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5

이성우 - 훌륭한 일본인 나가이 타카시(永井隆)

(1) 이성우 - 일본어 공부하면서 알게 된 훌륭한 일본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가이 타카시(永井隆)란 분이다. 이 분의... |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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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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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공부하면서 알게 된 훌륭한 일본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가이 타카시(永井隆)란 분이다.
이 분의 삶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이태석 신부님과 많은 면에서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 다 의사로서 자기 몸을 던져가며 사회적으로 그늘 진 곳에서 고통 받는 환자들을 혼신의 힘으로 돌보신 훌륭한 분이다. 그리고 이 두 인물의 따뜻한 인류애와 초인적인 자기희생의 밑바탕에 그리스도의 박애주의가 자리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공통점이라 하겠다.
나가이 타카시는 1908년 시네마 현에서 태어났다. 삯바느질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이태석 신부와 달리 타카시는 유복한 의사 집안에서 자랐다. 어릴 때 수재였던 타카시는 일본에서 제일가는 도쿄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나가사키 의대에 입학했다. 이 선택으로 인해 타카시는 17년 뒤 원자폭탄이라는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타카시가 의대를 졸업할 무렵 일본은 중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타카시는 군 복무를 위해 군의관으로 전쟁터에 배치되었다.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타카시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치열한 성찰 끝에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다. 의사로서 타카시는 국경을 초월한 박애주의를 실천하였다. 일본 병사 외에 중국 병사의 병을 고쳐준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중국인들이 타카시를 찾아 왔는데, 타카시는 1939년 한 해에만 4천 명의 중국인을 치료해주었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그리고 3일 뒤에는 타카시가 있는 히로시마에도 터뜨렸다. 공교롭게도 원래 미국이 두 번째 원자폭탄 투하 대상으로 삼았던 도시는 히로시마가 아닌 큐슈의 고쿠라였다. 그런데 당일 이곳의 하늘은 히로시마 원폭으로 인한 연기 때문에 시야가 흐렸다. 그래서 미군 폭격기가 나가사키로 향했던 것이다.
폭탄은 하필 타카시의 집 근처에 떨어졌다. 그 날 집에는 타카시의 아내 미도리 뿐이었다. 집에서 먼 곳에 있는 대학에서 타카시는 엄청나게 밝은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소리와 강한 바람으로 대학 병원은 눈 깜짝할 사이에 무너져 버렸다. 타카시는 무너진 건물에 깔려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간신히 연구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때 자신의 눈에 들어온 풍경을 타카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주변에 건물이 없다!
마을도 없다!
초록색의 산이 적갈색으로 되어있다!
낮인데 밖은 깜깜하고 휙휙 하고 바람이 불고 있고 망가진 여러 물건이 공중을 날고 있다.
지면을 보니 많은 사람이 쓰러져 있고, 그 대부분이 죽어 있다. <<
머리에서 피를 흘리면서 타카시는 살아남은 사람들과 부상자들을 돌봤다. 원자폭탄의 위력이 얼마나 끔찍했던지 사람들이 입은 부상이나 화상의 정도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심한 것이었다. 온 마을이 불바다가 되고 불은 점점 퍼져가고 있었다. 그것은 현세에 펼쳐진 지옥도였다.
원자폭탄이 터진 해에 타카시는 백혈병 선고를 받았다. 지금 이 병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불치병으로 타카시는 3년 밖에 못 살 것으로 진단 받았다. 백혈병에 머리에 큰 상처를 입은 상태였지만 타카시는 쉬지 않고 사람들을 도왔다. 몇 번이나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나서 사람들을 도왔다. 주변사람이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해도 한사코 듣지 않았다.
사흘 후 타카시는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 갈수 있었다. 그러나 집은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집안에 들어서서 부엌에서 그가 본 것은...
>> 그것에 닿자, 아직 조금 따뜻했다.
그것을 주웠다. 아아, 너무나 가볍다.
하지만 그것은 부서져 버렸다
뼈에 붙어 있던 묵주만이 손에 남았다. <<
(나가이 다카시 [없어지지 않는 것을] 에서 인용)
하지만 타카시는 아내가 죽은 것을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많은 환자와 부상자가 타카시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타카시는 마을에서 마을로 며칠이나 걸어 다니며 환자와 부상자를 도와주었다.
1945년 8월 15일 전쟁은 끝났다. 평화가 돌아 왔으나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는 많은 사람이 원자 폭탄의 후유증으로 힘들어했다. 타카시도 원폭 후유증에 걸렸지만 그런 몸으로도 계속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타카시의 몸 상태가 안 좋았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그가 대학 근처에 사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타카시는 자신의 집이 있는 우라가미에서 계속 살았다. 우라가미에 머물면서 원자 폭탄이 떨어진 후 우라가미 마을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고 싶었고, 그리고 마을이랑 교회를 전쟁전과 똑같이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타카시는 자신이 다니던 교회의 신자들과 힘을 합쳐 폭격으로 망가진 종을 고쳐 달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 종소리가 온 마을에 들렸을 때 타카시와 마을 사람들은 얼마나 감개무량했을까? 그 각별한 소회를 담아 타카시는 [나가사키의 종]이라는 책을 지었다. 이 책은 많은 사람에게 읽혔고 노래와 연극과 영화로도 만들어져 온 일본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계속해서 타카시는 원자폭탄에 대한 책을 써서 평화의 중요함을 계속 전했다. 책 속에는 자식들과 자신의 생활도 쓰여 있었다. 엄마가 없는 마코토와 가야노를 타카시는 언제나 가엽게 여기고 있었다.
>> 반쯤 자고 있는데 어느 틈엔가 놀다가 온 가야노가 차가운 볼을 나의 얼굴에 대고, 잠시 있더니 “아아… 아빠 냄새!”라고 말했다. 이 아이를 남기고… 이 세상을 결국 나는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
(나가이 다카시 [없어지지 않는 것을]에서 – 인용)
타카시는 책 쓰는 일로 많은 돈을 받았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병에 걸린 사람들과 부모가 죽은 아이들을 위해서 사용하거나 새로운 교회를 짓는 일, 그리고 원자폭탄으로 인해 타버린 마을에 나무를 심는 일에 사용했다.
병든 몸으로 그렇게 많은 훌륭한 일을 한 타카시는 1951년 5월 1일에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는 약 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와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우라카미 텐슈도우의 종(나가사키의 종)이 온 마을에 울려 퍼졌다.
우라카미에는 타카시 기념관과 함께 그가 살던 집 [뇨고도우]가 있다. 이 집은 교회 신자들이 타카시를 위해 지어 준 것이다. 작은 방이 하나 뿐인 소박한 집이다. 타카시는 이 집에 ‘뇨고도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성경 구절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세상에 마태복음의 이 계명 대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지만, 타카시의 삶은 충분히 그러했다.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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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사일본어사에서 발간한 일본어 학습 교재의 내용을 제 나름의 문체로 요약해서 옮긴 것입니다. 한글판 해석본을 참조한 것이니 제 일본어 실력에 대한 오해는 하지 않으시길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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