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이승만의 개종 기도문은 후기의 작문
1899년 이승만의 개종 기도문은 후기의 작문
사용자 lutheroak 2019. 3. 13. 15:28
옥성득 교수의 한국 기독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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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이 아니라 1912년 경에 만들어진 작문이다.
1903년 한성감옥의 이승만(맨 왼쪽)과 죄수들, 이승만만 종신형 죄수라 방갓과 쇠사슬을 목과 가슴에 매고 있다.
이승만은 24세가 된 1899년 1월 9일부터 1904년 8월 7일까지 한성감옥에 갇혀있었다. 1899년 3월 탈옥 미수로 7월에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5년 7개월의 세월은 인생의 대전환점이 되었다.
완벽한 개종 이야기이다. 바울처럼 열렬한 애국자로 데모에 참여하다가, 어두운 감옥에 갇혔다. 절망의 순간에 성경을 읽고 선교사의 말이 생각이 나서 기도했다. 그러자 감방에 빛이 가득했다. 평안이 찾아왔다. 선교사에 대한 증오가 사라졌다.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고 겨울을 따뜻하게 지냈다. 그들의 도움으로 도서관을 만들고 전도인이 되어 양반들을 개종시키는 자가 되었다. 사실이겠지만 후기에 쓴 이 글에는 일부 작문이 섞여 있다.
1. 1903-04년 옥중이나 석방 후의 글에는 옥중 개종 경험을 말한 부분이 거의 없다.
2. 미국에서 연설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옥중 경험을 재구성하였다.
그의 개종 이야기는 미국에서 연설과 설교에서 반복되면서 일정한 형태의 이야기로 발전되었다. 미국복음주의자들이나 선교사들이 듣기 원하는 전형적인 틀 안에 자신의 경험을 부어 넣어 주조했다고 볼수 있다. 즉 1905-10년 사이에 그는 183회 이상 연설했다. 주된 청중인 교인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바로 자신의 드라마틱한 삶이었다. 자신의 개종 과정은 당대에 망해 가는 한국에 유일한 희망이 기독교라는 듣고 싶은 메시지와 잘 어울렸다. 교인들이 해외 선교에 투자하는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바로 자신들의 눈 앞에서 간증하는 이승만이었다.
이승만의 감옥 경험은 사실이었고 그의 개종은 진정한 개종이었으나, 이야기는 점점 드라마틱하게 조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말한 이야기에 없던 기도문이 미국 연설 과정에서 만들어져 나갔다.
1908년 피츠버그선교대회 연설은 그의 초기 미국 연설의 절정이었다. 그 연설문에서 처음으로 감방에서 드린 기도문이 제시되었다.
"O Lord, heal my wounded heart and lift me up in thine arm!"
"오 주여! 상처 입은 제 마음을 고쳐주시고, 당신의 품 안으로 끌어올려 주소서!"
가장 큰 전환은 기독교인으로의 개종이었다. 1899년 성탄절 때는 배재학당 스승이었던 아펜젤러 목사에게 감사의 편지도 보냈다. 그 무렵 개종한 듯하다. 그는 종신형이라 목에 칼이, 발에는 차꼬가 채워져 있었다. 절망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그는 성경을 읽다가 드디어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감방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면 성경을 읽었다. 배재학교 다닐 때는 그 책이 아무 의미가 없
었는데 어느 날 선교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평생
처음으로 감방에서 "오 하나님, 나의 영혼과 우리 나라를 구해 주옵소서!"(Oh God, Save my soul
and my country.)라고 기도했다. 그랬더니 금방 감방이 환한 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고 나
의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평안이 깃들면서 변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선교사들과 그들의 종교에
대해 갖고 있던 증오감과 불신감이 사라졌다.” (이승만: 투옥 경위서)
--Syngma Rhee, "Korea's Humiliation, Christianity's Opportunity," In The Church and Missionary
Education: Addresses Delivered at the First International Convetion under the Diretion of the Young
People's Missionary Movement of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Pittsburgh, PA, march 10-12 (New
York: YPMM of US and Canada, 1908), 109; E Sung Man, "Appeal of Native Christians," Korea
Mission Field (June 1908): 96.
3. 1913년 Sherwood Eddy, The New Era in Asia, p. 80에 처음으로 그 기도가 나온다.
그런데 그 원형은 "Oh God, Save my country, save my soul!"이었다.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이승만이 감옥에서 읽었던 성경 책이 바로 서우드 에디가 준 성경이라는 점이었다. 감옥에 있던 이승만을 돕던 제중원濟衆院의 올리버 에비슨 원장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선교사 셔우드 에디가 보내 준 영문 신약 성경을 차입해 주었고, 이승만이 바로 그 성경을 읽었던 것이다. 이승만은 도미 때 이 성경을 들고 유학을 갔고, 프린스턴에서 에디 목사를 만나 그 이야기를 해 주며 성경책을 감사의 표시로 돌려주었다! 그러니 에디가 이승만을 한국의 새 시대를 대표할 청년으로 소개한 것은 당연했다.
사실 이승만이 대통령이 된 후 그는 셔우드 에디를 초청했는데, 에디는 이때 과거 프린스턴에서 받은 성경 책을 경무대에서 이 대통령에게 돌려주었다. 두 사람의 우정의 상징이 바로 그 영어 신약 성경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에디가 쓴 이승만의 개종 이야기는 더 드라마틱하게 그려지게 된다.
(4. 중략)
----------추가 2020년 3월 1일
5. 2020년 3월 1일 소위 "3.1절 국민대회" 때 낭독된 전광훈이 구치소에서 보낸 편지
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이승만의 개종과 옥중 기도를 소개, 재구성했다.
그때 이승만은 예수님께 마지막 기도를 했습니다. “제가 배제학교에서 영어 공부하기 위해서 읽었던 성경 책 안에 있던 그리스도가 진실로 살아 계신다면 저를 살려주십시오. 저를 살려주신다면 첫째는 일생을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 둘째는 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라는 서원 기도를 하자 성령의 불이 떨어졌을 때 이승만에게 일생동안 도움이 되었던 직관의 은사가 임했던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
v=kBwF_WEBhrI&feature=youtube&fbclid=IwAR13BPiKhUlRLjqvegkelTjaaGIF4t
qOA26Z3Ihy8FC4Uirn5iJrD8fNYs에서 녹취
전광훈이 직접 쓴 것인지 다른 책에 있는 것을 인용한 것인지는 모르나, 최근 작문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것을 역사 조작, 가짜 역사라고 한다. 1899년에 대한제국이면 몰라도 어찌 대한민국이라는 단어가 나올 수있겠는가
직관의 은사라는 것도 성경에 없다. 이승만을 신화적 인물로 만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아도 청년 이승만은 충분히 훌륭한 인물이었다. 조작과 묘략으로 선 자는 묘략으로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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