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0

김대호 - 소장에서 감사로 신상(身上) 변동에 따라, 연구소 후원 CMS를 일괄적으로 해제했습니다. CMS 업체와... | Facebook

(6) 김대호 - 소장에서 감사로 신상(身上) 변동에 따라, 연구소 후원 CMS를 일괄적으로 해제했습니다. CMS 업체와... | Facebook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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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에서 감사로 신상(身上) 변동에 따라, 연구소 후원 CMS를 일괄적으로 해제했습니다. CMS 업체와 계약도 해지 했습니다. CMS로 질기게 후원해 주신, 결코 잊을 수 없는 은인들에게 일일히 감사 인사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전화번호도 주소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연구소장으로서 가장 최근의 저작인 <윤석열정부와 근대화세력의 미래>라도 한권 보내드리고 싶은데 주소를 주시지 않으면 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연구소는 중앙정부•지방정부•정당의 이념•정책• 사업•문화 개혁을 향한 대중적 열망이라는 물이 있어야 사는 물고기인데, 이젠 물이 거의 말라 붙었습니다. 
연구소는 초기 몇년은 빌딩(새로운 정당) 건설 현장의 컨테이너 박스 같은 존재였다가(이 때는 상근자도 6~7명), 그 이후는 일종의 개척교회처럼 운영되었습니다. 별로 많지 않은 신도(?)의 헌금과 목사(?)의 개인기(교육, 강연, 자문, 칼럼, 컨설팅 등)로 운영해 왔다는 얘깁니다.  그러다보니 18년간 공공의 일을 해왔지만, 정부 국회 정당 지자체 공공기관 캠프 등에서 단 한번도 월급을 받아 본적이 없습니다. 
아다시피 이제는 물고기가 필요로 하는 물(대중적 정치혁신의 열망)이 엄청나게 쫄아들었습니다. 이 판을 반전시켜 보려고, 노선을 공유하는 정파 혹은 정당 건설 프로젝트도 몇 번 시도했지만 실패하면서, 막판에는  목사(?)의 개인기에 압도적으로 의존하는 가난한 개척 교회처럼 되었습니다. 더 이상 과거 방식으로 운영할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CMS도 해제하고, 연구소 홈피 호스팅도 해제 했습니다. 
2009년 5월 13일자로 메일로 날린 "연구소 재정 투쟁기 -사회디자인연구소의 탁발 요청-" 이 있는데, 다시 읽어 보니, 찡합니다. 그 때 연구소 1차 재정 위기가 와서, 제가 긴급 후원 요청을 한 것입니다. 이 때 탁발에 응한 사람이 정말 많았고, 이 중에 몇 명은 지난 8월까지 CMS후원을 해 주셨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시간 되는 분들만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15년 전에는 민주진보좌파 정치세력의 발본적 혁신을 미션으로 삼았는데, 시간이 흘러 현실을 바로 보면서, 자유보수우파 정치세력의 혁신이 훨씬 빠르고 바른 길이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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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 (불교)[托鉢, Pindapata]
걸식(乞食)으로 번역하며 지발(持鉢)·봉발(捧鉢)이라고도 했다. 중국에서는 송(宋)나라 때부터 탁발로 통했다. 탁발은 인도에서 일반화되어 있던 수행자의 풍습이 불교에 도입된 것인데, 중국·한국의 불교에서, 특히 선종에서는 수행의 일환으로도 간주된다. 본래의 취지는 수행자의 간소한 생활을 표방하는 동시에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버리게 하며, 속인에게는 보시하는 공덕을 쌓게 하는 데 있다.(daum 백과사전)

공덕이 부족하면 굶든지, 晝耕夜讀(주경야독)하든지
지금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2천년 이상, 중들이 탁발을 할 때는 마을의 아무 골목이나 찍어서 연속해서 일곱 집을 들어갔다고 한다. 일곱 집을 들러서 먹을거리를 마련하지 못하면, 다른 골목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덕 부족으로 여겨 그냥 굶었다고 한다. 늘어선 일곱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든지, 아니면 농사 작황이 나빠서 나올게 없으면 당연히 굶어야 한다. 부유한 집이 있다 하더라도 중이 제공하는 영적 서비스()를 인정하지 않으면 굶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성경에 십일조의 의무가 명시되어 있는 기독교/유대교에 비해 불교는 성직자들이 훨씬 치열하게 자신의 영적 서비스의 효용을 대중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처지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경영학 용어로 말한다면, 불교는 기독교 보다 더 고객 친화적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고나 할까! 대중의 생활 형편이나 (교리나 영적 서비스에 대한) 대중의 평가에 훨씬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어 있으니! 그런데 현실은 신도의 교회 선택권이 있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가 훨씬 고객 친화적인 것처럼 보인다.
사실 그 동안 사회디자인연구소가 날리는 매주 몇 만 통의 이메일의 한 귀퉁이에 붙인 CMS 후원 요청은 중들의 탁발 요청 내지, 교회의 예배 끝 무렵에 돌리는 헌금 주머니 비슷한 것이다. 그런데 여태까지 연구소가 제시한 담대한 꿈과 제공한 지적 서비스()가 CMS를 하고 싶을 정도가 되는 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당연히 아무 골목이나 찍어서 찾아들어간 탁발승처럼, 연구소가 쌓은 공덕 부족이라고 판단되면 쫄쫄 굶어야 마땅하다. 물론 굶다가 안 되면 품팔이나 농사짓는 일을 왜 못하겠는가사실 1980년대를 거쳐 온 운동권에게 晝耕夜讀은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최소 3년 길면 10년 이상 올인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없는 시대, 모든 것이 프로페셔널화 되는 시대에 주경야독으로는 뭘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에 탁발 요청을 하는 것이다.

지난 1년의 결산
작년 5월 초'성찰과 모색을 위한 토론 모임' 선수들; 이범재, 김두수, 김영철, 권태홍, 홍용표, 김기준, 김대호 등이 연구소를 하기로 의기투합하였다. 연구소 이름은 '이름이 좋다'하여 사회디자인연구소로 하기로 하였다. 근 6개월간 운영하던 내 개인 연구소(공평사회연구소)는 사회디자인연구소라는 公器에 쓸어 넣기로 하였다. 나는 초대 소장으로 연구소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2대, 3대 소장에게 바통 터치하는 대업(?)을 맡았다고 할 수 있다.
연구소를 하자는 취지의 핵심은 명색이 집권 가능한 진보개혁 정당을 만들겠다는 '선수'들이 1~2주 만에 한번 씩 음식점(주로 한정식집인 '가야')에서 만나 거사를 모의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기투합할 즈음에 김기준이 빡세게 사업을 추진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얘긴 즉, 사무실 임대료-관리비-운영비 월 200~300만 원 정도를 갹출하여 복덕방 사무실 비슷하게 운영하는 식이라면, '선수'들이 제각기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사업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요 선수들이 땡빚을 내서라도 각자 1,000만 원 정도를 갹출하여 몇 천만 원이라도 쌓아놓고, 거기서 월급을 타 가는 방식으로 몇 개월간 빡세게 해서 승부를 보자는 것이었다. 또 이것을 담보 내지 배경으로 해야 좀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연 100만원 혹은 월 1~2만원의 후원이나 찬조를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작년 5월경에 세운 연구소 재정 계획은 1,000만원 내는 사람 10명, 100만원 내는 사람 100명, 총 2억 원 정도로 마중물을 마련하여, 이후 활동을 통해 그 가치를 입증한 후, 크고 안정적인 지하수맥인 월 1~2만원을 내는 후원자 다수를 모은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교육이나 연구용역 같은 돈 되는 프로젝트도 할 수 있으면 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연구소가 일종의 신도(?)들의 헌금에 의존하는 개척교회 모델을 채택한 이상, 연구용역은 가급적 피하는 것으로 하였다. (개인적으로 내가 연구소 간판을 달고 산지가 근 4년째 인데, 이전 연구소의 주 수익 모델은 대체로 연구 용역이나 컨설팅이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 대체로 그렇듯이 우리의 실적도 계획에 약간 못 미쳤다. 실제 납입한 돈은 대략 그 75%인 1억 5천만 원가량이었다. 이 중 60% 가량은 9명(대체로 1천만 원)이 냈다. 계획 대비 실적이 저조한 것은 아무래도 소액(?)=연 100만원 후원자가 계획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다. 월 1 만 원 이상의 CMS후원자는 애써 모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애써 모아보려고 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연구소 재정 문제 해결의 기본 원칙은 새로운 진보개혁 정당 건설을 추진하거나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어떤 것’을 제공하고 이들로부터 십시일반 후원을 받는 것이었다. 그 ‘어떤 것’은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데 필요한 담대한 꿈과 사명, 그리고 당파성, 과학성이 튼실한 정치노선(철학, 가치, 비전, 정책패키지)과 조직노선, 당 건설 로드맵, 그리고 훈련된 당의 골간 대오 및 전문가 네트워크(인재풀), (대중적으로 돈, 사람과 사회적 신뢰를 모을 수 있는) 새로운 시민운동(일명 포도송이) 등 이었다. 지금 돌아보니 이는 하나 같이 높고 험준한 산이었다. 솔직히 작년 5월경에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으나 우리가 등정할 산이 이렇게 높고 험준한 설산인 줄은 몰랐다. 또 나를 포함한 우리의 등반 대오의 의지, 체력, 장비, 기술 등이 이렇게 미흡한 줄 몰랐다.

쪼그라든 꿈, 녹슨 초심, 현실에 대한 무지
연구소 재정 안정화 도정에 놓인 험준한 설산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연구소가 넘어야 할 첫 번째 설산은 (줄만 잘 서면 개인적 출세는 가능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불임정당에 가까운) 민주당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담대한 꿈을 널리 나누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8년 민중의당, 한겨레민주당 이후 3김과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던 수많은 정치적 시도의 좌절의 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은 경험론에 입각해서 우리의 꿈이 철이 없다고 도리질 하였다. 한편 민주당의 구조와 현실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감소를 초래함에도 불구하고 지분을 떼 주는 결단을 결행할 수 있는 김대중이라는 지배 주주도 없고, 열린우리당처럼 비기득권 세력이 도전할 수 있는 게임규칙도 없는 일종의 소상인 연합회 구조. 또한 대영남 소호남 구도에서 대선 승리의 관건인 정치적 매력을 만들 수 있는 리더십도 시스템도 없는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죽으나 사나 과거 방식의 답습 외에는 길이 없다고 도리질 하였다.
이들이 생각하는 대안은 민주당 공천을 받으려면 각자 돈이든, 전문성이든, 대중적 인지도든, 지역기반 등을 쌓으면서 모여 있다가, 민주당 쇄신론이 득세할 때 잽싸게 민주당에 (포장지로) 수혈 되는 것이다. 2012년을 대비하여 가능성 있어 뵈는 유력자(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중진, 정운찬 등)에게 일찍부터 줄 서는 것은 필수다. 이런 사람에게는 부질없는 도전을 하고 있는 우리 연구소가 얼마나 안쓰러워 보일까! 후원은 커녕 도시락 싸 가지고 다니며 말리지 않은 것을 고마워 해야 할 것 같다. 나름대로 ‘담대한 꿈과 사명’을 썰 하면서 돌아다니다 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개인과 가족의 생존에 오랫동안 매몰되다보니 정치와 사회를 읽는 눈이 퇴화해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최상류에 있는 정치의 후진성으로 인해 하류(경제, 사회, 문화 등)에서 얼마나 큰 고통과 위기를 겪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사실 하류의 고통을 뼈에 사무치게 느끼지 않으면 정당을 만들고, 정치를 하는 이유를 잃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나이 들어 다른 할 것이 없어서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개건달 정치’, 아니면 의원, 시장, 군수가 되는 것을 지고지상의 목표로 삼는 변칙적 ‘출세 정치’를 할 수 밖에 없다. 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 이전과 이후, 열린우리당과 현 민주당의 구조적 차이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정동영이라는 필패의 카드를 대선후보로 옹립한 정당의 구조, 인적 기반, 다수의 마인드, 지적 능력도 망각하고 있었다. 지난 4~5년 동안 정치지도자라면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황당하거나 얍삽한 행보 외에 보여준 것이 별로 없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중진들의 한계(밑천)도 망각하고 있었다. 정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정부,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대선, 총선의 실패로부터 배운 것이 없든지, 배운 것을 까먹어 버린 것 같았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촛불 사태로 인해 잠깐 감돌던 반성과 성찰의 분위기가 날아가면서 더욱 악화되는 듯 했다. 한없이 쪼그라든 꿈, 잊어버린 사명, 퇴락한 투지라는 산은 최상류에 있는 정치가 야기한 엄청난 모순, 부조리를 인식하는 문제이자, 민주당의 구조적 한계와 정치적 대지진을 예고하는 엄청난 에너지(거대한 Swing Voter의 요동)가 지각 깊숙한 곳에서 축적되는 양상을 인식하는 문제이다. 물론 청년 시절에 잠깐 가졌다가 창고 깊숙이 처박아버린 녹슨 초심과 대담한 정치적 상상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여 설산을 넘어가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나 개혁당, 노무현 당선, 열린우리당 과반으로 이어지는 대박의 추억과 지난 2007년 열린우리당 해체의 아픈 기억 -이는 곧 민주당에 대한 혐오감이다- 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산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당연히 이들이 사회디자인연구소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뒤에 얘기하겠지만, 이 산을 가볍게 뛰어넘은 사람들은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새로운 이념의 차별성 인식
연구소가 넘어야 할 두 번째 설산은 우리가 생산한 콘텐츠(정책패키지)의 가치를 널리 인정받는 것이었다. 대체로 생산자들이야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자부하는 물건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시간이 흐르면 높은 가치가 있는 물건으로 판명난다 하더라도, 당대의 전문가나 소비자로부터 인정받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 특히 이념이라는 물건은 효용이나 품질이 바로 바로 평가되는 일반 상품과 달리, 실천해 보지 않으면 그 효용을 알 수 없는 가설들이 많기에 가치 평가가 더 어렵다. 또한 이념은 대중적 수용과정에서 비이성적 편견, 공포에도 크게 영향 받고, 개인적, 집단적 이해관계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우리가 잘 아는 황당한 이념과 사이비 종교들이 맹위를 떨쳤을 것이다. 당연히 대중들은 이념, 정책의 권위자에게 판단을 맡긴다. 언론은 스스로 이데올로그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들의 철학과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권위자를 통해서 이념을 전파한다. 문제는 우리 연구소에는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권위자(석학)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잘 통하는 해외 석학이 만든 이념을 포장만 바꿔 판매하는 오퍼상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진보와 보수의 주류적 이념에 반기를 들고 있기에, 이들 주류 언론과 긴장이 생기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이래저래 우리의 콘텐츠의 가치를 널리 인정받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정치의식이 높은 대중의 눈으로 보면, 새로운 진보의 이념, 정책을 생산하는 일은 수많은 진보 언론과 진보 연구소가 열심히 하고 있다. 이 생산물은 거의 공짜다. 양질의 콘텐츠를 공짜로 메일링 하는 곳도 어디 한 두 곳인가! 월 1~2만원이면 200자 원고지 1장당 1~2만원의 거액을 주고 산 고품질 원고들이 그득한 잡지(조중동이 발행하는 잡지 등)도 볼 수 있다. 왠만한 직장인이라면 사고 싶은 책, 영상 콘텐츠가 부지기수다. 후원하고 싶은 단체나 후원 요청하는 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정당 건설을 표방한다 하더라도 연구소 후원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월 1만원의 CMS에 응해준 분들에게 정말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지금 돌아보니 연 50만원~300만원을 낸 사람들은 더 대단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정당도 아닌 연구소가 100만원을 내는 분 100명을 모은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목표였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무엇으로 후원을 하고 싶은 마음을 동하게 할 수 있을까이는 작년 5월 출범 시부터 지금까지 한시도 놓지 않은 화두이다.

슬럼가와 뉴타운
사회디자인연구소는 여간해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차별화된 정치적 실천(집권 가능한 진보정당 건설)을 향도하고 뒷받침하는 차별화된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콘텐츠의 핵심은 민노당, 진보신당 같은 정치적 미숙아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런대로 성인으로 쳐 줄만한 참여정부의 성과, 한계, 오류를 딛고 선 새로운 이념(정책패키지)을 개발하고, 확산하는 것이었다. 이는 1980년대 조직적 학습과 실천을 통해서 형성된 이념, 정서의 합리적 핵심과 1990년대 확인된 소련.동구.중국.북한의 거대한 정치사회적 실험과 지난 20년의 노동/민중 운동, 진보 정치운동과 10년의 민주정부의 실험 등을 통해서 확보한 엄청난 경험, 지식, 지혜를 모조리 녹여내어 새로운 진보 이념의 철강재를 생산하는 문제이다. 한마디로 녹슬어 너덜거리는 구시대 철강재()로 건설한 슬럼가를 밀어버리고, 새로운 진보 이념의 철강재로 새로운 정책, 시민운동, 정당, 정부, 정치생태계의 뉴타운을 건설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지난 1년 동안 우리의 현실 인식과 주장이 많이 명확하게 되고, 체계화되고, 정식화 되었다. 우리 연구소가 정리한 현실 인식과 주장의 요지는 이런 것이다. 한국 특유의 비동시성의 동시성->과잉시장(경쟁), 과소시장(경쟁), 이권국가의 상호 의존->좌파적 개혁과 우파적 개혁의 병진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논리 체계가 대표적이다. 좌우개혁 병진론은 단지 보수우파가 고창하는 정책을 진보좌파의 정책과 기계적으로 결합시키는 수준이 아니다. 정책 하나하나에서도 두 개의 솔루션을 다 구사하기에, 전통적인 좌, 우파 정책과는 다른 것들이 많다. 마치 왼쪽 팔이나 오른쪽 팔만 쓰는 무술인이 기존의 좌, 우파라면 우리는 양팔을 자유자재로 쓰는 무술인 이라고나 할까 또한 법가 철학(현대적 인간관의 합리적 핵심이기도 하다)과 공평론(사회적 상벌체계 중시론이자 현대 경영학의 합리적 핵심)에 입각한 현실 인식과 대안도 중요한 지적 성과이다. 또한 가치생산 생태계와 정치생태계 중시, 2nd Chance Society, 화이트칼라(지식근로자), 소비자, 벤처중소기업가, 청년세대, 3비층의 이해와 요구 중시, 바닥현실, 통계, Detail, interface(경계면) 중시, 참여정부의 성과, 한계, 오류 규명, 민주당의 질적 변화(구조적 한계), 지난 대선과 총선에 대한 새로운 의미부여(한국 전쟁 이후 최초의 역사적 패배)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지적 성과이다.
또한 한국 지식사회와 정치의 혼미와 혼돈을 분절적 인식(이론과 실물의 괴리, 장님코끼리 만지기 등 종합 부재), 지식사회와 정치권의 바닥현실에 대한 무지, 한국 토양에 맞는 이념(정책 패러다임)의 부재, 비합리적인 상벌체계(선거제도, 승진제도, 경쟁규칙 등)에서 찾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지적 성과이다. 또한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여 주류 세력은 마치 화전민처럼 민주주의, 자원, 환경을 過하게 또 잘못(誤)소비 했다는 것, 현 세대를 포함한 사회적 강자들과 노블레스들은 그 기여, 부담, 의무에 비해 그 권리, 이익, 혜택이 過하여 한국 사회를 早老 사회로 만들었다는 것, 대기업, 공공부문, 전문직이 누리고 있는 좋은 일자리를 더 이상 늘려 나갈 수 없기에 근본적인 방향의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 등도 주요한 지적 성과이다. 물론 이런 인식과 주장은 의외로 확산이 느렸다. 이념정책 박람회나 품질평가원이나 소비자만족도 조사기관이라도 있으면 좀 낫겠는데 이런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한편 진보개혁 담론이 주로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참여정부조차 신자유주의 정부로 폄하하는 등 균형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편향적 진보언론을 통해서 유통되다 보니, 그들이 볼 때 색깔이 이상한 우리 연구소에는 기회를 주는데 인색할 수밖에....... 하지만 우리 연구소 콘텐츠 유통의 난관은 진보언론의 홀대나 斜視(신자유주의 의심)가 아니었다. 가장 결정적인 난관은 한국의 이념정책의 소비자(정당, 시민사회 운동, 관료 등)가 앓고 있는 악성 당뇨병이었다.

실천 단위의 당뇨 증세
본래 당뇨는 혈관 속에 흐르는 당(에너지원)을 세포가 흡수하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다. 한국의 경우 10~20년 전에는 학생운동, 시민사회운동, 정치조직 등 이념정책 소비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이 받아먹을 만한 이념정책 생산자들은 태부족이었다. 웹공간이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유통망도 시원치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로 되었다. 웹공간에는 자잘한 정세 분석, 정책 제안, 새로운 철학과 가치가 홍수처럼 흐른다. 하지만 이를 취사선택해서 실천하는 단위는 너무 적다. 있다 해도 지적으로 둔감하고, 무엇보다도 감별 능력이 약하다. 더욱이 학자, 연구자, 인터넷 논객 등이 생산한 콘텐츠는 실천 단위가 받아먹기에는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있다. 검토해야 할 접점(인터페이스)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지금 한국은 거의 모든 학자, 논객들이 그 콘텐츠 품질에 상관없이 실천 단위와 겉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우리 연구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한국은 찻잔의 태풍 정도 밖에 일으킬 능력이 없는 논객들의 백가쟁명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 논객들과 진보 언론이 푸는 ‘썰’들은 대체로 개인적, 집단적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결합해 있고, 또 실천이나 선거를 통해서 검증하지 않으면 진위를 판가름하기 어려운 가설들이 많기에 이들끼리의 논쟁으로는 정리될 것이 많지 않다. 이는 교수 사회의 논쟁을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백가쟁명 상황은 현실에 굳건히 뿌리박은 정당, 시민운동단체, 관료, 기업 등이 판관이 되어 채택, 실천하지 않으면 정리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한마디로 지금 한국의 문제는 콘텐츠 생산자가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생산한 콘텐츠는 괜찮은데 소비자가 몰라주어서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콘텐츠와 콘텐츠 생산자들은 소비자의 피드백과 판관 역할 없이는 더 이상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추측컨대 콘텐츠 소비자가 똑똑해지면, 세상 물정 모르는 진보언론들이 띄운 논객들 상당수는 도태되지 않을까 한다.
진보개혁의 진짜 교살자(絞殺者)
콘텐츠 소비자의 당뇨 증세 외에도 우리의 콘텐츠 확산의 거대한 장애물은 또 있었다. 하나는 진보개혁 진영의 반성과 성찰의 부재였다. 가만히 보니 진보개혁 정치인들은 대선, 총선을 통해서 심판이라도 받았다. 그러나 이들에게 (때론 캠프에 들어가 은밀하게, 때론 매체를 통해서 공공연하게) 훈수를 두고, 교사 연했던 지식사회와 진보 언론은 전혀 심판을 받지 않았다. 자체적인 반성도 성찰도 없다. 오히려 항상 옳은 길만 제시했던 사람처럼 더 기세 등등하다. 이들 중에는 지난 대선과 총선 참패의 원인을 노무현, 친노, 참여정부, 신자유주의에 돌리는 교사()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이들과 반성부재, 성찰 부재의 문화야말로 진보개혁의 진짜 絞殺者라고 생각한다.

유권자의 다수, 진보 지식사회의 소수
연구소의 본령은 콘텐츠의 품질을 인정받는 것이다. 그런데 근 1년 동안 떠들어보니 우리의 콘텐츠는 지적 수준이 매우 높지 않고서는 그 가치를 알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사실 우리 연구소의 진가는 구운동권, 민노당, 진보신당, 김근태/천정배류, 진보언론, 한창 변죽을 올리는 몇몇 연구소(단체)가 고창하는 이념(정책 패키지)이 현실과 격렬하게 충돌하는 현장을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보개혁 정책은 진보적 교수들과 국책연구원들의 머릿속에 다 있는데 다만 정권이나 당권을 못 잡아서, 혹은 자신이 의원이 아니라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하수들은 더더욱 연구소의 가치를 알 수가 없다. 새로운 진보이념(정책 패키지)은 사회복지학, 행정학,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교수들이 모여서 각자의 지론을 모아 놓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우리 연구소의 진가를 알 수가 없다. 천의 얼굴을 한 한국 사회를 종합적이고 균형적으로 이해하는 것의 어려움과 빈약한 소통. 융합의 문제를 모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의 한계와 오류를 거의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말 하려니 낯 뜨겁지만) 우리 연구소의 진가는 김영삼 정부 지금까지 의욕적으로 행한 많은 개혁들이 대체로 자전거 프레임에 유럽산/미국산 자동차 바퀴를 끼워 넣는 식의 개혁이거나, 풍선효과를 모르고 불거진 부분만 쑤셔댄 개혁이거나, 구부러진 동전을 볼록면은 그대로 두고 오목한 면만 피려는 식의 개혁이었다는 통찰이 있어야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가방 끈이 짧고, 유학은커녕 외국어조차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우리 연구소의 콘텐츠의 차별성은 핵심 선수들이 기업, 정당, 노동운동, 시민운동 등 실물이 움직이는 현장에서 치열하게 연구, 고민, 실천해보았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경험과 통찰을 집단적 토의를 통해 녹여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우리 연구소의 진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대체로 反盧, 反신자유주의가 아니라 克盧를 지향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 운운하면서 전면 부정하는 자칭 진짜 좌파들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고, 참여정부의 성과, 한계, 오류를 구분하여 계승 발전시키려 한다. 이런 사람들은 유권자 수로는 다수지만 진보언론과 진보지식 사회에서는 소수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현실을 잘 알고, 물질적 문화적 생산력을 주도하는 기업 엘리트들, (경제적 지대에 안주 하지 않으려는) 진짜 전문가들, 양심적이고 유능한 관료들의 다수이기에 역사의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민운동 조직
연구소가 넘어야 할 세 번째 설산은 새로운 이념에 입각하여 작은 모범(새로운 시민운동)을만드는 것이었다. 즉 박원순이나 최열이 보여주었듯이, 사회적으로는 필요하지만, 사람들이 잘 안하거나 못하는 시민운동(일명 포도송이, 사회적 기업 포함)을 조직하거나, 적어도 이들과 긴밀히 결합하여 돈과 사람을 모으고, 인지도와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운동체 내지 사업체를 중심적으로 수행할 주체는 정당 추진 세력으로 설정하였다. 사회디자인연구소는 그 기획자이자 선도자로 생각했다. 그러나 1년을 지내놓고 보니, 연구소는 새로운 이념 생산에 급급하여, 새로운 운동체나 사업체 관련 기획은 별로 진전시키지 못하였다. 무엇보다도 돈과 사람과 사회적 신뢰를 확보할 좋은 이슈=탄착점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게다가 주변의 정당 추진세력은 오랜 관성으로 인해 연구소에도, 새로운 시민운동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다. 노무현 일병구하기 때처럼 정당 간판을 달아놓으면 돈, 사람, 콘텐츠, 사회적 신뢰 등이 밀려들어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하는 이념다운 이념이라면, 한때 공화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가 그랬듯이 대중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생활 현장에서 살아 숨쉬며, 다양한 대중운동을 일으켜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모순. 부조리가 곪아 터지는 한국 땅에서 대중운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이념은 이념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한국의 정치조직과시민운동체가지적 당뇨 증세를 앓고 있다고 비판했는데,사실 당(에너지원) 흡수.소화력을 잃은수백조개의세포들에게에너지원인 새로운 진보의 이념, 정책을 흡수.소화시키는 관건은홈피, 이메일,매체를 통해 전하는 백마디 말보다 (시대가 요구하지만 남이잘 안하거나 못하는) 일점돌파형시민운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역시 지난 1년의 실천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다.그런 점에서 우리가 정식화한 이념에 입각한 새로운 시민운동을 조직하는 것은 결코 후순위에 놓을 수 없는 과제이다. 이는 연구소가 거의 하지 못한 숙제이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숙제이다.

돈쓰는 문화, 관행
연구소가 넘어야 할 네 번째 설산은 한국의 돈 쓰는 문화, 관행 그 자체였다. 연구소는 이를 바꾸는 선봉이 되고 싶었다. 사실 한국 사람은 교회에 돈 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개신교=기독교가 단연 앞선다. 문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종교단체 연간 운영자금을 보니 기독교가 3조 1760억 원, 천주교는 3390억 원, 불교 4610억 원이었다. 또 한국 사람들은 친구나 동문이 선거에 출마하면 대체로 부의금(3~10만원) 보다는 훨씬 많은 돈을 낸다. 하지만 정당에 정기적으로 당비로 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바로 이 사각지대가 있었기 때문에 월 2천원~1만원의 당비를 내는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에서 큰 소리 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식 사교육비에 엄청난 비용을 지출하고, 별 쓸모도 없는 대학 졸업장 따는데 몇 년의 시간과 생활비까지 합쳐 1억 원이 넘는 돈을 지출 하는 것도 투자 효율이전에 한국 특유의 문화라고 보아야 한다. 정말 소 팔고, 논 팔아서라도 자식 공부시키는 문화를 빼놓고는 한국의 극성 교육열은 설명할 수가 없다. 미국은 정당, 연구소, 시민단체에 돈을 내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되어있다. 미국의 유명 연구소들은 후원금액에 따라 연구소 직함을 판다. 고액 후원자들에게는 연구원(주로 석학)들과 2박3일 세미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특전도 주어졌다. 이런 것들이 특전처럼 여겨지는 미국의 문화도 신기하다. 미국은 웬만한 연구소나 시민단체는 모금비용으로 총 모금액의 30%가량을 쓴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은 한국의 정당, 연구소, 시민단체에게는 언감생심이다. 미국은 돈을 벌면 자신의 이름으로 도서관과 박물관을 짓고, 도로를 놓고, 학교를 설립하고, 장학금을 주는 것을 자연스럽게, 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돈 많은 사람이 공공을 위해 많은 돈을 기부하는 것을 ‘의무’처럼 생각하는 것은 로마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그러나 한국은 주로 혈족이나 가족을 위해 돈을 쓴다. 미국은 공부를 잘하는 가난한 고교생이 있으면 지역사회의 유지가 장학금을 대지만, 한국은 집안의 먼 친척 중에서 돈 많은 사람이 낸다. 그런 점에서 연구소가 넘어야 할 높고 험한 산 중에는 한국의 후진적인 기부 분화를 빼놓을 수가 없다.

상가집 개(喪家之狗)
사회디자인연구소는 이 거대한 설산들을 아직도 등반 중이다. 물론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사회디자인연구소의 재정 투쟁을 탁발에 비유했는데, 1년의 탁발 결과를 살펴보면 대충 일용할 양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떠들 만큼 떠들었으니 고마해라'는 수준도 아니다. 주제 파악도 과제 파악도 확실히 되었다. 엄청난 정치적 기회도, 기회를 현실화 시키는 길도 좀 더 선명하게 보인다.
개인적으로 지난 1년은 내가 교수가 되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공공정책 담론을 연구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가늠해 보는 시간이었다. 다시 말해 유시민처럼 글을 팔고 말을 팔든지, 박원순처럼 꿈과 가치와 아이디어를 팔아서, 즉시민운동을 조직해서나와 연구소가 먹고살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실험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정말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도전할 가치는 있어 보인다. 박원순은 참여연대,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를 통해서 수백명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까지 갔는데,우리가 왜 못하겠는가? 더욱이 우리는박원순처럼 수백명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단기적으로 수명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 정도를목표로 삼는데......
일이 잘 안돼 답답할 때는공자를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 공자 같은 왕 구라에 왕 정치건달도 정치적, 사상적 내공이 최고의 경지에 오른 55세부터 68세까지 13년 동안 정치 낭인이 되어 중원을 방랑하였다. '어느 나라라도 좋다. 내게 정치를 위임만 해준다면 1년 안에 기초를 만들고 3년 안에 큰 성과가 있을 텐데…….' 하면서!
그런데 따지고 보면 공자의 정치 낭인 신세는 그 보다 훨씬 오래 되었다. 천명을 알았다는 50세(知天命)에는 아무도 자기를 기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가 공산씨라는 반란군이 공자를 초빙하자 공자는 기꺼이 가려고 했다한다. 그러나 제자들이 하도 만류하여 가지 못하였다. 그래서 한 백성에게 비친 인상착의가 마치 집 없는 강아지(喪家之狗)꼴로 비쳤다 한다. 하물며 진보개혁 동네가 대체로 집 없는 강아지 꼴인데, 우리 같은 연구소도 그 비슷한 꼴로 헤매는 것이 무어 그리 대수겠는가더구나 젊은만큼 喪家之狗 상황을 더 잘 견딜터이니 보급 투쟁 열심히 하면서 가던 길을 가야하지 않겠는가!-끝-


김호산
반식민지 독립파가 똥고집이 세고 말을 안들으니 머리회전 빠르고 먹거리에 민감한 친일세력을 교화시키겠다고 전향한 지식인들이 생각납니다.
늦깍이에 먹거리 찾으심을 축하드립니다.
~ 저도 한때 사디연 후원자라 한말씀 ...
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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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김호산 오래 전 일이지만 후원 기억하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그런데 현실을 반식민지 독립파 vs 친일세력의 대립이라!! 좀 우습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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