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3

[김반아] 남호 이종만, 애국열사능에 묻힌 유일한 자본가 (1) < 여기 이사람 < 이야기사랑방 < 기사본문 - 한겨레:온

[김반아] 남호 이종만, 애국열사능에 묻힌 유일한 자본가 (1) < 여기 이사람 < 이야기사랑방 < 기사본문 - 한겨레:온



[김반아] 남호 이종만, 애국열사능에 묻힌 유일한 자본가 (1)

기자명 김반아 주주통신원
입력 202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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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의 나라, ‘대동교학회 취지서’에서 그 길을 찾는다
이종만 선생의 대동교학회취지서 끝 부분에 실린 취지서의 핵심: 원문과 현대어 풀이

대동인, 대동사회, 대동국가, 대동세계는 이종만 선생의 일생의 꿈이었고 대동정신, 대동사상, 대동주의는 그의 삶의 중심이었다. 환갑이 되던 해 1945년에 해방을 맞은 이종만은 그 감격과 기쁨 속에서 ‘다 같이 잘 사는 세상’, ‘대동의 나라’ 건국의 대망을 품고 국민정신 개혁운동을 펼치고자 하였다.

그러나 당시 미 군정하의 남한의 현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기에 그는 이를 실현하고자 북을 선택했다. 북에서도 대동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리하여 세월의 흐름 속에서 <대동교학회(大同敎學會) 취지서> 는 역사의 파편으로 땅속에 파묻혀버렸다.

‘대동의 나라’는 허황된 꿈일까?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은 실현 불가능한 것일까? 너와 나, 남과 북, 북과 남, 그리고 세계 인류가 서로 도우며 다 같이 평화롭게 사는 길은 없는 것일까?

2021년이 저물어가는 이제 나는 먼 이국땅에서 이종만의 <대동교학회 취지서>를 꺼내어 들고 그 퇴색한 글자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어 보고 있다, 이 곳은 이종만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던 일본 강점기의 조선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미국, 웨스트 헐리우드* 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놀랍게도 그 속에 꺼지지 않은 대동정신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 불빛이 우리 모두의 행복과 평화의 길을 밝혀 주리라는 확신이 드는 것은 이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한다는 소명을 받은 바와 다름 아니다. (* 웨스트 할리우드 West Hollywood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군)에 있는 Hollywood의 서쪽에 있으며, 연예와 록 음악의 역사로 유명한 선셋 스트립 Sunset Strip과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가장 큰 게이Gay 나이트라이프 지구가 있는 곳이다. 주점, 레스토랑, 커피숍, 공원이 즐비하고, 많은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유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웨스트 할리우드에는 매우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다.)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2019) 남과 북이 함께 독립선언서에 담긴 자주독립, 자유, 평화, 공존의 정신을 기리며 앞으로의 평화공존의 대도(大道)를 펼쳐나가고자 솟구친 기운이 아직도 넘치고 있는 이 때에 대동(大同)을 논하게 됨은 하늘의 뜻이 이에 닿았기 때문이다.

76년 전 해방을 맞으며 이종만 선생이 작성한 <대동교학회 취지서>가 남과 북이 한 마음이 되어 서로 손을 맞잡고 진정한 민족 광복(光復)의 길로 나아가는 데에 주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면 ‘북으로 간 아름다운 부자 이종만’은 대동의 혼(魂)으로 부활하여 이 길에 앞장서리라 믿는다.

오늘날의 남과 북의 모든 국민과 인민들, 그리고 이 시대의 온 인류가 갈망하는 평화와 공동번영의 길이 <대동교학회 취지서>에 담겨있음을 밝히기 위하여 이제 그 내용들을 하나하나 심층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대동교학회(大同敎學會) 취지서 – 이종만(1945)
해설 편의상 본문을 열 단락으로 나누었음

1. 인류사회에서 전쟁을 완전히 없애는 하나의 일만이 오직 정(正)이요 의(義)요 인류의 몸과 마음 모든 노력의 둘도 없는 유일한 목표이다.

유사이래의 비참하기 그지없는 대 전쟁은 8월 14일 일본의 굴복으로써 막을 내렸다. 전 세계가 온통 전장이 되었고 전 인류가 모두 피해자였다. 소모된 물자는 억조(億兆)에 달하고 살상된 인명은 수십만에 이른다. 아비를 잃고 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고 집을 잃고 서로 떨어져 울부짖는 자로 말하면 억(億)으로 헤아릴 것이다. 아, 전쟁의 처참한 해독이여, 전쟁의 죄악이여.

이제 전쟁의 승부는 판명이 났다. 패자는 조국과 모든 자유를 잃었거니와 승자는 대체 무엇을 얻었는가. 영토냐, 배상이냐, 승리의 기쁨이냐. 그런 것이 전쟁의 손실을 보상 할 수 있으랴. 전쟁으로 하여 상실된 인명과 생존자의 비통을 대신 보상할 것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으니, 그것은 이 세상에서 전쟁이 완전히 사라지도록 하는 한 가지 일이다.

이번 전쟁 후 처리에 있어서 이 한 가지 일을 이루지 못하여서 지구상에 다시 원자폭탄이 사용되게 된다 하면 그것은 이번 승전자의 책임이다. 인류사회에서 전쟁을 완전히 없애는 하나의 일만이 오직 정(正)이요 의(義)요 인류의 몸과 마음 모든 노력의 둘도 없는 유일한 목표이다.

“아, 전쟁의 처참한 해독이여, 전쟁의 죄악이여!” 이 글을 읽으면서 이종만의 절규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류사회에서 전쟁을 완전히 없애는 하나의 일만이 오직 정(正)이요 의(義)요 인류의 몸과 마음 모든 노력의 둘도 없는 유일한 목표’라고 이종만은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인류 역사상 한시라도 지구상에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던 것일까? 약육강식의 동물적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강자가 약자를 정복하고 침탈하는 그 무수한 전쟁을 끊임없이 겪어온 인류는 인명을 살상하고 문명을 파괴하는 전쟁의 해악과 참혹함에 대해서 이제는 그렇게도 무감각해진 것인가.

수천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고 UN이 창설되어 세계 평화유지를 위한 역할을 해왔지만 과연 지구상에 얼마나 전쟁의 위험이 사라진 것일까. 전쟁에 대비해서 가공할 살상무기들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그 군사력으로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며 세계의 패권을 쥐려고 하는 치열한 경쟁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것은 통탄할 인류의 비극이 아니겠는가.

정의구현이나 조국수호, 동맹국 보호 등의 명분으로 전쟁을 정당화하고 전쟁의 영웅을 숭앙하는 인류의 의식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어떤 이유로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 사람됨의 첫 번째 규범으로 자리 잡고 누구나 자발적으로 이를 준수하는 세상은 언제 이루어질까.

마하트마 간디가 실천한 비폭력주의가 평화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의 구현을 위해서 악의 집단을 없애야 한다는 식으로는 결코 평화가 오지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력(武力)이 아닌 다른 차원의 해법이 강구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인류사회에서 전쟁을 완전히 없애는 일, 이를 위해서는 깨달아야 하고 절감해야 하고 결심해야 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종만은 이어서 말하고 있다.

* 편집자주 : 이 글은 이종만 선생의 외손녀 김반아 주주통신원이 쓴 글입니다.

편집 : 최성주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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