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6

최진석 (2) “나는 5.18을 왜곡한다”를 발표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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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 Seok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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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18을 왜곡한다”를 발표하고 나서
최진석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이런 말을 한다.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한 사람이 이따위 글을 쓰다니. 공부를 많이 한 것하고 진리를 말하는 것은 다른 것인가 보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한 사람’(사실 이 말씀에는 매우 부끄럽다.)이라는 평가를 했으면,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한 사람이 왜 이따위 글을 썼을까?”를 한 번 정도는 생각해 주면 어떨까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나는 갈수록 더 “사람이 한 번 가진 생각을 바꾸는 것은 코끼리가 냉장고에 들어가는 일 만큼이나 어렵다”고 보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더 그렇다고 본다. 정해진 생각을 한 번 가지면, 바로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신념만 강화하는 전사가 된다. 생각 없는 사람들끼리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회는 폭력적 사회가 된다. 평범한 사람도 악인이 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악인이 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해서이다.(한나 아렌트)  그래서 예수님도 회개를 말하고, 부처님도 참회를 말한 듯하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생각하라!”는 말에 제일 가깝다. 장자는 ‘자기살해’를 해야 겨우 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다. “너는 참회나 회개나 자기 살해를 했느냐?”는 누군가의 말이 귓가에 들려서 이 말은 여기까지만 하는 것이 좋겠다.
어제 “나는 5.18을 왜곡 한다”를 발표하고, 많은 양의 비난과 찬사에 둘러싸여 있다. 글을 발표하고 매번 드는 생각이 있다. 글을 읽지 않고 먼저 반응한다는 것이다. 읽지 않고 우선 판단한다. 판단은 주로 맘에 드는지의 여부다. 내 글은 (수준은 아주 낮지만 짧다는 이유로) 시적 형식을 취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만 있으면 이해할 수 있다. “나는 5.18을 왜곡한다”라고 쓰고, 5.18을 왜곡하는 사람들을 저주했다. 나는 5.18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5.18을 폄훼하는 사람들을 폄훼한다. 나는 5.18의 순수를 지키고 싶고, 그 자유와 민주의 정신을 지키고 싶은 소망으로 썼다. ‘읽으면’ 알기 어렵지 않다. 판단하면 불쾌하다. 내 글 어디에도 5.18을 폄훼하는 내용이 없다. 5.18을 향한 절절한 내 사랑만 있다. 나는 내 21살 때의 순수했던 5.18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야 5.18이 산다. 나는 5.18을 왜곡하지 않았다. 나는 5.18을 폄훼하지 않았다.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사람들에게 저항하는 중이다.
5.18은 혁명이고 민주화 투쟁인데, 여차여차 한 이유로 민주당의 전유물이 되었다. 정치인들에게 포획되었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길에 민주당과 정치인들의 노고는 또 얼마나 컸겠는가.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정치인들은 5.18만 가져가고 5.18의 정신인 민주와 자유는 잃어간다. 추종하는 대중들은 민주건 자유건 아무 상관도 하지 않게 되었다. 대중들은 자신들이 자신들의 정치행위를 하는지 아니면 정치인들에게 포획되었는지의 여부를 알아채기 어렵다. 역사에서 내내 그랬다. 그래서 홍위병도 되고 빠도 되는 것이다. 그것을 권력자들은 알고 이용하지만 대중들은 모른다.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면서, 의기양양하기만 하다.
이제 문제는 법으로 지키는 것이 5.18을 더 살리는 길이냐, 아니면 법으로 지키려 하지 않는 것이 5.18을 더 살리는 길이냐가 남는다. 나는 법으로 지키려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5.18을 살리는 길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법으로 지키려 하는 것은 매우 나쁘다. 왜 나쁜가? 그것은 5.18이 쟁취하려고 했던 민주와 자유의 정신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는 반대자들을 처단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자유와 민주의 정신을 더 높은 것으로 볼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는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한다. 소유적 목표와 존재적 목적 가운데서, 존재적 목적이 더 가치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겠다’는 헤밍웨이의 말 정도는 이해할 줄 알아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역사 문제를 법으로 다스리려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를 심히 침해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와 자유의 핵심 사항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아무리 이해가 안 되고 꼴 보기 싫어도 ‘역사의 정신’으로 힘들게 제압하면서 가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꿀 때의 주장도 국가가 역사 해석을 독점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국가가 좌지우지 말라는 것이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하여 북한 어뢰 공격으로 결론지어 공식 발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안함 왜곡 처벌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의 소지가 있어서 법안 소위에도 오르지 못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6.25보다 더 큰 일이 있을까? 아직도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왜곡처벌법을 만들지 않는다. 민주와 자유를 위해서 표현의 자유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순간 민주와 자유는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 독재의 첫걸음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표현 내용을 국가가 독점하겠다는 것으로 출발한다. 모든 역사적 사건에 대한 왜곡처벌법을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어진다.
표현의 자유는 좀 높이 있고, 분노를 일으키는 왜곡 현상은 바로 눈앞에 가까이 있다. 그래서 보통은 분노를 일으키는 왜곡을 얼른 제거하거나 금지하고 싶어진다. 생각을 하는 습관이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부정적으로 보이는 그 현실의 문제가 즉각 정의를 자극하는 문제로 급선회한다. 뜬금없이(물론 정당화 하는 설명은 구구절절할 것이다) ‘선거출마 1년 전 검찰 사직’ 법안을 만들려고 하는 것도 다 이런 맥락이다. 법의 정신은 이미 다급한 현실에 의해 심히 왜곡되고 유린되어 있다. 지금 우리는 이런 조건 속에 살고 있다. 이 정도의 법은 이미 사소해져버렸다.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법을 이용한 통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상이 되어 버렸다. 법을 공부한 자들은 입을 열어 말을 해보라. 긍정이 되었든 부정이 되었든 자손들에게 남겨 자신의 영욕으로 삼으라. 이런 법을 만들려는 행위가 정의가 되어 버린 사회, ‘5.18 역사왜곡 처벌법’도 이 연장선의 출발로 해석될 큰 위험을 안고 있다.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주도한 김정호 변호사가 발표한 문장의 제목은 “5․18 허위사실유포 처벌법, 최악을 면하기 위한 불가피한 고육책”이고, 그 안에 소제목으로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가 달려 있다.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유신헌법도, 수많은 긴급조치들도, 통일주체국민회의도 다 ‘최악을 면하기 위한 불가피한 고육책’이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었던 고육책이었던 것이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계획도 “유대인 문제 해결책”이었다. 유대인을 전멸시키려는 계획도 “최종해결책”이었다.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도 문화혁명도 다 그랬다. ‘대약진’, ‘문화혁명’, 얼마나 좋은 단어들인가. 모두 다 ‘현실’에서 최악을 면하기 위한 ‘불가피한 고육책’들이다. 유대인 학살에까지 연결시키는 것이 과하게 느껴지고 서운한가. 아이히만도 그랬다. 평범한 얼굴을 한 악인이 탄생하는 경로는 다 이렇다. 독재의 길은 이렇게 열리는 것이다. 밑에서 ‘의기양양’하기만 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독재의 주구가 되어 가는 것을 알지 못한다. 각성되지 않은 정의감은 각성된 불의보다 잔인하다. 각성되지 않은 사명감은 각성된 게으름보다 무모하다.
‘현실의 불가피한 고육책’ 정도의 사유에 멈춘 사람들이 법을 만들면서 하는 말들이 있다. “네가 법에 안 걸리게 바르게 살면 된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고 제한하는 것이 몇 개 안 된다.”, “정해진 몇 개 만 빼 놓고는 훨씬 더 많은 다른 일들은 할 수 있다.”, “너한테는 직접적으로 해당되지 않는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속임수이다. 내게 법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이 정도다. 나는 여기서 내용의 간단이나 복잡의 문제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허용의 범위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오십보백보이고 대동소이일 뿐이다. 역사를 법으로, 그것도 특별법으로 묶지 말라는 것이다. 처벌하지 말라는 뜻이 전혀 아니다. 처벌해야 한다. 다만, 특별법까지 동원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5.18을 5.18로 살려내자는 말이다. 내 5.18을 네 5.18로 정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것이 더 민주이고 더 자유이기 때문이다.
5.18역사왜곡처벌법을 놓고 논의를 할 때 항상 등장하는 것이 홀로코스트부정행위 처벌법이다. 우선 5.18은 국가가 어떤 한 인종을 타깃으로 만들어 부정하고, 의도적으로 법까지 제정하며, 철저한 계획 하에, 국민 전체를 공범으로 조작해가면서 자행한 일 정도까지는 아니다. 홀로코스트와는 다르다. 하지만, 아무리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피해 당사자 입장에서(내 입장에서도) 이런 정도의 차이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모든 사람은 다 하나의 우주이다. 이것을 정도의 문제로 살피는 것은 진실 된 태도가 아닐 수 있지만, 하나의 예로만 자신의 입법을 정당화하는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만 보면, 역사왜곡처벌법으로 정해서 처벌하지 않는 예는 훨씬 더 많다. 예를 들어서 근거를 찾는다면, 역사왜곡처벌법을 만들지 않아야 할 근거가 훨씬 더 많은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행위를 처벌한다고 해서 독일이나 프랑스의 법체계가 후진적이라거나 전체주의로 몰아가는 악법이라거나, 반대의견을 억압하는 파시즘이라는 평가를 받지는 않고 있다.”라고도 한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5.18역사왜곡처벌법’으로도 법체계를 후진적이라고 평가하거나 파시즘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하는 말 같다. 이런 말을 하려면 조금 더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독일은 우리 법이 거의 대부분을 따라서 할 정도의 법 선진국이다. 프랑스는 근대형 국가를 출발시킨 나라다. 그들이 가진 법의 건강성과 견고함이나 ‘법 정신’을 우리도 그들만큼 가지고 있다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우리 법의 건강성과 법 정신은 일상적으로 훼손되고, 법이 임의대로 행사되고 있으며, 법의 적용에 ‘내로남불’이라는 비아냥이 있을 정도이다. ‘우리가’ 혹은 ‘내가’ 법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이 우선 필요하다. 그래서 특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자각하고 각성하는 능력을 먼저 배양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정권이나 기업이나 나라가 망할 때 외부의 공격에 의해 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의 모두가 스스로 망한다. 먼저 스스로 망하고 나서, 외부의 힘에 굴복한다. 대중은 당신들이 믿는 것처럼 선하지 않은가. (물론 맘에 드는 소리만 해 주는 대중이 훨씬 더 선해 보일 것이다) 선한 대중(국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터전에 균열의 위험이 감지되면 경고를 하는 호루라기를 불어준다. 그것이 ‘반대의 소리’다. 시위다. 바로 표현의 자유인 것이다. 표현의 자유에 입각해서 호루라기를 부는 대중들을 “살인자”라고 하면 안 된다. “살인자”라고 하는 말이 튀어 나왔다면, 이제는 맘에 드는 소리만 듣지, 맘에 들지 않은 호루라기 소리는 듣지 않고 증오하겠다는 뜻이다. 자신들을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살겠다는 뜻이다. 동네에서는 이렇게 해도 되지만, 국가에서는 이러면 안 된다. 이것이 망할 징조일 수 있다. 물론 호루라기 소리가 다른 많은 잡다한 소리에 섞여 있어서 듣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실력”이 필요한 것이다. 망하기 싫으면, 들어야 한다. 모든 변화에는 호루라기 소리를 닮은 조짐이 먼저 등장한다. 조짐이 등장하지 않고 갑자기 변화가 나타나는 일은 우주 천지에 하나도 없다. 남녀 간의 이별에도 수없이 많은 조짐이 먼저 등장한다. 그래서 우리보다 앞 선 사람들이 ‘경청’(傾聽)을 그리도 중요하게 말 한 것이다. 세종대왕이나 한나라 유방이나 당나라 태종이 위대한 업적을 쌓게 된 힘의 근원도 ‘경청’이었다. 아마 삼성을 성공시킨 핵심 이유 가운데 하나도 ‘경청’(傾聽)일 것이다. 비판하는 소리가 비난으로 들리고 거기다가 듣기 싫어지면, 깨달아라. 자신이 무너지고 있음을.
차지철이나 이기붕 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주 쉬운 일이다. 너무 쉬워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쩌다 차지철이 되어 있고, 어쩌다 이기붕이 되어 있다. 자신만 모른다. 죽을 때까지 이 사실을 모르고 가는 사람도 많다. 수련의 경지를 쌓기는 팔만대장경을 한 손가락으로 들기보다 어렵고, 수련의 결과를 까먹기는 아침에 일어나 코 만지기보다 쉽다. 생각을 하지 않고 각성도 하지 않고 자기를 객관화하지 않으면, 누구나 다 쉽게 그리될 수 있다. 주의하고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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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일 말이 있다. 어떤 분으로부터 받은 글에 내 말을 조금 더 남길 필요를 느낀다. 요지는 나의 그동안의 일관된 생각과 “나는 5.18을 왜곡한다.”라는 글이 서로 어긋난다는 것이다.
내가 받은 글은 이렇다.
“최진석교수님은 평소 경계의 철학자라고 불리었고, ‘확신하지 않는 힘’이 내공이고, ‘대립면의 긴장을 품고 있을 때’ ‘대립면의 경계에 설 수 있을 때’ 나오는 것이 내공 이라고 자신의 저서와 강의를 통해 강조하셨습니다. 최진석교수님의 <5.18법, 저주시>는 교수님이 그동안 강조해왔던 경계의 철학과 내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고, 단선적인 확신과 비난의 언어가 들어 있어 최교수님의 글이라고 하기에 낯설고 믿기지 않습니다. 최진석교수님의 강의와 책을 통해 성찰과 소통을 고민했던 한 사람으로서 당황스럽습니다.”
우리는 높은 경지를 말 할 때, 가끔 ‘중용’(中庸)이니 ‘중도’(中道)니 하는 개념을 제시하곤 합니다. 중용이나 중도는 ‘중간’이 아닙니다. ‘탁월함’ 혹은 ‘가장 높은 곳’입니다. ‘경계’에 서는 것은 중간에서 어정쩡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편을 지키지 않는 일입니다. 한 편을 지키면, 지키는 수고가 있더라도 마음이 편안합니다. 하나의 이념에 빠지면 우선 편안합니다. 한 편을 지키지 않고, 대립면을 모두 품으면, 즉 경계에 서면 불안합니다. 불안이 ‘탄성’을 만들어서 지성을 살아있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통찰’이 나옵니다. 이때 튀어나오는 지성은 참 믿을 만합니다.
제가 제 제자 국민의힘당 국회의원 후원회장을 하니까, 경계에 서라고 해 놓고 왜 한 편을 지지하느냐고 따지는 분도 계셨습니다. 요즘 정치계에도 검찰총장에게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라는 인민재판식의 차마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 나도 의사 표시를 한다면, 저는 국민의힘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제자의 일을 돕는 사람일 뿐입니다. 저하고 인간적인 믿음이 있는 민주당이나 정의당 등의 국회의원이 후원회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해도 당연히 합니다. 저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지지자로 살아왔습니다. 촛불혁명의 광화문 대오 속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말하는 경계는 아마 민주당도 아니고 국민의힘당도 아닌 곳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어디에도 확신을 갖지 않고 중간에서 어정쩡 하는 것. 이것은 경계에 선 것이 아니라 바보죠. 박정희의 독재를 비판하는 세력과 비판하지 않는 세력이 있을 때, 그 사이에서 어정쩡 하는 것이 경계에 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박정희후보와 김대중후보가 경합을 할 때 중간에 어정쩡하게 있는 것이 경계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경계에 서는 것을 다른 각도에서 가장 분명히 확신을 가지고 말해 준 사람이 바로 부처입니다. 부처는 경계에 서서 확신을 가지고 불법을 전합니다.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있는 것을 경계라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서 한 편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을 불안 속에 밀어 넣은 후 어떤 탄성을 발견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때는 불교와 기독교의 경계에 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단선적인 확신과 비난의 언어는 잘 이해하기 힘듭니다.”라고도 하는데, 입장 차이일 수 있습니다. 맘에 들면 비판으로 보이고, 맘에 안 들면 비난으로 보이기 쉽죠. 나는 ‘비판’이라고 썼지만,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제가 어찌해볼 수 없는 영역입니다. “단선적인 확신”도 주관적인 가치 판단의 결과이기 때문에 내가 어찌 해볼 수 없습니다.
106 comments
Han Yi
어려운 글이고 필요한 글이었고 교수님께서 써서 더 울림이 큰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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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koo Shim
우리가 절대적으로 추구해야할 가치가 '자유'라는 신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이 너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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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영
표현의 자유이자 표현의 굴레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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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영
謹弔 大韓民國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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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현
고맙습니다.
평온한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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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Eunsik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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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훈
훌륭하십니다. 멋진 글입니다. 지금껏 읽은 중에 최고의 글입니다. 댓글을 단다는게 토를 다는 것 같아 부끄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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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Sangheon Lee
장자의 소요유 편이 떠오릅니다. "참새가 어찌 대붕의 뜻을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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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삼
공감합니다.
저도 격동기의 삶을 살아온 이로써 5.18 6.29 세월호로 더이상 발목잡기 해서는 안된다고 사료 됩니다.
어쩌면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국민들을 더이상 우롱하지 않길 바랍니다.
언제부터가 협치와 화합이 1도 없이 진보와 보수라는 가시덩쿨에 놓여 있는것 같습니다.
존경하는 교수님의 글은 침묵을 깨우는 감사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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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 Sung Bae
참 지식인이십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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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 Seok Lee
인간의 뇌가 가소성을 가진 이유는 세상의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알고 고정되어 있는 것이 생존에 더 위험한 것임을 알고 항상 나와 너, 이것과 저것, 니편과 내편의 경계에 설 수 있게 하기 위함이아닌가 싶습니다. 이사장님의 '5.18을 왜곡한다'는 글은 우리 모두에게 그런 경계에 설 수 있어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촉구한 글이라 사료됩니다. 사람의 몸의 진화보다 사람의 정신의 진화가 뒤처진다면, 우린 사피엔스의 조상의 익숙함에 안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사장님의 글 때문에 우리나라가 또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까를 상상하는 즐거운 시간을 갖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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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박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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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 Guk Song
최교수님 그 글이면 더 이상 가감과 설명이 필요 없는 큰 울림이었습니다. 이 포스팅처럼 더 이상 설명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누굴 설득하고자 하는 글이 아닌 가장 진실과 가까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다른 큰 화두로 고민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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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욱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한 토크빌을 소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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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기
표현의 자유는 민주사회가 파시즘으로 타락하지 않게ㅜ하는 방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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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수
'5.18우상을 걷어내고 정신을 봐야 한다'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 읽기에는 눈이 아픕니다. 유튜브를 하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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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경계, 중도의 영역에서 가치를 향해 무게 중심을 이동시키는 태도야말로 진정 양심있는 학자의 도리입니다. 현대에 재생한 진정한 선비정신입니다. 공감하며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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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 D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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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nSang Roe
큰 가르침입니다. 숭고하십니다.~
정말 코끼리 냉장고에 넣는것보다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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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eu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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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ng Sung Jung
근래 자주 보이는 글이 해명에 있고 왠지 우리 '소중한 지적 자산의 허비'라 느껴져 안타깝습니다.
이미 몇 차례 우려했는데 실지로 상황이 일어나는 군요.
털 것은 털고 가야합니다.
모두에게 동의나 호감을 얻기 어렵습니다.
해명성 글보다 '새로운 철학적 견지'로 후학을 양성하는게 효율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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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선
감사합니다
차분히 두세번 읽으며
대한민국을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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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구
글 잘 보았습니다.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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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nha Lee
성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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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우상,광기의 시대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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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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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Jung-Kwan
참으로 감사합니다. 글을 복사해서 옮겨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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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근
많은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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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 Kim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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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nSang Roe
정말 탁월한 경지를 보여주시는 말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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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법을 이용한 통치를 지적한다.
독재의 길은 이렇게 열린다.
각성되지 않은 사명감은 각성된 게으름보다 무모하다.
수련의 결과를 쌓기는 팔만대장경을 한 손가락으로 들기보다 어렵고, 수련의 결과를 까먹기는 아침에 일어나 코 만지기보다 쉽다.
중용이나 중도는 중간이 아니다. 탁월함 혹은 가장 높은 곳이다.
경계에 서는 것을 다른 각도에서 가장 확실히 말해 준 사람이 부처이다. 경계에 서서 확신을 가지고 불법을 전한다.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있는 것을 경계라고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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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il Choi
6.25 북침 주장자 처벌법 vs 5.18 부정자 처벌법
대비하니 단박에 이해가 되네요
5.18 부정 처벌법 보고
민주당 재들 드디어 미쳐가는구나야 ~~~~~
영화 백윤식 대사가 떠오르데요
전두환 국보법 시위대 잡아서 족치던 악몽이 되살아나데요
자기들 당론에 대한민국 국민의 사상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금지하는 악법이죠 ?
민주를 외치던 자들이
권력에 취해 독재로 가는 이 아이러니한 파시스트 같은 맹목적 교조주의, 전체주의로 회귀하는거 같음 숨막힘이
느껴졌어요
그냥 1년 반 후딱지나
바꿔서 역사를 퇴행으로부터 진보로 바꿔야죠
저데로 두면 바보들한테 대한민국호가 점거 당한꼴
배가 난파하게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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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헌
철학자 다운 말장난으로 변명과 궤변만 늘어 놓지 말고 5•18묘지에 가서 진심으로 사죄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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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 Seok Choi
네, 잘 알겠습니다. 무엇을 사죄해야하는지를 알려주시면 그 내용 그대로 사죄하겠습니다. 무엇이 궤변인지도 알려주시면,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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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Mun Ho
김태헌 말씀을 막 하십니다. 부디 이제는 5.18너머를 향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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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노
어떤 경우라도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 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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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적
선생님의 詩 "나는 5.18을 왜곡한다"을 처음 접하고서 우려했던대로 여러가지 논란이 있군요.
선생님이 무엇을 두려워 하시고 무엇에 분노 하시는지 충분히 공감합니다.
선생님을 아주 조금이라도 아는 독자라면 선생님이 5.18 왜곡을 용인하고 5.18 폄훼를 정당화 시키려는 의도로 쓰신 詩가 아니라는걸 알것 입니다.
21살 선생님이 그러 했듯이 20살 저도 그러합니다.
저도 拙詩 한 편으로 동참 합니다.
오월이 오면
꽃.
피려나
바람불면
쪼개지는 하늘
불붙는 목마름으로
타는 그리움으로
오월의 복판에 내가 서서
결코 헛되지 않을
피.
그 악보없는 노래를 듣노니
피가 부활의 상징임을
믿는 우리에게
그 날 그 자유의 노래가
오월의 분노를
자줏빛 철쭉으로 피웠는데
목마름은 목마름으로
그리움은 그리움으로만 남아
헛되이 연명 하노니
함성이여!
화약 내음 묻어 나던 오월의
바람이여!
아스팔트 위에
피로
詩를 쓰던 친구여!
오월로 끝이 난
네 일기장에 내 숨 죽여
입맞춤 하노니
꽃은 정녕 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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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봉
평소 존경하는 최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여러분께서 하실 수 있으나, 니편내편 논쟁이나 비이성적인 공격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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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gye Kwon
악의 평범성이 보편화되지 않도록 깨어있는 사람이 많기를 바랍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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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nwoong Choi
아주 예전에 수업 들었던 학생입니다. 교수님 강의가 지식 전달보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강의라 좋아했습니다. 학점을 어떻게 받았는지는 모르겠는데 개의치 않구요.
한 사회가 건전하게 변화하려면 호루라기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 사회는 집단의식이 강한 사회라 국가, 정부 뿐만 아니라 우리 속한 많은 작은 사회 속에서 이런 호루라기 소리가 없는 듯 합니다.
그래도 일상 삶과는 떨어져 있는 국가와 민족의 큰 문제에서 조차 이렇게 호루라기 소리가 적게 울리는 것만 봐도 하위 작은 범주의 문화는 그냥 부조리를 참으며, 나에게만 불행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사는 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몇 년 이내에 한국을 떠나고자 합니다. 적어도 말 잘 안통하는 곳에 살면 그 사회의 부조리에는 눈 감고, 귀 막고 살 수 있을 것 같네요.
인간 사회에 대해 환멸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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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Mun Ho
고유운 유운 님께 감사하고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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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ook Moon
경계에 서게 되면
성찰적인 객관을 도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ㆍ
회색지대를 경계라고
분류하시는 분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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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n Jinhee
응원합니다. 거침없이 최진석님의 길을 가실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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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열
교수님 께서 지금에 5.18 을 모욕하며 폄혜하며 사랑하실 수 있듯이, 언론에게 왜곡의 자유가 있듯이 누구라도 왜곡하고 되겠죠.
교수님 말씀대로 독일이고 미국이고 그저 들여온 민주주의에서 5.18 당시에 자유와 민주를 찾아서 숭고하게 싸웠지만 시작이었지 이미 가졌던, 알고있었던 자유와 민주는 없었습니다.
같은소리일지 몰라도 정권이 5.18 이 만든 자유와 민주를 왜곡하는것이 아니라 제대로 만들어 본적도 없었고 기대하고 확인하는 국민도 없었다고 봅니다.
자유와 민주는 톱다운으로 오는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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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uel Chung
너무나 공감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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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 Jang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용기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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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현
-"역사문제를 법으로 다스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를 심히 침해한다"?
-'선서출마 1년전 검찰사직'의 위법성을 따지기 전에 그렇다면 '공무원의 정당 가입과 집단행위 금지법'의 위법성은 왜 침묵했는가?
-남녀 차별 금지법이나, 장애인 차별 금지법도 법으로 지킬게 아니라 "내 남녀차별을 네 남녀차별로 두려하지 말고" 가만 두란 말씀이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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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Lee
주성현 교수님의 글을 이해 못하시는군요! 생각과 성찰이 부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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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옥
교수님이 계셔서 든든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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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byul Kim
사유와 삶이 같이 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신 원장님의 글은 언제나 제게 나침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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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ungno Lee
경계에 서보니 항상 더 넓은 곳을 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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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식
정치를 위해 5.18의 명분(?)만가져가고
5.18의 실체와 올바른 참된 정신은
잊어버리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생각보다 넘 많아서 늘 아쉬울때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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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희
오늘의 가분이라는 소설 읽으며 5.18에 대해 생각을 하는 중 샘 글 접합니다.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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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관
결과 보다는 항상 원인과 과정을 먼저 살펴봄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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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인
자아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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