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0

87년체제(八七年體制)

87년체제(八七年體制)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87년체제 (八七年體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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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구조 사건
1987년을 기점으로 한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변동과 특질을 통칭하는 개념이자 담론.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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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87년을 기점으로 한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변동과 특질을 통칭하는 개념이자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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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87년은 6월 민주항쟁과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고 노동진영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힘이 성장하면서 표면적으로는 급속도로 민주화가 이루어져 정치·경제·사회적 변화와 변형을 겪게 된 기점이었다.

‘87년 체제’는 한국사회의 현재 모습을 형성하는데 87년의 민주화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인식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87년 체제는 1987년을 기점으로 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이행과 민주개혁의 시기를 거쳐 형성된 체제로서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출현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체제의 복합적 특성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87년 체제’라는 용어가 쓰이는 일차적인 이유는 현재 우리의 직접적 뿌리가 87년에 닿아 있다는 인식과 더불어 87년이 우리사회의 전환점인 동시에 그 전환 형태가 이후의 사회상황에 대한 구조형성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87년 체제는 ‘운동에 의한 민주화’를 기본 동력으로, 9차 개헌헌법 과정에서 드러난 제도정치권의 폐쇄적 협약을 통해 형성된 정치구조, 헌정구조를 말한다. 전환점으로서의 87년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확인되는데, 정치적으로 87년 체제는 권위주의체제의 종식과 형식적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의미하며 경제적인 수준에서 87년 체제는 전환점을 이루는 동시에 구조형성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와 경제라는 두 축을 교차시켜 87년 체제의 성격을 규정해본다면, 정치적인 수준에서는 민주화가 난항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진전되어왔지만, 경제적으로는 답보와 정체 그리고 보수적 헤게모니의 확립이 이루어졌으며, 그로 인해 권위주의적 산업화를 추진했던 세력과 민주화세력 사이에 일정정도 힘의 균형이 형성된 체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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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87년체제론』(김종엽 외, 창비, 2009)
「‘87년 체제’의 정치적 등장 배경과 한국 민주주의 연구: 87년 9차 개헌과 13대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조현연, 『기억과 전망』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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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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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체제의 정치적 등장 배경과 한국 민주주의 연구 -87년 9차 개헌과 13대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The Political Appearace Background of 1987` System and Democracy in Korea -Centering on the 9th Constitutional Amendment in South Korea and the 13th Presidential Election in 1987-
조현연 ( Hyun Yun Cho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7.06
기억과 전망  vol. 16  217-252(36pages)
UCI I410-ECN-0102-2012-340-001482206
* This article is free of 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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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운동에 의한 민주화`의 전형적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결과는 이른바 `87년 체제`의 수립이었다. 87년 체제란 1987년을 기점으로 한 한국사회의 정치, 사회, 경제 등 전반적인 변화와 그 이후의 양태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출현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체제의 복합적 특성을 일컫는 말이다. 1987년의 정치적 개방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연이어 `민주`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민주화 이후 도대체 변한 것이 무엇인지 반문하거나, 또는 변한 것을 전혀 실감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의 실패 원인을 87년 헌법체제의 문제점에서 찾으면서, 그 대안으로 헌법 변경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의 정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을 건드리는 잘못된 인과 관계 설정과 책임 전가의 발상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이 논문은 87년 체제의 정치적 등장 배경에 대한 분석을 기본 목적으로 하며, 특히 9차 헌법개정과 13대 대통령선거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하여 민주적 반란의 계기인 민중적 동력이 어떻게 약화되고 상실되었는지, 87년 체제를 추동해 낸 운동의 힘을 새로운 정치적 힘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원인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결론적으로 말해 오늘 한국 사회가 처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헌법을 바로세우는 길이 아니라 좋은 정치를 실현하는 길이며, 정치영역의 문제를 외부의 힘이 아니라 정치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헌법 제도가 아니라 좋은 정당을 통한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그랬을 때 보수독점의 정치적 대표체제를 대체할 정당 정치의 정상화·선진화와 그것을 계기로 상실된 민중적 동력의 부활과 운동의 새로운 주체형성의 성공 여부야말로 민주주의 발전의 관건이라고 할 것이다.

The democratic transition in Korea was the case of `democratization by movements` and the result was establishment of so-called `1987` system`, The `1987` system` means multiple characteristics of `democracy system after democratization` appeared through the June Struggle in 1987. This paper is a study on political appearance background of 1987` system and examines the principal cause of political failure after democratization, especially centering on the 9th constitutional amendment in Korea and the 13th presidential election in 1987. The focus of this analysis is how people`s power was weakened and lost, and what was the cause of failure to turn the power of movements into new political power. In conclusion, to the present crisis of democracy in Korea is not to amend the constitution but to realize `good politi

 cs`, Because the very heart of the matter is not constitution system but concrete political practices through a good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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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칼럼] '87년 체제'의 교착

입력 2024-06-03 19:55
http://m.kyeongin.com/view.php?key=20240604010000187


정치체제 구조적 한계·미시적 결함
현재의 한국정치 교착상태 빠트려
대한민국, 국가체제 되돌아볼 시점
체제전쟁속 미봉적 대안 해결못해
공고히 하거나 새로 바꿔야할 상황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오늘의 한국정치는 행정부와 의회 간의 정치적 교착국면에 빠져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의 시도들은 의회에 의해 거부되고, 야당의 입법은 대통령의 거부권에 좌절된다. 나아가 삼권분립 역시 용인되지 않는다. 대증적 제안들은 양극화된 진영정치의 불가피성에 묻힌다. 결과적으로 거시적 국가체제와 미시적 '87년체제'의 무능화 혹은 붕괴에 직면하고 있다. 권위주의체제의 민주화를 넘어서서 국가체제의 해체로 나아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른바 '87년체제'는 '권위주의체제의 종식과 형식적 민주주의의 제도화'로 특징지어진다. 좌파들은 정치적 민주화가 급속히 진전된 반면 경제적 민주화는 지연되면서 보수적 민주화에 머물렀다고 평가한다. 우파들은 권위주의적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사이에 힘의 균형이 형성되면서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이행하였으나 이제 그 체제적 한계를 벗어날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한다. 체제의 보다 미시적인 특징은 '직접선거에 의한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통하여 지역이나 세대 등 다양한 사회균열에 기반한 할거정치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정치체제의 구조적 한계와 미시적 결함 등이 현재의 정치상황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87년체제'의 한계는 여소야대 혹은 여대야소 등 의회 내의 정파적 불균형이 심각해질 때 더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여당과 야당 간의 의석분포가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에는 타협에 의한 국정운영이 시도되고, 외견상 원만한 민주주의정치를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여당의 의석이 압도적이면 일방적인 독주로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야당이 압도적이면 체제작동의 병목이 발생한다. 특히 양극화된 정치세력이 민주주의정치의 요체인 '정치적 경쟁자(세력)에 대한 상대적 관용'과 헌법과 법률 안에서의 '제도적 자제'를 견지하지 않을 경우에 이러한 일탈적 양상은 더욱 심해진다. 권력의 집행권이 대통령과 수상에게 이원화되어 있는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 하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체제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지만 국회해산권이 없는 상태에서 이러한 교착상태가 발생하는 경우 행정부와 의회는 각자 자기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87년체제'의 성립 이후 '3당합당'과 분당, 대통령 탄핵과 같은 사태가 간헐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대통령 중임제는 현재의 정치체제가 갖는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개헌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기대하기 어렵다. 많은 소수정당의 소멸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다당제의 활성화 역시 실현가능하고 의미있는 대안은 아니다.



일부 학계에서는 '87년체제'의 한계로 민주적인 사회경제적 대안의 미비, 민주화 패러다임 자체의 한계, 분단체제 극복의 미완성 등을 들기도 한다.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체제적 한계가 40여 년이 흐른 지금 체제 실행의 교착을 낳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체제의 붕괴 혹은 사회민주적 복지국가체제의 위기와 변형, 그리고 1997년 IMF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등을 목도하거나 직접 경험한 이 나라가 이제 그러한 체제실험을 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남북간의 체제대결과 북한의 핵개발, 최근에 이르러 북한에 의해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가 되어버린 남북관계의 상황에서 분단체제 극복을 논할 상황은 더더욱 아니다.

요컨대 현재 대한민국은 국가체제와 정치체제를 다시 돌아볼 시점에 와 있다. 분단체제극복이 오로지 민족통일을 통해서 가능하고 현재의 국가는 미완성의 반국가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한 국가체제를 구성하는 헌정체제는 항상 불안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체제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면, 정치체제 자체를 바꾸거나 정치체제를 벗어나는 행위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체제전쟁 속에서 현재 거론되고 있는 미봉적 대안들이 이러한 체제정치를 해결할 수는 없다. 현재의 체제를 공고히 하거나 새로운 체제로 바꿀 국면이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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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시대와 충돌하는 87년 체제
입력 2021.11.05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10508120001216

한 세대 지났어도 6공화국 체제 그대로
사회상 변화 반영할 헌법질서 마련하고
대선 후보들 개헌 방향ㆍ입장 선언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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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제 개헌을 포함한 '시국수습대책 8개항'을 발표하고 있는 노태우 민정당 총재. 한국일보 자료사진

87년 민주화 흐름은 9차 개헌으로 결실을 맺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은 군사정권과 문민정부의 가교역할을 했다. 헌법에 국군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함으로써 군사독재에 올가미를 씌웠고 구속적부심을 포함한 신체적 자유를 기본권에 폭넓게 반영했다. 국정감사를 부활하고 헌법재판소를 설치하는 등 현재의 헌법 질서가 모두 87년 체제에서 마련됐으며 이듬해 노태우 정부의 6공화국이 출범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이 뜨자마자 불현듯 우리가 아직 그와 그 시대의 유산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87년 체제의 당사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우리는 33년째 6공화국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사이 국민총생산(GDP)이 약 1,900조 원으로 15배나 성장하고, 3만 달러로 10배가량 증가한 1인당 GDP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경제는 물론 생활환경 자체가 급변했는데도 사회적 규범은 한 세대 전 그대로다. 인공지능(AI) 시대가 386컴퓨터 인프라에 의존하는 기형적 구조가 아닐 수 없다.

낡은 체제는 시대와 충돌하기 마련이다. 공판중심주의에다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사법부를 ‘닫힌 사법’ 시스템으로 통제하다가 끝내 ‘사법농단’ 사태를 야기한 게 단적인 예다. 공수처가 출범하고 검찰 수사권 대부분이 경찰로 넘어간 상황도 검찰 중심의 수사ㆍ사법체계 전반과 상충한다. 중앙집권형 행정부 조직은 완전한 지방자치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공무원 노조가 등장하고 세월호 사태 이후 안전에 대한 요구가 분출하는 등 국민 기본권을 보강할 필요성도 생겼다.
무엇보다 현실과 정치체제의 괴리가 크다. 36세의 젊은 정치인이 제1야당 대표로 등장한 마당에 대통령 출마 자격은 아직도 40세 이상으로 제한돼 있다. 나이로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하지만 헌법상 규정이라 개헌이 아니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같은 30대 정치인의 대권 도전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권력구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87년 체제는 민주화 열망과 함께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를 선택했지만 30여 년 현실정치가 취지를 왜곡시킨 탓이다. 승자독식의 집권 기회를 잡기 위해 세력 간 이해집산이 횡행했고 진영 간 대결은 극으로 달렸다. 어떤 정부도 말기에는 정권교체 요구를 비켜가지 못하면서 전임 정부는 극복 내지 보복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책임 정치는 실종됐고 퇴임 대통령의 불행은 반복됐다. 군사독재에 맞서 직선제를 쟁취했다는 87년의 성취감은 제왕적 대통령의 등장으로 송두리째 날아가고 말았다.

낡은 체제가 사회 구석구석을 짓누르고 있다면 바꿔야 마땅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이듬해 개헌안을 발의한 것도 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30년이 지난 헌법으로는 국민의 뜻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게 개헌안 발의 이유였다. 특히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장기적 국가과제를 일관성과 연속성을 갖고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채택할 때가 되었다”며 권력구조 개편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보수 야당의 반발에 막혀 국회 통과는 좌절되고 말았다.

개헌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여론은 66%, 헌법 전문가는 76%, 국회의원은 무려 93%가 개헌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지난 제헌절 즈음에 쏟아졌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제헌절 기념사에서 “내년 대선 일정이 있다고 해서 개헌 추진을 미룰 수 없다”며 여야 정치 지도자들에게 개헌 추진을 촉구했다. 양강 체제를 구축한 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 후보 모두 시대적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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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체제, 절반의 청산
수정 2021-06-28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01206.html



[숨&결] 이주희ㅣ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지금부터 30여년 전, 1987년 6·29 선언과 더불어 권위주의 체제가 종결되었다. 그것은 불완전한 민주주의였다. 당시 <뉴욕 타임스>가 비꼰 것처럼 “한국은 그 수많은 저항과 개헌 없이도 어차피 대통령이 되었을 사람을 힘들게 선거를 통해 뽑았다”. 그 성과는 넥타이부대로 일컬어지는 중산층의 참여와 연대로 가능한 것이었으나 독재 시기 경제성장의 큰 수혜자인 그들은 더 근본적인 개혁에 대한 지지를 일찍 거두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후에도 권위주의 정권의 유산과 행태를 이어받은 대통령을 종종 겪어야 했고, 그런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우리가 87년 체제의 한계에서 탈출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동안 이에 반대했던 야당의 새 당대표가 탄핵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은 불완전한 87년 체제의 붕괴를 여는 놀라운 변화였다. 문제는 그 대표가 표방하는 능력주의가 87년 체제의 완전한 청산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험 서열주의라 지칭되어야 마땅할 이 능력주의는 금융위기를 계기로 불어온 신자유주의의 광풍하에 전 생애를 보낸 세대의 특징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세대와 지위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존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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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체제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기 위해서는 시험 서열주의를 타파해야 한다. 우리의 노사관계가 갈등적이고 파행적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단 한번으로 평생의 계급이 결정되는 자녀의 시험 준비를 위해 어마어마한 교육비가 필요한 현실 때문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부진한 것도 공보육의 부족과 후진적 조직문화에 더해 자녀의 입시 준비에 엄마의 전적인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희생을 치른 부모와 자녀는 더 많은 보상을 원할 수밖에 없다. 비록 실패한 다른 이들에게 상처와 모욕을 주고 비수를 꽂는 일이 발생한다 해도.

경제의 이중구조를 고려할 때, 시험 서열주의를 주장해서 이득을 볼 수 있는 집단은 한정적이다. 왜 매 순간을 월드컵 토너먼트전처럼 살면서 극소수의 승자만 남는 이런 시스템에 아무리 노력해도 승리할 수 없는 다수가 동의하는 것일까? 장시간에 걸친 경험과 헌신이 직무 연관성이 떨어지는 순간의 시험 성적에 밀려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종종 발생하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지금과는 다른 사회적 질서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대안이 없다면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페킹 오더’에 충실하게 자기보다 더 못하거나 못하다고 생각하는 존재에게 그간 받았던 상처와 모욕을 돌려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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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롤스의 정의론은 충분히 정의롭지 못하다. 그는 차등의 원칙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이 최소 수혜자에게 혜택이 된다면 용인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제럴드 코언의 비판처럼, 만일 능력 있는 자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해 생산적 노력을 하지 않기로 한다면 그런 노력이 불가능해서인가 아니면 그 정도 보상으로는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인가? 더 평등한 사회에서는 불평등한 사회보다 덜 보상받아도 능력 있는 자들의 생산적 기여가 가능했을 것이고 그만큼 최소 수혜자의 혜택도 증가했을 것이다.

진정한 능력주의는 모든 시민이 유사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보편적 복지와 기본소득이 보장될 때, 평생에 걸쳐 능력을 증진할 수 있는 기회가 공평하게 제공될 때 완성된다. 또한 능력 있는 자를 선발한다는 원칙이 이처럼 극심한 보상 격차를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높은 능력을 요구하는 일자리는 종종 더 안정적이며 자기계발의 기회가 많다. 그 자체로 큰 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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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장점은 우리 마음에 드는 리더를 직접 선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단점은 우리 수준을 넘어서는 리더를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장점이기도 하다. 훌륭한 대통령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새로운 비전을 꿈꾸며 더 훌륭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부디 공정이란 시대정신이 평등의 에토스 안에서 구현되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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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체제 30년> ①87년체제의 명암...미래향한 보완과 혁신 나서야

송고시간  2016-10-24
https://www.yna.co.kr/view/AKR20161021030400001

헌정사에 남긴 기념비적 의미 결코 퇴색될수 없어…발전적 계승 필요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 '지난 30년' 점검하고 개혁 공론화할 시점

<임기내 개헌> 헌법 30년만에 시대에 맞게 바뀌나?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임기내 개헌을 밝힌 24일 오후 국회 본청 내 대한민국 헌법 전문 동판의 모습.

<※ 편집자주 = 오는 27일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제9차 개헌안이 국민투표로 확정된 지 꼭 29년이 된다. 내년이면 꺾어지는 30년, 한 세대(世代)가 지나는 역사적 분기점이 된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산물로서 국민의 지지속에 탄생한 이른바 '87년 체제'는 우리 사회의민주화 성취라는 시대적 요청에 충분히 부응했다. 그 정치사적 의미도 크다.

하지만 그 사이 우리에게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87년 체제'가 이런 다기화된 변화상과 시대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평가 속에 미래세대를 향한 점검과 보완, 새로운 도전과 혁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에 연합뉴스는 각 분야에 걸쳐 87년 체제의 공과와 그 한계를 짚어보고 이를 극복해 가는 비전을 모색하는 기획물을 매일 2회씩, 총 14회내보낸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 『대통령 직선제를 내용으로 한 제6공화국 헌법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집권자의 자의(恣意)에 의해 굴절만 거듭해왔던 헌법은 헌정사상 40년 만에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민적 합의로 고쳐짐으로써 정통성도 회복했다』


1987년 10월 27일 제9차 개헌안이 국민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된 직후 연합뉴스가 타전한 해설기사의 첫 대목이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을 반영한 새 '권리장전'을, 그것도 헌정사상 초유의 여야합의로 만들어낸 데 대한 감격과 자긍심이 묻어난다.

이렇듯 6월 민주화 항쟁의 찬란한 결과물로 기록된 87년 헌법은 그러나 한 세대를 지나가는 지금 '헌' 법이 된 듯한 느낌이다.

세기(世紀)의 전환 속에서 '상전벽해'에 가까웠던 우리 사회의 시대적 변화상을 담아내기에는 너무 '낡은 틀'이 아니냐는 문제의식도 없지 않다.

이제는 더 이상 군부독재의 장기집권을 청산하자는 식의 시대정신을 정치영역에서 찾기 힘들다. 군정이 종식되고 5년 단임제가 도입된 이후 에는 대통령의 '임기'가 아니라 '권력집중'이 문제가 되고 있다. 대통령 1인에게 쏠린 권한을 분산하고 협치(協治)를 하라는 민심도 결코 가벼이 할 수 없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경제 역시 지축이 흔들렸다. 고도성장기가 막을 내리고 저출산·고령화 추세 속에서 저성장과 양극화가 구조화되고 있다. 소득 3만 불 시대를 앞두고 도전과 혁신의 패러다임을 구축하지 않고는 선진국 문턱에서 좌초할 수 있는 위기국면이다. 인공지능(AI)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은 기존 제조업 틀에서 벗어나 고도의 창의력과 규제 혁파를 요구하고 있다.

사회의 내부갈등은 급격한 속도로 다원화·복합화하고 있다. 노동과 복지, 병역, 환경, 성(性), 인권 등 각 영역에서 '판도라의 상자'처럼 켜켜이 퇴적된 갈등과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덩달아 무책임한 떼쓰기, '갑질', 찌라시, 괴담 등 저급한 문화현상까지 등장하며 기존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87년 헌법이 미처 상정하지 못한 시대적 상황이다.

큰 틀에서 보면 지난 30년 가까이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를 규율해온 헌정 질서인 이른바 '87년 체제'에 대한 보완적 계승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87년 체제가 우리 헌정사에 남긴 기념비적 의미는 결코 퇴색될 수 없다. 군부독재의 장기집권을 저지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에 따라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해낸 것은 우리 민주주의 발전사의 빛나는 금자탑이다. 5년 대통령 단임제와 소(小) 선거구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폐지, 국정감사 등 절차적 민주주의 구현에 필요한 기본요건을 갖췄다.

경제와 사회영역에도 의미 있는 주춧돌이 놓였다. 경제균형 발전과 소득 적정분배와 함께 '경제민주화' 개념이 명문화됐고 언론자유 보장, 최저임금제, 구속적부심 등 국민 기본권 신장과 사법부의 독립성 보장, 헌법재판소 설치 등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그러나 87년 체제는 장기집권을 막는데 치중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어서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절차적 민주화'에는 성공했지만 '내용적 민주화'를 갖추기에는 충분치 못한 과도기적 성격이었던 셈이다.

87년 헌법의 핵심인 '직선제에 의한 5년 단임 대통령제'는 5공 청산을 비롯한 각종 부조리 척결과 제도적 개혁, 환란위기 극복과정에서 분명한 순기능을 발휘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힘이 집중된 통치시스템은 각종 부작용을 일으키며 오히려 민주주의의 성숙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해왔다는 의견도 나온다. "제왕적 대통령으로 시작해 식물 대통령으로 임기를 끝낸다"는 말이 나올 만큼 임기 내내 롤러코스터식 국정운영 난맥상이 되풀이돼왔다.

'승자독식제'에 기반을 둔 5년 단임 대통령제는 국회를 '저주의 대결장'으로 만들고 있다. 청와대와 수직관계에 놓인 여당과 정권교체에 목을 맨 야당이 대권(大權)을 놓고 사생결단식 대결과 정쟁을 벌이는 것은 일상이 됐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인치(人治)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권력분점, 특히 협치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정치권에 형성돼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원집정부제와 내각제 등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 또는 견제하는데 초점을 맞춘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무성하게 등장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87년 체제의 또 다른 폐해인 지역주의 청산을 위해 행정구역과 선거구역 개편을 서둘러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경제영역에서는 경제민주화가 87년 헌법에 최초로 도입됐지만 아직 '선언적 문구'에 그치고 있다. 성장 주도형 패러다임을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지속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실질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관건이다. '기계적·정량적 평등'을 넘어 경제력 집중해소와 공정경쟁, 동반성장이 중심개념이 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87년 당시의 사회적 가치체계와 패러다임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의제들도 즐비하다.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언제 닥쳐올지 모를 '통일 한국'에 대비한 법적 체계와 제도를 준비해나가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당면과제다. 디지털 시대에 따른 정보 인권과 소비자기본권, 생명권 등 국민기본권 확충과 지방자치 분권, 새로운 노사관계 확립을 비롯한 시민의식의 선진화 등도 '성숙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짚어봐야 할 화두다.

이렇게 볼 때 시대적 흐름을 뒤따라가지 못하는 '87년 체제'를 넘어 국가시스템 전반을 다시 들여다보고 급변한 사회환경과 시대정신에 맞춰 새로운 틀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렇다고 87년 체제가 '시대적 소임'을 다한 것은 결코 아니다. 87년 헌법은 당장 고치기보다 오히려 우리 정치권이 소중히 가꿔나가야 할 '미완(未完)의 헌법'이라는 시각이 엄존한다. 제왕적 대통령제 논란도 결국 '사람'의 문제이지 '제도'의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도 귀 기울일만하다. 지금의 개헌논의 자체가 국민 정서와는 유리된 정치공학적 담론이라는 회의론 역시 나온다.

하지만 역사의 한 굽이를 맞는 시점에서 각 분야에 걸쳐 87년 체제의 공과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새로운 국가의 틀을 모색하는 노력을 마냥 미룰 수만은 없어 보인다. 그 연장선에서 사회변화와 시대정신을 반영한 '살아있는 헌법'을 만들어내기 위한 논의도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포스트 87년 체제' 논의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이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데올로기와 진영 논리, 내년 대선을 겨냥한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국민이 주도하는 공론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87년 체제가 최초로 국민의 힘으로 연 시대였던 만큼 '포스트 87년 체제' 역시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r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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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고시간2016-10-24 


北5차 핵실험으로 안보지형 급변…한미일 vs 북중러 신냉전구도 형성
北급변사태로 갑작스런 통일도 대비해야…'플랜A·플랜B' 투트랙 통일전략 필요

<87년체제 30년> 한반도 북핵위기…새 '통일.안보 패러다임’ 찾자

(서울=연합뉴스)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후 체포돼 김포공항에서 압송되는 김현희의 모습은 당시 30여년간 지속된 남북간의 대립과 불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며 세계는 탈냉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반도에도 점진적으로 평화의 기운이 찾아드는 듯했다. 남북 정상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두 손을 맞잡았고 이후로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으로 대표되는 남북교류가 이어졌다.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는 쉽게 조각났다. 북한의 핵실험과 연평도 포격이 이어지며 남북관계는 급랭됐다. 오늘도 휴전선 최전방을 지키는 국군 장병들은 비무장지대(DMZ) 수색을 위해 통문을 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이상현 기자 = '87년 체제' 이후 30년간 한반도의 통일·안보지형은 급변했다. 가장 큰 변수는 북한이 어느덧 사실상 핵무장국 대열에 들어선 점이다.

냉전이 몰고 온 한반도 분단에 더해진 북한의 핵무기 위협은 새로운 통일·안보 패러다임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87년 체제'의 산물이다.

노태우 정부는 정부 출범 첫해인 1988년 7월 7일 탈냉전의 흐름 속에서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 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이듬해 9월 여야 합의를 거쳐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라는 3단계의 구상이 담긴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내놨다.


문민 시대를 연 김영삼 정부가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뼈대를 유지하면서 보완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이후 공식 통일방안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는 압도적인 국력을 바탕으로 남북 교류를 통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고 느슨한 연합체 형태의 남북 공동정부를 구성한 뒤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룬다는 '낙관적인' 통일관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통일방안은 북한이 핵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밑바닥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햇볕정책을 전면에 내건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문제가 불거져 2차 북핵 위기가 빚어진 것을 비롯해 2005년 2월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등 고비 때마다 터진 북핵 사태는 남북 화해·협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금까지 5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북한은 이제 핵무기 실전배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게 국내외의 일치된 견해다.

이에 따라 남북한 화해·협력을 대전제로 하는 기존의 통일방안을 보완하거나 우선순위에서 조정하고, 달라진 한반도 정세에 맞춰 새로운 통일·안보의 틀을 가동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거듭 강행하고, 이에 맞서 북핵 선제타격론까지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위기 국면에 맞게 통일방안과 외교전략을 재정립하고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한반도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또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나온 1987년 당시에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질서가 해제되고 있었던 반면 지금은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하는 신냉전 기류가 한반도 주변에 형성되고 있는 것도 새로운 변수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동북아 국제정세는 2010~2012년 즈음부터 상황이 변화하는 것 같다"며 "북한이 실패한 국가인 것은 맞지만, 핵을 보유한 국가가 되면서 다른 환경이 됐고, 중국이 비핵화보다 북한 체제 안정을 추구하고, 또 중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이 지역에서 미·중 경쟁이 이뤄지는 새로운 전략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논란은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한 한반도 신냉전 구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미국과 일본, 한국은 강력한 제재를 통해 북핵을 저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중국은 북한의 붕괴나 극도의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는 선까지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레드 라인을 고수하고 있다.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긴장이 6.25 전쟁 이후 최고 수위까지 치닫고 있으나, 북한 김정은 정권은 '핵 개발 마이웨이'를 고수하면서 개성공단 폐쇄 등 남북 교류는 완전히 단절됐고, 비상상황 시 가동할 수 있는 '핫 라인'도 부재 상태다. 위기를 흡수할 완충지대가 사라지면서 남북관계의 불가측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특히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3대 세습기의 권력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공포정치를 하면서 엘리트층이 대거 탈북하는 등 북한 체제의 불안 요인도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과 인권탄압을 거론하면서 북한 주민의 탈북을 유도하는 메시지를 발신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 해외자문위원들과 통일 대화에서 "북한 정권은 가혹한 공포정치로 북한 주민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다"면서 북한 주민을 향해 "모든 길을 열어놓고 맞이할 것"이라고 말해, 정부가 기존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포기하고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를 대북정책의 목표로 설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새로운 통일전략은 공식적인 통일방안인 '플랜A'를 재정립하는 한편, 갑작스러운 통일에 대비한 비상계획인 '플랜B'도 마련하는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지금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3단계 중 첫 단계인 화해·협력 기조마저 무너졌다"면서 "과거와 같이 단계별로 가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보수·진보 두 번의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갈라진 통일 담론을 다시 모아 제2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도 고 교수의 주장이다.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기존의 비상계획을 비공식 통일방안의 하나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고려할 때 언제든 내부 소요나 대량 탈북 등으로 인한 급변사태가 올 수 있기 때문에 '도둑 같이 찾아올 수 있는' 통일 기회에도 치밀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아울러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 전략을 꿰뚫어 보면서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 독일 통일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관계국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동북아 신냉전 상황에 맞게 통일외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강은 한반도의 미래를 놓고 기본적으로 통일보다는 현상 유지를 원한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중국의 경우 핵개발에 집착하는 북한이 부담스럽기는 하나 한국 주도의 통일이 북한이라는 전략적 '완충지대' 소멸로 주한미군과 국경을 맞댄 채 대치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또 평화통일이 아닌 북한 정권 붕괴에 의한 통일 시나리오는 대량 탈북 등이 자국에 미칠 악영향을 경계한다.

일본도 북한발 안보 위협이 제거되는 데는 찬성하지만 한반도에 '통일 한국'이라는 강국이 등장함으로써 동북아에서 영향력이 저하되는 상황은 내심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승주 전 외교부 장관은 "통일에는 미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소극적인 일본을 설득하고 중국의 우려를 안심시킬 수 있는 것은 미국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 전 장관은 "우리는 한반도 통일이 중국에도 위협인 북핵 문제를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이고, 한중간 경제관계를 확대·발전시키는 길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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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김종철 연세대 법전원 교수
법률
입력 2023.02.02 
다시 떠오른 87년체제 개편론의 현황과 전망(1)

https://www.thecolumnist.kr/news/articleView.html?idxno=1875


[김종철의 시민을 위한 헌법이야기]
새해 벽두 국회 개헌자문위 출범
선거제 개혁과 개헌 연계추진 로드맵
민주공화제 안정화의 또 다른 계기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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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으면서 87년체제 개편론이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새해 벽두에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자문위원회’(개헌자문위)가 국회의장 자문기구로 구성되어 활동을 개시하였다. 2008년, 2014년의 국회의장 개헌관련 자문위원회와 2017년 개헌특위 자문위원회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개헌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새로 구성된 개헌자문위에는 헌법개정과 관련한 3개의 분과와 더불어 당장 이번 4월로 예정된 개정시한이 다가오는 정당·선거제도 개선에 필요한 사항을 논의하기 위한 정치제도 개선 분과위원회를 별도로 두었다.

87년체제 개편론 재부상의 구도

개헌자문위의 출범은 김진표 국회의장이 취임이후 수차례 언명했던 현행 헌법 개정을 포함한 87년체제 개편론이 공식적으로 부상한 것을 의미한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자문위 출범과 함께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여 그 실천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보였다. 김 의장의 로드맵은 선거법개정과 개헌 등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정치제도 개선 분과위의 적극적 활동을 통해 이미 활동중인 국회 정치개혁 특위의 선거법 합의 개정을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한편, 선거법개정 추진과 병행하여 선거법개정 시한인 4월초까지 개헌자문위에서 수렴된 개헌방향에 관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개헌절차법을 제정하는 동시에 개헌특위를 구성해서 국회 개헌안을 마련하여 내년 총선 전에 개헌국민투표까지 마치거나 혹은 병행하는 구상을 밝혔다. 김의장의 판단으로는 이런 구상이 실패하더라도 개헌이 총선의 이슈가 되도록 함으로써 개헌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중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개헌절차법에서는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숙의민주주의를 도입하여 국민적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여 개헌의 필수조건인 사회적 공감대를 확대할 계획임을 밝히기도 하였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기자인터뷰로 한층 힘이 실린 선거제도 개선논의가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에 여야의원 120여명이 참여하는 등 사정·공안정국 하에서 여야의 극단적인 대치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의 물꼬를 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2022년 여름에 이미 구성되어 청소년 참정권 확대 등 작지만 의미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바 있는 정치개혁 특위가 선거제 개혁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국회의장 자문위에서도 정치제도 개선 분과의 선거제도 개편안을 마련하여 정치개혁 특위 등에서 효과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동시에 선거제개편이 헌정에서 부여받는 막중한 위상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현안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정치개혁 특위에서 단수안이 아닌 복수안으로 개편안을 수렴하게 한 후 이 복수안을 두고 직접적 이해관계인이자 입법의 향배를 좌우할 국회의원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에서 최종안을 수렴하겠다는 매우 구체적인 방안을 김 국회의장이 직접 제안하기도 하였다. 특히 복수안을 두고 전원위원회에서 논의하는 구도는 선거제 개편이 정당지도부들의 정쟁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국회의원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견수렴을 최대화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개헌자문위원회 발족식에서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7년체제 개편론의 명암

사실 87년 헌법 개정 직후부터 그 한계에 대한 비판론이 제기된 바 있듯이 현행 헌법과 그에 결부된 정치관계법제에 개선점이 없지 않다는 데에는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매번 국회에 개헌관련 국회의장 자문기구가 반복적으로 설치되어 왔고 급기야 2017년 개헌특위까지 구성되었던 이면에는 이와 같은 '87년 체제의 한계론'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개헌과 정치제도 개선이라는 포괄적 방향성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서는 공감의 폭과 깊이가 충분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미 국회에 자문기구만도 여러 차례 구성되어 독자적 헌법개정안이 제안되기도 하고 개헌방향에 대한 다양한 쟁점이 보고서로 제출된 바 있고, 2018년에는 대통령발의 헌법개정안이 부의되었다가 정치환경 탓에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 기시감 때문이다.

결국 이번 개편론의 경우에도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헌법 제·개정 권력자로서 헌법의 저작권한(authorship)을 가지는 국민의 주도성과 공감대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다시 한번 ‘그들만의 공론(空論)’으로 그치고 말 것이라는 회의론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회의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김진표 의장이 제안한 것과 같이 국민이 수동적으로 찬반의 의사표시만을 하는 여론조사와 같은 방식만으로는 부족하고 국민이 주도적으로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도 의견을 집약시킬 수 있는 숙의민주주의의 방식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개헌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핵심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개혁을 위한 제반 여건도 유리하다고만은 볼 수 없는 상황이다. 3년을 넘기면서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감염병 위기에다 신냉전체제로의 전환, 우크라이나 전쟁,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 등으로 경제가 불안정하면서 고환율·고금리·고물가의 삼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민감도가 떨어지는 정치개혁론이 탄력을 받기에 쉽지 않는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과정의 효율성이 확보되지 않을 때 민생해결에 필요한 국가의 적극적 역할 또한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없는 구조적 특성을 고려하면 민생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생산적 협치가 요청되는 것과 병행하여 뚝심을 가지고 민주공화제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구현하기 위한 정치개혁논의를 지속해야 하는 당위가 있다.
1987년 개헌 당시 국회 헌법개정안기초소위 위원장이었던 현경대 전의원 등 국회 법개정안 기초소위원회 위원들이 기념서명을 하고 있다. 사진=국회도서관/연합뉴스

87년체제 개편론의 현실적 의의

이런 차원에서 보면 호불호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 대선에 검찰총장 출신 정치초년병인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 수반에 취임한 이후 촛불혁명의 계기였던 국정농단에 대한 탄핵의 성취가 역설적으로 퇴행하면서 정치는 실종되고 ‘검찰형 하나회’라 할 만한 사조직에 의한 사정·공안통치가 가시화되고 있는 현실이 어쩌면 다시금 87년 체제의 한계를 되짚어볼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국회 개헌자문위의 출범으로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87년체제 개편론이 진영대립의 구도를 넘어 무엇이 우리의 민주공화제를 더욱 안정적인 궤도로 복원시킬 것인가를 성찰하고 모색하는 새로운 실천의 계기가 되길 기원해본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공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LSE) 대학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공법학회 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민주공화국의 기본정신에 기초한 시민헌법교육과 정치개혁 및 사법개혁에 기여하는 것을 헌법학자로서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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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김종철 연세대 법전원 교수
법률
입력 2023.02.28 14:19
수정 2023.03.01 14:33
87년체제의 근본문제: 권력기관 카르텔
[김종철의 시민을 위한 헌법이야기]
다시 떠오른 87년체제 개편론 현황과 전망(2)

87년체제의 다의성이 주는 혼선
개헌과제와 입법과제의 정확한 식별 필요
통치도구에서 통치의 중심이 된 권력기관
권력기관 개혁 없는 제도개혁의 한계 직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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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체제 개편론을 논의할 때 87년체제가 도대체 무엇을 지목하는 것인지를 정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개편 대상의 혼란은 개편론에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87년체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를 87년체제의 특징으로 지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5년단임 국민직선의 대통령이 국가원수이자 행정권의 수반으로 입법권을 가지는 국회나 사법권을 가지는 법원이나 헌재보다 상대적으로 우월적 지위를 가지면서 입법·행정·사법 등 국정 전반에 대하여 포괄적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 87년체제의 본질이고 근본문제라고들 한다. 정부형태 혹은 권력구조와 관련한 헌법제도의 문제를 87년체제의 본질로 보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대통령제라는, 행정권의 수반에게 어떤 권한과 의무를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 외에도 입법권을 가지는 국회의 구성이나 국회와 대통령의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거법 및 정당법과 같은 정치관계법, 나아가 권력집중의 결과를 초래하는 권력기관 구성법제를 통털어 87년체제로 넓게 보는 시각도 있다. 5년단임 직선대통령제외에도 헌법사항이 아니라 법률사항인 소선거구제에 기반한 상대다수대표제로 국회를 구성하다보니 양당제의 극단대결이 심화되는 것이나 민주화이전의 권위주의체제의 통치도구였던 검찰, 경찰, 국가정보기관 등 소위 권력기관을 제대로 민주화하지 못하는 법제가 87년체제 정치구조의 주요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87년체제를 헌법적 권력구조 외에 하위법률체계나 민주화에도 변하지 않고 문화지체가 빚어지고 있는 퇴행적 관행체제의 이질적 결합으로 보고 헌법제도보다 입법제도나 정치사회문화의 개혁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필자는 두 번째, 즉 좀 더 넓은 의미의 87년체제론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왔다. 개혁적 성과와 퇴행적 유산이라는 이질적 본질을 동시에 보유한 것으로 87년체제를 바라보는 입장은 87년체제의 근본문제를 첫 번째 관점처럼 헌법상 권력구조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87년체제 개편론이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 등에서 87년체제가 반복해서 위기에 직면하는 근본문제라고 보는 시각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나 '눈 가리고 코끼리 만지기'식의 오류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87년체제는 대통령의 권한을 합리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개혁과 같은 헌법적 차원의 개혁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국회 구성과 관련한 선거법이나 정당법의 개혁과 병행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이번에 김진표 국회의장이 의장자문기구를 출범시키면서 이 두 축을 중심으로 헌법개정과 정치개혁의 병행추진을 목표로 한 것은 그동안의 87년체제 개편론의 실패 경험에서 제대로 성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서울시청 광장 등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 수백만 명이 모여 '호헌 철폐'를 외쳤다 사진=연합뉴스

통치도구에서 '통치의 중심'이 된 권력기관

그러나, 이처럼 헌법과 정치관계법의 병행개혁으로 추구되는 권력구조 개혁은 87년체제개편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되기에는 태부족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른바 절차적 민주주의, 예컨대, 선거의 공정성이나 사법기관의 독립성 및 중립성은 기본적으로 달성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상당하다. 그동안 많은 성취가 있었고 그 성취에 자부심을 느낄 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점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특히 그동안 정치권력이 통치도구로만 이해되어 왔던 이른바 권력기관의 자생성, 혹은 대중적 용례로 권력기관의 조직이기주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권력기관은 검찰, 경찰, 정보기관 등 국가의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집행기관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국가권력 자체의 정당성이 부족하다보니 그 유지를 민주적 정당성이 아니라 권력 자체의 억압적 기술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 권위주의 체제의 특징이다. 이런 까닭에 오랜 권위주의 시대를 거쳤던 우리나라에서 권력기관은 법집행권을 오남용하여 정당성이 결여되거나 위헌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는 기관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도 통용되어 왔다.

민주화는 권력기관의 오명을 순치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거악을 척결하고 적폐를 청산하는 건 민주화된 시대에는 법집행기관을 통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검찰,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경찰, 국민을 향해 한없이 헌신하는 정보기관의 구호가 민주화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그러나 민주화의 역설이랄까, 아이러니랄까, 권력기관이 통치의 도구에서 정의의 사도로 변신하는 조건에 대한 일반적 고민이 부족한 사이, 제대로 된 과거청산 없이 통치도구의 오명을 벗어던지다보니 권력기관 개혁의 구호는 역설적으로 정치의 도구로 권력기관을 장악하려는 시도로 오해받거나 대중적 피로감을 낳고, 심지어는 법집행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이라는 반쪽자리 헌법정신에 포획되기 일쑤였다. 법집행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민주적 정당성과 책임성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인데, 마치 권력기관은 그 어떤 통제도 불가능한 성역처럼 왜곡된 것이다.

그러므로 도식적일 수 있는 위험성을 감안하고서라도 권력기관의 위상을 중심으로 다시 우리 민주화의 역사를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민주화 이전의 권위주의체제는 ‘법치없는 권력만능’의 시대였다. 특히 분단체제를 빌미로 국가정보기관과 경찰의 대공수사부문이 권력의 첨병이었다. 무엇보다 이 시기 권력의 근원은 사실적 힘의 정점에 있는 군부였기에 권력만능이라도 권력기관은 통치도구의 위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2020년 1월2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검찰 간부들이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참배를 위해 현충탑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7년체제의 민주화는 민주화의 역설에 따라 ‘분권없는 법치만능’의 시대를 열었다. 노태우 대통령의 부분적인 과거청산과 3당 합당후 김영삼 대통령의 군부내 하나회의 숙청이후 군부는 권력의 배후로서의 위상을 잃고 군의 정치적 중립은 어느 정도 확립되었다. 그 사이 군부의 공백을 메우면서 권력기관의 위상이 한층 강화되었고, 권력기관 내의 서열관계도 법률전문성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검찰이 점차 우위에 서는 시대가 열렸다.

검찰은 통치도구로서의 오명을 과거청산의 주역으로 세탁시키면서 민주화가 진전되면 진전될수록 권력기관 카르텔의 중심으로 위상이 갈수록 높아졌다. 그 정점이 검찰총장 출신으로 검찰을 권력투쟁의 발판으로 삼는 대통령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제왕적 대통령제를 운위하는데, 도식적이지만 본질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은유하자면, 권위주의시대에 절대 권력의 반지를 낀 대통령이 통치의 중심이었고 검찰을 위시한 권력기관 카르텔이 그 수족이었다면, 이제 민주화로 절대반지가 봉인되자 권력기관 카르텔이 정치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현실을 대입하자면 지금이 윤석열 정부라고 부르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권력을 배경으로 했고 검찰출신으로 통치의 중심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검찰이 정권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는 이미 못박혀 있지만 권력기관 카르텔이 정권창출의 주요한 변수가 되는 퇴행적 구조는 지속되는 셈이다.

더 이상 검찰, 경찰, 정보기관 등 권력기관 카르텔은 정치권력의 수족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정치권력의 중심이 되어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심지어 정권을 직접 창출할 수도 있는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람만 바뀔 뿐 권력기관과 척을 지고서는 끊임없는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형벌만능주의에 중독된 국가후견주의 사회가 ‘정치의 사법화’의 가장 퇴행적 형태로 등장하여 민주공화제를 권위주의시대의 권력통치시대로 후퇴시키고 있다.

87년체제 개편론의 충분조건인 '권력기관 개혁'

대통령이 가지는 입법·행정·사법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권한이 87년체제의 한 단면이지만 그 배후에 권력기관 카르텔이 작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단면이 있음을 놓쳐서는 안된다. 민주화시대 재임시 최소한 일부분 제왕적 대통령으로 지목되었던 역대대통령의 운명을 좌지우지 한 것이 과연 누구인가? 흔히들 다음 정권을 잡은 대통령이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그들 자체가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근본원인이 과연 대통령제 정부형태이기 때문일까? 마치 통치의 도구에 불과한 듯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염불처럼 되뇌이던 검찰을 위시한 권력기관의 카르텔은 아니었던가?

따라서 87년체제 개편론은 당연히 권력기관 카르텔의 도구가 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합리적으로 견제할 수 있도록, 국회와 법원 및 헌재의 구성과 운영을 더욱 민주적으로 개편하는 헌법개정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더욱 민주적 대응성이 확보되는 선거제도와 정당제도의 개혁을 위한 입법개혁이 필요하다. 이에 더하여 법치만능에 기생하는 권력기관 카르텔을 해체하여 민주적 통제와 사법적 통제하에 두기 위하여 권력기관의 분권화를 더욱 더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분권없는 법치만능’의 오류를 드러낸 87년체제의 한계를 제2의 민주화를 통해 분권화와 민주적 통제가 합리적으로 구축되는 민주적 법치국가를 마련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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