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5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940 삼천리 제12권 제8호 > 民族의 祭典 손기정 남승용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잡지명삼천리 제12권 제8호  
발행일1940년 09월 01일  
기사제목民族의 祭典  
기사형태회고·수기  
民族의 祭典
世界的 覇者「孫基禎南昇龍」氏로부터 4年前 伯林大會의 올림피아映畵「民族의 祭典」에 대하여 回想을 듣다.
映畵『民族의 祭典』評
金東煥-지난 7월2일과 3일 양일간 京日文化映畵劇場에서 試寫會가 있은 영화『民族의 祭典』에 대해서 그 보신 감상을 말씀해주십시오.
孫基禎-4년전의 일을, 더욱이 내가 달른 장면을 필림을 통해서<48> 이제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은 실로 感慨無量하기 짝이 없으며 당시 伯林에서 대회광경을 직접 보던 때와는 또 다른 감격을 이 영화를 통해서 보았습니다.『民族의 祭典』은 스포-쯔영화요 따라서 한 개의 기록영화지만 레-니·리-펜슈타-ㄹ여사의 예술적 天分에 의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준 획기적인 構圖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여러분도 시사회에서 보셨으니 구태여 여러 말을 피합니다마는, 이 영화에서 五大陸 전세계의 끓고 뛰는 젊은이의 피와 肉이 조국의 명예를 위해서, 긴장과 흥분 속에서 가장 眞摯하고 순수한 민족투쟁을 계속하는 그『肉體美의 跳躍』에 보는 이로 하여금 숭엄한 인간미와 장렬한 육체미에 경기자와 같은 긴장과 흥분 속에서「人間讚美」를 갖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南昇龍-여하간, 올림픽대회는 五大陸의 각 민족이「平和의 交歡」속에서 투쟁하는 一大民族의 제전인데, 영화『民族의 祭典』을 통해서 각 경기의 각 선수의 一擧手一投足에 그 절실하고 순수한 감정이 끓어오르며, 그러면서도 그것이 기록영화에만 끄치지 않고 성격이 잘 묘사된 것과 예술적 芳香을 잘 풍겨주는 것에는 저 역시 리-팬슈타-ㄹ여사에게 사의를 표하기를 주저치 않는 바입니다.
毛允淑-전『民族의 祭典』의 감독 레리·리-펜슈타-ㄹ여사가<49> 1個의 영화감독만이 아니라 훌륭한 시인인 것만 같이 생각돼요. 그 오림피아 유적인 古代希臘건물조각과, 남녀 裸像조각의 端正한 형식미의 묘사에 감격했어요.
崔貞熙-내 생각엔 남자감독이라면 기록영화로 하여금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그처럼 또렷하도록, 오림픽 光景을 눈으로 본 이상으로 나타내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면 여자감독이기 때문에 그렇게 훌륭한 영화를 맨들었다는 거얘요.
孫基禎-허어! 이거, 여자자랑을 너무 하십니다 그려.(一同笑)
朴啓周-米國선수로 나오는 흑인 오웬스를 一個의 人間除外의 구로테스크한 괴물로 보겠지만 영화『民族의 祭典』에서는 어떻게도 인간적인지요! 스타-트線上의 그의 날카로운 응시와, 격한 호흡과, 입살이 말라서 혀끝으로 적시는 그 긴장의 극치에 달한 자태는 실로 인간적이오, 인간미를 담뿍 품은 장엄한 자태드군요.
崔貞熙-전 오웬스가 그 초조와 긴장에 쌓여서 허덕이는 진지한 태도와, 그러다가도 그 친구가 씩 웃는데서 어떤 매력을 느꼈어요. 하긴 히틀러總統도 이때까지는 그저 木石과 같은 인간으로 알아왔지만, 자기나라 선수가 出場하면, 특히 여자선수일땐 더욱 남자선수가 나왔을 때보다, 또다른 한가지 표정을 하는데「그도 亦是 피가 흐르는 인간이로구나」하고 一種의 흥미를 갖게 됐어요.
孫基禎-어쨋던 영화를 통해서 영화가 가진 기능의 最高度를 발휘한 것으로 생각합니다.「三千里」6월호에도 제가『民族의 祭典』의 鑑賞記를 썼지만, 제11회 올림피아영화는 제1부 제2부로, 노니여 있는데 제1부는『民族의 祭典』이고, 제2부는『美의 祭典』입니다.
이 올림피아영화는 獨逸정부에서 레니·리-펜슈타-ㄹ여사를 제작首班으로 하여 올림피아映畵協會를 결성하여 대회기록의 영화採錄에 全力을 다하기로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獨逸영화계가 총동원하였으며, 촬영만도 第一線의 카메라맨이 44명이라 합니다. 특히 現代獨逸의 카메라의 精隨를 다한 것으로, 그 수록으로부터 편집에까지 레니·리-펜슈타-ㄹ여사는 1個年이란 시간을 소비하였으며, 44명의 카메라맨은 총동원하여 모든 입체적 각도에서 촬영한 것이외다.
『民族의 祭典』(Fest der Volker)은 전12권으로 올림피아·쿠-로스丘의 聖火로부터 시작하여 육상경기 전부와 마라손의 決勝으로 막을 닫게 되는데, 그 촬영중에는 氣球에 依하여 공중촬영, 즉 俯瞰촬영도 있습니다.<50>
올림픽競技의 由來
金東煥-올림픽경기의 유래를 좀 이야기해 주십시요.
孫基禎-올림픽경기는 지금으로부터 2천7백년전인 西紀前776년에 希臘나라 올림피아에서 처음 시작되었었는데, 당시「제우스」神前에 올리는 祭事로서 올림아피경기가 개최되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도 4년마다 한번씩「제우스」神前에 올리는 祭事와 함께 경기도 계속 거행되었으며, 이 祭事를 중심하여 古代希臘의 그 絢爛한 문화가 생성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로마(羅馬)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정신생활을 육체생활보다 過重視하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말미아마 올림피아경기는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다가 서기396년, 즉 제293회의 올림피아祭를 맞이하여서부터 2년뒤인 서기394년에 데오드시아스大帝가 올림피아祭의 금지령을 선포하였기 때문에 1천1백68년간이나 계속해 오던 올림피아祭의 역사적 경기는 그만 폐막의 비운에 봉착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합니다. 그런데다가 서기476년에 제우스神殿이 콘스탄티노불에 옮기게 되자 불타버렸고, 올림피아聖地에는 코-트族이 濫入하고, 그후 지진까지 있게되어 豪華를 자랑하던 올림피아는 지하20尺 밑에 매장되고 말았습니다.
이리하여 永滅狀態에 含하였던 올림피아경기는, 文藝復興期이후, 歐羅巴에 있어서 한창 전성시대의 觀을 呈하고 있던 進化論사상과 團體的사상이 올림피아 부활운동의 문화사적 母胎가 되었었으며, 19세기에 들어서서는 歐羅巴에 배출된 많은 考古學 학자들은 古代希臘의 연구에 흥미를 가지고 遺蹟발굴사업이 성행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결정적 성공을 보게된 것은 獨逸학자 에룬스트·클티우스氏의 발굴사업에 의하여 1874년부터 1881년까지의 만7년간에 올림피아유적은 거의 완전하게 그 姿態를 地上에 再現케 되었지요.
이 올림피아유적의 발굴로 인하여 希臘的정신의 부활을 보게 되었으며, 이에 자극된 올림피아<51>경기의 近代的 부흥을 企圖한 것은 서기1896년 佛蘭西의 교육자 삐-엘·드·크멜단男爵의 헌신적 노력에 의해서 제1회 대회가 由緖 깊은 希臘나라 아데네(雅典)에서 개막되었다 합니다.
朴啓周-그 뒤로 제11회 대회까지의 대회장소 순번은 어디어디었습니까.
南昇龍-제2회 대회는 1900년에 佛蘭西 巴里에서 개최되었고, 제3회는 1904년에 聖路易에서, 제4회는 1908년에 英國 론돈에서, 제4회는 1912년에 瑞典 스톡홂에서, 제6회는 제1차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중지되었고, 제7회는 1920년에 安府에서, 제8회는 1924년에 佛蘭西 巴里에서, 제9회는 1928년에 암스터-담에서, 제10회는 1932년에 米國 로스안젤스에서, 제11회는 獨逸 伯林에서 개최되었지요.
毛允淑-日本에서 올림픽대회에 참가하기는 어느해부텁니까.
南昇龍-1912년도에 瑞典 스톡홂에서 개최된 제5회 올림픽대회였습니다. 그 당시 마라손경기에는 金栗四三선수가 出場하였고, 그후 매회마다 마라손선수를 파견하였으나, 覇權을 차지못하다가 24년만에 孫군의 奮戰으로 인하여 비로소 宿望의 世界制覇를 실현케 되었습니다. 이것에는 전혀 故國父兄母妹 여러분의 성원에 있었다는 생각과 동시에 감사함을 不禁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米洲로스안젤스에서 개최되었던 제10회 올림픽대회에 出征하여 마라손경기에 6着하였던 金恩培형과 9着하였던 權泰夏형, 두분 선배를 생각지않을 수가 없습니다.
孫基禎-사실 그래요. 만일 그 두분 형이 아니었드면 우리들은 세계대회에 출정할 자극도 그리 받지 못했을 것이오, 따라서 두분 선배가 불행히 제패못한 그 雪怨을 부끄러운 말씀이나, 우리가 갚아야겠다는 義憤과 용기를 얻은 것도 두분 선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朝鮮사회는 그 두분의 존재를 씻은 듯이 잊어버리고, 만일 잊어버리지 않었다고해도 그들을 정신적으로까지 돌보지않는다는 것은 불쾌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1着을 해야 天地가 문어갈 듯이 떠들고, 6着 9着을 했다고 그들을 心的으로까지 후원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두분이 우리 전체를 대표해서 『運動朝鮮』을 널리 세계에 알리려고 장구한 시일을 亙하여 奮鬪努力한 그 功을 몰라보는 일이라 생각지 않을수 없습니다.<52>
入場式 光景과 스타지암
金東煥-昭和11년, 伯林에서 개최되었던 제11회 세계 올림픽 경기대회에 51개국이 참가하였다는데 각국 선수는 약 몇 명가량이었나요.
孫基禎-각국에서 모인 선수가 3천여명이었는데, 관중은 10여만이었습니다.
崔貞熙-日本선수는 몇 명이나 참석했는가요?
南昇龍-伯林대회에 출정했던 日本선수의 總數爻는 각종 경기를 합해서 1백76명이었습니다 마는 선수외에 감독, 코-취, 기타 從員까지 합하면 近 3백명이나 참석했지요.
毛允淑-8월 1일부터 경기가 시작되었다는데 京城서 떠나시기는 언제였습니까.
孫基禎-그해 6월 4일에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경기가 열리기 近 2개월전에 京城을 출발한 모양이지요.
金東煥-가셔서 2개월동안은 줄곳 연습에만 힘썼습니까.
南昇龍-네, 가서도 그 좋다는 歐洲문명의 諸施設도 구경 못하고, 경기연습에만 시간을 보냈습니다.
朴啓周-그때의 입장식 觀景을 爲先 말씀해 주십시오.
孫基禎-영화『民族의 祭典』에서 보시다싶이 獨逸 히틀러總統은 국제올림픽위원장 랏-루男爵과 獨逸올림픽위원장 레-왈드氏에게 인도되어 입장하고, 다음 각국 선수가 각기 자기나라 국명을 쓴 牌木든 사람과 國旗를 든 사람의 뒤를 따라 입장하는데, 올림픽 발상지의 希臘이 제1회(1896년)올림픽·마라손 우승자 루이스를 선두로, 이하 각국은 ABC順에 따라 서고, 주최국 獨逸이 맨 나종에 입장했습니다. 이리하여 입장이 끝나자 뒤를 이어 히틀러總統이 서서 제11회 올림픽대회 개회를 선언하고, 祝砲聲이 요란히 울리며 數十마리의 비들기가 대회장의 창공을 날지요. 그때 리히알트·스트라우스작곡의 올림픽頌歌의 합창이 우렁차게 울리는데 이때 希臘 알페오의 궁전으로부터 炬火를 가저오는 최후의 走者 푸릿쯔·실겐(일찌기 5천米와 1만米 기록 保持者)이 會場에 도착하여 마라손塔上에 점화합니다. 이 오림픽聖火는 8월16일인 폐회식 날까지 계속해서 불붙고 있지요. 여기에서 漸間 그 聖火의 유래를 말씀하면, 一種 神話인 모양인데 옛날 希臘처녀의 손에 의해서 태양열에 聖火가 점화되었다하며, 여러분도 영화에서 보섰겠지만, 영화 화면에는 希臘선수 콘스탄스·고이리스君이<53> 先頭로 리레式으로 이때까지 열린 7개국대회장을 거쳐서 마지막으로 3,075키로를 隔한 伯林경기장에 들어옵니다. 이리하여 聖火가 塔上에 점화되자 뒤를 이어 선수대표로서 루돌푸·이스마엘선수(그는 前回의 重量揚優勝者世界記錄保持者)가 宣誓하는데 그 선서는 이러합니다. 『우리들은 올림피아경기에 있어서 光榮 있는 戰士로서 경기규칙을 遵奉하며 武士道정신에 쫓아 조국의 영예와 스포-쯔의 光榮을 위해서 싸우기를 서약하노라』
朴啓周-그런데 영화『民族의 祭典』움„ 통해서 입장식 광경을 보면 51개국 선수가 모두 당당히 한템이 되여 입장하는데 東洋에 或 어떤 나라가 입장하는 것이 보이지 않드군요. 그럴理야 없겠지요?
南昇龍-네, 참가한 나라중에 或 영화에 보이지 않든 곳도 있는 것 같드군요.
崔貞熙-今番 伯林대회장의 스타디암은 얼마나 커요? 東京神宮경기장의 몇배나 돼요?
孫基禎-몇배될 건 없구, 東京神宮경기장보다는 크드군요. 아마 東京神宮경기장을 伯林경기장 속에 집어넣으면 폭 들어갈 정도였지?(南氏를 향해 머리를 돌리며 묻는다)
南昇龍-그렇지, 그 정도밖엔 되지못해.
毛允淑-그럼 그리 대단히 큰 건 아니군요.
南昇龍-그래도 스타디암이 東京것보다 훨씬 높아서 굉장해 보여요. 맨 우에선 경기장면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며, 망원경을 가지고야 보게끔 됐어요.
올림픽村과 應援群
崔貞熙-每日 경기장에 나와서 구경했어요.
孫基禎-못했습니다. 첫날 입장식 때와 그 이튿날 한번 南君과 가치 참석해서 경기구경을 하고는 그 뒤로는 줄곧 南君과 둘이 마라손 연습에만 시간을 보냈어요.
金東煥-늘 오림픽村에서 연습했습니까.
南昇龍-안요. 정말 마라손코-스인 『아브스』도로에서 늘 뛰어다녔지요.「마라손」경기는 올림픽육상경기의 최후일인 8월 9일 오후 3시에 각국 선수 52명이 참가하여 출발하였는데, 경기장을 일주하고 정문을 나가서「클비왈드」의 樹林을 지나「아브스」도로를 왕복하여,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는 고개도 있어서 실로 難코-스입디다.<54>
朴啓周-다른 나라 선수들도 늘「아브스」도로에서 연습합디까.
孫基禎-별로 연습하는 선수를 보지 못했습니다. 늘 우리 들만 미친 놈처럼 그 고개를 올려뛰고 내려뛰고 했지요. 다른나라 선수들은 대개 올림픽촌에서 연습을 하나 그렇게 매일 뛰거나 그러지는 않어요. 이번 마라손에 2등한 英國선수 하-바君도 마라손경기가 끝난 뒤에 알았지, 그 전에는 몰랐습니다.
毛允淑-올림픽촌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과 가치 사괴여 지내던 이얘기를 해주세요.
南昇龍-올림픽촌은 각국 선수들이 留宿하는 기숙사인데, 올림픽경기가 끝나면 그 기숙사를 항공병사의 기숙사로 사용키로 예산하고 건축한 것이며, 올림픽촌에서 별로 외국선수들과 사괴며 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처째 마라손연습을 하느라고「아브스」도로에서 뛰고 놀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사실은 英國선수들은 별로 사괴이기를 질기지 않는 모양인지는 몰라도 어디에 박혀있는지 통 알 수가 없어요. 그 밖에 외국선수들도 역시 자기들 할 일이나 할 뿐이지 별로 이렇다 하게 사괴이지를 않드군요.
金東煥-米國선수로 나오는 흑인 오웬스君과는 도모지 사괴여보지 못했나요.
孫基禎-오웬스君과도 별로 사괴지는 못했습니다. 百메돌경기에 10초2의 기록을 냈고, 走巾跳에 8메돌06이라는 올림픽기록으로 1等했는데, 그 놈이 뛰기도 잘하지만 달키도 잘 하드군.(一同笑)
金東煥-영화에서 보면 오웬스君이 스타-드하기 전에 긴장과 흥분에 헐떡어리며 잔뜩 눈알을 치켜뜨고 앞을 노리며 바라보는 그 날카로운 시선은 실로 인간성 그대로를 표현했는데, 장관입디다.
崔貞熙-하기야, 스타지암에서 구경하고 있는 히틀러總統을 보구려. 자기나라 선수가 1등이 못되고 2등이나 3등이 되여서 앞을 다투게 되면, 무의식중에 안타까워서 무릎을 썩썩 긁다가는 궁둥이를 들었다 놨다하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그 光觀을 보면 당대의 영웅도 어린애와 같잖아요.
毛允淑-별 수 있수, 그두 사람이니까. 너무 안타까워서 얼굴을 막 찡그리기도 하고, 자기나라 선수가 지면 자리에 털석 주저앉으면서 입맛을 쩝쩝 다시는 것이 똑 獅子같더라니까. 그리구 자기나라 선수가 이기면 막 일어나서 박수치는 그 光景이란 실로 人間味 답부리드군요.
朴啓周-히틀러總統과 面會하기는 언제였나요?
孫基禎-마라손경기가 끝난 뒤였습니다. 그 전에는 만날 面目도 없고, 마라손경기가 끝난 다음엔 당당히<55>(笑) 澁谷團長과 함께 스타지암에 앉아있는 히틀러總統을 방문하니 히틀러總統은 자리에서 일어나 맞어주며 악수를 청하기에 악수했지요. 그리고 악수하기 전에 먼저 제가 獨逸式으로「하이라·히틀러-」를 부르며 팔을 쭉 페면서 히틀러에게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히틀러가 내 등을 툭툭 뚜들겨 주며 칭찬해 주는데 등을 뚜들겨 주는 품이 똑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것만 같애서 좀 안됐드군.(一同笑) 그리고, 그 친구의 눈알과 수염은 실로 무섭고도 묘하게 생긴 명물이두군.(一同笑)
南昇龍-그리구 스타지암에서 응원하는 각국 민족의 그 긴장과 흥분의 열광적 표정은, 여러분도 영화에서 보셨겠지만 경기하는 선수들이나, 응원대나 다같이 참으로 각 민족투쟁의 一大 심포니-얘요.
競技記錄과 마라손制覇記
金東煥-支那선수들이 참가한 경기가 別般 없나보드군요. 영화『民族의 祭典』에는 走高跳에 王이라는 선수가 나왔다가 等數에 들지 못하고 마는 것을 본 것 외에는 도무지 없었는데 사실 경기에 있어서도 그랬나요?
孫基禎-사실 이렇다할 경기에도 별로 참가하지 못했지만 우승자도 전혀 없어요. 4億萬이라는 세계최고의 인구를 가진 나라가, 그 4億인구 속에서 이렇다할 선수 하나를 낳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뽕rn라들이드군.(一同笑) 支那선수가 出征하기는 49명이나 했지요.
朴啓周-이번 육상경기의 일등기록만 말씀해 주십시오.
南昇龍-「圓盤投」에 米國선수 카-펜타-君이 50米48(올림픽기록)으로 일등했고,「女子圓盤投」에는 獨逸선수 마우엘마이엘이 47米63(올림픽기록)으로 일등했습니다.「女子槍投」에 獨逸 푸라이쉘이 45米18로 일등,「女子80米障碍」에 伊太利 바-라가 11초7로 일등,「鐵槌投」에 獨逸 하인君이 56米49로 일등,「100米競走」에 米國 오웬스君이 10초3으로 1착,「女子走高跳」에 洪牙利 쟉크가 1米60으로 일등,「砲丸投」에 獨逸 웰케君이 16米20으로 일등,「800米競走決勝」에 米國 웃드라푸君이 1분52초9로 1착,「三段跳」에 日本 田島直人이 16米(세계기록)으로 일등,「走巾跳」에 米國 오웬스君이 8米08로 일등,「5,000米競走」에 新西蘭 라부록크君이 3분47초8(세계기록)으로 1착,<56>「走高跳」에 米國 죤손군이 2米03으로 일등,「110米高障碍」에 米國 타운스君이 14초2로 일등,「槍投」에 獨逸 스텍크君이 71米84로 일등,「10,000米決勝」에 芬蘭 살미-넨君이 30분15초로 1착,「棒高跳」에 米國 메도우스君이 4米35로 일등,「女子400米繼走決勝」米國템이 46초9로 1착,「400米繼走」에 米國템이 39초8(세계기록)으로 1착,「1,600米繼走」에 英國템이 3분9초로 1착,「마라손」에 우리 孫基禎君이 2시간29분19초2(올림픽기록)으로 1착이외다.
이상 말한 것은 『民族의 祭典』에 나온 육상부의 기록뿐이고, 수영이라든가 스켓트, 스키-등은 올림피아영화 제2부『美의 祭典』에 나오는데 그것은 여기에서 割愛하기로 합시다.
金東煥-다음 마라손 制覇戰이나 얘기해주십시오.
孫基禎-그날이 8월 9일, 올림픽 육상경기의 최종일이자, 마라손이 최종경기였는데, 경기장에 나서니 가슴은 두군거리고 초조한 마음은 이로 형용할 수 없어요. 민족의 투쟁이니만치 이 제전에서 참패한다는 것은 나 일개인의 참패가 아니고 내 민족 전체의 참패인 것만 같애서 이 무거운 짐을 걸머진 나는 아무리 세계기록을 가젔고, 아무리 많은 연습을 했다고 할지라도 최후의 鬪爭場에 나서니 가슴이 두군거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올림픽대회에서 마라손은 대표적 최고경기요, 그 거리도 42粁195(4,275米, 26哩4分之1), 朝鮮里數로 계산하면 1백7里인데 이 1백7里를 두시간 반에 走破하자니 自轉車만큼은 뛰여야돼요. 그리고 이 경기는 古代希臘의 故事에 則하여 올림픽대회에 加한 것으로, 올림픽경기를 통하여 가장 意義있는 경기요, 1착만 하면 세계의 영웅의 명칭을 가지는 光榮을 입게될 뿐만 아니라, 이 마라손 일등 우승자에게만 한해서 주최국에 동상까지 세워 줍니다.
日本에서는 올림픽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마라손경기에 있어서 단체작전을 사용하여온 관계로 지금까지는 실패를 보았다고 하며, 그 때문에 伯林대회 時에는 단체작전을 버리고, 나와 南君은 개인작전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日本에서 마라손선수로 네사람이 뽑혀갔지만 마라손경기에는 한나라에서 세사람밖에 참가시지지않는 규칙이 있기 때문에 나와 南君, 鹽飽君 셋이 참가했지요.
아까도 말씀한 바와 같이 그날 오후 3시에 각국선수 52명이 출발하여 경기장 츄럭을 一周하고 경기장 외로 나가서「클비왈드」의 樹林을 지나「아브스」도로를 왕복하는데,<57> 스타-트 直後부터 前回 올림픽·마라손에 우승한, 알젠틴人 자바라君이 쑥쑥 스피-드를 내여 선두에서 달코 있어서 쾌조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출발후 약 8粁로까지는 나는 英國선수 하-바-君과 나란히 서서 제2위로 달코 있었지요. 그때까지도 나는 하-바-君이 英國선수라는 것을 몰랐고, 回歸點에서 돌아서서 올 때에도 역시 자바라가 선두에 섰고 나와 하-바-는 그냥 나란히 서서 뒤를 따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약 30粁되는 지점에서 하-바-君이 英國선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가치 달턴 英國선수가 떨어져서 돌아오는 길에서 하-바-君을 열심히 응원하는 것을 보고 그가 英國선수라는 것을 알았지요.
그러나 내나 南君은 선두에 서서 달는 前回 우승자 자바라君이나 英國선수 하-바-君보다도 芬蘭나라「누루미」라는 사람이 코-취하는 芬蘭3選手가 제일 강적으로 무서워했습니다. 그래도 하-바-君의 실력을 모르기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었는데 호흡상태가 피로된 것을 알고 앞을 내빼여서 뛰었으며 그 뒤로는 하-바-君이 나를 쫓지 못하고 늘 떨어젔으며, 선두에서 달턴 자바라君은 출발시부터 너무 速하게 뛴 관계로 32粁 지점인 고개에 오르는데 와서는 그만 氣盡脈盡하여 醫務員에게 보조되여 기권하자 나는 그때부터 최선두에 서서 달케 됐어요.
그런데 경기 前日 日本응원단에서는 6哩되는 지점에서 응원하기로 정했는데 6哩되는 곳에 와도 아무도 응원하는 사람이 없고, 그야말로 꿩 구어먹은 자리여서 낙심까지 됐었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좌우에 늘어선 群衆속을 응원하는 사람 한사람 없이 적적한 마음으로 달키는 하였으나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고, 그러니 뒤에 따라오는 선수가 얼마나한 거리에 있는지 알 수 없어서 퍽 안타가웠습니다. 그리자 고개를 넘어서 佐勝코-취를 만나게 되어「꼴」이 얼마 남지 않었다는 것을 비로소 짐작하게 되었으며, 경기장안에 돌아 들어와서 한바퀴 도는데도 아무도 보이지 않으므로 이제는 어김없이 1착은 내것이로구나 하고 역시 쾌조로 꼴에 뛰어들어갔습니다. 만일 그때의 제 기세로는 40里는 더 뛸 자신이 있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南君도 마라손경주가 더 계속된다면 자기 역시 4, 50里까지는 더 뒬 자신이 있더라고 말하드군요. 여하간 나종에 權泰夏氏에게서 들어서 알았는데 경기장 입구에 돌아 들어와서 츄럭에서 꼴까지 13초에 뛰었다고 하는데 그「타임」의 측정은 米國 코-취가<58> 했다고 해요. 이리해서 2시간29분19초2로 영예의 月桂冠을 획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다 全同胞의 至誠의 후원과 지지라고 생각하니 감격하기 짝이 없습니다.
朴啓周-朝鮮에 있을 때에는 얼마의 기록까지 내어 보았습니까.
孫基禎-2시간26분42초였습니다. 그것이 세계기록이었지요.
南昇龍-저는 回路에서 마지막 고개를 달아 올라갈 때, 이 코-쓰가 제일 어렵고 괴로운 코-쓰인데 내 앞에는 맨 선두로 자바라君, 다음은 孫君과 하-바-君, 그 다음엔 바로 내 직전에 芬蘭3選手가 처음부터 언제나 셋이 나란히 서서 달는데, 나도 다른 누구보다 누루미가 코-취한 이 세 선수가 제일 무서워요. 이 세 사람을 떨어트려야 할텐데 꼭 내앞에 서서 셋이 다르면서 기회를 주지 않드군요. 그래서 일편으로 걱정두 돼요. 이 세 선수한테 빼았기나부다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셋을 뚫으고 나갈 궁리만 하고 그냥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고개중턱을 지나 올라가서 자동차 한 대가 세 선수 옆을 지나가요. 그때, 옳다 됐구나하고 나는 자동차를 새에 두고 그들이 보지 못하도록 살짝 몸을 빼여 그들 앞에 뛰여나갔지요. 그리하여 자동차가 지나가자 그들은 자기들 앞에 의외에도 내가 나타난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그때부터 셋은 나란히 달턴 것도 집어치우고 나를 떨어트려야겠다고 서로 앞을 다투는데 나 역시 그들에게 떨어지지 않을 양으로 최선을 다해 달았지요. 악을 악을 쓰며 달았는데 그들은 끝까지 나를 떨어트리지 못하고 4着, 5着, 7着이 되고 말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2시간31분43초로 3着하였습니다. 2着한 英國선수 하-바-君은 2시간31분23초2였었구요.
世界各國의 旅行談
金東煥-세계각국으로 다니시던 여행담이나 이야기해 주십시오.
孫基禎-京城을 떠나서 시베리아를 경유하여 巴里, 론돈, 로마, 地中海, 印度를 거쳐 돌아온 세계각국의 여행담은「三千里」6월호에 仔細히 썼으니 여기에선 여행담은 略하기도 하고, 印度이야기나 하지요.
印度 孟買에 나려서 하루를 묵으려 했는데 의외에도 배가 고장이 생겨서 일주일을 묵게됐지요.<59> 첫째로 印度는 매우 더운 곳이라는 것이 아직도 인상깊게 남아 있는데, 하기는 스에스運河을 지나 紅海에 들어섰을 때에는 어떻게 더운지, 밤에 갑판에 나가서 벌거벗고 앉아도 땀이 좌악좍 솓아지는게 도모지 잠잘 수 없어요. 천하에 그런 더위란 처음 당해봤으며, 印度의 밤거리에는 사람들이 左右人道에 쭈욱 나와서 왼통 잠을 자요. 거 장관이드군. 이불도 덥지 않고, 길 左右에 폭 덮여서 자는데 정말 이상한 感이 납디다. 그리고 낮에는 모두 누구나 雨傘을 들고 다녀요. 交通巡査까지도 옆구리에 우산을 차고 다니는데, 거, 또한 장관이든데요. 더워서 우산 가지고 다니는지, 혹은 언제 비올지 몰라서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지 알 수 없지만 거리로 다니는 사람마다 우산 들고 다니는 것은 다른 데서 보지 못하던 현상입데다. 심지어 형사까지도 우산을 옆구리에 차고 다니든데!(一同笑) 그리고 더운 탓으로 印度사람들은 훈도시만하고 거리를 다녀요. 영화도 더워서 밤10시반부터 시작하두군요.
南昇龍-그리고 印度사람들은 거리를 가다가 길가에서 파는 붉은 나무껍질을 一錢 주고 나서 씹다가는 배앝아버리는데, 마치 껌을 씹다가 배앝는 것과 같애요.
孫基禎-나는 처음 그걸 보고 喀血하는 줄 알고, 印度에는 肺病者가 참 굉장히 많고나 하고 깜짝 놀랐었는데, 후에 알고 보니 붉은 唾液이드군요.(笑) 그리고 印度에 있는 在留內地人들이 이야기하는데 印度에는 宗敎싸움이라는 것이 매우 심하다구 합디다. 宗派와 宗派끼리 意見不合으로 一大 亂鬪가 일어나는 일이 非一非在인데 그럴 때마다 사상자가 굉장히 많이 생긴다구해요. 그래도 英國官憲들은 주위를 둘러싸고 구경할 뿐이지 말리거나 중지시키지 안는다고 하며, 사상자가 많이 나기를 기다린대요. 그것은 印度민족이 멸망하기를 기대하고, 그 민족의 數爻가 적어지기를 바라는 例의 老繪한 英國의 惡政策이라고 內地人들도 그걸 구경한 이는 모두 비난합디다. 그리고 藥들을 팔지 않아요. 나두 藥 쓸 일이 있어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다가 파는 데가 없어서 못삿는데, 이것도 印度백성이 병나면 그대로 죽으라는 정책인가 봐요.
朴啓周-文化정도는 어때요? 우리 朝鮮人보다는?
南昇龍-잠시 보아서 단언하기는 어려워도 우리보다 훨신 뒤떨어지는 것 같습디다. 그들의 채림채림이라든가, 가옥제도라든가, 또는 風俗, 문화 등이 모두 떨어저 보여요. 마치 우리가 미개한 滿洲人을 대하듯한 기분이 나요.
金東煥-伯林대회가 끝난 후 어데서<60> 제일 환영합디까?
孫基禎-印度에 있는 內地人民留民들이얘요. 巴里에서는 日本대사관에서는 만찬회가 있었고, 그밖에 론돈이나 羅馬에서도 그렇지만, 印度에서만 성실히 환영해 주드군요.
崔貞熙-印度선수들은 무슨 경기를 제일 잘 해요?
孫基禎-「혹케-」라는 운동인데 올림픽대회에서 印度선수가 제일 잘하고, 또 覇權을 잡고 있어요.
毛允淑-각국 선수의 기질은 어때요?
南昇龍-獨逸청년은 단정하고, 씩씩하고, 英國청년들은 제게 상관없는 일에는 모무지 챙견도 하지않는 품이 사실 젠틀맨이드군. 그리구 제일 떠들고, 경기때도 시비를 일으키려하고, 映畵場에서도 얄개질하는 것은 伊太利청년들입디다. 올림픽촌에서 每夜 그날 경기를 영화하는데 유독 伊太利선수들만 떠들고 얄개질하죠.
孫基禎-英國人은 참으로 자기 일에 충실하드군요. 마라손경기가 끝난 뒤에 英國선수 하-바-君이 자기가 먼저 나를 찾아와서 인사를 해야지, 내가 一等者인데 먼저 찾아가서 인사할 필요가 없다고 뽑내면서 뱃장을 내여밀고 앉아 기다렸더니 도모지 오질 않아요.(一同笑) 그래서 나종엔 할 수 없이 내가 지기로 하고 먼저 찾아갔더니 이 친구가 글쎄 경기가 끝나가 英國으로 돌아갔다는군요. 공장의 一職工이라는데 공장일을 하기 위해서 비행기로 급히 본국으로 갔다는 거얘요. 참 자기직무에 충성스렵드군요.
世界大會를 目標하고
金東煥-세계 올림대회를 목표하고 마라손 연습하기는 언제부터였습니까.
南昇龍-저는 대회에 出征하기까지 꼭 11년간이라는 長久한 시일을 연습에 소비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성공하자면 一朝一夕에 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는 長久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라손도 그저 잘뛰면 되려니 하고 우습게 블지 몰라도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내 고향인 全南 順天에서 小學校때 從兄되는 이가 군대에서 주최하는 마라손에 참가하여 늘 일등하는 것이 퍽 부러워서 그때부터 달는 것을 연습했지요. 그리고 16才 때 京城서 열린 朝鮮神宮경기에 全南體育協會에서 저를 順天서 일등한 者라고 파견했었는데 5천메돌에 그만 우승을 못하고 참패했으나 도모지 실망하지않고 다시 고향에서 연습해 가지고<61>그 후 매년 京城에 출정해서 1만메돌에 일등과 이등을 했지요. 그 후 東京가서 대학에 다닐 때도 權泰夏金恩培 兩兄이 로스앤젤스대회때 우승못한 것이 원통해서 가구싶은 茶房에도 못다니고 술과 담배도 금하고, 하구싶은 연애도 금하고(一同笑) 마치 修道士 모양으로 禁慾생활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마라손선수는 담배나 술을 먹으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마라손경기라는 것은 朝鮮 里數로 1백7里를 2시간30분간에 주파해야 하는데 대개는 70里에 가서 그만 중지하고 맙니다. 70里에서 그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참아 넘기면 되는데, 이 참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인내하는 정신훈련이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에 修道士 모양으로 一切의 금욕생활을 하지요. 孫君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술과 담배를 안먹는 것은 먹을 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견디여 이기려는 정신훈련과 육체훈련을 위함이외다. 제가 東京서 대학에 다닐 때 아침저녁으로 매일 마라손연습을 했는데 연습한 후 매일 다니는 목욕탕집 곁에 유명한「우론쟈」라는 茶房이 있는 것을 6년간이나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몰랐어요. 하루 학생들이 「우론쟈」「우론쟈」하고 말하기에 졸업할 때 물었더니『아, 이놈이 너의 집 근처에 있는 그 유명한 茶房두 몰라?』하고 놀리운 일이 있었는데 무슨 일이든지 성공하려면 이렇게 성공하려는 그 일에만 열중하고, 다른 일에는 무관심해야될 줄 압니다.
孫基禎-저는 대회에 출정하기까지 7년간 마라손연습을 했습니다. 고향인 新義州에서 普通學校때 5천메돌에 일등했으며, 그 덕택으로 京城대회에 왔었으나 첫해는 2着하고 말았지요. 그 다음 2回때에 1着을 했지만 그때까지도 마라손이라는 말도 모르는, 실로 촌띠기였답니다.(一同笑) 그 후 東亞日報社주최의 京城 永登浦間 마라손경기에 처음 마라손이랍시고 해봤는데 일등 못했어요.(一同笑) 그 후 京城 仁川間마라손에도 參戰했었습니다. 마라손 잘하는 덕택에 貧寒한 나는 養正中學에 입학하게 됐고, 그 뒤로는 하루도 빼지않고 줄곳 5년간을 매일 아침 저녁으로 비가 오던지, 바람이 불던지, 날이 흐리던지, 눈이 오던지를 도모지 상관하지 않고 연습했지요. 대개 그 코-스는 養正學校에서 출발해서 黃金町, 東大門, 昌德宮, 總督府 앞을 돌아서 學校로 돌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龍山을 지나 漢江건너 鷺梁津까지 갔다오기도 했습니다. 경기대회라는 것은 비오는 날도 하기쉽고 흐린 날에도 하게되고, 또는 아주 뜨거운 날에도 하게되는 것이니까<62>언제나 어떠한 기후 속에서든지 늘 연습해두어야 하는 것이므로 매일 뛰고 달았습니다. 무엇이든지 성공에는 南君의 말같이「努力第一」이오「忍耐第一」이오,「訓練第一」이지요.
後繼者 養成과 스타지암 建設
金東煥-두분께서 앞으로 마라손에 더 주력하시지 않으렵니까. 그리고 계승자를 길러낼 의향은 없으셔요?
孫基禎-웨 없겠습니까.「三千里」6월호에도 제가 이 이야기를 잠간 썼지만, 만일 제12회 올림픽대회가 열리게 된다면 저는 결혼도 하지않고 취직도 하지않고 기어히 連勝하려고 꿈꾸었던 것이 東西의 戰火로 제12회 대회가 중지될 것을 예측하고 그만 결혼과 취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취직하고 보니 연습은 커녕, 한달에 한번도 京城운동장에 구경조차 못가게되니, 寒心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도, 伯林에서 우승하고 돌아올 때는 요렇게까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높은 자리를 바라거나, 놀구 먹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즐기는 경기도 그냥 계속 연습할 수도 있고 그 방면으로 활동할 여유를 사회에서 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사회가 주는 여유는 커녕 운동방면에서 활동하는 인사들까지도 모른척 하는 데는 氣가 막혔습니다. 卑近한 예를 들면 養正中學이 제 母校요, 따라서 육상경기를 가장 힘쓰는 학교인데 한번두 우리들과 연락을 취하는 법도 없고, 우리를 불러다가 후배들에게 체험담이나, 또는 코-취도 시키지 않지요. 毋論 이론으로는 체조선생이 우리보다 낫다고 할지 몰라도 경험에 있어선, 건방진 말같지만 아무래도 근10년간 수련한 우리가 낫지 않겠습니까.(笑)비단, 내 모교뿐만 아니라 무슨 체육협회이니 하는 체육단체도 역시 이 태도지요. 뛰기나 잘 뛰였지 네까짓 것들이 알기를 무얼 알겠느냐는 태도인지, 世界覇者니 감히 황송해서 연락을 못취한다는 태도인지!(一同笑) 南君의 고향인 順天에서 한번 초빙하여 南君과 가치 가서 코-취해본 일이 한번 있기는 했습니다마는, 그 담엔 운동계와는 통 連絡杜絶이랍니다.
南昇龍-사실 그래요. 孫君과는 늘 만나면 하는 말이지만 후계자를 길러서 마라손마는 다른 나라에 빼앗기않고 每回마다 우리 日本이 우승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孫君도 늘 말기를 權泰夏金恩培, 넷이서 사업도<63>가치 하고 마라손協會나 體育協會같은 것을 창설해서 「마라손日本」으로 세계에 氣焰을 吐하고싶고 후계자를 양성해서 세계패권을 우리 손에 쥐고 싶고, 또 영원히 계속시키고 싶으나 사회가 후원해주지 않으니 어찌하는 수가 있습니까. 입에 풀칠하기에도 급하니 더 말해 무엇하겠어요.
朴啓周-그러시다면 후계자를 위한 사업을 단념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孫基禎-아니요. 아뭇때도 좋은 應援者가 있으면 실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中學校나 專門學校에서 연락을 취해주면 가장 겸손한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우리의 체험으로써 후계자 양성에 노력하렵니다.

그리고 한가지 사회에 바라는 바는, 전번 西洋에 가보니 伯林이나 巴里나 羅馬에는 한 町에 한 운동장이 있어서 보건과 체육에 여간 留意獎勵하지 않는데, 우리 京城같은 데도 每町에 하나씩 둘 수는 없어도 3, 4箇는 더 설치해주었으면 하고 기대합니다. 이것은 保健을 위해서도 가장 유익한 사업인데, 羅馬에 가보니「뭇소리니-스타지암」이 있어요. 그와 만찬가지로 朝鮮에서도 학교창설이나 그밖에 사회사업에만 유의할 것이 아니라, 각 도시에 각개인 투자의 스타지암이 있었으면 합니다. 예컨대, 京城에도 京城運動場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니 崔昌學氏나, 李鍾萬氏나, 尹致昊氏나, 또 朴興植씨, 閔奎植같은 富豪諸氏가 義捐하여서「뭇소리니-스타지암」이라 하듯이「崔昌學스타지암」,「尹致昊스타지암」, 이 모양으로 많은 운동장을 건설하는 것이 보건과 체육발전을 위해서도 좋고, 또 그 사회사업이 어느 모으로든지 매우 좋다고 봅니다. 이렇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그리고 앞으로「運動朝鮮」으로 大氣焰을 吐할 우리의 빛나는 선수들로는, 力技에 南壽逸氏, 三段跳에 芬蘭헬싱키市까지 출정나갔던 金源權, 競馬에 閔大植氏의 子弟분인 閔병선君, 레스링에는 明治大學 金明夏君, 郭정운君, 기타 스키, 수영, 권투 등에 상당히 유망한 선수들이 있습니다. 축구에는 이론적, 과학적 연구가 깊은 金益斗목사 아드님되는 분도 다 運動朝鮮의 자랑이오, 이들을 더 激勵助長해서 세계대회의 우승자가 되게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우리사회에 있지않을까요?<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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