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지명 | 삼천리 제12권 제4호 |
|---|---|
| 발행일 | 1940년 04월 01일 |
| 기사제목 | 未來의 大學 總長의 大學 創設 雄圖 |
| 기사형태 | 대담·좌담 |
未來의 大學 總長의 大學 創設 雄圖
대학을 만들자는 운동은 민립 대학 창설 운동이 있은 뒤 약 20년간을 두고 늘 화제에 오르던 문제인데, 昨今年에 들어서 반도 문운이 좋게 진흥하면서부터, 혹은 종합 대학으로, 혹은 단과 대학으로 기어히 창설하여 보겟다는 기운이 농후하여저 간다. 이제 우리는 각 전문학교 수뇌자로부터 그 의도를 듣기도하는 바, 참고로 歐米 각국의 현재의 대학 교육을 보건대
대학은 그 사회의 학술의 중추부다. 그 나라의 문화의 진도는 대학의 수와 질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歐米 각국의 대학 교육의 현상을 보면
英國…英 본국에는 대학이 16교다. 그 중에서 유명한 것은 물론 『옥쓰포-드』와 『켐부릿지』다. 대학생 총수는 53,800여명인데 교수 강사의 수는 5,970여명에 달해서 실로 학생을 위해서라느니 보다는<32> 교수의 연구를 위해서 있는 듯한 느낌이 있다.
伊太利…관립 대학 23교 私大가 3교다. 학생 수는 72,940여명이다. 교수는 6,690여명이다.
獨逸…종합대학 23교로써 질의 우수한 점으로서 몇해 전까지는 문자 그대로 세계의 학부인 곳이 여러 곳이였다. 그 중에서도 伯林 大學은 가장 이름이 높다.
佛蘭西…대학 수 17교인데 그 중에서는 巴里<33> 大學이 가장 역사가 오래다. 학생 수는 73,850여명이다.
米國…총수 1,123교에 달하는 대학을 가지고 있어 돈 많은 나라임을 알게 한다. 또 그 중의 8할은 私大다. 『하-바드』 『예일』 『쉬카고』 등이 저명하다.
瑞西…인구는 겨우 4,060,000밖에 안 되는데 대학은 7교나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는 『츄리히』 대학이<32> 가장 유명하다.
芬蘭…방금 蘇聯과 대전 중인 이 나라는 교육이 보급되기로는 세계 제일이어서 문맹이 거진 없는 상태인데 대학은 2교가 있다. 이 나라의 인구는 겨우 324만명이다.
和蘭…인구 8,550,000의 소국가면서도 官大 4교 私大 2교 工大 1교 農大 1교로써 일찌기 근세의 선진국이오 부강국이던 여풍을 남겨 가지고 있다.
普專校長 金性洙氏의 六大綜合 大學案
延專校長 元漢慶氏의 今後10年 計劃意圖
梨專校長 金活蘭氏의 一千萬圓 目標記
世專校長 吳兢善氏의 醫科單科大學案
工專校長 李鐘萬氏의 科學殿堂 設計圖
普專校長 金性洙氏의 法, 商, 文, 工, 醫, 理 六大綜合大學案-現在의 四百萬圓이 一千萬圓만 되는 날-
교장 金性洙氏 談
교장 金性洙氏 談
創立 當時와 現在의 基金
매우 따뜻한 肇春의 이른 아침. 桂洞町 자택으로 普成 專門 學校 校長 金性洙씨를 방문하니, 힌 바지 저고리에 힌 두루마기를 입으신 金 교장께서 반가우신 얼굴로 방으로<33> 기자를 안내하면서,
『여러번 학교와 제 집으로 전화를 거셨다는데 공교히 늘 제가 없어서 미안하게 되었습니다.』하고, 자리를 권하신다.
『온, 천만의 말씀을 하십니다. 선생께서 분망하실텐데 이렇게 괴롬을 끼치려 와서 도리어 제가 미안합니다.』하고,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 爲先 실내를 둘러 보았다. 葦滄 선생의 휘호가 3, 4장 벽에 붙어 있으며, 靑田 화백의 그림과, 高麗磁器 등 골동품이 진열되어 있다. 나는 來意를 말하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기자 『귀교의 창립이 금년 몇 주년 되는지요?』
교장 『33년인가 봅니다. 元韓國內藏院卿 故 李容翊씨가 光武 9년에 韓國 학부의 인가를 얻어서 설립한 것이 기원입니다.』
기자 『초창시에 과는 무슨 과 무슨 과 였든가요. 끄리고 초대 교장은 누구였습니까.』
교장 『법률과와 경제과였으며, 申海永씨가 교장으로 취임했지요. 그리고 원 설립자는 李容翊씨와 孫秉熙씨였습니다.』
기자 『현재 귀교의 기본금은 얼마나 됩니까.』
교장 『매년 8,000석을 추수하는 토지가 있고, 본교 부속인 산이 두어개 있으며, 其외 其地 70,000평인데, 매평 15원씩이라도 1,000,000원 가량 될 것이오, 또 건물이 지금 시가로 백만원 정도는 되니까 모두 합하면 기본금이 근 4,000,000원은 될까 봅니다.』
大學 昇格에의 意圖
기자 『요새 일부의 사립 전문 학교 측에서 대학 승격 운동이 성히 일어나고 있는 모양인데 선생께서는 귀교를 대학으로 승진시키실 의사를 가지고 계시지 않는지요.』
교장 『대학 창설에 대한 희망과 이상만은 가지고 있으나 우리의 어려운 살림과 또 현하 시국에 鑑하여 구체적 안을 세우기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저 지금 생각으로는 현재의 전문 학교들 보다 더 충실하게하고, 법과와 상과를 손색이 없이 완전케 하여 미성이나마 사회에 다소의 공헌이라도 있기를 힘쓰는 것 뿐입니다.』
기자 『만일 선생께서 이상하시는 대학을 창설하신다면 과는 무슨 과 무슨 과를 설치하고 싶습니까.』
교장 『아직 구체안도 세우지 않은 것을 무슨 과를 세우느니 하는 것은 과장과 같애 보이고, 또한 사회에 신용이 없는 말을 내여 놓는 듯한 감이 있어서 忌諱하고 싶습니다마는,<34> 그래도 말해 보라면, 제 이상으로는 종합 대학을 창설하고 싶어요. 그리고 과는 현재 있는 법과와 상과를 그대로 둘 터이며, 셋째로 문과, 넷째는 공과, 다섯째는 의과, 여섯째는 이과, 이렇게 여섯 과를 둘 터입니다. 그리고 예과도 둘려고 합니다.』
기자『만일 의과나 공과를 설치하신다면 각각 얼마나 한 자금이 들리라고 예산하십니까.』
교장『완전케 하려면 한정이 있어야죠. 의과는 3,000,000원이면 되리라고 보며, 공과는 4,000,000원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하여간 우리의 어려운 살림으로는 최소한도로 약 10,000,000원만 있으면 이상에 말한 종합 대학을 창설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년 전 米國에 갔을 때 알아보니까 하바-드 대학의 총자금이 20억弗이라고 하는데 10,000,000원의 종합 대학이라는 것은 아이들 작란같지요. 어디 비교할 수나 있어야죠. 너무도 엄청나니까요.(笑)』
體育館과 大講堂 建築
기자『사회의 중추 기관으로, 혹은 학도의 연구를 위해서 자연 과학관이라든가, 또는 理化學 硏究所 같은 것을 설치하실 의사는 없으신지요?』<35>
교장『저의 학교는 아직 法科와 商科만 있기 때문에 자연 과학관이라든가 理化學 硏究所 같은 것은 아직까지 설치할 필요를 感하지 않습니다.』
기자『혹 앞으로는 설치하시려는 腹案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교장『앞으로 종합 대학이나 세우게 되면 몰라도 지금은 아무 腹案이 없습니다.』
기자『요새 정부에서는 보건을 매우 주장하며, 체력 향상을 대단히 고취하여 입학 시험에까지 건강을 주시하는데, 귀교에 체육관 같은 것이 필요치 않을까요?』
교장『네, 체육관 설치는 현안이 서 있으며, 곧 건축하려든 것이 비상시요 물자 결핍으로 아직 착수 못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대강당도 건축하려고 이미 안이 서 있습니다.』
기자『체육관을 세우시는데 자금을 얼마나 예산하십니까. 그리고 대강당은 얼마나 예산하시는지요?』
교장『체육관은 200,000원을 예산했고, 대강당 건축은 300,000원의 예산을 세웠습니다.』
圖書館의 擴充
기자『귀교의 도서관은 朝鮮 안에서는 건물로나 그 규모로 보아서 우리의 자랑인 동시에 제일 간다고 할 수 있는데 앞으로 더 확장하실 계획은 없으십니까?』
교장『네, 확장하렵니다. 본래 본관은 기금 중에서 떼어낸 돈으로 건축했지만 도서관은 순전히 기부에 의해서 지은 것이기 때문에 모든 분들의 피땀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우리도 자랑으로 삼습니다. 최고로 20,000원 기부가 있었고, 최하로 50전 기부가 있었으며, 모두 1,000명의 기부로 세운 것입니다. 실로 우리 학교의 자랑이라면 도서관 하나 뿐이지요. 어느 부자 한 사람의 돈으로 세운 것이 아니고 여러분의 사랑의 피땀을 묶어서 세운 것이니까 자랑으로 삼는 것입니다. 본교 창립 30주년 기념으로 건축했는데 도서관 건물은 사변 전에 건축한 것이기 때문에 그 때에는 220,000원으로 건축했지만 지금은 아마 근 500,000원이 걸릴 것입니다. 그리고 서적은 50,000권 가량 있으며, 매년 1만 4, 5천원의 도서를 구입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도서 중에는 모씨의 2,000권 기증이 있었고, 其外 내외국 여러분의 기증이 3,000권 가량 되지요. 현재의 건물 속에 서적을 채우려면은 앞으로 150,000권은 구입해야 될 터이며, 돈으로는 1,000,000원이 요구됩니다.』
기자『귀 도서관 서적 중에 朝鮮 古書籍은 몇 권이나 됩니까.』<36>
교장『1만 2, 3천권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 도서관에 남이 가지지 못 한 보물이 하나 있지요. 그것은『大東地志』라는 15책으로 된 古山子 金正浩 저서인데, 이 책은 저자가 친히 짚신을 신고 굶어가며 가진 風霜과 고생을 다 겪어가면서 朝鮮 방방곡곡으로 답사하고 저술한 소위 朝鮮 지리외다. 그런데 이 책은 불행히 출판되지 못한 관계로 저자의 육필로 기록된 단 한 책뿐이기 때문에 여간한 貴物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다시 구할래야 구할 수 없는 無二의 책이지요. 현재 과학적 방법으로 그려 낸 지도보다도 더 세밀하고 완전하니까요. 그런데 저자는 당시 정부의 혐의를 받고, 또 이런 인물이 있으므로 인하여 국내의 비밀이 외국에까지 탄로된다고 忌諱함을 받아 大院君의 손에 사형을 당했지요. 그 때만해도 鎖國主義 시대였으니까 자연히 혐의를 받을 건 사실이지요.』
기자『선생께서 세계를 유람하실 때 대학 도서관 중에서 어느 도서관이 제일 크고, 또 의중에 들어요?』
교장『모두 규모가 크니까 다 부럽드군요. 내가 본 대학 도서관 중에서, 제일 크고 제일 훌륭한 도서관은 米國 예일 대학 도서관인데, 내가 갔을 때 신도서관의 건축이 막 끝났드군요. 7,500,000불을 들여서 건축했다는데 朝鮮 總督府 건물만 해요. 그것도 단 한 사람의 기부로 건축했다는데 거기에 대하여 매우 아름다운 일화가 있지요. 하크네스(?)라는 사람이 기부했는데, 예일 대학에 찾아 와서 돈을 쓸 일이 없느냐하고 교장에게 말하므로, 교장이 도서관을 새로 지어야겠다고 의견을 말하니 얼마나 들겠느냐고 하크네스씨가 다시 물었다나요. 그러니까 교장의 대답이 지어봐야지 알겠다고 하므로 그는 小切手에다가 자기의 이름만 싸인하고 금액은 적지 않고 쓰구 싶은 대로 은행에 가서 찾아 쓰라고 했대요. 다 건축한 뒤에 교장이 小切手에다가 7,500,000불을 기입했다는데, 금액을 적지 않고 주는 이도 훌륭한 분이오, 쓰리만침 쓴 이도 훌륭한 분이지요. 무론 서로 다 신용하기 때문이겠으나 朝鮮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지요.』
기자『도서관 경영에 대해서 무슨 플랜이 서 있는 것이 없습니까.』
교장『하나 있습니다. 10,000부터 그 이상의 돈을 기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 돈으로 서적을 구입하지 않고, 토지를 사든지, 혹은 은행에 적립하든지 해서 그 원금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살려 둡니다. 그래서, 만일 토지를 샀다면 그 토지의 추수로, 현금이면 그 이자로<37> 서적을 사는데, 그 기부한 이의 이름을 붙여서 아무개 문고라고 합니다. 예컨대 金性洙가 10,000원을 도서관에 기부했다면 그 10,000원의 이자로 매년 서적을 사들이는데 金性洙의 기부금의 이자로 사들인 서적은 金性洙 문고라고 이름을 붙이지요. 그러므로, 普成 專門學校가 존속하는 동안에는 몇 백년이고 몇 천년이고 원금은 그대로 적립해 있으니까 金性洙 문고도 무한량으로 늘어가게 되지요.』
現在의 校勢
기자『현재 귀교의 이사는 누구 누구신지요?』
교장『金用茂, 金泳柱, 趙東植, 韓基岳 제씨와 나까지 다섯 명입니다.』
기자『교수와 강사, 기타 직원은 몇 명이나 되십니까.』
교장『교수와 전임 강사가 17명이고, 囑託 강사가 역시 17명입니다. 그 중에 내지인 전임 강사가 2명, 囑託 강사가 5명, 서양인 囑託 강사가 1명입니다. 그리고 기타 직원까지 합하면 50명 가량 되지요.』
기자『학생 수효는 현재 어떻게 됩니까.』
교장『법과에 253명, 상과에 271명, 합해서 524명입니다.』
意中에 드는 外國 大學
기자『선생께서 세계를 유람하실 때 선생의 의중에 드는 대학, 다시 말하면 나도 저와 같은 대학을 세우고 싶다고 모방하고 싶은 어느 대학은 없으십니까.』
교장『모두가 우리 눈에는 그 규모로나 시설로나 다 훌륭해 보이니까 어느 대학이라고 끄집어내기는 곤란해요. 그리고 또 대학마다 一長一短이 있는데 내가 본 중에서는 英國에서는 켐푸리치 대학과 옥스포드 대학이고, 米國에서는 하바-드 대학과 푸린스톤 대학이 그 중 훌륭하고 의중에 들드군요.』
내가 希望하는 理想
기자『마지막으로 참고될 좋은 말씀이 있으면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교장『저는 말의 사람보다 행위의 사람을 기다리고, 또한 그러한 사람을 배양하고저 합니다. 건방진 말 같지만 우리 朝鮮 사람은 나부터가 실천 躬行이 없고 말만 하는 사람이며, 눈은 높고 자기의 일에 충실치 못하기 때문에 말보다 행위의 사람을 기르고, 그러한 인물의 출현을 위해서 교육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38> 지금의 내 희망이오 이상이외다.』
기자『분주하신 시간에 좋은 말씀을 많이 들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니, 교장 선생께서 문가에 까지 나와서 친절히 전송해 주신다.
延專篇, 今後十年, 創立 三十五周年만에 五百萬圓으로 大學을 -自然科學硏究所와 宗敎科까지-, 校長 元漢慶氏 談
大學 創設 十倒年 計劃
바야흐로 봄이 나래를 펴려는 어느 따뜻한 봄날, 城西 新村 松林 속에 앉아 있는 延禧 專門學校를 찾아서 교장실 문을 뚜다리니 때마침 점심 시간이여서 교장께서 안 계시기 때문에 응접실에서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약 20분을 기다려서 元漢慶 교장께서 나타나시며,
『땅이 진 날 오시기에 매우 수고로웠겠습니다. 어서 이리 들어옵시오.』
하고, 교장실로 안내한다.
나는 교장실에 따라 들어가서 來意를 말하고, 그의 朝鮮 청년 양성에 대한 수고를 인사한 후 직업적인 질문을 연발하기 시작하였다.
기자『요새 각 신문 지상에 보도되는 기사를 보면 梨花 女子 專門學校에서 종래의 전문 학교제를 폐지하고 대학으로 창설한다하며, 풍문에 의하면 세부란스 醫專에서도 종합 대학을 창설한다는데 귀교에서는 지금의 전문 제도를 버리시고 대학으로 그 진용을 새로이 하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교장『웨 없겠습니까. 아마 朝鮮 안에 있는 사립 전문 학교<39> 중에서 우리 학교가 제일 먼저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은 줄로 생각하며, 이미 세간에 알려지기까지 한 일이 있습니다.』
기자『그 때의 계획으론 몇 개년 계획을 세우셨으며, 어느 해부터 시작하려 하셨습니까.』
교장『처음 계획을 세운 때가 昭和 5년이였었는데 그때 10개년 계획을 세우고, 바로 금년에 완성시키려 하였습니다. 금년은 본교 창립 25주년이기 때문에 이 25주년이라는,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이 시일을 기념할 겸 대학 창설을 완성할 구도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랬든 것이 의외에 중도에 支那事變이 발발되어 그 계획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그 원인은 첫째 사변 하의 朝鮮 안에서 기부금을 얻을 수가 없으며 우리가 크게 바라고 있던 米國에서 국제 관계의 악화로 자금을 보내 주기를 忌諱하기 때문입니다.』
기자『그러시다면 대학 창설 계획을 단념하시렵니까.』
교장『안요. 앞으로 다시 10개년 계획을 세웠습니다. 즉 본교 창립 35주년에는 대학의 창설을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現下 事變이 장기전으로 오래 끌게 되어 앞으로 10년을 넘는다면 不得已 현실을 못 보게 되겠으나 사변이 늘 계속되라는 법은 없는 것이오, 또한<40> 국제 관계도 늘 악화돼 있으라는 법도 없으니까 앞으로 좋은 때가 오리라고 믿습니다.』
大學 創設 資金 五百萬圓과 現在의 財團
기자『만일 대학 창설을 하시게 된다면 그 자금을 얼마나 예산하십니까.』
學監『글쎄요. 다른 학교에서는 얼마나 예산을 세우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는 한 5,000,000원을 필요로 느낍니다.』
하고, 學監 李卯黙 박사께서 곁에 앉으셨다가 그 온화하신 얼굴로 대답해 주신다.
기자『지금 귀교의 현재의 자본금은 얼마나 되십니까.』
교장『米國 돈으로 450,000불이니까 가만 있자(하시며 만년필을 들어 계산하시더니) 이 곳 돈으로 환산하면 2,000,000원은 넘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서와 기지는 그 속에 계산해 넣지 않았습니다. 도서는 한 100,000원 가량 되며, 기지는 230,000평인데, 지금 현가로 매평 150,000원은 받게 됩니다.』
기자『만일 대학으로 승격시키신다면 과는 더 늘이실 腹案은 없으십니까.』
교장『무론 늘이려고 합니다.』
기자『늘이신다면 무슨 과를 늘이실 예정이십니까.』
建築科와 宗敎科
교장『현재의 과로는 문과, 數物科, 상과, 합해서 모두 세 과인데, 건축과를 더 늘여볼까 합니다. 우리 학교 교수 중에 건축에 관한 지식을 풍부히 가지신 분이 한 분 계신데 그 분이 더욱 주장하지요. (笑)』
기자『제 생각 같애서는 東京 帝大나 立敎 大學이나 京都 同志社 大學이나 西宮 關西 學院 大學같으데 神科, 혹은 종교 학과, 신학과라는 것이 있어서 기독교나 불교를 연구하며, 더욱이 기독교계 대학에서는 비교 종교학이라든가, 종교 ² 학이라든가 조직 신학, 혹은 성서 신학을 연구케 하는 과가 있는데 朝鮮 안에서는 귀교가 기독교계의 학교니만치 이러한 과를 설치하는 것이 귀교의 창립 목적으로 보아서나 여러 가지 점으로 귀교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장『네, 일찍부터 그러한 생각을 가졌으며, 神科 설치에 관한 계획을 지난 봄에 실행에 까지 옮기려고 하였는데 이사회에서 결정도 되지 않았고, 또 우리 학교가 장로회와 감리회 연합 경영이니만치 그 각 교회의<41> 의사도 존중해야 겠기에 아직 보류하고 있습니다. 현재 平壤에는 長老會 神學校가 있고, 京城에는 監理會 神學校가 있는데, 우리가 또 신학과를 설치한다면 그 두 신학교에 대립해서 도전하고 경쟁하는 듯이 교회 측에서 오해할 듯 해서입니다.』
기자『長監 양 교회의 신학교는 순전히 그 목적이 교역자 양성을 위함에 있기 때문에 귀교에서는 교역자 양성을 목적하지 않고 순전히 학구적 입장에서 종교학과를 설치한다면 長監 양 교회에서도 별로 문제시하지 않을 줄로 생각하는데요?』
교장『네, 하여간, 본교가 대학으로 승진하지 못 한다고 하드래도 神科만은 금명간, 설치하려고 하며, 그 일을 위해서 日本 신학계의 권위자 중의 한 사람인 靑山學院 신학부 교수 松本 선생을 금춘에 본교로 모셔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宣敎 本部와의 關係
기자『기왕 말이 났으니 묻습니다마는 귀교와 선교사 단체와의 관계가 현재는 어떠한 경향에 있으며, 장차 어떠한 태도로 나아가시렵니까. 세부란스 醫專도 南長老派와는 벌써 인연을 끊고, 명년 3월에는 北長老派와도 인연을 끊어서 독립한다는데 귀교는 선교 본부와 一切의 관계를 끊거나 그러시지는 않으십니까.』
교장『네, 世醫專은 그랬나 봅디다마는 우리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北長老派와는 우리도 인연을 끊었습니다 마는 아직 南長老派와 南北監理派와는 그대로 인연을 맺고 있으며, 앞으로도 인연을 맺고 나아갈 터입니다. 北長老派에서 년 7,000원의 보조가 있었는데 크게 문제될 것도 없습니다.』
기자『米國 선교부에서 오는 출자금은 년 얼마나 됩니까.』
교장『52,900원 가량 입니다.』
기자『실례의 말씀이오나 매년 총수입금은 얼마나 되며, 지출을 어떻게 됩니까.』
교장『년수입이 모든 것을 합해서 162,900여원인데 그 돈이 다 나가지요.』
圖書館 建築과 自然 科學 硏究所 設計
기자『앞으로 도서관을 大확장하실 계획은 없으십니까.』
교장『확장하려고 합니다. 저의들도 현재의 도서관으로서는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도서관을 건축하려고 이렇게 건물 설계도까지 다 그려 놓았습니다.』
하고, 교장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저편 벽 밑 탁상에서<42> 설계도를 가져다 보이며,
『바로 이 그림이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사무실 옆에 건축할 도서관입니다.』
하고, 친절히 설명해 주신다.
기자『만일 도서관을 확장하신다면 그 총자금을 얼마로 예산하십니까.』
교장『건물을 3, 40만원 잡고, 게다가 서적을 합해서 계산한다면 1,000,000원은 가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기자『자연 과학관이라든가, 혹은 자연 과학 연구소 같은 것을 설치하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교장『웨 없겠어요. 그것도 상당히 지금 고려 중에 있으며, 금춘부터 종래의 數物科를 이과라고 명칭을 고치고 자연 과학 방면에도 많이 주력하려고 합니다.』
時局과 大陸 文化
기자『지금 東亞에는 신질서의 건설과 함께 朝鮮人의 대륙 진출도 자못 큰데, 이러한 시세에 응하여 귀교에서는 支那 문학을 연구하는 그러한 무슨 계획은 없으십니까.』
교장『머, 꼭 시세에 응해서만 필요를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의 문화를 연구하는 의미에서 支那 문화 及 문학, 혹은 역사 풍속 등을 연구하는 일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학교에서도 금춘부터 각 과에 支那語 시간을 편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금춘에 排英運動과 함께 일부에서 英語 不必要論이 대두하고 있나 봅디다 마는 저는 거기 대해서 견해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국제 관계가 미묘해 질수록 그 나라의 어학 기타를 더욱 알아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네, 英語 축소 문제가 있기는 있으나 그것은 支那語 교수 시간이 편입되기 때문에 교수 시간 편성을 위해서 축소하는 것일테죠. 京城 帝大에 계신 어느 내지인 교수는 현하 정국에 鑑하여 오히려 英語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귀교의 이사는 현재 누구 누구십니까.』
校勢 一般과 今後의 생각
교장『우리 학교 이사 되시는 분은 서양인이 열두 분이고, 日本 내지인 측으로는 小田安馬, 丹羽淸次郞, 三井榮長, 山中大吉, 4씨외다. 그리고 朝鮮人 측욀¼로는 尹致昊, 梁柱三,*喜炎, 張奎明, 崔淳周, 柳瀅基, 辛鳳祚 제씨까지 합하면 전부 23명입니다』<43>
기자『교수는 몇 분이십니까.』
교장『전임 교수가 44명이오, 겸임 교수가 8명, 조수 3명, 기타 직원까지 합하면 77명이외다. 그 중의 서양인 교수가 9명이오, 日本 내지인 교수가 7명이외다.』
기자『학생의 총수는 얼마나 됩니까.』
교장『450여명입니다.』
模倣하고 싶은 外國 大學
기자『선생께서 만일 귀교를 대학으로 승진시키신다면 외국 대학 중에서 어느 대학을 모방하고 싶으시며, 어느 대학이 가장 마음에 드시다고 생각하십니까.』
교장『글쎄요. 각 대학마다 一長一短이 있으니까요. 꼭 이 대학처럼 하고 싶다고는 할 수 없지요.』
기자『그래도 어느 대학이 혹 의중에 맞으신다고 생각되시는 데가 있을테죠?』
교장『만일 아무 대학이라고 꼭 집어 내여서 말하면 다른 대학교에서 자기네 학교를 따돌렸다고 대노할테니까요. (笑) 제 생각에는 푸린스톤 대학이 전혀 완전하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마음에 들어요.』
기자『李선생께서는 어느 대학이 좋으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나는 학감 李박사에게 시선을 돌리었다.
학감『글쎄요. 학교마다 다르니까요. 제가 본 중에서는 교풍으로나 그 밖의 점으로 하바-드 대학이 의중에 들어요.』
기자『오늘, 여러 시간을 허비케 하여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고, 나는 두 분 선생께 감사의 의를 표한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44>
梨花 女專, 一千萬圓基金을 세워서 綜合女子大學建立 -體, 醫, 社會事業科도 新設코저-, 校長 金活蘭氏 談
今春의 新設科
2월 28일 정오. 新村驛에서 차를 버리고, 젊은 朝鮮의 딸들의 전당인 梨花 學園에 발을 들여 놓다. 미리 전화로 교장과 만나기로 약속은 있었으나 때마침 회의 중인 모양이어서 응접실에서 30분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교장 金活蘭 선생께서 들어 오시면서,
『매우 기다리시게 하여서 죄송합니다. 또 추운 날 오시기에 수고로웠겠습니다.』
하고, 반겨 맞어 주신다.
『온, 천만에요. 학기말이 되어서 매우 분망하실텐데 도리어 제가 미안합니다.』
하고, 자리에 다시 앉으면서 방문 온 뜻을 말하고,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기자『금춘 신학기부터 귀교에 일부의 학제가 변하는 과가 있다는데 무슨 과인가요?』
교장『종래에는 梨花 保育 學校가 전문부에 편입되어 있지 않고 독립되어 있던 것을 과로 승격시켰어요. 그러니깐 梨花 保育 學校라는 것은 없어지고 전문 학교에 보육과라는 것을 만들어 놓은 셈이죠.』
기자『학년제는 종전대로 같습니까.』
교장『네, 3년제얘요.』
기자『그리고 새로 설치하는 과는 없습니까.』
교장『있어요. 專修科라는 것을 신설하는데, 그것은 내지로 말하면 花嫁 學校와 같은 것이얘요. 朝鮮에는 아직<45> 花嫁 學校와 같은 학교가 없기 때문에 우리 朝鮮 여자들에게는 그러한 부문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아서 금번 신설케 된 것이얘요.』
기자『그 專修科는 몇 년제입니까.』
교장『1년제올시다.』
綜合 女子 大學 設計
기자『신문 지상에서 보면 귀교가 종합 여자 대학을 창설하려고 운동 중이라는데, 그 계획과 이상을 들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교장『아직 여자 대학 창설에 대한 법령이 서지 않아서 주저하고 있어요. 내지에도 아직 여자 대학 창설에 대한 법령이 서 있지 않으며, 東京에 있는 日本 女子 大學이라든가 그 밖의 여자 대학 같은 것은 다 법령에 의해서 창설된 대학이 아니고, 말하자면 우리 학교와 같은 정도의 것인데, 대학이라고 이름을 부친 것 뿐이지요. 우리는 대학을 창설한다면 법령에 의해서 대학으로 인정받는 완전한 대학을 창설할 의사는 가져도, 당국에서나 사회에서 인정해 주지 않는 대학을 세울 의향은 조금도 없어요.』
기자『그러시다면 여자 대학 창설에 대한 계획과 이상을<46>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교장『웨요. 법령이 서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획은 하지 않았으나, 법령이 서는 대로 곧 착수할 생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대략 머리 속에 案은 서 있죠.』
기자『미안하지만 그 안을 좀 들려 주서요. 만일 대학을 창설하신다면 과는 현재 있는 과들을 그냥 두실 예정이신지요? 그리고 새로 더 과를 신설하신다면 무슨 과 무슨 과를 두시렵니까.』
體育科와 醫科
교장『무론 현재 있는 문과, 음악과, 가사과, 보육과는 그냥 둘 예정이며, 새로 설치할 과로는 첫째 체육과얘요. 체육과는 보건 상으로나 여러 가지의 의미로서 대단히 좋다고 보아요. 앞으로 대학 창설의 날이 늦어진다고 할 지라도 체육과만은 5년 이내에 세우려고 해요.』
기자『체육과 설치에 자금을 얼마나 예산하십니까.』
교장『지금 건평 15,093평의 체육관이 있고, 그 밖에 시설도 다 되여 있으니 교수만 문제지요. 교수 역시 음악과가 있기 때문에 음악에 관한 것은 음악 교수를 겸임케 해서 가르칠 수 있으며 다른 과목은 문과 교수나 그 밖에 다른 과 교수를 쓰게 되겠으니 체육을 전공한 교수만 2, 3인을 초빙하면 되겠어요. 그리고 아직 한가지 시설이 부족한 것은 수영장이 없는 것인데 그것만 만들면 거의 완비되어 있죠. 교실이나 운동장은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다 있으니까 문제 밖이얘요. 그러니까 예산이라야 최소한도로 년 20,000원이면 되리라고 봅니다.』
기자『그 밖에 다른 과를 생각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교장『다음으로 의과를 두려고 하는데, 의과를 둔다고 해도 보통 다른 대학에서 두는 그러한 류의 의과가 아니고 우리는 간호 양성과 공중 위생를 위주하는 의과를 두려고 합니다. 朝鮮 안에는 세브란스 병원이나 대학 병원이나 혹은 平壤 聯合 基督 病院같은 데 간호부 양성소가 있지만 그것은 레벨이 좀 낮은 편이기에 그 수준을 높여서 대학 의과라는 시설 밑에서 학구적으로나 그 밖의 여러 가지 점으로 손색이 없는 완전한 간호부 양성 기관을 세우려고 해요. 東京에 있는 聖路加 專門 學校는 순전히 간호부 양성을 위한 전문 학교인데 그 시설과 규모에 감탄했어요. 참 훌륭하드군요. 우리도 하면 그 정도의 시설로 하구 싶어요. 일반으로 세상 사람은 간호라는 것을 그리 대단하게 보지 않는 모양인데<47> 그것은 인식 부족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웨 그런고 하니 사람에게 있어서 생명이라는 것이 가장 귀중하다고 하면 병마를 방지하는 것이 첫째 가는 일일텐데, 그렇다고 하면 병마 방지는 의사와 간호부에게 대부분 있다고 보아요. 그 중에서도 제 생각에는 간호 여하가 그 환자에게 여간한 영향를 주는 것이 아니라고 보며, 그 환자의 병의 절반은 간호부가 낫게 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점을 보아서 의과를 두되 의사를 양성하는데 치중하지 않고 여자에게 적절한 간호학과 위생학- 위생에는 공중 위생과 가정 위생을 겸한 위생학을 중심으로한 의과를 설치할 예정이얘요.』
商事學科와 社會 事業科
기자『다음, 또 생각하신 과는 없으신가요?』
교장『셋째로는 商事學科를 두려고 해요. 朝鮮 안에는 女子 商業 學校라는 것만 있는데 그것은 중등 정도의 것이기 때문에 졸업한대야 백화점 점원이나 그 밖에 은행, 회사의 가장 낮은 사원으로 밖에 취직 못 하는데, 우리가 설치하려는 商事學科는 고등 상업의 교육이므로 商事學科를 졸업하게 되면 여자가 자립으로 상점을 경영할 수도 있게 되고, 만일 재력이 없어서 상점을 경영하지 못 한다고 해도 은행이나 회사 같은 데에 들어서 상당한 지위를 차지하도록 주력하려고 합니다.』
기자『그 商事學科의 설치에는 경비를 얼마나 예산시나요?』
교장『그것도 최소한도로 년 50,000원이면 되리라고 믿요. 그리고 넷째로는 사회 사업과를 두려고 하는데 것은 순전히 예수의 정신과 사상 밑에서 滅私奉公 信愛協力, 희생봉사 등의 교육과 정신을 함양시키려 것인데 명칭은 사회 사업과라고 할지, 혹은 종교 사업라고 할지 아직 미정이얘요. 본래 우리 학교가 創되기를 기독교계에서 창설했고, 또 창설의 목적이 리스도의 博愛主義와,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종교생을 토대하고 교육시키려는 것이 원칙적인 목적이오 이상이기 때문에 사회 사업과라는 것이 대단히 필요다고 보아요. 사실 朝鮮 여자들에게는 사회 봉사의 神이 대단히 결핍해요. 朝鮮만 할 지라도 서양 여자이 와서 일생을 처녀로 늙어가며 병원에서, 혹은 會에서 혹은 학교에서, 혹은 사회 사업 단체에서 自 나라 사람도 아닌 이민족을 위하여 노력하는데 朝 여자가 어디 그렇게 노력하는 이가 있나요. 해외에 가서 노력하는 것은 그만 두고라도 海內에서도 보기<48> 려우니깐요.』
기자『사회 사업과라고 하면 탁아소라든가 고아원이라든가 혹은 양로원, 감화원 같은 데 가서 일하는 것이 되겠군요?』
교장『그렇죠.』
기자『사회 사업과의 경비는 1년에 얼마나한 예산을 세우십니까.』
교장『그것도 최소한도로 년 20,000원은 가져야겠다고 보아요. 하여간 대학을 창설하게 되는 때에는 이상에 말씀한 네 科를 설치하는 것까지 합해서 그 기본금을 적게 잡아서 10,000,000원을 예산하고 있어요.』
기자『자연 과학 연구소라든가, 혹은 理化學硏究所 같은 것을 설치할 의향은 없으십니까.』
교장『남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는 몰라도 제 생각에는 여자에게 그러한 교육이 그리 필요하다고 볼 수는 없어요. 무론 큐리- 부인같은 과학자가 朝鮮에도 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시험관을 들고 실험하는 교육은 남자에게 돌리는 것이 좋겠어요. 그렇다고 도무지 유의하지 않는 건 아니얘요. 매년 경비를 들여서 박물 표본도 가추고 거기 대한 서적도 가추니까요.』
기자『도서관을 확장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교장『구체적인 안을 세우지는 않았으나 도서관을 *워서 확장할 의사는 가지고 있어요. 지금까지 매년 도서를 구입해 왔으며, 또 앞으로도 매년 구입할 *이니까 10년 후이면 서적도 상당할 것까지는 없어도 꽤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宣敎 本部와의 關係·其他
기자『선교 본부와는 관계를 어떻게 맺고 있습니까.』
교장『우리 학교 기본금이 건물을 내여 놓고 현금으로 115,000불인데 米國 선교 본부에 있어요. 그리고 매년 5분 이자가 나오지요. 그것으로 경영해 나가고 있으며 장로회와는 一切 관계가 없고 감리회의 원조를 받고 있지요.』
기자『현재 이사는 누구 누구십니까.』
교장『서양인으로는 체리, 亞扁薛羅, 麥愛蓮, 貴愛多, 홀 諸氏고 내지인 측으로는 山中大吉씨, 朝鮮人 측으로는 尹致昊, 兪億兼, 梁柱三, 金性洙,鄭春洙, 朴永均, 徐恩淑, 朴瑪利亞 諸氏와 저까지 전부 15명이얘요.』
기자『교수는 몇 분이신가요?』
교장『미스·아펜설라 명예 교장 이하 서양인 교수가 9명이고, 강사가 1명이며, 내지인 교수가 2명, 조교수가 2명, 강사 1명, 朝鮮人 측으로는 교수가 18명, 조교수<49> 7명, 강사가 18명, 기외 직원까지 합해서 전부 80명이얘요.』
기자『학생 수효는 어떻게 됩니까.』
교장『현재 문과에 46명, 음악과에 71명, 가사과에 130명, 보육학교에 75명입니다.』
기자『경상비는 매년 얼마나 듭니까.』
교장『14년도에는 140,000원이 들었는데 米國에서 90,000원 가량 오니까 그 외는 수업과와 기타로 보충하죠.』
기자『支那 事變 以來 중등 학교와 남자 전문 학교에는 支那語 과목이 하나 늘었는데 귀교에도 支那語를 교수하십니까.』
교장『여학생들이 졸업한대야 대륙 진출이라는 것도 별로 없고 하니 필요를 느끼지 않아요. 그러나 문과에는 支那문학이라는 것이 있죠. 그리고 朝鮮문학도 교수하구요.』
意中에 드는 外國 大學
기자『선생께서 외국은 시찰하실 때 여자 대학 중에서 그 규모로나 시설로나 교풍으로나 마음에 드시는 대학, 말하자면, 나도 저와 같은 대학을 창설하고 싶은 의중 드는 대학이 없으십니까.』
교장『여자 대학으로 5대학 중의 하나인 米洲 매스츄세스에 있는 웰스레 女子 大學이 제가 본 중에서는 제일 마음에 들드군요.』
기자『없으신 시간에 여러 말씀을 들려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世醫專, 議會에 法案이 通過된다면 醫科單科大學으로 邁進, -大學位置는 新村松林으로-, 校長 吳兢善氏 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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創立 沿岸과 現在의 基本金
3월 6일 오전 9시, 京城驛前에서 전차를 버리고 세부란스 聯合 醫學 專門 學校를 찾아 교장 선생을 방문하고 來意를 말하니, 교장 吳兢善씨는 기자를 교장실로 안내해 주신다. 테불을 隔하여 앉아서 위선 나는 연혁부터 묻기 시작하였다.
기자『금년에 귀교 창립이 몇해 되는지요? 연혁부터 얘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교장『최초 본교가 창립되기는 韓國 光武 3년(西曆 1899년)이었는데, 그 보다도 훨씬 전, 즉 開國 493년(西曆 1884년)에 朝鮮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 H. N. 아렌 박사가 故 閔泳翊씨의 생명을 구조해 주어서 당시의 국왕 大院君께서 사의를 표하는 의미로 濟衆院이라는 朝鮮 왕실 병원을 창설하고 아렌씨로 하여금 감독자로 選하였으며, 따라서 경영케 하였지요. 그러던 것을 開國 503년에 동병원이 北長老派 宣敎師會의 손에 옮겨져서 경영케 되었으며, 일찌기 아렌씨와 가치 동 사업에 종사 경영하던 에비슨 박사가 光武 3년에 뉴욕시에서 개최된 萬國宣敎師協議會에 출석하여 병원 건축비 10,000불을 청했는데 그 때 L. H. 세부란스씨가 10,000불을 기부하여서 병원 건축과 함께 생도 모집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朝鮮 교육령에 의해서 재단 법인 及 사립 세부란스 聯合 醫學 專門 學校로 승격하기는 大正 6년 3월이였습니다. 그러든 것을 大年 11년 2월에 새로 발포된 교육령에 의해서 인가를 얻고 종래의 사립을 폐지하고 그저 세부란스 聯合 醫學 專門 學校라고 개칭하게 됐는데 동년 5월 15일을 본교의 개교 기념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본교 부속 병원, 산파 간호부 양성소는 大正 13년에 朝鮮 총독의 지정을 맡았습니다.』
기자『현재 귀교의 자본금은 얼마나 되는지요.』
교장『토지, 건물, 현금 기타를 합해서 3,000,000원 가량 됩니다.』
單科 大學 創設과 位置
기자『신문 지상에서 보니 귀교가 延禧 專門 옆에 1,000,000평의 토지를 매수했다고 하며, 장래에는 다시 1,000,000평을 구입하여 문과, 상과, 법과, 이과 등 朝鮮 최대의 종합 대학을 창설할 계획이라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교장『우리는 그런 의사를 발표한 일도 없고, 종합 대학이라고는 아직 생각도 못 했는데 신문에는 종합 대학이니 무어니 떠들었나 봅니다 마는 그것은 전혀 무근한<51> 말이고, 공연히 우리로 하여금 실현도 못 할 것을 사회에 발표케 하여 사회에 신용만 없게 만들어 놓을 뿐만 아니라 일종 과장과 같애서 좀 안 됐습니다. 현재의 우리 의학 전문 학교를 더 충실하게 하여 장차 단과 대학을 창설할 안은 세우고 있습니다.』
기자『단과 대학을 창설하신다면 몇 개년 계획을 세우십니까.』
교장『금번 全國(내지와 반도) 醫學專門學校大會에서 文部省에 단과 대학으로 승격시켜 주도록 진정했고, 금번 의회의 敎育審査委員會에까지 그 진정이 통과되였다는데, 어찌될 지 앞으로 보아야 알겠어요. 하여간 인가 되는대로 우리 학교도 단과 대학으로 승격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을 뿐이고, 몇 개년 계획이라고 하는 것은 인가 여하에 따르게 되는데 不遠에 되리라고 믿어요.』
기자『단과 대학을 창설하신다면 몇 년제의 의과 대학으로 하실 예정이신가요?』
교장『6년제의 의과 대학으로 하렵니다.』
기자『위치는 현재의 위치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시렵니까. 혹은 다른 데로 옮기시렵니까. 현재의 위치는 부속 병원을 가진 귀교로서는 너무 복잡 분주한 지대요, 공기도 나쁠텐데요.』
교장『아까도 말이 났지만 신문 지상에는 延禧專門學校 곁에 1,000,000평을 샀느니, 또 앞으로도 1,000,000평을 사느니 한 것도 무근한 말인데, 1,000,000평이면 매평 15원을 잡아도 15,000,000원이 아닙니까. 우리 학교의 전 재산을 합해도 3,000,000원 정도 밖에 아니 되는데, 거, 공연한 말들이지요. 하여간 지금의 위치는 우리도 좋다고 볼 수 없으며, 옮기게 되면 延禧專門學校 곁인 新村 松林 속으로 옮기려고 합니다.』
硏究室과 圖書館
기자『혹 귀교에서는 장차 자연과학연구소라든가, 理化學硏究所 같은 것을 설치할 의향은 없으신지요?』
교장『의과 대학을 세울 계획이니까 자연 과학관이라든가, 이화학 연구소 같은 것은 아직 계획하지 못 했고, 그저 의학에 관한 연구실 만은 세우려고 합니다.』
기자『연구실 설치에는 얼마의 예산을 세우십니까.』
교장『200,000원으로 예산했습니다. 최소한도로 그렇습니다.』
기자『도서관을 세우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교장『네, 도서관도 세울 계획입니다.』
기자『그것은 얼마나한 예산을 세우시는지요?』<52>
교장『만일 도서관을 설치한다면 1,500,000원 내지 2,000,000원을 예산하고 있습니다.』 (사진 중앙이 吳박사)
現在의 校勢
기자『지난 달 22일에 귀교 이사회가 있었다는데 새로 이사 개선이 되셨나요?』
교장『금번 이사회 전까지의 이사는 서양인 11명, 朝鮮人 측으로는 梁柱三, 李榮俊,高明宇, 金俊玉, 兪億兼, 崔棟, 金義文, 제씨와 저까지 전부 19명이였었는데 금번 이사회에서 14인으로 축소키로 결정했습니다. 아직 그 성명은 발표할 수 없으나 北長老派에서 1인, 南長老派에서 1인, 壕洲 長老派에서 1인, 카나다 長老派에서 1인, 南監理派에서 1인, 北監理派에서 1인, 朝鮮長老會總會에서 1인, 朝鮮監理會年會에서 1인, 본교 동창회에서 1인, 본교 교장 1인, 부교장 1인, 그리고 사회 측에서 3인, 합 14인의 이사를 선출키로 하였습니다.』
기자『현재 귀교의 교수와 직원은 몇 분이신지요?』
교장『명예 교장 O. R. 에비슨 박사 이하 교수가 16인, 강사 20인, 조교수와 조수가 26인, 기타 직원까지 합하면 전부 71명입니다. 그 중에 서양인이<53> 6인, 내지인이 6인입니다.』
기자『학생은 전부 몇 명입니까.』
교장『200명입니다.』
宣敎會와의 關係와 經常費
기자『귀교와 선교회 본부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여 있습니까.』
교장『南長老派와는 별써 관계를 끊었고, 北長老派에서는 명년 3월 말까지 관계하고 손을 끊기로 하였습니다.』
기자『귀교의 1년 경상비는 얼마나 듭니까.』
교장『1년 경상비가 450,000원 정도외다.』
기자『귀교의 부속 병원은 그 시설과 및 그 자금이 얼맙니까.』
교장『500,000원은 가겠지요.』
기자『여러 말씀 들려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하고, 나는 의자에서 일어섰다.<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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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同工專, 平壤牡丹峰 勝地에 朝鮮最大의 科學殿堂을, -理化學硏究所도 新設할 터로-, 校主 李鍾萬氏 談
現在의 基本金
봄을 비웃는 듯이 날세는 매우 따뜻하더니 변덕을 부리는 모양인지 다시 추워지기 시작하는 2월 21일 오후, 시내 堅志町에 있는 大同鑛業株式會社로 大同工業專門學校 校主 李鍾萬씨를 방문하다.
『매우 분망하실텐데 괴롬을 끼치려 왔습니다.』
나는 이러한 싱거운 인사의 말을 한 마디 던지니,
『온, 딴 말씀을 하십니다. 거기 앉으십시요.』
하고, 校主 李鍾萬씨는 자리를 권한다.
기자『오늘 찾아 뵈려 온 것은 三千里 4월호에 朝鮮 안에 있는 각 사립 전문 학교의 앞으로의 경영 풀랜과 그 이상을 실리기 위해서 몇 말씀 물으려 왔습니다.』
교주『네, 고맙습니다. 어서 물으세요.』
기자『현재 귀교의 기본금은 얼마나 됩니까.』
교주『기본금으론 1,200,000원이 서있으며, 그 밖에 平安南道 安州 立石이라는 西海 근방에 시가 600,000원의 농장이 었습니다.』
기자『그 농장 토지가 평수로는 몇 평이나 되나요?』
교주『1,800,000평이지요.』
校舍 新築과 그 位置
기자『지금 귀교의 교사는 전 崇實專門學校 교사일텐데 새로 속히 건축할 의사는 없으신지요?』
교주『네, 우리도 무엇보다 교사가 선결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기지는 별써 매수하였습니다.』<55>
기자『그 위치는 어딘가요?』
교주『平壤 牡丹峯 뒤인데, 大洞江 옆이올시다.』
기자『거, 매우 풍치가 좋은 곳으로 택하셨군요.』
교주『네, 머, 그저 그렇지요.』
기자『기지가 몇 평이나 됩니까.』
교주『22,000평이외다.』
기자『건물은 언제부터 기공하시렵니까.』
교주『곧 착수하려 하였었는데, 전시가 돼서 물자를 얻기다 極難입니다.』
新設할 機械科와 電氣科
기자『현재 귀교의 과로는 광산과 하나만이지요?』
교주『네, 그렇습니다.』
기자『앞으로 과를 더 늘이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교주『무론 늘릴 터입니다. 지금, 총독부에 허가 신청을 들여서 인가를 얻은 과가 두 과인데 기계과와 전기과올시다.』
기자『그 두 과를 설치하는데 각각 기금을 얼마나 예산하십니까.』
교주『한 과를 설치하는데 아주 최소한도로 500,000원을 예산했습니다.』
기자『언제부터 개강하실 예정이십니까.』
교주『될 수 있는대로 속히 시작하렵니다.』
기자『실례의 말씀이지만 아직 귀교에는 도서관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을 터인데 도서관을 속히 세우실 腹案은 없으십니까.』
교주『그것도 무론 설계 중입니다.』
기자『얼마나한 자금을 요하게 됩니까.』
교주『도서관 건물을 300,000원으로 예산했고 도서를 가추는데 1,000,000원을 예산합니다. 그런데 위선 광산과나 기계과나 또는 전기과에 필요한 도서를 당장 가추려고 계획을 진행시키는 중에 있습니다.』
理化學 硏究所 設置
기자『그 다음에 귀교에서 설계 중에 있는 것은 없으십니까.』
교주『광산과니, 기계과니, 전기과니 하니까 자연히 이화학 연구소 설치가 또한 급선무인데 그것도 곧 실현시킬 작정입니다.』
기자『이화학 연구소 설치에는 자금을 얼마나 예산하십니까.』
교주『5,000,000원은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56>
綜合 大學 設計案
기자『요새 각 전문 학교가 대학 창설 계획을 가지고 활동 중인가 본데, 귀교에서는 대학 창설을 계획하시지 않으십니까.』
교주『대학 창설의 구체안을 세운 일은 없으나 대략 안만은 가지고 있습니다.』
기자『미안하지만 그 안을 좀 들려주십시오. 만일 대학을 세우신다면 선생의 생각으로는 단과 대학을 세우시렵니까. 종합 대학을 세우시렵니까.』
교주『저는 세우랴면 종합 대학을 세울 작정입니다.』
기자『종합대학이라면 무슨 과 무슨 과를 두시렵니까.』
교주『첫째 공과인데 현재 인가를 얻은 광산과, 기계과, 전기과가 그 부문에 편입될 것이며, 다음으로 농과, 의과, 이화학과, 예술과, 마지막으로 법문학과, 이렇게 여섯과를 생각했습니다. 특히 朝鮮에는 미술 학교와 음악 학교가 없기 때문에 예술과에 미술부와 음악부를 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문화 강좌도 두고요. 어쨌든 朝鮮에는 완전한 예술과가 대단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기자『그 여섯 과를 설치하는데, 즉, 말하자면 선생께서<57> 구도하시는 그 종합 대학 창설에 자본금을 얼마나 들여야 되겠다고 생각하십니까.』
學主『글쎄요. 아직 이상 뿐이지 무슨 구체안을 세워보지는 않았으니까요.』
現在의 校勢와 今後
기자『현재 귀교의 교수는 몇 분이십니까.』
학주『내지인이 5명이오, 朝鮮人이 2명이외다.』
기자『학생은 몇 명이나 됩니까.』
교주『학생은 모두 160명입니다.』
기자『귀교를 세운지가 몇해 되지 않으니까 아직 졸업생은 없겠지요?』
교주『네, 아직 없습니다. 금년 12월에 80명의 졸업생이 직장으로 나가게 됩니다.』
기자『어떻게 12월에 졸업식을 합니까.』
교주『무론 졸업장은 명년 3월에 노나주지만 졸업생이 직장에 나가는 것은 모든 점으로 보아 12월이 가장 좋은 시기라고 보아서 그렇게 합니다.』
기자『여러 가지 말씀을 들려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58>
<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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