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세상읽기] 일본 제국대학 유학생들
오현주 기자 승인 2019.07.12 14:17 호수 678 댓글 0기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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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본가·외가·처가 대부분 제국대, 고등관료 출신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제국대학을 나온 한국인들이 궁금했다. 어떤 이들이며 졸업 후의 행적은 어땠나. 그들은 왜 조센징이라는 차별과 멸시를 받아가며 엄청난 비용의 사치스런 유학을 떠났을까. 그런 의문이 조금 해소됐다. 최근 발간된 ‘제국대학의 조센징’(정종현·휴머니스트)을 읽고 나서다.
제국대학은 1886년 도쿄를 시작으로 교토, 도호쿠, 규슈, 홋카이도, 게이조, 다이호쿠, 오사카, 나고야 순으로 총 9개가 설립됐다. 조선에선 미 선교사가 최초의 사립학교 배재고보(1885년)를 세웠던 무렵이다.
제국대학에 들어간 한국인은 1000여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금수저’였다. 이완용의 손자 이병길을 비롯한 남작 조동윤·민종묵 등 귀족계급의 자제들이 비싼 수업료를 물었다. 한일병합 직후 조선귀족령에 의해 작위가 수여된 사람은 75명이다.
제국대학의 수업료는 연 120엔이었다. 이 수업료를 빼고도 평균 월 47엔의 높은 학비가 들었다. 이 비용의 1년 치가 평균 684엔이다. 1930년대 초 조선인 자작농의 연평균 수입이 544엔이고 소득수준이 높은 편이던 평양시민의 1년 소득이 1000엔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액수다.
식민지의 귀족들만 간 것도 아니다. 교토제국대학 옆에 있는 도시샤대학 영문학과를 다닌 시인 정지용(1902~1950)은 옥천의 가난한 농가 출신이다. 정지용은 학업을 마친 후 모교 영어교사로 근무한다는 조건으로 휘문고등보통학교 교비 장학금을 받아 유학했다. 휘문고보 창립자는 친일 자산가 자작 민영휘였다.
조선의 명망가 집안 자제들도 유학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때 이를 가로막으려다 살해된 궁내부대신 이경직의 손자인 이관구는 교토제국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서유견문’을 쓴 개화파 양반관료 유길준의 아들들도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했다.
도쿄제국대학 입학시험 과목은 영·독·불문 일역, 일문 영·독·불역, 작문 등 세 가지였다. 당락은 어학실력에서 판가름 났다. 당시 일본 고등학교는 외국어 시간이 총 수업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어 중심 교육이었다.
제국대학 학생들의 취미와 오락은 영화가 단연 1위이다. 1925년 조사에서 1위 바둑 두기, 2위 음악 감상, 3위 연극 관람, 4위 영화 감상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바둑은 뒤로 밀리고 영화가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1938년 설문에서는 영화가 음악의 2배 이상 달했다.
제국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가장 극적인 사례가 대법관 출신의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이다. 그의 본가·외가·처가는 제국대학, 고등문관시험, 식민지 관료 출신들로 구성됐다. 이회창의 할아버지는 충남 예산의 지주다. 이회창의 백부는 교토제국대 교수 이태규이며 아버지는 경성법학전문학교 출신으로 총독부 검사서기를 거쳐 해방 이후 검사를 역임한 이홍규다.
이회창의 외가는 담양의 만석꾼 지주 집안이다. 외삼촌인 김성용은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나와 고등문과시험 행정과에 합격한 후 일본 군수성 관료를 역임했다. 김성용 등 이회창의 삼촌 3형제는 모두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모인 김삼순은 홋카이도제국대학 식물학과 출신의 농학박사다.
이회창의 장인은 1942년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해 해방 이후 대법원장 직무대행 및 대법관을 지낸 한성수다. 한성수의 장남인 한대현도 헌법재판관을 지냈다.
시인 임화(1908~1953)는 현해탄을 건너는 유학생들에게 ‘왜 가냐’고 물었다. 책의 저자는 서문에서 “조선인 유학생들은 ‘지사냐, 출세냐’ 갈림길에서 고민했다. 제국대학의 졸업생들은 결과적으로 다수가 출세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제국 대학 입학은 입신출세의 티켓을 쥐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졸업생 다수가 식민지 체제에서 출세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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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
이 글은 사회과학 서적인 「제국대학의 조센징」(정종현)을 읽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 글의 구성
<I> 100년 전, 식민지의 엘리트
<II> 「제국대학의 조센징」
<III> 어떤 보상체계인가
<IV> '민족'을 벗어날 수 있는가?
<V> 총평
I. 100년 전, 식민지의 엘리트
100년 전, 식민지 조선을 상상해보자. 흔히 갖는 이미지는 “탄압받는 조선인-탄압하는 일본인/지배받는 조선인-지배하는 일본인”이다. 즉, ‘민족’을 기준으로 지배-억압 관계가 구분된다.
당시 조선인의 78%가 농부였는데, 그 중 70%가 소작농 이하의 계층이었다. 국가 권력이 시장과 시민 사회를 압도한 식민지 시절. 국가 권력에 진입했던 조선인은 극히 적었다. 조선인 중 2.7%만이 공무원이었다. 그 중 사무관 이상의 고위 공무원을 추려내면, 얼마 안 된다. '조선인'은 가난했고, 권력과는 먼 곳에 있었다. '민족'은 경제/사회/정치 권력의 균열에 가장 큰 요소였다.
그렇지만 사회 일부분을 세밀하게 관찰해보면, “지배받는 조선인-지배하는 조선인, 탄압받는 조선인-탄압하는 조선인”구조도 확인할 수 있다. 식민 지배의 최전선에서 같은 민족을 고문한 일제 순사 ‘노덕술’부터, 지금의 종로 타워가 있는 곳에 ‘화신백화점’을 운영했던 조선 최고 부자 ‘박흥식’까지. 잘 나갔던 조선인도 있었다.
‘교육 잘 받은 엘리트’ 조선인도 있었다. 1944년 기준, 대학을 졸업한 조선인은 만 명이 안 됐다(7,343명). 전문학교까지 포함시키면 간신히 3만명 정도 된다(29,438명). 당시 조선인이 2,300만명 정도 됐으니까, 대졸자는 상위 0.1%의 엘리트다.(29,438/22,793,766명) 지금 우리나라의 고등교육기관 취학율은 70%다. 당시 대졸자의 위상은 지금과는 현저히 달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느 대학 출신'이냐에 따라 ‘대졸자의 위상’도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학력 서열의 정점에는 ‘제국대학’이 있었다. 도쿄/교토 제국대학을 위시한 7개의 제국대학.
정종현 교수가 쓴 「제국 대학의 조센징」은 제국대학에서 공부했던 조선인을 다룬다. 그는 직접 일본에 가서 제국대학 졸업생 명부를 뒤진다.
왜 하필 제국대학일까?
II. 「제국 대학의 조센징」
제국대학이 뭐길래?
일본은 후발 근대화 국가다. 그들은 근대화된 서양 문명을 최대한 빨리 따라잡아야 했다. 똑똑한 사람이 있어야 근대화가 가능하다. 똑똑한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 그들은 '제국대학'을 설립했다. 일본에서 대학이란 '학문과 연구의 장'이 아니라, '제국'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요람이었다.
제국대학 출신은 고등문관시험 사법/행정과를 통과한 후 제국을 통치하는 관료가 되거나, 교육/언론/출판/경제계의 핵심 인사가 됐다. 제국대학 출신은, 그 시대의 엘리트였다.
이 책은 "제국대학"이라는 학력 자본의 함의부터, 제국 대학 유학생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짚는다. 그리고 기업가, 판/검사, 사무관이 되어 제국에 복무한 졸업생과 독립운동가가 되어 제국에 저항한 졸업생 등 다양한 조선인 학생을 보여준다.
저자는 ‘제국대학 졸업생 = 친일파’라는 단순하고 폭력적인 등식을 말하지 않는다. 100년 전 태어나 공부 잘했다는 것만으로 ‘친일파’가 되는 건 너무 가혹하다. 대신, 이 수재들이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 사실적으로 서술한다.
엘리트 조센징들
을사오적에 이름을 올린 일본 제국의 귀족 민영휘. 그의 증손자 민덕기는 도쿄제국대학 출신이다. 해방 후 적산을 물려받는다. 이 적산이 바로 지금의 하이트 맥주다. 대한민국의 자본가가 됐다.
고려대/동아일보 창립자 김성수. 그의 조카 김상협은 도쿄제국대학 출신이다. 김상협은 해방 후 고려대학교 총장, 문교부 장관을 거쳐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다. 대한민국의 엘리트 관료가 됐다. 이 글의 제목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내선일체 프로파간다의 전문가 최남선. 그의 아들 최한검은 도쿄제국대학 출신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했고, 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사회주의 사상에 매료됐고, 김일성 대학의 교수가 된다. 북한의 엘리트 교수가 됐다.
같은 20대 동년배인 이들의 행보를 마주하는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조선인 최초의 여성 농학박사 김삼순(이회창의 이모), 윤동주의 친구인 송몽규 등 여러 엘리트의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인명사전 정도 될려나? 성공한 창업자의 후일담이나, 대기업/전문직 입사자의 취업 후기를 보는 것마냥 흥미롭다.
그렇지만 단순한 인명사전만은 아니다. 당시의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세밀한 분석도 곁들여진다. 당시 제국대학 수업료/생활비를 계산하여 어떤 계급 출신이 유학을 많이 왔는지 추측도 하고, 남한/북한의 대학 교수를 분석하여, 제국대학 출신이 학계에서 우월한 지위를 가졌음을 말한다.
말하자면 '제국대학 출신 조센징'의 사례 연구이자 사회학적 분석, 그리고 인생사를 담고있다.
III. 어떤 보상체계인가
친일인명사전에 기재된 한 사람이 있다. 도쿄제국대학 졸업생 '이호'. 그는 일제 시대에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통과한 후 검사에 임용됐다. 해방 후에는 한일회담 대표, 국방부 차관,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주일대사, 헌법위원회 위원장을 거친 화려한 엘리트다. 직업이 長이다. 참 잘났다.
자식도 잘났다. 자식들은 각각 서울시립대 교수, 서울대 교수, 이대 교수, 대기업 사장, 미국 영사가 됐다. "친일파 자식이니까 욕먹어야 돼!"라고 말하고자 하는 건 결코 아니다. 아무나 교수, 사장 시켜주지 않는다. 그들은 노력 했을 테고, 역량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저 자리에 갔을 테다.
그런데 이 사례는 시민들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역량 있고 똑똑했던 식민지 청년. 그는 총명한 두뇌와 쉼없는 열정을 ‘같은 민족’을 탄압했던 제국을 위해 사용했지만, 해방 후에 그 과오에 대한 유/무형의 처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잘 나갔다. 그의 자손도 잘 나갔다.
만약 총명하고 열정이 넘치는 나의 자식이나 친구가 '이호'씨와 동일한 환경에 놓였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하라고 말할까. 독립운동 하라고? 아니면 열심히 공부해서 고시 패스 하라고?
나는 스스로 생각하건데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특정 이념에 목숨을 바치는게 무섭다. 그래도 이념도 없이 이익만 좇는 ‘개자식’이 되기는 싫다. 너무 고생하는것도 싫지만, 마냥 안락함만을 원하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럴거다.
그런데 제국에 복무하고 민족을 탄압한 엘리트가, 제국이 사라지고 '그 민족'이 다시 세운 나라에서 더 잘 나가고, 후손도 떵떵거리며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살아간다면, 나는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까? 기껏 도쿄제국대학/교토제국대학 나온 내 자식이나 친한 친구에게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 하라고, 역사가 보상해줄거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당장 부유하고/똑똑하고/여유로워 보이는 이웃이 친일파라면, 당장 궁핍하고/무지하고/허덕여 보이는 이웃이 독립운동가라면, 그리고 이 상황을 수십년 간 보고/듣고 살았다면, '나라'를 다시 빼앗겼을 때 누가 흔쾌히 독립운동을 할까?
만약 국가가 '이기적/합리적’ 개인이 국가의 보존과 영속을 위해 행동하기를 바란다면, 그에 맞는 보상체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애국자에게 '확실한 보상'을, 반역자에게 '확실한 처벌'을. 우리나라의 보상체계는 잘 갖춰져 있나? 애국을 유도하고 반역을 억제하는 인센티브가 잘 갖춰져있을까?
IV. ‘민족’을 벗어날 수 있는가?
나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흡수한 세대다. 칼 마르크스보다는 조반니 아리기와 피에르 부르디외를, 칸트보다는 푸코와 들뢰즈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걸 얼마나 잘 이해했느냐는 별개다. 나에게는 '사회의 혁명'보다는 '일상의 개선'이, '연대와 공유'보다는 '개성과 자아'가 더 와닿는다.
‘민족’ 개념은 우리 세대에게 그렇게 큰 ‘이슈’가 아닐거다. ‘국가’ 보다는 ‘개인’이, ‘민족’보다는 ‘개성’이 더 중시되는 요즘이다. 역량과 자본이 있고 의지가 추가되면 누구라도 해외로 이민을 갈 수 있는 요즘, ‘민족’은 구시대적으로 보인다. 지구촌 아닌가.
그렇지만 ‘민족’은 완전히 없어지는건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민족'을 구분하는건, 본질적으로 ‘우리’와 ‘남’을 나누는 배타적인 과정이다. '민족'을 포괄적으로 보는 하버마스의 ‘헌법적 애국주의’에서조차, ‘우리 헌법’에 대한 동의 여부에 따라 ‘우리’와 ‘남’이 갈린다.
그리고 굳이 '우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남'이 '우리'를 타자화하거나 배척하면, 그 자체만으로 '우리'와 '남'이 갈린다. 내가 '한국인'인걸 새삼 깨달을 때는 ‘일본인’이 식민지 조선에 대해서 말하거나 ‘유럽국가의 국민’이 아시안이라고 무시할 때다.
정체성은 개인이 창조해낼 수도 있지만, 사회의 영향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마이클 잭슨은 백인이 되기를 일평생 강구했지만, '흑인'이라는 사회의 균열 구조는 그의 노력을 뛰어넘는다. 그는 흑인 가수다.
내가 아무리 코스모폴리탄으로 살려고 해도, 가령 영어에 능숙하고/미국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국제 기구 등 글로벌 경험이 많아도, 남이 바라보는 나는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 사람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코스모폴리탄이라고 소리쳐 말해봐야 큰 소용이 있을까? 정체성에서 '나를 호명하는 타자'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제국에 저항한 조선인은 '조선 민족'이라는 이유로 핍박받는 게 억울하니까, 일본에 대항했을 것이다.
'민족적 정체성'은 '그들'이 '우리'를 부당하게 핍박하고 적대시할 때 더 쉽게 창조되고 소환된다. 그리고 지금, 유럽/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옛날 말이 된 줄 알았던 '민족'이 다시 호명되고 있다. "위대한 우리의 민족과 국가를 다시 부흥시켜야 합니다!"
지난 2차례의 세계 대전,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제국주의 시절부터, 민족은 단순히 '우리 공동체'를 결합시키는데 머무르지 않았다. 민족은 우리와 남을 명확하게 구분하게 만들고, '남'을 공격하게 하는 인식적 토대로 자리잡았다. 우리 독일 민족-너희 유대 민족. 우리 일본인-너희 조선인. 요즘에 다시 호명되는 '민족'은 옛날과 다를까?
IV. 총평
작가는 타국에서 ‘우리나라 엘리트의 기원’의 퍼즐을 한땀한땀 맞춘다. 도쿄/교토 등 주요 제국대학의 조선인 졸업생 명부를 보고, 이들의 경력을 다 찾아냈다. 대단한 작업이다. 내가 학문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저작이 우리나라 엘리트 연구의 시금석이 될 거라는 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책의 내용을 더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적지 못해서 아쉽다. 마음 같아서는 복사해서 뿌려버리고 싶다. 재밌는 건 같이 보고 싶은 법이다. 그 정도로 재밌다.
내가 동경제국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똑똑했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했을까?
[참고 문헌]
「1945년 해방과 대한민국의 경제발전」(한국독립운동사 연구 제 43집) - 허수열
「통계로 본 광복 이전」 - 대한민국 통계청
「OECD 교육지표 2019」 - 대한민국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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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가 50명 가량 되어 가네요. 저는 대부분 독후감과 서평 사이에 있는 글을 씁니다. 실용적인 자기 계발도 아니고, 공감 받는 직장 생활도 아닙니다. 생활에 필요한 정보 글은 더더욱 아닙니다. 읽는 책도 '사회과학'이라, 그렇게 인기있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갑자기’ 고마움을 느낍니다. 심심해서, 재밌어서 꾸역꾸역하는 누군가의 취미 생활을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저는 제 평생에 걸쳐서 주기적으로 글을 올릴 것 같으니, 앞으로도 (가끔씩이라도) 재밌게 봐주세요.
도쿄 제국대학을 나온 대한민국 국무총리
인문학자의 조센징 엘리트 분석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
이 글은 사회과학 서적인 「제국대학의 조센징」(정종현)을 읽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 글의 구성
<I> 100년 전, 식민지의 엘리트
<II> 「제국대학의 조센징」
<III> 어떤 보상체계인가
<IV> '민족'을 벗어날 수 있는가?
<V> 총평
I. 100년 전, 식민지의 엘리트
100년 전, 식민지 조선을 상상해보자. 흔히 갖는 이미지는 “탄압받는 조선인-탄압하는 일본인/지배받는 조선인-지배하는 일본인”이다. 즉, ‘민족’을 기준으로 지배-억압 관계가 구분된다.
당시 조선인의 78%가 농부였는데, 그 중 70%가 소작농 이하의 계층이었다. 국가 권력이 시장과 시민 사회를 압도한 식민지 시절. 국가 권력에 진입했던 조선인은 극히 적었다. 조선인 중 2.7%만이 공무원이었다. 그 중 사무관 이상의 고위 공무원을 추려내면, 얼마 안 된다. '조선인'은 가난했고, 권력과는 먼 곳에 있었다. '민족'은 경제/사회/정치 권력의 균열에 가장 큰 요소였다.
그렇지만 사회 일부분을 세밀하게 관찰해보면, “지배받는 조선인-지배하는 조선인, 탄압받는 조선인-탄압하는 조선인”구조도 확인할 수 있다. 식민 지배의 최전선에서 같은 민족을 고문한 일제 순사 ‘노덕술’부터, 지금의 종로 타워가 있는 곳에 ‘화신백화점’을 운영했던 조선 최고 부자 ‘박흥식’까지. 잘 나갔던 조선인도 있었다.
‘교육 잘 받은 엘리트’ 조선인도 있었다. 1944년 기준, 대학을 졸업한 조선인은 만 명이 안 됐다(7,343명). 전문학교까지 포함시키면 간신히 3만명 정도 된다(29,438명). 당시 조선인이 2,300만명 정도 됐으니까, 대졸자는 상위 0.1%의 엘리트다.(29,438/22,793,766명) 지금 우리나라의 고등교육기관 취학율은 70%다. 당시 대졸자의 위상은 지금과는 현저히 달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느 대학 출신'이냐에 따라 ‘대졸자의 위상’도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학력 서열의 정점에는 ‘제국대학’이 있었다. 도쿄/교토 제국대학을 위시한 7개의 제국대학.
정종현 교수가 쓴 「제국 대학의 조센징」은 제국대학에서 공부했던 조선인을 다룬다. 그는 직접 일본에 가서 제국대학 졸업생 명부를 뒤진다.
왜 하필 제국대학일까?
II. 「제국 대학의 조센징」
제국대학이 뭐길래?
일본은 후발 근대화 국가다. 그들은 근대화된 서양 문명을 최대한 빨리 따라잡아야 했다. 똑똑한 사람이 있어야 근대화가 가능하다. 똑똑한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 그들은 '제국대학'을 설립했다. 일본에서 대학이란 '학문과 연구의 장'이 아니라, '제국'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요람이었다.
제국대학 출신은 고등문관시험 사법/행정과를 통과한 후 제국을 통치하는 관료가 되거나, 교육/언론/출판/경제계의 핵심 인사가 됐다. 제국대학 출신은, 그 시대의 엘리트였다.
이 책은 "제국대학"이라는 학력 자본의 함의부터, 제국 대학 유학생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짚는다. 그리고 기업가, 판/검사, 사무관이 되어 제국에 복무한 졸업생과 독립운동가가 되어 제국에 저항한 졸업생 등 다양한 조선인 학생을 보여준다.
저자는 ‘제국대학 졸업생 = 친일파’라는 단순하고 폭력적인 등식을 말하지 않는다. 100년 전 태어나 공부 잘했다는 것만으로 ‘친일파’가 되는 건 너무 가혹하다. 대신, 이 수재들이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 사실적으로 서술한다.
엘리트 조센징들
을사오적에 이름을 올린 일본 제국의 귀족 민영휘. 그의 증손자 민덕기는 도쿄제국대학 출신이다. 해방 후 적산을 물려받는다. 이 적산이 바로 지금의 하이트 맥주다. 대한민국의 자본가가 됐다.
고려대/동아일보 창립자 김성수. 그의 조카 김상협은 도쿄제국대학 출신이다. 김상협은 해방 후 고려대학교 총장, 문교부 장관을 거쳐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다. 대한민국의 엘리트 관료가 됐다. 이 글의 제목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내선일체 프로파간다의 전문가 최남선. 그의 아들 최한검은 도쿄제국대학 출신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했고, 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사회주의 사상에 매료됐고, 김일성 대학의 교수가 된다. 북한의 엘리트 교수가 됐다.
같은 20대 동년배인 이들의 행보를 마주하는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조선인 최초의 여성 농학박사 김삼순(이회창의 이모), 윤동주의 친구인 송몽규 등 여러 엘리트의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인명사전 정도 될려나? 성공한 창업자의 후일담이나, 대기업/전문직 입사자의 취업 후기를 보는 것마냥 흥미롭다.
그렇지만 단순한 인명사전만은 아니다. 당시의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세밀한 분석도 곁들여진다. 당시 제국대학 수업료/생활비를 계산하여 어떤 계급 출신이 유학을 많이 왔는지 추측도 하고, 남한/북한의 대학 교수를 분석하여, 제국대학 출신이 학계에서 우월한 지위를 가졌음을 말한다.
말하자면 '제국대학 출신 조센징'의 사례 연구이자 사회학적 분석, 그리고 인생사를 담고있다.
III. 어떤 보상체계인가
친일인명사전에 기재된 한 사람이 있다. 도쿄제국대학 졸업생 '이호'. 그는 일제 시대에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통과한 후 검사에 임용됐다. 해방 후에는 한일회담 대표, 국방부 차관,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주일대사, 헌법위원회 위원장을 거친 화려한 엘리트다. 직업이 長이다. 참 잘났다.
자식도 잘났다. 자식들은 각각 서울시립대 교수, 서울대 교수, 이대 교수, 대기업 사장, 미국 영사가 됐다. "친일파 자식이니까 욕먹어야 돼!"라고 말하고자 하는 건 결코 아니다. 아무나 교수, 사장 시켜주지 않는다. 그들은 노력 했을 테고, 역량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저 자리에 갔을 테다.
그런데 이 사례는 시민들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역량 있고 똑똑했던 식민지 청년. 그는 총명한 두뇌와 쉼없는 열정을 ‘같은 민족’을 탄압했던 제국을 위해 사용했지만, 해방 후에 그 과오에 대한 유/무형의 처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잘 나갔다. 그의 자손도 잘 나갔다.
만약 총명하고 열정이 넘치는 나의 자식이나 친구가 '이호'씨와 동일한 환경에 놓였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하라고 말할까. 독립운동 하라고? 아니면 열심히 공부해서 고시 패스 하라고?
나는 스스로 생각하건데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특정 이념에 목숨을 바치는게 무섭다. 그래도 이념도 없이 이익만 좇는 ‘개자식’이 되기는 싫다. 너무 고생하는것도 싫지만, 마냥 안락함만을 원하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럴거다.
그런데 제국에 복무하고 민족을 탄압한 엘리트가, 제국이 사라지고 '그 민족'이 다시 세운 나라에서 더 잘 나가고, 후손도 떵떵거리며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살아간다면, 나는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까? 기껏 도쿄제국대학/교토제국대학 나온 내 자식이나 친한 친구에게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 하라고, 역사가 보상해줄거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당장 부유하고/똑똑하고/여유로워 보이는 이웃이 친일파라면, 당장 궁핍하고/무지하고/허덕여 보이는 이웃이 독립운동가라면, 그리고 이 상황을 수십년 간 보고/듣고 살았다면, '나라'를 다시 빼앗겼을 때 누가 흔쾌히 독립운동을 할까?
만약 국가가 '이기적/합리적’ 개인이 국가의 보존과 영속을 위해 행동하기를 바란다면, 그에 맞는 보상체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애국자에게 '확실한 보상'을, 반역자에게 '확실한 처벌'을. 우리나라의 보상체계는 잘 갖춰져 있나? 애국을 유도하고 반역을 억제하는 인센티브가 잘 갖춰져있을까?
IV. ‘민족’을 벗어날 수 있는가?
나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흡수한 세대다. 칼 마르크스보다는 조반니 아리기와 피에르 부르디외를, 칸트보다는 푸코와 들뢰즈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걸 얼마나 잘 이해했느냐는 별개다. 나에게는 '사회의 혁명'보다는 '일상의 개선'이, '연대와 공유'보다는 '개성과 자아'가 더 와닿는다.
‘민족’ 개념은 우리 세대에게 그렇게 큰 ‘이슈’가 아닐거다. ‘국가’ 보다는 ‘개인’이, ‘민족’보다는 ‘개성’이 더 중시되는 요즘이다. 역량과 자본이 있고 의지가 추가되면 누구라도 해외로 이민을 갈 수 있는 요즘, ‘민족’은 구시대적으로 보인다. 지구촌 아닌가.
그렇지만 ‘민족’은 완전히 없어지는건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민족'을 구분하는건, 본질적으로 ‘우리’와 ‘남’을 나누는 배타적인 과정이다. '민족'을 포괄적으로 보는 하버마스의 ‘헌법적 애국주의’에서조차, ‘우리 헌법’에 대한 동의 여부에 따라 ‘우리’와 ‘남’이 갈린다.
그리고 굳이 '우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남'이 '우리'를 타자화하거나 배척하면, 그 자체만으로 '우리'와 '남'이 갈린다. 내가 '한국인'인걸 새삼 깨달을 때는 ‘일본인’이 식민지 조선에 대해서 말하거나 ‘유럽국가의 국민’이 아시안이라고 무시할 때다.
정체성은 개인이 창조해낼 수도 있지만, 사회의 영향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마이클 잭슨은 백인이 되기를 일평생 강구했지만, '흑인'이라는 사회의 균열 구조는 그의 노력을 뛰어넘는다. 그는 흑인 가수다.
내가 아무리 코스모폴리탄으로 살려고 해도, 가령 영어에 능숙하고/미국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국제 기구 등 글로벌 경험이 많아도, 남이 바라보는 나는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 사람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코스모폴리탄이라고 소리쳐 말해봐야 큰 소용이 있을까? 정체성에서 '나를 호명하는 타자'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제국에 저항한 조선인은 '조선 민족'이라는 이유로 핍박받는 게 억울하니까, 일본에 대항했을 것이다.
'민족적 정체성'은 '그들'이 '우리'를 부당하게 핍박하고 적대시할 때 더 쉽게 창조되고 소환된다. 그리고 지금, 유럽/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옛날 말이 된 줄 알았던 '민족'이 다시 호명되고 있다. "위대한 우리의 민족과 국가를 다시 부흥시켜야 합니다!"
지난 2차례의 세계 대전,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제국주의 시절부터, 민족은 단순히 '우리 공동체'를 결합시키는데 머무르지 않았다. 민족은 우리와 남을 명확하게 구분하게 만들고, '남'을 공격하게 하는 인식적 토대로 자리잡았다. 우리 독일 민족-너희 유대 민족. 우리 일본인-너희 조선인. 요즘에 다시 호명되는 '민족'은 옛날과 다를까?
IV. 총평
작가는 타국에서 ‘우리나라 엘리트의 기원’의 퍼즐을 한땀한땀 맞춘다. 도쿄/교토 등 주요 제국대학의 조선인 졸업생 명부를 보고, 이들의 경력을 다 찾아냈다. 대단한 작업이다. 내가 학문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저작이 우리나라 엘리트 연구의 시금석이 될 거라는 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책의 내용을 더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적지 못해서 아쉽다. 마음 같아서는 복사해서 뿌려버리고 싶다. 재밌는 건 같이 보고 싶은 법이다. 그 정도로 재밌다.
내가 동경제국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똑똑했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했을까?
[참고 문헌]
「1945년 해방과 대한민국의 경제발전」(한국독립운동사 연구 제 43집) - 허수열
「통계로 본 광복 이전」 - 대한민국 통계청
「OECD 교육지표 2019」 - 대한민국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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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가 50명 가량 되어 가네요. 저는 대부분 독후감과 서평 사이에 있는 글을 씁니다. 실용적인 자기 계발도 아니고, 공감 받는 직장 생활도 아닙니다. 생활에 필요한 정보 글은 더더욱 아닙니다. 읽는 책도 '사회과학'이라, 그렇게 인기있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갑자기’ 고마움을 느낍니다. 심심해서, 재밌어서 꾸역꾸역하는 누군가의 취미 생활을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저는 제 평생에 걸쳐서 주기적으로 글을 올릴 것 같으니, 앞으로도 (가끔씩이라도) 재밌게 봐주세요.
도쿄 제국대학을 나온 대한민국 국무총리
인문학자의 조센징 엘리트 분석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
이 글은 사회과학 서적인 「제국대학의 조센징」(정종현)을 읽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 글의 구성
<I> 100년 전, 식민지의 엘리트
<II> 「제국대학의 조센징」
<III> 어떤 보상체계인가
<IV> '민족'을 벗어날 수 있는가?
<V> 총평
I. 100년 전, 식민지의 엘리트
100년 전, 식민지 조선을 상상해보자. 흔히 갖는 이미지는 “탄압받는 조선인-탄압하는 일본인/지배받는 조선인-지배하는 일본인”이다. 즉, ‘민족’을 기준으로 지배-억압 관계가 구분된다.
당시 조선인의 78%가 농부였는데, 그 중 70%가 소작농 이하의 계층이었다. 국가 권력이 시장과 시민 사회를 압도한 식민지 시절. 국가 권력에 진입했던 조선인은 극히 적었다. 조선인 중 2.7%만이 공무원이었다. 그 중 사무관 이상의 고위 공무원을 추려내면, 얼마 안 된다. '조선인'은 가난했고, 권력과는 먼 곳에 있었다. '민족'은 경제/사회/정치 권력의 균열에 가장 큰 요소였다.
그렇지만 사회 일부분을 세밀하게 관찰해보면, “지배받는 조선인-지배하는 조선인, 탄압받는 조선인-탄압하는 조선인”구조도 확인할 수 있다. 식민 지배의 최전선에서 같은 민족을 고문한 일제 순사 ‘노덕술’부터, 지금의 종로 타워가 있는 곳에 ‘화신백화점’을 운영했던 조선 최고 부자 ‘박흥식’까지. 잘 나갔던 조선인도 있었다.
‘교육 잘 받은 엘리트’ 조선인도 있었다. 1944년 기준, 대학을 졸업한 조선인은 만 명이 안 됐다(7,343명). 전문학교까지 포함시키면 간신히 3만명 정도 된다(29,438명). 당시 조선인이 2,300만명 정도 됐으니까, 대졸자는 상위 0.1%의 엘리트다.(29,438/22,793,766명) 지금 우리나라의 고등교육기관 취학율은 70%다. 당시 대졸자의 위상은 지금과는 현저히 달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느 대학 출신'이냐에 따라 ‘대졸자의 위상’도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학력 서열의 정점에는 ‘제국대학’이 있었다. 도쿄/교토 제국대학을 위시한 7개의 제국대학.
정종현 교수가 쓴 「제국 대학의 조센징」은 제국대학에서 공부했던 조선인을 다룬다. 그는 직접 일본에 가서 제국대학 졸업생 명부를 뒤진다.
왜 하필 제국대학일까?
II. 「제국 대학의 조센징」
제국대학이 뭐길래?
일본은 후발 근대화 국가다. 그들은 근대화된 서양 문명을 최대한 빨리 따라잡아야 했다. 똑똑한 사람이 있어야 근대화가 가능하다. 똑똑한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 그들은 '제국대학'을 설립했다. 일본에서 대학이란 '학문과 연구의 장'이 아니라, '제국'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요람이었다.
제국대학 출신은 고등문관시험 사법/행정과를 통과한 후 제국을 통치하는 관료가 되거나, 교육/언론/출판/경제계의 핵심 인사가 됐다. 제국대학 출신은, 그 시대의 엘리트였다.
이 책은 "제국대학"이라는 학력 자본의 함의부터, 제국 대학 유학생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짚는다. 그리고 기업가, 판/검사, 사무관이 되어 제국에 복무한 졸업생과 독립운동가가 되어 제국에 저항한 졸업생 등 다양한 조선인 학생을 보여준다.
저자는 ‘제국대학 졸업생 = 친일파’라는 단순하고 폭력적인 등식을 말하지 않는다. 100년 전 태어나 공부 잘했다는 것만으로 ‘친일파’가 되는 건 너무 가혹하다. 대신, 이 수재들이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 사실적으로 서술한다.
엘리트 조센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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