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생존자 없는 시대의 피해자 중심 접근과 일본군‘위안부’ 문제
30년을 맞이하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역사가 한 세대를 지나고 있다. 올해는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 순 할머니께서 정대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군‘위안부’를 현존의 문제로 제기한 지 30 년이 된다. 그해 말 12월 7일에는 김석우 당시 외교부 아주국장이 일본 측에 진상 규명과 대응을 요구하여,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일 외교를 개시한 지도 30년이 된다. 30년이 지나는 동안 초로의 할머니들은 대부분 돌아가셨다. 지난 5월 2일에는 윤ㅇㅇ 할 머니께서 별세하셔서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중 생존자는 이제 14명이 계실 뿐이다. 청년의 나이에 운동에 관여했던 활동가들과 연구자들은 위안부 문제가 인생의 과제가 되었고, 이 제 서서히 은퇴를 앞두고 있다. 운동과 대일 외교의 전선은 이제 그해 전후에 태어난 세대 가 중심이 되고 있다.
그 동안 성과가 없지 않았다. 1991년의 사건을 계기로 조직을 정비하여 본격적으로 개시 된 정대협의 활동은 늘 일본에 보다 깊은 반성을 촉구해 왔다(와다 하루키). 그 첫 성과가 1993년의 고노담화다. 고노담화에서 약속한 구제조치는 1995년 무라야마담화에 입각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으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1965년 청구권협정을 방패막 이로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회피한 것을 피해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경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일본에서 제도적 기초를 놓는 것이 필요하다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거부하 는 피해자들에게 국민기금이 사업을 강행한 것은 큰 후유증을 남겼다. 이는 피해자 중심 접 근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가해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국가에 대 신해 피해자가 중심이 되어 사실을 규명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열린 것이 2000년 여성국제법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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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여성국제법정 운동은 2011년 8월 위안부 문제 해결에서 우리 정부의 부작위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끌어냈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정부의 대일 협상이 개 시되었다. 그 결과가 2015년 합의였다. 그 전반부에서 몇 가지 운동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있으나, 이것으로 ‘불가역적 최종적 해결’을 확정하려는 데 피해자들은 반발했
다. 그 한계를 지적하고 극복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운동이 전개되었다. 피해자 중심 접근은 더욱 절실한 요구가 되었다.
그러나 운동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위안부’ 문제는 한일관계의 가시로 남았다. 돌파구는 다 시 사법부 판결에서 열렸다.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법의 ‘위안부’ 소송 판결에서 재판부는 일본의 행위가 비인도적 범죄로서 이에 대해 주권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일본 정부에 배상 책 임이 있음을 확인했다. ‘위안부’ 문제가 제기된 지 30년을 맞이하여 도달한 결론이었다. 그런 가운데 바야흐로 문제 해결의 중심은 ‘사실인정, 사죄반성, 법적배상’에서 ‘진상규명, 기억계승, 역사교육’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에 위안부 운동 30년의 성과와 피해/생존자 없 는 시대의 남겨진 과제를 확인하는 것이 과제다. 현시점에서는 2015년 합의의 처리를 둘 러싼 운동과 정치가 핵심 쟁점이다. 이 문제는 ‘지난 30년’과 ‘다가올 30년’의 결절점의 의 미를 지닌다.
‘피해자 중심 접근’을 위한 ‘정치적 책무’
‘피해자 중심 접근(victim-centered approach)’은 여성주의적 전략으로서 유용성 논의에 열린 개념으로서, 성폭력 개념이 확장되고 판단 기준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가해자 중심’의 사회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 등장했으며, 가해자의 일방적 인 변명만을 수용하는 현실에서 ‘피해자의 말을 들으라’는 요구로 시작되었다(권김헌영). 피해자 중심 접근은 객관적 증거나 증인이 부재한 가운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다르게 증언할 때 피해자의 진술을 신뢰하는 태도를 개념화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다른 한편 피해 자 중심 접근이 “피해자를 사법제도의 1차 고객으로 생각하고 이들의 안전, 권리 및 이익을 우선 고려하여 가해자 관리 전략을 디자인하고 실행하는 것”(Bumby)이라고 할 때, 1차 고 객의 부재는 피해자 중심 접근의 존립근거의 부재 상태를 야기한다. 그러나 가해자의 처벌 이 중심이 아닌, 권력관계의 해체를 목적으로 할 경우, 피해자 중심 접근은 피해자의 존재 여부에 관계없이 추구되어야 할 전략이자 목표가 된다. 이때 피해자 중심 접근은 법적 도덕 적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책임의 문제가 된다.
이때 구체적 과제는 기억 이후 세계의 피해자 기억을 구성하고 계승하는 일이다. 피해자 없는 시대의 피해 사실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문제는 “의미를 구성하는 사물들을 서로 연 결하는 가운데 생성되는 기억(intertextual generative memory)”의 중요성을 제기한다 (Nicholas Chare). 이는 현재와 미래의 피해 기억에 관계되는 사람들 안에서, 작은 것이라 도 의미가 있는 연결이 만들어지도록 문학, 사진, 철학과 함께, 기념관 방문의 경험 등을 한 자리에 생산적으로 합류시키는 것을 지적하는 말로 제시되었다(Gigliotti and Earl). 피해 자 없는 시대 위안부 문제의 전략을 구상하는 데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제언이다.
한편 피해자 중심의 접근이 피해자 이후 시대의 정치적 책무가 되는 것은 그것이 세계의 질서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며, 세계의 질서가 개인을 떠나 정치 공동체를 매개로 하여, 시 간을 소급하거나 미래지향적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아이리스 메리언 영). 또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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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공적이고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라는 점에서 피해자 중심 접근은 피해자 없는 시 대의 정치적 책무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법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지평 을 보여준다.
법적 책임을 강조하는 생각은 그 목적상 과거지향적이다. 법에 따라 책임을 부여하는 일 이 제재, 처벌, 배상 등의 목적으로 책임 당사자를 확인하고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그런 모 든 실천들이 과거 행위의 특정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정치적 책임은 미래지향 적이다. 나아가 정치적 책임은 도덕적 행위자의 의미를 의식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에 부과 된다. 피해자 중심 접근을 법적 책임에 한정할 때, 그 책임의 대상은 생존 피해자에 한정되 어 어느 시점엔가 과거형으로 완결될 수 있으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구현해야 할 원칙이라 고 한다면, 그 책임은 사회적 관계가 의식되는 정치적 공동체가 지속하는 한, 피해자의 생 존 유무에 무관하게 추구되어야 할 미래지향적 과제가 된다. 피해/생존자 없는 시대를 바라 보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해야 할 지점은 법적 책임에서 정치적 책무로 이행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피해/생존자 이후 시대의 피해자 중심 접근을 위한 구체적 해법이 부상했다. 2020년 4월 15일 정의기억연대는 1435차 온라인 수요집회를 통해, 21대 국회에서 여성 인권평화재단을 설립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법안을 통과시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이는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의 파행적 운영을 극복하기 위해 나온 ‘여성인권평화재단 (가칭)’ 설립안을 구체화하라는 요구였다. 2019년 2월 여가부에서 여성인권과 평화센터 설립 구상이 제기되어 TF가 구성되었고, 민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추진자문위원회가 구 성되어 그해 말까지 네 차례 준비회의가 개최되었던 바 있다. 그 결론이 도서관, 기록관, 박 물관의 기능을 아울러 가진 복합문화공간(라키비움, Larchiveum)으로 ‘여성인권평화재단’ 을 설립한다는 것이었고, 이를 위한 법적 근거 마련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20대 국회에 서 결국 이 법안은 성립되지 못했다.
위안부 판결 이후의 위안부 문제
위안부 문제는 2021년 1월 8일 서울지방법원의 획기적 판결로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이 판결은 위안부 문제를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국가면제 뒤에 숨어 진실을 호도 하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확정하는 획기적인 판결이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해 온 피 해 당사자들과 지원 단체의 30년에 걸친 운동이 국제법의 역사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는 성과였다. 그러나 판결이 획기적인 만큼, 그 해결 또한 획기적 결단과 용기에 의해 가 능한 것인데, 현재 일본은 그런 용기를 갖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의 외교 노력이 중요하다. 다만 이 문제는 역사적 정의, 사법적 절차에 더해 정치적 현실이라는 3차원 공간 속에서 최적해를 찾아내야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한편 ‘종군위안부’라는 용어를 부정하며 이를 교과서에도 반영하려는 일본 정부의 최근 언 동은 고노담화는 물론 2015년 합의 정신에 명백히 위배되는 행동이다. 합의 사문화의 책 임이 일본에 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 정부는 이러한 움직임이 고노담화 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일본 정부가 고노담화의 내용을 확인하고 이로부터 재출발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입구가 된다. 고노담화에는 역사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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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을 통해 사실을 규명하고 기억을 계승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노력한다는 문 구가 포함되어 있다. 2015년 합의에서 모자란 부분이 이 부분이다. 고노담화의 기본 정신을 존중하고 이에 입각한 해결에 일본이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문제는 일거에 해결의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한편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용수 님이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방식이 실현되지 않는 데 대한 답답함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국제사회에서 우리 주장을 전개하고 문제를 환기하기 위한 방법으로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2015년 합의 를 정부 간 공식 합의로 인정하고 있고, 4월 21일에 나온 또 다른 위안부 판결이 이러 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고려한 내용이어서, 일본의 법적 배상이라는 주장을 관철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고노담화에 입각해서 일본 정부가 해결의지를 보이도록 이끌어 내는 것이 피해자 입장을 중시하는 해결이며, 이것이 우리의 외교 과제라 생각한다. 이는 1월 8 일 판결 이후, 피해자들이 판결 내용을 환영하면서, 금전적 배상이 아니라 일본의 진 정성 있는 반성과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현실에도 부합하는 해결 방식이다. 예컨대 이용수 할머니나 이옥선 할머니는 “세계시민이 모두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의 일본 총 리의 공식적 사죄와 제대로 된 역사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정의기억연대는 1월 20일의 성명을 통해 일본이 “전쟁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진실을 규명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포함된 “최종적 불가역적 사죄” 를 공식 사죄로 요구하고 있으며, 1월 27일의 성명에서도 “배상하고 공식 사죄하라, 역사 왜곡 현실호도를 중단하라, 진상규명과 역사교육을 실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2015년 합의의 ‘재전유’라는 방법 우리 정부가 2015년 합의를 정부간 공식 합의로 인정하면서도, 2019년 12월의 헌 법재판소 판단에 따라 이 합의에 법적 효력이 부여되지 못한 상황에서, 합의의 파기 나 재협상도 아니며 합의 유지도 아닌 제3의 방법으로 풀겠다는 것이라면, 2015년 합의를 재전유(再專有, re-appropriation)하는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재전유 란 ‘전유된 기호가 차지하는 문맥 또는 맥락을 변경하여 특정한 기호를 다른 기호로 작용하게 만들거나 다른 의미를 갖도록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일본이 전유한 2015 년 합의의 해석권을 되찾아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2015년 합의에 법적 효력을 구비하기 위해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반 성과 사죄를 표명한다는 해당 문구를 스가 총리가 공인으로서 확인하고, 이를 피해자 들의 마음에 닿는 방식으로 전달해야 한다. 다음으로 2015년 합의에서 확인한 10억 엔이, 고노담화에서 일본 정부가 인정한 대로 일본군에 의한 전시 여성인권 침해 사 실을 인정하고, 이에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사과하는 마음의 징표로서 일본의 예 산 조치로 거출’하여 전달하는 ‘사죄금’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 써 10억 엔이 합의에서 확인한 대로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상처치유를 위해 사용된다 는 사실이 확인된다. 여기에서 ‘피해/생존자 없는 시대의 피해자 중심 접근 원칙’이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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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되어야 한다. 10억 엔의 잔여금과 우리 정부가 거출한 성평등기금으로 ‘여성인권평 화재단(가칭)’을 설립하여 ‘진상규명과 연구교육, 기억계승’을 위한 시설로서 국제사 회와 미래로 열린 해결의 거점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2015년 합의에서 불분명하 게 처리된 부분이나 고노담화에 명확히 제시되어 있는 것으로, 재단 설립은 고노담화 를 계승하는 일본 정부의 의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미래로 열린 해법으로서 ‘최종적 해결’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우리 측 피해자와 지원 단체가 수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이며, ‘위안부’ 문제의 ‘진전’이라 고 할 수 있는 해법이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등 일본의 원로 지식인 8명이 3월 24일에 발표한 공동논 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는 일본 정부의 공개적 사죄 표명과 전달, ‘위안부’문제 연구소의 설립과 운영 등을 제안하고 있어서 이러한 해법의 타당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4월 21일 판결의 의미
2021년 4월 21일에는 일본군‘위안부’ 패소 판결이 나왔다. “현시점에서 유효한 국 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과 이에 관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주 권적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4월 21일 판결이 일본의 행위가 위법한 공권력 행사, 위법한 주 권 행사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이 행위는 주권적 행위로서 의 성격을 갖게 되어, 제한적 주권면제의 적용 대상이 된다는 판단이었다. 그런 의미 에서 일본의 행위가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서 불법행위였다는 판단은 4월 21일 판결 에서 보강되었다. 다만, 그 사법적 수단이 아닌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 행사를 통 한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일본에 국가 면제를 인정하는 것은, 2015 한일합의의 효력 을 존중하고, 추가적인 외교적 교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지, 일방적으로 원고들 에게 불의한 결과를 강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기하고 있다. 나아가 재판 부의 이러한 판단이 일본으로 하여금 국가 면제의 법리를 ‘방패막이’ 삼아 자신의 잘 못된 행위에 대한 배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으로도 볼 수 없다고 강조 하고 있다. 판결은 피해자들이 일본에 대한 실체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며, 일본의 ‘배상’ 의무를 면제해 준 것도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그 결론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이 “피고(일본 정부)와의 외교적 교섭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대내외적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판결은 한국 정부가 대일 협상에 적극 나설 것,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협상 요구에 성실히 응할 것을 요 구하고 있는 것이다.
4월 판결 이후에도 이용수 할머니는 중요한 것은 배상이 아니라며, “왕래를 하면서 다정스럽게 지내면서 해결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계시다. 이 를 한국 정부가 추진하지 못하고 있고, 일본 정부가 수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ICJ에 가자는 것이다. ICJ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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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7월 15일, 정의연의 수요집회는 1,500회를 맞이한다. 8월 14일은 고 김 학순 할머니께서 증언한지 30주년을 맞이한다. 이용수 할머니께서는 일본의 직접 사 과를 받아내고,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가 함께 이 역사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는 것 으로, 생존 피해자로서 스스로 이 문제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계시다. 7월 15일부터 8월 14일 사이의 한 달이, 위안부 문제의 30년을 마무리하고 피해/생존자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는 마지막 기회의 시간일 수 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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