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2

공장 매각도 못하고 가동도 불가능 … 韓기업 탈러시아 딜레마 - 매일경제

공장 매각도 못하고 가동도 불가능 … 韓기업 탈러시아 딜레마 - 매일경제

공장 매각도 못하고 가동도 불가능 … 韓기업 탈러시아 딜레마

최승진 기자 sjchoi@mk.co.kr 이유섭 기자 leeyusup@mk.co.kr
입력 : 2023-08-28
 
◆ 韓기업 러시아서 난항 ◆


사진 확대삼성전자·현대자동차·LG전자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러시아 현지 생산법인이 가동을 중단한 지 1년을 넘기면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공장 매각이 수월하지 않은 데다 부품 조달이 어려워 공장 재가동 또한 불가능하다. 사실상 현지 공장을 방치하고 있다는 얘기다.

28일 산업계와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최근 러시아 현지에 생산법인을 보유한 한국 기업에 공장을 재가동할 것을 요구했다. 현실성이 높지 않은 재가동 요구에 산업계에서는 러시아 정부의 의도를 두고 여러 해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3월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TV·모니터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같은 달 현대자동차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가동을 멈췄다. LG전자는 몇 달 뒤인 8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의 가전·TV 생산공장 운영을 중단했다.

러시아 정부가 공장 재가동을 요구한 배경에는 러시아 자국 내 경제상황이 고려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국가들의 제재로 자국 내 생산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공장 재가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시각이다. 여기에 중국 기업들이 러시아 자국 내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는 점 또한 러시아 정부의 고려사항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이 러시아 내 생산시설을 재가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서방국가들의 제재로 부품 조달이 불가능하다. 병행수입의 형태로 우회 수입이 가능할 수는 있지만, 이 같은 방식으로 공장을 재가동했을 경우 서방 국가들의 시선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장을 매각한다면 러시아 시장을 완전히 떠난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생산시설에 막대한 규모의 투자금을 쓰면서 진출한 러시아 시장을 떠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뼈아픈 손실이다. 러시아 시장을 포기하고 공장을 매각한다고 해도 제값을 받고 팔기도 쉽지 않다. 국내 기업 관계자는 "러시아를 떠난다는 신호가 러시아 정부를 자극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들이 처한 이 같은 '딜레마'는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전자 현지법인의 자산이 크게 감소한 것이다. 각 사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기업 러시아 현지 법인들은 1년 전에 비해 자산이 '반 토막' 난 곳도 있었다.

삼성전자의 러시아 판매법인인 삼성전자 루스 컴퍼니(SERC)는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자산총액이 8763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인 지난해 상반기 말 자산총액이 1조7147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48.9% 감소한 셈이다. 러시아의 TV 생산법인인 삼성전자 루스 칼루가(SERK)는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자산이 1조3390억원이었지만, 올해 상반기 말에는 1조1500억원으로 14.1% 감소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현대자동차의 러시아 생산법인(HMMR)의 자산은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자산이 2조6190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말에는 9585억원으로 63.4%가 줄었다.




LG전자 러시아 법인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LG전자의 러시아 지역 전자제품 생산·판매 법인인 LG전자 루스(LGERA)의 자산규모는 2021년 6월 말 9325억원에서 지난해 6월 말 1조1771억원으로 상승했지만, 올해 6월말에는 7508억원으로 급감했다. 1년 새 36.2%가 줄어든 것이다.

LG전자의 러시아 등 지역 매출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LG전자의 러시아와 인근 지역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 8318억원을 기록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5595억원으로 32.7% 축소됐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현대차그룹은 탈(脫)러시아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인도·인도네시아에 이어 독립국가연합 지역 생산능력까지 키우는 모양새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기아는 카자흐스탄 정부와 코스타나이 지역에 완성차 조립공장 설립을 위한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작년 말 같은 지역에 준공한 기아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스포티지' 완전분해 조립(CKD) 공장에 이은 두 번째 생산시설이다. 스포티지 조립공장 생산능력은 연간 1만대이며, 2025년 완공 예정인 2공장 생산능력은 연 3만대다. 기아는 2공장 설립에 약 2600억원을 투자했다.

러시아 공장 가동 중단에 이어 중국공장 일부 매각을 진행 중인 현대차는 최근 인도에서 미국 제너럴모터스 공장 인수를 확정 지었다. 미국에서는 조지아에서 최초의 전기차 전용 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를 구축 중이며, 국내에서도 울산 전기차 공장을 신설할 계획이다.

[최승진 기자 /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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