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6

한반도 평화를 위해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나 - 당당뉴스



한반도 평화를 위해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나 - 당당뉴스


한반도 평화를 위해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나
NCCK화통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 토론회
박은석 | guild@hanmail.net

입력 : 2015년 07월 26일 (일) 23:25:35
최종편집 : 2015년 07월 29일 (수) 01:19:06 [조회수 : 1573]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화해통일위원회 주최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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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화해통일위원회가 주최하는 ‘분단극복,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토론회’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을 주제로 7월21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렸다.

분단 70년 평화와 통일에 대한 토론회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서보혁 교수의 사회를 통해 
경남대 정치학과 김근식 교수의 발제로 시작되었고, 
노정선 명예교수(연세대 기독교윤리학), 
이문숙 목사(아시아교회여성연합회 총무), 
송병구 목사(NCCK 화해와통일위원), 
한세욱 총무(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

의 토론으로 이어졌다.



▲ 사회 서보혁 교수




▲ 발제 김근식 교수


경남대 정치학과 김근식 교수

“NLL(북방한계선)에서 남북 간 교전이 일어나면 지금의 상황에선 바로 국지전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는, 팽팽한 긴장의 바다가 돼 있습니다. 마치 고무줄이 힘껏 잡아당겨져 있어서, 고무줄을 끊기만 하면 서로 맞아죽는 이런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경남대 정치학과 김근식 교수는 이날 토론회 발제를 통해 “우리가 세계무역기구(WTO) 10위라고 하는 엄청난 경제력을 가진 대한민국이지만, 서해바다에서는 항상 전쟁의 위기가 감돌고 있는 건 굉장한 역설적 현상입니다. 국민들은 무감각하게 지나갑니다. 그런 중에 군비경쟁의 딜레마라든가, 남북 당국 간 대화라든지 교류가 없는 정치적 불신, 정치적 적개심만 계속 증폭“되는 한반도 상황을 진단하였다.

김 교수는 지금의 남북 간 상황을 최근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설명하며, “북측이 제안하면 남측이 거부합니다. 남측이 대화하자 하면 북측이 쳐다보지 않습니다. 남과 북은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있습니다. 남은 북을 의심하고 북은 남을 미워합니다. 이미 남북 간 대화는 마주앉아도 생산성 있는 평가가 힘든 상황이 됐다고 봅니다. 이번에 개성공단 회담도 그렇고, 그전에 이희호 여사 방북 건도 그렇고, 6.15 공동행사 무산된 것도 그렇고,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측이 불참한 것도 그렇습니다.” 당국 간 대화가 정치적 관계에서도 이미 돌이키기 힘든 수준이 된 것을 토로하였다.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대결과 평화의 실종은 동북아 전체의 군사적 긴장과 적대감을 고조시키는 데 활용되고, 미국과 중국에게는 한반도를 관리하는 데는 이 상태가 나쁠 것이 없으며, 일본은 지금의 한반도 상태를 호재로 생각합니다.” 김근식 교수는, 한반도 평화의 실종과 남북의 정치적 군사적 대결이 동북아 각국의 갈등과 긴장을 촉진하는 데 최상의 빌미가 되고 있으며, ‘한 국가의 방어적인 군비 증강이 상대 국가에게 공세적 군비증강으로 비치게 된다’는 ‘안보딜레마’로 인해, 동북아 전체가 한 번 빠지면 돌이킬 수 없는 군비경쟁에 휘말리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 토론 노정선 교수


연세대 기독교윤리학 노정선 명예교수 (NCCK 화해통일위원회 부위원장)

강대국들이 우리민족을 수탈하고, 정복하고, 분열시키고, 살상하는 것이 엄연한 이 땅의 역사였습니다. 이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겨레사랑에 근거한 단결된 행동이 필요합니다.” 이어 노 교수는 우리민족이 선택 가능할 수 있는 국제역학 경우의 수를 설명하였다. “우리가 외교관계에서 미국과 일본만을 본다면, 친미친일, 친미항일 항미친일, 항미항일 네 가지 선택이 있게 됩니다. 2의 2승의 경우입니다. 그러나 미국, 일본, 소련의 3국을 대입하면, 3의 3승이 되어 27개 경우의 수가 나옵니다. 그리고 미국, 중국, 일본, 소련 4개국을 대입하면, 4의 4승으로서 256(4x4x4x4)개의 경우의 수가 나타납니다. 남과 북이 함께 256개의 경우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평화통일만이 이 256개의 국제 역학의 경우에서 생존·번영하는 길이며 우리의 정체와 자존심을 지키는 길입니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민중, 민주, 인권의 원칙은 이렇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라고 하신 말씀이 있는데, 더구나 형제인 북한 동포를 먹이고, 함께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소통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필수사항입니다. 통일신학은 민족 사랑의 바탕위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민족사랑은 이미 있어왔고, 따라서 통일신학은 새로운 신학이 아니라 이미 있어온 신학입니다.”

“세계의 모순으로 인해 고난 받는 자들과 함께한 그리스도의 삶을 향한 민중신학, 미약하지만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스스로 발전시키고 있는 인민신학, 그리고 이집트 제국신학에 대항해 저항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켰던 모세의 해방신학을 합하며 조화롭게 조절해나가면, 분단을 정당화하고 있는 강대국 중심의 분단신학을 극복하고 한반도 통일을 추구해나가는, 한국기독교는 평화통일과 동북아평화에 기여하는 종교가 될 것입니다.”



▲ 토론 이문숙 목사


아시아교회여성연합회 총무 이문숙 목사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되도록 과거사 청산을 못하고, 광복과 동시 남북 분단 70년 동안 아직도 군사적 긴장과 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 현실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독립국가로서 주체적으로 그리고 어려움을 감내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 태만과 의존증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이러니 친구로 자처하는 나라가 이 땅을 군사화하고, 청산하지 못한 일본제국주의의 과거사를 놓고 양비론으로 얼버무리는 꼴을 봐야 하는 게 아닙니까. 강대국이 휘두르는 힘 앞에서 무기력하게, 의존적 행태를 보이는 것으로는 국제사회에서 누구도 우리 존재를 인정하고 대화 파트너로 존중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처와 치유, 회복을 위한 신뢰를 쌓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무조건 상대에게 잘못 됐다고 비난하다가, 상호간 평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아닌 군사적 대결을 지향하면서 신뢰 프로에스와 대박을 말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이는 마치 놀부가 다리를 부러뜨린 것을 다리가 부러진 것으로 치고, 미봉책으로 동여맨 것을 고친 것으로 치면서 대박을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분단 70년에 거는 기대를 생각하면서, 올해만이라도 남북이 대대적인 군사훈련과 미사일 발사와 같은 전쟁놀이를 - 올해만큼은 접자고 할 수 없었습니까? 도대체 신뢰 프로세스의 시작은 어디입니까? 여성으로 겪은 분단과 종속적 삶과 피해, 아픔과 한을 평화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한반도평화와 통일운동의 다각적인 개입과 참여가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분단의 시기는 남성성이 중심이 되었던 시대였습니다. 군사적 담론, 가부장제, 힘 중심적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분단의 이념 아래 숨죽이고 있던 여성담론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여성들은 1996년부터 대북지원 활동을 하며 평화통일운동의 주체로 나서고 있습니다. 민족의 어머니, 신앙의 어머니, 이 땅 모든 남성들의 모성(母性), 상처와 치유, 구원의 서사! - 오늘날 이 땅의 ‘여성운동은 통일운동이며, 통일운동이 곧 여성운동’ 입니다.



▲ 토론 송병구 목사


기독교대한감리회 색동교회 송병구 목사 (NCCK 화해통일위원)

목회자로서 현재 교회가 직면한 평화통일운동이 “왜 이리도 지리멸렬한가!” 스스로 묻게 됩니다. 지난 30년을 돌아볼 때 지금은 사회적으로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열정, 의지가 침체돼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끄럽게도 교회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예배와 기도회조차 일회성 이벤트에 그친 채 지속하질 못했고, 교회언어와 고유한 상징으로도 표현해내질 못했습니다. 외부 사회의 제약을 뛰어 넘기 위한 교회다운 도전과 순교적 헌신도 이젠 찾아보기 어려우며, 북의 파트너십도 발전적 관계를 도모하기엔 너무 무기력한 상대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인의 평화통일에 대한 감동을 지속하고, 통일 감수성을 내재화하고, 열정을 축적하면서 참여를 확대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왕년의 기념비적 사건을 기념하는 일에도 역량이 딸리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에 빈곤한 것은 목적의식과 비전의 부재입니다. 기독교 통일운동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까닭은 한마디로 ‘우리 자신의 미성숙함’ 때문입니다. 그 결과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기도와 예배의 생활화, 신앙운동화가 부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회는 지난 70년간 지속된 분단 현실과 70년 이상 반복된 통일염원을 가볍게 취급해왔습니다. 분단과 통일에 깊이 없는 성찰, 최책 없는 습관적 자성, 해도 안 해도 그만인 행사 치레는 평화통일운동과 이에 따른 신앙고백을 화석화 시켰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교회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도 실은 그 의식의 변화는 교회의 각성과 신앙교육의 결과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분단환경의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사회는 교회를 앞질러 빠르게 변화하였고, 오히려 교회는 사회로부터 정체된 것에 대한 질타와 우려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교회로서 최소한 교회다운 기본적 소양’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평화통일운동은 구호나 이벤트, 통과의례의 제의가 아니라, 예배와 생활, 신앙과 윤리, 내적 경건과 외적 행실이 일치하는 신앙과 삶의 기본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지난 70년 분단세월이 우리에게 많은 위기를 가져다주었다면, 평화와 통일로 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열린 기회를 줄 것입니다. 평화통일로 가는 과정에 교회가 신실하게 참여하는 것은 한국교회를 변화시키는 유일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 토론 한세욱 총무


한세욱 총무 (한국기독청년협의회)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을 묻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모두의 생존을 건 상황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는 여전히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분단 70년이 지나고 있지만, 평화를 이루기는커녕 핵전쟁의 기운마저 감돌고 있습니다. 더욱이 G2 중국과 미국의 등살에 한반도는 신냉전 구도에 편입될 수 있는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입니다.

1984년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일본 도잔소에서 남북교회 지도자 만남을 주선하여, 역사적인 만남을 통해 한반도 화해와 통일을 향한 교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한반도 평화를 이루지 못하여 30년이 지나도록 남북교회의 만남은 아직도 WCC를 통해서 만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면인 것입니다.

전쟁과 분단의 상황을 후대에 물려준 점에 대하여, 교회는 젊은 세대에게 사죄해야 마땅합니다. 이제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젊은 세대에 대한 미안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에서 시작돼야 할 것입니다. 지금 통일운동의 가장 큰 과제는 청소년과 20대 30대 청년들에게 통일과 통일운동의 필요성을 알리고 그들이 통일운동의 주체로 설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시민사회운동의 다른 분야들도 그러하지만 특히 통일운동은 가장 노쇠하였습니다.

통일운동은 소수 전문가들의 운동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높은 수준에서 이야기 되는 통일 담론이 아니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통일은 가정과 직장, 한교와 교회에서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자유로운 이야기를 통해 다양하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서로 협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통일의 꿈을 자유롭게 펼쳐나갈 수 있도록 교회가 든든하고 넉넉한 품으로 안아주어야 합니다.

평화와 화해의 세대를 열어나갈 세대인 청년들이 우리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다양한 차원에서 청년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차세대 지도력 개발을 위해 청년과 여성의 참여를 보장하고 교육, 양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실행해야 합니다.



▲ (우측)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김영주 목사, (좌측) 6.15 남측위 서울상임대표 박덕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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