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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 484쪽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책소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생애를 그린 만화. 국제만화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하비상을 한국 최초로 수상하고 아이즈너상 3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는 등 국제적으로 주목받으며 ‘위안부’의 실상을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풀』은 ‘위안부’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그리는 기존 시각을 넘어서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로 살아가는 주체적이고 현재적인 존재로 그려낸다.
『뉴욕 타임스』 『가디언』 『워싱턴 포스트』 등 전 세계 유수의 매체에서 최고의 그래픽노블로 선정했고 미국 크라우제 에세이상, 빅아더북 최고의 그래픽노블상, 카투니스트 스튜디오 최우수출판만화상, 프랑스 휴머니티 만화상 심사위원 특별상, 스페인 안티파스상 최고의 국제만화 부문, 이탈리아 트레비소 만화 축제 최우수해외만화상 등을 수상했다.
본 개정판은 2017년 초판 출간 이후 절판된 작품을 다듬고 2024년에 부치는 「작가의 말」을 덧붙여 새로이 선보인다.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만화가로 자리잡은 김금숙은 『풀』 외에도 한국전쟁 이산가족, 조선 최초의 여성 볼셰비키의 삶, 발달장애 청년 등 다양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보편성과 아픔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작품을 그리고 있다.
목차
작가의 말
프롤로그 고향 가는 길 1장 학교 가고 싶은 계집아이 2장 홍시와 알사탕 3장 수양딸로 가다 4장 부산 우동집 5장 울산 술집 6장 연길 동비행장 7장 순결 8장 그 사람 9장 연길 시내로 10장 미자 언니 11장 어떤 일본 군인 12장 해방, 그리고 버려진 여자들 13장 첫번째 결혼 14장 내 아들 15장 돌아오다 에필로그 이옥선 할머니의 발자취를 찾아서
아름다운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고흥에서 태어났다.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보편성과 시대의 아픔을 담담하게 그리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대표작으로 난임 부부와 가족에 대한 만화 『내일은 또 다른 날』,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에 대한 이야기 『개』, 이산가족의 아픔을 다룬 『기다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풀』, 제주 4·3 항쟁의 비극을 그린 『지슬』, 박완서 원작을 만화로 재구성한 『나목』, 발달장애 뮤지션 이야기를 담은 『준이 오빠』, 조선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의 삶을 기록한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그 외 ... 더보기
바람에 스러지고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풀처럼 전쟁의 폭력과 트라우마에 맞서 싸운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
★ 한국 최초 ‘만화계의 아카데미상’ 하비상 수상작 ★ ★ 35개국 번역 출간,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세계적으로 알린 작품 ★ ★ 『뉴욕 타임스』 『가디언』 『워싱턴 포스트』가 주목한 만화가 김금숙의 대표작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생애를 그린 만화. 국제만화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하비상을 한국 최초로 수상하고 아이즈너상 3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는 등 국제적으로 주목받으며 ‘위안부’의 실상을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풀』은 ‘위안부’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그리는 기존 시각을 넘어서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로 살아가는 주체적이고 현재적인 존재로 그려낸다. 『뉴욕 타임스』 『가디언』 『워싱턴 포스트』 등 전 세계 유수의 매체에서 최고의 그래픽노블로 선정했고 미국 크라우제 에세이상, 빅아더북 최고의 그래픽노블상, 카투니스트 스튜디오 최우수출판만화상, 프랑스 휴머니티 만화상 심사위원 특별상, 스페인 안티파스상 최고의 국제만화 부문, 이탈리아 트레비소 만화 축제 최우수해외만화상 등을 수상했다. 본 개정판은 2017년 초판 출간 이후 절판된 작품을 다듬고 2024년에 부치는 「작가의 말」을 덧붙여 새로이 선보인다.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만화가로 자리잡은 김금숙은 『풀』 외에도 한국전쟁 이산가족, 조선 최초의 여성 볼셰비키의 삶, 발달장애 청년 등 다양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보편성과 아픔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작품을 그리고 있다.
“전쟁은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만든다” 전 세계를 울린 ‘위안부’ 역사의 실상
김금숙 작가는 『풀』의 취재를 위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는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집을 찾아간다. 여러 차례의 방문 끝에 작가는 이옥선 할머니와 인연을 맺게 되고, 그와 인터뷰를 시작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일본이 나빠. 아베가 사죄해야 해”라는 말만 반복하며 좀처럼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제자리를 맴도는 대화에 지쳐갈 즈음, 할머니는 가까스로 곡진한 인생사를 풀어놓는다. 이옥선 할머니는 부산 보수동에서 오남매의 맏딸로 태어났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가득하던 옥선은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 가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입에 풀칠을 하기에도 바쁜 집에서는 공부를 시켜줄 여력이 없었고, 결국 입을 하나라도 덜기 위해 수양딸로 보내진다. 학교를 보내준다는 말에 집을 떠나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식모살이를 하던 어느 날, 열여섯살의 옥선은 주인집 심부름을 나섰다가 길거리에서 낯선 이들에게 붙잡혀 끌려간다. 그렇게 그는 ‘위안부’가 되었다. 옥선이 증언하는 ‘위안부’ 생활의 실태는 생생하고 잔혹하다. 하지만 할머니의 고통을 들추는 장면들은 직접적인 묘사 대신 수묵화처럼 짙은 먹을 사용해 나무나 바람 같은 이미지로 그려진다. 김금숙 작가는 폭력의 실상을 그 자체로 재현하는 것이 도리어 피해자들에게 다시금 고통을 가하는 일일 수 있으며, 독자들에게도 도리어 그 잔혹성이나 비인간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 어떤 만화보다도 심장을 멈추게 하는 장면들”(『뉴욕 타임스』)이라는 서평처럼 『풀』의 강렬한 그림은 ‘위안부’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에게 그 역사의 잔혹성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일본이 왜 사과해야 하는지 묻는 이들을 향한 외침 피해자가 세상을 떠나도 역사는 없어지지 않는다
『풀』은 35개국에 수출되며 일본군 ‘위안부’ 역사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일본에서는 2020년 시민활동가의 주도로 일본어판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성공적으로 출간되며 시민사회 차원에서의 연대와 한일관계의 장래를 밝히기도 했다. 『풀』의 이런 넓은 소구력은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의 문제를 넘어서 더 넓은 차원의 여성문제이자 인권문제이기도 하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김금숙 작가는 개정판에 부치는 「작가의 말」에서 “나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그것도 젊은 여성들이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고맙다고 할 줄 몰랐다”며 “성폭력은 시대와 연령, 인종, 사회적 계급을 넘어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남기는 끔찍한 일”이라고 말한다. 『풀』의 마지막 장면에는 2015년 12월 피해자를 배제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이옥선 할머니가 분노하며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개정판이 출간된 2024년, 그는 아흔일곱의 나이로 여전히 나눔의집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투석을 받는 등 좋지 않은 건강 상태에도 “우리는 사죄하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며 관련 행사에 활발히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풀처럼, 전쟁범죄의 피해를 딛고 역사의 증인으로 거듭난 동아시아 여성들의 목소리는 독자에게 큰 울림을 준다.
『풀』에 쏟아진 세계의 찬사 거친 선과 짙은 먹의 강렬한 그림이 악몽의 영역으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그 어떤 만화보다도 심장을 멈추게 하는 장면들. 『뉴욕 타임스』
‘위안부’라는 단어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왜곡을 부르며 부적절하다. 『풀』은 ‘위안부’ 생존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 용어가 가리는 끔찍한 현실을 폭로한다. 『글로브 앤드 메일』
트라우마 속 생존과 주체성을 위한 투쟁에 대한, 보기 드물게 강력한 작품. 『라이브러리 저널』
『풀』은 한 여성의 삶에 대한 고유하고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주변의 인간사를 공유하는 것의 힘과 필요성에 관한 책이다. 『퀼 앤드 콰이어』 접기
망설임 없이 펀딩했어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가슴아픈 역사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토토엄마 2024-02-25 공감 (9) 댓글 (0) Thanks to 공감
가볍게, 쉽게 읽지 못할 작품이라는 것을 알지만(어쩌면 괴로울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 펀딩에 참여했고, 책을 받았습니다. 끝까지 직시하겠습니다. 갈매나무 2024-02-29 공감 (7) 댓글 (0) Thanks to 공감
슬프지만 우리가 꼭 읽어봐야할 책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평화가 지속되기를 푸른하늘 2024-02-24 공감 (6) 댓글 (0) Thanks to 공감
미안하다는 말이 가장 어려운 말이라지만 동시에 가장 인색해서는 안될 말이다. 더구나 인면수심의 죄를 저질렀다면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란데, 왜 그들은 이 악물고 외면할까? 명백한 일본의 잘못을, 그리고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의 고통과 억울함을 잊지 않기 위해 반드시 소장해야할 책... 1st_Chan 2024-02-23 공감 (6) 댓글 (0) Thanks to 공감
마치 돌아가신 조부모님과 부모님 얘기 같아서 울면서 봤습니다. 오늘 우리의 풍요가 이런 분들의 희생 덕택이었음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합니다. 달팽이처럼 2024-02-26 공감 (6) 댓글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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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김금숙
알라딘을 자주 이용한다. 인터넷 서점들 중 세 곳을 자주 이용하는데, 그 중에서도 '알라딘'이 나와 잘 맞는 편이다. 그 중에 하나가 펀딩이라는 컨텐츠다. 항상 책을 검색해서 구입만 했었지, 사이트에서 운영하는 이벤트나 컨텐츠 등을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그러다보디 '펀딩'도 알게된지 얼마되지 않았다. 다른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용과 상관없는 펀딩으로 시작했는데, 이런 책들이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이벤트들이 많아지길 희망하는 마음에서다.
'펀딩'을 통해 만나게 되는 책들이 모두 이목을 끄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눈길을 단박에 끈 것은 우선 좋아하는 만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본 <내 어머니 이야기>도 비슷한 스타일의 만화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내용을 알지 못했을 때는 표지의 소녀 옷차림에서 내 어머니 혹은 할머니 때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부제가 보였다. "기억해야 할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
'위안부'라는 단어와 함께 '기억'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랬다. 역사서를 읽을 때면 항상 하는 이야기가 '기억'이다. 뉴스에서 회자될 때만 기억해야지, 기억해야지 되뇌이면서도 이내 다시 잊곤 한다. 그 기억을 온전히 다시 새기고자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가끔씩 다음 장을 넘기기가 힘들기도, 손이 조금씩 떨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단순히 '마음이 아프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감정들이다.
가끔씩 접하게 되는 소식들은 할머님들의 부고 소식이다. 일본에서 역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거나 잘못된 사상으로 점철된 사람들이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다음 세대들이 올바른 역사로 '기억'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인정과 진심 어린 사과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기억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풀은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며칠있으면 31절이다. 일제강점기 관련해서 알아야할 역사적 사실이 많이 있지만 위안부할머니에 대해서는 특히 잊지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된 많은 자료나 책이 있지만 만화로 된 책이 나온다고해서 북펀딩에 참여했다.
오늘 책을 받아보니 거친 선으로 그려진 만화가 마음을 조여온다. 나라가 힘이 없고 전쟁에 휘말렸다해도 아무 힘이 없는 여자아이들을 끌고가서 마음대로 성노예로 삼고 제대로 의식주 해결도 못하게하고 댓가도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이 참.... 게다가 그들의 잘못이 아닌데 살아돌아온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돌을 던진 우리들.... 위안부할머니들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니, 이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소리가 절로 나온다.
결국 나라가 힘을 가지고, 제대로 된 정치를 해서 전쟁에 휘말리지 않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슬프지만 많은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 접기 푸른하늘 2024-02-24 공감(4) 댓글(0) Thanks to 공감
많은분들에게 전해져야 할 이야기
읽는 내내 너무나 가슴아프고이런 세월 이런 시대의 운명을 어떻게 견디며버텨내셨을까 생각하니 참으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많은 독자들이 이런역사가 개인의 일이 결코아니라우리 가족 이웃 동포 그리고 민족의 아픔임을 잊지 말아야할것같습니다 헤아릴수도 피할수도 없는 고통속에 버티며버티던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것이 아닐까싶어요많은 분들이 보시길 추천합니다 edphy 2024-02-24 공감(4) 댓글(0) Thanks to 공감
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생애를 그린 만화입니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위안부 할머니의 생을 할머니의 목소리로 들은 듯해 더 가슴이 아픕니다. 나라를 빼아겼다는 이유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그리 살 수 밖에 없었던 할머니의 생이 슬프고도 서럽습니다.
사과는 하는 사람이 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사과는 받는 사람이 이제 됐다고 할 때 끝나는 게 사과입니다.
거친 선과 짙은 먹의 강렬한 흑백의 그림은 어떤 색깔을 넣은 그림보다 강하게 할머니의 생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 26일 향년 93세의 나이로 영면하신 김옥순 할머니가 그 곳에서는 소원이던 학교도 다니며 평안하셨으면 합니다.
한일관계 회복이라는 미명 아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작금의 현실에 고개를 끄덕이는 분이 계신다면 할머니의 삶을 진지하게 보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고 책을 덮고도 한참을 멍하게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접기 초록콩 2024-05-08 공감(0) 댓글(0) Thanks to 공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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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 기억해야 할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 김금숙
--- 800 단어 요약+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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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기억해야 할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 요약 및 평론
1. 요약: 가녀린 풀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은 생의 기록
<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의 생애를 바탕으로 한 그래픽 노블이다. 작가는 할머니와의 인터뷰를 통해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인간의 삶 전체를 조망하며 그 속에서 피어난 생명력을 포착한다.
이야기는 이옥선 할머니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된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남의 집 민며느리로 팔려 가듯 보내졌던 유년기, 그리고 학교에 보내준다는 거짓말에 속아 중국 연길의 위안소로 끌려가게 된 과정이 묵직하게 그려진다. 그곳에서 겪은 형언할 수 없는 폭력과 고통의 시간은 할머니의 몸과 마음에 깊은 흉터를 남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에서 긴 세월을 버텨야 했던 할머니의 삶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된 또 다른 형태의 유랑이었다. 수십 년이 흘러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증명하고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할머니의 현재 모습은 과거의 아픔과 겹쳐지며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작가는 할머니를 단순한 피해자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바람에 눕지만 결코 꺾이지 않는 <풀>처럼, 모진 풍파 속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남은 한 여성의 강인한 의지를 세밀한 먹선으로 형상화한다.
2. 평론: 흑백의 미학으로 길어 올린 침묵의 목소리
이 작품의 가장 큰 성취는 자칫 자극적으로 흐를 수 있는 비극적 소재를 절제된 시각 언어로 승화시켰다는 점에 있다. 김금숙 작가는 붓의 질감이 살아있는 거친 먹선을 사용하여 인물의 내면과 시대적 공기를 시각화한다. 특히 배경을 가득 채우는 검은 먹의 농담은 당시 피해자들이 느꼈을 압도적인 공포와 고립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때로는 여백을 통해 독자가 그 고통의 무게를 스스로 가늠하게 만든다.
제목인 <풀>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민초의 생명력을 상징함과 동시에,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존재를 대변한다. 작가는 직접적인 성폭력 묘사를 지양하면서도, 은유적인 연출과 표정의 묘사만으로도 그 폭력의 잔인함을 충분히 고발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관음증적 시선에서 벗어나 피해자의 고통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연대하게 만드는 고도의 전략이다.
또한,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구성은 이 역사가 박제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과제임을 상기시킨다. 이옥선 할머니가 나직하게 내뱉는 증언들은 작가의 유려한 연출을 통해 역사적 사실(Fact)을 넘어선 보편적인 인권의 서사로 확장된다. 국가라는 거대 서사 속에서 지워졌던 개인의 목소리를 복원해낸 이 작품은, 그래픽 노블이라는 매체가 지닌 예술적 가능성을 증명하며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그 어떤 기록물보다도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다. 결코 굴복하지 않는 생의 의지를 담아낸 <풀>은 역사의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가는 숭고한 여정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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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
풀 은 한국의 만화가 김금숙 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이옥선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린 그래픽노블입니다. 영어판 제목은 <Grass>이며, 국제적으로도 널리 읽혔고 여러 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피해 증언집이 아니라, 기억·침묵·가난·식민주의·여성의 삶을 한 인간의 생애 전체 속에서 묘사하려는 시도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전쟁 중의 피해”만이 아니라, 그 이전과 이후의 삶까지 함께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우선 작품의 상당 부분은 어린 이옥선의 가난한 어린 시절에 할애됩니다. 조선 농촌의 극심한 빈곤, 가족 내부의 불안정, 어린 딸의 취약성이 매우 길고 느리게 묘사됩니다. 이것은 중요한 선택입니다. 김금숙은 위안부 문제를 단순히 “일본군의 납치”라는 한 장면으로 축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식민지 조선의 빈곤과 여성 억압 구조가 어떻게 어린 소녀들을 위험에 노출시켰는지를 보여주려 합니다.
이 부분에서 책은 민족주의적 단순화와 약간 거리를 둡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은 중심이지만, 동시에 조선 내부의 가부장제·빈곤·아동 매매 문제도 함께 드러납니다. 즉, 피해의 구조는 단선적이지 않습니다.
작품의 중반부에서 이옥선은 결국 중국으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소 생활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김금숙은 잔혹한 장면을 과도하게 시각적으로 소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복되는 공포, 무감각, 침묵, 그리고 인간성의 붕괴를 검은 먹선과 침묵의 공간으로 표현합니다.
이 만화의 미학적 특징은 바로 그 “검은 공간”입니다.
검은 먹칠, 그림자, 텅 빈 배경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기억의 심연처럼 작동합니다. 독자는 사건을 영화처럼 소비하기보다, 끊어진 기억과 감정의 파편 속을 걸어가게 됩니다. 이 때문에 <풀>은 정보 전달형 역사만화라기보다 기억의 체험에 가까운 작품이 됩니다.
특히 제목 <풀>은 상징적입니다.
풀은 밟혀도 다시 자랍니다. 약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옥선 개인뿐 아니라 이름 없이 사라진 여성들의 존재를 상징합니다. 동시에 풀은 국가 영웅 서사와도 다릅니다. 거대한 승리나 복수가 아니라, 살아남음 자체를 말합니다.
이 점은 작품의 중요한 윤리적 특징입니다.
많은 위안부 관련 서사는 피해자의 순결·민족적 상징성·도덕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풀>은 이옥선을 “상징”보다 “인간”으로 남겨두려 합니다. 그녀는 때로 화를 내고, 상처받고, 완고하고, 외롭고, 늙어갑니다. 작품은 피해자를 성녀화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인간적 존엄을 강화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전후의 삶입니다.
전쟁이 끝났다고 치유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귀국 후에도 침묵, 가난, 사회적 낙인, 외로움이 이어집니다. 특히 한국 사회 내부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침묵해야 했던 현실이 드러납니다. 이것은 일본 국가 책임 문제와 별개로, 동아시아 가부장 문화 전체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김금숙의 시선은 분노를 가지면서도 비교적 절제되어 있습니다. 작품은 일본군의 폭력을 분명히 보여주지만, 독자를 단순한 민족 감정으로만 몰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역사에 의해 파괴되는가”를 보여줍니다.
이 때문에 <풀>은 국제 독자들에게도 비교적 강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서구 독자들은 한국 현대사 세부 맥락은 잘 몰라도, 전쟁·식민주의·여성 폭력·트라우마라는 보편적 층위에서 작품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비판적으로 보면 몇 가지 한계도 있습니다.
첫째, 구조적 역사 설명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일본 제국주의 체계, 군 위안소 운영 구조, 전쟁경제 등은 깊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역사 입문서라기보다는 증언 중심의 예술 작품에 가깝습니다.
둘째, 일본 사회 내부의 다양한 반응이나 전후 책임 논쟁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작품의 초점이 피해자의 체험 자체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역사적·정치적 복합성보다는 기억 윤리에 더 가까운 작품입니다.
셋째, 감정적 몰입이 강한 만큼 독자에 따라 “피해 기억의 성역화”로 읽힐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금숙은 비교적 조심스럽게 인간 개별성에 집중함으로써 이런 위험을 어느 정도 줄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풀>은 단순한 고발 만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다음 네 층위가 결합된 작업입니다.
식민지 조선의 가난한 여성사
전시 성폭력의 기억
전후 침묵과 낙인의 역사
늙어가는 생존자의 인간적 초상
그래서 이 작품의 진짜 힘은 “분노”만이 아니라 “애도”에 있습니다.
독자는 책을 덮고 나면 일본군의 범죄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너무 길고 외로운 삶 자체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것이 이 작품이 국제적으로 높이 평가받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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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풀>과 <요코 이야기>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 책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풀>은 만화가 김금숙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의 생애를 만화로 재구성한 것이고, <요코 이야기>는 일제 시대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자랐던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가 패망 무렵 자기 가족의 조선 탈출기를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두 책을 굳이 나란히 언급하는 까닭은 두 책에서의 아쉬운 점이 두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서로 메꿔주듯이 보완됐달까, 어디까지나 내 감상은 그랬다.
요컨대 두 책 속 실존 인물, 그러니까 이옥선과 요코의 동선은 시기만 다를 뿐 공교롭게도 겹친다. <풀>은 부산 보수동에서 태어난 이옥선이 수양딸로 가게 된 울산에 한 식당에서 중국 연길에 일본군 위안소로, 연길에서 다시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반면 <요코 이야기>는 이북 나남 지역에 살고 있던 요코 가족이 서울과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여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옥선은 조선을 남에서 북으로 가로질러 중국 연길까지 갔고, 요코 가족은 이옥선이 위안부로 동원되면서 이용했을 기차의 화물칸을 거꾸로 조선을 탈출하면서 이용한 셈이다. 그런 식으로 이옥선과 요코의 동선이 엇갈리는 지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전에 두 책의 공통점부터 얘기하자면, 먼저 두 책 모두 공복에 읽으면 사정없이 배가 고파진다. 두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그게 고양이 똥일지라도) 입속으로 일단 넣게 될지 모른다. 가와다 후미코가 오키나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봉기의 생애를 기록한 <빨간 기와집>도 마찬가지였지만, <풀>도 이옥선의 굶주림만큼은 <빨간 기와집> 못지않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아시다시피 그 당시 위안부로 동원됐던 여성은 대부분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이들이 궁핍한 환경에서 얼마나 굶주렸는지는 위안부로서의 피해에만 집중된 단편적인 이야기에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빨간 기와집>이나 <풀>은 그런 면에서 위안부로 동원됐던 여성의 피해가 해방 이후에도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심각했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요코 가족은 패망 전까지 굶주릴 일이 없었다. 요코 아버지는 만주에 배속된 일본 정부의 고위 관료였고, 요코 가족은 조선인에게 지배계급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일본의 패망은 곧 조선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 무렵 조선은 적어도 일본인에게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전복되는 시공간이었을 테고, 요코 가족은 조선인의 눈을 피해 정든 집을 버리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요코 가족은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목숨을 부지한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으로 돌아가지만 요코 가족은 자신들의 조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아래는 후쿠오카 항에 도착한 요코의 독백인데 패망 직후 일본사회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몇 해 동안 나는 언제나 아름다운 조국을 꿈에 그려왔었다. 그리고 조국에 사는 사람들의 생기 넘친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폐허가 되다시피 한 후쿠오카의 풍경은 내게 말할 수 없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중략) 게다가 우리를 대하는 저 남자(자국 난민을 상대하던 현지 관료)의 태도는 또 어떤가.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도대체 왜 왔소? 우리는 당신들 없이도 잘살고 있는데.’”
패망 후 일본에 잘살고 있던 일본인에게 식민지 또는 점령지에서 살아 돌아온 일본인은 이미 ‘우리’가 아니었다. 실제로 이들이 일본사회에 흡수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전까지는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었다. 또한 요코 가족이 조선을 탈출하면서 목격했던 조선인이 일본인을 괴롭히는 장면은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아주 과장된 것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패망 직후 식민지와 점령지에 거주하던 자국민을 말 그대로 버렸다. 그들의 안전한 귀환을 확보할 만한 여력이 없었고, 그들은 여러 위협으로부터 알아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건 위안부 피해자도 마찬가지였다. 자국뿐만 아니라 식민지와 점령지 여성을 자신들의 전쟁에 성적 도구로 동원했던 일본군도 패망 직후 일본 정부가 해외에 거주하던 자국민을 버리듯 똑같이 위안부를 버렸다. 게다가 해방 후 한국사회도 이들의 귀환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남성 중심 가부장 사회에서 이들의 피해는 민족의 수치로 여겨지기 일쑤였고, 낯선 땅에서 해방을 맞았던 위안부는 전쟁의 희생자가 아니라 포로 신분으로 억류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해방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가 상당수였다.
이옥선도 그들 중 하나였다. 해방 후 연길에 버려진 이옥선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강간했던 조선인 남성을 다시 찾아간다. 그 조선인 남성은 연길에서 징용 노동자를 감독하던 ‘근로봉공대’ 소대장이었는데, 그는 이옥선과 결혼 후 이옥선에게 자기 가족을 떠맡기고 달아났다. 졸지에 과부 신세가 된 이옥선은 그의 가족을 혼자 부양해야 했고, 다른 남성과 재혼 후에도 재혼 남성의 가족을 부양하면서 노동력을 계속 착취당했다(이는 일전에 소개했던 <전쟁과 성폭력 비교사>에서 강간·매매춘·연애·결혼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분명하게 구별되는 성폭력과 그렇지 않은 성폭력을 연속선상에서 놓고 보려는 ‘성폭력 연속체’ 개념이 어떤 식으로 현실에서 작동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나마 요코는 교육열이 강했던 어머니 덕분에 차별과 배제 속에서도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요코 어머니는 교토역에서 노숙을 하면서도 요코와 요코의 언니를 기어이 학교에 보냈다. 그건 아마도 훗날 요코가 이옥선과 여타 위안부 피해자와 달리 다른 이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자신이 겪었던 일을 자기 목소리로 얘기할 수 있었던 배경이 아닐까 한다.
이쯤 되면 어디 감히 둘을 함부로 비교하냐면서 불편해할 분들이 제법 계실 것 같다. 그럴 만하다. <요코 이야기>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삼아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착취한 사실은 쏙 빼놓고, 가해국의 일원인 주제에 자신의 피해만 부각시켜 일본의 전쟁과 식민지배 책임을 흐리는 거짓 소설로 알려져 있으니까. 여기서 <요코 이야기>가 열세 살 소녀 시점의 가공된 이야기라는 점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요코 이야기>를 가공된 이야기이므로 대충 넘어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요코 이야기>는 앞서 말했다시피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바라본 전쟁의 참상이다. 그러다 보니 역사적 배경이 생략됐고, 요코와 요코 가족의 수난보다 역사적 배경이 더 중요한 이들에게 <요코 이야기>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요코 이야기>는 전부 다 거짓일까. <기억 전쟁>에서 임지현도 <요코 이야기>의 탈역사성은 문제지만, 책 내용을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데 진보든 보수든 한국사회의 (요코 이야기) 독법은 요코의 고통을 아예 부정하려는 듯하다. 요코의 아버지가 생체실험 등으로 악명 높은 관동군 731부대의 장교였다는 마타도어를 넘어서 아예 <요코 이야기>를 역사를 왜곡한 거짓말로 몰고 간다. 나남에는 대나무가 자라지 않는다거나, B-29기의 폭격은 있지도 않았고, 요코 일가가 피란 갈 당시에는 북한 지역에 아직 ‘공산군’이 조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요코의 기억을 거짓으로 모는 근거로 제시된다. 실증주의의 메스로 증언의 부정확성을 해부하고 부정확성을 근거로 증언 자체를 거짓말로 몰고 가는 이 논리는 일본 우익의 ‘위안부’ 부정론과 매우 유사하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흐릿하고 자의적인 기억을 사실로 인정할 수 없으며, 증언을 뒷받침하는 공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위안부’의 역사를 말소해버리려는 일본 우익의 논리 역시 실증주의를 무기로 삼고 있다. 이런 논란은 이미 홀로코스트 부정론에서부터 발견된다. 공식 문서와 아카이브를 가진 가해자가 증언밖에 가진 것이 없는 하위계층 희생자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무기로는 ‘문서의 실증’만한 것이 없다.”
<기억 전쟁>에 의하면 <요코 이야기>가 한국인에게 불편한 까닭은 탈역사성에만 있지 않다. 이를테면 폴란드 예드바브네 지역에서의 유대인 학살 사건은 나치의 소행이 아니다. 생존자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나치가 아니라 ‘이웃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나치의 최대 희생자여야만 하는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에게 그와 같은 사실은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불편한 기억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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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 이야기>의 한계가 탈역사성이라면 <풀>의 한계는 단순화된 몇몇 캐릭터 아닐까 한다. <풀>에서 위안소를 이용하는 일본군 병사는 예외 없이 본성에 충실한 것처럼 묘사되는데,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에서 병사의 수기를 면밀히 파고들었던 히라이 가즈코에 의하면 대부분의 병사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위안소를 이용했던 배경은 성욕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 ‘용무가 끝나면 곧바로 퇴실할 것’이라는 위안소 규정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나름의 체계 속에서 여성의 성을 줄기차게 착취했다. 한편 그와 같은 규정에 자신이 물건 취급받는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위안부를 비인간화하는 모순은 대부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국 애국이라는 명분의 비인간화 과정은 일본군 병사로 하여금 자신들보다 더 약한 존재를 손쉽게 비인간화하는 수단이 됐다.
또한 <풀>에서 일본인 위안부는 조선인 위안부와 달리 ‘돈을 벌러 온 것’이라면서 선을 긋고, 조선인 위안부를 차별한 존재로만 암시된다. 일본인 위안부가 이른바 ‘자발적 매춘부’였고 아무리 돈이 목적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피해가 섣불리 부정되어서는 안 되는데, 그 부분은 대단히 아쉬웠다. 다행히 본문 뒤에 덧붙인 윤명숙의 해설에서는 그 부분을 콕 집어 일본인 위안부 역시 일본사회 내에서 가장 억압받던 존재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말머리에서는 이옥선과 요코의 동선이 겹친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인생까지 겹치는 것은 아니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전복되는 순간 잠시 교차할 뿐, 해방과 패망 후 두 사람의 인생은 전혀 달랐다. 따라서 두 사람의 피해를 동일선상에 놓고 어느 쪽 피해가 더 큰지 따질 필요는 없다. 다만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와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옥선과 요코의 태생이 뒤바뀌었더라도 누구에게든 그와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두 사람의 피해를 각각 따로 공감하되 동시에 공감할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두 사람의 인생이 달랐던 것처럼 두 책의 운명도 판이하게 엇갈렸다. <풀>은 해외 만화제에서 큰 주목을 받으면서 각종 상을 휩쓸며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작년에는 일본어판도 출간됐다고 한다. 아마 코로나 판데믹이 아니었으면 더 큰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반면 1986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요코 이야기>도 <풀>처럼 출간 당시에는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 반향이 이어져 미국에서는 <요코 이야기>를 중학교 과정에서 반전 교육을 위한 독서 교재로 채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출간부터 거부됐다. 소설 속에서 요코 어머니가 전쟁을 일으킨 일본 정부를 탓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그러던 <요코 이야기>는 2005년에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돼서 몇몇 언론으로부터 나름 호의적인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2년 후 한 방송으로 시작된 여론몰이로 출판사가 뭇매를 맞고 사과문을 올리고 유통 중이던 책을 절판시켰다. 조선인을 가해자로 그렸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국 내 한인사회의 반발로 만만치 않았다. 그 반발로 <요코 이야기>는 미국 중학교 과정에서 퇴출되기도 했는데, 몇 년 전에 다시 채택됐다고 한다. 이 일련의 논란 끝에 <요코 이야기>는 뒤늦게 일본에서도 2013년에 출간됐다. 그런데 한때 일본사회에서 거부했던 <요코 이야기>를 지금은 일본 우익이 자신들도 희생자라는 논리에 곧잘 동원하고 있는 모양이다. <기억 전쟁>에서 임지현은 이처럼 과잉된 민족주의가 오히려 역사 부정론자들의 반동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코 이야기>가 한국에서 다시 출간될 일은 없을 것 같다. 미국 내 한인사회의 <요코 이야기> 퇴출 운동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한 강연에서 일본 정부를 대신할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대신 사죄하고 싶다던 요코의 수난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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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만화가 권용득의 풀에 관한 의견에 대해 커멘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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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보내주신 권용득 만화가의 글 <풀과 요코 이야기>를 바탕으로 김금숙 작가의 <풀>에 대한 그의 평론과 주요 의견을 정리해 드립니다.
<풀>에 관한 권용득의 평론: 교차하는 동선과 기억의 입체성
1. 요약: 굶주림과 생존으로 연결된 피해의 실재성
권용득은 <풀>을 단순한 위안부 피해 기록을 넘어, 지독한 가난과 굶주림이라는 삶의 근원적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한 수작으로 평가한다. 그는 이옥선 할머니의 여정이 부산에서 울산, 중국 연길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물리적 이동 경로를 따라가며, 그 과정에서 겪은 굶주림이 독자에게 사정없이 전달된다고 말한다. 특히 이 작품이 위안부로서의 피해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계속된 여성에 대한 착취와 사회적 무관심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한다. 해방 후에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연길에서 또 다른 형태의 성폭력과 노동 착취를 견뎌야 했던 이옥선의 삶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멈추지 않았던 피해의 연속성을 증명한다.
2. 평론: 탈역사적 비판을 넘어선 공감의 지혜
권용득의 비평은 <풀>을 논란의 저작인 <요코 이야기>와 나란히 놓음으로써 더욱 날카로워진다. 그는 가해국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피해만을 부각했다는 비판을 받는 <요코 이야기>와 <풀>의 주인공들이 공교롭게도 비슷한 경로(기차 화물칸 등)를 반대 방향으로 이용했다는 점을 짚어낸다.
그는 <풀>이 지닌 몇 가지 한계도 솔직하게 지적한다. 첫째, 일본군 병사들을 단순히 본성에 충실한 괴물처럼 묘사한 점이다. 그는 당시 병사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위안소를 이용했던 것은 개인의 성욕보다는 시스템에 의한 비인간화 과정의 결과였다는 점을 언급하며 캐릭터의 단순화를 아쉬워한다. 둘째, 일본인 위안부를 조선인 위안부와 선을 긋는 차별적 존재로만 묘사한 점 역시 일본 사회 내에서 억압받던 그들의 피해를 부정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한다.
결론적으로 권용득은 국가적 민족주의의 틀에 갇혀 상대방의 고통을 부정하기보다, 이옥선과 요코라는 두 개인의 피해를 각각 따로, 동시에 공감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누구에게든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공부와 운동의 목적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풀>이 보여준 생존의 기록이 지닌 무게를 높게 평가한다.
세진님, 권용득 작가는 <풀>이 해외에서 큰 주목을 받으며 보편적인 인권 서사로 인정받는 점을 긍정하면서도, 우리 내부의 과잉된 민족주의가 자칫 역사적 사실을 단순화하거나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풀>을 바라보는 조금 더 입체적인 시각을 얻으셨기를 바랍니다.
혹시 권용득 작가가 언급한 <성폭력 연속체> 개념이나 다른 작품과의 비교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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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
권용득의 글은 상당히 좋은 비평입니다. 핵심 장점은 <풀>을 “민족 피해 서사”로만 읽지 않고, <가난한 여성의 생애사>, <전쟁 성폭력>, <해방 후 방치>, <기억의 정치>까지 넓혀 읽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풀>이 위안부 피해를 전쟁 중 사건 하나로 축소하지 않고, 굶주림과 빈곤을 통해 피해자의 삶 전체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합니다.
가장 중요한 통찰은 <피해의 비교>가 아니라 <동시적 공감>입니다. 권용득은 이옥선과 요코의 피해를 같은 선상에 놓고 누가 더 피해자인지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사적 위치의 고통을 각각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점은 매우 성숙합니다. 식민지 지배자 집단의 아이였던 요코와 식민지 조선의 가난한 소녀였던 이옥선은 같은 피해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전쟁과 제국의 붕괴가 어린 여성과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폭력을 남겼는지는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좋은 점은 <요코 이야기>를 무조건 “거짓”으로 몰아가는 한국식 민족주의 독법을 경계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임지현의 <기억 전쟁>을 인용하면서, 증언의 부정확성을 이유로 증언 전체를 거짓으로 몰아가는 방식이 일본 우익의 위안부 부정론과 닮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대목은 불편하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권용득의 비판 중 <풀>의 일본군 묘사가 단순화되어 있다는 지적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는 일본군 병사들이 단순한 성욕의 괴물이 아니라, 애국·군대·규율·비인간화 구조 속에서 위안부를 착취했다고 봅니다. 이 분석은 역사적으로 더 깊습니다. 하지만 그래픽노블 <풀>은 학술서가 아니라 피해자의 기억을 중심으로 한 작품입니다. 따라서 병사의 내면 구조를 더 복잡하게 그리지 않았다고 해서 곧 작품의 결함이라고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본인 위안부에 대한 지적은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권용득은 <풀>에서 일본인 위안부가 “돈 벌러 온 사람”처럼 구분되어 보이는 점을 아쉬워합니다. 일본인 위안부도 일본 사회 내부의 빈곤 여성, 하층 여성, 착취당한 여성이었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이것은 조선인 위안부의 피해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위안부 제도의 계급적·성적 폭력 구조를 더 넓게 보게 합니다.
전체적으로 권용득의 글은 <풀>을 깎아내리는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풀>의 성취를 인정하면서, 그 너머에 있는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피해자의 기억을 지키면서도, 다른 고통을 지워버리지 않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이 글의 핵심입니다. 저는 이 방향이 세진님이 자주 말씀하신 “소녀상 너머의 구조적 기억”과도 잘 맞는다고 봅니다. 위안부 기억은 일본 국가 책임을 분명히 하되, 동시에 가난·가부장제·전쟁·국가폭력·전후 침묵까지 함께 보는 쪽으로 넓어져야 합니다. 권용득의 글은 바로 그 확장을 시도한 비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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