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3

운수 좋은 날 - 나무위키 1924

운수 좋은 날 - 나무위키

운수 좋은 날

최근 수정 시각: 
다른 뜻 아이콘  걸그룹 마마무의 리얼리티 웹 예능에 대한 내용은 운手좋은날 문서를, 개그콘서트의 코너에 대한 내용은 운수 좋은 날(개그콘서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개요2. 줄거리3. 전문4. 등장인물5. 평가
5.1. 김첨지에 대한 해석
6. 파생작품
6.1. 이문열의 단편 소설6.2. 드라마화6.3. 노래6.4. 뮤지컬6.5애니메이션6.6. 오페라6.7패러디

1. 개요[편집]

1924년 6월 <개벽> 48호에 발표된 현진건의 단편소설.

저작권이 만료되어 위키문헌에서 전문을 읽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하층민의 절박하고 비참한 삶을 반전을 이용해 충격적으로 그려냈다. 슬픈 내용인데 패러디가 자주 되는 소설이기도 하다. 영어 제목은 'One Lucky Day'.

7차 중학교 3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와 2019년 개정 2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와 고등학교 문학(상)과 중학교 1학년 1학기에 실려있었다. 새 교육 과정에서는 중학교 2학년 1학기 비상 국어 교과서에는 내용만, 3학년 2학기 창비 국어 교과서에는 비평문과 함께 실려 있다. 3학년 1학기 미래엔 국어 교과서와 2학년 2학기 천재 국어 교과서[1]에도 내용이 실려 있다.

2. 줄거리[편집]

시간적 배경은 1920년대의 겨울로, 공간적 배경은 경성부. 주인공이자 인력거꾼 김 첨지의 아내는 병에 걸린 지 1달 가량이 지나 있었다. 아내는 단 한 번도 을 먹어본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김 첨지의 신조 때문으로 나오지만 사실 이건 핑계고, 약을 살 돈도 벌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유가 더 크다.[2]

아내의 병이 더 악화된 일도 있었는데, 며칠을 굶은 아내가 '김 첨지가 오랜만에 돈을 벌어서 산 로 을 지었는데 다 익지도 않은 밥을 급하게 욱여넣으며 먹다가 체한 일'이었다. 여기서 체했다는 것은 식도에 밥이 걸렸다는 게 아니라, 갑작스레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서 앓아누운 것. 오래 굶은 사람은 평범한 음식을 바로 먹으면 소화는커녕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김 첨지가 "에라! 조롱복은 어쩔 도리가 없어! 못먹어서 병, 먹어서 병! 대체 어쩌란 거야?!"라고 한탄한다.

그리고 며칠 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인력거꾼 김 첨지는 그 날따라 유독 가지 말라고 말리는 병든 아내를 두고 돈을 벌러 나온다. 그런데 그 날따라 유독 손님이 많아서 김첨지는 2원 90전이라는 돈을 벌었다.[3][4][5]

하지만 집에 가까이 갈수록 어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느껴져 불길해 하던 중 그 불길함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마침 친한 친구 치삼이를 만나 그와 을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취중에 '우리 아내가 죽었네', '아내가 죽었는데 내가 술이나 처먹고 있으니 내가 죽일 놈이다'하고 농담을 한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아내가 그리도 먹고 싶다던 설렁탕을 사서 집으로 돌아간다. 설렁탕은 김첨지가 취중에도 잊지 않고 사들고 왔다. 무식하고 거칠지만 속은 자상하고,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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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삿자리 밑에서 나온 먼지내, 빨지 않은 기저귀에서 나는 똥내와 오줌내, 가지각색 켜켜이 앉은 옷내, 병인의 땀 썩은 내가 섞인 추기[6]가 무딘 김첨지의 코를 찔렀다.
"이런 오라질 년, 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설렁탕을 사다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
설렁탕을 먹고 싶어했던 아내가 세상을 떠나 있더라는 내용. 설마설마하던 불안감을 계속해서 느끼던 김첨지는 결국 아내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그 시신을 붙들고 절규하며 "왜 설렁탕을 사왔는데 먹지를 못하냐"고 목놓아 울부짖으며 절망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운이 매우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가장 최악의 날(운이 매우 좋지 않았던 날)이었던 것. 몇몇 사람들은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자신이 죽을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고 하는데, 아마 아내도 자신이 죽을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남편에게 가지 말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7]

3. 전문[편집]

4. 등장인물[편집]

  • 김첨지
    주인공. 직업은 인력거꾼으로, 아내와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빈민층. 배경은 경성(현재의 서울특별시)이며, 동소문(현재의 종로구 혜화동)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묘사를 볼 때 김첨지의 거주지는 정황상 낙산(현재의 이화마을 부근)이었을 것이다. 평소에는 인력거일이 없어 가난하게 지내지만, 작중 배경에서는 돈을 많이 벌어 아내에게 설렁탕을 사 주려고 했으나 이미 아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꺽꺽 울며 슬퍼한다.

    겉으로는 아내에게 막말을 많이 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을 탓하고 아내를 걱정하는 면도 있다. 아내가 조밥을 잘못 먹고 병의 악화로 눈까지 흰자위를 보이며 뒹굴 때 화를 내며 뺨을 때린다. 이 때문에 김첨지가 가정폭력을 한다고 비판받는다.[11] 더불어 행동과 달리 속으로는 미안해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자신 역시 이 지독한 가난과 자신의 무력함 때문에 속으로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걸 보아... 아들 개똥이가 먹을 죽까지 사가는 걸 보면 아들도 진심으로 아낀다.
  • 아내
    김첨지의 아내. 가난으로 인해 심한 병을 앓고 있다. 이 병이 심하게 악화된 것은 어쩌다 김첨지가 얻어온 조 한 되를 그냥 솥에다 넣고 익히다가 그동안 앓던 허기에 눈이 돌아 설익은 조밥을 허둥지둥 급하게 먹다가 크게 체해서... 마지막에 설렁탕을 먹고 싶어했으나, 결국 먹지 못하고 죽고 만다.
  • 개똥이
    김첨지 부부의 아들. 2~3살 밖에 안 된 어린아이로 아버지가 일을 나갔을 때 어머니가 죽자 어머니의 시신 옆에서 운다.
  • 치삼이
    김첨지의 친구로, 직업은 김첨지와 마찬가지로 인력거꾼. 소설 중후반부에 잠시 등장하며, 김첨지와 180도 대조되는 당당한 풍채의 모습으로 나온다. 선술집에서 친구 김첨지와 얘기를 나눈다. 거구의 외형과 달리 목소리가 연하고 싹싹하다고 한다.

5. 평가[편집]

복선과 반전이 어우러진 흥미진진한 전개,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적절한 길이, 현대인의 입맛에 잘 맞는 김첨지의 츤데레, 교과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오라질년'으로 대표되는 찰진 대사, 감정이입이 잘 되는 비극적 스토리가 어우러져 교과서에 실린 작품으로서는 드물게 많은 학생 및 시민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작중 선술집에서의 식사 묘사에서 일제강점기 서민들의 식생활을 알 수 있는 건 덤이다.
덕분에 나온 지 100년째인 2024년 기준으로도 중학교 과정을 밟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내용을 꿰고 있는 국민 소설로 자리잡았다.

교과서에 실린 수많은 작품 중에서 독보적으로 깊이 각인되어 '오라질년' 하면 바로 운수 좋은 날을 떠올릴 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수많은 오마주와 패러디를 배출했다.

초반에 돈이 잘 들어오나 후에 알고 보니 아내가 죽는, 어찌 보면 가장 운수가 사나운 날인데 제목을 '운수 좋은 날'이라 붙임으로써 반어적 표현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이야 결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모르고 보더라도 소설에 아내의 죽음을 암시하는 복선이 너무 자주 깊게 깔려 있어서 반전물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결말이 너무 뻔히 예상된다. 하지만 이것은 죽음을 연상시키는 심상을 통해 불안감을 조성하고 이런 불안감을 애써 외면하려는 심리를 묘사하려는 작가의 의도적인 연출이기도 하고, 교과서에도 복선의 정석으로 많이 설명된다. 복선 자체를 알아차리기 힘들게 숨겨서 충격을 주는 것에 집중하는 현대 대중소설이나 영화의 반전기법은 복선의 원래 기능과는 차이가 있다.

5.1. 김첨지에 대한 해석[편집]

아픈 아내에게 욕을 하고, 심지어 아내가 죽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욕을 하는 것으로 보아 아내에게 애정이 깊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는데, 김첨지는 아픈 아내를 말로 구박하기는 했으나 이것은 병을 앓고 사는 아픈 아내에게 약은 커녕 밥조차도 제대로 먹여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죄책감을 구박으로 속내를 감추었을 뿐이다. 또한 김첨지는 욕을 하면서도 없는 돈을 탈탈 털어 조밥을 사다 먹였고, 이를 급히 먹던 아내가 체하자 욕설을 퍼부은 것도 그녀를 걱정해서 한 것이다. 마지막에 "오라질년" 이라 욕한 것도 아내가 죽었음을 짐작하고 비통과 함께 죽음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발로 차고 한 것이다. 설렁탕이 먹고 싶다던 아내에게 먹지도 못할 거 핑계대며 욕을 한 것도 사실 설렁탕 살 돈이 없어서였고, 돈을 벌자마자 "이젠 설렁탕을 살 수 있다"며 행복해하는 묘사 등을 보면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한 것이 맞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일 하러 나온 후 내내 불안감에 시달릴 이유가 없다. 다만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김첨지의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아내에 대한 사랑이 깊었음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욕설은 기본에 뺨을 때리는 등 폭력을 행하는 모습 등을 비추어 보면 당시 시대상이나 인권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추측으로, 뺨을 때린 건 증세가 심해져 아내의 눈까지 홱 돌았을 때로 의학적 지식도 없으니 정신이 돌아오길 바라고 친 의도나 본인의 불안감도 있을 것이다. 퇴근 후 안 일어난다고 다리를 차기도 했지만 대문 앞에서부터 고함을 치는 것과 같이 역시 불안감에 의해 한 행동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김첨지의 행동이 옳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여하튼 폭력이 용인되던 시대라는 건 알 수 있다.

의외로 한국 사회에서 인권의식이 개선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사랑의 매랍시고 선생님이 학생들을 폭행하던 시절이었다. 1990년대 학습 서적 소설 모음집에서도 당시 시대상임을 알아두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의 인물인 김 첨지가 현대적인 기준의 인권의식을 가졌을 리는 없으며, 가정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특별법이 제정된 것이 1997년의 일이다. 이전까지는 헌법적으로 보장된 남녀평등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적 관습으로 인해 가장이 폭력을 휘두르더라도 사회적으로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64년에 일어난 최말자 사건만 하더라도 19세였던 강간 미수 피해자 최말자에게 검사, 심지어 변호사 측에서도 가해자와 결혼할 것으로 종용할 정도로 불과 수십년전까지만 해도 여성 인권은 바닥이었다. 무식한 빈민층인 김첨지가 식자층에서도 극히 일부에서만 제기되었던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알턱도 없고, 당시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리도 없다. 즉, 김첨지의 폭력성은 당시 여성 인권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묘사이지, 김첨지 본인이 악한으로 묘사된 것은 아니다.

몇몇 사람들의 사이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비극적 인물인 김 첨지는 시대를 앞선 대한민국의 남자 츤데레로 평가받는다.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점순이와 함께 한국 현대소설 대표 츤데레로 꼽힌다. 동백꽃과 운수 좋은 날의 크로스오버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창작물인 점과 당시 시대상에 부합한 인물이라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 현실에서는 절대 김첨지처럼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김첨지의 행동은 괴팍하긴 해도 당시 1920년대 시대상의 가장을 잘 표현한 행동이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 기준으로는 엄연히 가정폭력이다. 서투른 표현을 폭력으로 때운 거라고 할지언정 폭력을 정당화할 수도 없고 상대가 이런 과격한 행동의 저의를 헤아려 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 2020년대에는 김첨지를 츤데레로 미화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커졌다. 하지만 애초부터 이 이야기는 인권 의식 자체가 없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만큼 현대적 잣대를 지나치게 들이민 것은 어폐가 있다.

6. 파생작품[편집]

6.1. 이문열의 단편 소설[편집]

이문열이 똑같은 이름의 단편소설을 낸 적이 있으며 결말은 다르다.

주인공이 거간꾼으로 설정되어 있고, 운수 없게 끝나는 결말은 다름 아닌 주인공 본인이 사망한다. 주인공이 스페어 운전 일을 하다가 그 날 계속 운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자신이 예전부터 탐하던 여자랑 만난다, 숙소에서 주인공과 여자를 누가 찾는데 주인공과 여자가 나가보자 둘다 살해 당한다.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분에 넘치는 호강을 한 남자가 단 하루만에 파멸로 끝난다는 음울한 이야기다. 이문열 특유의 "비틀린 학도"가 등장하고 있으나 전체적으론 특색이 없는 편이다.

6.2. 드라마화[편집]

MBC 베스트극장에서 번안돼서 방영한 바 있으며, 원작과는 다르게 배경이 80년대이며 서울의 택시기사 이야기로 바꾸었기 때문에 시대적 공감은 더 되는 편. 이는 상술된 이문열의 작품에서 소스를 더 많이 따왔을 가능성이 있다.

6.3. 노래[편집]

아웃사이더 2004년에 발매된 "1집 Come Outside" 타이틀곡이다.

럼블피쉬의 타이틀곡 '예감 좋은 날'의 모티브가 되었다. 최진이가 유명가수전-배틀어게인에 출연해 직접 밝혔다.

아이유의 노래 좋은 날도 이 작품의 모티브를 차용했다.

6.4. 뮤지컬[편집]

극단 팀영이 연극 '운수 좋은 날'을 각색해 '아내의 선물'이라는 부제를 붙여서 만든 뮤지컬이다.

뮤지컬의 시작은 소설 마지막 부분인 아내[12]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7년 후로, 아내의 제삿상을 차리면서 김첨지와 아들 개똥이, 김첨지의 친구 치삼이 서로에게 숨겼던 비밀을 공유하게 되고 7년 전 - ‘운수 좋은 날’에 있었던 일들의 베일이 벗겨진다는 내용이다.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운수 좋은 날/애니메이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6. 오페라[편집]

한국의 오페라 지휘자, 합창지휘자 작곡가 박지운(현, 과천시립여성합창단 지휘자)의 작품 "운수좋은날"이 있다.

당시 작곡가는 2010년 경 이 작품을 작곡하고 있었고, 동시에 오페라"선덕여왕"(이 작품은 추후 푸치니 페스티벌"Torre del Lago Festival"에 초청되었다.)이 의뢰가 들어와 오전에는"운수 좋은 날"을 쓰고, 오후에는 "선덕여왕"을 작곡했다고 한다.

국립오페라단 창작 공모전에 당선이 되었는데, 작곡가 인터뷰에서 뮤지컬스러운 곡을 썼다며 비판적인 시각들이 있었는데, 작곡가는 오히려 어렵게 쓴 오페라 보다, 기능화성적이고 대중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작품으로 다가가고 싶었다는 의도를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2011년 국립오페라단 창작공모전에 당선이 된 작품이 되었다.

이 오페라는 원작의 인물들과 다르게 작명을 했는데 재수(김첨지), 아미(연희) 등 이렇게 작명을 한 이유는 가수가 노래를 하기 위해 좋은 자음과 발음으로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불러 좋은 성악적 효과를 보게 하기 위한 작곡가의 센스라고 볼 수 있다.


초연 당시 영상 링크
대본, 작곡, 지휘 : 박지운
재수 Ten.강신모
아미 Sop.서활란
김사장 Bar.박정민
숙희 M.sop.이성미
[1] 대표저자 노미숙[2] 작중 서술을 보면 아내가 며칠을 굶으며 살았는데, 쌀은 커녕 조도 사먹지 못할 궁핍한 삶에 약을 지을 돈이 있었을 리가 만무하다.[3] 100전=1원이다. 1924년 기준 1원이 2020년대 기준 약 7356원 정도의 가치였음을 고려하면 2023년 소비자물가지수로 환산하면 약 21332원으로, 하루 수입 치고는 꽤 큰돈을 받은 셈이다. 이 정도면 2023년 기준 2시간 노동 최저임금보다도 많은 돈이다.[4] 해당 기사에 따르면 1925년 조선총독부 조사 결과 인력거꾼의 한 달 평균 수입이 30원(2023년 가치로 약 22만 700원)이었으며, 1920년대 당시 인력거꾼 품삯은 500m에 15전(단거리. 2023년 가치로 약 1100원) 혹은 4km에 60전(장거리, 2023년 가치로 약 4414원)이 평균이었다. 작중에서는 월세로 1원을 지불한다는 말이 나온다.[5] 작중 술에 취해 "오늘 30원을 벌었다"고 뻥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앞서 언급했듯 이 정도면 한 달 수입을 하루에 벌었다는 말이 된다.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작중 백수인 주인공이 "한 달에 30원 준다고 하면 일을 할 것이다"는 말이 나오고, 상록수에서는 작중 등장인물인 김선배가 한 달에 30원을 받으며 "그나마 겨우 밥을 먹을 수준이 되었다"고 서술한다. 1922년 공립 보통학교 수업료가 월 1원 이하, 1928년 경성 사대문 안 택시 요금이 4인 기준 1원이었다.[6] 시신에서 배출되는 부패액. 추깃물이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시즙, 시수라고 한다.[7] 아내의 시체가 경직된 정도와 부패 상태로 보아, 정황상 김첨지가 일하러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8] 일제강점기에 있던 중등교육기관으로, 이후 보성고등보통학교에 통합되었다. 당시 동광학교가 있던 곳에는 현재 서울과학고등학교와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이 있다.[9] 복이나 경사가 있어도 그걸 누리지를 못하는 것, 또는 그런 사람.[10] 고쿠라. 현재 이름으로는 기타큐슈. 당시 고쿠라는 섬유 및 의류 산업이 발전되어서 고쿠라에서 생산되는 양복이 유명했다. 이 지명의 흔적이 아직도 잔존하여 기타큐슈에는 '고쿠라 성'이 남아 있다.[11] 다만 단순히 열받아서만은 아니고 눈을 홉뜬다는 표현대로 아내의 상태가 이상해서 놀라서 정신차리라고 친 의도도 없잖아 있어 보인다.[12] 극중 설정으로 이름이 '연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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