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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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

옥성득 (지은이) | 새물결플러스 | 201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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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옥성득 교수는 1885년부터 1910년까지의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에만 무려 30년을 온전히 투자하며 당시에 기록된 거의 모든 자료를 섭렵하고 해독했다. 그 결과 초기 한국교회가 세간의 통설처럼 서구 의존적이고 미성숙한 교회가 아니라, 상당한 내공을 갖춘 자급적이고 자치적인 교회였음을 논증했다. 그리고 이런 작업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동안 한국교회 안에 전해 내려온 수많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반추와 간증들이 실제로는 사실관계가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것임을 찾아냈다.

저자는 초기 한국교회사를 둘러싼 30개가 넘는 오해들과 곡해들을 자세히 추적해서 성실하고 정직한 시선과 심장으로 바로잡는 노력의 일단을 보여준다.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한 역사가의 성실함과 치열함을 엿볼 수 있으며, 나아가 결국 역사전쟁이란 사실과 자료에 대한 정직한 해석에 기인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머리말
1부 사관
1장 백낙준의 선교사관 비판: 한국사회를 변화시킨 한국적 기독교를 다루었나?
2장 민경배의 민족교회론 비판: 초기 한국교회에는 교회론이 없었나?

2부 선교사
3장 토마스 목사의 죽음은 순교인가?: 1915년 이전의 해석사 검토
4장 첫 선교사는 알렌인가, 매클레이인가?: 감리회 사학자들의 강변을 비판함
5장 감리회 첫 선교사는 아펜젤러인가, 스크랜턴인가?: 스크랜턴 목사를 복권하라
6장 한국 파송 때 아펜젤러가 받은 편지: 개척 선교사의 사명과 임무
7장 아펜젤러의 제물포 기도는 어떤 기도였는가?: 계몽주의 선교의 승리주의
8장 ‘언더우드의 기도’는 누가 썼는가?: 소설을 사실로 착각
9장 선교사들의 한국어 공부: 5년간의 공부 과정과 시험
10장 마페트의 턱 ‘흉터’는 박해의 상처인가?: ‘깡패 이기풍 투석 신화’와 ‘동양의 예루살렘 평양’ 담론
11장 헐버트의 속담: 새우 싸움에 고래가 죽는다
12장 천 개의 생명 루비 켄드릭에 대한 신화

3부 교회
13장 남대문교회는 정말 130년 전에 세워졌을까?: 유니언교회와 남대문교회는 별개임
14장 정동제일교회는 1885년에 세워졌을까?
15장 복원된 소래교회는 재건축해야 한다
16장 서울의 첫 교회들: 장로회와 감리회, 1910년까지
17장 평양 장대현교회 건축 과정
18장 라틴어 전보 한 장, 한국교회를 살리다: 언더우드의 전보와 ‘한국판 부림절’
19장 장로교회의 회중정치와 대의정치의 조화
20장 하나의 ‘대한예수교회’: 그 설립을 위한 장로회와 감리회의 교파 연합 운동
21장 선천 기독교의 성장과 부흥: 토착적?민족적?중산층적인 교회
22장 초기 한국교회가 급성장한 이유
23장 백만명구령운동: 전도에 이용한 다양한 방법

4부 예배
24장 한국의 송구영신예배, 첫 시작은?
25장 토착화된 새벽기도회의 유래와 본질: 성속을 연결하는 영혼의 새벽 종소리
26장 수요예배와 금요기도회: 미국에서 수입
27장 초기 한국교회 부활주일 풍경

5부 논쟁
28장 하나님인가, 하느님인가?: 용어에는 역사가 있다
29장 귀신인가, 악마인가?: 한글 성경의 귀신과 유교와 무교의 귀신론
30장 한국인은 셈족인가?: Korea냐, Corea냐?
31장 한국 초기 개신교와 유교의 공생
32장 처첩제에 대한 세 가지 입장
33장 장로교회 첫 찬송가 논쟁: 1894년 언더우드의 『찬양가』
인명색인/개념색인




1934년 양주삼 감독의 글로 첫 선교사 논쟁이 발생했을 때, 북장로회 선교역사위원회(위원 로즈, 코엔)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여러 선교회나 교회가 한국에서 개신교 선교 사업을 시작하는 데 참여하는 위대한 특권을 받은 것이지, 특정한 선교회나 교회가 그 모든...





저자 : 옥성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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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현재 UCLA 인문대 아시아언어문화학과의 임동순 · 임미자 한국기독교학 석좌교수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거쳐 프린스턴 신학교와 보스턴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역사로 학위를 받았다. 저술로는 『마포삼열 자료집』 1, 2권(책임편역),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이상 새물결플러스), 『대한성서공회사』 1, 2권(1993, 1995), 『대한성서공회사 자료집』 전3권(2004, 2006, 2011), 『언더우드 자료집』 전5권(2005-2010), Sources of Kore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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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역사전쟁이라 불릴 만하다. 한국사회와 교회에서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점화되고 있는 시점이다. 통상 역사는 실제 일어난 일, 그 일을 기록한 자료, 그 자료를 둘러싼 해석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가 올바로 기술되기 위해서는 사실과 해석 간의 일치와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사회와 교회가 노정하는 역사관의 문제는 바로 이 사실과 해석이 불일치하는, 즉 왜곡 혹은 과장되었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생략 혹은 축소되었다는 데 있다. 특히 소위 현실적 힘을 가진 집단에 의해서 역사가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될 때 이런 불일치는 더욱 기세를 부린다. 그리고 역사가 뒤틀릴 때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역사를 소홀히 하는 민족에게 마땅한 미래가 보이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저자 옥성득 교수는 한국교회를 망치는 3대 요소로 물질주의, 독선주의, 적당주의를 꼽는다. 여기서 적당주의는 소위 은혜만 된다면 역사적 사실을 적당히 변조하고 탈색하여 조작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더 구체적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도록 과거의 자료를 과장하거나, 은폐하거나, 표절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공된 역사가 현실을 잡아먹는 일이 벌어진다. 실제로 한국교회 안에는 초기 한국교회사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해석이 무성하게 부유하고 있다. 그것은 신앙과 은혜를 가장하고 지향하지만, 실은 마치 구천을 떠도는 혼백처럼 실체 없이 우리 주변을 서성이며 계속해서 우리의 정신세계를 갉아먹고 있는 것들이다. 그럼 왜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것일까? 한편으로 역사의식이 빈곤하기 때문이요, 다른 한편으로 역사적 사실관계를 바로 잡아야 할 교회사가들의 직무유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성 제도권에서 유통되어왔던 역사를 둘러싼 교권의 감시와 참견도 큰 몫을 할 것이다.

옥성득 교수는 1885년부터 1910년까지의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에만 무려 30년을 온전히 투자하며 당시에 기록된 거의 모든 자료를 섭렵하고 해독했다. 그 결과 초기 한국교회가 세간의 통설처럼 서구 의존적이고 미성숙한 교회가 아니라, 상당한 내공을 갖춘 자급적이고 자치적인 교회였음을 논증했다. 그리고 이런 작업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동안 한국교회 안에 전해 내려온 수많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반추와 간증들이 실제로는 사실관계가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것임을 찾아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작업의 열매인 셈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초기 한국교회사를 둘러싼 30개가 넘는 오해들과 곡해들을 자세히 추적해서 성실하고 정직한 시선과 심장으로 바로잡는 노력의 일단을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한 역사가의 성실함과 치열함을 엿볼 수 있으며, 나아가 결국 역사전쟁이란 사실과 자료에 대한 정직한 해석에 기인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한국교회를 망치는 주범으로 역사적 적당주의 외에도 물질주의와 독선주의를 꼽았다. 물질주의는 초월적 영성을 상실한 현세주의를 의미하며, 독선주의는 교회의 배타적 승리주의 내지 권위주의를 뜻한다.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저자의 해법은 역사적 적당주의를 먼저 극복하자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역사를 바로 세우면, 즉 과거를 바로 이해하게 되면 그 과거에서 비롯된 현재의 우리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서운 속도로 가파르게 쇠퇴해가는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교회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저자의 해법을 따라 이 책과 함께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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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2편




오해와 오류를 교정해 한국 초기 교회의 실체에 다가가다 노란가방 ㅣ 2016-12-15 ㅣ 공감(7) ㅣ 댓글 (0)


1.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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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기 기독교사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던 저자가, 이 시기 한국 교회의 역사와 관련된 잘못된 통설들을 바로잡고, 당시 기독교회의 실체적 성격을 설명하는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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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크게 다섯 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백낙준과 민경배의 교회사관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2부에서는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에 관한 여러 오해들을, 3부에서는 초기 한국 교회들에 관한 오해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담아낸다. 4부 당시로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도 한국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여러 예배(송구영신예배, 수요예배, 금요 기도회 등)의 모습들의 기원과 모습에 관해, 마지가 5부에서는 당시 한국 기독교계 안에서 이뤄졌던 몇 가지 논쟁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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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감상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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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뿌리는 아시아에서 시작된 운동이지만) 우리에게 기독교는 서양에서 전래되어 온 종교이다. 최근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중국(당)을 통해 들어온 경교(네스토리우스교)를 한반도 기독교 전래의 기원으로 보는 시각도 보이지만, 일단 그건 현재의 한국 교회와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 아무튼 이런 이유 때문에 흔히 ‘교회사’ 하면 유럽 중심의 서양교회사가 주류다. 그러나 한국에 교회가 정착한지 100년이 넘은 상황에서 여전히 서양의 이야기만 줄줄 외우고 읊는 건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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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년 간 참 다양한 일들이 한국 교회 안에 있었고, 그 안에는 부정적인 내용들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자산들도 적지 않다. 다만 이런 종류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에는 비신자들은 별 관심이 없고, 신자들의 경우 일종의 ‘헌정된 역사’를 쓰려는 경향이 있다 보니, 종종 충분한 증거 없이 미화되는 측면이 많았던 게 사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오류들을 증거에 입각해 교정하고, 좀 더 사실에 가까운 역사를 쓰려고 노력했다. 좋은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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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과정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들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예컨대 13장에서 다루는 ‘남대문 교회의 기원’은 현재 남대문 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1885년이 아니라 1909년이라는 주장은, 무조건 오래된 것이 좋다는 식의 의식을 갖고 있다면 기분이 꽤나 상하는 내용일 것이다. 흔히 ‘언더우드의 기도’로 알려진 기도문이 실은 소설 속에만 나오는 작가의 상상물일 뿐이라는 설명(8장), 사무엘 마페트 선교사의 턱에 큰 상처를 냈던 깡패 이기풍이 한국인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는 감동적인 스토리에 약간의 윤색이 있었음을(이기풍은 깡패가 아니라 조선 관원이었던 듯하고, 직접 선교사에게 돌을 던져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 지적하는 내용(10장) 역시 김이 새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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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잘못된 사실에 기초해 ‘은혜 받는 일’이 어디 제대로 된 일일까? 사료에 근거해 재구성해가는 한국 초기 기독교사의 이야기는 잘못된 신화를 깨뜨리는 대신,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보화를 발굴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어떤 과정으로 공부에 전념했었는지, 조선 땅에 ‘하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의 노력이 어떠했는지(그들이 교리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노력했는지), 특히 선천 지역의 기독교 성장은 한국 기독교가 서양 선교사 중심의 타율적 조직이 아니라 매우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성장과 발전과정을 거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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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책 초반에 실려 있는 두 초기 한국기독교회사가(백낙준, 민경배)에 대한 비판은 좀 더 상세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스승의 성과물을 비판하는 것이 거의 드문 한국의 학계 분위기에서, 이들의 초기 선구자적 연구결과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런데 이 책에 실려 있는 내용은 일단 너무 적고, 대안 제시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의 목적이 거기에 중심을 둔 게 아니긴 하지만, 그러면 굳이 전체적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 부분을 맨 앞에 배치해 둘 필요가 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과 관련한 연구서가 따로 출판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일단 ‘사관(史觀)’이 중요한 법이니까.





무작정 미화하지 않고,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함으로써 후세에게 교훈과 경계를 남기는 것. 역사 서술의 중요한 목적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초기에 국한된 연구이긴 하지만, 한국 교회사에 관해 아주 흥미로운 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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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초대 한국 교회사> 한국 교회의 시작을 더듬다 쪽빛아람 ㅣ 2016-11-09 ㅣ 공감(1) ㅣ 댓글 (0)

태어날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주기적으로 성경 퀴즈 대회를 했습니다. 교회에서 잘 하면 지역대회에 나가고 거기서도 잘 하면 전국대회에 나가기도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가 속한 교단인 성결교단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대회라고 기억합니다. 동생이 전국대회에 나간 덕분에 곁다리로 껴서 저도 전국대회에 나가서 시험을 쳐 본 경험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교회에서까지 공부를 해야한다는 싫은 마음과 부모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멀리까지 여행을 한다는 좋은 마음이 섞인 심정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이왕 참석하는거라면 학교 공부하듯이 열심히 했다면 어땠을까하고 약간 후회했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굳이 열심히 하지 않았음에 대한 후회라기보다 교회와 세상을 분리했음에 대한 반성이었습니다. <다시 쓰는 초대 한국 교회사>를 읽으면서 어린 시절 성경 퀴즈 대회에 참석하면서 열심히 하지않았던, 그래서 왜 교회와 세상을 나눠서 생각했을까 후회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봄에 읽은 <한국 기독교 흑역사>를 읽을 때만해도 아무도 지난 시간 교회가 걸어온 길을 알려주지 않았음을 안타까워 했는데, <다시 쓰는 초대 한국 교회사>를 읽으면서 인류의 혹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있었으면서 아니 '기독교' 자체의 역사에도 관심은 가졌으면서 '한국 교회사'에 대해서 공부할 생각은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반성했습니다.




2016/05/17 - [2016/Book] - <한국 기독교 흑역사> 한국 기독교의 꼭 필요한 기억을 찾아가다




<다시 쓰는 초대 한국 교회사>는 미국 UCLA에서 연구하시는 옥성득 교수님이 쓰신 책입니다. 책은 대표적인 두 가지 기독교 사관을 살펴보는 1부, 여러 선교사에 대해 소개하는 2부, 초대 한국 교회에 초점을 맞춘 3부, 한국 교회에서 드려지는 각종 예배들의 기원을 살펴보는 4부 그리고 마지막 5부에서 초대 한국 교회에서 논쟁했던 쟁점들을 살펴보는 구조로 채워졌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그리고 왜 이런 모습일까 고민하게 만든 여러 교회 안의 모습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책입니다. 책 제목에 '교회사'가 들어있지만 '초대 한국 교회사'를 다루기 때문에 책 전체가 시간 순서로 구성되어있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가 직접 밝히고 있듯이 ''적당히 만들어진 이야기나 역사적 오류들이 검증 없이 재생산되는 역효과'를 바로잡기 위한 책이니만큼 방대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하나하나의 사건 혹은 주제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도록 쓰였습니다.

그 바람에 책을 띄엄띄엄 읽어서는 초대 한국 교회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흐름이 머리속에 그려지지 않는다는게 하나 남는 아쉬움입니다. 아직도 역사는 공부해야하는 과목의 하나라는 선입견에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같은 책을 기대하고 있는 제가 이상한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보면 어린시절 국사 교과서를 알지도 못했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은 덕분에 고려 이전의 역사는 제 머리속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책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을 소개하면서 리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지난 역사를 바로 알고, 온전히 돌아보고 그를 바탕으로 바른 길을 가는 이 땅의 교회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비록 허구일지라도 감동만 주면 좋은 걸까?...(중략)... 목사들과 신학자들 그리고 기독 문인들은 신자들의 인격과 삶을 변하게 하고 실천을 통해 사회운동으로까지 나아가게 하는 글을 쓰고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리고 이때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내용을 전해야 한다. 모로 가도, 넓은 길로 가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서울로만 가면 되는 것이 아니다. 바른 길, 좁은 길로 가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

-다시 쓰는 초대 한국 교회사, 옥성득 저, 새물결플러스, 155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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