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1

알라딘: [전자책] 흉터와 무늬



알라딘: [전자책] 흉터와 무늬




[eBook] 흉터와 무늬
최영미 (지은이)문학동네2017-05-29


































9.0100자평(2)리뷰(3)

종이책 페이지수 404쪽, 약 21.3만자, 약 5.4만 단어

책소개
시인이자 소설가인 최영미의 첫 장편소설로, 그가 시로 문단에 나오기 전부터 써온 소설이다. 2005년 처음 출간한 이 책은 저자가 내용을 수정하고, 삭제하고, 추가하는 과정을 거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흉터와 무늬』는 한 소녀의 성장담이자 유년의 상처를 품고 자라난 한 인간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삶의 기록이다. 유년이라는 시간 안에 존재하는 기쁨과 슬픔, 수치심과 죄의식은 인간의 영혼에 흉터로 남고, 흉터는 그 사람을 이루는 무늬가 된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이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어떤 상처를 감내해야 하는가, 그리고 유년의 상처는 우리를 어떤 인간으로 빚어내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년의 시기는 자주 아름답고 찬란한 시기로 그려지지만 또 그만큼이나 어둡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처를 품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유년의 상처가 있다. 그것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흉터로, 또 무늬로 우리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고, 나의 이야기이다. 아름답지만 서늘하고, 고통스럽지만 진실한 삶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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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흉터와 무늬 9
작가의 말 402


책속에서



P. 16 기억은 곧 사랑이다. 사랑하면 기억한다. 나는 언니에게 관심이 없었고 그녀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나 혼자 높이 솟아오르기 위해, 바닥에 엎드린 환자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 몫의 생을 탕진하느라, 살아서도 언니는 내게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건 내가 언니를 위해 운 최초의 울음이었다. 한 번도 몸밖으로 내보낸 적이 없는 뜨거운 물들이 쏟아지고 둑이 무너지며 매듭들이 풀어졌다.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된 회한이 마디마디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일종의 발작 상태가 지나가고 감정의 찌끼들이 분해되어 증발할 무렵, 과거가 조금씩 되살아났다. 흐릿한 영상들이 또렷해지고 막연했던 것들이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과거는 한꺼번에 복원되지 않는다. 서서히 현재의 수면 위로 겹쳐서 떠오른다. 접기
P. 49~50 언니는 말이 없었다.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고 숨을 몰아쉴 뿐. 입안에 음식을 넣고 씹을 때도, 산더미 같은 조제약을 삼킬 때도 언니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약동하는 나의 육체는 꺼져가는 생명의 탄식을 듣지 못했다. 새벽녘에 오줌이 마려워 깨어나면 옆에 가쁜 숨소리가 있었겠지만, 언니의 허약한 폐와 목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불규칙한 소리들을 방구석에 처박힌 고장난 라디오의 소음인 양 나는 무심히 지나쳤다.

언니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언니는 웃지 않았다. 울지 않았다. 아프다고 투정하지도 않았다. 무얼 사달라고 떼쓴 적도 없다. “너 이거 먹을래?” 엄마가 음식을 코앞에 들이댈 때도 말없이 끄덕이거나, 싫으면 고개를 돌렸다. 인내하며 언니는 그냥 존재했다. 접기
P. 132 가난한 집에선 뭘 감추기가 어려운 법이다. 한 방에서 부대끼니 사랑도 증오도 숨을 구석이 없다. 병적으로 정직했던 엄마는 자식들에 대한 애증을 감추지 않았다. 이쁜 미경은 엄마의 보물이었고, 공부 잘하는 나는 아버지의 자랑이었다. “미경이는 미스코리아 내보내고 하경이는 외교관 만들어야지.” 부모의 관심을 끌려는 치열한 경쟁에서 언니와 막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아이들은 우애를 배우기 전에 질투와 경쟁부터 배운다.

우리집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아이들끼리, 어른들끼리, 아이들과 어른들 간에 크고 작은 다툼으로 날이 샜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살이 덜 부러진 우산을 차지하려 신경전을 벌였고, 아침밥을 먹고 먼저 성한 우산을 집고 나가는 사람이 임자였다. 구멍이 뚫리지 않은 양말을 서로 자기 것이라 우기며 잡아당겼다. 우리는 싸울 거리가 없으면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싸웠다. 접기
P. 192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과 구별되나. 현재의 나를 만든 건 무엇일까? 어린 날의 사건들을 이러쿵저러쿵 길게 끌고 다니며 내가 간과한 진실이 있다. 나를 만든 건 바로 나다. 소나기를 맞은 낮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아닐 것이다.
P. 401 사십 해의 비바람에 상처의 톱날이 무디어졌다. 어느덧 하나둘 늘어난 잔주름에 묻히는 손톱자국이 때로 아쉬우니?감추고 싶었던 흉터가 지금은 뭇 얼굴들 속에서 번쩍, 나를 알아보는 무늬가 되었다. 어디에서건 나를 드러내는 서명처럼.
흉터가 무늬가 되도록 나는 사랑하고 싸웠다.



저자 및 역자소개
최영미 (지은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했고, 홍익대 대 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창작과비평》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꿈의 페달을 밟고』『돼지들에게』『도착하지 않은 삶』『이미 뜨거운 것들』『다시 오지 않는 것들』, 장편소설『흉터와 무늬』『청동정원』, 산문집『시대의 우울: 최영미의 유럽 일기』『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화가의 우연한 시선』『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내가 사랑하는 시』『시를 읽는 오후』가 있다.『돼지들에게』로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다.
시「괴물」등 창작 활동을 통해 문단 내 성폭력과 남성 중심 권력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확산시켜 성 평등에 기여한 공로로 2018년 서울시 성평등대상을 받았다. 접기


수상 : 2006년 김준성문학상(21세기문학상, 이수문학상)
최근작 : <아무도 하지 못한 말>,<돼지들에게>,<The Party Was Over> … 총 3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서른, 잔치는 끝났다』 시인 최영미의 첫 장편소설
아름답고도 잔혹한 유년의 시간, 그 서늘한 성장의 기록
시인이자 소설가인 최영미의 첫 장편소설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흉터와 무늬』는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50만 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하며 문학계에 돌풍을 일으킨 최영미 시인이, 시로 문단에 나오기 전부터 써온 소설이다. 누구나 통과해야 하지만 누구도 쉽게 통과하지 못하는 유년 시절을 시적이면서도 진실한 언어로 다루고 있다. 2005년 처음 출간한 이 책은 저자가 내용을 수정하고, 삭제하고, 추가하는 과정을 거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흉터와 무늬』는 한 소녀의 성장담이자 유년의 상처를 품고 자라난 한 인간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삶의 기록이다. 유년이라는 시간 안에 존재하는 기쁨과 슬픔, 수치심과 죄의식은 인간의 영혼에 흉터로 남고, 흉터는 그 사람을 이루는 무늬가 된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이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어떤 상처를 감내해야 하는가, 그리고 유년의 상처는 우리를 어떤 인간으로 빚어내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의 유년은 지구가 억만 번을 자전해도 멸종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안에서 불멸하는 유년에 바치는 최초이자 최후의 고백

남편과 이혼하고 폭식증에 걸린 여자, 하경은 거울을 보다가 자신의 얼굴이 흉터인지 무늬인지 알 수 없는 것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발견한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지만 유심히 바라보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것. 그것은 유년 시절이 남긴 흔적이다. 그 흔적은 잊었던 기억을 불러일으키며 그녀를 유년의 시간으로 소환한다. 그리고 그녀는 문득 자신에게 언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태어날 때부터 불치병에 시달리다 결국 열일곱 나이에 미국에서 세상을 떠난 언니. 하경은 언니가 죽은 이후 마치 그녀가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를 완전히 잊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는다.

하경은 권위적인 아버지와 순종적인 어머니 아래에서 세 자매와 함께 자란다. 아버지 정일도는 박정희 정권에 반대한 쿠데타인 ‘반혁명 사건’에 가담한 유일한 민간인으로, 감옥에서 나온 뒤 일정한 직장 없이 사회의 변방을 떠돈다. 그는 조금만 심사가 뒤틀려도 밥상을 뒤엎어 가족 모두를 숨죽이게 만든다. 정일도의 삶은 현대사와 맞물리며 가파르게 오르내린다. 하경네 가족의 삶은 그런 아버지와 함께, 옥수수죽과 깍두기로 하루하루를 지낼 정도로 가난한 환경에서 평창동의 2층 양옥으로, 큰 폭으로 요동친다. 그 가족 안에서 하경 역시 감정의 풍랑을 겪으며 성장해간다.

하지만 그곳에서 언니는 늘 숨죽이고 있는 존재다. 언니는 침묵 속에 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반면 생명력이 강한 하경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아 놀이에서도 늘 앞장을 서고, 치열하게 공부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쌓아올려간다. 하경이 가족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동안 언니는 보이지 않는다. 언니는 죽는 그 순간까지 하경의 의식 속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지 못한다. 그렇게 언니가 열일곱이 되던 해, 삼촌의 권유로 치료를 위해 그녀는 미국으로 보내진다. 그녀를 고아로 만들어 고아원에서 지내게 한 뒤 미국으로 입양이 되도록 하는 계획이었고, 그것은 현실이 되어 곧 언니는 미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얼마 후 수술에 실패한 언니는 화장되어 한줌의 재로 가족에게 돌아온다.
방송작가로 살고 있는 현재의 하경은 언니에 대한 기억을 되찾은 후 그녀의 죽음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고, 언니가 어떤 과정을 거쳐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나는 미래를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건 차라리 과거이다.”
유년의 상처는 흉터로 남고, 흉터는 나를 이루는 무늬가 된다
하경은 언니의 죽음의 진실을 추적해나가다 뜻밖의 사실을 맞닥뜨린다. 언니가 처음부터 미국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고개를 들고, 하경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동생들과 엄마의 증언이다. 그녀는 자신이 언니를 때린 적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림자 속에 갇혀 숨죽인 채 죽음을 향해 나아가기만 한 줄 알았던 언니에게도 그녀의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에 새겨진 상처들은 언니의 손톱자국이었고, 그것은 자신에 대한 언니의 저항이기도 했지만 삶에 대한 투쟁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흉터와 무늬』는 하경의 고통스러운 성장담을 다루고 있다. 찾고 싶은 기억과 삭제해버린 기억, 그리고 돌이키고 싶은 진실들이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유년이라는 시간의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시간이 필연적으로 지니고 있는 모순을 담아내고 있다. 유년의 시기는 자주 아름답고 찬란한 시기로 그려지지만 또 그만큼이나 어둡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처를 품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유년의 상처가 있다. 그것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흉터로, 또 무늬로 우리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흉터와 무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고, 나의 이야기이다. 아름답지만 서늘하고, 고통스럽지만 진실한 삶의 이야기이다. 접기







먼저 간 언니와 아버지의 개인사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화자가 변사조가 되기도 하며 글이 늘어진다. 그녀의 시에서 받은 감동이 커서 소설의 그것을 반감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물선 2017-05-06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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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장을 구사하는 리얼리스트가 카피라이터나 큐레이터로 어디에 소속되었더라면 불행 중 불행이었을 것! 그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블랙홀과 빛의 제국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탄다. 흉터에서 무늬로 변하는 마법의 시간, 세이렌에게 그만 사로잡혔다.
froglee 2017-04-04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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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마이리뷰] 흉터와 무늬


소설책을 읽다보면 종종 소설이라는 장르자체가 ‘허구‘가 포함되어있는 데도 불구하고 마치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그 사람이 존재하고 그 사람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실제로 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100%작가님이 만든 허구도 있지만 역사소설이나 자전소설등은 실제로 존재했고 일어났던 일들을 기본으로 하여 약간의 허구를 첨가하여 소설이 완성되기도 합니다.)
어제 아침에 읽고 오늘에서야 리뷰를 쓰게 되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하신 최영미작가님의 첫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를 읽으면서 마치 제가 딸만 넷인 윤경, 하경, 미경, 숙경 자매와 함께 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심장이 안 좋은 채로 윤경이 태어나고 인덕원에 머물다 미국에 가서 수술을 받았으나 열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윤경이 떠나고 난 자리를, 윤경의 존제자체를 의식하지 않고 잊어버리려고 했던 다 잊은 줄 알았던 사고뭉치 둘째이자 윤경이 떠났으니 이제 맏언니인 하경, 하경과 매번 싸우는 미경, 그리고 막내 숙경과 6.25라는 엄청난 전쟁을 겪으신 아버지 정일도와 어머니 이진순의 모습이 제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큰 언니 윤경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잊어버리려고 했던 하경이가 부러웠어요.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두어서가 아니라 대학교까지 나온 신여성인 어머니를 두어서도 가정형편이 좋아서도 아니라 가족이라는 공동체안에서 살아가고 자라는 하경이가 부러웠어요.
만약, 제가 가족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면 얼마만큼이나 쓸 수 있을 지 아니, 한 글자라도 쓸 수 있을 지 어렸을 때는 한 없이 가족이나 집안형편에 대해 줄줄 늘어놓았을 텐데 지금은 쓸 자신이...... 모르겠어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데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것 같고 뒤로 물러나는 것 같아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저는 일하다가 어딘가 부딪히고 베이고 박혀서 생긴 상처가 많은 편인 데요.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제 속에 어쩌다가 생긴지도 모르는 크고 작은 무수한 상처가 시간이 흘러 흉터가 남고 그 흉터가 남은 곳을 응시하면서 저도 오래된 고통을 다루는 법을 아는 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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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구마 2017-04-21 공감(1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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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축과 증폭의 리마인드 신작!




신이여, 이 글을 썼던 손을 축복하소서!
역사의 증인으로 서주는 작가들이 있다. 시대를 위한 진짜 헤럴드, 더운 메신저가 되어 주는 기록자들.
'진실은 여러 겹의 옷을 입고 있고... 열정은 고통에 비례하기' 때문인가?
전체를 다듬고 응축하고 더해서인지 이 소설은 개정판인데도 신작 같다.
흉터도 달라졌고 무늬도 새로워 보인다.
오래된 이야기를 새롭게 할 줄 아는 리메이커!
이런 만가닥버섯 같은 마술적 사실주의 스타일리스트는 박제를 하소서!

Ps. 401쪽 마지막 문장에는 '내겐 더'를 더하라고 한다.
흘릴 피가 없으니까. -> 내겐 더 흘릴 피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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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glee 2017-04-0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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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가 무늬가 되도록 나는 사랑하고 싸웠다




흉터가 무늬가 되도록 나는 사랑하고 싸웠다
최영미의 흉터는 무늬가 되었을까.

“...오래된 고통을 다루는 법을 아는가?
침묵할 힘이 없으면 잘게 부수어 발설해야 한다.”


세상에서 제일 긴 이야기, 가족에 대한 소설

닮지 않으려 발버둥칠수록 우리는 서로를 닮아갔다.
한 지붕 밑에서 엉겨 덜그덕거리는 가족이라는 낡은 푸대자루,
다 해져 실밥이 뜯어지고 구멍이 뚫린 천막 안에서 우리는 우리에 갇힌 짐승들처럼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었다. (278쪽)

2005년 첫출간 된 작품을 다시 고쳐쓴 소설이다.
2018년 여전히 작가의 흉터들은 무늬가 되지 못했다.

사십 해의 비바람에 상처의 톱날이 무디어졌다.
어느덧 하나둘 늘어난 잔주름에 묻히는 손톱자국이 때로 아쉬우니-감추고 싶었던 흉터가 지금은 뭇 얼굴들 속에서 번쩍, 나를 알아보는 무늬가 되었다.
어디에선가 나를 드러내는 서명처럼.(401쪽)

이혼을 앞둔 스무네살의 방, 폭식과 둘코락스와 줄담배로 서서히 미쳐가던 방에서 '언니. 있었다' 는 아픔이 오열을 토하게 한다.
불치병을 앓다 미국으로 입양되어 죽은 언니는 하경이 오랜 동안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지우려고 애썻던 상처이고 흉터이다.

장례식은 산 자를 위한 의식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스스로를 달래는 절차를 우리는 생략했다.
꽃도 촛불도 없었다.
우리는 언니를 매장하지 못했다.
독한 향이라도 피우고 식구끼리 얼싸안고 눈가가 짓무르도록 울음을 쏟았다면 지금쯤 언니는 희미해졌을 텐데. 우리는 우리를 치유하지 못했다.(261쪽)

소설은 윤경을 떠올리며 과거가 서서히 베일을 벗는 독백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한국전쟁에 나가 실수로 부하를 사살하고, 평생을 우익의 편에 서서 살아간 아버지와 미국으로 심장병 치료를 위해 입양되었다가 죽은 윤경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최영미는 질곡같은 한국 현대사 속에서 고통받았던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신념과 폭력의 광기가 누군가에게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서로 다른 형태의 칼이라는 것을 일러준다.

"여자는 도마위에 오른 생선이다."
"왜 생선이야"
"글쎄 그렇게 알고 이제 부터 엄마가 하는 말 명심해라 하경아.
"남자는 다 도둑놈이다. 가까이 하면 안 돼."(219쪽)

2017년 작가는 황해문화 12월호에 시 '괴물' 을 싣는다.
함께 올린 시 Mendelssohn 'violin concerto in e minor '지리멸렬한 고통'은 신념과 폭력에 대한 또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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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2018-05-2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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