작가의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어느 쪽에서도 쉽게 용납되지 않았으며, 그의 고뇌가 오히려 북한에서는 회색적 태도나 부르주아적 사고로 지탄받아 숙청의 빌미가 되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8ㆍ15 해방을 전후하여 작가 '현'에 대하여 기록한 소설이다. 작가 '현'은 바로 이태준 자신이기도 한 것이다.

   작가 '현'의 해방 전 자신의 작품과 삶의 태도에 대한 반성, 그리고 해방 후의 적극적 변화, 즉 좌익 계열의 문학 단체에 관여한, 해방 전 그렇게도 존경해 마지않았던 김 직원의 설득에 대해 자신의 방향 전환을 옹호하고 있는 한 문학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태준 자신의 자전(自傳) 소설이라 할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해방을 전후한 행적과 함께 그가 북(北)을 택한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일제 말기, 시국 문제에 협력하지 않고 버티던 작가 '현'은 더 이상의 시달림을 피해 철원으로 낙향한다. 그러나 낚시로 소일하는 그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한가지 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김 직원'과의 만남이다. 그는 '현'의 가슴에 지사적(志士的) 용모와 행동으로 뚜렷하게 각인된다. '현'은 그를 우러러보기까지 하게 된다.

   '김직원'과의 갈등은, 8․15 해방이 되고부터이다. 8월 16일 서울의 친구 전보를 받고 급히 상경하면서 '현'은 해방의 소식을 듣는다. 17일 아침에야 서울에 온 그는 재빨리 문단의 주도권을 쥐려는 여러 문인 친구들의 계획에 참여하게 되고, 그들이 좌익 계열이라는 것을 알고도 주도적으로 나선다. 비록 소련에 대한 거부감이 있고 대세에 밀려가는 자신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영친왕을 모셔다 왕으로 섬겨야 한다는 '김 직원'의 논리에는 정면으로 맞서 자신의 주의(主義), 주장을 편다. '현'은 자신의 해방 전 문학적 성향을 반성하기도 하고, 친일 분자들의 소행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김 직원'과의 결별이다. 강원도 산읍에서 그를 만났을 때, 시골 향교를 지키며 시국에 대해 자신보다 한층 저항적인 '김 직원'에 대해서 '현'은 "상종(相從)한다기보다 모시어 볼수록 깨끗한 노인이요, 이 고을에선 엄격히 존경을 받아야 옳은 유일한 인격자요, 지사"로 인식했다. 그러나 해방 후 좌익 문인 단체에서 활동하면서부터 '현'은 '김 직원'을 ‘돌과 같이 완강한 머리’ 혹은 ‘이 세계사의 대사조(大思潮) 속에 한 조각 티끌처럼 아득히 가라앉아 가는 모습’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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