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지명 | 삼천리 제10권 제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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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1938년 08월 01일 |
| 기사제목 | 六千萬원은 어느 鑛山에 펴지나, 産金 朝鮮에 흐터지는 이 大金과 有望 鑛山 |
| 기사형태 | 세태비평 |
六千萬원은 어느 鑛山에 펴지나, 産金 朝鮮에 흐터지는 이 大金과 有望 鑛山
産金 정책으로 조선 안에 돈이 쏘다진다는 소리가 높다. 이 돈이라 함은 금을 땅 밑에서 캐여 내여 그것이 돈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땅 밑에 있는 그 돈을 캐여 내기 위하야 爲先 나라에서 여러 가지로 産金 장려 자금과 채굴 저리 자금을 내어 놓게 되니까 놀납게 거대한 돈이 금년부터 5개년 동안을 게속하야 흐터지게 되었함이. 그러면
1. 爲先 얼마나한 돈이
2. 누구 누구에게 흐터지느냐
의 사실과 정부 及 총독부에서 전심력을 다하야 産金 사업에 주력하는 그 규모와 계획을 記하리라.
연 産 100만원 鑛이 10여 處 -1년 産金額이 1억원 가까워-
대체 조선의 金山이 조타 조타하니 얼마나 유망한가? 그를 알기 위하야는 爲先 금광치고 1년 産金額이 100만원 이상 가는 것이 몇 군대나 되는가 함을 보건대 기억에 떠오르는 것만 줄잡어도
大楡洞金山 약 750만원
雲山金山 약 550만원
甕津金山 약 330만원<92>
金井金山 약 320만원
咸興金山 약 300만원
金堤砂金 약 260만圊
義州金山 약 200만원
光陽金山 약 200만원
遂安金山 약 150만원
月田金山 약 140만원
藥山金山 약 130만원
順安砂金 약 120만원
慈城金山 약 110만원
이렇게 만타. 이박게 수십 만원씩 캐내는 金山은 일백십여 개 所인대 예컨대
(忠南) 九峰金山 浩美鑛山 稷山砂金鑛
(全北) 月川砂金鑛
(慶北) 盈德鑛山 尙州金山
(黃海) 篇洞鑛山 藥山鑛山
(平北) 자城鑛山 吉祥鑛山 三成鑛山 宣川金山 稿洞金山 完豊金山 發銀鑛山 楚山大昌鑛山
(江原) 小林洪川鑛山
(咸南) 大嶺鑛山 新興鑛山 德洞鑛山
이 엇지 놀라운 일이 안이랴. (昭和 11년 조사)
금광은 조선의 어느 모퉁이로 갈지라도 있다. 분포 구역은 실로 全鮮 각지로서 금광구 아닌 곳은 겨우 2개 郡 뿐이요. 그박게 이백 몇 십 郡은 어디든지 다 있다 한다.
이미 소문이 난 일이지만 前記 중 조선 제일이라 하는 大楡洞鑛山은 원래 佛國人의 경영이였는데 현재는 일본광업주식회사가 사 가지고 昭和 11년에는 雲山서 500만원 大楡洞서 400만원 캐 내였으나 작년인 昭和 12년에는 雲山을 넘게 되었다 한다. 그리고 李鍾萬 씨의 大同광업에서 경영하는 咸南 長津광산 그 또한 산액이 만키로 너무도 유명한 곳인 줄은 世人 所知하는 바와 같다.<93>
昭和 11년 중의 금광 출원 건수는 5,300여 건, 産金額은 약 5천만원, 砂金 1천만원, 합계 약 7천만원의 정액으로 그 전년에 비하면 약 1천 8백만원의 증가다. 여기 따라서 鑿巖機 사용을 볼지라도 昭和 6년에는 8 광구, 20여 대에 불과하든 것이 작년에는 140 광산, 1,220여 대의 다수에 달하였으며 내지 자본가들이 조선 내 産金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 더욱 많어질 것으로 産金 1억원의 목표는 곳 달할 것이다.
1천만원이 獎勵費로 -어느 金鑛에 펴지는가-
그러면 이제 産金 국책의 선에 연하야 조선에는 産金 경기가 얼마나 올 것인가. 이것을 아라둘 필요가 있다. 産金 사업에는 두 가지 길로 돈이 펴진다. 하나는 장려금의 길이요, 하나는 저리자금융통의 길이다. 이 두 가지 길을 통하여 거액의 돈이 민간에 흐터저 나올 터인데 그 자세한 것을 적으면
産金 獎勵金만 1천백만원
昭和 11년의 성적이 産金量 20톤인 것을 昭和 17년도에는 그 4배를 증가하야 75톤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는데 즉
探鑛
鑿巖機
撰鑛場
金 공동 시설
低品鑛의 공동 채광
방면으로 약 200만원
도로 개발에 100만원
송전선 80만원
이리하야 1천1백만원을 내 보내게 되고 또 産金 장려의 시설로는
기술자 양성
(이것은 고등 공업에 광산과, 大同공업전문의 광산과, 小林광산학교계를 통하야 전문 기술자의 양성) 등등이다. 이박게
金山을 堀할 때에 갱도의 연장에 대하야 보조금을<94> 내고 제련소 건설비를 조성하며, 金山의 기계 수입 면세점의 방법을 취하고 있으며 또 금광의 철도 운임도 4할 引을 하야주며 金山에서 최근의 정거장까의 운임도 貧鑛에 대하야는 전액을 총독부에서 부담하고 있다.
엇쨋든 모든 방면으로 조선에서 産金 계획이 성공되여 지도록 당국에서 萬端의 편의를 보아 주고 있다.
3억만원을 저리로 융통 -벌서 1천만원 40口가 잇섯다-
이제 가장 주목을 끄으는 문제는 지난 의회에서 통과된 半官 半民的 국책 회사인 日本産金振興會社의 창립이라. 이 회사는 자본금 5천만원에다가 사채를 2억5천만원어치를 발행할 수 있으니까 3억만원 회사나 마천가지다. 여기서 조흔 금광에 産金 자금을 융통하야 준다. 즉 금후 昭和 17년까지 4개년 사이에 3억원의 돈이 이 사회 손으로 펴질 것인데 드른즉 조선에만 오늘까지 약 1천만원 융자 잇서 口數로 말하자면 약 40 口가 된다고 한다. 이 돈은 벌서 조선 産金 시장에 흐터저 있는 터이요, 계속하야 거액의 저리자금이 殖産은행과 東拓의 손을 거처 나가 펴 질 것이다. 이리하야 産金 만세의 때는 점점 다닥처 온다.
産金 朝鮮의 大行進 -總督府에는 産金課까지-
그러면 엇지하야 이러틋 산금 정책에 총독부의 전력이 기우러지고 있는고. 여기에는 일반 국민이 아라두어야 할 중요 이유가 있다. 이 이유를 우리들은 충분히 알고 이 국책에 협력하야 다만 한 그람의 금알이라도 더 많이 캐여 네어야 하겠다.
금번 사변이 北支 蘆溝橋에 端을 발한 뒤 벌서 1년이란 세월이 경과하여 갓다. 세상 所知와 같이 北支사변이 확대하야 支那사변이 되어짐에 따라 세계 각국에 비상한 파문을 이르켰는데 특히 我國에서는 사변 그 때부터 我국운 발전을 위하야 세계 각국과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각 방면에 마찰을 生하야 我國의 국방상 군비의 확대 강화를 필요로 하였드니만치 지하의 보고를 개척하여 내여서 그 자원을 준비하지<96>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지난 明治 37,8년의 日淸전쟁 때에는 전비가 2억원으로 되었고 明治 38년의 日露 전쟁에는 12억원으로 되었다. 그러나 이번 사변에는 작년도에 12억원 本年度에 이미 80억원의 예산을 세우고 있다. 又 수출입 관계에 있어서도 작년도 입초금 6억3천만원에 달하엿다.
국민 待望의 徐州는 함락하였으나 아직 鄭州도 있고 漢口도 기터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支那의 장기 항전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동양 평화를 위하야 그만한 각오는 此際에 필요한 일이다.
이렇게 결심한 이상 여기 대한 군비의 충실과 전비를 각오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에 다행히 사변이 속히 끝날지라도 당분은 전후의 국방 충실과 생산력의 확충에 돈이 준비되지 않을 수 없다.
大藏省 爲替 관리법을 행하야 국외에 正貨의 유출을 방지하고 있으나 그러나 엇저랴. 국외에 구하지 안으면 안될 원료가 없는 바가 아닌즉 결국은 正貨를 내긴 내지 않으면 국제 수지를 마처낼 수 없을 것이다.
正貨 준비만 있으면 아모 것도 무서운 것이 없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국내에서 금을 많이 낼 수 있는가 함이다.
총독부에서는 殖産局 안에 産金課를 새로 창설하고 과장에 木野 사무관이 취임하야 분주하고 있으며 산금진흥회사도 법을 시행함과 동시에 창립 준비에 착수키로 되었는데 조선 관계로는 次의 諸氏가 창립 위원으로 임명하게 되었다.
殖産局長 穗積眞六郞
東拓광업 사장 田淵勳
조선제련 사장 松本誠
조선광업개발 사장 野口遵
殖産은행 頭取 林繁藏<96>
<9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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