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31

장제스의 한국 인식에 대한 진실

동북아역사재단 뉴스레터
장제스의 한국 인식에 대한 진실
배경한 신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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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황푸군관학교 교장
시기의 장제스와 쑨원
최근 중국과 타이완(臺灣)을 비롯한 국제학계의 중국현대사 연구자들로부터 가장 주목받는 연구주제 가운데 하나는, 20세기 중국의 가장 대표적 정치 지도자인 장제스(蔣介石)에 관한 평가 문제다. 장제스는 일생 동안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1917년~1973년) 일기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2003년 그의 후손들이 방대한 분량의 일기 원본을 미국 스탠포드대학 후버연구소에 기증하였고 2005년 이후 일반에 공개되기 시작하면서, 그 동안 이념적·정치적 평가에 가려져 있던 장제스에 대한 역사학적 연구가 본격화되었다.
소금상인의 아들, 국민정부의 주석이 되다
장제스는 1887년 10월, 져쟝(浙江)성 펑화(奉化)현 씨코우(溪口)에서 소금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고향의 사숙에서 유교경전 교육을 받았으며 16세 때인 1903년부터 고향의 학당에서 신식교육을 받기 시작하였다. 1908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육군예비학교인 진무(振武)학교에 들어갔으며 1910년 12월 니가타(新潟)현 타카다(高田)에 있는 일본육군 포병부대에서 사관후보생으로 복무하였다.
일본 유학 시절 쑨원(孫文)을 중심으로 하는 (공화)혁명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한 장제스는 1911년 10월 신해혁명이 발발하자 곧바로 귀국하여 상하이(上海), 져쟝 지역 혁명운동에 가담하였다. 이후 군사적 능력에 대한 신임을 얻어 쑨원의 측근으로 자리잡았으며 1924년 소련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황푸(黃埔)군관학교 교장으로 임명됨으로써 군사·정치적 기반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전개된 국민혁명을 통하여 1928년 전국을 통일하고 난징(南京) 국민정부의 주석이 되었다.
1924년부터 시작된 제1차 국공합작(國共合作) 초기부터 군사 정치적 주도권을 둘러싸고 소련고문 및 중국공산당 측과 마찰을 빚고 있던 장제스는 1927년 4월 상하이 난징 지역 점령 이후 공산당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 소탕작전(4.12정변)을 벌이면서 소련 및 공산당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반공주의자로서의 정치적 면모를 분명히 하였다. 1928년 이후부터 전개된 공산당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토벌작전(剿共)은 공산당 세력에게 커다란 타격을 입혔으나 내전의 정지와 일치항일을 요구하는 국민적 저항(1936년 12월, 西安事變)에 직면하여 제2차 국공합작을 받아들였다. 1937년 이후 8년간에 걸친 일본과의 전면전을 전개하였으며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미국의 참전과 지원으로 항일전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써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장제스의 정치적 대두과정이나 이후 정치가로서의 활동은 군사력이 정치(민주주의)나 혁명(사회혁명)을 압도하던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며, 그런 점에서 장제스는 군사정권을 이끌던 군인정치가 내지 군사독재자라는 평가를 받곤 한다.
항일전 종전 후 1946년부터 본격화된 국공 간의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정권은 1949년 타이완으로 옮겨갔다. 이후 전개된 장제스의 타이완 통치 또한 군사적 억압통치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어서 국민적 저항(2.28사건)과 함께 민주화 운동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한편으로 강력한 정부 주도의 개발독재에 의한 타이완의 경제 발전은 긍정적 평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루즈벨트, 처칠과
함께한 장제스(왼쪽 끝)와 부인 쑹메이링
명·청시대 조선 정책과 같은 맥락에서 한국을 보다
1953년 한국정부는 중국 내의 한국독립운동을 도운 공로를 인정하여 장제스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였다. 그러나 그간에 중국(혹은 타이완) 학계나 한국 학계에서 강조해왔던 것과는 달리, 중화민국 정부의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지원은, 식민지로 전락한 이웃나라에 대한 순수한 지원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부정적인 측면들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다.
예컨대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 충칭(重慶)에 있던 한국임시정부와 장제스 정부(국민정부)사이에 벌어진 한국광복군 창설을 둘러싼 논의는 당시 임시정부 측에서 광복군의 독자적 운영권 확보를 위하여 얼마나 지난한 노력을 전개했으며 이에 대하여 중국 측에서는 어떠한 견제 및 통제정책을 구사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중국 측에서는 '한국광복군행동9개준승(韓國光復軍行動九個準繩)'의 제정을 통하여 광복군을 국민정부 군사위원회에 예속시키고 그 실제적 운영도 군사위원회에서 파견한 중국 장교들이 장악하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1941년 말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한·중 간에 중요 현안으로 떠오른 임시정부에 대한 외교적 승인 문제에 있어서도 장제스와 국민정부 측에서는 적극적인 승인 의지보다는 소극적이고 관망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특히 1942년 11월의 카이로회담을 통하여, 미국의 외교 전략에 따라 강대국의 지위를 갖게 된 중국은 신탁통치에 의한 전후 한반도 문제 해결이라는 미국 주도의 방안에 동조하면서 사실상 한국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를 포기하였다.
그런 한편으로 중국 측에서는 종전을 앞두고 동맹군의 한국 진공 시에 중국군도 참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었고 재정적 원조와 민간투자의 확대 등을 포함한 한국에 대한 지원책을 검토하면서 영향력 확대를 노리기도 했다. 아울러 국민정부 측에서는 카이로회담에서 한국의 독립 이전에 거치도록 규정한 '적당시기'에 대한 방안으로 외교와 국방을 중국인 고문이 담당하는 고문정치를 검토하는 등 적극적인 개입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었다. 요컨대 중일전쟁 시기 장제스나 국민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은, 전후 강대국으로 부상할 중국이 구상하는 아시아 국제질서의 일부로서 중국의 주변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보를 목표로 한 것이었으며 그런 점에서 '약소민족에 대한 호혜적 지원'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장제스나 국민정부의 이러한 한국 인식이나 대 한반도 정책은 앞세대 중국의 정치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쑨원이나 위안스카이(袁世凱)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멀게는 책봉조공관계를 기본 축으로 하는 명·청시대의 조선에 대한 인식이나 정책과 그 맥락이 닿아 있다. 2000년 이후 급속하게 전개되고 있는 중국의 경제성장과 초강대국화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걸쳐 중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가져올 것이 확실시 된다. 이런 시점에서 바라보는 장제스의 한국인식은 우리에게 중국은 과연 어떤 존재이며 이런 중국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심각한 문제를 던져준다.

중국교과서의 한국사 인식 - 5.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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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교과서의 한국사 인식 > 중국 역사교과서의 한국사서술과 그 인식 > Ⅲ. 자국사 중의 한국사 서술 > 5. 임진왜란


5. 임진왜란
1982년판 『中國歷史』 제2책이 明末의 주요사건으로서 동아시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임진왜란을 서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援朝戰爭〉

1592년에 일본 권신 풍신수길은 군대 20만 명과 전함 100여 척을 파견하여 조선을 침공했다. 그는 어리석게도 조선을 집어삼킨 다음 다시 중국에 침공할 작정이었다. 침략군은 조선 남부의 부산에 상륙한 다음 계속해서 한성과 평양을 점령했다. 조선인민은 분연히 저항했다.
조선정부는 명정부에 파병원조를 요청했다. 1593년 명정부는 이여송을 파견하여 원군을 이끌고 조선에 가게 하였다. 이여송의 군대는 조선군대와 연합하여 일본군의 정예부대를 격파하고 평양과 한성을 수복했다.
1597년에 풍신수길은 침략군 14만 명을 파견하여 다시 침공했다. 명의 원군과 조선군은 맹렬히 반격하여 다시 일본의 침략군을 부산 부근까지 밀어냈다. 다음 해 풍신수길은 병사하고 일본 내부는 대혼란에 빠져 침략군은 황급히 철퇴했다. 명수군과 조선수군은 조선 남부의 해상에서 도망가는 적군의 퇴로를 막고 공격했다. 쌍방은 해상에서 격전을 펼쳤다. 이 전투는 70여세의 명의 노장 鄧子龍과 조선의 명장 李舜臣이 지휘했다. 일본 침략군은 거의 전부 전멸했고 원조전쟁은 승리를 거두었다. 등자룡과 이순신은 전투 중 장렬하게 전사했다.註 051


그런데 묘하게도 임진왜란은 1990년대 이후의 교과서에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민족영웅 戚繼光의 왜구격파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면서 웬일인지 중국과 일본의 정권교체를 가져오게 한 원인이기도 한 임진왜란이라는 대사건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대신 서방선교사의 전래가 中西文化의 교류를 촉진했다는 것이 이 자리를 메꾸고 있을 뿐이다.註 052 여기서 중국의 세계사 교과서에서 한국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일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중 역사인식 차이, 어디까지 왔나?

한·중 역사인식 차이, 어디까지 왔나?

한·중 역사인식 차이, 어디까지 왔나?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유지원 원광대학교 한중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원광대학교 사학과 교수

2013.10.03 08:23:00
한·중 역사인식 차이, 어디까지 왔나?
유지원 원광대학교 한중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원광대학교 사학과 교수

얼마 전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청소년들의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 부족 문제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촉발된 한국사 교육의 강화 방안과 필요성을 놓고 아직까지도 정치권, 교육계 등 각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한 국가의 역사교육 현황을 보면 그 국가의 장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일들을 암기하는 과목에 불과하다는 왜곡된 인식을 지적하는 말임과 동시에 역사 교육이 인간들에게 건전한 가치관을 형성하게 하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학문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범할 수밖에 없고 밝은 미래를 계획할 수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역사교육의 강화를 통하여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 중국 랴오닝성 장하현 소재 고구려 성산산성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 이 표지석에는 "고구려 민족이 고대로부터 중화민족을 구성하는 일원이었다"라는 문구와 "고구려 정권은 중국 동북 소수민족 지방 정권"이라는 문구가 새겨져있다. 이 문구는 중국 정부가 새긴 것으로, 붉은색 테두리 안에 표시되어 있는 것이 해당 문구다. 사진은 표지석 앞면(왼쪽)과 뒷면의 모습 ⓒ연합뉴스

이는 한국의 역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날과 같이 글로벌화 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지기(知己)뿐만 아니라 지피(知彼)하려는 자세도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한반도와는 육지로 인접하고 역사영역이 중복되어 역사인식의 차이가 자주 발생하는 중국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절실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은 그 역사가 매우 장구하며 내용 역시 매우 풍부하다. 또한 우리와는 특수한 지정학적, 정치적 관계로 인하여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급부상하는 중국에 대해 우리는 일말의 경외감까지 느끼며 그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의 현재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커다란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현재의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것, 곧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오늘날 중국 사회가 보여주는 여러 현상은 과거의 것을 기초로 변화·발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 과거의 것들이 지금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와 문화는 그 생명력이 길고, 또한 파급 효과가 매우 넓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오늘날 중국의 제반 현상에 대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오랫동안 중국과 교류와 협력을 하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대립하고 충돌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한중 양국은 역사인식에 있어서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측면도 있지만, 충돌하고 오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왔다. 이러한 역사인식에 있어서 쌍방 간의 오해와 차이는 하루 빨리 극복되어야 하는 과제이다.

중국은 일찍부터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내세우면서 "현재 중국 영토 안에 있는 모든 민족은 모두 중화민족이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는 모두 중국의 역사와 문화"라고 주장하였고, 이것을 기반으로 '대중화주의'를 국가적 전략으로 추진해 왔다. 이러한 중국의 전략은 비한족(非漢族)문화권에 대한 일련의 역사공정(歷史工程)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위 동북공정을 비롯하여 위구르족과 관련이 있는 서북공정, 티베트지역과 관련이 있는 서남공정, 몽골지역과 관련이 있는 북방공정, 동남아시아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남방공정 그리고 타이완과 오키나와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해양변강공정 등이 있다.

이러한 역사공정들 중 일부는 이미 완료되었지만, 아직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도 있다. 이런 중국의 변방에 대한 역사공정의 최종 목표는 변방문화를 중원문화와 연결시켜 자신들이 추진하는 '대중화주의'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중국의 일련의 역사공정 중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과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中國古代文明探源工程)'이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진행된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에서는 그동안 전설 시대로 여기던 하(夏)왕조를 비롯하여 상(商)과 주(周)왕조를 역사시대로 편입시키면서 구체적 연대를 확정하였다. 하왕조의 시작을 B.C. 2070년, 상왕조의 시작을 B.C. 1600년, 그리고 주왕조의 시작을 B.C. 1046년으로 확정하면서 중국역사의 유구성(悠久性)을 강조하였다. 이로써 자신들이 추구하는 '대중화주의'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이론적 기초를 구축하였던 것이다.




그 뒤를 이어 2001년부터 시작하여 2005년까지 진행된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中國古代文明探源工程)'의 제1단계에서는 중화 문명의 발생과 변화·발전과정에 대하여 중원지역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2006년부터 시작하여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제2단계에서는 '요하문명론(遼河文明論)'문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 제2단계 공정은 아직 진행 중에 있어서 최종 연구결과가 보고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기되고 있는 '요하문명론'을 통해 볼 때 중국의 의도를 짐작할 수는 있다.

즉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는 요하지역으로 중국 문명의 기원을 옮김으로써 몽골과 만주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문화와 역사도 모두 중국 문명에서 발원했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동북공정문제를 중국에서 진행해 온 다른 역사공정과 분리해서 개별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즉 중국의 다른 역사공정도 함께 분석하고 연구하여야 정확하고 적절한 대응 방안도 준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20여 년 전부터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자료수집 차 중국 동북지역의 당안관(檔案館)을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중국의 역사공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비교적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0년 이후부터는 우리 역사 관련 자료는 물론이거니와 현지의 자료조차도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이렇게 역사연구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자료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당하는 상태에서 우리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대응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어떠한 태도로 접근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한 때 중국의 이러한 자국 중심적 역사인식을 두고 역사전쟁이 시작됐다고 하면서 국내 여론이 매우 흥분된 적이 있었다. 필자의 생각으로 이러한 대응태도는 문제 해결에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앞으로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국수적 태도를 가급적 지양하고,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과학적 방법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단시간 내에 무슨 결론을 내야 할 것처럼 서둘러서도 안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제는 동북공정에 대응할 수 있는 기초적인 자료조차도 접근할 수 없는 상태에서 조바심을 가지고 서둔다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특히 이렇게 불리한 여건에서는 먼저 동북공정과 직접적 관련성이 적더라도 중국의 여러 역사공정과 약간의 관계가 있다면 무엇이든지 다양한 각도로 폭넓게 연구를 진행하여 폭넓은 연구업적이 축적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간접적이던 직접적이던 다양한 여러 분야의 연구가 축적된다면 객관적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내용도 서서히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고구려연구재단'이나 '동북아역사재단' 등이 설립되어 우리 역사의 진실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특히 최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지원하여 진행되었거나 진행되고 있는 여러 영역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들은 앞으로 한중 간 역사인식의 차이를 극복하는데 유용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양국 간 역사인식의 차이를 극복하는 데 단순히 우리만의 노력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중국 역시 최근 급성장하면서 G2국가로 불리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범했던 과오를 또 다시 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나친 자국 중심적 역사서술태도를 버리고 주변 국가에 대한 상호 존중의 역사인식태도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중국교과서의 한국사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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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교과서의 한국사 인식 > 중국 세계사 교과서를 통해 본 역사인식과 한국사 서술 > Ⅳ. 한국사 서술의 특징


Ⅳ. 한국사 서술의 특징
중국사에서 한국사 서술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기준 (A)에서 제시한 대로 인접국의 역사를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또는 미래 역사상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우선 외국사를 다루는 세계사 교과서 서술은 다루는 범위가 광범하기 때문에 한국사 서술에 대해 교과서를 분석할 때 서술량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서술량은 흔히 다른 나라와의 상대적인 분량으로 문제 삼기도 하지만 그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기준 (B)에서 제시한 대로 정치적 영향의 문제는 행간에 투영되고 있는 진정한 서술의 의도를 밝혀내는 것이다. 서술의 의도는 중국의 세계사 교과서에 서술된 한국사 관련 서술의 축조분석만으로 밝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서술 전체의 경향을 살피면서 의도를 추론해 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이런 점에 유의하면서 위에서 살펴본 중국의 세계사 교과서 서술에 나타난 역사인식의 특징을 바탕으로 이미 축조 분석한 선행 연구註 056를 참고하여 중국 세계사 교과서 속의 한국사 서술의 특징을 정리해 보았다. 구체적으로 그 특징을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한을 포함한 한국관련 서술이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세계사 구성원리가 마르크스주의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북한 편향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것들이 많이 있는데 오히려 이런 것들은 교과서 서술의 구성 원리에 충실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의 소개나, 사진의 제시, 북한 건국 사실의 제시 등이 상대적으로 자세하고, 대한민국의 건국 사실이나 사회주의자가 아닌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소개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것註 057이지만 남한이든 북한이든 한국에 대한 서술이라는 점에서 보면 크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겠다. 현실적으로 남북한 모두를 한국관련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인도나 베트남에 비해 서술량은 적지 않은 편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나아가 앞서 제시한 ‘무시 전략’이 오히려 문제이다. 의도적으로 ‘선택’에서 ‘배제’하는 서술 전략은 ‘선택’해서 ‘부정적으로 서술’하는 것만큼이나 역사왜곡의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과의 수교 사실이나 경제 상황, 올림픽의 개최 같은 현대사에 중국이나 북한에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배제되어 있다. 어차피 역사가 과거에 있었던 사실이고, 사실 중에 선택되어 설명되는 것이므로, 상대국가를 배려하는 입장에서도 적극적인 서술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국에 대한 배려가 소극적이고, 지나치게 자국 중심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다.

둘째, 近現代史를 중시하는 서술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겠지만 고대나 중세의 서술에서 한국관련 내용이 너무 소략하다. 예컨대 『世界歷史』에는 최초의 건국에서부터 조선의 건국까지 수 천년의 역사를 단 두 페이지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世界近代現代史』에서도 아주 소량 간략하게 다루는데 그치고 있는데 그것도 임진왜란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古朝鮮에 관한 사항을 전혀 다루고 있지 않고 있으면서 高句麗에서부터 나라가 시작된 것처럼 서술한 것 등은 두드러진 흠이다. 그것도 통일신라의 통일이나 고려, 조선을 아무 인과관계나 교류사에 대한 설명 없이 평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도 세계사 전체를 다루는 속에서 서술 분량의 배분상에 나타나는 서술량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고대사에서 古朝鮮史의 생략으로 표현되는 의도적인 배제이다. 이는 교과서 서술의 ‘배제’ 전략이 잘 드러나는 것으로 교과서 전체에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는 사항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셋째, 中華主義 입장이 한국사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두 가지 방향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한국사의 독자성이나 한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개하지 않고 일방적인 문화 전파 사실만을 서술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국 문화가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많은 발전을 했지만 결코 중국 문화의 일방적인 전달만을 받은 것도 아니고 받은 것을 法古創新의 입장에서 새롭게 창조해 나갔다는 사실이 반영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미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입장의 동아시아사 설명에 영향을 받은 西歐人들은 한국 문화는 수동적이고 타율적이며 중·일 문화의 아류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역사서술로는 중국의 학생들도 같은 동아시아사 인식을 가질 가능성이 많으며 따라서 한국 문화가 동아시아적 보편성을 가진 문화이면서도 자신의 특수성을 가진 문화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 서술에 있어 좀더 정확한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보편과 특수라는 관점에서 서술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다음은 한국을 중화문화권 속에 편입시켜서 애초부터 서술에서 배제해버리는 경우이다. 중화주의의 소극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국사의 독자성이나 존재 자체를 무시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안이다. 고조선사의 배제나, 앞서 살펴본 大國 중시의 입장, 한국 문화의 독자성에 대한 무지, 중국에 유리한 사실의 선택의 기준 등은 中華主義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역사적 사실의 설명에 일관되게 강자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준 (E)에서 제시한대로 강자의 논리는 자기의 기준을 보편성으로 가장하여 자기의 의도를 관철하는 방법이다. 그런 예는 전쟁이 대표적인데 중국과 한국이 당사자가 되는 전쟁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서술 태도를 취하거나 생략되는 경우가 많으며, 다른 나라의 침략에 대한 전쟁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미 선행 연구에서 전쟁, 즉 한국과 일본의 갈등관계에서 중국이 영원한 韓·中 우의를 위하여 지원하였다는 이른바 脣亡齒寒, 藩破堂危라는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점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예컨대 
壬辰倭亂은 朝鮮後援戰爭, 
淸日戰爭은 中日甲午戰爭, 
韓國戰爭은 抗美援朝 전쟁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 전쟁마다 조선의 요청에 의하여 중국이 우방인 조선을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 군대를 파견하여 원조해 주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역사적 사건들에서 중국이 일본과 미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自衛的인 조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원조한 사실만을 강조하고 있다註 058고 볼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이런 것을 통하여 앞서 말한 강자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하겠다. 강자의 논리는 보편성으로 치장하면서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논리이다.註 059 

일본도 이런 강자의 논리에 따르리라는 것은 당연히 예상할 수 있다. 예외 없이 일본도 조선을 도우려 파병했다는 똑같은 주장을 하게 된다.註 060
중국과 일본은 공통적으로 한국을 희생시킨 것에 대한 반성이나 자신의 방어를 위한 파병 등의 입장을 숨기게 되는 것이다. 강자의 논리에 따른 서술의 문제는 교과서 전체에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는 것으로서 시정이 되어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

전반적으로 중국 세계사 교과서에 서술된 한국사는 세계사로서보다는 중국사의 전개에 부수적인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배경에 중화주의, 강국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한국사의 독자성이나 문화적 독창성은 인정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선택과 배제를 통하여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고 있다. 선택된 사실은 부정적 서술이나 중국 중심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배제된 사실은 적극적인 서술은 하지 않지만 그것을 통한 다른 의도가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중화문화권이고, 정치적으로 중국의 영향의 범위 안에 있었으며, 중화가 아닌 외국의 침략을 받을 때는 중국이 도와주었다는 역사인식이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이런 서술 태도에 대하여 주어진 과제는 우선 이런 사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이 작업은 전문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시급한 일이고, 역사교육 관계자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와 같이 서술의 축조적 분석에 의해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는 미흡하다. 역사서술 전체를 관통하는 역사인식을 드러내면서, 한국사 관련 서술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해석해내고 분석해 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동아시아사에 대한 역사상을 구성하는 일이다. 이는 누구보다도 전문 연구자에게 요구되는 일이며, 역사교육에서는 핵심적인 요구이다. 동아시아사는 한·중·일의 관계 당사국이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설득력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동아시아는 주로 중국과 일본의 역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의 핵심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 속에 한국사의 역할이 적절하게 위치를 잡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역사적 관점이 대단히 중요하며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2017-01-30

Silence (novel) - Wikipedia

Silence (novel) - Wikipedia


Silence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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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ence
Author Shūsaku Endō
Original title Chinmoku
Translator William Johnston
Country Japan
Language Japanese
Genre Historical fiction
Publisher Peter Owen (UK) / Taplinger Publishing Company (USA)

Publication date 1966

Published in English 1969
Media type Print


Silence (沈黙 Chinmoku?) is a 1966 novel of historical fiction by Japanese author Shūsaku Endō, published in English by Peter Owen Publishers. It is the story of a Jesuit missionary sent to 17th century Japan, who endures persecution in the time of Kakure Kirishitan ("Hidden Christians") that followed the defeat of the Shimabara Rebellion. The recipient of the 1966 Tanizaki Prize, it has been called "Endo's supreme achievement"[1] and "one of the twentieth century's finest novels".[2] Written partly in the form of a letter by its central character, the theme of a silent God who accompanies a believer in adversity was greatly influenced by the Catholic Endō's experience of religious discrimination in Japan, racism in France, and a debilitating bout with tuberculosis.[3]



Contents [hide]
1Plot summary
2Reception
3Adaptations
4See also
5References and notes


Plot summary[edit]

The young Portuguese Jesuit Sebastião Rodrigues (based on the historical Italian figure Giuseppe Chiara) is sent to Japan to succor the local Church and investigate reports that his mentor, a Jesuit priest in Japan named Ferreira, based on Cristóvão Ferreira, has committed apostasy. Less than half of the book is the written journal of Rodrigues, while the other half of the book is written either in the third person, or in the letters of others associated with the narrative. The novel relates the trials of Christians and the increasing hardship suffered by Rodrigues.

Fr. Rodrigues and his companion Fr. Francisco Garrpe arrive in Japan in 1639. There they find the local Christian population driven underground. To ferret out hidden Christians, security officials force suspected Christians to trample on a fumi-e, a crudely carved image of Christ. Those who refuse are imprisoned and killed by anazuri (穴吊り), which is by being hung upside down over a pit and slowly bled.

Rodrigues and Garrpe are eventually captured and forced to watch as Japanese Christians lay down their lives for the faith. There is no glory in these martyrdoms, as Rodrigues had always imagined – only brutality and cruelty. Prior to the arrival of Rodrigues, the authorities had been attempting to force priests to renounce their faith by torturing them. Beginning with Fr. Ferreira, they torture other Christians as the priests look on, telling the priests that all they must do is renounce their faith in order to end the suffering of their flock.

Rodrigues' journal depicts his struggles: he understands suffering for the sake of one's own faith; but he struggles over whether it is self-centered and unmerciful to refuse to recant when doing so will end another's suffering. At the climactic moment, Rodrigues hears the moans of those who have recanted but are to remain in the pit until he tramples the image of Christ. As Rodrigues looks upon a fumi-e, Christ breaks his silence: "You may trample. You may trample. I more than anyone know of the pain in your foot. You may trample. It was to be trampled on by men that I was born into this world. It was to share men's pain that I carried my cross." Rodrigues puts his foot on the fumi-e.

An official tells Rodrigues, "Father, it was not by us that you were defeated, but by this mudswamp, Japan."[4]
Reception[edit]

Silence received the Tanizaki Prize for the year's best full-length literature. It has also been the subject of extensive analysis.[5] William Cavanaugh refers to the novel's "deep moral ambiguity" due to the depiction of a God who "has chosen not to eliminate suffering, but to suffer with humanity."[6]

Endō, in his stage version of this story, The Golden Country, has the official telling Ferreira, "But the mudswamp too has its good points, if you will but give yourself up to its comfortable warmth. The teachings of Christ are like a flame. Like a flame they set a man on fire. But the tepid warmth of Japan will eventually nurture sleep."[4] In his book A Life of Jesus, he states that Japanese culture identifies with the "one who 'suffers with us' and who 'allows for our weakness....with this fact always in mind, I tried not so much to depict God in the father-image that tends to characterize Christianity, but rather to depict the kind-hearted maternal aspect of God revealed to us in the personality of Jesus."[7]
Adaptations[edit]

Besides Endo's stage version, The Golden Country, there have been several adaptations:

Masahiro Shinoda directed the 1971 film Chinmoku, an adaptation from the novel.[8]

It was re-adapted by João Mário Grilo as The Eyes of Asia in 1996.[9]

Composer and poet Teizo Matsumura wrote the libretto and music for an opera with the same title, which was premiered at the New National Theatre in Tokyo in 2000.[10]

The novel inspired Symphony no. 3, "Silence", composed in 2002 by Scottish musician James MacMillan.[11]

In 2007, American film director Martin Scorsese announced his intention to direct an adaptation of the book which he had hoped to film in summer 2008.[12] In 2009, it was announced on Empireonline.com that Daniel Day-Lewis and Benicio del Toro were signed to star in Scorsese's film adaptation. In 2013, Andrew Garfield, Liam Neeson, Issei Ogata and Ken Watanabe were attached, and the film entered production in January 2015.[13] In 2014, Adam Driver was attached to the film adaptation.[14]In January 2015, Watanabe was forced to leave the project due to scheduling issues and was replaced by Tadanobu Asano.[15] The film premiered at the Pontifical Oriental Institute in Rome on November 29, 2016.[16]
See also[edit]

Novels portal
Christian martyrs
Urakami Cathedral
History of Roman Catholicism in Japan
Silence (2016 film)
References and notes[edit]

Jump up^ "Shusaku Endo's Silence" by Luke Reinsma, Response of Seattle Pacific University,Volume 27, Number 4, Autumn 2004
Jump up^ "We Have Never Seen His Face" (PDF). (121 KiB) by Brett R. Dewey for the Center for Christian Ethics at Baylor University, 2005, p. 2
Jump up^ Dewey 2005, p. 3
^ Jump up to:a b Francis Mathy, SJ, of Sophia University, (1974), "Introduction", Endo Shusaku, Wonderful Fool (Obaka San), Tokyo: Tuttle, p. 6, ISBN9780068598534 .
Jump up^ "Suffering the Patient Victory of God: Shusaku Endo and the Lessons of a Japanese Catholic" by Brett R. Dewey, Quodlibet: Vol 6 Number 1, January–March 2004
Jump up^ "The god of silence: Shusaku Endo's reading of the Passion – critique of the Japanese novel 'Silence'" by William T. Cavanaugh, Commonweal, March 13, 1998
Jump up^ "The Christology of Shusaku Endo" by Fumitaka Matsuoka, Theology Today, October 1982, p. 295 [Accessible on The Internet Archive]
Jump up^ "Chinmoku (1971)", Internet Movie Database (accessed 20 February 2010)
Jump up^ Bradshaw, Peter (10 December 2016). "Silence review: the last temptation of Liam Neeson in Scorsese's shattering epic". Retrieved 19 January 2017 – via The Guardian.
Jump up^ "Tokyo NNT website" (accessed 15 February 2011)
Jump up^ "BBCSSO/Runnicles" by Rowena Smith, The Guardian, 28 April 2008
Jump up^ "Next for Scorsese: 17th-century Japan" by Angela Doland, Associated Press, 24 May 2007
Jump up^ Foundas, Scott (7 May 2013). "Andrew Garfield to Star in Martin Scorsese's 'Silence' (EXCLUSIVE)". Retrieved 19 January 2017.
Jump up^ "Martin Scorsese Casts Adam Driver in Silence". 13 January 2014. Retrieved 19 January 2017.
Jump up^ http://twitchfilm.com/2015/01/asano-replaces-watanabe-in-scorseses-silence.html/ "Asano Replaces Watanabe In Scorsese's SILENCE"
Jump up^ Nick Vivarelli (30 November 2016). "Martin Scorsese Meets Pope Francis and Talks Jesuit History Prior to 'Silence' Screening". Variety. On Tuesday, “Silence” screened for roughly 300 Jesuit priests at the Pontifical Oriental Institute in Rome, in what amounted to the film’s de facto world premiere. Attendees were able to discuss the film with Scorsese afterwards.
Categories:
1966 novels
Novels by Shusaku Endo
Society of Jesus
Roman Catholic novels
Christian martyrs
Christianity in Japan
Novels set in Japan
Japanese novels adapted into films
Crypto-Christianity
Novels adapted into operas

Silence (1971 film) - Wikipedia

Silence (1971 film) - Wikipedia

Silence (1971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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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directed from Chinmoku)
Silence
Silence71.jpg
Original Japanese poster
Directed byMasahiro Shinoda
Written byShūsaku Endō
Masahiro Shinoda
Starring
Music byTōru Takemitsu
CinematographyKazuo Miyagawa
Distributed byToho
Release date
  • 1971
Running time
129 minutes
CountryJapan
LanguageJapanese
English
Silence (Japanese: 沈黙, translit. Chinmoku) is a 1971 Japanese drama film directed by Masahiro Shinoda, based on the novel of the same name by Shūsaku Endō. The theme of the film is the ultimate conflict between human nature versus divine requirements and its compatibility, life's purpose and willingness, interplay of emotional needs, suffering and content. Most of the film's dialogue is in Japanese, though it has short sequences in English. The devise of storytelling the film uses is circumstantial and struggles of life, allegorical presentation and Christian theology. It was entered into the 1972 Cannes Film Festival.[1]

Plot[edit]

In the 17th century, two Portuguese Jesuit priests, Rodrigo and Garrpe, travel to Japan to proselytize, even though Christianity is expressly banned. They also search for their mentor, Ferreira, with whom they lost contact five years prior and presume is imprisoned. Rodrigo is patronizing and Garrpe is cautious. Rodrigo and Garrpe are overwhelmed with the welcome they receive in Japan, but occasionally wish for some comfort food from home.
They travel to the village of Kichijiro, the man who smuggled them into Japan from China. Returning, they hear the officials have arrived to capture the priests. After many of the hidden believers are taken prisoner, the priests decide to leave, but Rodrigo and Garrpe become separated. Kichijiro finds Rodrigo and joins with him; he confesses to Rodrigo he is a weak person and his family was slaughtered for being Christians. Nagasaki Magistrate Inoue's men capture Rodrigo and throw 300 pieces of silver at Kichijiro.
Inoue's men imprison Rodrigo and put him on trial. Later, he and other prisoners in the cell are shown Inoue's men punishing a Christian Samurai family where in the end the wife Kiku recants her faith and her husband is dragged away to be executed. Kichijiro, who is troubled, sneaks into the holding cell, asks Rodrigo to forgive him. He says he betrayed Rodrigo because everyone shamed him for recanting his faith and despises anyone who reminds him of it.
Inoue, with the interpreter, invites Rodrigo for a talk in private. Inoue says the Church is unwanted in Japan. He compares Christianity to a concubine who makes trouble for a man's conscience (Japan). Rodrigo says truth of the Church is universal and as the happiness between a man and woman is disturbed, the State disturbs the Church through persecution for not becoming fruitful. Each accuses the other of being ignorant of the other side of the subject. Inoue concludes that he doesn't think Christianity is bad, but he has to forbid it.
Later Rodrigo is taken to the seaside and sees Garrpe, who has been taken prisoner, along with his Japanese companions. The interpreter tells Rodrigo that Magistrate Inoue wants Rodrigo to witness Garrpe apostatizing his faith and, if he doesn't, all the hidden Christian farmers will be immediately hunted down. While Garrpe's companions were drowned one by one, Garrpe unties his bounds in an attempt to save them. Garrpe swims near to the boat where his companions are thrown into the sea, but the soldiers dissuade him with spears which leads to his death. Later, Rodrigo is taken to a Buddhist temple to visit Lord Chuan Sawano. Sawano turns out to be Ferreira, who has apostatized and is working under Inoue as an astronomy scholar, also helping to expose errors and inconsistencies in Bible and Christian teachings. Rodrigo is upset by this revelation; nonetheless, Sawano asks Rodrigo to renounce his faith. Rodrigo rejects the idea. Sawano says he preached in Japan for 20 years, and he knows this is not a land where Christianity can be rooted but a terrifying swamp where seedlings can rot and die, the inculturation of Christianity is the worst. Rodrigo rejects all these and censures him that this wouldn't be the attitude of St. Francis Xavier.
The interpreter takes back Rodrigo to his prison, and he is hanged upside down in a pit with small incision at the back of his ear for the blood to drip slowly. After a short time in a lot of pain, he is taken back to the prison, where he meets Sawano again. When Rodrigo asks about the snoring sound he hears, Sawano says it's not snoring but the whimpering of three Christian believers who has been hanged upside down for the past six hours. Sawano says he was in the same cell where Rodrigo is now and was hanged for two days and there were five men who were hanged in the pit, and he can still hear their voices. Sawano tells the real reason he renounced his faith was not because of the torture, but the absence of God in others' suffering. Rodrigo replies those who are in suffering will receive eternal happiness for their pain.[2]Sawano tells him not to deceive himself, and says if Rodrigo renounces his faith now for the sake of love[3] as Christ would do, those men hanged in the pits will be freed and receive immediate care.
The interpreter comes with a fumi-e and encourages Rodrigo to step on it, as it's a mere formality. Sawano supports him by relating it to be a supreme act of love that Christ would have done for his fellow men and chants silently. Rodrigo steps on the fumi-e and a rooster crows two times. Later a complacent Rodrigo is shown helping Nagasaki magistrates to identify forbidden Christian objects. Rodrigo is asked to comment on a cup and he says it's not a chalice because the stem would have been longer. The magistrates are impressed with it and give Kuki as his wife; from that day forward, he is given her dead husband's name Sanemon Okada as Ferreira was given the title of Lord Sawano.[4] A happy Kichijiro is shown sweeping the surroundings.

Cast[edit]

イザベラ・バード - Wikipedia

イザベラ・バード - Wikipedia

イザベラ・バード

イザベラ・バード・ビショップ
(Isabella Bird Bishop)
Isabella Bird.jpg
誕生イザベラ・ルーシー・バード(Isabella Lucy Bird)
1831年10月15日
イギリスの旗 イギリス・ヨークシャー・バラブリッジ(英語版)
死没1904年10月7日(満72歳没)
イギリスの旗 イギリス・エディンバラ・メルヴィル通り(Melville Street)
墓地イギリスの旗 イギリス・エディンバラ・・ディーン墓地(英語版)
職業旅行家・探検家・紀行作家・写真家・ナチュラリスト
言語英語
国籍イギリスの旗 イギリス
活動期間1856年 - 1901年
ジャンル旅行記・探検記
主題オーストラリア・ハワイ王国・ロッキー山脈・日本・清国・李氏朝鮮・ベトナム・シンガポール・英領マレー・英領インド・チベット・ペルシャ・クルディスタン・オスマン帝国・モロッコ
デビュー作The Englishwoman in America - Google ブックス
配偶者ジョン・ビショップ
子供なし
親族エドワード・バード(父)、ドーラ・ローソン(母)
テンプレートを表示
満州民族の衣装を着たバード
イザベラ・ルーシー・バード(Isabella Lucy Bird, 1831年(天保2年)10月15日 - 1904年(明治37年)10月7日)は、19世紀の大英帝国の旅行家、探検家、紀行作家[1]、写真家[2]、ナチュラリスト[3]。ファニー・ジェーン・バトラー(英語版)と共同で、インドのジャンムー・カシミール州シュリーナガルにジョン・ビショップ記念病院を設立した[4]。バードは女性として最初に英国地理学会特別会員に選出された[5]。1881年(明治14年)に妹の侍医であったジョン·ビショップと結婚し、イザベラ・バード・ビショップ(Isabella Bird Bishop)、ビショップ夫人とも称された[6]。

略歴[編集]

イギリス・ヨークシャーで牧師の長女として生まれる。妹の名はヘニー。幼少時に病弱で、時には北米まで転地療養したことがきっかけとなり、長じて旅に憧れるようになる。アメリカやカナダを旅し、1856年(安政3年)、"The Englishwoman in America"を書いた。その後、ヴィクトリアン・レディ・トラヴェラー(当時としては珍しい女性旅行家)として、世界中を旅した。1893年(明治26年)、英国地理学会特別会員となる。
1878年(明治11年)6月から9月にかけて、通訳兼従者として雇った伊藤鶴吉を供とし、東京を起点に日光から新潟へ抜け、日本海側から北海道に至る北日本を旅した(所々で現地ガイドなどを伴うこともあった)。また10月から神戸、京都、伊勢、大阪を訪ねている。これらの体験を、1880年(明治13年)、"Unbeaten Tracks in Japan" 2巻にまとめた。第1巻は北日本旅行記、第2巻は関西方面の記録である。この中で、英国公使ハリー・パークス、後に明治学院を設立するヘボン博士(ジェームス・カーティス・ヘボン)、同志社のJ.D.デイヴィスと新島夫妻(新島襄・新島八重)らを訪問、面会した記述も含まれている。その後、1885年(明治18年)に関西旅行の記述、その他を省略した普及版が出版される。本書は明治期の外来人の視点を通して日本を知る貴重な文献である。特に、アイヌの生活ぶりや風俗については、まだアイヌ文化の研究が本格化する前の明治時代初期の状況をつまびらかに紹介したほぼ唯一の文献である。
また、清国、クルディスタン、ペルシャ、チベットを旅し、さらに1894年(明治27年)から1897年(明治30年)にかけ、4度にわたり末期の李氏朝鮮を訪れ、旅行記"Korea and Her Neighbours"(『朝鮮紀行』)を書いている。
ディーン墓地のイザベラ・バードの墓碑
中国への再度の旅行を計画していたが、1904年(明治37年)に73歳の誕生日を前にしてエディンバラで死去した。同地のディーン墓地に埋葬されている。

『日本奥地紀行』[編集]

1878年(明治11年)6月から9月にかけ『日本奥地紀行』は執筆され、1880年(明治13年)に "Unbeaten Tracks in Japan"(直訳すると「日本における人跡未踏の道」)として刊行された。冒頭の「はしがき」では「(私の)全行程を踏破したヨーロッパ人はこれまでに一人もいなかった」としるし、また「西洋人のよく出かけるところは、日光を例外として詳しくは述べなかった」と記し、この紀行が既存の日本旅行記とは性格を異にすることを明言している[7]。
栃木県壬生町から鹿沼市の日光杉並木に至る例幣使街道では、よく手入れされた大麻畑や街道沿いの景色に日本の美しさを実感したと書いている。また日光で滞在した金谷邸(カナヤ・カッテージ・イン)にはその内外に日本の牧歌的生活があると絶賛し、ここに丸々2週間滞在して日光東照宮をはじめ、日光の景勝地を家主金谷善一郎および通訳の伊藤とともに探訪する。[8]
日光滞在10日目には奥日光を訪れるが、梅雨時の豊かな水と日光に育まれた植生、コケ、シダ、木々の深緑と鮮やかに咲く花々が中禅寺湖、男体山、華厳滝、竜頭滝、戦場ヶ原、湯滝、湯元湖を彩る様を闊達に描写し絶賛している。街道の終点である湯元温泉にもたいへんな関心を示し、湯治場を訪れている湯治客の様子を詳らかに記している。またその宿屋(やしま屋)のたいへん清潔である様を埃まみれの人間ではなく妖精が似合う宿であると形容し、1泊したうえで金谷邸への帰途に就く。[9]
山形県南陽市の赤湯温泉の湯治風景に強い関心を示し、置賜地方を「エデンの園」とし、その風景を「東洋のアルカディア」と評した。[10]
1889年刊行の別の本で描かれたアイヌ民族の男性。[11]
『日本奥地紀行』では当時の日本をこう書いている。
私はそれから奥地や蝦夷を1200マイルに渡って旅をしたが、まったく安全でしかも心配もなかった。世界中で日本ほど婦人が危険にも無作法な目にもあわず、まったく安全に旅行できる国はないと信じている[12][13]
他には新潟を「美しい繁華な町」としつつも、県庁、裁判所、学校、銀行などが「大胆でよく目立つ味気ない」としたり[14]、湯沢を「特にいやな感じのする町である」と[15]記したり、また黒石の上中野を美しいと絶賛したりしている[16]。
他方、「日本人は、西洋の服装をすると、とても小さく見える。どの服も合わない。日本人のみじめな体格、凹んだ胸部、がにまた足という国民的欠陥をいっそうひどくさせるだけである[17]」、また「日本人の黄色い皮膚、馬のような固い髪、弱弱しい瞼、細長い眼、尻下がりの眉毛、平べったい鼻、凹んだ胸、蒙古系の頬が出た顔形、ちっぽけな体格、男たちのよろよろした歩きつき、女たちのよちよちした歩きぶりなど、一般に日本人の姿を見て感じるのは堕落しているという印象である[注釈 1]。」と日本人の人種的外観について記している。(ただし、これは高梨健吉による誤訳で、「堕落」の部分は「(鎖国による)退化」と訳すのが正しい。)なおアイヌ人については「未開人のなかで最も獰猛」そうであるが、話すと明るい微笑にあふれると書いている[19]。ほかにもホザワ(宝坂?)と栄山の集落について「不潔さの極み」と表し、「彼らは礼儀正しく、やさしくて勤勉で、ひどい罪悪を犯すようなことは全くない。しかし、私が日本人と話をかわしたり、いろいろ多くのものを見た結果として、彼らの基本道徳の水準は非常に低いものであり、生活は誠実でもなければ清純でもない、と判断せざるをえない[20]」と阿賀野川の津川で書くなど、当時の日本の寒村における貧民の生活について、肯定的な側面と否定的な側面双方を多面的に記述している。

『朝鮮紀行』[編集]

最初の朝鮮訪問は1894年(明治27年)。以降3年のうちに、バードは4度にわたり朝鮮各地を旅し、『朝鮮紀行』を記した。『朝鮮紀行』は、国際情勢に翻弄される李氏朝鮮の不穏な政情、伝統的封建的伝統、文化など、バードがじかに見聞きした朝鮮の情勢を伝える。
筆者の犀利な観察眼と朝鮮の資料としての評価より、1925年(大正14年)に日本国内でも抄訳され、『三十年前の朝鮮』の書名で出版された[21]。
以下、『朝鮮紀行』より。
釜山に上陸したバードは、高台にある外国人居留地の周りの杉林が1592年からの文禄・慶長の役の際に豊臣秀吉日本軍による植林によるものと記し、また釜山の旧市街が同じく文禄・慶長の役の占領の際に、日本人によって手がけられたと記している。「砦はとても古いものの、中の市街は三世紀前の構想に沿って日本人の手によって近代化されている」[22]。
『朝鮮紀行』の中の1ページ
バードは韓国併合以前の当時のソウルに関して、道は牛がすれ違えないほど細く迷路のようであり、家から出た汚物によって悪臭が酷く、北京を見るまで「ソウルこそこの世で一番不潔な町」だとし、「紹興へ行くまではソウルの悪臭こそこの世で一番ひどいにおいだ」「都会であり首都であるにしては、そのお粗末さは実に形容しがたい」と記している[23]。また、人工の道や橋も少なく、「あっても夏には土埃が厚くて、冬にはぬかるみ、ならしてない場合はでこぼこの地面と、突き出た岩の上をわだちが通っている。道と言っても獣や人間の通行でどうやら識別可能な程度についた通路に過ぎない」と記しており[24]、ソウルには芸術品や公園や劇場、旧跡や図書館も文献もなく、寺院すらないため、清や日本にある宗教建築物の与える迫力がソウルにはないとしている[25]。他方、金剛山の長安寺では「天国にいるような心地の二日間」を過ごすことができたと賞賛している[26][27]。また貨幣・通貨の流通については、銀行が町にないと記しており、また日本の円がソウルと条約港で通用したことを記している[28]。
そして日清講和条約で日本が朝鮮の独立を成し遂げて実質的な日本の保護国とした3年後の1897年(明治30年)にバードがソウルを再訪した際の体験によると、ワシントンで市政運営について学んだ知性と手腕の市長(漢城府伴尹)李采淵が、1897年(明治30年)から税関長ジョン・マクレヴィ・ブラウンの提案のもとに、市内環境改善を行なっており、「不潔さでならぶもののなかったソウルは、いまや極東で一番清潔な都市に変わろうとしている![29]」「路地には悪臭が漂い、冬にはあらゆる汚物が堆積し、くるぶしまで汚泥に埋まるほど道のぬかるんでいた不潔極まりない旧ソウルは、みるみる地表から姿を消そうとしている[29]」と記載し、改善点を具体的に列挙し、「首都修復は朝鮮式の法則に従ったもので、西洋化されているのではないことを念頭に置かなければならない(同p546)」と記しており、ここでも日本についての言及と同様に、肯定的な側面と否定的な側面双方を多面的に記述している。
朝鮮とロシア国境部の沿海州では水路が整備され、衛生にも配慮され、家屋は朝鮮半島におけるものより立派だとし、「朝鮮人というのはくずのような民族でその状態は望み無しと考えていた」がその考えを正すべきかもしれないとしている[30]。
身分制度に関して、「両班は究極に無能であり、その従者たちは金を払わず住民を脅して鶏や卵を奪っている[31]」としている。「両班は公認の吸血鬼であり、ソウルには「盗む側」と「盗まれる側」の二つの身分しかない[32]」と述べている。朝鮮の官僚については、「日本の発展に興味を持つ者も少数はいたものの、多くの者は搾取や不正利得ができなくなるという私利私欲のために改革に反対していた[33]」とし、「堕落しきった朝鮮の官僚制度の浄化に日本は着手したが、それは困難きわまりなかった[34]」と述べている。
他方、「一般に表情はにこやかで、当惑が若干混じる。顔だちから察せられるのは、最良の場合、力あるいは意志力よりも明敏さである。朝鮮人はたしかに顔だちの美しい人種である[35]」とも、また「朝鮮人は清国人にも日本人にも似てはおらず、そのどちらよりもずっと見栄えがよくて、体格は日本人よりはるかにりっぱである」とも記している[36]。

著作
[編集]
イザベラ・バードに関する
図書館収蔵著作物

オンライン著作物
主な図書館収蔵著作物
他の図書館収蔵著作物
イザベラ・バード著の著作物

オンライン著作物
主な図書館収蔵著作物
他の図書館収蔵著作物

The Englishwoman in America, (1856)
『イザベラ・バード カナダ・アメリカ紀行』 高畑美代子・長尾史郎 訳、中央公論事業出版、2014年4月。ISBN 978-4-89514-408-7。
The aspects of religion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1859)
『アメリカ合衆国における宗教の諸相』 高畑美代子・長尾史郎 訳、中央公論事業出版、2013年10月。ISBN 978-4-89514-406-3。
“Pen and Pencil Sketches Among The Outer Hebrides”, レジャー・アワー(英語版), (1866)
Notes on Old Edinburgh, (1869)
The Hawaiian Archipelago: Six Months among the Palm Groves, coral Reefs and Volcanoes of the Sandwich Islands, (1875)
『イザベラ・バードのハワイ紀行』 近藤純夫訳、平凡社、2005年7月。ISBN 4-582-83249-0。
“The Two Atlantics”, The Leisure Hour, (1876)
“Australia Felix: Impressions of Victoria and Melbourne”, The Leisure Hour, (1877)
A Lady's Life in the Rocky Mountains, (1879)[37]
『ロッキー山脈踏破行』 小野崎晶裕訳、平凡社〈平凡社ライブラリー204〉、1997年6月。ISBN 4-582-83249-0。
Unbeaten Tracks in Japan. An Account of Travels in the Interior, Including Visits to the Aborigines of Yezo, and the Shrines of Nikko and Ise., 2 Vols., (1880)[38][39]
詳細は「日本奥地紀行」を参照
“Sketches In The Malay Peninsula”, The Leisure Hour, (1883)
The Golden Chersonese and the Way Thither, A Celebration of Women Writers, (1883)[40][41]
“A Pilgrimage To Sinai”, The Leisure Hour, (1886)
Journeys in Persia and Kurdistan: With a Summer in the Upper Karum Region and a Visit to the Nestorian Rayahs., 2 Vols., (1891)
Among the Tibetans, (1894)[42][43]
『チベット人の中で』 高畑美代子・長尾史郎 訳、中央公論事業出版、2013年10月。ISBN 978-4-89514-407-0。
Korea and Her Neighbours. A Narrative of Travel, with an Account of the Recent Vicissitudes and Present Position of the country., (1898)[44][45][46][47]
詳細は「朝鮮紀行」を参照
The Yangtze Valley and Beyond. An Account of Journeys in Central and Western China, especially in the Province of Sze-Chuan and among the Man-Tze of the Somo Territory, (1899)
『中国奥地紀行』1、金坂清則 編訳、平凡社〈東洋文庫706〉、2002年10月。ISBN 4-582-80706-2。
『中国奥地紀行』1、金坂清則 訳、平凡社〈平凡社ライブラリー802〉、2013年12月。ISBN 978-4-582-76802-2。 - 東洋文庫 2002年刊の再刊。
『中国奥地紀行』2、金坂清則 編訳、平凡社〈東洋文庫708〉、2002年12月。ISBN 4-582-80708-9。
『中国奥地紀行』2、金坂清則 訳、平凡社〈平凡社ライブラリー805〉、2014年2月。ISBN 978-4-582-76805-3。 - 東洋文庫 2002年刊の再刊。
Chinese Pictures: Notes on photographs made in China, New York: C. L. Bowman, (1900)
『イザベラ・バード 極東の旅』1、金坂清則 編訳、平凡社〈東洋文庫739〉、2005年6月。ISBN 4-582-80739-9。 - 日本語訳オリジナルの編著。
『イザベラ・バード 極東の旅』2、金坂清則 編訳、平凡社〈東洋文庫743〉、2005年10月。ISBN 4-582-80743-7。
『イザベラ・バード 初めての全集』全12巻、日本シノップス、1997年10月。ISBN 4-931444-03-2。
"Unbeaten Tracks in Japan"の翻訳[編集]
詳細は「日本奥地紀行」を参照
『日本奥地紀行』 高梨健吉 訳、平凡社〈東洋文庫240〉、1973年10月。ISBN 4-582-80240-0。 - 1885年版の翻訳。
『日本奥地紀行』 高梨健吉 訳、平凡社〈平凡社ライブラリー〉、2000年2月。ISBN 4-582-76329-4。
『バード日本紀行』 楠家重敏・橋本かほる・宮崎路子 訳、雄松堂出版〈新異国叢書 第3輯 3〉、2002年8月。ISBN 4-8419-0295-3。 - 1885年版で削除された主要部分の翻訳。
『イザベラ・バード「日本の未踏路」完全補遺』 高畑美代子訳、中央公論事業出版、2008年1月。ISBN 978-4-89514-296-0。 - 1885年版で削除された主要部分の翻訳。
『イザベラ・バードの日本紀行』上、時岡敬子 訳、講談社〈講談社学術文庫〉、2008年4月。ISBN 978-4-06-159871-3。 - 1880年版からの全訳。
『イザベラ・バードの日本紀行』下、時岡敬子 訳、講談社〈講談社学術文庫〉、2008年6月。ISBN 978-4-06-159872-0。
『完訳 日本奥地紀行 1(横浜―日光―会津―越後)』 金坂清則 訳注、平凡社〈東洋文庫 819〉、2012年3月。ISBN 978-4-582-80819-3。 - 全4巻、1880年版より完訳、詳細な注を収録した版。
『完訳 日本奥地紀行 2(新潟―山形―秋田―青森)』 金坂清則 訳注、平凡社〈東洋文庫 823〉、2012年7月。ISBN 978-4-582-80823-0。
『完訳 日本奥地紀行 3(北海道・アイヌの世界)』 金坂清則 訳注、平凡社〈東洋文庫 828〉、2012年11月。ISBN 978-4-582-80828-5。
『完訳 日本奥地紀行 4(東京―関西―伊勢 日本の国政)』 金坂清則 訳注、平凡社〈東洋文庫 833〉、2013年3月。ISBN 978-4-582-80833-9。 - 神道に関する覚書を含む、総索引。
『新訳 日本奥地紀行』 金坂清則 訳注、平凡社〈東洋文庫 840〉、2013年10月。ISBN 978-4-582-80840-7。-1885年版の新訳。
"Korea and Her Neighbours"の翻訳[編集]
詳細は「朝鮮紀行」を参照
『朝鮮奥地紀行』1、朴尚得 訳、平凡社〈東洋文庫572〉、1993年12月。ISBN 4-582-80572-8。
『朝鮮奥地紀行』2、朴尚得 訳、平凡社〈東洋文庫573〉、1994年1月。ISBN 4-582-80573-6。
『朝鮮奥地紀行』1、朴尚得 訳、平凡社〈ワイド版東洋文庫572〉、2009年9月。ISBN 978-4-256-80572-5。
『朝鮮奥地紀行』2、朴尚得 訳、平凡社〈ワイド版東洋文庫573〉、2009年9月。ISBN 978-4-256-80573-2。
イザベラ・ビショップ 『朝鮮紀行』 時岡敬子 訳、図書出版社〈海外旅行選書〉、1994年1月。ISBN 4-8099-0724-4。
『朝鮮紀行 英国婦人の見た李朝末期』 時岡敬子 訳、講談社〈講談社学術文庫〉、1998年8月。ISBN 4-06-159340-4。
バード・ビシヨツプ 『三十年前の朝鮮』 工藤重雄 抄訳、東亜経済時報社、1925年1月15日。NDLJP:983107。
『三十年前の朝鮮』 バード・ジショップ編、工藤重雄 訳、龍溪書舎〈韓国併合史研究資料66〉、2008年1月、復刻版。ISBN 978-4-8447-0011-1。 - 東亜経済時報社(大正14年刊)の再版。
脚注[編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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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釈[編集]

^ アイヌ人について印象を記すうえでの記述[18]。
出典[編集]

^ Middleton, Dorothy (2004), “Bishop [Bird, Isabella Lucy (1831–1904)”], Oxford 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 (Oxford University Press)
^ “Isabella Bird (1831–1904)”. The John Murray Archive. National Library of Scotland. 2014年3月16日閲覧。
^ Ogilvie, Marilyn Bailey (1986), Women in science : antiquity through the nineteenth century : a biographical dictionary with annotated bibliography (Reprint. ed.), Cambridge, Mass.: MIT Press, pp. 38, ISBN 978-0-262-65038-0
^ “Health Care Institutes - John Bishop Memorial Mission Hospital, Kashmir”. Diocese of Amritsar. 2015年4月21日閲覧。
^ “Mrs Bishop”, The Times, Obituaries (London, England) (37521): 4, (1904-10-10)
^ イザベラバード『伝記ノート』、ハワイ諸島、電子ブック、(2004)
^ バード (1973, pp. xiii-x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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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バード (2008b, p. 320)
^ The Popular science monthly (1889), William Jay Youmans.
^ バード (1973, p. 48[原註])
^ バード (2008b, p. 484(原註第九信[1]))
^ バード (2008b, 「第20信」)
^ バード (2008b, p. 320)
^ バード (2008b, p.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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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バード (1998, 11章)
^ 19世紀末~日本植民地時代の長安寺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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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rd, Isabella (1877), A Lady's Life in the Rocky Mountaing
^ Unbeaten Tracks
^ Bird, Isabella (2006), Unbeaten Tracks in Japan: The Firsthand Experiences of a British Woman in Outback Japan in 1878, Japan & Stuff Press, ISBN 4-9902848-0-1
^ Bird, Isabella (1883), The Golden Chersonese and the Way Thi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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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rd, Isabella (1894), Among the Tibetans (online ed.), Australia: University of Adelaide
^ Bird, Isabella (1894), Among the Tibetans (online ed.), US: Project Gutenberg
^ Bird, Isabella (1898), Korea and Her Neighbours
^ Bird, Isabella (1898), Korea and Her Neighbours, 1
^ Bird, Isabella (1898). Korea and Her Neighbours. 2.
^ Bird, Isabella (1898), Korea and Her Neighbours, 2
参考文献[編集]
赤坂憲雄 『イザベラ・バードの東北紀行 『日本奥地紀行』を歩く 会津・置賜篇』 平凡社、2014年5月。ISBN 978-4-582-83637-0。
金坂清則 『イザベラ・バードと日本の旅』 平凡社〈平凡社新書 754〉、2014年10月。ISBN 978-4-582-85754-2。
O・チェックランド 『イザベラ・バード 旅の生涯』 川勝貴美 訳、日本経済評論社、1995年7月。ISBN 4-8188-0796-6。 - 原タイトル:A life of Isabella Bird. by Olive Checkland
O・チェックランド 『イザベラ・バード 旅の生涯』 川勝貴美 訳、日本経済評論社、2013年4月。ISBN 978-4-8188-1671-8。 - オンデマンド版。
Barr, Pat (1970-07), A Curious Life For A Lady: The Story of Isabella Bird (1st ed.), London: Macmillan, ISBN 978-0-333-09647-5
パット・バー 『ある女性の奇妙な人生 異色な旅行家イザベラ・バードの物語』上・下、小野崎晶裕 訳、赤札堂、2006年10月-2007年2月。NCID BA77740375。
パット・バー 『イザベラ・バード 旅に生きた英国婦人』 小野崎晶裕 訳、講談社〈講談社学術文庫 2200〉、2013年10月。ISBN 978-4-06-292200-5。
Barr, Pat (1968), Deer Cry Pavilion: Story of Westerners in Japan, 1868-1905 (Hardcover ed.), London: Macmillan, ISBN 978-0-333-03366-1
パット・バー 『鹿鳴館 やって来た異人たち』 内藤豊 訳、早川書房、1970年。ASIN B000J9FIH2。
Barr, Pat (1967-07), The coming of the barbarians; a story of Western settlement in Japan 1853-1870 (1st ed.), London: Macmillan, ISBN 978-0-333-02209-2
パット・バー 『夷狄襲来 幕末の異人たち』 内藤豊 訳、早川書房、1972年。ASIN B000J9GBJQ。
宮本常一 『イザベラ・バードの『日本奥地紀行』を読む』 平凡社〈平凡社ライブラリー Offシリーズ〉、2002年12月。ISBN 4-582-76453-3。
宮本常一 『イザベラ・バードの旅 『日本奥地紀行』を読む』 講談社〈講談社学術文庫 2226〉、2014年4月。ISBN 978-4-06-292226-5。
Stoddart, Anna M. (2011-06) [1906], The Life of Isabella Bird (Mrs. Bishop). (Paperback ed.), 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 978-1-108-02896-7
まんが[編集]
佐々大河 『ふしぎの国のバード』(エンターブレイン、漫画誌「ハルタ」にて隔号連載)。
佐々大河 『ふしぎの国のバード』1巻、エンターブレイン〈ビームコミックス〉、2015年5月。ISBN 978-4-04-730513-7。
佐々大河 『ふしぎの国のバード』2巻、エンターブレイン〈ビームコミックス〉、2016年5月。ISBN 978-4-04-734133-3。
関連項目[編集]
ウィキメディア・コモンズには、イザベラ・バードに関連するメディアがあります。


山形県金山町
シャルル・ダレ
南陽市
南陽宣隊アルカディオン(ローカルヒーロー)
平村ペンリウク
渡辺光恵(杏林大学教授、イザベラ・バード文献研究者。)
外部リンク[編集]
日本の美術館・博物館INDEX『イザベラバード記念コーナー』 - コトバンク
イザベラ・バードの著作およびイザベラ・バードを主題とする文献 - ドイツ国立図書館の蔵書目録(ドイツ語)より。
イザベラ・バードの作品 - プロジェクト・グーテンベルク
イザベラ・バード - Find a Grave(英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