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강제병합100년> ⑥현대적 조명작업 활발 | 연합뉴스
<한일강제병합100년> ⑥현대적 조명작업 활발
송고시간2010-08-17
<한일강제병합100년> ⑥현대적 조명작업 활발(서울=연합뉴스) 역사적 상징성이 남다른 올해 '한일강제병합'에 대해 학술계에서는 그 현대적인 의미를 반추하는 학술대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근현대사나 일본 관련 학회를 중심으로 한 이런 움직임은 이미 지난해에 일기 시작해 올해 들어 더욱 활발한 모습이다. 학계와 일반을 동시에 겨냥한 계간잡지들도 관련 특집을 앞다퉈 마련했다. 사진은 지난 7월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마련한 '붓 길, 역사의 길' 기획전에 등장한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 '칠언시'. 2010.8.17 << 연합뉴스DB >>
다양한 학술행사로 의미 되짚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올해는 역사적 상징성이 남다른 해다. 안중근 순국 100주년을 필두로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았으며, 4.19 의거는 50년이 됐다.
그뿐만 아니다. 국토의 동맥 경부고속도로는 개통 40년을 맞았고 광주민주화운동은 서른 돌을 막 지났다. 이제는 그 '주년(周年)'의 대미를 장식할 제국주의 일본에 의한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다른 주년들이 대대적으로 현창된 데 견주어, 한일강제병합 100년은 그다지 활기를 띠지 못한채 기념일을 맞는 분위기다. 사실 한일강제병합은 시기도 비슷하고 성격까지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광복절에 늘 밀렸다.
한국 근현대사 흐름을 바꾼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사건은 우선 용어 통일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한일강제병합이라고 불리는데서 보듯 `한일병합'이라는 비교적 객관적 용어 앞에 늘 '강제'라는 수식어가 붙여야 하는 숙명이 따른다. 그에 더불어 경술국치(庚戌國恥)라는 용어도 비교적 빈번히 등장한다.
강제란 말할 것도 없이 원하지 않은 일을 강압에 의해 당한 것임을 강조하는 명명법이다. 나아가 이 사건이 국치라는데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이견이 없는 마당에 강압이면서 국치이기도 한 한일강제병합을 자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국가기관의 문화기관장이 올해 초 기자간담회에서 한일강제병합 100주년 기념전을 준비하느냐는 질문에 외려 취재진에게 던진 반문은 이런 고민을 대변한다.
"뭐가 좋은 일이라고 특별전까지 해야 하나요? 그렇다고 우리가 이렇게 해서 일제에게 나라를 잡아먹히고 말았으며 일본은 이만큼 악독했다고 새삼 되뇌고 싶은 자리를 마련하고픈 생각이 솔직히 없습니다."
실제 이 기관은 이와 관련한 아무런 기획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학술계에서는 그 현대적인 의미를 반추하는 학술대회가 잇따라 열려 대비를 이룬다. 근현대사나 일본 관련 학회를 중심으로 한 이런 움직임은 이미 지난해에 일기 시작해 올해 들어 더욱 활발한 모습이다. 학계와 일반을 동시에 겨냥한 계간잡지들도 관련 특집을 앞다퉈 마련했다.
전시나 공연계에서도 한일강제병합이 자랑할 일이 아님은 분명하기에 그것이 '수치'임을 부각하면서도 제국 일본의 침략주의적 본성을 다시금 부각하는 동시에 그것을 반대하는 움직임, 다시 말해 '민족의 저력' 또한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행사가 눈에 띈다.
이런 흐름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국립고궁박물관과 규장각이라 할 수 있다. 두 기관은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반추하는 '100년 전의 기억, 대한제국'을 공동주최하고 있다. 이 전시를 개막하면서 두 기관은 한일강제병합을 '회피하고만 싶던 과거'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런 언급과 전시 주제가 '대한제국'을 앞세운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서구 열강과 일본, 그리고 청에 국권이 침탈되어가던 대한제국과 이를 이끈 고종황제는 끝까지 자주독립국가를 표방하며 부국강병을 추진했으며 이런 역사가 결코 망국이라는 회피하고 싶은 과거에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대한제국과 고종황제에 대해 국내에서도 여전히 무능한 정부와 독재군주라는 극단의 시각이 엄존하지만 두 기관은 과감히 이런 평가를 거부하면서 대한제국의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향한 꿈과 노력을 재조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고궁박물관 소장 160여 점과 규장각 소장 80여 점을 합친 240여 점에 이르는 관련 유물 및 사진자료를 통해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본에 침탈돼 가는 과정과 대한제국의 영토정책을 살폈다. 대한제국이 던진 빛과 제국주의 일본이 드리운 그늘을 대비하고자 한 셈이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마련한 '붓 길, 역사의 길' 기획전도 이와 더불어 그다지 많지 않은 한일강제병합 특별전으로 주목을 끄는 전시다. 망국(亡國) 전후 그 중심에 선 인물들이 쓴 필적(筆跡)을 통해 왜 나라가 망했으며 어떻게 나라를 되찾았는지를 되짚어보려는 의도로 기획됐다.
이를 위해 전시는 ▲쇄국과 개항 ▲개화와 척사 ▲매국과 순절 ▲친일과 항일 ▲남북공동정부수립과 남한단독정부수립의 5가지 주제로 나눠 서예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조망한다.
이런 접근이 가능한 이유를 박물관 측은 "글씨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말로 설명했다.
한일강제병합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지은 칠언절구 한시에서 운(韻)을 따서 화답한 김윤식(金允植)과 조중응(趙重應), 박제순(朴齊純) 등의 이른바 차운시(次韻詩)를 비롯해 친일매국노의 대명사로 통하는 이완용의 한시가 출품됐다.
나아가 그 반대편에는 안중근이 쓴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액자)와 만해 한용운이 쓴 칠언율시, 을사조약 체결 소식에 목숨을 끊은 민영익의 유서가 선보인다. 그 외에도 백범 김구와 이승만 등 한국 근현대사 거인들의 향기가 담긴 묵흔(墨痕)도 등장한다.
한일강제병합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여전히 일정한 도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일종의 '심리적 저항선'이 있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예컨대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이완용은 이미 한국 근대사 한쪽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니며 그가 서예에 일가견이 있었고 남긴 작품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이완용 특별전 같은 행사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난망'이라는 게 그 대표적 사례다.
서울 인사동에서 고서점 문우서림을 운영 중인 서지학 연구자 김영복씨는 10일 "작품성이라는 측면에서 이완용의 글씨는 동시대 박영효나 김옥균에 비해 많이 떨어지며 을사오적 중에서도 같은 안진경체를 구사한 박제순에 비해서도 작품 질이 낮다"면서 "이완용의 글씨가 좋다는 평판은 그의 당대에 그 자신에게서 비롯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이완용 글씨는 별도 기획전을 열 만한 작품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예의 작품성 측면에서 이완용보다 작품성이 못한 다른 인물의 전시회 같은 행사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그의 작품이 주목받지 못하는 까닭은 작품 그 자체보다는 친일파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씨는 "누가 친일파 전시회를 열려 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그의 서예작품이 꽤 된다고 하지만 친일파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거래도 거의 없다"고 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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