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7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 더북클럽 「책갈피 」 두번째 리뷰 by. Operarius Student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

더북클럽 「책갈피 」 두번째 리뷰 by. Operarius Student
by짱구아빠Jul 19. 2019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 후마니타스 ..... Review by. Operarius Student




제목이 자극적이지만 말 그대로이기 때문에 큰 거부감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제국대학 유학생이 주된 관심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참으로 흥미로운 집단 아닌가, '조선인'이라는 자연적인 정체성과 '제국대학'이라는 사회적인 정체성이 상쇄되면 무엇이 남을지, 또한 스스로는 자신을 어디에 위치시킬지 등 식민지 시기를 관통하는 긴장 관계를 압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복합적인 집단이다, 동시에 최상층에 근접했던 집단이므로 기록과 자료가 많다는 점도 가산점을 얻을 만하다,




워낙 복잡다단하되 자료는 풍부한 편이라 그런지 책의 내용이 세부적이고 치밀한 느낌은 아니며, 오히려 대중서에 가깝다는 인상이다, 아무래도 저자가 밝혔듯이 '작은 첫걸음'이기에 넓은 범위에서 풍부한 이야기들을 제공하고 있다, 예컨대 입학 준비, 장학금, 기숙사 생활, 교수와의 관계, 동창회, 이후의 사회활동 등 현재 해외 유학 지망생들도 여전히 충분히 고려하는 요소들을 두루두루 다루고 있다, 자세한 내용을 모두 언급하기보다는 책을 보면서 느꼈던 쟁점이 될만한 지점과 제국대학을 다루는 작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위주로 적어본다,



"그때 그곳에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는 자신 있게 포기했을 거라고 답하진 못하겠다."

-본문 86쪽





책을 읽으며 표시해둔 문장이 몇 군데 있었는데, 가장 먼저 "그때 그곳에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는 자신 있게 포기했을 거라고 답하진 못하겠다."(86쪽)라는 문장이 있다, 굳이 따옴표를 써서 '나'라고 쓴 이유는 짐작컨대 저자 본인을 넘어 독자, 나아가 일반적인 '개인'이라면 역시 그러할 것이라는 심증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나 역시 그 당시 관비 유학으로 제국대학에 진학할 기회가 있었다면, 단호하게 뿌리칠 수 있을 거라 확답하기가 어렵다, 차라리 기꺼이 유학길에 나섰을 것이라는 대답이 솔직할 것이다, 즉, 조선 태생이라는 자연적 한계를 뛰어넘어 식민지 사회의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그 언저리에 단숨에 도약할 수 있는 통로가 있을 때, 여건이 된다면 누구나 여기에 도전할 것이라는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욕망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할 지에 있다, 기존의 시각으로는 저러한 욕망이 민족적 대의를 저버리는 친일적 행위의 동력으로 설명되어 원천적으로 부정되곤 했다, 그에 비해 머리아픈 대의를 잠시 내려두고 자연적인 욕망을 긍정한다면 제국대학 유학을 사회 내의 치열한 경쟁에 참여한 끝에 얻은 성취로 볼 수 있다, 비약을 더하자면 한국인으로서 당시 제국대학 유학생과 현재의 아이비리그 유학생 사이 본질적인 차이가 있겠냐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대립구조, 원초적 욕망- 시대적 대의를 더욱 일반화해보자면 비역사적인 요소와 역사적인 요소의 충돌도 된다, '어차피' 자고로 인간이라면 그렇게 행동하도록 회로화가 되어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대에나 시대정신이 있는데 이를 도외시하면 안된다라는 주장 사이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주지하듯, 한국의 공식적 역사관은 20세기 전반 식민지 시기라는 엄연한 역사적 현실에 기대어 구축해왔는데, 이 책은 이러한 반석에 점점 금이 가고 있는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최근의 식민지 연구에서는 식민주의의 폭력성에 대한 언급을 다소 낡은 진술처럼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식민지를 통제하는 근본적인 힘은 강력한 물리적 폭력이었다."

-본문 185쪽


그렇지만 동시에 이 책은 결코 그러한 시류에 편승하여 인간을 동물에 준하는 유기체로 격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시각을 경계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근의 식민지 연구에서는 식민주의의 폭력성에 대한 언급을 다소 낡은 진술처럼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식민지를 통제하는 근본적인 힘은 강력한 물리적 폭력이었다."(185쪽)이라는 문장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일 운동에 투신했던 제국대학 학생들도 소개한다, 인간이 고통을 회피하고 안락을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숭고한 가치를 위해 헌신할 줄 아는 정신적 존재라면 마땅히 역사적, 시대적 소명에 응답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제국대학이란 당대 최첨단 사상과 지식의 보고이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신념을 키울 수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식민지 사회의 중핵으로 나아가고자 입신양명을 꿈꿨던 솔직한 욕망을 보는 동시에 미래에 보장된 영달을 초개처럼 버리고 자신의 존엄과 신념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을 보며 새삼스럽게 공명할 수 있다, 새삼스러운 만큼 여전히 내게는 후자의 이해 방식이 밋밋하지만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이미 제도권 교육에서 식민지의 첨단에 위태롭게 서 있었던 이들을 충분히 조명해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빈틈은 숭숭 뚫려있고, 더욱 빛나야 할 이들도 너무 많다,






"식민지배의 영향을 무시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퍼즐 조각을 빠뜨리는 것"

- 본문 20쪽



이 책이 기교넘치게 줄타고 있는 광경을 뒤로하고 뒤로하고 제국대학을 다루는 작업에 주목해야 하는 정작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식민지 경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해방 이후에도 한국 사회의 중핵으로 자리매김하며 기득권을 구성해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식민지배의 영향을 무시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퍼즐 조각을 빠뜨리는 것"(20쪽)이다. 그렇게 간편하게 선긋고 싶어도 어차피 기실 불가능하다, 저자 역시 식민지배에 기여했다는 "부정적 요소 때문에 제국대학이라는 지식 제도와 관련된 근대 한국의 경험을 도덕적인 이분법으로 모두 '악'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적출'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 그러한 본질주의야말로 가장 위험한 사고"(296쪽)라며 경계하고 있다, 일본 식민주의의 진정한 '청산'이 요원한 현 상황에서 오점을 깨끗이 지워버리려는 비뚤어진 열정은 오히려 '청산'을 미완으로 남기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진정한 '청산'이라 함은 모름지기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근본'적인 원인을 확인하고 그에 맞게 잘잘못을 가리고 책임을 논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1945년을 경계로 한국에 질적으로 전혀 다른 사회가 들어섰다고 단언하기에는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당시의 흔적들이 너무 많다, 해방 이후 말초 단계에서는 부분적으로 청산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겠으나 청산이 미처 중추, 나아가 두뇌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청산이 이 수준에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식민지에서 두뇌를 자임했던 자들에 대한 분석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들이 자신들을 일반 조선인들과 구분지을 수 있었던 거시적인 세계관, 미시적인 생활감각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그들의 집단적 특성을 바탕으로 한국의 현대를 다시 설명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현재 한국에서 지식과 권력을 생산하고 있는 구조의 원형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분석함으로써 현재 사회 제 분야의 왜곡도를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단초를 어렵지않게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이 책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다소 시론적 성격의 책이다보니 이후의 연구 성과가 더욱 기대된다, 사족을 붙이자면, 최근 급격히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관계의 와중에서 이 책이 소비될 때, 전공자들 간의 대화와 일반 대중 간의 대화 사이 나타나는 온도차랄까,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





by. Operarius Stu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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