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를 기리며 한반도 평화를 다시 생각한다 [기고]
수정 2025-01-02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1994년 6월17일 김일성 북한 주석과 만나 핵동결 약속을 받아낸 뒤 서해갑문을 함께 시찰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재봉 | 원광대 명예교수·한국중립화추진시민연대 공동대표
12월30일 아침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 요즘 윤석열의 계엄 선포와 탄핵 그리고 전쟁까지 불러올 수 있는 남북관계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에 크게 기여했던 그를 더욱 기리게 된다.
카터는 인권과 평화를 유난히 중시한 대통령이었다. 1977년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한국 인권 상황을 비판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극심한 반발을 불렀다. 1979년 6월 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서울 방문을 앞두고, “한국 대통령과의 일정을 취소하게 되더라도 김대중을 만나야겠다”고 했다. ‘인권 대통령’으로서 ‘한국의 가장 저명한 인권 희생자’로 가택연금에 처해 있던 재야인사 김대중을 만나고 싶어 했던 것이다. 한국 정부의 차단과 주한 미국대사의 만류로 불발되자, 역사상 가장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박정희와의 정상회담에서 신랄하고 험악한 말이 오갔다. 카터는 미국의 대한국 정책에서 인권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며 긴급조치 9호를 철회하고 재소자들을 될수록 많이 석방하라고 압박했다.
1980년 5월 광주학살을 저지르고 김대중을 구속시킨 전두환이 8월 대통령 자리에 오르자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김대중을 처형하거나 단순히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해 11월 대선에서 졌지만, 주한 미국대사와 각료들을 통해 전두환에게 김대중을 처형하지 말라는 엄중한 메시지를 보냈다. 대통령직 인수인계에 ‘김대중을 살려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도록 하고, 1981년 1월 대통령 취임을 앞둔 로널드 레이건에게도 ‘김대중 구명’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카터는 군사령관 출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61년 1월 퇴임사에서 ‘군산 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을 경고한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전쟁을 반대한 평화주의자였다. 측근 박한식 조지아대학 교수의 조언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를 1976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고 한국에 배치된 핵무기 철수를 포함한 단계적 계획을 1977년 세웠다. 그러나 미국 군부와 의회의 거센 반대로 추진하지는 못했다.
1981년 1월 퇴임사를 통해 “전쟁의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전면적 핵전쟁이 일어나면 제2차 세계대전 전체에서 발생한 것보다 더 큰 파괴력이 매 순간 폭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94년 6월 미국이 북한 핵시설 폭격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대중의 제안과 박한식의 주선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김일성과 만나 전쟁 위기를 해결하고 김영삼-김일성의 남북 정상회담 합의까지 이루어냈다.
2002년 노벨 평화상을 받으며, “전쟁이 때로는 ‘필요악’일지 모르지만, 아무리 필요할지라도 그건 항상 악이지 결코 선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부당하고 불필요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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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카터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협정을 기대했다. “트럼프가 북·미 양쪽이 받아들일 만한 평화조약 체결에 성공하면” 분명히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리라면서, 그건 “이전의 어느 대통령도 실현할 수 없던 가치 있고 중대한 업적이 될 것”이라고 한 것이다. 2019년 4월 트럼프가 중국의 미국 추월을 우려하며 자문을 요청하자 카터는 다음과 같이 미국의 ‘호전성’을 강조했다. 카터가 다음날 고향 교회에서 진행하던 주일학교 정규 강좌에서 밝힌 내용이다.
“중국의 무서운 성장은 현명한 투자로 촉진되고 평화에 의해 활성화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수교한) 1979년부터 중국은 어느 나라와도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계속 전쟁해왔는데요. 미국은 242년 역사에서 오직 16년 동안만 평화를 누리며 ‘세계 역사상 가장 호전적 국가’가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에 고속철로가 몇마일 있습니까? 중국은 1만8000마일의 고속철로를 갖고 있는데, 미국은 군사비로 3조달러를 낭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전쟁에 단 한푼도 쓰지 않았는데, 그들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보다 앞선 이유입니다.”
카터의 표현대로 이토록 ‘호전적 국가’인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전쟁도 불사하는 듯한 패권 경쟁에서 평화와 국익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위대한 전직 미국 대통령’이 저 세상에서도 세계 평화를 위해 힘쓰리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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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 원광대 명예교수·한국중립화추진시민연대 공동대표
12월30일 아침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 요즘 윤석열의 계엄 선포와 탄핵 그리고 전쟁까지 불러올 수 있는 남북관계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에 크게 기여했던 그를 더욱 기리게 된다.
카터는 인권과 평화를 유난히 중시한 대통령이었다. 1977년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한국 인권 상황을 비판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극심한 반발을 불렀다. 1979년 6월 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서울 방문을 앞두고, “한국 대통령과의 일정을 취소하게 되더라도 김대중을 만나야겠다”고 했다. ‘인권 대통령’으로서 ‘한국의 가장 저명한 인권 희생자’로 가택연금에 처해 있던 재야인사 김대중을 만나고 싶어 했던 것이다. 한국 정부의 차단과 주한 미국대사의 만류로 불발되자, 역사상 가장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박정희와의 정상회담에서 신랄하고 험악한 말이 오갔다. 카터는 미국의 대한국 정책에서 인권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며 긴급조치 9호를 철회하고 재소자들을 될수록 많이 석방하라고 압박했다.
1980년 5월 광주학살을 저지르고 김대중을 구속시킨 전두환이 8월 대통령 자리에 오르자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김대중을 처형하거나 단순히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해 11월 대선에서 졌지만, 주한 미국대사와 각료들을 통해 전두환에게 김대중을 처형하지 말라는 엄중한 메시지를 보냈다. 대통령직 인수인계에 ‘김대중을 살려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도록 하고, 1981년 1월 대통령 취임을 앞둔 로널드 레이건에게도 ‘김대중 구명’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카터는 군사령관 출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61년 1월 퇴임사에서 ‘군산 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을 경고한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전쟁을 반대한 평화주의자였다. 측근 박한식 조지아대학 교수의 조언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를 1976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고 한국에 배치된 핵무기 철수를 포함한 단계적 계획을 1977년 세웠다. 그러나 미국 군부와 의회의 거센 반대로 추진하지는 못했다.
1981년 1월 퇴임사를 통해 “전쟁의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전면적 핵전쟁이 일어나면 제2차 세계대전 전체에서 발생한 것보다 더 큰 파괴력이 매 순간 폭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94년 6월 미국이 북한 핵시설 폭격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대중의 제안과 박한식의 주선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김일성과 만나 전쟁 위기를 해결하고 김영삼-김일성의 남북 정상회담 합의까지 이루어냈다.
2002년 노벨 평화상을 받으며, “전쟁이 때로는 ‘필요악’일지 모르지만, 아무리 필요할지라도 그건 항상 악이지 결코 선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부당하고 불필요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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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카터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협정을 기대했다. “트럼프가 북·미 양쪽이 받아들일 만한 평화조약 체결에 성공하면” 분명히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리라면서, 그건 “이전의 어느 대통령도 실현할 수 없던 가치 있고 중대한 업적이 될 것”이라고 한 것이다. 2019년 4월 트럼프가 중국의 미국 추월을 우려하며 자문을 요청하자 카터는 다음과 같이 미국의 ‘호전성’을 강조했다. 카터가 다음날 고향 교회에서 진행하던 주일학교 정규 강좌에서 밝힌 내용이다.
“중국의 무서운 성장은 현명한 투자로 촉진되고 평화에 의해 활성화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수교한) 1979년부터 중국은 어느 나라와도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계속 전쟁해왔는데요. 미국은 242년 역사에서 오직 16년 동안만 평화를 누리며 ‘세계 역사상 가장 호전적 국가’가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에 고속철로가 몇마일 있습니까? 중국은 1만8000마일의 고속철로를 갖고 있는데, 미국은 군사비로 3조달러를 낭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전쟁에 단 한푼도 쓰지 않았는데, 그들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보다 앞선 이유입니다.”
카터의 표현대로 이토록 ‘호전적 국가’인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전쟁도 불사하는 듯한 패권 경쟁에서 평화와 국익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위대한 전직 미국 대통령’이 저 세상에서도 세계 평화를 위해 힘쓰리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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