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
신명직 (지은이)현실문화200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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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흐트러진 글과 그림'이라는 뜻의 '만문만화'는 오늘날의 신문만평과 유사한 것으로, 1920~30년대의 식민지 조선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는 한국 만문만화 최초의 작가이며 대표적인 작가인 석영 안석주의 만문만화 작품들을 중심으로, 1920~30년대 조선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책에 드러난 식민지 조선의 모습은, 놀랍고도 서글프게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 암울한 식민지의 현실은 물론이거니와, 조혼이나 전근대적인 가족 관계로 인한 이혼이며 결혼 사기 사건, 자살 등이 비일비재하다. 문화주택을 지었던 신식 커플은 은행 대부에 집을 잃고 거미줄에 걸린 파리 신세가 된다. 그 와중에도 체제 현실과 타협하는 데에 성공한 부르주아들은 부와 권력을 과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나날이 더욱 가난해 진다. 만문만화에 적혀있는 예스러운 어투와 표기법들은 유쾌하면서도 당시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목차
책머리에
만문만화가 그려낸 근대의 얼굴
1. 소비 중심의 근대도시 '경성'
남촌과 북촌
근대와 전근대, 혹은 근대의 두 가지 이미지
새로 생긴 공원 - 창경원과 한강인도교
2.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등장
'녀학생'과 모던걸
지식인과 모던보이
모던한 패션과 노출
모던걸의 기생성奇生性
3. 시대의 유행, 유행의 시대
무엇이 유행을 만들었나
영화, 욕망을 만들다
초가집의 유성기와 '딴스'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스포츠
백색과 유선형이 아름답다
눈꼴 틀리는 양키문화
4. 새로운 결혼문화와 가족관계
상품이 된 연애와 결혼
남편과 아내의 역전?
5. 만문만화와 당대의 사람들
서로 맞선 두 계급
다리 짧은 부르주아
계절 속의 계급
순사의 권력
과잉소비의 환수, 은행과 고리대금업
6. 근대를 바라보는 시선
산책자의 시선
골목길을 거니는 산책자
산책자, 네거리로 나서다
아스팔트의 딸, 이단녀
박람회와 백화점의 유혹
제3기 모던걸과 파시즘
식민지의 전쟁과 불경기
맺는말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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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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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만화, 영상 등을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일본 구마모토가쿠엔대학 동아시아학과 교수로서 한국 문학과 영화, 문화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마모토에서 NPO법인 동아시아공생문화센터를 설립해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동아시아 시민들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불가능한 전복에의 꿈』 『모던뽀이, 경성(京城)을 거닐다』 『재일코리안, 3색(色)의 경계를 넘어』 『거멀라마 자이, 꽃을 보며 기다려 다오』 등의 책을 썼습니다.
최근작 : <민족과 국민, 정체성의 재구성>,<거멀라마 자이, 꽃을 보며 기다려 다오>,<재일코리안, 3色의 경계를 넘어> … 총 9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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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진리와 법적 형태들>,<전시로 보는 페미니즘 미술>,<미디어고고학이란 무엇인가?>등 총 165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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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내내 놀란 것이지만 경성이나 서울이나 인간의 욕망은 하나도 변한게 없다.
Ajna 2013-01-0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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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1920-30년대의 경성이었다. 보석반지와 황금팔뚝시계가 난무하며, 사랑의 아이스커피를 마시던 그 곳. 만문만화의 시작 자체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 살아남기의 또 다른 방법이라 생각하니, 정말 소중한 사료로 생각되었다.
花小浪 2014-10-2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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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근대의 자화상
현실문화연구에서 나온 이 책은 일전에 출간된 김진송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와 쌍을 이루는 책이다. 김진송에 책에 크게 실망했던 바, 이 책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른바 '만화만평'들이 상당수 실려있다는 것을 알고는 냉큼 구입했다. 역시, 책의 가치는 저자의 논리 전개보다는 당시의 만화만평을 직접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사실, 저자의 분류나 해설은 특별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때로는 방해가 된다고 편이 맞을 것ㅇ,이고, 지나친 과잉해석으로 읽는 도중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 식민지배기 근대와 전근대가 혼융된 시기의 신문 만화만평들을 보는 일은 경이 그 자체이다. 당시 식민지의 삶 속에서 형성된 '모던'이라는 것과 오늘날 우리의 삶들은 어쩌면 그리도 닮아 있는 것일까!
엉뚱한 이야기이지만, 식민지 근대화론 혹은 남한의 왜곡된 근대화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때, 한국 사회 변혁론의 주류를 이루었던 NL/PD론은 현실인식과 혁명 노선의 차이가 있었을 뿐, 남한사회가 근대화/자본주의화의 과정에서 어떤 의미로든 일탈/왜곡되었다는 점에서는 닮아있었다. 이와는 다르지만, 압축성장을 통한 (정상에서 벗어난) 근대화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된 근대적 '의식'이나 삶의 양식(모두스 베빈디)을 지닐 기회를 박탈했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만평들을 접하면서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식민지라는 일제시대, 그 굴절/왜곡된 환경 속에서 움텄던 근대의식과 근대의 모습은 '식민지'이든, '제국주의 속의 자본주의'든, '압축성장'든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 속에서 배양된 오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해설이 방해가 되었던 이유도 식민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려들기 보다는 이러한 왜곡된 근대화라는 렌즈 속에서 억지로 잡아내려 했기 때문이었다.
왜 당시의 삶과 지금의 삶이 닮아 있는가? 우리의 삶은 결국 '식민지 근대화'의 장기지속이었던가? 우리는 그 미몽에서 여전히 깨고 있니 못한 것인가? 오히려 반대가 아닐까? 우리가 갈망했고 지향했던 정상적인 근대의식, 정상적인(혹은 혁명적인) 근대화라는 이런 이미지가 미몽은 아니었을까? 오히려, 남한 자본주의의 발전을 주변부 자본주의/제국주의 하의 근대화/근대의식라는 또다른 유형으로 마땅히 제대로 분류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근대의 '다양한' 얼굴의 하나로 봤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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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마리 2003-10-16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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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근대를 사는 그들과 우리들
우리 근현대사의 뿌리 깊은 질곡을 선사한 두 사건이라면 36년간의 일제 식민통치와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인한 조국의 분단을 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1900년대 초 조선이라는 나라는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붕괴되었고, 그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한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한 질곡의 시대 속에서도 근대의 유입이라는 세계사적 대세는 우리나라를 그냥 통과하지 않고 많은 변질된 모습으로 찾아왔다. 이러한 식민지조선의 모습을 신명직 씨는 1920~1930년대 만문만화라는 신문속의 새로운 장르를 통해 그려내었다.
과연 식민지라는 상황에서 근대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나는 이 책을 보기 전에 일제의 식민지로서 한국의 모습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듯 싶다. 드라마나 역사 속에서는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고 일본군과 싸우는 열사들의 모습들을 보여주거나 이완용 같이 나라를 배반한 매국노의 모습들이 자주 등장하였다. 물론 일반 백성들은 항상 굶주리며 일본순사와 앞잡이의 눈치를 봐야하는 궁색한 모습이 전부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라는 책 속의 인물들은 그 나름대로 그 시대속에서 잘 살고 있었다. 우리가 독재 정치속에서 불만을 가졌지만 현실에 잘 순응했던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의 삶을 살고 있었다. 특히나 근대를 접하는 그네들은 하나같이 근대문물을 경외하였고, 그것의 소유를 통해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비록 만문만화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그리고 있는 석영 안석주 같은 이들은 근대속에 빨려들어가는 이들에게 비소를 보내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이 책속의 다양한 이야기와 인물들의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그리 동떨어져 있지는 않다. 약 100년의 차이를 훌쩍 뛰어 넘어 우리 곁에 선 그네들이 전혀 낯설지만은 않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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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장미 2003-04-28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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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城을 훔쳐보다 -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를 읽고
京城을 훔쳐보다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를 읽고
많은 사람들은 일제강점기가 한 맺힌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수난의 시대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생활상은 그런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요 몇 년 사이에 개봉한 영화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는 한국의 근대가 본격적으로 꽃피운 시기이며, 서구의 문화를 앞서 받아들였던 ‘모던껄’과 ‘모던뽀이’가 경성을 활보하던 시기였다.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는 만문만화, 즉 한 컷의 만화와 짧은 산문이 결합된 형식의 풍자문학을 통하여 1920년대 후반에서부터 1930년대 초반에 이르는 일제식민지 시대의 우리나라를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에는 주로 석영 안석주의 작품이 등장하는데, 안석주는 풍요로워 보이는 근대의 밝은 모습과 그 이면에 있는 빈곤의 어두움, 그 이중성을 그의 만문만화 속에 잘 담아내었다.
작가는 안석주의 만문만화를 크게 세 개로 분류하여 살펴보고 있다. ‘근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안석주가 식민시대의 경성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를 분석한다. 작가 신명직은 안석주를 ‘골목을 탐색하는 산책자이자 염탐꾼’이라고 묘사하는데, 이는 안석주가 근대 도시 경성을 구석구석 살펴보되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인식하기 때문이다.
‘만문만화 속의 근대주체’에서는 ‘모던껄’이 라디오와 신문을 통해서 세계의 정세를 파악하는 ‘속성 세계인’이 된 과정, 근대가 낳은 여러 신상품에 매혹되는 모습, ‘모던뽀이’가 겪었던 시대적 불황에 의한 경제적 어려움이 서술되어 있다. 특히 그들을 지나간 세대와 가장 차별화시켜준 그들의 패션과 노출도 다루어져 있는데, 노출을 바라보는 근대인의 상반된 두 가지 시선, 즉 전근대적인 비난과 근대적 노출의 일탈성에 대한 놀라움이 큰 대조를 이룬다. 또한 ‘모던껄’이 패션에 집착하는 모습이 현대의 ‘된장녀’ 문화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해서 조금 놀랍기도 했다.
‘경성의 풍경과 당대의 문화’에서는 날카롭게 대립하는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확연한 계급차가 적나라하게 다루어져있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바뀐 여성의 지위와 결혼 속에서의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의 변화도 담겨져 있는데, ‘남편과 아내의 역전’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여성의 권위가 급격히 신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도 최근의 ‘알파걸’ 현상과 어느 정도 유사성을 보여 상당히 흥미로웠다.
일제강점기의 경성 사람의 생활상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있어서 이 책은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다. 특히 만문만화를 그린 안석주가 그 시대의 “모던껄”들과 동시대의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기록이 내부자의 시선을 반영한다는 점에 있어서 이 책은 더욱 소중하다.
다만, 만문만화가 다루는 생활상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전체적으로 책이 산만해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책의 중간 중간에 인용문이 매우 많이 사용되어서 글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고 맥이 자꾸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근대의 모습을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재미있는 풍자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은 드물기에,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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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star 2008-05-0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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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책의 내용과 형식에 조금은 적응이 안됐었다. 내용이 일제시대 힘들어하는 조선의 백성들을 주로 해서 이야기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책의 구성은 그저 평범할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경성의 모던걸과 모던보이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당시에는 TV도 없었기에 뉴스는 물론이고, 비디오 같은 매체로 그 당시를 녹화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 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매체로는 오로지 신문뿐이었다. 그리고 당시 신문 중에서도 가장 쉽고 빠르고 재미있게 알 수 있던 코너가 바로 만문만화였다. 이 책은 그 시대 조선일보에 실렸던 안석영의 만문만화를 예를 들어 그 사회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 만문만화를 통해서 우리는 1920~1930년대의 경성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만문만화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생소한 장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만문만화는 일본의 만화 만문이라는 것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안석영이 처음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시대상황이 시사만화를 허락하지 않자, 30년대의 도시 풍경을 주된 내용으로 다루는 만문만화가 발전한 것이다. 만문만화는 1920~1930년대에 식민지 조선의 신문과 잡지의 주된 장르였다. 만문만화는 추상적인 글과 난잡한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글과 그림을 따로 떼어놓고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림과 글을 붙여놓고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소비중심의 근대도시 경성과 모던걸, 모던보이의 등장, 시대별 유행, 새로운 결혼문화와 가족관계의 변화, 당대 사람들의 모습과 근대를 바라보는 시선 등을 만문 만화를 통해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이 책의 본문은 6장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 장인 근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작가의 시각에서 본 전체적인 경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앞의 다섯 장에서는 경성의 각각의 모습을 주제별로 묶어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 다섯 개의 장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모순과 대립이다. 작가는 그 당시의 경성 전체를 모순과 대립의 한 덩어리로 보고 있다.
당시 경성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해당했다. 그 당시의 모습을 살펴보면 식민지 통치는 이미 자리를 잡았고, 서양 자본주의와 근대 문화가 일본을 거쳐 조선에까지 상륙했다. 근대 도시 경성은 화려한 불빛으로 시골뜨기를 유혹했고, 새로운 문명과 소비문화를 즐기는 모던걸, 모던보이들은 풍요로운 청춘을 노래했다(모던걸, 모던보이는 당시 경성의 젊은이들을 말한다). 그러나 이 불빛의 뒷면은 어두웠고 대공황이나 관동대지진 등으로 경제적 위기가 날로 심화되고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배체제에 따라 근대 문물을 소개하고 활동사진 등을 통해 서구 근대의 모습을 보고 옷을 입는 거나 하는 행동은 근대화할 수 있었으나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인 사회의 빈곤까지는 근대화될 수 없었다. 덕분에 모던보이, 모던걸들이 살던 집은 모던보이, 모던걸들과는 사뭇 다른 허름한 초가집이었다. 전근대와 근대가 섞인 이런 이상한 현상에서 당시 경성의 모순을 볼 수 있다.
근대와 전근대가 함께 존재하는 모순은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경성은 남촌과 북촌으로 나뉘어있었다. 일본이 식민 지배를 시작하면서 만든 소비 중심의 근대도시 경성을 살펴보면 경성은 오늘날 강남과 강북이 나뉘어 있는 것처럼 청계천을 경계로 하여 북촌과 남촌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진고개 중심의 남촌지역 상가에는 근대적 상품과 화려한 건물, 네온사인으로 덮인 근대도시가 형성되었다. 남촌의 화려한 건물들은 모던보이, 모던걸을 유혹했다. 그러나 북촌은 전근대의 잔재가 남아있는 불완전한 근대, 즉 식민지적 근대도시를 형성하게 된다. 경성은 근대와 전근대의 두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경성 자체가 이미 모순적인 도시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강남과 강북을 차별하듯 남촌과 북촌 역시 조금의 차별을 받게 된다.
유행에서도 모순은 드러났다. 앞서 말했듯이 1920~1930년대는 세계적으로 대공황시기였고, 이는 식민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들 근대적인 유행을 좇아 공황임에도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사치스러운 행각을 하는 당시의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을 볼 수 있다. 모던보이들은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사치를 부리고 여자를 꼬시기에 여념이 없었고. 모던걸 또한 남자를 꼬셔서 조금이라도 사치스러운 물건을 사려고 노력하였다. 만문만화에 비춰진 이들은 매우 부정적인 인물이다. 유행은 근대로 나가는 좋은 계기가 되었지만, 실상에 맞지 않는 유행 좇아가기는 오히려 좋지 않다고 저자는 비난한다.
결혼과 연애에서도 이런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널리 퍼져있던 조혼제도는 자유연애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다. 덕분에 신여성들은 제 2의 처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남편과 아내의 위치가 역전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전근대적 가부장제가 지배적이었지만 이제는 그 가부장제가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긴 첫 번째 물음은 왜 교과서는 식민지 시대의 민족 투쟁적 모습만을 비춰줬던 것일까라는 것이었다. 교과서를 통해 나에게 일제시대는 민족의 한, 눈물이요 험난하고 다시는 돌아가기 싫은 시대이었다. 실제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 그리고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일제시대는 우리 민족을 탄압한 식민 당국과 민족주의 열사들 그리고 그들과 대립한 사회주의자들의 역사이다. 1920~1930년대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대부분은 일본이 문화통치를 시작했다느니, 미쓰야 협정 같은 것을 했다느니 하는 대답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1920~1930년대 경성지방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질문을 그들에게 던져본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대부분이 대답을 못할 것이다. 현재 사람들이 배웠던 국사 교과서에는 시대에 따라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적혀 있어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알기가 어렵다.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알고자 노력하는 사람도 그 당시 어땠는지 자세히 알기는 힘들다.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나는 이 단어를 생각하면 상투가 잘린 채 신음하는 불쌍한 선조, 콧수염을 기른 남자들이 총을 들고 일본군과 싸우는 모습, 순사들이 칼을 차고 농민들의 양식을 빼앗아 가는 장면이 생각났었다. 과연 그러한 시대에 모던이란 말이 어울리기나 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 식민지 시대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나는 이 책의 내용들 중에서 특히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에게 주목하고 싶다. 이들은 단순히 패션이나 유행을 좇는 사람들이 아니였다.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지성인들이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지성인들의 그런 행동은 그 시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현대 사람들은 대부분의 모습도 그 당시의 모던보이나 모던걸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만한 돈을 갖추지 못한 나라에서 무분별하게 유행을 좇아 외제상품을 수입하고 착용하고 다닌다. 그 당시를 바라보는 작가는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을 비난의 눈길로 쳐다본다. 이런 것은 1920년대에나 있는 발상인가? 나에겐 현대도 이와는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은 단순히 1920~1930년대 경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1920~1930년대의 모습을 통해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읽기 쉬운 책이었지만 저자는 했던 내용을 계속 반복함으로써 오히려 암기위주의 교과서에 가깝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어휘들과는 사뭇 다른 옛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이해가 가지 않는 단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참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1920~1930년대 경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 당시의 역사나 문화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흥미진진한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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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crimosa 2006-04-2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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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주체의 경성 생활, 그리고 풍자>
<근대 주체의 경성 생활, 그리고 풍자>
- 신명직, 「모던뽀이, 京城을 거닐다」 (현실문화연구, 2003) p347, \15,000
1920년쯔음, 조선에는 근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는 모던-보이, 모던-껄 들을 낳았고, 그들은 영화, 카페, 유행, 백화점 등 새로운 문화에 정처없이 흔들리었으며, 과도기적 가치혼란에 시름하였다. 조선시대와는 다르고, 현대와는 또 다른, 이 시기 경성의 생활상을 당대의 지식인인 고 안석영 씨는 ‘만문만화’ 라는, 생소한 장르를 통해 거칠지만 은은하게 풍자해 낸다. 이를 통해 그 시기의 삶을 엿볼 수 있으며, 이 책의 저자인 신명직 씨의 해석을 통해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책은 안석주 씨의 만문만화를 모아 엮은 것으로, 그가 만문만화라는 새로운 이름을 단 만화를 그리게 된 배경은, 시대상황에서 말미암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만문만화란, ‘흐트러진 글과 난삽한 그림’ 이란 뜻으로, 익히 알고 있는 만화와는 말풍선의 유무가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는 ‘만문’이라는 형식이 말풍선 보다는, 아무래도 덜 직접적이고, 덜 풍자적인 문체를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제의 검열과 사상 탄압이 기승을 떨치던 당시, 탄압을 피하기 위한 좀 더 은유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이었다.
만문만화는 모던걸과 모던보이에 대한 모순과 대립으로 일관되어 있다.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모두 부유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모던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고, 이것은 필요이상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게 하였다. ‘의’ ‘식’ ‘주’ 중 ‘의’ 하나를 위해 ‘식’ ‘주’ 를 포기하는 일도 빈번했다. 그들은 보다 개방적이 되어 갔고, 보다 세상에 무신경 해 지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가치관은 무너져 가고, 영화, 카페, 딴스, 유행, 백화점… 등에만 관심을 쏟았다. 돈, 돈, 돈이 필요했다. 모던걸들은 돈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돈 있는 사람에게 시집가려 했다. 첩살이도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돈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룸펜과 실업자, 백수만 넘쳐났다. 결국 이는 절대적 수요의 부족을 불러왔고, 작가는 이를 ‘난쟁이가 쓴 큰 갓’ 이라는 표현으로 희화화 하였다.
이 책은 ‘만문만화 속의 근대주체’ ‘경성의 생활모습’ 이란 두가지 분야에 대해 묘사 하고 있다. 근대주체란, 모던걸, 모던보이를 더불어, 프로레타리아, 브루주아, 백수, 순사, 고리대금업자 등을 말하였고, 경성의 생활모습에는, 사람들의 패-숀과 문화, 그리고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남촌,북촌간의 격차에 대해 설명하였다. 또한 엄동설한에도, 거처하는 곳의 벽마다 벽지가 뜯어지고, 밑에서 구더기가 나와도 얼굴에 분 바르고 개털 목도리라도 두르고 길로 나오면 첨단 여성 대우를 받는, 가치관의 뒤바뀜을 풍자하였다.
이 책은 일견, 현대 우리 삶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백화점, 유행, 자유연예, 영화와 대중음악, 야외놀이 등, 지금의 우리 삶과도 매우 유사하다. 이 글의 부제목인, ‘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 과 같이, 근대의 생활을 엿볼 수 있지만, 현대의 삶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아 섬뜩하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 각인된 근대성만을 잡아내어 비판함으로써, 앞으로 근대의 생활상을 돌아봄에 있어 한 겹의 색안경을 부여하는 게 아닌가 한다. 또, 작은 생활상들을 엮어 놓은 만문만화를 설명하려 하다 보니, 이를 한 권의 책 속에 묶는 과정에서 전체를 덮어줄 무언가가 부족하여, 글을 읽음에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글에서 주목할 점은 식민통치하의 시대를 묘사함에도 불구하고 억압받는 삶에 대한 묘사는 극도로 적다는 점에서, ‘식민지 현실’을 묘사함이 아니라, ‘식민지 현실 하의 근대화’에 대해 묘사하고자 하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글은 궁극적으로, 시대와 가치관이 급격하게 변하고, 모든 생활방식이 하루아침에 뒤집혀 버린 세상,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어둠속, 나라가 없어졌어도 개인의 삶은 계속된다는, 사뭇 교훈적이면서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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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ren_k 2006-11-0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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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에 만문만화로 살펴본 근대 조선의 생활상
만문만화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생소한 장르다. 만문만화는 1920~1930년대에 식민지 조선의 신문과 잡지의 주된 장르였다. 이 장르를 통해 작가는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만문만화는 추상적인 글과 난잡한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글과 그림을 따로 떼어놓고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림과 글을 붙여놓고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새로운 개념의 텍스트이다.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란 책은 만문만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만문만화를 통해 1920~1930년대의 경성의 생활상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은 소비중심의 근대도시 경성과 ‘모던껄’, ‘모던뽀이’의 등장, 시대별 유행, 새로운 결혼문화와 가족관계의 변화, 당대 사람들의 모습과 근대를 바라보는 시선 등을 꼼꼼히 전하고 있다.
이 책의 본문은 6장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 장인 근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작가의 시각에서 본 전체적인 경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앞의 다섯 장에서는 경성의 각각의 모습을 주제별로 묶어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 다섯 개의 장에는 하나로 뭉뚱그릴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모순과 대립이 그것이다. 작가는 그 당시의 경성 전체를 모순과 대립의 한 덩어리로 보고 있다.
당시 경성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해당한다. 일본의 식민지배체제에 따라 근대 문물을 소개하고 활동사진 등을 통해 서구 근대의 모습을 보고 옷을 입는 거나 하는 행동은 근대화할 수 있었으나,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인 사회의 빈곤까지는 근대화할 수 없었다. 덕분에 ‘모던뽀이’, ‘모던껄’들이 살던 집은 ‘모던뽀이’, ‘모던껄’들과는 사뭇 다른 허름한 초가집이었다. 전근대와 근대가 섞인 이런 이상한 현상에서 당시 경성의 모순을 볼 수 있다.
근대와 전근대가 함께 존재하는 모순은 ‘모던뽀이’와 ‘모던껄’들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경성은 남촌과 북촌으로 나뉘어있었다. 남촌은 근대적인 도시였고, 북촌은 전근대적인 도시였다. 경성 자체가 이미 모순적인 도시였던 것이다.
유행에서도 모순은 드러난다. 앞서 말했듯이 1920~1930년대는 세계적으로 대공황시기였고, 이는 식민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들 근대적인 유행을 좇아 공황임에도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사치스러운 행각을 하는 당시의 ‘모던껄’들과 ‘모던뽀이’들을 볼 수 있다. 유행은 근대로 나가는 좋은 계기가 되었지만, 실상에 맞지 않는 ‘유행 좇아가기’는 오히려 좋지 않다고 작가는 비난한다.
결혼과 연애에서도 이런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널리 퍼져있던 조혼제도는 자유연애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다. 덕분에 신여성들은 ‘제 2의 처’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남편과 아내의 위치가 역전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전근대적 가부장제가 지배적이었지만 이제는 그 가부장제가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던뽀이’나 ‘모던껄’들만이 아닌 무산계급 등의 생활상 역시 이 책에서는 간과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무산계급은 항상 돈과 연관지어 유산계급과 대립되는 상태로 나타난다.
이 내용들 중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모던뽀이’와 ‘모던껄’들에게 있다. 이들은 단순히 패션이나 유행을 좇는 사람들이 아니다.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인텔리 계층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시 우리나라의 인텔리 계층의 그런 행동은 비단 그 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현대 사람들은 대부분이 고등교육을 받은 인텔리라면 인텔리인 사람들이다. 그들의 모습도 그 당시의 ‘모던뽀이’나 ‘모던껄’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만한 돈을 갖추지 못한 나라에서 무분별하게 유행을 좇아 외제상품을 수입하고 착용하고 다닌다. 그 당시를 바라보는 작가는 ‘모던뽀이’와 ‘모던껄’들을 비난의 눈길로 쳐다본다. 이런 것은 1920년대에나 있는 발상인가? 현대도 이와는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은 단순히 1920~1930년대 경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1920~1930년대의 모습을 통해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옛날 얘기라고 생각하기에는 깊고, 깊게 생각하기에는 조금은 얕은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만문만화의 해설을 주로 하고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1920~1930년대의 모습을 만문만화의 해설에 의존하게끔 하는 경향이 있다. 만문만화는 비판적인 시각을 취하는 반면,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오히려 비판 없이 그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어휘들과는 사뭇 다른 옛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이해가 가지 않는 단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녀성 푸로파간다- 시대가 오면」이라는 말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말에 대한 설명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1920~1930년대 경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 많이 없다는 점에서 그 당시의 역사나 문화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좋은 도우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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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디링딩딩 2006-11-0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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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시절에 살았다면...
전 리뷰를 길게 쓰는 편이 아니라 짧게 씁니다.
평소 근대사회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 시대를 살았던 지성인들 즉, 시대를 앞서 갔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 때 만난것이 바로 이책이었다. 대부분의 책들이 근대의 역사나 사회적인 실상에 대해 다뤘던 반면 이책은 그 시절 그때의 유행의 선도주자 모던인들에 대해 다루고 있어 생생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이 시대를 다룬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르듯, 의미있는 책이었다.
만약에 내가 이시대에 태어나 근대교육을 받은 신여성이라면 나는 어떤길을 택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좋은 직장을 잡자니 친일파가 되는것 같고, 그렇다고 독립운동을 하자니... 용기가 안나고,,,, 돈이 있어야 모던걸이 될 수 있는데,,, 돈도 없고........... 참 비참한 현실이었을 거다. 분명한 것은 무엇을 택해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란 정말 어려웠을 시기였을 것이다........
이 책은 경성에 살았던 우리들의 젊은이들이 가졌던 유행,고민, 연애에 대해 풀어내고 있다. 오래간만에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마음이 풍족해진다. 책을 보면서 나와 대입시켜 읽는것도 책내용을 이해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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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o 2006-10-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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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근대화와 기반 없는 모던의 추종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
비뚤어진 근대화와 기반 없는 모던의 추종
1920~30년대에 자본주의 쇼윈도는 모던걸․모던보이들이 끊임없이 소비하도록 유혹했지만, 식민지 조선의 소비자는 그 유혹에 화답하기 힘들었다. 경성에는 그만큼의 수요욕구를 감당할 자본기반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선 사람들은 ‘모던함’을 계속 추구했고 이는 외형적 화려함에 가려지지 않는 병폐를 낳았다.
이 책은 석영 안석주의 만문만화를 통해 당시 조선의 불안정한 모습을 살피고 있다. 만문만화란 글자 그대로는 흐트러진 글과 난잡한 그림을 뜻한다. 말풍선으로 인물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일반 만화와는 달리, 만문만화는 풍자적이고 우회적인 말투의 서술문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일제의 검열과 사상 탄압을 피하면서 당대 상황을 나타내고자 했기에 만문만화라는 장르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산책자’로서 근대도시 경성의 이곳저곳을 훑어보는 안석영의 시선은 주로 비판적이고 냉소적이다. 소비에 비해 생산이 절대적으로 빈약한 도시 경성은 그 기형성으로 인해 새로운 수요창출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성의 모던걸․모던보이들은 백화점에서 치장을 하고 카페에 앉아 ‘다이스키’를 연발하면서 커피를 마시고, 왈츠를 추는 것을 즐겼다. 안석영은 이러한 경성 도심에서 근대적 인간들과 그들의 타락한 공간을 발견한다.
이러한 기반이 없는 수요와 모던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은 ‘핸드걸’이나 ‘스틱걸’같은 비윤리적인 사회현상을 낳았다. 모던걸은 겉으로는 값비싼 구두와 장신구로 치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가난에 희생되어 거리에 몸을 팔러 나가는 인텔리여성이었던 것이다. ‘나는 문화주택만 지여주는 이면 일흔살도 괜찬어요.’라고 외치는 모던걸의 모습도, 무산계급과 유산계급간의 갈등의 심화도 미성숙한 근대화와 불안정한 기반에서의 수요로부터 파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사실을 비틀거나 과장해 보여주는 그림을 통해 표현했다. 예를 들어 안석영의 만문만화에서 부르주아의 모습은 보통 짧은 다리를 가진 정삼각형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부유함과 안정된 모습을 뜻한다. 늘씬한 모던걸의 모습은 텅 빈 머리로 유행과 사치만을 추구한다는 해석에 이를 때 짧은 다리에 비대한 모습으로 희화화된다. 가냘픈 몸매에 화장을 한 모던보이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고급 양장을 입고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나오는 모던걸의 모습과 기름때 묻은 월부 양복에 고급 넥타이를 맨 모던뽀이의 모습은 사치스런 양태와 초라한 식민지 조선 현실 사이의 괴리를 잘 설명한다.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는 상징적인 그림과 글의 인용을 통해 당대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잘 표현했다. 각 만화가 신문에 연재되었던 덕분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파악하기에도 용이했고, 지은이의 해석과 설명은 자칫 지나칠 수 있었던 부분들까지 살펴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만문만화를 인용할 때 당시의 문법과 어투를 그대로 사용하여 쉽게 이해할 수 없었고, 전체적인 주제와 관련되는 내용이라고 해도, 장을 넘나들어 반복되는 부분이 많았다는 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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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kobo 2007-04-2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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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를 읽고!
우리는 일제시대에 대하여 막연히 우리의 주권을 빼앗기고 식민통치를 받았다는 부정적인 인식만을 가지고 그 당시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편견의 시각을 가진다면 오히려 예전의 잘못을 되풀이 할 수 있는 오류를 다시 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검토하고 그것을 통해 얻은 교훈이나 깨달은 점을 현재에 적용함으로써 바른 길로 가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역사적 사실에 대해 자세히 고찰해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식민지시대에 조상들이 살았던 일상모습과 문화를 만평이나 신문자료를 통해 알아본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라는 책은 의의가 있다.
요즘은 1~2년만 나이가 차이나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 할 만큼 문화나 태도가 빨리 변하는 사회이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 세대 간에 세대 차이가 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가 식민지시대의 증조할아버지, 할머니세대의 일상이나 문화를 알 수 있다는 것은 무리이다. 대부분 그 당시의 사람들은 농사나 짓고 한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기 마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문만화 등의 사료를 통해 그 시대 일상을 알아본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책 속의 증조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런 일상을 살지 않았다. 경성에 국한된 면이 없지 않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의 비슷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일제를 통해 외국의 문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들어오면서 오히려 지금보다 더 심한 문화충격을 받고 변화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진보적 성향을 띠는 젊은 층에서 더 활발하게 나타났다. 경성은 여러 가지 신기한 물건들로 소비도시의 성격을 더 확실히 해갔고,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은 새로운 문화들을 적극 수용하고 유행, 패션 등에 신경을 많이 쓰고 개방적이 되가는 성격을 띠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식민지시대의 변화하는 일상을 그 당시의 가장 영향력이 컸던 매체인 신문을 통해 알리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만문만화라는 한 가지 사료에만 너무 의존하고 있다. 물론, 책 제목자체도 만문만화를 통해 보는 근대의 얼굴이라고 전제를 하고 있지만 너무 한 가지 사료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만문만화를 지은 작가도 소수에 의존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작가의 주관적 성향이 너무 많이 들어가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을 고찰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급격한 근대화에 대해 그리고 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젊은 그 당시 젊은 층들에 대해 약간의 비판적 인식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책의 짜임새가 너무 복잡하다. 만문만화의 크기가 크다 보니 그 내용을 설명하는 곳에 적절하게 배치하기가 어려웠을 점은 알겠지만, 그 위치가 너무 복잡하다 보니 글을 읽으면서 그에 적절한 만문만화를 찾아보려면 자꾸 책을 뒤적이는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만문만화에 포함된 글씨는 너무 작고 빽빽해 그 글은 잘 읽지 않게 된다. 그리고 식민지시대의 일상을 너무 서울지역에 대해서만 다룬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이 우리나라의 중심이고 일상을 가장 대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그 당시의 서울과 지방의 조건 차이는 매우 크기 때문에 일상도 차이가 많이 났을 것이다. 그래서 서울을 중심으로 소개하되 지방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도 곁들여 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아쉬운 점들을 내 기준에서 나름 짚어보았지만, 확실히 이 책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그 당시의 일상, 문화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으면 근대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던 식민지시대의 일상, 문화를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짚은 여러 문제점들이 이 책의 전제와는 약간 다른 면이 있지만 보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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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대그놈 2007-05-0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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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 경성의 거리를 스케치하다.
식민지 시대, 경성의 거리를 스케치하다.
-<모던 뽀이, 경성을 거닐다>를 읽고
이 책은 우리나라 근대의 모습을 되짚어보고 있었는데, 만문만화라는 독특한 소재를 활용하고 있었다. 역사의 모습을 신문도, 글도, 라디오 방송도 아닌 신문 한 귀퉁이에 연재되던 만화에서 찾고 있다니. 만문만화라는 장르는 나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하였고 근현대사 공부를 게을리 하고 기피하였던 나로 하여금 이 책을 거리낌 없이 집어 들게 하였다.
이 책의 주된 줄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물론 만문만화였다. 만문만화란 글과 그림이 혼합된 장르로서, 말풍선으로 상황을 직접 제시하던 일반 만화와 달리 풍자적이고 희화화된 그림으로 상황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그에 대한 서술문을 옆에 나란히 기재하였다. 주로 다뤘던 내용들은 그 당시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로, 식민지 조선에 마구 밀려들어왔던 서구의 근대 문물들이나 사상에 대한 풍자나 비판, 당시 조선을 활보하던 모던 껄과 모던 뽀이들의 모습 등이 담겨있었다. 그 글과 그림을 보면서 당시 조선을 바라보던 작가의 시선을 찬찬히 찾아낼 수 있었다.
당시 조선은 매우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었다. 경성이라는 한 도시 안에서 남촌과 북촌, 즉 일본인이 살고 있던 부자촌과 조선인이 살고 있던 극빈촌이 공존하고 있었다. 서구 신문물을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모던 껄들과 모던 뽀이들이 살고 있었던 반면, 그것들을 아직은 받아들이지 못한, 혹은 거부하고 저항 했던 구시대 여성들과 일명 도포짜리들도 살고 있었다. 자유연애에 빠져 유부남인데도 불구하고 나이 어린 여성과 연애를 하는 일이 벌어지는가하면, 자신의 정조와 새로운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 자살을 택하는 사람도 발생하였다. 물밀듯이 들어오는 새로운 가치관을 수용하기에는 그 당시 조선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격동의 시기를 만문만화는 '너무 냉철하게만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판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다. 특히나 경제적 능력이 따라 주지 않았던 가난한 시기에, 백화점 쇼윈도나 영화 등의 매체를 접하면서 신문물을 맹목적으로 따라하던 모던 껄이나 모던 뽀이들에게 보내는 시선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더러는 구시대와 신시대의 만남으로 벌어진 재미있는 일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익살스럽게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림에 나타나는 자유로운 필체와 그 상황을 재치 있게 묘사하는 작가의 위트는 책을 보는 내내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말주머니도 없이 오직 한 컷만으로 모든 것을 전달해야했던 만문만화의 특성상 표현의 한계가 있을 것만 같았는데, 오히려 자잘한 사건의 전개를 과감하게 잘라버리는 간결함은 독자에게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할 만큼의 강렬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나로 하여금 중세 시대의 성화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문맹이 많았던 중세 시대에 성화는 성서의 한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성서를 읽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성서의 내용과 교훈을 전달하였는데, 이는 성서라는 글로 된 매체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내용들을 널리 알려주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 그림 한 컷은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위력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또 그림 옆에 있던 글들에서 나타났던 당시 조선의 말씨(예를 들어 ‘마이 쁠류-히븐’, ‘안녕하섯습닛가?’,‘긔생의 엽헤는 가지 안키로!’ 등등)는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자꾸 보다보니 익숙해졌고, 또 곱씹어 보면서 무슨 말인지 알아 맞춰보는 묘미가 있었다.
사실, 만문만화에서 나타나는 그 당시의 모습은 작가의 눈이라는 필터로 한 번 걸러진 것들이라 과연 ‘이것이 경성의 모습이다.’라고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지, 의심의 여지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편견을 배제하고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읽다보니, 혼란스러웠을 당시의 상황 속에서 작가의 ‘만문만화’가 철없는 모던 뽀이들에게 따끔한 회초리 역할을, 또 그 시대를 올바르게 가도록 받쳐주는 버팀목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20년대의 그들과 현재의 우리.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너무나 닮은 모습이 많다는 생각을 하였다. 가령 유행에 민감했던 당시의 학생들의 모습은 지금과 다를 바 없었고 ‘따이아몬드’를 좋아하고 여우 목도리 같은 모피를 두르고 다니던 모던 껄들의 모습은 지금의 ‘된장녀’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특히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 간의 갈등과 같은 문제는 그 당시부터 뿌리 깊게 박혀서 지금까지 그대로 내려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 아픈 것이었다. 그 당시의 부조리나 잘못들이 단지 현재의 모습과 우연의 일치로 닮은꼴인 걸까? 역사의 모습이 자꾸 되풀이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제의 탄압을 받았던 식민지 조선, 우리나라의 근대 모습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탄압으로 인해 많은 것이 자유롭지 못했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만화 한 컷에 담아 막힘없이 펼쳤던 작가. 그 작가의 작가정신은 미술을 전공하는 나에게 많은 귀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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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쑤 2007-11-1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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