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0

숫자가 된 사람들 |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4 | 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 | 알라딘

숫자가 된 사람들 |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4 | 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 | 알라딘
숫자가 된 사람들 -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구술기록집 |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4
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 (지은이)오월의봄2015-07-01
 





































미리보기




책소개
198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수면 위로 드러났던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라고 불리는 형제복지원은 원장 박인근을 비롯한 개인의 악마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국가의 법령과 공무원 사회의 적극적인 협조로 가능했던 ‘국가폭력’의 산실이었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과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많은 생존자들은 여전히 정신적·육체적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은 피해생존자들 11명의 이야기를 인권기록활동 저자들이 재구성해낸 결과물이다. 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는 2014년 6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실태 조사에 참여했던 이들 중 6명이 모여서, 피해생존자들 삶에 깊이 각인된 그날들의 흔적을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사회에 전달하고자 결성됐다. 약 반년에 걸쳐 인터뷰이 탐색과 설문조사, 두세 번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간의 언론 보도가 미처 다루지 못한 생존자들 각각의 세세한 삶의 결, 감정의 파동까지 오롯이 담아냈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을 오롯이 재조명하고 특별법 제정을 포함해 책임을 촉구하고자 기획되었으며, 독자들은 폭력이 삶을 규정지어버린 피해자들의 고백 속에서 인간 존엄과 자기치유의 목소리,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할 ‘부랑인’이란 과연 누구인가 하는 피할 수 없는 질문과 만나게 될 것이다.


목차


들어가는 말 | 온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여주길…… 6

1부 숫자에 갇힌 시간

잃어버린 13년, 그게 내 인생의 전부예요 16
박경보 구술 ・ 홍은전 기록

가난하고 힘없고 누추한 사람들은 다 제거 대상이었는가 43
김희곤 구술 ・ 박희정 기록

내 인생의 비어버린 시간들, 형제복지원 73
하안녕 구술 ・ 이묘랑 기록

반평생을 시설에서 살았습니다. 듣고 계십니껴? 103
황송환 구술 ・ 유해정 기록

27년 만에 손잡으니까 좋데요 128
이상명 구술 ・ 명숙 기록


2부 시간을 찾는 사람들

서류철 하나에 집약된 인생 160
김영덕 구술 ・ 서중원 기록

다 내 탓이라고 자책하며 살았어요 188
김철웅 구술 ・ 유해정 기록

평생 아버지를 용서하려고 노력했어요 219
이향직 구술 ・ 홍은전 기록

묻어놓고 살면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고 살아요 243
최승우 구술 ・ 이묘랑 기록

혼자 살 수 없는 이 삶 자체가 어디서 왔나 268
홍두표 구술 ・ 박희정 기록

동생한테 늘 미안했어요 294
이혜율 구술 ・ 명숙 기록

부록
여전히 지옥 속에 사는 생존자들,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제정하라 322
조영선(변호사·형제복지원 대책위 집행위원장)

국가에 의해 버려졌던 삶, 사람에서 짐승으로, 짐승에서 사람으로 다시 돌아가려 합니다 334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형제복지원 연혁 340 / 글쓴이 소개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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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37~38 우리에게 진짜 따뜻한 위로는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거예요. 이 사건은 박인근 개인의 문제가 아니에요. 부산시 공무원, 경찰 몇몇의 문제도 아니고요. 그 시대, 부산시, 언론, 지식인들, 경제인들 모두가 한통속이 돼서 묵과했어요. 87년에 형제원 사건이 터졌을 때 잠깐 시끄러웠다가 결국 다 침묵했잖아요.
남대문에 살았을 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도 봤고 6월항쟁도 봤어요. 그때 우리도 뭔가를 해보려고 했어요. 물론 아무것도 못했지만요.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그런 것과 우리 문제는 좀 다르잖아요. 우리 피해자들은 문제를 제기할 방법도 몰랐고 기회도 없었어요. 언론에 투서한 사람들도 모두 문전박대당했죠. 박종철은 그렇게 죽어서 열사가 되었는데 우리는 그 안에서 수백, 수천 명이 가혹한 고문을 당하면서 죽어갔는데도 이렇게 묻혔어요.
박경보, <잃어버린 13년, 그게 내 인생의 전부예요> 접기
P. 69~70 국회에서 서로 간에 이해타산을 떠나서 정확하게 잘잘못을 한번 따져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정치적으로 타협 안 하고 진실 그대로 밝혀가지고. 공무원들 중에서도 형제복지원 원장하고 어울려서 이득을 취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을 거라고. 왜 그런 법안이 생겨나야만 했나. 가난하고 힘없고 누추한 사람들은 다 제거 대상이었는가.
나한테 ‘국가’라는 거는 억압받게 하고, 자유롭지 못하게, 사람 기를 못 펴게 한 존재인 거지. 동사무소나 구청이라든가 관공서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같이 힘없는 사람들한테 권위주의로 나오고. 국가 충성도는 제로인 상태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거 자체를 많이 저주했으니까. 다음 생에는 대한민국이 아닌 평화로운 곳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김희곤, <가난하고 힘없고 누추한 사람들은 다 제거 대상이었는가> 접기
P. 97 그때 (철창 사이로) 사람 어깨만 빠져나올 수 있으면 몸이 다 나온다는 걸 알았어요. 나오더만요. 지금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때는 벽을 뛰어오르는데 서로 손이 안 잡혀갖고 머리채를 뜯어 올리기도 하고. 인근에 헌병대가 있어서 그리루 가면 안 될 거 같애서 다른 쪽으로 가니 총을 겨누더라구요. 진짜 부대를 넘어간 거죠. 그 사람은 내가 피를 흘리고 있으니까 도망 나온 줄 알았겠죠. 분명히 알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벽 뛰어오를 때 내가 제일 먼저 올랐는데, 여자소대는 담이 낮다고 유리를 박아놨거든요. 그걸 밟은 거죠. 거기에 찔렸는데 제가 지금 기억으로는 한 5초를 생각한 거 같애요. 다시 내려가 빼고 와도 또 그럴 테니까 그대로 올라가자. 3일 정도 맨발로 다니니까 제일 먼저 낫는 데가 발바닥이더만예. 그래서 나는 제일 많이 움직이는 데가 제일 빨리 상처가 낫는 부위라고 생각해요. 발바닥이 제일 먼저 아물더라구요. 유리는 안에서 살이 차오르면서 빠져나오더구만요. 그때 느꼈어요. 아, 사람이 살아서 계속 움직이면 뭐가 박혀도 빠져나오고 낫는다고.
하안녕, <내 인생의 비어버린 시간들, 형제복지원> 접기
P. 120~121 행복하다, 그런 거는 못 느껴봤습니다. 꿈이라는 거, 그런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어렸을 때 무슨 생각 하면서 살았냐. 얼라 때 기억나던 때부터 먹고사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그냥 어떻게 해서라도 남한테 나쁜 일 안 하고 살까. 쓰레기통 가서 오물 같은 거 줍고, 고무신 같은 거, 수저 같은 거, 사발 그릇도 주워 팔고, 남긴 밥 주워 먹고, 아무 데서나 자고. 희망이라는 거를 갖게끔 사회에서 만들어줘야 하는데, 이담에 크면 뭘 해야 되겠다, 사업을 해야 되겠다, 선생이 돼야 되겠다, 변호사가 돼야 되겠다, 의사가 돼야 되겠다, 이런 꿈을 꿔봤던 적이 없었습니다. 영화숙, 재생원에 끌려가고 형제원에서 얻어맞고 그리 살다보니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어떻게 살아온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생각하면 형제원에 다시 들어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죠. 다른 시설도 힘들었지마는 거기는 인간 도살장이에요, 도살장. 해서 내가 형제원 그 생각만 하면 진절머리가 나는데, 아직도 1년에 두세 번씩 꼭 형제원 꿈을 꿔요, 악몽을. 그런 악몽은 안 꿨으면 좋겠는데, 그런 데는 꿈속이라도 두 번 다시 끌려들어가면 안 되니까. 거기 끌려들어가게 되면 인생이……
황송환, <반평생을 시설에서 살았습니다. 듣고 계십니껴?> 접기
P. 152~153 형제복지원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 나 안 쪽팔립니다. 그건 나를 불쌍하게 알아달라는 게 아니고 사회가 잘못된 거 바로잡자고 모인 거니까. 사람들이 “형님아 잘됐으면 좋겠다”고 해요. 아는 누나들도 이제는 “서명할 거 있으면 갖고 온나, 다 해줄게” 그래요. 친목계하는 사람들한테 얘기해서 다 해준다고. 옛날에는 그걸 안 믿었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은 옛날 사건이지만 인권유린은 공소시효가 없다잖아요. 국가도 잘못한 거고. 원장 그 새끼, 전두환 그 새끼도 나쁜 놈이고. 그 안에 있던 분들 못 배운 사람 많잖아요. 그것 때문에 회사도 못 다니고 지금 일용직 다니는 사람 많더라구요. 그런 사람들 평생 그리 살아야 한단 말이에요? 기술이 있어요? 학벌이 있어요? 뭐가 있어요? 그 사람들 인권 찾아주고 그 사람들 안에서 고생한 만큼 보상해주고. 보상금 때문에 이런 거 아니잖아요. 우리 인권 찾고 우리가 어릴 때 그렇게 당한 거 국가한테 사과도 받고. 지금 정부도 박근혜 지네 아버지 때 그런 거니까 사과해야 하고. 자기들이 먼저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이라도 우리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인권 찾고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미안하다 사과 한마디라도 받아야지.
이상명, <27년 만에 손잡으니까 좋데요> 접기
P. 184~185 내는 이 인터뷰 말입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 중에서 지금 무연고자 대표로 나온 거로 생각해요. 그리고 앞으로 내보다 못 살고 고통받는 무연고자 피해자들, 내를 명예복지사를 시켜주면, 내 그 사람들을 찾아서 수급을 받을 수 있도록 조사를 돕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을 복지시설로만 보내면 되겠어요? 수급 받아서 임대주택도 얻어주고. 시설생활이 아니라 개인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도록 실태 조사 같은 걸 돕고 싶어요. 기회를 줘야지, 그 사람들 찾아서. 배운 것도 없고 그런데……
누가 무연고자들에 대해 알겠어요? 내는 그럴 자격만 준다면, 월급을 받겠다는 게 아니고, 그럴 소명만 준다면 내는 전국에 있는 무연고자들 찾아다니면서 수급도 받고 세상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해주고 싶어요. 내가 이득을 보고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 나는 진짜, 보건복지부 사람들, 장관한테 교육받을 게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와서 교육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사람들은 모른다고
김영덕, <서류철 하나에 집약된 인생> 접기
P. 212~213 알코올중독자나 마약중독자들은 그룹을 이뤄서 치유하는 시스템이 있잖아요. 우리도 전문적이진 않지만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제가 좀 특이한 상황이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하고 만나니까 이게 뭐랄까,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제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할까. 어느 누구한테도 말 못한 상황인데, 이 사람들한테는 설령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 사람들은 나를 몰아붙인다든가, 손가락질하지 않을 거라는. 뭐라 꼭 집어 표현할 순 없는데 마음이 그냥 평온한 거예요, 굳이 감춰야 할 필요도 없고. 그게 치유인지 힐링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전보다 마음이 가벼워졌고, 생활하는 데도 변화가 많이 생겼어요. 그때의 일을 생각하는 횟수도 많이 줄고. 전에는 아침에 눈을 떠 출근을 하면 마음 한구석에 이렇게 계속 신호가 와요. 그런데 지금은 그 신호 오는 횟수가 줄어들고, 안 좋았던 상황이 떠오르는 게 밤에 자려고 누운 시간 외에는 점점 줄어들었어요. 그러다보니까 회사에서도 업무에 집중이 되고, 사람에게도 집중이 되고 그런 것 같더라고요.
김철웅, <다 내 탓이라고 자책하며 살았어요> 접기
P. 223~224 그때부터 가출을 하기 시작해서 집에 있었던 적이 거의 없어요. 신문배달하면서 보급소에서 자기도 하고요. 아버지한테 잡혀 들어가면 주머니에 있는 돈 다 뺏기고 안 죽을 만큼 맞고 또 가출했어요. 그 와중에도 신기하게 학교는 꼬박꼬박 나갔어요. 그런 생활을 몇 년 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나를 부전역전 파출소에 처넣어버린 거죠.
경찰이 나를 유치장에 가뒀어요. 아버지가 빵하고 우유를 넣어주면서 “네가 먹고살 만한 데를 보내준다고 하니까 거기서 생활하면서 잘 살아라” 하더니 가버렸어요. 그때 기분은 별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어요. 이제 아버지랑 같이 안 살아도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정도죠. 그날 밤에 형제원으로 보내졌어요. 우리 집은 잘살았어요. 그 시절에 의상실을 3개나 운영했을 정도니까요. 내가 형제원으로 가게 된 건 다른 피해자들처럼 가난해서가 아니었어요. 아버지 때문이었죠.
이향직, <평생 아버지를 용서하려고 노력했어요> 접기
P. 264~265 성인이 되어서 주민등록증을 만들려고 하는데 제 주소가 부산시 북구 주례동 산18번지로 되어 있는 거예요. 국가가, 공무원이 협조했으니까 이렇게 되지 않았겠습니까. 국가는 진짜, 이기주의적입니다. 남은 어떻게 되든 말든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이기주의. 사람으로 하여금 돈 욕심을 내게 만들었잖아요. 그 돈 때문에 부랑아도 아닌 사람들까지 잡아가게 만들었잖아요. 정말 대단한 대한민국입니다.
그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엄마랑 살던 네 살, 다섯 살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요. 엄마가 저를 참 애지중지하며 곱게 키웠어요. 그때 당시에 모자에 넥타이를 매고 다녔으니까요. 나를 아껴주고 소중히 여겨주는 행복했던 그 시절로.
최승우, <묻어놓고 살면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고 살아요> 접기
P. 289~290 나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 진상 규명이라는 것을 한 번 보고 아픔을 씻고 갔으면 좋겠어요. 나는 다른 거는 상관 안 합니다. 그게 내 전부예요. 보상이야 받아봐야 내가 뭐 할 건데요. 그거 받아갖고 아픈 몸 수술해봐야 평생 살 것도 아니고. 나는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면 또 하나 분명히 바라는 게, 시신을 못 찾은 가족들이 있어요. 그 유가족들에게 시신이 돌아갔으면 합니다. 부산 영락공원에 묻힌 형제복지원 희생자들 중에는 이름이 있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그것을 왜 그렇게 그냥 방치해두는가. 그게 난 참 그래요. 그 유가족들이 아직 살아 있다고요. 대한민국 땅 어디엔가 있다고요. 시신조차도 가족들한테 안 가면은 그건 좀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을 국가에서 외면하고 있다고요. 왜? 자신들이 책임져야 될 일이 더 많으니까. 내가 청와대 블로그에 대통령님한테 호소한 글이 있는데, 거기 답변에 ‘아주 오래된 일이지만 그렇게 많은 유가족이 살아 있는 줄 몰랐다, 여기에 대해서도 참조하겠다’ 하더라고요. 참조하겠다? 나는 그런 대답 듣고 싶지 않아요.
홍두표, <혼자 살 수 없는 이 삶 자체가 어디서 왔나> 접기
P. 315 저도 초반에는 학교 친구들한테는 말을 못했구요. 사회 친구들이나 아는 오빠나 언니나 선배들을 접하게 되면서 가끔 정말 친한 친구들한테만 말했는데 믿지를 않았어요. 그런 데가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우리나라에 그런 데가 어딨냐고, 양치기 소녀 취급을 당했지요.
처음에는 거기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일인 줄 알았어요. 뭔가 숨겨야 되는 부분인 걸로 알고 친한 사람들에게만 말했어요. 저한테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말해줬어요. 남들하고 다른 생활을 했잖아요. 고아원에서 살았다는 거 자체가 부끄럽다고 생각했어요. 형제복지원도 저희한테는 어찌됐든 고아원이었잖아요. 어린 나이에 고아원이니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나봐요. 지금도 인식이 좋지 않지만 고아원 자체가 옛날에는 인식이 더 안 좋았잖아요. 거의 부모님한테 버려지거나 그런 사람들이 가는 거니까. 그래서 지금까지도 남들한테 말을 못했던 거 같아요.
이혜율, <동생한테 늘 미안했어요>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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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5년 7월 3일자 '교양 새책'



저자 및 역자소개
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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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실태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 중 인권기록활동에 뜻을 모은 6명이 모 여 생존자들의 구술 기록 단행본을 펴내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생존자들의 경험과 삶의 맥락이 파편화되지 않고 좀 더 온전히 사회적으로 전달될 방법을 고민했다. 생존자의 목소리는 폭력의 역사에 대한 증언이자 사회를 일깨우는 죽비이며, 우리 모두의 존엄함을 지키는 투쟁이다.

글쓴이(가나다순)

명 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박희정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기록활동가
서중원 자유기고가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이묘랑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홍은전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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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숫자가 된 사람들> … 총 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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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공장이 사라지고 남은 얼굴들>,<몸을 추정하기>,<마녀의 독서, 광녀의 춤>등 총 249종
대표분야 : 한국사회비평/칼럼 2위 (브랜드 지수 181,075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우리는 그곳에서
등록번호, 또는 몸값으로만 존재했다”

대한민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생생한 고통 속에서 길어올린, 인간 존엄에 대한 목소리

이 책의 출간 소식에, 기쁨보단 겸허한 마음이 크다. 끔찍했던 야만의 역사보다 더 끔찍한 건, 진실을 숨기고 밝히지 않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부당하고 결핍된 정의를 보면서 더 열심히 듣고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오늘부터라도 다시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배정훈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피디)

진실을 밝히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일의 출발은 생존자들 스스로의 목소리다. 말하는 순간 고통은 더 이상 고통에 머물지 않고 치유의 시작이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들어주는 사람들’의 존재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들어주는 일, 생존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일, 진실과 정의를 향해 더불어 한 걸음 걷는 일일 것이다.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들어줘서 감사합니다.”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한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의 진실
198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수면 위로 드러났던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라고 불리는 형제복지원은 원장 박인근을 비롯한 개인의 악마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국가의 법령과 공무원 사회의 적극적인 협조로 가능했던 ‘국가폭력’의 산실이었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과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많은 생존자들은 여전히 정신적·육체적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은 피해생존자들 11명의 이야기를 인권기록활동 저자들이 재구성해낸 결과물이다. 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는 2014년 6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실태 조사에 참여했던 이들 중 6명이 모여서, 피해생존자들 삶에 깊이 각인된 그날들의 흔적을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사회에 전달하고자 결성됐다. 약 반년에 걸쳐 인터뷰이 탐색과 설문조사, 두세 번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간의 언론 보도가 미처 다루지 못한 생존자들 각각의 세세한 삶의 결, 감정의 파동까지 오롯이 담아냈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을 오롯이 재조명하고 특별법 제정을 포함해 책임을 촉구하고자 기획되었으며, 독자들은 폭력이 삶을 규정지어버린 피해자들의 고백 속에서 인간 존엄과 자기치유의 목소리,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할 ‘부랑인’이란 과연 누구인가 하는 피할 수 없는 질문과 만나게 될 것이다.

숫자에 갇힌 사람들, 그러나 너무 인간적인 고통
형제복지원 대책위 집행위원장인 조영선 변호사는 형제복지원을 일컬어, “형제도 복지도 없는 지옥 그 자체” “국가가 위탁이라는 형식으로 만든 ‘한국판 아우슈비츠’”라고 말한다. 1975년부터 1986년까지 12년 동안 부산시 사상구 주례동에서 ‘사회복지시설’로 운영됐던 형제복지원은 당시 약 3,146명을 수용하고 있었고, 납치·감금·강제 노역·학대·성폭력 등으로 유지됐으며, 밝혀진 사망자 수만 513명에 달했다. 피수용자들에게는 몇 년도에 몇 번째로 들어왔느냐에 따라 78-374, 80-3038, 82-2222, 82-4714, 86-1360…… 식으로 번호가 매겨졌다.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운영 당시 매년 20억 이상의 국고 지원을 받았는데, 그 액수의 기준이 되는 것은 피수용자들의 ‘머릿수’였다. 이들의 존재가 박인근에게는 두당 얼마씩의 재산이었던 것이며, (그들을 검속해 형제복지원에 넘긴) 경찰에게는 두당 얼마씩의 짭짤한 근무 평점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기보다 등록번호, 몸값, 누군가의 점수 등 ‘숫자’로 취급됐다. 반면 이들이 형제복지원 안에서 겪은 고통은 철저하게 ‘인간의 고통’이었다. 11명의 생존자들 이야기에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피수용자들이 일상적으로 견뎌야 했던 폭력에 대한 묘사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구술자 박경보 씨는 더없이 차분한 어조로 “형제원 안에서 맞고 기합받는 건 일상이었어요. 손가락을 잡고 부러뜨리는 건 흔한 일이었어요”라고 말한다. 연약한 아이들, 여성들, 노인들도 열외가 없는 군대식 점호와 기합, 구타는 그의 말대로 일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듯 이어지는 증언들에 정작 듣는 이는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이 ‘일상’은 때로 사망까지 이르기도 했지만, 목격자들은 그들이 정확히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김희곤 씨는 열두 살의 나이에 성인 소대장에게 가슴 100대를 가격당했던 일을 회상하며 “차라리 죽었으면 편했을지도 모르지”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와 나란히 맞았던 다른 아이는 다음날 식사하러 걸어가던 길에 쓰러져 그대로 사망했다. 남자 아동소대의 경우에는 밤에 소대장이 와서 소년들을 강간하기도 했다. 하안녕 씨는 사무실에서 원장이 피수용자의 배를 형광등으로 가르더니 거기에 소금을 뿌리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한다. 이렇게 인간의 상식으로 믿기지 않는 폭력에 대한 증언은 셀 수 없이 많다.
또한 이들은 낚시 용품, 봉제, 건축, 나전칠기 등 다양한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으나 이로 인한 수익은 전혀 배분되지 않았다. 일당 300~500원, 요양원은 3일에 토큰 1개(100원) 상당의 임금 기준이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임금을 받았다는 증언은 없다. 너무나 집요한 폭력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꿈꾸기조차 힘든 권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하는 환경 속에서도 존엄과 자유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음을 여러 증언들에서 거듭 확인할 수 있다. 박경보 씨는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도망을 쳤어요. 왜 그랬을까요”라고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서 숟가락, 면도칼 따위를 스스로 삼키거나 자기 손가락을 자르는 경우들도 많았다고 말한다. 하안녕 씨는 오직 탈출을 위해서 일부러 소대의 서무직을 자청하고 동료들과 계획을 짜 탈출에 성공한 과정을 생생히 들려준다. 다시 잡혀온다면(실제로 그러한 경우가 많았다) 더 큰 보복과 폭력을 당해야 했기 때문에 어떤 경우든 탈출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었다. 황송환 씨는 “사회에선 죄를 짓더라도 형량이 있고 만기가 있는데 형제원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영영 나갈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 도리어 그들의 갈망을 자극했고 탈출은 계속됐다. 한 시설을 탈출해도 곧 다른 시설에 잡혀들어가고, 또다시 탈출하는 일을 반복한 경우도 많았다.

국가의 위탁으로 운영된 지옥
그 모든 인권유린이 ‘사회복지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이 사업을 가능케 한 것은 다름 아닌 국가였다. 단순히 ‘복지시설’에 돈만 지원한 것이 아니라 정부는 1975년 12월 15일 내무부 훈령 제410호 ‘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을 발령해 소위 ‘부랑인’ 단속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이 훈령에 따르면 “일정한 정주가 없이 관광업소, 접객업소, 역, 버스터미널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거나 통행하는 곳과 주택가를 배회하거나 좌정하여 구걸 또는 물품을 강매함으로써 통행인을 괴롭히는 걸인, 껌팔이, 앵벌이 등 건전한 사회 및 도시 질서를 해하는 모든 부랑인”(제1장 제2절)이 단속 대상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역 앞이나 거리에 있는 아무 사람들을 애매하고 임의적인 기준으로 잡아다 감금하고 ‘건전한 사회 및 도시 질서’를 수호하라는 명령이다.

박인근 자서전에 자랑스럽게 실린 한 사진(전두환 대통령과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형제복지원 운영은 국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총리에게 지휘서신을 보내 전국적으로 부랑인 검속을 강화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하안녕 씨는 형제복지원에서 일명 ‘시찰’이 나올 때마다 벌어졌던 해프닝들을 자세히 그려낸다. 원장이 허울 좋게 보이기 위해 형제복지원 내에 각종 ‘부서’들을 신설하면 부산시에서 견학을 왔다. 그런 날만 옷이나 신발 등이 더 깨끗한 것으로 지급되고(시찰이 끝나면 다시 뺏어간다), 돌계단을 닦아내고 줄을 서서 박수를 치는 등 ‘갖은 쇼’를 해야 했다. 매년 운동회 때 보여줄 공연을 연습하는 시기에는 한 달 동안 잠을 못 자고 혹사당했다. 교양 있고 우아하게 차려입은 박인근의 아내는 자주 친구들을 데려와 “우리는 이렇게 밖에서 동냥하는 애들을 데리고 와 교육을 시켜서 사람을 만들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렇듯 형제복지원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유리된 섬 같은 것이 아니라, 국가와 부산시 공무원 사회가 충분히 인지하고 드나들 수도 있었던 곳이다. 마찬가지로 박인근은 인간 사회와 분리된 악마가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활동을 하는 사업가였다.
1987년 울주 작업장에서 발생한 폭행 치사 사건 당시 박인근 원장은 형제복지원 피수용자 중 168명을 울주 작업장으로 보내서 강제 노역을 시키고, 숙소 외부에서 문을 잠갔으며, 도주하는 경우 구타한 행위에 대해 특수감금죄로 기소됐다.
으로 인해 형제복지원의 실상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형제복지원 본 시설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을 묻지 않았고, 울주 건에 대해서마저도 3년 동안 대법원을 세 번이나 오르내리다 최종 무죄 판결이 났다. 결과적으로 박인근은 횡령죄로 2년 6개월 형만을 받았고 출소한 뒤에 대를 이어 ‘복지사업’을 계속했다. 지상에 현존했던 지옥에 대해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셈이다. 국가는 아직까지 정당한 법과 순리에 따라 박인근 개인을 처벌하지 않고 있으며, 제대로 된 진실 규명과 공식적인 사과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들어진 ‘부랑인’의 존재
형제복지원 자체는 사라진 지금 시대에 이 책을 읽는 우리가 절대 피해 갈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시설에 강제 수용되는 전제였던 ‘부랑인’이란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일단 역 앞에서 잡혀가는 ‘부랑인’ ‘노숙자’라고 했을 때, 우리가 바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집이나 가족이 없어 보이고, 추레하고, 술에 취해 있고, 냄새가 나고, 행인들에게 빈손을 벌리는 어떤 사람들. 하지만 단지 그러한 이유로 사람을 잡아가둘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 또한 지금의 우리는 알고 있다. 당시 정부와 경찰 및 공무원 사회가 손잡고 벌였던 대대적인 부랑인 단속, 그들이 말하는 ‘사회정화’는 사실상 ‘인간 청소’에 가깝다. 독일 나치하의 아우슈비츠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들을 세상에서 격리시킨 것처럼, 형제복지원을 비롯한 시설들도 임의적인 정상성의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또한 어떤 면에서 ‘인종’으로 취급됐는지도 모른다)을 정상의 세계로부터 분리하고자 했다.
그런데 11명의 이야기들을 읽어가다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들이 하나하나 어떻게 잡혀왔는가 들여다보면 그 방식이 훨씬 더 악의적이고 마구잡이다. 여섯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7곳의 고아원을 전전한 박경보 씨, 열 살에 친구들과 서면로터리에 놀러 나왔다가 잡혀간 김희곤 씨, 부모님이 장사하러 나가고 부산진역에서 오빠를 기다리다가 ‘파출소 아저씨’가 데려다준다는 말에 따라간 하안녕 씨,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20대 중반까지 시설에 갇혀 산 황송환 씨, 엄마 찾으러 제주에서 부산까지 배 타고 혼자 왔던 이상명 씨, 몇 월 몇 일생 추정에 어느 고아원에서 ‘인수’했다는 서류로써만 자신의 ‘발생’을 추측하는 김영덕 씨, 아버지의 폭행으로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왔다가 잡혀간 김철웅 씨, 자신을 상습적으로 구타하는 아버지에 의해 직접 파출소에 인계된 이향직 씨, 중학생 때 멀쩡히 하교하는 길에 파출소 순경이 가방을 뒤지더니 급식으로 받은 빵과 우유를 훔쳤다며 끌고 간 최승우 씨, 생의 기억이 시작된 부산의 한 보육원에서 놀러 나왔다가 다섯 살 때 형제육아원(형제복지원의 전신)에 납치된 홍두표 씨, 부모님이 이혼하고 할머니 집에서 살던 중 구박받는 것이 싫어 동생을 데리고 나왔다가 같이 끌려간 이혜율 씨……
이로써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부랑인’이 존재해서 그들을 격리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랑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만만한 이들을 잡아다가 부랑인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만만한 이들이란 물론 “가난하고 힘없고 누추한 사람들”(김희곤 씨 이야기의 제목), 그리고 가장 힘이 약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는 ‘집 나온 아이들’이었다. 여러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박인근은 형제복지원 피수용자들에게 ‘너희는 부랑인이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제대로 된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식의 정신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이 또한 부랑인이 실제로 존하는 것이 아니라 납치, 감금, 세뇌 등의 과정을 거쳐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반증이다.

‘형제복지원’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
‘시설’ 입장에서는 피수용자 머릿수당 돈이 되니까 사업의 필요로 운영했다고 짐작할 수 있지만, 우리가 좀 더 집중해 밝혀야 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는 왜 시설을 ‘필요로’ 했냐는 점이다. 구술프로젝트 서중원 작가는 김영덕 씨의 구술 기록에서 그에 대한 자기 생각을 내비친다.
“알다시피 당시 전두환 정권은 사회 정화라는 미명하에 이 부랑아 사업으로 폭압과 독재 형태의 권력을 어느 정도 합리화할 수 있었다. 문제는 소위 이 사업이 전국적 규모로 먹혔다는 데 있다. 다소 위험한 가설이긴 하지만, 당시 아직 성숙기를 맞지 못한 시민사회는 독재라는 큰 폭력에는 맞서지 못한 채 부랑아라는 가상의 존재를 상정하여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은 바로 “너희들!”이라는 대체 낙인으로, 자신의 분노를 약자 청소의 제노사이드에다 무의식적으로 분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이 작가의 말대로 조금 무리한 가설일지 몰라도, 분명한 것은 사회가 ‘우리’와 다른 부랑인의 존재와 그들을 격리시킬 시설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적어도 묵인했다는 사실이다. 국가 폭력 사건이긴 하지만, 시민사회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황송환 씨(<반평생을 시설에서 살았습니다. 듣고 계십니껴?>), 김영덕 씨(<서류철 하나에 집약된 인생>), 홍두표 씨(<혼자 살 수 없는 이 삶 자체가 어디서 왔나>) 등의 이야기는 인생 전체가 그러한 시설과 시민사회의 무관심에 희생당한 비극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그중 자신의 발생과 존재를 오직 서류로 추적해가는 김영덕 씨의 이야기는 인간 존엄을 희생양으로 삼는 시설의 근본 문제를 상징적으로 꼬집는다. 그는 사람이 단지 ‘연고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구 다뤄지는 인권유린에 분노하며, 스스로 자신과 같은 무연고자들을 찾아다니며 연고를 찾아주고 수급을 받게 해주는 등의 봉사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한다.
형제복지원은 1987년 문을 닫았고 전두환의 독재 정권도 막을 내렸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더욱 교묘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혐오와 격리와 배제가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2010년 11월 G20정상회의를 앞두고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노점상 강제철거 시도, 외국인 범죄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집중단속, 2011년 철도공사의 ‘노숙인’ 강제퇴거조치, 공공장소에서 구걸하는 행위를 처벌하고자 2013년 통과시킨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이묘랑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국가권력이나 자본은 다수의 이익과 안전이라는 그럴싸한 외피를 두르고 필요에 따라 사람들을 골라낸다. ‘쓸모’가 없음이 확인되면 다양한 방식으로 분리, 격리해왔다. 시설 수용은 교화와 복지, 그리고 일반(?) 시민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명분 아래 폭력을 품은 채 유유히 맥을 이어간다. 지금은 노숙인, 고아나 장애인으로 표적이 달라졌을 뿐이다. 얼굴을 바꾼 내무부 훈령 410호와 형제복지원은 여전히 호시탐탐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온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여주세요”
기존에 형제복지원의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는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와 전규찬 교수, 박래군 인권활동가가 함께 쓴 《살아남은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여러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으로는 《숫자가 된 사람들》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피해생존자들이 몇 명이나 살아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상태다. 피해생존자모임을 스스로 찾아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형제복지원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거나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11명의 목소리는 더없이 귀하고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형제복지원 안에서 지속적으로 당한 성폭행 때문에 사회에 나와서도 오랫동안 방황의 시간을 보냈던 김철웅(가명) 씨, 박인근 못지않게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에게 사과받고 싶어하는 이향직 씨 등 대부분 피해생존자들에게 이것은 말 그대로 인생을 건 고백, 최고의 용기를 낸 증언이었다. 구술자들은 하나같이 인터뷰 작가들을 앞에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난생처음’이라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는데 자신은 이렇게 살아 있고, 그렇다면 말해야만 했으리라.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떻게 살아남았으며, 지금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말하기’가 가능해진 데는 구술프로젝트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의 저자인 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는 2014년 6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실태 조사에 참여했던 이들 중 6명이 모여 결성됐다. 구술 기록이 단순히 인터뷰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것이라는 세간의 몰이해 또는 왜곡과 달리, 이들이 재구성한 11편의 구술 기록들은 하나하나 온전한 개성을 띠며 저마다 다른 감동을 준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소수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거나 끌어내는 일은 그 자체로 그 어떤 인권활동이나 연구 작업 못지않게 중요하며, 더 나아가 그것을 글로 재구성하여 사회에 전하는 기록활동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들이 여러 가지로 힘겨웠던 이번 작업을 감내한 이유는 한 가지다. 온 마음을 다해 이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 “이야기를 듣다보면 종종 고개를 돌리고 싶은 이야기, 예외적인 일로 믿고 싶은 사실들을 만나지만 외면하지 말고 비정상적이고 야만적인 일들이 어떻게 정상적인 것으로 둔갑했는지, 우리가 평범하다고 여기는 것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봐줬으면 좋겠다. 이 불편함을 딛고 마주할 때에야 비로소 온전한 듣기, 그이들의 말할 권리가 가능하다는 걸 기억해주길 바란다. (...) 동시에 더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고대한다.”(들어가는 말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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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우슈비츠의 이름은 다름아닌 ‘형제‘복지원이다.
나무처럼 2020-06-19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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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숫자가 된 사람들

형제복지원을 간접경험하면서 며칠간 심신이 많이 힘들었다.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의 요구는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의 요구와 닮아있었다.이렇게 방치되고 잊게 하며이렇게 끔찍한 사회가 되었구나...형제복지원의 폭력은 너무너무 끔찍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돌이켜보면우리가 받은 교육들과 우리를 둘러싼 폭력적인 환경들이 감금상태에서 강도높게 자행되었던 것이라더 힘들었던 것 같다.
폴라샘 2015-08-1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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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케르를 위하여

'2021년 3월 11일, 대법원 형제복지원 비상상고 기각'.
형제복지원 사건은 대한민국의 아우슈비츠로 불린다. 1987년 복지원장 박인근의 비리가 밝혀짐으로써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러나 박인근의 대법원 판결은 무죄. 복지원이 폐쇄된것 이외에 그는 법에 의해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사회는 법이라는 테두리로 수많은 국민을 부랑민으로 만들어 강제수용하고, 군부의 군화발로 이를 정당화 했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제대로 된 진상규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이 기괴한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피해자들이 원하는건 금전적 보상이 아니다. 진상이 명백히 밝혀지고, 관련자들이 온당한 처벌을 받는 것. 그뿐이다. 2021년이 됐는데도 아무것도 진행된게 없다는 사실 앞에 법이란 무엇인가? 국가와 사회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된다. 부조리한 생명정치로 인해 피해자들이 더 이상 호모 사케르로 남지 않도록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를 기억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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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Silverstone 2021-03-3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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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된 사람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구술기록집

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 (지음) | 오월의봄 (2015)

1. 도서 핵심 요약 (Summary)

《숫자가 된 사람들》은 국가의 폭력적 통치 수단이자 부랑인 격리 장치로 기능했던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담아낸 구술기록집이다. 거시적 통계나 행정 문서, 혹은 가해자 중심의 법정 공방 속에 묻혀 있던 '생존자들의 직접적인 언어'를 온전히 복원해 냈다. 이를 통해 국가 권력이 어떻게 한 개인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그 삶을 유린했는가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① 이름의 말살과 '숫자'로의 치환

본서의 제목이 직관적으로 암시하듯, 형제복지원의 강제 수용자들이 마주한 첫 번째 폭력은 고유한 성명과 신원의 박탈이었다. 입소와 동시에 수용자들은 이름 대신 고유 번호(예: 84-OOO)로 불리며 철저히 군대식 규율 편제 속으로 편입되었다. 이는 단순한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개인이 가진 자아 정체성과 인격적 권리를 완전히 지워버림으로써 국가와 수용소 권력에 저항할 수 없는 ‘순응적 신체’로 길들이기 위한 미시적 지배 메커니즘이었다.

② 국가 권력에 의한 납치와 불법 수용의 일상성

구술자들은 자신들이 법적·상식적 의미의 부랑인이 아니었음에도 공권력(경찰)과 단속반에 의해 기차역, 길거리, 심지어 집 앞이나 학교 가는 길에 무차별적으로 납치되었음을 증언한다. 가족이 있고 엄연히 직업이나 학업을 이어가던 평범한 이들이, 정권이 설정한 ‘도시 미관 정비’와 ‘부랑인 일소’라는 실적주의의 제물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시청 공무원은 시민을 보호하는 존재가 아니라, 민간 위탁 수용소의 이윤 창출(정부 보조금 수령 및 강제 노동력 확보)을 위해 인간을 조달하는 국가적 대리인으로 기능했음이 폭로된다.

③ 내부의 가혹 행위와 위탁된 공포

구술 기록은 일상화된 구타, 고문, 성폭력, 그리고 인권을 말살당한 강제 노역의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특히 원장 박인근을 정점으로 하는 관리층이 수용자 내부에서 소대장, 조장 등의 서열을 매기고 이들에게 통제와 폭력의 권한을 위임한 ‘내부 권력 이임 구조’는 피해자들에게 더 큰 정신적 파멸을 안겼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동료 수용자를 감시하고 때려야 했던 이들의 고통스러운 고백은, 수용소가 인간의 육체적 생명뿐만 아니라 도덕적 자아까지 어떻게 완벽히 파괴했는지를 증명한다.

④ 끝나지 않은 수용소: 퇴소 이후의 지속되는 삶

형제복지원은 1987년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으나, 생존자들의 수용소는 끝나지 않았다. 구술자들은 퇴소 후에도 심각한 신체적 장애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나 가정을 영위하는 데 극심한 곤통을 겪었다. 원가족과의 연대 단절, 그리고 ‘부랑인 수용소 출신’이라는 가혹한 사회적 낙인은 이들을 다시 빈곤과 고립의 외딴섬으로 밀어 넣었다. 이들의 구술은 형제복지원 사건이 과거의 완료된 역사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삶의 비극임을 뼈아프게 보여준다.

2. 역사적·사회학적 평론 (Critique)

① 의의: 아래로부터의 역사학(History from Below)과 주체성의 복원

본 구술기록집이 지닌 가장 독보적인 가치는 공식 역사나 법적 판결문, 국가 행정 문서가 배제해 온 ‘소외된 자들의 고통의 언어’를 공적 사료의 반열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기존의 학술 논문이나 언론 보도가 가해 구조의 분석이나 법적 책임 공방에 치중했다면, 이 책은 철저히 생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재구성한다.

폭력의 기억을 언어화하는 과정은 피해자들을 단순히 ‘구제의 대상’이나 ‘가련한 희생자’라는 수동적 위치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을 국가폭력을 고발하고 역사의 진실을 증명하는 ‘능동적 주체’이자 ‘증언자’로 정립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다.

② 의의: '사회적 타살'과 배제의 메커니즘 고발

본서는 형제복지원이라는 거대한 폭력 장치가 수십 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 우리 사회의 ‘묵인과 방조’가 있었음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길거리에서 이웃과 아동이 사라져도 개의치 않았던 중산층의 이기심, 그리고 ‘부랑인은 격리되어야 마땅하다’고 여겼던 당대 대중의 도덕적 무관심은 수용소 체제를 지탱한 보이지 않는 동력이었다.

생존자들이 퇴소 후에도 사회 구성원으로 안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성을 기준으로 인간의 가치를 매기고 기준 미달의 존재를 가차 없이 배제하는 근대 한국 사회의 차가운 배제 메커니즘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③ 한계: 구술의 파편성과 교차 검증의 공백

구술기록집이 지닌 날것의 충격과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비판적 성찰의 지점이 존재한다.

  • 서사의 파편성: 개별 생존자들의 파편화된 구술을 날것 그대로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사건의 전체적인 연대기적 흐름이나 구조적 전말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 역사적 맥락화의 아쉬움: 구술자가 가진 기억의 공백이나 외상으로 인한 오류 가능성에 대해, 구술사 방법론 측면에서의 정밀한 교차 검증이나 각주를 통한 역사적·제도적 배경 설명이 조금 더 촘촘히 보완되었다면, 본 사료가 지닌 객관적 권위와 학술적 신뢰도가 한층 더 격상되었을 것이다.

3. 결론

결론적으로 《숫자가 된 사람들》은 국가 권력이 개인을 고유한 이름이 아닌 ‘숫자’라는 기호로 환원하여 말살하려 했을 때, 끝내 자신의 이름을 잃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이 던지는 엄중한 저항의 기록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를 향해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정한 해결이란 가해자 처벌이나 일시적인 보상금 지급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진정한 해결은 생존자들이 빼앗겼던 이름을 되찾아주고, 그들의 파괴된 삶의 궤적을 온전히 복원하여, 그들을 존엄한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따뜻하게 환대하는 데서 비로소 시작되어야 함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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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된 사람들 —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구술기록집』

(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 요약+평론

『숫자가 된 사람들』은 단순한 사건 기록집이 아니다. 이 책은 한국 현대국가가 “부랑인”, “불온”, “비정상”이라는 이름 아래 어떻게 가난한 시민들을 수용·관리·폭력화했는지를 피해생존자들의 육성을 통해 드러내는 집단 증언집이다. 특히 이 책의 핵심은 형제복지원 사건을 단순한 “과거의 인권침해”로 보지 않고, 한국 사회의 국가주의·개발주의·반공주의가 결합된 구조 속에서 이해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형제복지원은 부산에 존재했던 대규모 수용시설이었다. 공식 명분은 “부랑인 선도”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리의 빈민, 고아, 가출 청소년, 장애인, 심지어 단지 신분증이 없거나 외모가 남루하다는 이유만으로 끌려온 시민들까지 강제로 감금한 공간이었다. 피해자들은 경찰과 공무원에 의해 연행되었고, 그 안에서 폭행·강제노역·성폭력·굶주림·감금·고문을 경험했다.

책 제목인 <숫자가 된 사람들>은 매우 상징적이다. 피해자들은 이름을 잃고 번호로 불렸다. 이는 단순한 행정 편의가 아니다. 인간을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관리 대상, 통제 대상, 폐기 가능한 대상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많은 생존자들이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 같았다”, “살아남기 위해 맞는 법을 배워야 했다”고 증언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인간 말살의 일상성”을 보여준다.

구술집 형식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 기록이나 언론 보도가 포착하지 못하는 감각과 정서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의 기억 속 형제복지원은 단순히 폭력적 시설이 아니라 “공포가 정상화된 세계”였다. 누가 죽어도 놀라지 않았고, 맞는 것이 일상이었으며,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감시하거나 침묵해야 했다. 이 구조는 단순한 일부 직원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폭력 시스템으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책을 읽다 보면 특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침묵”의 문제다. 피해자들은 탈출 후에도 오랫동안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했다. 이유는 수치심, 사회적 낙인, 그리고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감각 때문이었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피해자들에게 요구한 침묵이었다. 국가 역시 오랫동안 형제복지원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고, 사회는 이를 “옛날 일”로 취급했다.

이 책의 중요한 통찰 중 하나는 형제복지원이 결코 예외적 괴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당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1970~80년대 군사정권 아래에서 국가는 “정상 국민”을 생산하려 했다. 산업화와 도시 미관, 치안 유지, 반공 질서 속에서 가난하고 불안정한 사람들은 제거 대상이 되었다. 거리의 빈민은 “사회 문제”가 아니라 “청소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형제복지원은 바로 그 국가 폭력이 민간 시설을 통해 외주화된 사례였다.

이 점에서 형제복지원은 일본의 식민지 수용 정책, 서구의 정신병원 수용 역사, 현대 중국의 재교육 시설, 심지어 일부 난민 수용소 문제와도 비교 가능하다. 국가가 “사회 질서”라는 이름으로 특정 집단을 비가시화하고 격리하는 구조는 세계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숫자가 된 사람들』은 한국판 그 역사라 할 수 있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당시 많은 시민들이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단지 정보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 전체에 “가난한 사람은 위험하다”, “부랑인은 사회의 짐이다”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형제복지원은 국가 폭력과 시민 사회의 무관심이 결합한 산물이었다.

책은 피해생존자들의 이후 삶도 다룬다. 많은 이들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고, 가족 관계가 파괴되었으며, 오랜 정신적 후유증을 안고 살아간다. 불면증, 대인 공포, 폭력 트라우마, 자기혐오가 반복된다. 어떤 생존자는 “나는 아직도 누가 뒤에서 부르면 몸이 굳는다”고 말한다. 이는 형제복지원이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상처임을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은 “피해자다움”의 문제도 드러낸다. 피해생존자들은 완벽한 도덕적 피해자가 아니다. 일부는 이후 범죄나 중독 문제를 겪었고, 삶이 무너졌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중요하다. 국가 폭력은 사람의 생애 전체를 뒤틀어놓는다. 피해자가 이후 “정상적 시민”으로 살아가지 못한다고 해서 피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피해자를 순결한 상징으로 소비하지 않고, 망가진 삶 자체를 보여준다.

문학적으로 보면 이 책은 매우 절제되어 있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한 증언이 더 큰 충격을 준다. “맞았다”, “죽었다”, “묻었다” 같은 짧은 문장이 반복되는데, 그 단순성이 오히려 국가 폭력의 일상성을 드러낸다. 독자는 거대한 악마보다 “너무 평범했던 폭력”에 더 큰 공포를 느끼게 된다.

다만 한계도 있다. 구조적 분석보다는 증언 자체에 집중하기 때문에, 형제복지원이 당시 국가 정책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에 대한 이론적 설명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예를 들어 박정희·전두환 체제의 도시 정책, 치안 담론, 국제 스포츠 행사 대비 “도시 정화” 정책과의 연관성은 독자가 별도로 공부해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은 사회학적 분석서라기보다 “증언의 아카이브”에 가깝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이 책의 힘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국가 발전 서사를 중심으로 현대사를 기억해왔다. 산업화, 수출, 경제 성장, 민주화 같은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밑바닥 사람들의 경험은 사라졌다. 『숫자가 된 사람들』은 그 사라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복원한다. 이것은 단순한 과거 회복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비국민”을 만들어왔는지 묻는 작업이다.

결국 이 책은 형제복지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노숙인, 정신질환자, 난민, 빈곤층, 장애인을 얼마나 “관리 대상”으로 보는가? 복지와 돌봄은 얼마나 쉽게 통제와 감시로 변하는가? 국가와 시민 사회는 얼마나 쉽게 “정상성” 바깥의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가? 이 책은 그런 질문을 현재형으로 던진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이 책은 다음과 같다.

<『숫자가 된 사람들』은 형제복지원의 비극을 넘어, 한국 현대국가가 어떻게 인간을 “숫자”로 관리하고 폐기해왔는지를 증언하는 집단 기억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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