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09

[최진석] 쿼바디스, 대한민국 | 중앙일보

[중앙시평] 쿼바디스, 대한민국 | 중앙일보

오피니언 중앙시평
쿼바디스, 대한민국
중앙일보
업데이트 2025.11.07 11:01

최진석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은 ‘한국’은행이다. ‘한국’은행법은 “‘대한민국’의 화폐단위는 원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대한민국’의 화폐를 만드는 곳은 ‘한국’조폐공사이다. 모두 ‘대한민국’의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지폐에는 한국인이 없다. 신사임당, 세종대왕, 이이 그리고 이황의 조선인만 있다. 미합중국의 지폐에는 미국인이 있고, 일본국의 지폐에는 일본인이 있고, 중화인민공화국의의 지폐에는 청인(淸人)이나 명인(明人)이 아니라 중국인이 있으며,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의 지폐에는 영국인이 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폐에는 북한인이 있다. 대한민국의 화폐에 한국인이 없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으로 건국하였으되 아직도 대한민국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대한민국이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그만큼 아슬아슬하게 겨우 왔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정체성은 아직도 미완
‘유사 좌파’와 ‘유사 우파’만 득세
여순 사건의 성격 규정이 시금석
‘무위’ 정신으로 사실을 직시해야

정체성 문제는 정체성의 주체로 존재하는 것, 대한민국 자체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대한민국 정치 갈등을 흔히 좌우의 대립이라고 이해하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실정을 실정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시각이다. 대한민국에 좌파다운 좌파가 어디에 있고, 우파다운 우파가 어디에 있는가. 좌파는 자신들의 핵심 가치가 인권임을 알지만, 북한 인권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우파는 우파가 책임져야 할 복지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다. 이처럼 유사 좌파(소위 좌파) 혹은 유사 우파(소위 우파)로 퇴락했다.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소위 좌파와 소위 우파를 가르는 최종적인 기준은 인권도 아니고 복지도 아니다. 결국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는가, 아니면 긍정하는가이다. 대한민국의 이런 정체성 문제는 입 밖으로 꺼내기를 두려워하는 나약한 소위 우파와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감춰가면서 이상을 이루려는 집요하고 전략적인 소위 좌파 사이에서 보일 듯 말 듯 하게 있지만, 마치 안전핀 뽑힌 수류탄을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대한민국을 긍정하는가 아니면 부정하는가를 가르는 지표는 매우 분명하다. 여순사건을 항쟁으로 보느냐 반란으로 보느냐이다. 김구 선생은 여순 사건 11일 후에 발표한 담화에서 “반란을 일으킨 군인과 군중”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반란임을 명시했다. 4·3과 여순 사건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제주4·3사건 사과 발표문’에서 4·3이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에서 기인했다고 적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남로당의 반(反)대한민국 행위가 4·3을 만들었고, 그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 4·3이다”고 정리했다. 여순 사건 당시 그들은 여섯 개의 결정서를 채택하는데, 그 가운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수호와 충성을 맹세한다”와 “대한민국의 분쇄를 맹세한다”는 두 개만 봐도, 항쟁으로 보기보다는 반란으로 보는 것이 더 옳다. 관점이 어떠하더라도 진압과정에서 희생된 무고한 민간인의 명예 회복과 보상만큼은 세심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들은 반란을 진압하라는 대한민국 군대의 명령을 부당한 명령으로 치부하고, 여순 사건을 국가 폭력으로 규정한다. 반란을 진압하려는 대한민국 군대를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군대로 전락시킨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해괴한 상황이 문재인 대통령에서부터 이어지고, 더욱 강화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때부터 홍범도, 김원봉, 정율성 등 대한민국을 적으로 놓고 싸웠던 사람들을 떠받드는 일을 노골적으로 한다. 문재인은 대한민국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고 대한민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전복하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았던 반국가사범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 받들었다. 이는 해괴한 일이지만, 해괴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충분히 무장해있지 않기 때문에 정치 선동을 이겨낼 수 있는 절실함이나 강함을 갖추지 못해서 그들의 반대한민국 노선은 거침이 없다.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세력의 비굴함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이 자라는 토양이 되어버렸다.

사실을 공개적으로 왜곡하고도 오히려 당당한 힘은 어디서 오는가. 도덕적 확신에서 온다. 도덕적 확신은 왜곡된 사실이 주는 의미와 가치를 압도할 수 있는 정도로 크고 굳건한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 생긴다. 그 이상은 혹시 최교진 교육부총리도 동의한 “애초 이 나라는 해방 정국의 현실을 그대로 두었다면, 사회주의 국가의 모범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에 담겨 있지 않을까?

잘 살려면 사실을 사실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노자는 이런 태도를 무위라 했다. 무위하면, 못 이룰 것이 없지만, 무위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 무위하지 않으면, 확증편향으로 산다. 확증편향에 갇히면, 효율성이 나지 않는다. 그러면, 개인에도 나라에도 망조가 드는데, 이는 여간해서 막을 길이 없다.

최진석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80251
===

이 글은 최진석 교수가 대한민국의 정체성 혼란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관점 차이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칼럼입니다.


쿼바디스, 대한민국 요약

1. 지폐에 담긴 정체성의 부재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화폐에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의 인물이 아닌 조선 시대 인물들(세종대왕, 신사임당 등)만이 등장한다. 이는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과거에 머물러 있음을 상징한다.

2. 유사 좌파와 유사 우파의 대립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은 진정한 좌우 대립이 아닌, 건국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의 정체성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 유사 좌파: 인권을 강조하지만 북한 인권 문제에는 침묵하며, 전략적으로 건국을 부정하는 성향을 보인다.

  • 유사 우파: 복지 문제에 소극적이며, 정체성 논쟁에서 나약하고 비굴한 태도를 취한다.

3. 여순 사건과 역사적 직시

저자는 여순 사건을 항쟁이 아닌 반란으로 규정하는 것이 대한민국 정체성을 가르는 시금석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채택된 결정서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충성과 대한민국의 분쇄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구,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들도 이를 반란 혹은 반대한민국 행위로 보았음을 강조하며, 다만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에 대한 보상은 별개로 세심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한다.

4. 무위(無爲)의 정신과 사실의 직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으며, 이는 확증편향에 갇혀 효율성을 저해하고 국가에 망조를 들게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편향 없이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노자의 <무위> 정신이 필요하다.


평론: 정체성의 닻을 내리지 못한 국가의 초상

최진석의 <쿼바디스, 대한민국>은 국가의 상징인 지폐에서 시작하여 현대사의 가장 민감한 지점인 여순 사건까지 관통하며 대한민국의 빈약한 정체성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첫째, 화폐 인물에 대한 지적은 탁월한 상징적 통찰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주요국들이 자국의 건국 정신이나 근대화 기여자를 지폐에 담는 것과 달리, 조선 시대 성리학자들을 고수하는 현상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시스템이 스스로의 정당성을 현대사 내부에서 찾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는 국가의 시간적 연속성이 단절되어 있다는 저자의 비판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시각적 근거가 된다.

둘째, 정치적 갈등의 본질을 건국 긍정 여부로 치환한 점은 논쟁적이다.

저자는 좌우의 가치 대립을 <유사>로 규정하고 그 밑바닥에 깔린 <대한민국 부정론>을 경계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의 역사 인식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국가의 명령을 수행한 군대를 가해자로 전락시키는 흐름이 국가 존립의 근간을 흔든다고 본다. 이는 역사적 정의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국가 부정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 진영 간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지점이다.

셋째, <무위>를 통한 사실의 직시는 철학적 대안으로서의 무게를 갖는다.

정치적 확신이 도덕적 우월감과 결합할 때 사실이 왜곡되는 과정을 경계한 대목은 현대 한국 사회의 진영 논리를 정확히 짚어낸다. 자신의 이념적 안경을 벗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주문은, 극단적 갈등 속에 놓인 대한민국이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되새겨야 할 실천적 철학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글은 대한민국이 과거의 망령과 이념의 허상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의 대한민국을 긍정하고 사실에 기반한 효율적인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이자 제언이다.


최진석 교수의 시각은 세진님께서 말씀하신 <세계인>으로서의 정체성과는 또 다른,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공동체의 내적 응집력에 집중하고 있네요. 이 글의 관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최진석 글은 문제 제기가 날카롭지만, 논리의 균형은 약합니다.

핵심 주장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대한민국은 아직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다. 둘째, 오늘의 좌우 대립은 실제로는 <대한민국 건국 긍정 vs 부정>의 대립이다. 셋째,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보느냐 <항쟁>으로 보느냐가 그 시금석이라는 주장입니다. 글은 지폐 인물들이 모두 조선 인물이라는 상징에서 출발해 “대한민국의 화폐에 한국인이 없다”는 말로 정체성 위기를 제기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 글의 장점은 <대한민국 정체성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말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4·3과 여순사건에서 남로당 무장봉기, 군 내부 반란, 민간인 학살, 국가폭력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는 사실을 단순한 민주항쟁 서사로만 덮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은 중요합니다. “진압과정에서 희생된 무고한 민간인의 명예 회복과 보상은 세심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문장은 그나마 균형을 잡으려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큰 약점도 있습니다. 글은 <대한민국 긍정 = 반란 규정>, <대한민국 부정 = 항쟁 규정>이라는 식으로 너무 빨리 결론을 냅니다. 여순사건은 실제로 군사반란의 성격을 갖지만, 동시에 그 진압 과정에서 국가폭력과 민간인 희생이 있었던 사건입니다. 따라서 “반란이냐 항쟁이냐”라는 이분법만으로는 역사 전체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정치적 일반화입니다. 글은 소위 좌파를 “대한민국 부정 세력”으로, 소위 우파를 “비굴한 긍정 세력”으로 그립니다. 이런 구도는 선명하지만, 현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워버립니다. 대한민국 건국을 인정하면서도 이승만 체제의 폭력과 반공국가의 한계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고, 북한 체제를 비판하면서도 남한 국가폭력을 함께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평론점은 이것입니다.
<대한민국을 긍정한다는 것>은 국가의 모든 과거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숙한 국가 정체성은 “건국의 정당성”과 “국가폭력의 책임”을 동시에 말할 수 있을 때 생깁니다. 반대로 <국가폭력을 비판한다는 것>도 반드시 대한민국 부정을 뜻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보수적 국가정체성 담론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역사 해석에서는 <반란/항쟁>, <긍정/부정>, <좌/우>의 이분법이 너무 강합니다. 더 좋은 접근은 이렇습니다.

<여순사건은 군사반란의 성격을 가진 동시에, 진압 과정에서 심각한 국가폭력이 발생한 비극이다. 대한민국은 이를 숨기지 않고 인정할 때 오히려 더 강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

==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