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8

한국전쟁 전사(와다 하루키)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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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빛낸 책들: 동북아시아 2편】 6강. 한국전쟁 전사(와다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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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0 views  Premiered May 7, 2026  #한국전쟁 #일본 #아빛책
【아시아를 빛낸 책들: 동북아시아 2편】  6강. 한국전쟁 전사(와다 하루키)

▣ 강연자: 남기정(서울대)

#아빛책 #동북아시아 #일본 #일본사상 #한국전쟁 #한국전쟁전사 #와다하루키 #남기정

남기정 교수가 와다 하루키의 저서 한국전쟁 전사를 통해 전쟁의 기원과 전개 과정을 다각도로 분석합니다. 동북아시아 국제 질서의 맥락에서 한국 전쟁이 가진 구조적 의미와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성찰적 관점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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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사> 요약

전쟁의 기원과 1949년의 위기

한국전쟁의 원인은 1948년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탄생하고,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헌법적 구조를 완성한 데서 배태되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했고, 북한 헌법 제103조는 수도를 서울로 명시하여 상대를 부정했다. 국제 정세와 무관하게 남북한 지도부가 원한 무력 통일 의지는 전쟁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였다. 1949년 김일성과 박헌영은 스탈린에게 군사 동맹을 요구했고, 이승만 역시 미국에 북진 의사를 피력했으나, 당시 소련과 미국은 이를 만류했다.

중소 정상회담과 개전의 결정

동북아 정세의 결정적 전기는 1949년 말 마오쩌둥의 모스크바 방문과 스탈린과의 회담에서 마련되었다. 스탈린은 1950년 1월 중소 우호동맹 조약 개정을 결단하며 미소 협조 노선인 얄타 체제의 파기를 선언했다. 스탈린은 아시아 대륙의 혁명과 전쟁 가능성을 전제로 김일성의 무력 통일 노선을 승인했고, 김일성은 베이징을 방문해 마오쩌둥의 동의를 구했다. 북한 지도부는 미국과 일본의 개입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전망하며 1950년 6월 25일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노획된 북한 문서와 소련의 암호 전문은 한국군의 공격에 대응한 반격이라는 북한의 주장이 허구이며, 치밀하게 기획된 전면적 선제 공격이었음을 증명한다. 한편, 스탈린은 개입 과정의 여론적 딜레마를 회피하고자 UN 안보리에 의도적으로 불참했다.

북진과 중국군의 참전

인천상륙작전 이후 이승만 정부는 유엔군의 참전을 북진 통일의 기회로 인식하고 관할권을 북쪽으로 확대하고자 했다. 미국은 이를 추인했고, 맥아더는 10월 2일 삼팔선을 넘어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대응해 중국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오쩌둥은 참전을 결정했다. 마오쩌둥은 당내 소수파를 설득하기 위해 스탈린의 권위와 의견을 차용하여 파병을 정당화했다.

정전 회담의 전개와 스탈린의 내밀한 의도

1951년 6월, 전선이 교착되자 스탈린과 미국 주도로 정전 회담이 제안되었다. 실제로 전쟁을 치르던 남북한과 중국은 원칙론을 고수하며 전쟁 지속을 원했으나, 배후의 강대국들이 협상을 주도했다. 와다 하루키는 1952년 말 일본 공산당의 이토 리츠와 조선노동당의 박헌영파가 스파이로 몰려 숙청된 사건에 주목한다. 이는 스탈린이 전쟁 실패의 책임을 현지 공산당에 전가하고 정전 분위기를 조성하려 한 의도적 시나리오였다. 따라서 정전의 결정적 계기는 스탈린의 사망이 아니라, 이미 1952년 말에 굳어진 스탈린 본인의 정전 결심이었다.

전쟁의 결과와 동북아시아 국제 구조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북한은 이를 역사적 승리로 선전하며 환영한 반면, 이승만은 분단을 고착화하는 조치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미국 역시 막대한 비용을 치른 비극적 무승부로 인식했다. 한국전쟁은 남북의 군사적 대치를 핵심으로 하고, 미중 대립이 전개되며, 그 후방에 러시아와 일본이 배치되는 <3층 구조의 동아시아 냉전 체제>를 정착시켰. 이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은 초군사 국가로 변모했고, 중국은 국제적 위상을 확보한 대가로 타이완의 무력 해방을 포기했다. 반면 타이완은 정치적 생존을 이어갔고,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전쟁 특수를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리며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평론: 다중 사료가 해부한 구조의 역사와 그 한계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는 한국전쟁을 단순한 남북 간의 내전이나 미소 냉전의 대리전으로 환원하지 않고, 동북아시아 전체가 유기적으로 얽힌 <동북아시아 전쟁>으로 재규정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학문적 성과이다. 이 저작이 지닌 가장 강력한 특장점은 저자의 탁월한 다중 언어 해독 능력에 기반한다.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 러시아어 사료를 전방위적으로 교차 검증함으로써, 단일 국가의 시각에 갇혀 있던 한국전쟁 연구를 다층적이고 총체적인 국제 관계사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1952년 말 공산권 내부의 스파이 숙청 사건을 스탈린의 정전 결심과 연결 지은 대목은 와다 사학의 독창성이 빛나는 부분이다. 정전의 계기를 1953년 3월 스탈린의 사망이라는 우연적 요인에서 찾는 기존 학계의 통념에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하며, 구조적 흐름 속에서 지도자의 전략적 결단 과정을 추적한 거시적 안목은 매우 날카롭다. 북한의 선제 공격 책임을 명확히 규명하면서도, 전쟁의 발발과 확산 과정을 남북한의 적대적 공존 구조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해부해 낸 균형 감각 역시 돋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주의적 접근은 필연적인 비판에 직면한다. 김학준이 지적했듯, 전쟁을 남북한의 무력 통일 노선의 병렬적 대치와 역사적 불가피성의 산물로 서술하는 방식은 개전의 직접적 주체인 김일성과 박헌영의 모험주의적 책임을 희석할 위험을 내포한다. 인간의 이성적 선택과 주체적 책임을 구조의 필연성 아래에 종속시켰다는 비판은 유효하다. 또한, 캐슬린 웨더스비의 지적처럼 당내 숙청 사건을 스탈린의 정전 시나리오와 무리하게 연결 지은 해석은 다소 간의 논리적 비약과 논거의 불명확성을 노출한다. 나카가와 마사오가 비평했듯이, <동북아시아 전쟁>이라는 거창한 규정이 정작 냉전 고착화 과정의 일반적 현상 외에 무엇을 새롭게 밝혀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구조 중심적 서술이 갖는 한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반도의 정전 체제가 어떻게 동북아의 지정학적 골격을 형성했는지 보여주는 최고의 해부학 교과서이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지 않은 현재의 동아시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의 개선을 넘어 러시아,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 모두가 참여하는 다자적 평화 프로세스가 필수적이라는 성찰적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고전적 가치는 퇴색되지 않는다.


세진님, 공유해 주신 자료를 바탕으로 요청하신 요약과 평론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한국전쟁 전사>에 나타난 와다 하루키의 시각이나 동북아 국제 질서의 구조적 영향에 대해 더 깊이 나누고 싶은 부분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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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하루키(和田春樹,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를 소개하는 강연 영상 자료는 단순한 책 소개를 넘어, 전후 일본 지식인의 한국전쟁 인식 변화와 동아시아 냉전 구조에 대한 역사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특히 강연자는 와다 하루키의 연구가 “한국전쟁을 단순한 남북 충돌이 아니라 동북아 전체 구조 속의 전쟁”으로 이해하려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강연에서 소개되는 와다 하루키의 핵심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한국전쟁은 언제, 왜, 어떤 구조 속에서 시작되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곧 다음과 연결된다.

<한국전쟁은 단순한 ‘북한의 남침’만으로 설명 가능한가?>

와다는 이 문제를 둘러싼 기존 냉전적 역사서술을 넘어서려 했다.

1. 와다 하루키 연구의 특징

강연자는 와다 하루키를 단순한 한국사 연구자가 아니라 “동북아 전체를 연결해서 본 연구자”로 설명한다. 그는 원래 러시아 혁명사와 소련사를 연구한 학자였으며, 이후 한반도 문제로 연구 영역을 확장했다.

이 점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국전쟁 연구는 오랫동안 다음 두 흐름으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다.

① 냉전 반공 서술
→ “북한의 일방적 침략”

② 민족주의 서술
→ “민족 내부의 통일전쟁”

와다는 이 둘을 모두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보다 복합적인 구조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 남북 내부 갈등
→ 미소 냉전
→ 중국 혁명
→ 일본 점령체제
→ 동북아 국제질서

가 서로 얽혀 만들어진 전쟁이었다.

즉:

<한국전쟁은 동북아 냉전의 교차점이었다>

이것이 와다 연구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다.

2. “1949년 시작설”

강연에서 특히 강조되는 부분은 와다의 “1949년 시작설”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전쟁은:

→ 1950년 6월 25일 시작

으로 배운다.

그러나 와다는 실제 전쟁 상태는 이미 1949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고 본다.

그 근거는:

  • 남북 국경 충돌 확대
  • 유격전과 토벌전
  • 제주4.3과 여순사건
  • 북측과 남측의 군사적 준비
  • 상호 적대적 국가 건설

등이다.

즉 1950년 6월은 “갑작스러운 시작”이 아니라:

→ 이미 진행되던 내전 구조의 폭발

이라는 것이다.

이 해석은 단순한 연도 수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이것은:

<한국전쟁을 순수한 외부침략이 아니라 복합적 내전+국제전으로 본다>

는 뜻이기 때문이다.

3. 스탈린과 김일성의 관계

강연 후반부에서 매우 흥미롭게 다뤄지는 것은 소련 문서 공개 이후 드러난 스탈린과 김일성 관계이다.

냉전 시기에는 흔히:

→ “스탈린이 명령했고 북한이 움직였다”

는 식의 단순 모델이 많았다.

하지만 와다는 러시아 문서들을 분석하며:

  • 김일성이 매우 적극적으로 전쟁을 원했다
  • 스탈린은 initially 신중했다
  • 중국 변수와 미국 반응을 계산했다

고 설명한다.

특히 스탈린은 미국이 한반도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을 어느 정도 기대했다는 점이 강조된다.

이는 기존의 단순한 “소련 조종설”을 수정한다.

즉:

→ 북한은 단순한 꼭두각시가 아니었다.

그러나 동시에:

→ 완전히 독자적 행동도 아니었다.

이런 복합성은 와다 연구의 장점이다.

4. 중국 변수

와다는 중국 혁명의 영향 역시 매우 중요하게 본다.

1949년 중국 공산혁명의 성공은:

  • 북한 지도부에 자신감 제공
  • 미국의 아시아 전략 변화
  • 동북아 세력균형 변화

를 가져왔다.

특히 중국과 소련 사이의 관계, 그리고 중국의 한반도 개입 가능성이 스탈린 계산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 중요하게 제시된다.

즉 한국전쟁은 단순히 “한반도 문제”가 아니라:

→ 중국혁명 이후 동북아 재편 과정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5. 일본과 한국전쟁

강연에서 매우 인상적인 부분은 일본과 한국전쟁의 관계를 강조하는 대목이다.

와다는 일본을 단순한 “배경 국가”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 한국전쟁은 전후 일본체제를 결정지은 사건

이었다고 본다.

실제로:

  • 미군 재무장
  • 일본 경제 회복
  • 냉전기 미일동맹 강화
  • 일본 보수체제 안정

모두 한국전쟁과 연결된다.

이 점은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는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한국전쟁을 주로:

→ 남북 분단
→ 민족 비극

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 전후체제 형성의 결정적 계기

였다는 것이다.

6. 와다 하루키의 역사관

강연자는 와다 하루키를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전후 일본 양심적 지식인 전통” 속에 위치시킨다.

그 특징은:

  • 반군국주의
  • 반냉전주의
  • 동북아 평화지향
  • 자료 중심 연구
  • 피해국 시각에 대한 관심

등이다.

특히 그는 일본 제국주의와 냉전 구조를 연결해서 이해하려 했다.

이런 점에서 와다는:

→ 일본의 리버럴 역사학 전통

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7. 이 연구의 강점

이 강연과 와다의 책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다음 세 가지다.

(1) 다층적 구조 분석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니라:

  • 남북
  • 미국
  • 소련
  • 중국
  • 일본

을 동시에 본다.

이것은 한국전쟁 이해를 훨씬 입체적으로 만든다.

(2) 국제전 + 내전 결합 모델

한국전쟁은:

→ 내전인가 국제전인가?

라는 논쟁이 오래 있었다.

와다는:

→ 둘 다였다

고 본다.

이 관점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3) 자료 공개 이후의 수정

소련 문서 공개 이후 기존 해석을 수정하고 보완했다는 점 역시 학문적으로 중요하다.

즉 그는 이념보다 자료를 우선시하려 했다.

8. 한계와 비판

그러나 와다의 연구에도 비판점은 있다.

(1) 북한 책임의 상대적 약화

보수 진영에서는 와다가 지나치게 “구조”를 강조함으로써:

→ 북한 지도부의 책임을 희석시킨다

고 비판한다.

실제로 그의 서술에서는:

  • 미국
  • 냉전
  • 국제구조

가 많이 강조된다.

반면 북한 체제 내부의 권위주의나 폭력성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뤄질 때가 있다.

(2) 일본 리버럴 역사학의 한계

와다의 역사관은 일본 진보 지식인 전통의 강점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그 한계도 가진다.

즉:

→ 구조 분석은 강하지만,
→ 권력체제 내부 비판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 북한 체제
  • 중국 공산당
  • 스탈린주의

에 대한 비판 강도는 서구 자유주의 학자들보다 약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9. 오늘날의 의미

그럼에도 와다 하루키의 연구는 여전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한국전쟁을 단순한 “과거 사건”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 한국전쟁 체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 본다.

실제로:

  • 분단
  • 미군 주둔
  • 북핵 문제
  • 미중 갈등
  • 일본 재무장

등은 모두 한국전쟁 구조의 연장선에 있다.

이 점에서 와다의 연구는 단순 역사 연구가 아니라:

→ 현재 동북아 질서 연구

이기도 하다.

10. 결론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는 한국전쟁을 “누가 먼저 쐈는가”라는 단순 논쟁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 왜 동북아 전체가 전쟁 구조 속으로 들어갔는가

를 묻는다.

그리고 그 답 속에서:

  • 냉전
  • 혁명
  • 제국
  • 민족주의
  • 분단체제

가 서로 어떻게 얽혀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그의 연구는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으로 수렴된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동북아를 만든 현재진행형의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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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2 seconds[음악]
0:088 seconds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1번 연구소에서 일본의에 정치와 외교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는 남기정 교수입니다.
0:2020 seconds에 주로 전후 동부가 국제질서의 맥락에서 어 일본의 정치와 외교의 변화를 추적하는 작업을 하고
0:2929 seconds있습니다. 이번에 아시아 연구소의 아시아를 빚들 시리즈에서
0:3636 seconds와드하루끼 교수의 한국 전쟁 전사를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와다하루의 한국 전쟁
0:4444 seconds전사라는 책은 동북아시아 국제질서의 해부학 교과서라고 어 생각듭니다.에
0:5353 seconds그런 의미에서이 책을 아시아를 빚는 책들의 하나로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1:031 minute, 3 seconds먼저 와드 하루키의 한국 전쟁 연구들을 좀 보겠습니다.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한국 전쟁 전사라고
1:121 minute, 12 seconds하는 책은 와다하루끼가 집필한 한국 전쟁 관련 연구의 두 번째 책입니다.
Haruki Wada
1:181 minute, 18 seconds슬라이드에서 지금 왼쪽으로 보이는 책이에 1995년도에 일본에서 출판된 조선 전쟁 한국
1:271 minute, 27 seconds전쟁이라고 하는 책입니다. 그게 한국에는 1999년도에 번역되어서 소개가 됐었고요. 그로부터
1:351 minute, 35 seconds21세기에 들어가는 시점에서 2002년도죠.
1:391 minute, 39 seconds2000년도에 대폭 계작을 해서 와다르키의 두 번째 저작인 조선 전쟁 전사, 한국 전쟁 전사라고 하는 책이
1:471 minute, 47 seconds나왔습니다.이 책이 나온 이후로 21년 만에 20년이 넘어서
1:541 minute, 54 seconds한국에서는 남상구 조윤수라고 하는 두 분의 노력 결과 한국 전쟁 전사라고
2:022 minutes, 2 seconds하는 책이 나와서 우리가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거의 700쪽이 넘는 요즘 하는 말로 이른바 벽돌책이라고
2:102 minutes, 10 seconds할만큼 굉장히 두툼한 책이 되어 있습니다. 전사라고 하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전쟁의 모든 것을
2:192 minutes, 19 seconds담으려고 했다라고 하는 그러한 의미를 담은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2:242 minutes, 24 seconds한국어판을 내면서 저자인 와다 교수가 따로
2:302 minutes, 30 seconds서문을 썼습니다. 오늘 우리가이 책을 내용을 보는데 앞서서 와다 교수가
2:382 minutes, 38 seconds무슨 마음으로이 책을 썼는가? 그리고 그것이 본인이 오랫동안 소망해 왔던 것처럼 한국인 독자에게 이게 전달될
2:462 minutes, 46 seconds때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이 책을 썼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아, 그거를 먼저 읽어보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2:582 minutes, 58 seconds남북한 국민이 3년간의 전쟁을 과거의 일로 흘려보내고 평화를 향해 뚜벅뚜벅
3:053 minutes, 5 seconds걸어 나가려면 쌍방 모두 무력으로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전쟁의 발을 담갔다는 공통 인식을 가져야 한다.
3:143 minutes, 14 seconds또 그러한 전쟁을 함께 반성하고 서로에게 사할 필요가 있다.이 이 전쟁에 대한 공통 인식이 없는 한
3:243 minutes, 24 seconds나아가 반성과 사의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한 민족은 공존과 평화를 향해
3:303 minutes, 30 seconds도약할 수 없다. 한국 전쟁에 대한 공통 인식의 형성은 독립된 국토 위에
3:373 minutes, 37 seconds두 나라가 건설된 후 무력으로 통일 국가를 세우려는 기도가 북에서 먼저
3:433 minutes, 43 seconds시작됐고 뒤어 남에 파급되으나 모두 실패하면서 대립과 분단이
3:513 minutes, 51 seconds고착화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 이렇게 한국어판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즉이 책이 나온지
4:004 minutes한국어로 번역되는데 20년이 걸린 그러한 상황에서도 여전히이 지역의 평화로의 길이 막혀
4:084 minutes, 8 seconds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간절히 바라는 그러한 마음이 한국어 서문에
4:174 minutes, 17 seconds있습니다. 그이 한반도의 평화와이 지역의 평화 질서를 위해서 남한과
4:254 minutes, 25 seconds북한이 함께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것을이 책을 통해 생각해 달라라고 하는 그러한 말로 어
4:324 minutes, 32 seconds느껴집니다. 자, 그렇다면은 와드하루끼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하는 거를 간단히 좀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현재 도쿄 대학 명예 교수로
4:424 minutes, 42 seconds계신데요. 1938년도에 시소호가 시에서 출생을 했습니다.
4:474 minutes, 47 seconds그리고 1956년도에 도쿄 대학 서양 사학과 입학을 해서에 4년 만에 졸업을 하면서 졸업과 동시에 도교대학
4:574 minutes, 57 seconds사회과학 연구소의 조수로 취임을 하게 됩니다. 예. 일반적으로 일본에서 도쿄 대학에서 조수로 취임을 하게
5:045 minutes, 4 seconds되면은 교수로 가는 코스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러니까 서양 사학과에서 특히 러시아사를 전공한 학생으로서
5:125 minutes, 12 seconds매우 두 각을 나타내고 있었다라고 하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5:175 minutes, 17 seconds그리고 난 다음에 도교대학 사회과학 연구소에서 조수로 출발한 이후에 강사 조교수 교수를 겪어서 98년도에
5:265 minutes, 26 seconds퇴임을 하면서 바로 명예 교수가 되어서 지금까지 연구를 하면서 여러 가지 식들을 지금도 왕성이 출판을
5:355 minutes, 35 seconds하고 있는 연구자입니다. 그런데 특히 주목할 점은 와다 하루끼라고 하는 이름 앞에 늘 전후 지식인이라고 하는
Haruki Wada
5:445 minutes, 44 seconds말이에 따라붙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를 갖느냐 하는 건데요.
5:505 minutes, 50 seconds전후 지식인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일본의 과거의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를 철저히 반성하는 태도를 가지고
5:585 minutes, 58 seconds있고 전후 일본이 내걸었던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국건이 신념으로 어
6:066 minutes, 6 seconds체화해서 전후에 일본이 새로운 국가로 탄생해야 한다는 그러한 생각을 연구와
6:136 minutes, 13 seconds직접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라고 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와다하루가 왜 혁명기 러시아
6:226 minutes, 22 seconds연구에 관심을 가졌는가라고 하는 것도 설명이 되는 거 같습니다. 즉 과거와 단절에서 새로운 국가를 만들고자
6:326 minutes, 32 seconds분투했던 사람들이 혁명기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본인의 삶
6:396 minutes, 39 seconds속에서 커다란 관심으로 어 떠올랐던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6:446 minutes, 44 seconds그러면서 한편에서는 어 세계를 의식하기 시작했던 소년의 마음속에
6:516 minutes, 51 seconds굉장히 깊은 잔상으로 남아 있던 한국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소장파의 연구자로서 다시 커다란 주제로 어
7:007 minutes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 베트남 반전 운동이었습니다.
7:057 minutes, 5 seconds일본이 베트남 전쟁에 전쟁 기주로 위치어져 있다라고 하는 거에 대한 반성. 베트남으로 가는 무기들을
7:137 minutes, 13 seconds보내지 않아야겠다. 보내지 말아야겠다라고 하는 그러한 의미에서 어 전개되었던 반전 운동에 앞서
7:207 minutes, 20 seconds나가던 그러한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권위주의 체제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위해 노력하고 있던 사람들을 물심
7:297 minutes, 29 seconds양면으로 지원하고 있었던 그런 30대 소장 학자에게 한국 전쟁이라고 하는
7:357 minutes, 35 seconds주제가 언젠가는 학문의 대상으로 연구의 대상으로 마주해야 할 것 같다라고 하는 생각이 자리잡 잡고
7:447 minutes, 44 seconds있었고 그것이 커지고 있던 상황에 있었다라고 하는 것이 오늘 소개하는 책의 어떤 문제 의식의 기원에 있었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557 minutes, 55 seconds결국 와다에게는 아시아 침략 전쟁의 극복이라고 하는 과제와 일본이 지원했던 한국 전쟁이라고 하는 것을
8:058 minutes, 5 seconds극복하는 과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고 한국 전쟁 이후라고 하는 이중의 전후 극복의 과제로 떠올랐던 것입니다.
8:168 minutes, 16 seconds그래서 그에게 러일 전쟁이라고 하는 대작과 한국 전쟁 전사라고 하는 대작
8:238 minutes, 23 seconds두 개의 대작을 낳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Haruki Wada
8:298 minutes, 29 seconds와다하루끼라고 하는 전후 지식인의 내면 세계를 본인의 스스로의 말로 어 얘기해 주고 있는 책이 두 개가
8:378 minutes, 37 seconds있습니다. 일종의 회고록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그런데 회고록이라기보다는 본인 자신을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
8:458 minutes, 45 seconds삼아서 본인이 분투했던 시대상과 겹쳐 놓아서 그 시대를 재구성하려고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고도 할 수
8:548 minutes, 54 seconds있겠는데요.이 두 개의 책 속에서이 책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라고 하는 걸 우리가 또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9:029 minutes, 2 seconds어떤 전후 정신의 형성이라고 하는 책이고 회상 시민운동의 시대와 역사가라고 하는 책입니다. 그 앞서
9:119 minutes, 11 seconds소개한 책이 탄생에서부터 65년까지 즉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사회과학 연구소의 조수로 취임해서 막 연구자가
9:209 minutes, 20 seconds되기 시작했던 그 시점까지를 반추했던 책이라고 한다면은 본격적으로
9:289 minutes, 28 seconds베트남 반전 운동에 뛰어들면서 시민 운동음 속에서 연구를 하면서 스스로
9:369 minutes, 36 seconds느꼈던 것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았던 것 이런 것들을 정리해 낸지 책이 두 번째 책입니다.이 두 개의 책을 읽는
9:439 minutes, 43 seconds것이 한국 전쟁 전사를 이해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될 거다. 이렇게 생각이 되어서 와다하루기 교수를
9:519 minutes, 51 seconds소개하면서이 책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런 와다하루끼 교수는 러시아 연구 출발했고
Haruki Wada
10:0010 minutes주로 연구는 러시아 연구를 해 왔습니다만 일본인으로서 러시아를 연구를 할 때 그 사이에 있는 한반도
10:0910 minutes, 9 seconds문제를 비켜날 수 없다라고 하는 문제 의식에서 한반도와 여러 형태로 어 관계를 맺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국
10:1810 minutes, 18 seconds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의 벗이라고 하는 또 별명을 얻게 됩니다. 아, 그것은 한국에서 수요한 여러 가지
10:2710 minutes, 27 seconds상을 통해서 그러한 모습을 우리가 확인할 수가 있겠는데요. 제일 먼저이 수상했던 것이 제4회 후강 김대중 학술상이었습니다.
10:3710 minutes, 37 seconds2010년도였습니다.
10:3910 minutes, 39 seconds그리고 난 다음에 강원도에서 수요하는 제8회 DMG 평화상이라고 하는 것을 2012년도에 수상한 바가 있고요.
10:4810 minutes, 48 seconds또 2019년도에는 제23회 만해 대상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아 이러한 상들은 그동안의
10:5710 minutes, 57 seconds연구와 활동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한국의 민주주의에 기여했던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었다고 할 수
11:0511 minutes, 5 seconds있겠습니다. 실천적인 지식인이면서도 대단한 수의 연구 업적을 내고
11:1211 minutes, 12 seconds있습니다. 여기에는 단독 저서 중에서도 주교 단독 저서만을 올려
11:1911 minutes, 19 seconds봤습니다. 단독 저서 가운데 한 2분 정도를 출인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니까 여기에 올라와
11:2611 minutes, 26 seconds있지 않은 단독서도 꽤 많다라고 하는 거를 이해해 주시면 좋겠고요. 주로 이와 관련된 주자들이지만 단저가 아닌 공저들이 또 거의 비슷한 수 있고요.
11:3811 minutes, 38 seconds또이이 단독서 목록의 한 절반 정도의 번역서 같은 것들이 또 있습니다. 번역서와
11:4711 minutes, 47 seconds번역 간단한 번역 논문 같은 것들이죠. 그런 것들이 또 있다라고 하는 거를 알아 [콧방귀] 주시면 좋겠습니다.
11:5311 minutes, 53 seconds예. 주로 어떤 주제로 연구를 해 왔는지 여기에서 우리가 확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애초의 출발점이 러시아
12:0012 minutes혁명이었다라고 하는 거를 말씀드렸던 적이 있는데요. 러시아 혁명을 연구하면서도 어 러시아 혁명의 전위나
12:1012 minutes, 10 seconds그러니까 공산당이나 전위나 지식인들보다는 러시아 혁명 속에 있는 군상들,
12:1812 minutes, 18 seconds민중들에 대한 관심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12:2212 minutes, 22 seconds그래서 나로니키라든지 농민 혁명이라고 하는 거를 주제로 삼아서 러시아 혁명을 연구했다라고 하는 것이에
12:3012 minutes, 30 seconds일본의 러시아 연구자, 러시아 혁명 연구자 중에서 좀 특이한 점이다라고 하는 거를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12:3812 minutes, 38 seconds바로 그러한 연구 태도가 한국에 대한 시선에도 어 적용이 됐던 거 같습니다. 여기에 보면은 제일 처음
12:4612 minutes, 46 seconds한국과 관련된 서적이 한국 민중을 바라보는 자세라고 하는 책이었습니다.
12:5312 minutes, 53 seconds1981년이니까 광주의 잔상 속에서 한국의 민중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라고 하는 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3:0113 minutes, 1 second그러니까 러시아 혁명에서 시작해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관심이 이행을 했했고요. 그러면서도
13:0913 minutes, 9 seconds한편으로는 러시아와 일본의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여러 저작들을 만들어냈습니다.에
13:1713 minutes, 17 seconds그 저작의 완결판이이 가운데 단의 맨 밑에 있는 1로 전쟁,러 전쟁의
13:2513 minutes, 25 seconds기원과 개전에 관한 두 권의 두툼한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대한 관심은 나아가서 북한에 대한 관심이
13:3413 minutes, 34 seconds되었고 한반도 전체에 대한 관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두 번째 단의 제일 위에 있는 김일성과
13:4213 minutes, 42 seconds만주항일 전쟁이라고 하는 책으로 어 연장이 되었고 그러한 한국 민주주의와 한반도의
13:5013 minutes, 50 seconds항일 전쟁이라고 하는 두 가지가 합쳐지는 형태로 한국 전쟁 시리즈가 나오기 시작했던 거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13:5913 minutes, 59 seconds그리고 어 실천적인 지식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한반도에서 일본인이 관심을 가져야 할 커다란 두 개의
14:0714 minutes, 7 seconds문제에 대해서도 실천적인 관심을 가지고 움직여 왔었고 그것을 책으로
14:1414 minutes, 14 seconds정리해 냈습니다. 그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활동 속에서 나온 책
14:2114 minutes, 21 seconds그리고 북일 국정상화를 위해서 노력했던 과정에서 나왔던 책이 두 가지가 또 있을 수 있겠습니다.
14:3014 minutes, 30 seconds그리고 물론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 한일 관계에 대한 고민들을 녹여낸 그런 책들이 또 있습니다. 이러한
14:3814 minutes, 38 seconds저작들 속에서 이미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와다 하루끼라고 하는 연구자가이
Haruki Wada
14:4514 minutes, 45 seconds동북아시아의 언어에 모든 언어에 대단히 커다란 능력을 갖고 있다라고 하는 걸 우리가 알 수 있을
14:5114 minutes, 51 seconds것입니다. 한국 민중을 바라보는 그러한 과정에서 한글을 깨우쳐서 한글의 독해 능력을 갖추고요.
15:0115 minutes, 1 second또 김일성과 만주 항일 전쟁이라고 하는 연구를 위해서는 중국어 자료를 해독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는데 중국어
15:0915 minutes, 9 seconds자료를 읽기 위한 중국어 공부를 또 했습니다. 물론 일본인이기 때문에 일본어가 가능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15:1815 minutes, 18 seconds도쿄 대학에 들어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물론 영어 능력도 탁월합니다. 게다가 서양사학과에서
15:2615 minutes, 26 seconds러시아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러시아사 러시아어 능력이 또 탁월합니다.
15:3215 minutes, 32 seconds그니까 영어 러시아,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라고 하는이 동북아시아의 지역의 자료를 또는
15:4015 minutes, 40 seconds연구를 확인하기 위한 언어 능력을 골고로 갖추었다라고 하는 점이 와드 하루키라고 하는 연구자의 특장점이었고
15:4915 minutes, 49 seconds그것이 한국 전쟁 전사라고 하는 책에 고스란이 녹아들어 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즉 지금까지의
15:5715 minutes, 57 seconds연구자가 시도할 수 없었던 한국 전쟁 전사라고 하는 것이 와드하루기에 의해서 가능했던 것은 이러한
16:0616 minutes, 6 seconds도움기라고 해야 될까요? 여태까지 이러한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6:1216 minutes, 12 seconds이러한 그 와다 하루기의 연음 저작들은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어서 한국어의 한국어 서적이 매우 많이
16:2116 minutes, 21 seconds있습니다. 아마도 뭐 조금 더 확인을 해 봐야 되겠습니다만 한국의 가장 많은 독자를 보유하고
16:3016 minutes, 30 seconds있는 일본 연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적어도 한국
16:3716 minutes, 37 seconds현대사 한일관계, 동북아시아 국제 관계 또는 러시아 사회주의 이런 거에
16:4516 minutes, 45 seconds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와다 하루끼라고 하는 이름을 어딘가에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이
Haruki Wada
16:5216 minutes, 52 seconds됩니다. 네. 이러한 것도 한국에 대한 와다하루기의 관심이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이렇게 얘기할
17:0117 minutes, 1 second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은 이러한 연구 이력과 어떤 성장의 과정을 거쳐왔던 와다 하루끼라고 하는
17:0917 minutes, 9 seconds연구자가 어떠한 경우로 한국 전쟁 연구를 시작해서 이러한 결과를 냈는가라고 하는 것을 좀
17:1717 minutes, 17 seconds살펴보겠습니다. 한국 전쟁 연구라고 하는 것이 본격적으로 개시되는 것은 사실은 1980년대 미국의 외교
17:2517 minutes, 25 seconds사로가 본격적으로 공개되면서부터입니다.
17:3017 minutes, 30 seconds물론 1970년대, 특히 1970년대 중반서부터는 한반도 관련 미국 외교 사례가
17:3717 minutes, 37 seconds공개되고 했습니다만 본격적으로 그러한 사료들이 활용되어서 연구가 개시되는 것은 1980년대라고 할 수
17:4617 minutes, 46 seconds있겠습니다. 그런데 아까 보았던 것처럼 러시아의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반전 운동을 하던 와다 하루끼의
Haruki Wada
17:5517 minutes, 55 seconds시선이 한반도로 향했던 것이 1980년대였다라고 하는 점에서 바로 이러한 연구 경향과
18:0318 minutes, 3 seconds와다롭게 관심이 만났다라고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8:0818 minutes, 8 seconds그리고 1990년대 들어와서는 중국 측의 회고록과 마우저 문서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고요.
18:1718 minutes, 17 seconds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냉전이 붕괴가 되면서 소련이 붕괴가 되면서
18:2318 minutes, 23 seconds과거에 소리온의 아르후 아카이에 들어 있던 비밀 자료들이 대량으로 공개되어서 일반 연구자들이
18:3218 minutes, 32 seconds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하는 점에서 한국 전쟁 연구는 비약적인 발전의 단계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18:4018 minutes, 40 seconds물론 러시아어를 해독할 수 있었던 와다에게는 자료의 바다 아로 뛰어들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던
18:4818 minutes, 48 seconds것이었습니다.데 이러한 자료의 공개를 배경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18:5418 minutes, 54 seconds전쟁 연구를 시작했고 1990년대에 들어와서 와닿다는 연구 선과들을
19:0219 minutes, 2 seconds논문으로 조금씩 발표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연구 성과들을 5년 동안의 연구 성과들을 묶어서 어
19:1019 minutes, 10 seconds1995년도에 이와남미 서점에서 처음으로 출판했던 한국 전쟁 연구가 아까 제일 처음에
19:1719 minutes, 17 seconds소개해 드렸던 조선 전쟁 한국 전쟁이라고 하는 책이었습니다. 이것은 서동만고
19:2419 minutes, 24 seconds어 교수의 번역으로 2000년도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출판이 되었습니다.
19:3119 minutes, 31 seconds1999년도 판이 있으니까 그게 아마 최초의 출판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19:3619 minutes, 36 seconds그리고 난 다음에에이 시기의 대거 공개되었던 그러니까 공 러시아의
19:4319 minutes, 43 seconds아카에 비에서 공개되었던 것은 이미 1995년도 이전부터 공개가 되어 있었습니다만 그것이 일반 연구자가
19:5119 minutes, 51 seconds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공개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이 시점부터였기 때문에 이렇게 활용할 수 있는 러시아
19:5919 minutes, 59 seconds자료들을 본격적으로 분석을 해내서 그것으로 처음에 나왔던 조선 전쟁을 전면 면적으로 개정 출판하게 되었던 것이 조선전쟁 전사였던 것입니다.
20:1120 minutes, 11 seconds그리고 그거에 대한 개정 증복판이 나왔던 것을 2014년도에는 와다 하루귀의 오랜 벗신 프랭크
20:1820 minutes, 18 seconds볼드윈이라고 하는 사람이 영어로 번역을 해서 the Korean on international history라고 하는 제목으로
20:2620 minutes, 26 seconds영어로 출판이 되었고요. 그래서 와다 하루의이 조선 전쟁 전사는 영어권 연구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그러한
20:3520 minutes, 35 seconds저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 거의 한 10년의 더울을 두고 한국적 한국에서 번역이 되었던 것이고 오늘
20:4320 minutes, 43 seconds우리가 확인하고자 하는 그러한 책이 눈앞에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20:4820 minutes, 48 seconds한국 전쟁 전사가 출판이 되면서 한국에서는이 출판을 알리는 보도와 서평이 있더라습니다.
20:5720 minutes, 57 seconds23년도 여름이었던 건데요. 거의 모든 매체가이 번역번의 출판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어 그 딱 보기에도 알
21:0621 minutes, 6 seconds수 있듯이 보수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는 매체에서부터 진보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는 매체에서 공이이 와다
21:1521 minutes, 15 seconds하루기의이 책을 다루고 있다라고 하는 점이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콧방귀] 그만큼
21:2221 minutes, 22 seconds와드하루끼의이 책이 한국의 보수에게도 진보에게도 일정한 울림을 주는 그런
21:2821 minutes, 28 seconds책이었다라고도 하겠습니다.데 그런만큼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다라고 하는 얘기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은
21:3721 minutes, 37 seconds이제 본격적으로 어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네 책은 전체적으로 8장 구성으로 되어
21:4421 minutes, 44 seconds있습니다. 한국 전쟁의 발발 이전에 1949년의 위기를 먼저 다루고 있습니다. 그
21:5221 minutes, 52 seconds이유는 이따가이 장에 대한 설명에서 말씀드리겠는데요.
21:5621 minutes, 56 seconds그런 의미에서는이 전쟁은 1950년이 아니라 1949년도에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라고 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22:0522 minutes, 5 seconds그러면서이 책은 분명하게 개전 과정에서 북한이 선재적인 공격을 했다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고
22:1322 minutes, 13 seconds있습니다만 그 경위에 개전을 결심하고 전쟁을 시작하는 북한의 내부 사정을
22:2122 minutes, 21 seconds두 번째 장으로 설정을 해서 그 경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22:2722 minutes, 27 seconds그런다면은 파죽세로 북한군이 공격하는 전쟁 초기의 모습을 제3장에서 다루고 있고요.네
22:3622 minutes, 36 seconds번째는 그 미군이 참전 이후로 삼팔선까지 수복을 한 다음에 한미군이
22:4322 minutes, 43 seconds삼팔선 이북으로 북진하게 되는 그러한 결정과 경위 그에 대해서 중국군이 참전하게 되는 경의를네 번째 장으로
22:5122 minutes, 51 seconds다루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다시 삼팔선을 전으로 해서 전선이 교착된 뒤에 개시되는 정전 회담을 다루고
22:5922 minutes, 59 seconds있고 그 정전 회담이이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어 전개되고 있다라고 하는
23:0623 minutes, 6 seconds점 즉 전쟁의 당사자인 한국과 북한이 아니라 강대국 위주의 정전 회담 정전
23:1323 minutes, 13 seconds교섭이 되고 있다라고 하는 점을 5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제 6장에 들어와서 전선이 교착되어
23:2123 minutes, 21 seconds있는 상황에서 중국과 수련의 입장이라고 하는 것을 다루고 있는 제 6장이 있고요. 그다음에 7장에서는
23:3023 minutes, 30 seconds정전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전 내용 가운데서는이 전쟁에 참여했던 모든 국가의 입장을 골고루 다루고 있다라고 하는 점이 특징이 되겠고요.
23:4023 minutes, 40 seconds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한국 전쟁 이후에이 지역에 만들어진 동북아시아의 구조라고 하는 것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23:5123 minutes, 51 seconds우리가 다시 여기에서 아까는 이제 한국어판의 서문을 다루어 봤는데요.
23:5723 minutes, 57 seconds이것은 2002년도에에 발간되었던 일본어 책의 머릿말입니다만이
24:0624 minutes, 6 seconds머릿말을 다시 한번 좀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2002년도에 나온 책의 머릿말이라고 하는 걸 염두해 두시기 바랍니다.
24:1624 minutes, 16 seconds그래서 그 시점을 좀 염두해 두시고 읽어봐 주시기 바라겠는데요.
24:2024 minutes, 20 seconds한국 전쟁이 일어난지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즉 1950년에 일어난 한국 전쟁이라고 하는 것을 21세기에
24:2824 minutes, 28 seconds들어가서 21세기에 첫에 확인해 보는 그러한 내용이 되겠지요. 물론 출판은 2002년도입니다만
24:3724 minutes, 37 seconds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그러나이 전쟁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24:4324 minutes, 43 seconds2002년도 시점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만 그로부터 사반세기 25년이 지난
24:5124 minutes, 51 seconds2025년도에도이 전쟁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과거가 되지 않은 전쟁인 셈입니다. 지금도
24:5924 minutes, 59 seconds동북아시아에서 살아가는 우리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게 우리의 미래를 위해이 전쟁을
25:0625 minutes, 6 seconds되돌아보고 그 실태를 파악하고 의미를 선 성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25:1325 minutes, 13 seconds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러면서이 전쟁은 동북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끌어들인 동북아시아의 전쟁이었다.
25:2225 minutes, 22 seconds이러한 명제로 시작합니다. 즉이 전쟁은 동북아시아 전쟁이었다라고 하는 것이이 책의 매우 중요한 메시지인 것입니다.
25:3425 minutes, 34 seconds중국 혁명과이 전쟁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었다.
25:4125 minutes, 41 seconds남북한의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미국, 중국, 소련의 관계 더 나아가 일본과 타이의 관계가 확정되었다.
25:5225 minutes, 52 seconds또이 전쟁으로 미소 대립은 결정적인 단계로 진입하여 초강대국의 군사
25:5825 minutes, 58 seconds대치라는 냉전 체제가 본격화되었다라고 소개하고 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26:0426 minutes, 4 seconds2002년도의 기술입니다만 지금 읽어도 변하지 않는 그러한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26:1226 minutes, 12 seconds같습니다. 그래서이 책은 한국 전쟁을 동북아시아 전쟁으로 규정짓고 검토한 것이다라고 하는 입장을 먼저 천명하고
26:2226 minutes, 22 seconds들어가고 있고요. 동북아시아의 모든 국가와 섬, 남북한, 소련, 중국, 미국, 일본, 타이완, 오키나와라고
26:3126 minutes, 31 seconds하는 섬까지 포함해서이 전쟁에 이들 국가와 지역이 깊이 관여했고 또이
26:3926 minutes, 39 seconds전쟁에 큰 영향을 받았다.라고 라고 결론을 먼저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이 전쟁에 의해 그
26:4726 minutes, 47 seconds후 동부가시아의 구조가 만들어졌다라고 하는 본인의 입장을 먼저 전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26:5526 minutes, 55 seconds머릿말에서는 2002년 시점까지 있었던 한국 전쟁과 관련된 거의 모든
27:0127 minutes, 1 second연구를 소개하고 섭렵하고 그 중심 메시지를 확인한 다음에이를 비판적으로
27:1027 minutes, 10 seconds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러한 연구들이 입각했던 그 연구 당시의 자료 공개 상황을 확인하고
27:1827 minutes, 18 seconds있습니다. 아까 제가 1980년대에 공개된 자료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 한국 전쟁 연구의 본격적인 계시라고
27:2727 minutes, 27 seconds제가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때 그 말씀을 드리면서도 1970년대 중반의 자료 공개가 있었다라고 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27:3627 minutes, 36 seconds특히 1976년도에 미국에서 발관된 FRUS라고 우리가 보통 얘기하고 있는 외교 사료 어
27:4527 minutes, 45 seconds가운데 한국판 한국편이라고 하는 것이 출판되는 것이 커다란 의미를 가졌습니다.이
27:5327 minutes, 53 seconds이 시기의 이러한 자료들을 확인을 하면서 나왔던 연구들이 제임스 트레이, 윌리엄 스크 오고너기
28:0128 minutes, 1 second마사오, 브루스 커밍스, 존 할리데이 게벤 마코맥, 컬럼 맥널드, 로즈마리 푸 사사키 하루타카, 김학준 등의
28:0928 minutes, 9 seconds연구들이었습니다.에 한국 전쟁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이들 연구를 아마 검토를 했을
28:1828 minutes, 18 seconds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아, 저 또한 한국 전쟁을 연구를 하면서 대학원 시절에 이들 연구들을 검토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제가 이제 일본에
28:2628 minutes, 26 seconds유학했을 시점쯤에서 나왔던 책들인데요. 1990년대에는 중국 측의 주요 인사들의 회고록이
28:3328 minutes, 33 seconds나오기 시작했고 가장 중요하게는 마오저 등등과 관련된 문서들이 공개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미군이에
28:4128 minutes, 41 seconds노ექ해 갔던 북한의 문건이에 공개되어서 그것을 일부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 이러한
28:4928 minutes, 49 seconds자료들을 활용을 해서 주로 중국의 연구자들과 이러한 자료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된 일본 한국의 연구자들이
28:5728 minutes, 57 seconds연구를 냈던 것이 90년대 중반 이후의 상황입니다. 그래서 쉬엔 지더슈에
29:0529 minutes, 5 seconds헝슈에 조지엔롱 젠 장슈광이라고 하는 중국의 연구자들 그리고
29:1329 minutes, 13 seconds하기와라오라고 하는 일본의 연구자 그리고 한국에서는 박명림 서동만 이런 연구자들이 본격적인
29:2229 minutes, 22 seconds국제 동부가시의 국제 관계사로서의 한국 전쟁 연구를 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 중국과 북한,
29:3229 minutes, 32 seconds아직 러시아까지는 아닙니다만 중국과 북한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으면서 한국 전쟁 연구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29:3929 minutes, 39 seconds수 있게 되었던 것이이 시기의 이러한 연구들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자료가 공개되면서
29:4729 minutes, 47 seconds새로운 연구들이에 본물 터지듯 나왔던 것이 90년대 중반 이후이겠는데요.
29:5429 minutes, 54 seconds주로 이제 러시아인 러시아 해독이 가능한 러시아인들과 러시아 자료가 가능한 해독이 가능한
30:0230 minutes, 2 seconds중국 연구자가 이러한 연구들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주된 연구자들을 소개하자면 캐슬린 웨더스피,
30:0930 minutes, 9 seconds알렉산드르 만수로, 예브게니 바노, 나탈리아노바 부부, 그다음에 아나톨토르크노프,
30:1730 minutes, 17 seconds보이텍 마스터닝, 블라디스러브 주복 이런 연구자들입니다. 주로 러시아 또는 동구 출신의 동유럽 출신의
30:2530 minutes, 25 seconds연구자들이 이런 연구들을 담당해 왔고 캐슬린 웨더스비가 지휘하는 윌슨 센터의 국제
30:3330 minutes, 33 seconds냉전사 연구 팀의 자료들을 주로 활용해서 연구들을 해 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다음에 중국인 연구자인
30:4230 minutes, 42 seconds천수화도 러시아 측들을 읽으면서 중국인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연구를 했던 것이이 시기의 연구들입니다.
30:5130 minutes, 51 seconds2000년대가 되면은 2000년이면은 한국 전쟁 50주년이었던 상황인데요.
30:5730 minutes, 57 seconds중국에서도 참전 50주년을 기념하는 책이 몇 가지가 나왔었습니다. 그니까 중국 군사 과학원 군사 역사 연구부의
31:0531 minutes, 5 seconds항미원조 전쟁사라고 하는 세 권의 책이 나왔고 자료집에 해당하는 연구들입니다만 그다음에 펑션즈 리지에
31:1431 minutes, 14 seconds체젠 등의 연구자들이 중국 참전 50주년을 기념해서 나온 여러 가지 자료들을 가지고 또 새로운 연구들을
31:2131 minutes, 21 seconds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일본의 관여를 밝히는 자료집과 같은 연구서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 중에
31:2931 minutes, 29 seconds하나가 야마사키 시즈오라고 하는 사람의 책이었고요. 그다음에 제가 아 일본의 자료들을 가지고 연구를 했던
31:3731 minutes, 37 seconds것이이 시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연구들을 가지고 2000년도에 확인 논문으로 제가 발표했던 것이 일본
31:4431 minutes, 44 seconds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을 거라고 생각이 됐고요. 그다음에 또 이러한 자료들을 활용해서 기왕에 있던
31:5231 minutes, 52 seconds자료들의 연구들에 새로운 버전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한국, 타이완 국내 상황을 갖다가 추적하는
31:5931 minutes, 59 seconds연구들이 또 나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럼 와다 하루기가이 책을 쓰는 시점에서는 거의 모든 주제
32:0732 minutes, 7 seconds그리고 거의 모든 국가들의 자료들이 펼쳐져 있는 상황에서 연구를 할 수 있었다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한 것들이 녹아들어 있는 그러한 한국
32:1632 minutes, 16 seconds전쟁 전사라고 하는 것을 이제 본격적으로 각각의 내용들 확인을 하면서이 책을 소개해 드리고자
32:2432 minutes, 24 seconds합니다. 자, 그러면 제1장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처음에 장 구성을 말씀드리면서 한국 전쟁은
32:3232 minutes, 32 seconds실제로는 1949년의 위기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좀
32:3832 minutes, 38 seconds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실은 와다 하루기를 비롯해서 한반도의
32:4632 minutes, 46 seconds구조적인 측면에서 한국 전쟁의 원인을 찾는 사람들은 사실은 1948년도에
32:5332 minutes, 53 seconds8월에서 9월 사이에 한반도에 이미 두 개 국가가 탄생한 데에서부터 한국 전쟁은 배태되어 있었다 이렇게
33:0233 minutes, 2 seconds이해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 이유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33:0733 minutes, 7 seconds대한민국 헌법 재헌 의회에서 채택했던 대한민국 헌법의 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33:1533 minutes, 15 seconds부속도서로 한다라고 되어 있어서 삼팔선 2북에 있는 이른바 그쪽에서 주장하는 정부 형태의 것들은 인정할
33:2433 minutes, 24 seconds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 정신이 되었습니다.
33:2933 minutes, 29 seconds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헌법을 채택하고 그 헌법의 제103조에는
33:3733 minutes, 37 seconds조선민주의 인민공화국의 수도 수부는 서울이다라고 되어 있어서 삼팔선 이남에 있는 정부를 부정하는 내용에
33:4633 minutes, 46 seconds조항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구조가 이때 완성이 되었고 두 정부가 모두
33:5533 minutes, 55 seconds한반도를 완전히에 자신의 영토로 삼는다라고 하는 것을 목표로 내거는 그러한 구조가 탄생을
34:0434 minutes, 4 seconds했던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국토 완정이라고 하는 슬로건으로 그것을 표현했었고요.
34:1034 minutes, 10 seconds이거보다는 조금 뒤늦게 등장한 용어입니다만 등장한 슬로건입니다만 한국에서도 당시 이승만 정권이 또는
34:1934 minutes, 19 seconds이승만 정권을 지지하는 그룹에서 북진 통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이 시기까지는 아직은 구호의 측면이었다고
34:2834 minutes, 28 seconds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더 이상 구호가 아니라 실력을 갖춘 것으로 나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었던
34:3734 minutes, 37 seconds것이 1949년도이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일성과 박헌영이 먼저 움직였던 것으로 어 보입니다.
34:4734 minutes, 47 seconds당시 북한에 주제하고 있던 슈티커 소련 대사를 접견을 하면서 김일성과
34:5434 minutes, 54 seconds박헌영은 소련 방문을 강력히 희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소련을 방문해서 스탈린과 단판을 통해 조소
35:0435 minutes, 4 seconds군사 동맹 조약을 체결해 줄 것을 희망하는 내용으로 슈티코프에게
35:1035 minutes, 10 seconds방소를 주장했습니다. 다만이 시기에는 소련은 한반도의 군사적인 충돌를 우려하는 입장에서 조약 체결을
35:1935 minutes, 19 seconds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아,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북한 지도부의 적극성. 아직은 이거에 대해서
35:2835 minutes, 28 seconds소극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소련이라고 하는 구도를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35:3435 minutes, 34 seconds비슷한 구도가 남안에서도 보여졌습니다. 1949년 2월 달에 이승만은 로얄 미유군 장관을 접견을
35:4335 minutes, 43 seconds하면서 [콧방귀] 군대를 증가하고 장비와 무기를 공급해 단시일 내 북한으로 북진하고 싶다는 의견을
35:5235 minutes, 52 seconds전달합니다. 이에 대해서 무치 주한 미국 대사는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36:0236 minutes, 2 seconds북한에서 있었던 곳과 비슷하게 거의 비슷한 시기입니다만 남안에서도 이승만
36:0836 minutes, 8 seconds정부가 적극적인 그러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대해서 즉 힘에 의한 통을 하는 그러한 적극적인 입장을 내비치는
36:1736 minutes, 17 seconds거에 대해서 미국 쪽에서이를 말리는 그러한 구도를 여기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확인할
36:2336 minutes, 23 seconds수 있는 것은 미국이나 소련의 의사와 관계 없이 즉 국제정세의 변동과 상관없이
36:3236 minutes, 32 seconds한반도의 두 개 국가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하는 것이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짓는
36:4036 minutes, 40 seconds가장 근본적인 요소였다라고 하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내전 어로서의 한국 전쟁음
36:4836 minutes, 48 seconds관이라고 하는 것이 여기에서 나올 수 있겠고 내전의 비중이 상당히 컸던 그러한 전쟁이라고도 할 수
36:5736 minutes, 57 seconds있겠습니다. 그러나 물론 당연히 한국과 북한은 자신의 의지로만 전쟁을
37:0437 minutes, 4 seconds시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각각의 뒤에 있는 소련과 미국의 의사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37:1237 minutes, 12 seconds때문에 국제정세 상황적인 변화라고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37:1937 minutes, 19 seconds본질적으로는 한반도의 두 개 국가의 의도라고 하는 것이 중요했지만이를
37:2637 minutes, 26 seconds감싸고 있는 미국과 소련의 상황적인 판단이라고 하는 것이 거기에 외부 요인으로서 중요한 상황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37:3737 minutes, 37 seconds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거에 대해서 수련이
37:4437 minutes, 44 seconds긍정적인 시그널을 보여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정적인 개의가 되었던 것은 사실은 한반도 문제가 아니라 중국 대륙이었습니다.
37:5437 minutes, 54 seconds와다에 따르면 동북아시아의 정세 전방에 큰 전기를 가져온 것은
38:0138 minutes, 1 second1949년 말부터 이듬의 초 1950년 초에 걸쳐 만들어진
38:0838 minutes, 8 seconds상황이었고 그것을 만든 것은 마우저뚱이었습니다. 즉 마우저뚱의 모스크박 방문이라고 하는 것이
38:1738 minutes, 17 seconds결정적인 변화의 계기였다. 즉 상황이 변했다라고 하는 것이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한반도의 두 개
38:2638 minutes, 26 seconds국가가 가지고 있는 의도라고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했다고 한다면 1949년 말에서 1950년 초까지의
38:3638 minutes, 36 seconds며칠 동안 한 달 이내에 그 며칠 동안이 상황 변화를 만들어 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38:4338 minutes, 43 seconds조금 더 세밀하게 보겠습니다. 바로이 부분이이 책에서 하나의 대미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물론이 부분을
38:5138 minutes, 51 seconds구성한 것이 소련에서 어 공개되었던 자료들이었습니다. 1949년 12월 16일에 스탈린과 마오의 최초의 회담이 모스크바에서 열립니다.
39:0339 minutes, 3 seconds이때 마오는 스탈린이 장석의 국민당 정보와 체결했던 여기에 중국은 중화민국이죠. 그런
39:1139 minutes, 11 seconds의미에서 중하민국과 소련 사이에 우호동맹 조약의 개정 문제를 꺼냈습니다.
39:1939 minutes, 19 seconds즉 대륙에서 중하인민 공화국이 성립했으니 장석의 중국과 맺었던
39:2639 minutes, 26 seconds우호동맹 조약은 이제 파기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새로운 조약을 맺어야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는
39:3439 minutes, 34 seconds것이 마오의 타진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스탈린은 매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39:4239 minutes, 42 seconds형식적으로는 중소 우호 동맹 조약을 유지하면서 내용적으로 변화를 가져오는 것도
39:5039 minutes, 50 seconds하나의 방법이 아니겠느냐라고 하는 그러한 반응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마오는 크게 실망한 모습이
39:5839 minutes, 58 seconds영역했습니다. 그러던 상황이었는데 그로부터 한 20일 정도 지난 상황에서 스탈린의 태도가 변화하는
40:0540 minutes, 5 seconds것이 살짝 보였습니다. 그것은 코멘 기관지를 통해서였습니다.
40:1040 minutes, 10 seconds코멘이라고 하는 것은 유럽에서 만들어진 소련과 당시에 출연했던 사회의 국가들 사이의 협력을 논의하는
40:2040 minutes, 20 seconds그러한 국제 기구였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 코민 포럼에서 만들어내는 기관지에 스탈린의 논문이
40:2840 minutes, 28 seconds실렸습니다. 코인 기관지는 연구 평화와 인민주의를 위해라고 하는 제목으로 나왔던 것이었는데요. 거기에
40:3540 minutes, 35 seconds일본 공산당을 지목을 해서 일본 공산당이 미국과 대결할 것이 필요하다. 일본 공산당이
40:4540 minutes, 45 seconds미국을 일본 군주의로부터 해방하는 그러한 역할을 했던 해방군으로 보고 미군과
40:5340 minutes, 53 seconds협력을 해서 민주화를 달성한다라고 하는 노선을 견제하고 있던데 대해서 이거를 정면에서 부인하고 비판을
41:0141 minutes, 1 second하면서 일본 공산당이 미국과 싸우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미국과 본격적으로 싸워야 된다라고 하는 것을
41:1041 minutes, 10 seconds촉구했던 그러한 논설이에 개최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 이전까지의 방침을 크게 전환시키는 것이어서
41:1941 minutes, 19 seconds소련이 동아시아의 정세에서 무언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는 것을
41:2741 minutes, 27 seconds내비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이 이 논문은 물론 일본 공산당에게도 커한
41:3341 minutes, 33 seconds충격을 주었지만 북한의 김일성과 물론 모스크바였던 마오에게도 무언가 변화의 조심이
41:4141 minutes, 41 seconds보인다라고 하는 일본 공산당에게는 충격이었겠지만 이들에게는 무언가 희망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졌을 것
41:4941 minutes, 49 seconds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월 22일 날 갖게 된 스탈린과 마오의 회담 즉
41:5641 minutes, 56 seconds첫 최초의 스탈린 마오 회담에서부터 거의 한 달보다 조금 더 한 달하고 한 6일 정도가 지난 상황인가요?
42:0642 minutes, 6 seconds그 시점에서 가진 회담에서 스탈린이 결단을 하게 됩니다. 즉 중소 우호동맹 조약을 완전히 개정을
42:1542 minutes, 15 seconds하자. 즉 중화민국과 소련의 조약을 파괴하고 새로운 조약을 맺을 수 있다라고 하는 그러한 의사를 내비치게 됩니다.
42:2542 minutes, 25 seconds그러면서 매우 생생하게 스탈린의 발언이 소개가 되어 있는데요. 뭐 될 대로 되라지요라고 하는이 표현은
42:3442 minutes, 34 seconds한국어판에서 가져왔습니다만 조금 순화된 표현입니다. 조금 더 그 뉘앙스를 살리자면은 스탈린은 얄타 아
42:4342 minutes, 43 seconds회담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쓰 쓰레기 통해나 버려라 뭐 이런 표현이 되겠지요. 아 그러면서 이제 그 얄타
42:5142 minutes, 51 seconds시스템에서 확인되었던 미국과 소련 간의 협조 노선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폐기한다라고 하는 그런 표현이었습니다.
43:0043 minutes그러면서 일단 죄악을 바꾼다고 하는 입장에 우리 둘이 선다고 한다면 우리는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라고
43:0943 minutes, 9 seconds하는 그러한 발언도 함께 내비치게 됩니다.이 이야기는 무엇이냐라고 하는
43:1543 minutes, 15 seconds건데요. 중국에서 상황이 변해서 중하민국 대신 중하인민 공화국이
43:2343 minutes, 23 seconds소련의 상대가 된다고 한다면 이것은 아시아 대륙 전체 그리고 더 나아가서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을 포함한이
43:3243 minutes, 32 seconds지역에서 모든 것을 바꾸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하는 얘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얘기는 조금 더
43:4043 minutes, 40 seconds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한반도에서도 새로운 정책을 우리가 펼을 것이고
43:4943 minutes, 49 seconds일본에서도 일본 공산당으로 하여금 우리는 일본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된다라고 하는
43:5743 minutes, 57 seconds얘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중국, 한반도, 일본이라고 하는 동북아시아의
44:0444 minutes, 4 seconds총체적인 범위에서 우리는 혁명과 전쟁을 할 수 있다라고 하는 이야기가
44:1244 minutes, 12 seconds될 수 있겠습니다. 마오가 오히려이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랬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44:1944 minutes, 19 seconds마오 입장에서는 중소 우호 동맹 조약을 개정하는 정도까지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상황은
44:2844 minutes, 28 seconds조금 더 평화라고 하는 것을 유지를 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 신생 중하인민공화국이의
44:3644 minutes, 36 seconds국가 건설이라고 하는 거에 매진하겠다라고 하는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44:4144 minutes, 41 seconds그러나 만일에 정서의 변화를 이렇게까지 확대한다고 한다면 거기에 중국의 책임도 있을 수 있다라고 하는
44:4844 minutes, 48 seconds점에서 마오는 경계를 했다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탈린은 이러한 입장을 김일성에게도 전달을 합니다. 그게 1월 말입니다.
44:5944 minutes, 59 seconds스탈린은 김일성과 만나서 대화할 용이가 있다라고 하는 것을 밝혔던 것입니다. 이때 김일성은 1949년도
45:0845 minutes, 8 seconds1월 달 조소 군사동맹 조약을 맺고 싶어 했던 김일성입니다.
45:1445 minutes, 14 seconds군사동맹을 맺고 한반도에서 공세적으로 나하고 싶어 하는 그러한 김일성을 만난다라고 하는 것이고 그러한
45:2145 minutes, 21 seconds김일성을 만난다는 얘기는 김일성으로 하여금 행동하는 거에 대해서 일정한 이해를 하고 있다라고 하는 얘기가 될
45:2945 minutes, 29 seconds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4월 10일 김일성과
45:3645 minutes, 36 seconds박헌영 그리고 스탈린 간의 회담이 성사가 됩니다. 물론이 자리에서
45:4345 minutes, 43 seconds스탈린은 김일성과 박헌영이 구성하고 있던 어 무력 통일 노선이라고 하는 것을 승인하는 그런 내용 어이었다고
45:5245 minutes, 52 seconds할 수 있습니다. 다만 스탈린은 중국의 동지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45:5845 minutes, 58 seconds중국의 이해가 필요하다라고 하는 것을 확인을 했고 김일성은 그로부터 한 달 후에 베이징을 방문을 해서 마와
46:0746 minutes, 7 seconds회담을 갖고 중국의 이해를 구했던 것입니다. 스탈리는 북한의 지도부와 만나서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우려하는
46:1646 minutes, 16 seconds그러한 발언들을 했습니다. 그에 비해서 마우는 보다 직접적으로 일본군이 개입해 올 가능성을 고론을
46:2546 minutes, 25 seconds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김일성이나 박헌영은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일본군도
46:3246 minutes, 32 seconds개입하기 어려울 것이며 만일에 일본군이 개입해 온다 하더라도 북한군은 그것을 능히 물리칠 수 있을
46:4046 minutes, 40 seconds것이다라고 하는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하며 개전 준비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개전
46:4946 minutes, 49 seconds준비를 시작했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한 가지 여기에에 발제문에 올리지는 않습니다만
46:5646 minutes, 56 seconds6월이라고 하는 시점을 선택하는 그런 배경에는 물론 절기상의 문제도 있었습니다만 즉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47:0647 minutes, 6 seconds시작한다라고 하는 그러한 생각도 있었겠습니다만 일본 혁명을 개시했던 일본 공산당의
47:1347 minutes, 13 seconds이론으로 활동하고 있던 제1 조선인들 즉 공산주의자인 제1 조선인들이 일본으로부터 빠져나와서
47:2247 minutes, 22 seconds북한에 들어와 일본의 상황을 보고하는 거에도 일정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라고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고
47:3047 minutes, 30 seconds와다 교수도 그러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스탈린의 승인을 얻고 마오의 동의를 얻어서 북한은
47:3847 minutes, 38 seconds본격적으로 공격을 준비를 했고 6월 25일을이 시점으로 해서 공격 명령을 하달을
47:4747 minutes, 47 seconds합니다. 와다 교수의 연구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적으로 러시아 쪽의 자료를 통해서 북한이
47:5647 minutes, 56 seconds선재적으로 공격을 했다라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확인이 되고 있었습니다만 여전히이 시점까지만 해도 커밍스와
48:0548 minutes, 5 seconds같은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수정의적인 입장에서 한국 전쟁을 연구했던 사람들 그런 그룹에서는
48:1348 minutes, 13 seconds북한의 행동보다는 당시의 구조 속에서 원인을 을 찾는 그러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물론 와다 하루끼도
Haruki Wada
48:2148 minutes, 21 seconds1949년도의 군사적인 대치 상황, 1948년도에 이미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러한 구도가 만들어지는
48:3048 minutes, 30 seconds상황 이러한 것들 속에서 전쟁의 원인을 찾고 있어서 구조로
48:3748 minutes, 37 seconds어 설명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만 거기에 더해서 와다하락귀는 분명히
48:4348 minutes, 43 seconds북한 지도부의 개전 명령이라고 하는 것을 전쟁 개시에 의 시점으로
48:5048 minutes, 50 seconds계기로서 확실히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북한 지도부의 책임이라고 하는 것을 와다
48:5748 minutes, 57 seconds교수는 긍정하고 있다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은 두 권에 노액된 미국이 노액해간 북한 문서에서
49:0649 minutes, 6 seconds확인되는 사실이었습니다. [콧방귀] 그 문서들에서는 훈련 명령이라고 하는 걸로 명령을 받고 전선으로 이동하고
49:1449 minutes, 14 seconds있던 보병 연대가 있었고 그들은 6월 23일 날 저녁에 훈련 명령이 아닌
49:2149 minutes, 21 seconds전투 명령을 받았고이어서 25일 오전 4십으로 공격을 개시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라고 하는 것을 여기에서
49:3049 minutes, 30 seconds확인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공병은 이미 6월 24일 밤부터 지뢰 해체 작업에 들어가서 25일의 공격을
49:3949 minutes, 39 seconds가능하게 하는 행동에 들어가 있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러시아 쪽의 자료에서
49:4749 minutes, 47 seconds확인되는 것인데 6월 26일에 즉 공격이 개시된 바로 직후에 평양의 슈티커프 대사가 모스크바에 있는
49:5449 minutes, 54 seconds소련군 참모자 하로오프 제1차장에게 보고하는 암호 전문에서도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50:0350 minutes, 3 seconds와다 교수는이 사실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즉 사전에 하달된 공격 명력 자체가 공격 명령 자체가
50:1250 minutes, 12 seconds한국군이 공격해 왔기에 반격하라는 명령이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한국군이
50:1950 minutes, 19 seconds공격해 오면 명 반격하라라고 하는 명력이 애초의 명령이었다라고 하는 것이었죠. 그러니까 한국궁이 공격해
50:2750 minutes, 27 seconds왔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다시 명령이 내려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의 명령이 한국군이 공격해 오는 것을
50:3550 minutes, 35 seconds전제로 해서 반격하라라고 하는 명령이었다라고 하는 것을 러시아 쪽의 자료에서 확인을 했다라고 하는
50:4250 minutes, 42 seconds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미리 계획된 공격 작전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해서 아 북한 지도부의 선재 공격이라고
50:5150 minutes, 51 seconds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라고 하는 입장을 여기에서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와다 교수의이
51:0051 minutes부분에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인데 조금 논쟁적인 그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즉 UN에서
51:0951 minutes, 9 seconds이른바 안보리 결이라고 하는 것이 나올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을 전제로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1:1751 minutes, 17 seconds왜 소련은 어 UN 안보리에 복귀하지 않았는가라고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공개된 소련측의 자료에 따르면 제1
51:2651 minutes, 26 seconds외무성 차관인 그로미콘는 UN 안보리에 복귀할 것을 건의하고 있었고 이에 대해서 스탈린은
51:3551 minutes, 35 seconds말리크 유제 소련 대사에게 직접적으로 안보리에 참여하지 말라라고 하는 것을
51:4251 minutes, 42 seconds참여할 필요가 없다라고 하는 그러한 지침을 직접 내리고 있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51:5051 minutes, 50 seconds즉 스탈린에게는 안보이 불참이라고 하는 것이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한국
51:5951 minutes, 59 seconds전쟁이 만일에 개전되는 상황에서 미군과 소련이 아닌 국가들이 주도를
52:0652 minutes, 6 seconds해서 한국 전쟁에 개입하는 그러한 안건이 올라왔을 때 소련 입장에서는이를
52:1452 minutes, 14 seconds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는 그러한여 상황에 몰릴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러한 상황을
52:2352 minutes, 23 seconds회피하려고 하는 그런 행동이 아니었던가라고 하는 것이 와다하루기 교수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가 되는
52:3152 minutes, 31 seconds것은 소련측의 아까 말씀드린 그러한 자료였던 것입니다. 즉 스탈린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불참을
52:3952 minutes, 39 seconds분명하게 선택하고 있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이 한국 전쟁의
52:4952 minutes, 49 seconds계시라고 하는 것과 관련해서 설명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것이 와다르기 교수의 주장입니다. 제4장은 한국과
52:5752 minutes, 57 seconds미국 군대 북진과 이에 맞선 중국군의 참전을 논의하는 부분인데요.이 이
53:0553 minutes, 5 seconds부분에서 와다하루 교수의 주장은 개전 상황에서 북한이 주도하고 소련이
53:1353 minutes, 13 seconds승인을 하고 중국이 동의했던 것처럼 북진을 결정하는 데서도 한국이 주도
53:1953 minutes, 19 seconds어적인 입장에 있었고이를 미군이이 미국이 추인하는 그러한 관계였다라고
53:2653 minutes, 26 seconds하는 것을 주장하는 부분입니다. 즉 주미 한국 대사의 장면이 먼저 어
53:3353 minutes, 33 seconds북진을 강하게 요구하는음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북진을 강하게 요구하는음 그 이유는 UN 감독
53:4353 minutes, 43 seconds아래에서 북한에서 천거를 선거를 치르고 한국의 관할권을 북쪽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 즉 통일을
53:5053 minutes, 50 seconds하겠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통일 전쟁이라고 하는 것을 한국이 주장을 하고 있었고 그것을 UN군과
53:5853 minutes, 58 seconds함께 하겠다라고 하는 UN군의 지원을 얻어서 하겠다라고 하는 그러한 주장이었다고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에 대해서 미국측
54:0754 minutes, 7 seconds입장은 예컨데 덜레스와 같은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건데요. 기본적으로 어 북진의 새로운 의미, 새로운 목적을 부여하는 것에는 찬성할 수 있다.
54:1854 minutes, 18 seconds다만 미국이 먼저 그러한 결의를 한다라고 하는 것은 피하고 싶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소련이나
54:2654 minutes, 26 seconds중국이 일정한 그 제한 또는 북한이 북한 지도부가 UN군이나 한국군이 제한하는
54:3554 minutes, 35 seconds일정한 제한에 대해서 그것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경우에 그의 대응하는 모양으로 북진을 한다면은
54:4454 minutes, 44 seconds그것은 이해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 미국 쪽의 입장이었습니다.
54:4954 minutes, 49 seconds그리고 그것은 메가더에게 전달이 되었을 것이고요. UN군에 대한 일반 명령 10월 2월 달에 나오는 일반 명령으로 그것은 확인이 되었습니다.
55:0055 minutes즉 메가더는 더구나 현재에서 전쟁을 총괄하는 메가더 입장에서는 삼팔선은
55:0755 minutes, 7 seconds군사적 운영 측면에서 고려 요소가 아니라고 하면서 적걸 완전히 패배시키기 위해서 귀하의 부대 즉
55:1555 minutes, 15 seconds유엔군 여러 부대 지휘관들에게 내리는 명령이니까요. 귀하의 부대는 그 경계를 언제든지 넘어도 좋다라고 하는 명령을 10월 2일에 내리게 됩니다.
55:2755 minutes, 27 seconds아, 이것으로서 한국군과 미군이 또는 유군이 북진을 하게 되었고 이에 대해서 중국군은 참전을 논의하기
55:3555 minutes, 35 seconds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 중국 안에서는 마오처등은 상당한 정도로 적극적인 입장을 가지고
55:4355 minutes, 43 seconds있었으나 중국 국내에서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마오조등의 입장은 소수였던
55:5155 minutes, 51 seconds상황입니다. 따라서 이들을 설득하는데 스탈린의 의견이 매우 필요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스탈린에게
56:0056 minutes마오는 매우 적극적인 그러한 의견을음 요청을 했고 스탈린은 그러한 요청을 중국 공산당의 동지들에게 보냈던
56:0956 minutes, 9 seconds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우조등은 스탈린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처럼 해서 파병 결정을 내렸다라고 스탈린에게
56:1856 minutes, 18 seconds보고를 했습니다. 10월 8일은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중국의 참전 사실을 알리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56:2756 minutes, 27 seconds그러면서 스탈린은 이때 김일성에 대해서 당신은 땅 조각 하나라도 빼앗기지 말고 버텨야 합니다.라고
56:3656 minutes, 36 seconds원칙을 고소하라고 하는 입장을 북한 지도부에게 전달을 했던 것입니다.
56:4256 minutes, 42 seconds아, 여기에서 우리가 와다의 주장으로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국 정부의 주도와 미국의 양해라고 하는
56:5056 minutes, 50 seconds것이 북진 실상이었고 이에 대해서 김일성에게
56:5756 minutes, 57 seconds이른바 무력 통일를 동의했던 중국의 책임을 마오는 마오등은 혁명 전쟁의
57:0557 minutes, 5 seconds입장에서 동의하고 수락하고 있었으나 중국 내부를 설득하기 위해서 스탈린의 의견이 필요했고
57:1357 minutes, 13 seconds스탈린의 의견인 것으로 포장을 해서 참전을 하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이었죠. 그니까 여기까지는 적어도이 전쟁을 주도하는 것은 스탈린이었다.
57:2457 minutes, 24 seconds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제5장에서 어 와다 하루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정전 회담이라고 하는 것이
57:3357 minutes, 33 seconds주로 누가 주도했던 것인가라고 하는 것을 확인하는 부분입니다.
57:4057 minutes, 40 seconds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정전 회담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한국이나 북한의 입장보다는
57:4857 minutes, 48 seconds미국과 소련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중국이라고 하는 주변 강대국들의
57:5557 minutes, 55 seconds협상으로 진행이 되었다라고 하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그러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장 먼저 정전
58:0358 minutes, 3 seconds협상으로 기울었던 것은 스탈린이었다라고 와드하루끼는 보고 있습니다.
58:1158 minutes, 11 seconds1951년 6월 시점에서 스탈린은 상당한 정도로 진지하게 진정성을
58:1758 minutes, 17 seconds가지고 정전 협상을 개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다만 물론 즉시 정전은
58:2458 minutes, 24 seconds아 아니며 일정한 원칙을 확인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 있었습니다만 미국을 상대로 해서 정전 협상을 하는
58:3458 minutes, 34 seconds과정에서 정전쟁을 할 수 있다라고 하는 그러한 입장으로 스탈린이 선회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58:4258 minutes, 42 seconds그러면서 스탈린은 중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을 설득하고 있었습니다.
58:4858 minutes, 48 seconds그니까이 시점에서는 중국과 북한은 조금 더 원칙을 가지고 전쟁을 지속하겠다라고 하는 입장이었다고도 할
58:5658 minutes, 56 seconds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러한 스탈린의 정전 제한에 대해서 미국이 호응을 하면서 미국은 이승만을
59:0659 minutes, 6 seconds설득하는 그러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선동적인 성명이나 도발적인 행동으로 정전 협상에
59:1559 minutes, 15 seconds들어가고자 하는 미국을 방해하지 말아라. 미국을 방해함으로 인해서 미국인의 반감을 사지 않는 것이 지금
59:2359 minutes, 23 seconds당신에게 중요하다.라고 하는 내용으로 이승만을 설득을 하고 있었습니다. 6월 30일에는 리즈웨이
59:3159 minutes, 31 seconds총사령관이 중국과 조선측에 북한 측에 정전 회담을 개시할 것을 제안을 했고 7월
59:4059 minutes, 40 seconds2일에 중국측이이를 수락함으로써 7월 10일에 개성에서 처음으로 정전
59:4859 minutes, 48 seconds회담이 개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물론 이승만은 반발했습니다.
59:5459 minutes, 54 seconds한국에는 분할선이 계속되는 것을 우리 국민에 대한 죽음의 명령서로 간주한다라고 하는 것이 이승만의 입장이었습니다.
1:00:031 hour, 3 seconds그리고 결국 이러한 한국 쪽에 이러한 도발적인 발언과 그의 수반되는 일정한
1:00:121 hour, 12 seconds행동이라고 하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이를 문제 삼으면서 중국과
1:00:191 hour, 19 seconds북한측이 협상 중단을 선언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이 시점에서
1:00:261 hour, 26 seconds스탈린은 중국과 북한측의 이러한 원칙적인 입장에 대해서 동의를 하면서
1:00:321 hour, 32 seconds전쟁의 지속이라고 하는 입장으로 정리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 북한측의 기본적으로 원칙적인
1:00:401 hour, 40 seconds입장이라고 하는 것은 10월 21일에 평양시 당 활동가 회의에서 나왔던 김일성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00:501 hour, 50 seconds즉 미제국주의자와 이승만 역도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장기적으로 싸워야 한다라고
1:00:581 hour, 58 seconds하는 것이 기본적인 태도였던 것입니다. 즉 원칙을 고수하는 태도를 김일성은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1:01:061 hour, 1 minute, 6 seconds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거듭 말씀드리면은 스탈린과 미국이라고 하는
1:01:131 hour, 1 minute, 13 seconds두 강대국 배후에 있는 강대국이 정전 협상으로 기울고 있었고 실제로 전쟁을
1:01:201 hour, 1 minute, 20 seconds하고 있던 한국, 북한, 중국은 보다 원칙적인 입장에서 원칙을 관철하는 방향에서 전쟁 지속을 주장하고
1:01:291 hour, 1 minute, 29 seconds있었다라고 하는 거를 확인할 수 있다라고 하는 점입니다. 1951년 10월 25일에는
1:01:361 hour, 1 minute, 36 seconds판분점에서 정전 회담이 제개가 됩니다만 이거에 대해서는 UN군의
1:01:431 hour, 1 minute, 43 seconds공세에 대해서 마우조등이 먼저 회담 제개를 희망했던 그러한 경의가 보이고
1:01:501 hour, 1 minute, 50 seconds이거에 대해서 김일성이 결국은 동의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상황이 되었다라고 하는 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01:581 hour, 1 minute, 58 seconds즉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10월 21일에 당 활동가 회의에서 원칙적인 입장을
1:02:061 hour, 2 minutes, 6 seconds표명하고 있던 김일성이 마오쩌의 회담책의 희망을 받아들여서 이에 동의하는 장면이라고 하는 것이이 며칠 사이에 보인다라고 하는 것이죠.
1:02:161 hour, 2 minutes, 16 seconds그니까 북한 지도부 특히 김일성이 매우 어려운 입장에 있었다라고 하는 것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02:241 hour, 2 minutes, 24 seconds이러한 장면을 와다하루끼는 러시아 쪽 자료와 북한 쪽 자료 그다음에 중국 쪽의 자료를 가지고 매우 치밀하게
1:02:331 hour, 2 minutes, 33 seconds재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지의 사실처럼 포로 문제를 둘러싸고 회담은 교착 상태에 빠져서 전쟁을 지속하게 됐던 것입니다.
1:02:441 hour, 2 minutes, 44 seconds제장에서는 전쟁을 하는 가운데에 지속적으로 정전 협상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1:02:511 hour, 2 minutes, 51 seconds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아 이러한 전 어 정전 협상으로 나오게 되는 것은 공산측 즉 중국과 북한측이 조금 더
1:03:001 hour, 3 minutes적극적이었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그 배경이 되는 것은 1952년 6월 이후에 미국의 폭격이라고 하는 것이 배경이 됩니다.
1:03:111 hour, 3 minutes, 11 seconds대단한 양의 폭탄을 터트리면서 미국은 북한을 거의 초토화시키는 그러한 작전에 나섰던 것입니다.에 그런
1:03:191 hour, 3 minutes, 19 seconds가운데 김일성이 먼저 정전 협상을 타결하겠다라고 하는 입장에 서게
1:03:251 hour, 3 minutes, 25 seconds되었고 여전히 원칙을 고수하는 마우저 있는 반면에 김일성의에
1:03:331 hour, 3 minutes, 33 seconds이러한 태도 어 정정전 협상에 나서려고 하는 김일성의 태도에 스탈린이 일정하게 동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이 시기의 구도였습니다.
1:03:451 hour, 3 minutes, 45 seconds그래서 오히려 원칙을 고소하겠다고 하는 중국의 지도부를 스탈린이 설득하는 그러한 장면들이 보이기
1:03:531 hour, 3 minutes, 53 seconds시작합니다.에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저월인은 스탈린에 대해서 북한 측이 매우
1:04:011 hour, 4 minutes, 1 second동요하고 있다라고 하는 상황을 전달합니다.
1:04:051 hour, 4 minutes, 5 seconds폭격으로 인해서 조선의 동지들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 그래서
1:04:121 hour, 4 minutes, 12 seconds원칙을 고수하지 못하면서 빨리 평화를 얻고 싶다. 즉 정전에 미국의 정전 안에 타협하겠다라고 하는
1:04:211 hour, 4 minutes, 21 seconds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보고를 합니다. 그에 대해서 스탈린은 겁을 먹게 하는게 미국의 전술이다.
1:04:291 hour, 4 minutes, 29 seconds그러나 당신들 중국인들은 매우 용감하게 지금 싸우고 있습니다.
1:04:361 hour, 4 minutes, 36 seconds당신들이 용감하게 싸우면서 북조선 지도부가 조금 더 원칙적으로 싸울 수 있게 할
1:04:431 hour, 4 minutes, 43 seconds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말은 매우 중국 쪽을 칭찬하는 것처럼 들리는 말입니다만
1:04:521 hour, 4 minutes, 52 seconds당신이 지속적으로 북한을 도와서 싸울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거를 물어보는 뉘앙스라고 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1:05:011 hour, 5 minutes, 1 second그로부터 한 달쯤 지나서 다시 스탈린과 저울라인을 만나서 어 회담을 합니다. 여기에서 스탈린은 여러
1:05:081 hour, 5 minutes, 8 seconds이야기를 한 끝에 매우 흥미 있는 말을 합니다.이 이 말에 대해서 와다는 매우 어 큰 의미를 부여하고
1:05:161 hour, 5 minutes, 16 seconds여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이 부분이 와다 체계의에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즉 무슨 얘기를
1:05:241 hour, 5 minutes, 24 seconds하냐면은이 회단 말미에 스탈린이 하는 말이 아 그들이 포로 문제로 여기에서 그들이라고 하는 것은 미국이죠.
1:05:331 hour, 5 minutes, 33 seconds미국이 포로를 억하고 있고이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은 그냥
1:05:411 hour, 5 minutes, 41 seconds돌려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들을 스파이 활동에 활용하기 위해서다라고 하는 미묘한 뉘앙스에
1:05:501 hour, 5 minutes, 50 seconds발언을 합니다. 그러면서 미국과 남한 한국은 파괴 공작을 버려서 내부에서 해체하려고 합니다.라고 하는 말을 저원라에게 미칩니다.
1:06:021 hour, 6 minutes, 2 seconds그러면서 이로부터 얼마 안 되어서 실제로 스탈린은 매우 이해하기 힘든
1:06:091 hour, 6 minutes, 9 seconds행동을 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52년 말부터 53년 초까지 일본 공산당과
1:06:161 hour, 6 minutes, 16 seconds조선 공산당에서 있었던 그러한 와닿는 분석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즉 일본
1:06:231 hour, 6 minutes, 23 seconds혁명을 위해서 싸우고 있던 그리고 그 전선에서 가장 전의적으로 싸우고 있던
1:06:291 hour, 6 minutes, 29 seconds이도 리즈라고 하는 일본 공산당원을 스파이로 몰아서 숙청하는 그러한
1:06:361 hour, 6 minutes, 36 seconds모습이에 52년 말에 있었던 모습입니다.
1:06:401 hour, 6 minutes, 40 seconds그러면서 53년 초에는 조선 공산당에서 박헌영파를 스파이로 몰아서 체포하는 그러한
1:06:491 hour, 6 minutes, 49 seconds상황이 전개가 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누가 보기에도 일본 공산당과 조선 공산당에게는 매우 커다한 타격이 될
1:06:571 hour, 6 minutes, 57 seconds것이고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커다한 충격을 주는 그러한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전쟁을
1:07:051 hour, 7 minutes, 5 seconds지속하려고 한다면 그들이 아무리 스파이라 하더라도이 스파이 죄목을 씌워서 체포를 하고 숙청을 하는 일은 공개적으로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1:07:171 hour, 7 minutes, 17 seconds따라서 와다의 분석은이 저월라이와 스탈린의 회담 말미에 있었던이 말을
1:07:241 hour, 7 minutes, 24 seconds해석을 하면서 이것은 스탈린이 이미이 시기부터 정전이라고 하는 거를 결심을 하고
1:07:341 hour, 7 minutes, 34 seconds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라고 하는 것으로 와닿다는 해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1:07:411 hour, 7 minutes, 41 seconds한반도에서 전쟁을 개시하는 시점에서 스탈린이 움직였던 것은 일본 공산당을 움직이고
1:07:501 hour, 7 minutes, 50 seconds한반도에서 적극적인 그러한 행동을 요구를 했던 것에 바로 거그로의 모습이 52년
1:07:571 hour, 7 minutes, 57 seconds말부터 53년 초에 전개가 되었던 것이죠. 즉 일본 공산당과 조선 공산당을
1:08:051 hour, 8 minutes, 5 seconds책임지우는 그들에게 책임을 씌우는 그러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던 겁니다. 즉 스탈린은 더 이상 전쟁을
1:08:131 hour, 8 minutes, 13 seconds이끌어갈 수 없다.이 이 전쟁을 승인했던 스탈린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러한
1:08:221 hour, 8 minutes, 22 seconds시나리오가 필요했던 것이고 그 시나리오는이 전쟁 패배의 책임 실패의 책임이라고 하는 것이 일본
1:08:311 hour, 8 minutes, 31 seconds공산당과 조선 공산당에게 있다라고 하는 그러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08:401 hour, 8 minutes, 40 seconds1952년 말 시점에서 이미 스탈린은 정전을 결정했다라고 하는 것이고 따라서
1:08:461 hour, 8 minutes, 46 seconds그것은 일반적으로 한국 전쟁의 정전 협정을 연구하는 많은 분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스탈린의
1:08:561 hour, 8 minutes, 56 seconds사망이라고 하는 것이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라고 하는 거에 대한 일정한 발론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정전을 결정하고
1:09:051 hour, 9 minutes, 5 seconds있었던 것도 스탈린이었다라고 하는 얘기가 되겠죠. 자, 그러면은 이제 제 7장에서는 정전 그 자체를 분석하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1:09:161 hour, 9 minutes, 16 seconds그리고 정전이라고 하는 것이 각국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가라고 하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내용이 제
1:09:231 hour, 9 minutes, 23 seconds7장의 내용입니다. 즉 정전이라고 하는 것을 누가 환영을 하고 누가이를 수긍을 하고 누가이를 반대를 하고
1:09:321 hour, 9 minutes, 32 seconds누가 이에 반발을 했는가라고 하는 부분이죠. 내심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개적으로 대회적으로 표명되는
1:09:391 hour, 9 minutes, 39 seconds그런 행동들을 그런 태도들을 보게 될 경우에 가장이 정전을 환영했던 것은
1:09:461 hour, 9 minutes, 46 seconds북한 지도부였습니다. 즉 53년도 7월 27일에 정전 협정이 조인된 바로 다음날
1:09:541 hour, 9 minutes, 54 seconds평양 광장에서 매우 많은 시민들이 나와 있던 상황에서 김일성이 연설을 합니다.
1:10:011 hour, 10 minutes, 1 second아, 그러면서 그 연설 가운데 김일성은 조선 전체를 식민지로 만들고
1:10:081 hour, 10 minutes, 8 seconds소련과 중국에 맞서는 군사 기지로 조선을 바꾸려고 했던 미제국주의자들의
1:10:141 hour, 10 minutes, 14 seconds기도를 분쇄하기 위해서 우리는 나섰고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결의가 우리의
1:10:221 hour, 10 minutes, 22 seconds승리로 귀결되는 이유가 되었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1:10:281 hour, 10 minutes, 28 seconds즉 정전이라고 하는 것을 역사적인 승리로 받아들이고이를
1:10:351 hour, 10 minutes, 35 seconds북한 시민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장면이 나왔던 것입니다. 적어도이 장면에서 봤을 때 김일성은 정전을
1:10:431 hour, 10 minutes, 43 seconds매우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라고 하는 걸 확인을 할 수가 있습니다.
1:10:471 hour, 10 minutes, 47 seconds그다음날 즉 평양에서 김일성의 연설이 있었던 그다음날 한국의 신문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1:10:551 hour, 10 minutes, 55 seconds성명이 발표가 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이라는 것이 공산측이 더욱 전진하여 오게 되는 서곡에
1:11:031 hour, 11 minutes, 3 seconds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을 하며 정전 조인의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라고
1:11:111 hour, 11 minutes, 11 seconds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북쪽에 있는 우리 강토와 동포를 다시 찾고 구해내는 목표는 결국 성취될 것이다라고 하는 말로 맺고 있습니다.
1:11:231 hour, 11 minutes, 23 seconds즉 이러한 이승만 대통령의 성명에서는 정전이 매우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라고 하는 뉘앙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11:341 hour, 11 minutes, 34 seconds이승만 대통령은 그런 의미에서 정전에 끝까지 반대하고 있었다라고 하는 것을 여기에서도 확인을 할 수가
1:11:421 hour, 11 minutes, 42 seconds있겠습니다. 같은 날 중국 중산공원에서는 경축대회라고 하는 이름의 시민 집회가 열렸습니다.
1:11:511 hour, 11 minutes, 51 seconds그리고 9월 달에는이 경축 대회에서 나왔던 그러한 공식적인 발표라고 하는 것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만
1:11:591 hour, 11 minutes, 59 seconds그로부터 며칠 지난 9월 12일 날 중앙정부 인민위원회에서의 강연에서 중국 공산당은 정전에 대해서 이렇게
1:12:081 hour, 12 minutes, 8 seconds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참전했던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동북 지방의 안보 불안을 해소를 하고
1:12:161 hour, 12 minutes, 16 seconds군사적인 경험을 축적을 하고 인민의 정치적인 각오를 제고를 시켰으며 제국주의의 새로운 중국 침략 전쟁을
1:12:251 hour, 12 minutes, 25 seconds지원시킴으로써 제3차 세계대전을 저지하는데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아 그런
1:12:321 hour, 12 minutes, 32 seconds의미에서 미국과 대항한이 전쟁은 승리의 전쟁이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이죠. 정전 그 자체도
1:12:401 hour, 12 minutes, 40 seconds중국에게는 승리의 전쟁이었다. 이렇게 중국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소련도 마찬가지입니다. 7월 28일 날
1:12:481 hour, 12 minutes, 48 seconds소련의 정부 기관지인 이즈베스치하는 평화와 민주주의 진영의 커다란 승리였다라고 정전을 표현하고
1:12:561 hour, 12 minutes, 56 seconds있습니다. 7월 26일에 아이즈나와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은 약간 다른 뉘앙스를 보여줍니다. 정전 협정을
1:13:031 hour, 13 minutes, 3 seconds바로 앞둔 하루 전날 있었던 연설인데요.
1:13:071 hour, 13 minutes, 7 seconds우리 국민에게 침략을 격퇴하는 비용은 비쌌다. 그리고 그것은 비극으로 끝났다. 이런 말입니다. 미국에게
1:13:161 hour, 13 minutes, 16 seconds있어서 한국 전쟁은 비극의 전쟁이었다라고 하는 것이 미국의 총괄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13:251 hour, 13 minutes, 25 seconds한국 전쟁 이후에 동북아시아 질서의 일단을 우리가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1:13:311 hour, 13 minutes, 31 seconds정전이라고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공산진영이었고이 정전이라고 하는 것이 일종의 패배에도
1:13:391 hour, 13 minutes, 39 seconds비슷한 것이었다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국가들이었습니다.
1:13:441 hour, 13 minutes, 44 seconds그런 의미에서는 정전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불안정한 것이었다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1:13:511 hour, 13 minutes, 51 seconds특히 한국 입장에서는 정전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든지 깨도 된다라고 하는 것이었다라고 하는 의미를 와다
Haruki Wada
1:14:001 hour, 14 minutes하루키는 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더 이상 일으키지 못했던 것은 결국 미국과
1:14:101 hour, 14 minutes, 10 seconds소련이 정전에 합의하고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상호간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라고 하는 점에서 설명이
1:14:181 hour, 14 minutes, 18 seconds된다라고 하는 것이 와드다 하루끼의 입장입니다. 따라서 한반도는 미소간의
1:14:251 hour, 14 minutes, 25 seconds비타협적인 대립 속에 갇혀 버렸고 사실은 냉전 상태에도 미치지 못하는 특별한 적대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1:14:341 hour, 14 minutes, 34 seconds다만 전쟁은 일으키지 못하는 그러한 상황에 있었다라고 하는 것이 결론입니다. 그러나 한편 한국 전쟁을
1:14:421 hour, 14 minutes, 42 seconds통해서 미국도 소련도 상대방의 재례식 전투력, 재례식 군사력이라고 하는 것을 확인을
1:14:511 hour, 14 minutes, 51 seconds하면서 상대방을 능가하는 군사 국가로 나아가는 것을 일종의 목표로 삼았기
1:14:571 hour, 14 minutes, 57 seconds때문에 한국 전쟁 이후 미국은 냉전 초군사 국가로 변모하게 되었고 소련
1:15:041 hour, 15 minutes, 4 seconds또한 완전 무장한 군사 국가로 변모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라고 하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15:111 hour, 15 minutes, 11 seconds상대방의 무기 수준을 상세히 파악하면서 냉전 속에서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경쟁의 길로 양 국가는 돌진했다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1:15:231 hour, 15 minutes, 23 seconds그리고 한편은 이제 중국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라고 하는 문젠인데요. 미국과 중국의 중국의
1:15:301 hour, 15 minutes, 30 seconds전쟁 그러니까 중국이 상대로 했던 미국이라고 하는 것이 중국에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라고 하는
1:15:371 hour, 15 minutes, 37 seconds것이었습니다. 즉 중국 입장에서 한국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군사 정치 경제 외교의 전면적인 힘겨룩이었다.
1:15:491 hour, 15 minutes, 49 seconds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고 이거는 물론 중국 쪽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무승부로 이끌었다라고 하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1:16:001 hour, 16 minutes비록 큰 희생을 치르웠지만 미국과 대등하게 싸운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 완전한 위상을 확립을 했고 그 대신에
1:16:101 hour, 16 minutes, 10 seconds타이완의 무력 해방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았다라고 하는 것이 동북아시아 속에서의 한국 전쟁 후 중국의
1:16:191 hour, 16 minutes, 19 seconds위상이었습니다.이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현재의 대만 유사 그리고 미중 대치 구도를
1:16:291 hour, 16 minutes, 29 seconds볼 때 그 기원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확인해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1:16:361 hour, 16 minutes, 36 seconds한편으로는이 동북아시아 전쟁으로서 한국 전쟁에서 이익을 본 두 나라가
1:16:441 hour, 16 minutes, 44 seconds있다라고 정리를 하고 있는 것이 마지막 부분인데요. 타이완과 일본입니다. 타이완은 정치적인 생존을
1:16:541 hour, 16 minutes, 54 seconds이끌어낼 수 있었고 일본은 어 일본이 싸웠던 연합국들과의 관대한 평화조약 샌프란스코
1:17:021 hour, 17 minutes, 2 seconds평화조약이죠. 관대한 평화 조액을 이끌어내면서 조선 특별 수요라고 하는 경제적인 이익을 확보할 수 있었다라고
1:17:121 hour, 17 minutes, 12 seconds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미국과 소련 그리고 미국과 소련의 대치 구도 속에 갇힌 한반도의 두 개 국가
1:17:201 hour, 17 minutes, 20 seconds그리고 한반도의 두 개의 국가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국제적인 위상을 확보했던 중국 그리고
1:17:291 hour, 17 minutes, 29 seconds여기에서 작은 이익을 얻었던 타이완과 일본 이러한 관계가 유기적으로
1:17:361 hour, 17 minutes, 36 seconds만들어지는 그러한 구도가 한국 전쟁을 통해서 모습을 드러냈고 그것이 동북아시아의 국제 구조 이며 그것이
1:17:451 hour, 17 minutes, 45 seconds한국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
1:17:521 hour, 17 minutes, 52 seconds와다하루기의 제장의 결론입니다. 결론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7:591 hour, 17 minutes, 59 seconds다시 한번 저자의 주장들을 큰 줄기에 따라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1:18:071 hour, 18 minutes, 7 seconds한반도의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며 무력 통일을 시도하는 두 개의 국가가 탄생한 이후에 국제 정세의 변동과
1:18:161 hour, 18 minutes, 16 seconds상관없이 한반도의 두 국가가 무엇을 원하느냐가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짓는
1:18:241 hour, 18 minutes, 24 seconds가장 근본적인 요소였다라고 하는 겁니다.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내전으로 시작될
1:18:341 hour, 18 minutes, 34 seconds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시작했던 한반도의 두 개 국가가 책임이 있다.
1:18:401 hour, 18 minutes, 40 seconds다만 그것은 어떤 국가의 전적인 책임이라기보다는 두 개 국가가 상대를 부정하는 구도 속에서 그 의미를
1:18:491 hour, 18 minutes, 49 seconds찾아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 첫 번째 주장입니다. 1949년 말부터 이듬의
1:18:551 hour, 18 minutes, 55 seconds초 1950년 초에 걸쳐 성사된 마우조등과 스탈린의 중소 정상회담 즉
1:19:031 hour, 19 minutes, 3 seconds마오등의 소련 방문이라고 하는 것이 동북아시아 정세 전반에 큰 전기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1:19:121 hour, 19 minutes, 12 seconds그리고 그 회담 과정에서 스탈린은 미국과 소련이 기본적인 장면에서
1:19:191 hour, 19 minutes, 19 seconds협력한다라고 하는 것을 약속했던 얄타 체제 파괴를 결정했다라고 하는 것이 두 번째 주장입니다. 세 번째로는
1:19:281 hour, 19 minutes, 28 seconds한국 전쟁은 스탈린을 설득하고 마우저둥의 동의를 얻은 김일성이 북한군에 대한 전면 공격 명령을
1:19:361 hour, 19 minutes, 36 seconds내리는 것으로 개시되었다. 그리고 소련은이를 지원했다.라고 하는 것이 하나 세 번째 첫 번째
1:19:431 hour, 19 minutes, 43 seconds결론이고요. 두 번째로는 이승만 정부는 유엔군 참전을 북진 통일의 기회로 인식하고 전쟁을 한반도
1:19:521 hour, 19 minutes, 52 seconds전역으로 확대했다. 제2의 무력통일 전쟁이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리고 미국은이를 추인했고 중국이 이에
1:20:011 hour, 20 minutes, 1 second대항해서 참전했다라고 하는 것이 세 번째 주장입니다.네 번째로 정전 협상
1:20:081 hour, 20 minutes, 8 seconds과정에서 타결을 원하는 김일성과 원칙을 강조하는 마우조등 사이에서
1:20:141 hour, 20 minutes, 14 seconds김일성의 동정적인 스탈린이 정전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되었다는 것이고요. 1952년 말부터 일본
1:20:231 hour, 20 minutes, 23 seconds공산당과 조선공산당에서 동시에 미재 스파이 색출과 체포가 전된 것이 전쟁을 끝내려는 스탈린의
1:20:321 hour, 20 minutes, 32 seconds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라는 것이 와다의 해석이고 매우 중요한 와다의 주장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전쟁은
1:20:421 hour, 20 minutes, 42 seconds동북아시의 모든 국가가 관여한 전쟁으로서 동북아시의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한국
1:20:501 hour, 20 minutes, 50 seconds전쟁은 동북아시아 전쟁이었고이를 통해 동부아시아 국제 구조가 탄생해서 지금까지 그 기본 구조가 이어지고
1:20:591 hour, 20 minutes, 59 seconds있다라고 하는 것이 마지막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서 북한 연구자 또는 국제 냉전사 연구자 또 물론
1:21:061 hour, 21 minutes, 6 seconds한국 전쟁 연구자들의 여러 서평들이 나오기도 했고 부분적인 비판들이 있어 왔습니다.
1:21:131 hour, 21 minutes, 13 seconds그중에 하나가 일본인 연구자인 낙가가 마사이고라는 연구자의 비평입니다. 몇 가지 주목할 주장들이 있다라고 하는
1:21:211 hour, 21 minutes, 21 seconds것을 전제로 하면서 낙가가 비판하고 있는 것은 동부가시아 전쟁이 만들어낸 동부시아의 구조라고
1:21:301 hour, 21 minutes, 30 seconds하는 결론은 있으나 그것으로서 무엇이 밝혀지는지 기술되어 있지 않다.이 책에서 서술된 각국의 상황은 전쟁이
1:21:401 hour, 21 minutes, 40 seconds아니라 하더라도 동북아시아에서 냉존 구조가 고정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에 불과하다.
1:21:471 hour, 21 minutes, 47 seconds이게 비판이었습니다. 그니까 동북아시아 전쟁이라고 하는 걸로 설명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되지
1:21:551 hour, 21 minutes, 55 seconds않는다.라고 하는 것이 낙카가와의 비평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은 좀 있다 뒷부분에서
1:22:021 hour, 22 minutes, 2 seconds말씀드리겠습니다. 국제 냉전사 연구자인 캐슬린 웨더스비의 서평에서는
1:22:091 hour, 22 minutes, 9 seconds물론이 웨더스비의 서평에도 와다의 주장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을 많이 열거하고 있습니다만
1:22:171 hour, 22 minutes, 17 seconds매우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이 스탈린의 정전음 결정의 시점입니다. 와다 서술에서
1:22:261 hour, 22 minutes, 26 seconds유일하게 설득력이 없는 부분이라고 웨더스비는 주장을 하면서 스탈린이 1952년 가을까지 전쟁을 끝내기
1:22:341 hour, 22 minutes, 34 seconds원했기 때문에 53년 3월 스탈린의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휴전 협정을 체결하는데 결정적인 유인이
1:22:421 hour, 22 minutes, 42 seconds아니었다라고 하는 그의 주장이 문제가 있다.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아, 당연히 캐슬린 웨더스비는 전쟁으로
1:22:501 hour, 22 minutes, 50 seconds가는 과정에서 스탈린의 죽음이 매우 중요했다라고 하는 주장을 담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와다가 얘기하고
1:22:571 hour, 22 minutes, 57 seconds있는 본거들 즉 조선 공산당과 일본 공산당에서의 숙청이라고 하는 것이 논고가 불명악하다. 그렇게까지
1:23:061 hour, 23 minutes, 6 seconds주장하기에는 상당한 비약이 존재한다라고 하는 것이 웨더스비의 비판이었습니다.
1:23:131 hour, 23 minutes, 13 seconds한국에서는 한국 전쟁 또는 그 미군정 일회 한국 현대사회에서 커다란 업적을 내왔던 김학준 교수의 서평
1:23:211 hour, 23 minutes, 21 seconds부분에서는이 구조의 책임을 돌리는 와다의 서술 방식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1:23:281 hour, 23 minutes, 28 seconds있습니다. 물론 김학준 교수도 여러 가지 장점들을 많이 열거하고 있습니다만 유일하게 와다 교수와
1:23:361 hour, 23 minutes, 36 seconds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이라고 말을 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므로
1:23:431 hour, 23 minutes, 43 seconds역사적 불가피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쉽게 말해이 전쟁은 피할 수 있는 전쟁이었다. 이렇게 볼
1:23:521 hour, 23 minutes, 52 seconds때 전쟁을 시작하자고 몇 회에 걸쳐 스탈린에게 졸라된 끝에 스탈린의 동의를 받아낸 김일성과 박헌영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1:24:031 hour, 24 minutes, 3 seconds즉 김일성과 박 박헌영의 책임을 명확히 서술하지 않고 남북한의 대치 구도 그리고 이승만의 무력통일
1:24:121 hour, 24 minutes, 12 seconds노선과이를 병렬해서 논의하는 거에는 문제가 있다라고 하는 그러한 지적이죠.
1:24:191 hour, 24 minutes, 19 seconds즉 역사적 불가피성이라고 하는 것을 강조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 김학준 교수의 입장이었습니다.
1:24:291 hour, 24 minutes, 29 seconds이에 대해서 대답을 하기 전에 제가이 책의 추천에서 어 강조했던 부분들을
1:24:371 hour, 24 minutes, 37 seconds확인하는 것으로서이 간접적으로이 세분의 비평 비판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평가해야
1:24:451 hour, 24 minutes, 45 seconds될 것은이 한국 전쟁 전사 출판을 계기로 해서 비로소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한국인에게도 온전한 이해의
1:24:541 hour, 24 minutes, 54 seconds대상이 되었습니다. 한글로 어 이해할 수 있는 총체적인 역사라고 하는 것이
1:25:011 hour, 25 minutes, 1 second처음으로 등장을 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것을 일단 평가를 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이고요. 처음에도 제가 강조했습니다만
Haruki Wada
1:25:081 hour, 25 minutes, 8 seconds와다 하루끼라고 하는 사람은 연구자는 한국 전쟁과 관련해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료와 연구를 직접 읽고 해독할 수 있는 연구자입니다.
1:25:201 hour, 25 minutes, 20 seconds그래서 상호 교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사실의 확인과 발굴이 가능했고 나아가 전쟁에 관여한 국가와 개인들에
1:25:301 hour, 25 minutes, 30 seconds대한 그런 관심을 연구에 반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총체적인
1:25:371 hour, 25 minutes, 37 seconds역사로서의 전사를 서술할 수 있었다는 점을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25:431 hour, 25 minutes, 43 seconds그래서 저는이 책의 출판이 한글 판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다 갖는다라고
1:25:491 hour, 25 minutes, 49 seconds생각을 하는데요. 그 이유는 다중 언어가 밝혀낸 한국 전쟁의 다층 구조에 있습니다. 그래서이 책은
1:25:581 hour, 25 minutes, 58 seconds전사라는 점에서 정전 체제를 해체하기 위해 참고해야 할 해부와 교과서가 될 수 있다고 저는 평가를 합니다. 그런
1:26:071 hour, 26 minutes, 7 seconds의미에서 우리가 다시 한반도 평화 구축의 길에 나설 때이 책을 곱씹으면서 한 줄 한 줄 읽는
1:26:151 hour, 26 minutes, 15 seconds작업으로부터 평화 구축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1:26:221 hour, 26 minutes, 22 seconds예. 이상의 와다하루기 교수의 주장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첫째,
Haruki Wada
1:26:301 hour, 26 minutes, 30 seconds와다하루끼의 한국 전쟁 전사 이후에 한국 전쟁 연구 현황에 대한 질문인데요.
1:26:361 hour, 26 minutes, 36 seconds2002년도에 와다 하루기 한국 전쟁 전사 출판 이후에 한국 전쟁 연구는
1:26:431 hour, 26 minutes, 43 seconds세부 주제를 통해 안으로 바라보기를 시도하는 한편 전쟁의 피해에 대한 연구들을
1:26:511 hour, 26 minutes, 51 seconds축적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한국의 연구자들의 연구가 활발한데요.
1:26:571 hour, 26 minutes, 57 seconds김동춘, 김귀옥, 박찬승, 전갑 등의 연구가 사회 심리적
1:27:041 hour, 27 minutes, 4 seconds측면에서 한국 사회 내부를 조명한 연구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27:111 hour, 27 minutes, 11 seconds또한 김태우와 한성훈의 연구는 어 폭격과 학살 등 전쟁의 피해에 초점을
1:27:181 hour, 27 minutes, 18 seconds맞춘 연구들입니다. 그 밖에 이른바 정통 전쟁사 연구로는 2015년에 전쟁과 평화라는 제목으로
1:27:281 hour, 27 minutes, 28 seconds출판된 김명섭의 연구가 있습니다.에이 연구는 정정 정전 회담에 대한
1:27:351 hour, 27 minutes, 35 seconds본격적인 연구로서 정전 체제 출연 과정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영어권 연구로는 모리스기
1:27:421 hour, 27 minutes, 42 seconds연구가 주목할 만합니다.에 에 제목이 에코orean war인로서에
1:27:501 hour, 27 minutes, 50 seconds전쟁에 관여한 구체적인 개인들의 초점을 맞추고 있고에 그들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 전쟁이 국경을
1:27:591 hour, 27 minutes, 59 seconds넘어선 아시아의 전쟁이었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에 두 번째 질문인데요.에
1:28:071 hour, 28 minutes, 7 seconds와다 하루기가 지적한 한국 전쟁을 통해 만들어진 동북아시아의 국제 구조란 무엇인가?에 에 그에 대한
1:28:151 hour, 28 minutes, 15 seconds명확한 대답이 없었다라고 하는 것이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전쟁의 결과 형성된 동북아시아의 국제
1:28:241 hour, 28 minutes, 24 seconds구조라는 것은 와다하루기 교수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남북의 군사적인 대치를 핵심으로 하고이를
1:28:331 hour, 28 minutes, 33 seconds둘러싸고 미중 대립이 전개되며 그 후방에 소련 후에 러시아죠. 그리고
1:28:411 hour, 28 minutes, 41 seconds일본이 배치되는 3층 구조의 동아시아 냉전 체제가 만들어졌다는 걸로 요약해 볼 수 있겠습니다. 아이를 이삼성
1:28:491 hour, 28 minutes, 49 seconds교수는 동아시아 대단체제라고 명한 적도 있고요. 저는이를 동아시아 정전 체제라고 부르고 있기도 합니다.
1:29:001 hour, 29 minutes지구적인 수준에서 미소대립의 냉전 체제가 전개되는 가운데에 한반도 남북의 두 개의 전초기지 국가가
1:29:081 hour, 29 minutes, 8 seconds출연하여 대립하고 있고 중국은 북한의 후방 근거지 일본은 한국의 후반
1:29:151 hour, 29 minutes, 15 seconds기지로 존재하는 구조가 출연한 것이죠.이를 에이를 일본의 지지와 야스학기라는 연구자는 극동 1905년
1:29:241 hour, 29 minutes, 24 seconds체제 부활이라고도 했습니다. 즉 극동 1905년 체제란 청일 전쟁의 결과 대만을 러일 전쟁의 결과 한반도를
1:29:331 hour, 29 minutes, 33 seconds세력권으로 포섭한 일본이 주도해서 만든 동아시아의 세력균형 체제를 말하는 것인데요. 한국 전쟁을
1:29:421 hour, 29 minutes, 42 seconds거치면서 일본을 대신한 미국이이를 재편해서 부활시킨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가령, 대만 유사,
1:29:511 hour, 29 minutes, 51 seconds타이완 유사가 한반도 유사와 연동되어 함께 거론되는 데에는 이러한 구조가
1:29:591 hour, 29 minutes, 59 seconds반영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이 이 구조는 조정되고 변형되기도 하지만 한반도에서 정전
1:30:071 hour, 30 minutes, 7 seconds협정이 평화 협정으로 대체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 기본 골격은 줄곧
1:30:141 hour, 30 minutes, 14 seconds유지되어 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에 지금도이 지역에서 나타나는 여러 현상들은 기본적으로 한국 전쟁 이후
1:30:231 hour, 30 minutes, 23 seconds출연한 동북아시아 국제 구조에 기원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30:291 hour, 30 minutes, 29 seconds세 번째로는 동북아시아 전쟁으로서 한국 전쟁이라는 관점이에 현재 한반도 국제정체에서 지니는
1:30:371 hour, 30 minutes, 37 seconds함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인데요.이 질문은 위에 질문 2이 두 번째
1:30:441 hour, 30 minutes, 44 seconds질문의 연장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음 음, 한마디로 대답하자면
1:30:511 hour, 30 minutes, 51 seconds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기획되고 실천되는 한반도 평화
1:30:571 hour, 30 minutes, 57 seconds프로세스라고 하는 것은 동북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행위자로서 참여하는
1:31:041 hour, 31 minutes, 4 seconds것이어야 한다라는 것이고 그 과정에 저마다의 몫이 주어져 있다는 그런 것입니다. 특히 간과되고 있는 것이
1:31:131 hour, 31 minutes, 13 seconds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논의입니다.에이를
1:31:201 hour, 31 minutes, 20 seconds간과하고 진행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이에 지난 역사에서 확인되었습니다.
1:31:291 hour, 31 minutes, 29 seconds따라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본래 남북의 화의 협력에 더해 한국과
1:31:351 hour, 31 minutes, 35 seconds북한이 각각 적대 관계에 있던 주변국들 즉 한국은 중국 및 소련
1:31:421 hour, 31 minutes, 42 seconds후에 러시아 그리고 북한은 미국 및 일본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을 총칭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1:31:531 hour, 31 minutes, 53 seconds현재 북미북일 관계는 여전히 적대적 관계로 남아 있고요. 국정상화 이후
1:31:591 hour, 31 minutes, 59 seconds정상적으로 작동해 왔던 한중 관계도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1:32:071 hour, 32 minutes, 7 seconds남북한의 화해 협력 프로세스에 한국 북한이 모든 주변국들과 골고루 관계를
1:32:141 hour, 32 minutes, 14 seconds정상화하는 것이 동북아시아 전쟁으로서 한국 전쟁을 끝내는 길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에
1:32:231 hour, 32 minutes, 23 seconds와다 하루의 연구는이를 결론으로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상 한국 전쟁 전사의 내용을 와다 하루끼가
Haruki Wada
1:32:311 hour, 32 minutes, 31 seconds설정한 장에 따라서 소개하고 그 의미를 확인해 봤습니다. 물론이 짧은 강의에서이 방대한 내용을 다 다룰 수는 없었습니다.
1:32:421 hour, 32 minutes, 42 seconds다만 와다 하루기 교수가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을
1:32:491 hour, 32 minutes, 49 seconds추여서 그 전쟁의 전모를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이
1:32:571 hour, 32 minutes, 57 seconds핵심 줄거리를 지탱하기 위해서 재구성되는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설명은 생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1:33:061 hour, 33 minutes, 6 seconds어쩌면이 책의 백미는 그런 세부 사정을 들추어낸 데에 있기도 하기
1:33:121 hour, 33 minutes, 12 seconds때문에 여러분께서는 직접이 책을 한번 읽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1:33:191 hour, 33 minutes, 19 seconds이것으로서 어 강의를 모두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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