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1

관정일본리뷰 - ‘미래지향’의 한일 갈등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구절을 처음 사용한 것은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수상이었다. 1992년 1월 한국을 공식 방문한 미야자와 수상은 “아 시아와 세계 속의 일한관계”라는 제목으로 한국 국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과거 일본의 행위 에 대한 사죄와 반성과 함께 “과거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를 언급하면서 “미래지향적 일 한관계의 심화”를 제안했다. 이를 토대로 해 그 유명한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오 부치 게이조 수상이 발표한 한일공동선언 (한일 파트너십 선언)에서 ‘과거직시’와 ‘미래지 향’이 관계강화의 두 축으로 공식화된 것이다. 한일관계의 과제를 가장 압축적으로 잘 표현 하고 있어 이 구절은 지금도 자주 사용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3.1절 기념 연설에서 현 재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과거직시’와 더불어 ‘미래지향’을 다시금 강조했다. 과거사 의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이와는 별도로 미래를 위해 한일이 협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 는 취지이다. ‘과거직시’와 ‘미래지향’이 한일관계를 풀어가는 키워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의미 에 관해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로, ‘과거직시’와 ‘미래지향’의 관계이다. ‘과거’ 와 ‘미래’는 상반되는 것처럼 이해되기 쉽다. 특히 일본에서는 ‘미래지향’이 과거 문제를 거 론하지 않는 것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미래지향’이란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역사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미래지향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미야자와 수상의 한국 국회 연설에서도, 김대중-오부치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에서도 ‘미래지향’은 ‘과거직시’와 일 체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미래를 향한 협력을 위해서는 과거사의 처리가 ‘조 건’이라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미래’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문제를 직시하게 되는 구도의 산물이라 하겠다. 01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 H. 카의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역사가는 끊 임없이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며, 그같은 대화의 산물이 역사 기록이라는 뜻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가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항상 움직이는 현재라는 점을 이으면, 미래를 향하는 직선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 면 ‘역사란 과거와 움직이는 현재, 즉 미래와의 대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작의 마무리 부분에서, “역사란 과거의 여러 사건들과 연속적으로 (progressively) 나타나는 미래의 목표들(future ends)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 결론 짓 고 있다. 어느 사회나 국가가 어떤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가에 따라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각 이 변화한다는 뜻이다. ‘미래의 목표’가 무엇인가에 따라 과거 역사가 새로이 조명되는 것이 다. 한 국가 내에서 또는 국가 사이에서 역사인식이 쟁점이 되는 것은 미래의 방향성이 어 긋나는 경우가 많다. 평화와 화해를 지향하는 관계이면 이에 합당한 역사 해석이 주류를 이 루겠지만, 대립과 충돌로 향하는 경우에는 서로 이를 정당화하는 역사의 기억이 소환될 것 이다. 한국에서 역사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한 사회적 변화 와 무관하지 않으며,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흐름은 종래와는 다른 ‘미래의 목표들’을 추구하 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과거’와 ‘미래’는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방향성의 표리관계 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미래지향’이 예정조화적으로 협력적인가 하는 점이다. 통상 ‘과거직시’는 대립적 인 반면, ‘미래지향’이라면 한일관계가 긴밀해지고 상호 협력적인 것으로 된다는 이해가 일 반적일 것이다. 실제로 과거사 문제는 양국의 역사인식에 괴리가 깊어 부딪히기 쉬운데 비 해, 당면한 과제들 중에는 이해가 공통되고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 러나 최근 한일관계에서 그동안 공유해 왔던 ‘미래’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한일관계에 대해 대중적인 강연 등을 할 때에는 위안부나 강제징용 같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다. 그러나 관료나 학자, 저널리스트들과의 이야기 를 나눌 경우 화제가 남북관계나 한국의 대중국 정책 등 ‘미래’에 집중되는 경험을 자주 한 다. 동북아 지역정세에서 한국과 한반도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가에 관심이 크 고, 그것이 일본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도 깊어지고 있다. 현재 한일관계가 여러가지로 파열음을 내고 있는 배경에는 과거사 갈등뿐만 아니라, ‘미 래’를 둘러싸고 점차 확대되는 괴리가 보다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미야자와 수상의 연설이나 한일 파트너십 선언에서 ‘미래지향’이 제창된 것은, 미소냉전이 종식된 후 일본이 한국 및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와의 관계를 한층 확대하려는 외교적 방향 성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냉전기에는 한일양국이 ‘반공’이라는 틀 안에서 정책 지향성 을 소극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던 반면, 탈냉전기에 들어 적어도 초기에는 한일 모두 한반도 와 동아시아의 안정과 지역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면서 그야말로 공통의 미래를 지향하 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수상은 한일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킴과 동시에, 아세안+3 (한중일) 회의를 무대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나 한중일 삼국협력을 추진하 는 데도 긴밀히 협력했다. ‘미래지향’은 예정조화적인 수사(修辭)가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는 의지와 행동의 표현이었다. 되돌아보면 한일관계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가 절정이었던 것 같다. 02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발판으로 한일 양국이 급속히 가까워지고, 그 과정에서 월드컵 공동 개최와 ‘겨울연가’의 ‘욘사마’ 붐으로 한일간 교류는 순식간에 일상화되었다. 자주 갔던 대 학 옆 초밥집의 60대 주인장이 이영애 사진집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가르치는 일본 학생들 이 나보다 자주 한국에 다녀오곤 했다. 한일관계는 내버려 두어도 잘 될 것만 같았다. 일본 에서 한일관계를 전공하는 연구자로서 한류 붐에만 너무 기대고 안주한 것은 아닌가 반성 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던 것이 2010년대 들어서면서 상황이 급속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징조는 있었 다.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 등으로 노무현 정부가 2005년 일본에 ‘역사 전’을 선언하고, 이듬 해에는 ‘전후 레짐(체제)의 탈각’과 평화헌법 개정을 내세운 아베 정 권이 탄생했다. 역사수정주의가 일본 정치의 중심을 차지한 것이었다. 너무나 직선적이었 기에 국내외, 특히 미국의 비판에 직면한 아베 정권은 단명으로 끝났다. 그 후 후쿠다, 아 소 수상을 거쳐 자민당이 선거에 패배한 후, 민주당 정권이 등장했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공약으로 내 건 하토야마 유키오 수상이 탄생해 일본이 다시금 아시아 관계를 회복하는 듯 이 보였다. 그러나 경험 부족과 관료의 사보타주, 미국의 견제로 흔들리던 민주당 정권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과 혼란 속에 민심을 잃고 붕괴했다. 2012년 말 다시 정권을 잡은 아베 수상은 2020년 9월 건강을 이유로 퇴진할 때까지 약 7년 8개월(2822일)간 재직해 연속 최장기록을 갱신했고, 제1차 정권과 합한 3188 일은 일본 헌정 사상 최장수 기록이다. 고이즈미 정권 이후 거의 매년마다 수상이 바뀌었 던 상황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장기집권이었다. 길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의 정치와 사회는 물론 외교정책도 크게 변화했다. 한 학자는 이를 ‘아베 유신’(Abe Restoration)이라 표현했다. 집권기간이 길기만 한 것이 아니라, 커다란 역사적 전환의 시 도라는 뜻이다. 여러 변화들이 정착되어 후대에 하나의 새로운 시대구분으로 기록될지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특히 외교정책의 전환은 뚜렷하다. 아베 정권을 포함해 일본의 보수 우경화 정책을 설명할 때 ‘보통국가’라는 개념이 자주 사 용된다. 군사력 보유와 전쟁을 포기한 평화헌법을 바꾸어, 다른 나라들과 같은 보통의 국가 체제를 갖춘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베 정권이 지향한 외교 안보정책을 보면 ‘보통대국’이라 는 용어가 더 적합하지 않나 생각한다. 보통의 다른 국가가 아니라 전통적인 ‘대국’의 역할 을 다시금 지향하는 것이다. 한동안 일본 외교를 ‘미들파워 외교’로 규정하는 논의가 활발했 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런 용어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논의에 불을 지핀 소에야 요시히데 교수의 저작 ‘일본의 미들파워 외교’ (2014)의 수정 증보판이 2017년에 간행되었는데, 타 이틀이 ‘일본의 외교’로 바뀌었다. 저자는 그 이유를 직접적으로 명시하지는 않고, 후기에 ‘미들파워 외교 개념에 많은 오해가 있었다’는 설명을 부연하고 있을 뿐이다. 몇 년 전인가 외무성을 출입하는 베테랑 기자로부터 ‘요새 외무성에서는 미들파워라는 단어는 인기가 없 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최근 일본 외교 관계자들은 ‘주요국’이라는 표 현을 공통적으로 사용한다. 소에야 교수가 명쾌하게 분석하고 있듯이, 요시다 노선으로 시작되는 전후 일본 외교의 주된 흐름은 일종의 ‘미들파워 외교’라 할 수 있다. 국가의 크기만이 기준이 아니라, ‘비대국 외교’ 즉 전통적 대국외교와는 다른 길을 모색하는 정책 지향성을 말한다. 미들파워 외교론 03 이 말하듯이 그 특징은 비군사적 수단, 국제협력과 다자주의 중시 등으로 정리된다. 일본은 GNP 기준으로 1966년에 프랑스, 1967년에 영국을 넘어섰으며, 1968년에 는 서독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2010년까지 그 자리를 지 켰다. 전후 이른 시기부터 일본은 경제력에서는 미들파워가 아니라 ‘대국’이었다. 그 러나 평화헌법 하에서 대외정책 면에서는 전통적인 대국과는 다른 길을 모색해 일정 한 성공을 이루었다. 특히 아시아 태평양 및 동아시아 지역의 다자협력틀을 창설하는데 일본이 큰 기여 를 한 사실은 더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APEC은 미국이 지역 내 리더십을 발휘 하지 못할 때 일본과 호주가 연계해서 실현시킨 지역협력틀이다. 일본은 막후에서 호 주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자신이 전면에 나서면 아시아 국가들이 경계할 우려가 있다면서 호주에 주역을 양보했다고 한다. 호주의 학자 릭스(Alan Rix)는 이 같은 일본 외교를 가리켜 ‘후위에서 주도’(leading from behind)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후나바시 요이치에 따르면, 아세안+3를 활용해서 한중일 정상회의를 하자는 아이디어는 오부치 수상의 브레인 조찬 모임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이 제안 하면 중국이 거부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해 김대중 대통령에게 먼저 타진하고 이를 거 론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무렵까지는 일본이 미들파워 외교를 그것도 겸손하게 실 행할 여유와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특히 제2차 아베 정권 이후 일본 외교는 급속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지역협력틀에 대해서도 소극적 자세로 변하고, ‘동맹’이나 ‘억지 력’, ‘세력균형’같은 전통적 발상이 외교 안전보장 전략의 기반을 이루었다. 아세안 전체에 대한 외교보다는 개별 국가에 대한 양자관계가 중시되고, 무엇보다 미국, 호 주, 인도 등 소위 ‘주요국’들과의 새로운 틀 형성이 외교전략의 축이 되었다. 최근 주 목받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도 아베 2기정권부터 일본이 주도적으로 제창해서 미 국 등을 차례로 끌어들인 것이며, 그 핵심도 소위 ‘대국’인 미일호인 4개국의 협력체 (QUAD)가 차지하고 있다. 종래의 미들파워 외교와는 다른 양상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은 여러 측면에서 설명 가능하겠지만, 2010년의 ‘중일역전’ (중 국이 일본을 제치고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것),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 등으 로 인한 일본의 위기감이 가장 크다. 급부상하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항하기 위해 일 본이 체제 정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베 정권 이래 일본 외 교의 방향성은 ‘신냉전’ 대비 체제라 할 수 있다. 물론 일본이 중국에 대해 적대적인 정책만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미일동맹 강화와 QUAD등으로 발판을 다지면서, 중국 에 대해서는 경제와 안보협의에서 독자적인 양자관계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 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밸런스 외교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을 포함한 한중일 삼국협력에 대한 관심은 거의 사라졌다. 전통적으로 대국외교적 경향 이 강한 중국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인다. ‘보통대국’과 ‘신냉전’ 체제 구축이 아베 정권 이후 일본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지향하 는 ‘미래의 목표들’이라 할 수 있다. 역사수정주의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과거’의 재 해석에 다름 아니다. 반면 한국이 지향해 온 ‘미래’는 보다 대등한 지역질서와 한일관 04 계, 그리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탈냉전’, 나아가 동아시아의 ‘공동체’ 형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미래지향’ 사이의 괴리가 점차 확대되고 있고, 이것이 이제까 지 쌓아온 한일관계의 토대를 흔들면서 그 파열음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 이 현재 상황이라 하겠다. 일본의 ‘보통대국’ 노선은 한일관계도 힘의 크기대로 서열 화해서 재편성하려는 시도로 연결되며, ‘신냉전’과 ‘탈냉전’ 지향의 충돌은 상호 간에 불신과 경계감을 키우고 있다. 문제가 ‘단순히’ 과거사의 처리에 있지 않고, ‘미래’에 대한 비전의 차이에 기인하기 때문에 한일관계를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신냉전’과 ‘탈냉전’의 충돌이라 해도, 격변하는 지정학적 구도 하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절 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한일 양국의 과제는 공통된다. 여러 차이 때문에 그에 이르는 경위와 방법론이 크게 다른 것이 문제일 뿐이다. 한일간의 ‘미래지향’을 수사적으로 외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상호 차이를 인정한 위에 각 기 상대방이 지향하는 ‘미래’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면서, 공유점을 찾으려는 논의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은 중국 문제에 기인하는 ‘신냉전’의 과제를, 일본은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탈냉전’의 필요를 더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종원 와세다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과 교수

관정일본리뷰 -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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