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3

식민지의 회색지대 | 윤해동 | 알라딘

식민지의 회색지대 | 윤해동 | 알라딘
소득공제
식민지의 회색지대
윤해동 (지은이)역사비평사2003-02-15




책소개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갖고 있던 식민지 인식에 대한 전환을 제기하고 있는 문제작이다.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부 '탈근대와 탈식민'에서는 지배와 저항이라는 이항대립적 도식에 의해 구성되어 있는 한국 근대사상을 비판한다. 
2부 '한국 민족주의의 근대성 비판'은 원초론 또는 객관주의적 민족이론과 도구론, 주관주의적 민족이론이라는 분류방식을 중심으로 한 한국 근대민족주의의 특성을 비판한다.

제3부 '한국 근대민족주의 재인식'은 한국근대 민족주의의 안과 밖의 문제, 즉 근대민족주의는 안=운동, 밖=구조로 작용하는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추구하고 있으며, 제4부에 실린 인터뷰에서는 앞으로 저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메타-역사학적 문제의식에 대한 논의를 들려준다. 책을 관통하고 있는 전체적인 문제의식을 확인하려면 4부부터 읽는 것도 한 방법이다.


목차


제1부 탈근대와 탈식민

제2부 한국 근대민족주의 비판

제3부 한국 근대민족주의 재인식

제4부 인터뷰 - 한국 근대민족주의 비판과 탈식민의 논리



저자 및 역자소개
윤해동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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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 현재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이다. 한국사와 동아시아사를 대상으로 한 저작으로 『식민지의 회색지대』(역사비평사, 2003), 『지배와 자치』(역사비평사, 2006), 『植民地がつくった近代』(三元社, 2017), 『동아시아사로 가는 길』(책과함께, 2018), 『식민국가와 대칭국가』(소명출판, 2022) 등이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평화와 생태를 중심으로 한 융합인문학 연구이다.

최근작 : <[큰글자책] 식민국가와 대칭국가>,<식민지의 사립전문학교, 한국대학의 또 하나의 기원>,<식민국가와 대칭국가> … 총 31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역사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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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역사비평 154호>,<임헌영의 미국문학기행>,<한국 기술노동의 사회사>등 총 298종
대표분야 : 역사 12위 (브랜드 지수 355,92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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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인식의 패러다임을 바꾼 책이다. ˝모든 근대는 식민지 근대˝라는 이 책의 명제는 오늘 우리 현실의 식민지적 현실과 잘 맞아떨어진다.
다솔 2017-05-14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서평]식민지의 회색지대

서평쓰기 과제에 쓸 책을 고르다가 추천 책중에서 회색지대란 단어가 눈에 띄어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회색이란 단어를 식민지와 연관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의 회색은 어떤의미일까 궁금하여 이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한국의 민족주의를 근대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탈식민-탈근대의 관점에서 근대민족주의를 비판한다. 민족주의는 식민주의 비판 기능을 해왔지만, 식민주의와 동일한 인식을 공유했고, 식민주의를 비판하는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근대의 민족주의와 식민주의가 공유한 것은 바로 ‘근대성’이다. 식민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비판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근대성 비판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식민지 경험은 한국 민족주의의 가장 강렬한 뿌리다. 다른 민족의 지배를 벗어나 같은 민족으로써 나라를 이루려는 주의가 민족주의의 사전적 의미라면, 식민지 경험은 다른 민족의 지배였으며, 그리고 같은 민족으로써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한 주범이었다. 따라서 민족주의를 부정하든 긍정하든 식민지 경험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민족주의를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1부, ‘탈근대와 탈식민’은 이러한 식민지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 식민지 시대의 공공성과 규율권력, 친일파 청산, 동아시아 역사논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식민지 시대를 수탈-저항, 혹은 민족내에서 저항-협력의 이분법으로 인식하는 데 익숙하다. 이것은 사실 오늘날의 민족주의적이고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일 뿐, 한 사회를 설명하는데 적절한 논리는 아닐 것이다. 식민지 시대가 이러한 이분법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라면, 이분법 사이에 존재했던 지대-회색지대에 대한 주목은 일제하 사회상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식민통치는 곧 정치의 영역이 일제의 지배 하에 있음을 뜻한다. 저자는 민족주의라는 잣대만으로 저항의 개념을 정의할 때 그것이 부당하게 좁혀진다고 주장한다. 반면 친일이라는 개념은 민족주의적 발상에서 시작하였기에, 매우 애매하고 감정적이며 불분명하다고 이야기한다. 저항과 친일의 이분법에서, 제국주의의 지배에 속하는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공적영역에서 벗어난, ‘반체제 운동’만이 순수한 저항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친일은 어떠한가? 체제 내에서 일상생활의 향상을 기대했다면, 체제 내로 들어온 민중은 어느 정도 일제 지배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상적 협력과 일상적 저항이 교차하는 대다수 민중의 생활, 그것이 바로 회색지대인 것이다.

이러한 광범위한 회색지대는 일제잔재 청산에 문제를 복잡하게 한다. 특히 그것이 ‘친일파 청산’이라는 문제로 집중될 때, 논란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제말기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20만 이상의 한국인이 참전했고, 그 외에도 다수의 한국인들이 전쟁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친일의 혐의나 전쟁범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일제잔재 청산의 순서를 체제민주화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과 한국의 내부체제 청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식민잔재 청산에 있어서 국가 대 국가의 문제만을 강조할 뿐, 내부체제에 대해서는 문제제기 해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 청산되지 않은 식민주의는 오늘날의 역사논쟁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의 우익교과서 검정 통과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이를 일본 제국주의지배에 대한 역사적 콤플렉스를 바로 민족주의로 규정하는 경향으로 보며, ‘무의식의 식민화’라 지칭한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언제나 일본이라는 거울에 비춰보아야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최근의 독도 영유권 문제를 보더라도, 일본은 한국 민족주의의 거울임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제 거울을 깨고 탈식민의 과정을 통해 근대화를 넘어설 것을 주장한다.

해방 후의 민족주의는 반공주의를 통해 국가주의적 성격을 강화하게 된다. 반체제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는 분단을 넘어서려 했지만, 기본적으로 냉전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와 같이 한다. '오늘날에는 이 민족주의가 국가주도의 민족주의가 되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는 체제화된 우파 민족주의를 사이비 민족주의로 배제해왔고, 오늘날엔 우파 민족주의를 국가주의로 호명하여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두 민족주의는 모두 원초론적 민족주의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너무나 폐쇄적인, 민족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폐쇠적인 민족주의의 대안은 열린 민족주의인가? 저자는 민족국가가 상대화될 때, 이미 그 민족주의로서의 생명력은 다한 것이 아닐까라고 묻고 있다. 상대적 강도가 다를 뿐, 나머진 민족주의의 근본적 특성이다.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항상 그 대안이 있다. 민족국가로 이루어진 지금의 세계에서, 그리고 강대국 중심의 상황에서, 민족주의를 대신할 무기는 존재하는가? 아직까지는 답을 내놓기 쉽지 않다. 다만, 민족주의가 답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것이 현재의 수준에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근대민족주의는 근대성을 넘어설 수 없고, 근대성을 비판하는 무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대안을 요구하는 질문은 수정되어야 한다. 언젠가는 근대의 문제가 극복되고 탈근대가 오리라는 기대도 결국 근대의 진보한 인식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근대에 대해서, 우리는 이제 막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언젠가는 비판을 넘어서 대안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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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아 2006-04-2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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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과 반일 이분법을 탈피하는 새로운 성찰



우리 민족에겐 유독 “줄서기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다.

친일,협력 – 반일 저항 의 중가지대, 회색지대, 점이지대에 서서 양자 중 어느 하나에 줄을 서야 할 것인가를 평생을 두고 적극적으로 소극적으로 저울질하고 선택의 기로에 섰던 기억들.




해방 이후, 6.25 도강파냐 잔류파냐, 피난파냐 부역파냐, 여순, 제주, 광주 …




이후 어느쪽이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선택했던 줄서기를 갖고 판도를 뒤집는다. 앙갚음, 한풀이의 역사가 되풀이된다.




반민족행위처벌법 1948 제정 … 유야무야된 것도 “죄 없는 사람이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하는 법과 비슷해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떳떳하게 돌을 던질 처지가 못되었던 측면도 있다.

36년이라는 세월에서는 대다수가 점이지대, 회색지대에서 일말의 기회를 엿보았던 면을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세월이 100년을 넘어갔다면 그런 법안 자체가 등장했을지…




앞으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와 비슷한 앙갚음의 법안이 어디선가 튀어나오겠지만 그때마다 유야무야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한 두 다리만 건너면 연좌되는 혹은 자기 내부에 있었던 기회주의적 양다리 전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식민지 조선의 이중적 지위 : 한국인들이 한쪽으로는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또다른 쪽에서는 침략에 동참하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자각이 없이 친일문제를 일방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겁이다. 식민지 지배나 전쟁 책임 문제는 자기성찰, 자기책임이라는 것이 식민지민에게도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299)



‘당위’로서의 역사학은 ‘객관, 실증’에 대한 과도한 믿음에서 나온 산물 아닐까? (p.284)
그래서 억지스런 인과관계나 목적론에 매달리게 되는 …그것도 자기만의 사료 해석에 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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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산호 2026-02-0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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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 역사 인식에 가려진 식민지의 회색지대

일제 식민지기의 역사 인식에 대해서 우리는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지 수탈론’ 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식민지의 회색지대”의 저자는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근대화론과 수탈론과 같이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역사인식의 문제에 접근하였다. 이 책은 식민지 시대의 역사 인식을 다룬 7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에서 볼 수 있는 ‘회색지대’라는 용어는 첫 번째 논문인 『식민지 인식의 회색지대-일제하 공공성과 규율권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회색지대’라는 용어의 뜻을 알고 이에 대한 이해가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므로 첫 번째 논문을 중심으로 이 책에 대한 평을 서술하기로 하겠다.

이 책의 서문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식민지의 회색지대’란 “저항과 친일이라는 이원론을 거부하는 지대”이다. 즉, 이분법적으로 역사를 바라볼 때 이 둘 중 어느 하나에도 속할 수 없는 지대가 있다는 것이 이 책에서 ‘회색지대’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첫 번째 논문에서는 친일파와 배일파로 나누는 것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이른바 ‘회색분자’의 존재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회색분자’를 “점차 친일파로 변해가는 존재”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들은 친일파 또는 배일파로 나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마지막 논문인 『민족부르주아지에서 황국식민으로-일제하 협력의 기저』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드러난다.



또 다른 점에서 화색지대를 보자면 두 번째 논문인 『친일파 청산과 탈식민의 과제』는 식민지 시대에 우리 민족이 일제에 수탈을 당했다는 민족주의적인 시각(식민지 수탈론)이 진정한 탈식민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무조건 일본적 근대화에 반대하는 것으로는 탈식민의 과제를 수행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조건 민족주의적인 관점으로 식민지 시기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는 이러한 인식은 이 이후에 나오는 논문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한국 민족주의 근대성 비판』에서는 이러한 민족주의의 성격과 이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 있으며『내파하는 민족주의』에서는 민족주의 비판론자들의 비판에 대해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서도 민족주의의 한계점을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본 것과 같이 지금까지 우리는 식민지 시기의 역사를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보아 온 것이 사실이며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역사 인식이 편향 될 수밖에 없었음을 시인 할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적인 시각으로만 역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역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식민지의 회색지대’를 놓치기 쉽다. 친일파와 배일파로 나누는 가운데 그 둘 중 어느 하나에도 속할 수 없는 많은 민중들과 ‘회색인’들 역시 저자가 문제의식을 가졌던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의 저자는 이 7편의 논문을 선별하여 우리의 역사 인식의 어두운 면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회색지대’를 상정한다는 것은 애매한 점도 있으나 ‘친일과 반일’,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지 수탈론’과 같이 이분법적으로만 보아왔던 우리의 역사인식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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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j_pooh 2007-05-0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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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회색지대.

학문에도 '유행'이란 것이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을 구입할 당시만해도 '근대성'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되던 시절이었다.

물론 요즘도 자주 화두에 오르는 용어이긴하지만 이 당시만큼의 첨예함은 많이 사라진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근대성 특히 '식민지기'의 근대성에 대한 논의가 어떠한 학문적 합의점을 찾았느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단지 서로 지쳤거나, 아니면 대화 상대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종의 방향전환을 했을 뿐.

그만큼 이 문제는 민감하도고 어려운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이 주제에 천착해온 윤해동 선생의 논문집이다.

내가 책을 구입한 2003년에 비해 그 예리한 '날'을 느낄 수 없는 무뎌진 분위기 때문인지, 책에 줄을 그을 부분이 그리 많진 않았다.

하지만 '이분법식'의 구도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타당하고 유효하다.



이런 방식으로 저항과 협력의 구조를 간단히 그려본다면, 일제의 동화정책이 추진되는 가운데서 일제는 한국인 협력체제 구축을 다면적으로 시도하는데 이에 따라 한국인의 협력이 구조화하고 일상화한다. 이를 구조적 협력 또는 일상적 협력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역으로 협력체제가 구조화하고 일상화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완전한 의미에서의 동화체제가 구축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다양한 형식의 저항이 구조화하고 일상화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한다. 지배체제에 동조하는 양태와 그 지배를 내면화하는 양태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구조화된 협력을 구조화된 저항으로부터 완전히 단절시켜버릴 수는 없다. 즉 동화 또는 체제내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겉으로는 협력 양태를 띠고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것이 지배를 내면화하는 것까지를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의 피지배 민중들은,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협력하고 저항하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기가 바로 식민지인식의 회색지대가 발원하는 지점이다.



또한 식민지와 제국주의를 상호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연구하느냐지만.



식민지 주민의 정체성이 지배자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면 지배자들 역시 식민지 종속민이라는 타자를 통해 자신을 구성해갔다. 지배자와 종속민은 서로를 타자로서 인식하였지만 타자 없이는 자기를 인식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에서도 민족주의가 '보편성'을 주창하기 시작할 때 가장 공격적인 제국주의가 된다는 지적이 인상적이다.



물론 논문집이라는 형식 때문인지, 뒤로 가면서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게다가 메타비평이 아닌 1차 연구로 분류할 수 있는 논문에서는 메타비평에서의 날카로움이 무뎌지는 느낌도 지우기 어렵다.

오히려 맨 뒤에 함께 수록된 인터뷰가 윤해동 선생의 생각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닐까 한다. 예를 들자면.



(식민지하에서) 일상의 영역 자체가 굉장히 이중화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촌락을 주제로 논문을 쓰면서도 느끼는 점인데, 식민지 체제 하에서 일상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가? 촌락 단위로 들어가면, 식민지 권력과 촌락이 만나는 접점이 구장이나 면장, 면서기인데...... 특히 구장을 두고 보면, 이 사람은 굉장히 이중적인 존재지요. 어떤 측면인가 하면, 식민지 권력 침투의 첨병이라는 점이 있고, 다른 점은 촌락민의 대변자라는 것이죠. 이 이중적인 측면이 '식민지 공공성'이랄까 이런 걸 잘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적 공공성의 특성을 보자고 한다면 그런 식민지적 공간에서 자기문제를 해결해나가려고 했던 노력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저항의 영역 아니면 수탈의 영역 말하자면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이항대립의 구분법에 의해서 이쪽으로 끌려가기도 하고 저쪽으로 끌려가기도 하는 일반민들의 삶의 세계를 다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적 근대의 경로 자체를 우리가 하나의 틀로써 정립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는 친일문제에 두 가지 차원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한국인들의 협력이라는 측면이 있고, 또 동아시아 각국이 우려하는 일본의 우경화나 일본의 또 하나의 측면인 전쟁책임과 연관된 것으로, 일본의 총력전체제에 대한 협력이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건 명백히 구분되어야 하는 건데요,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와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 또는 태평양전쟁 발발의 책임문제는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일상의 영역이 '이중화'되어 있다는 주장과 '이항대립'을 부정하는 주장은 일견 모순으로 보이기도 한다.

추상적인 차원의 문제제기이긴 하지만, 일상의 영역이 이중화를 넘어 삼중화, 사중화, 다중화될 수는 없는 걸까?

'이중화'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이항대립을 기본으로 깔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한계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일반민들의 삶의 세계가 단순히 이쪽 저쪽 '끌려다니는' 것에 불과할까?

끌려다는 것도 정도의 차이가 있고 속도의 차이가 있다면, 그 속에서도 나름의 전략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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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뜬별 2011-06-0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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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지대, 저항과 순종의 사이에서



이 책은 근대성의 관점에서 한국의 민족주의를 고찰한다. 필자는 여기서 탈근대의 관점으로 민족주의를 보아 줄 것을 요구한다. 민족주의가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기능을 해 왔지만, 식민주의의 기본 인식, 근대성‘을 공유한 채로 그것을 비판하였다는 점에서, 이는 모순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식민주의의 극복은 근대성 비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한국 민족주의에 있어 식민지 경험은 벗어날 수 없는 트라우마(trauma)1)이다. 민족의 자결권을 보장받아 단일민족으로서의 나라를 성립하는 것을 민족주의의 의미라고 한다면, 식민지의 경험은 이러한 단일민족의 국가 성립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그렇기에 식민지 경험은 한국의 민족주의를 이야기함에 꼭 필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필자의 말처럼, 우리는 여태껏 일제 치하의 상황을 수탈과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을 하여 왔다. 하지만 필자가 주장하는 회색지대라는 말처럼, 한 사회를 이분법적인 것으로 분석하기에는 그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상황이 많다. 예를 들어 일제치하의 상황을 가정하였을 때 일반 민중의 삶은 극단적인 저항도, 극단적인 순종도 아닌 두 모습이 공존하는 일종의 교차점에서 살아갔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회색지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회색지대의 문제는, 과거사 청산 - 일제의 잔재 청산 을 어렵게 한다.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택했던 일종의 생존형 친일 행각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치열한 독립운동을 택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만주와 같이 국외에서 활동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만큼 일제 치하의 조선에서 회색지대에 속하지 않고서 살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자는 이 문제를 국가 대 국가의 문제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내부체제의 청산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청산되지 않은 식민지주의는 일본의 우익교과서 문제를 통해 나타난다. 이에 대한 분노와 반발은 일제 지배의 콤플렉스를 나타내는 것이며, 이러한 반응을 민족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무의식의 식민화’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민족주의의 형성은 일본과 떨어져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이제는 이러한 관계를 탈식민의 과정을 통해 탈피할 것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냉전시대의 종결에 이은 민족국가의 형태를 지니는 지금의 세계에서 민족주의를 대체할 이념은 존재할까? 답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은 민족주의는 아니라는 말만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민족주의는 근대성을 뛰어 넘을 수 없고, 근대성을 비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대의 문제가 해결되고 탈근대가 올 것이란 기대는 결국 근대의 사고에 따른 것 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를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데에 그 의의를 두어야 한다. 비판을 넘어선 대안이 나올 그 날을 기대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1)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外傷後-障碍,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신체적인 손상 및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인 장애가 1개월 이상 지속되는 질병. 본문에서는 식민지의 경험이라는 정신적인 충격을 통해 나타나는 여러 가지의 반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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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2007-05-0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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