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1

관정일본리뷰 -지방에서 지내며(暮す), 머물고(篭る), 살아가는(生きる) 청년

관정일본리뷰 -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지방에서 지내며(暮す), 머물고(篭る), 살아가는(生きる) 청년

지방에서 지내며(暮す), 머물고(篭る), 살아가는(生きる) 청년
  2014년 5월 일본창성회의(日本創成会議)가 발표한 보고서 「성장을 이어가는 21세기를 위하여: 저출생 극복을 위한 지방 활성화 전략」(成長を続ける21世紀のために: ストップ小子化・地方元気戦略)-『지방소멸』이라는 제목의 신서로 출판됐고 2015년 한국어로도 번역됐다-을 계기로 “지방소멸”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고령자가 마을 인구의 절반 이 상을 차지해 지역 공동체가 지속하기 어려우리라 예상되는 한계집락(限界集落)에 대한 논 의는 이미 1990년대부터 있었지만, 이 보고서가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준 것은 지금처럼 도 쿄권으로 인구가 계속 유입되면 2040년까지 소멸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 869곳의 이름 을 열거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도쿄권으로 유입되는 인구의 상당수는 청년층에 속한다. 우선, 청년은 대학에 진학하는 시점에 대거 대도시로 이주하며, 대도시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얻을수록 거기에 정착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2018년 현재, 대학 입학자 수에서 도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41%-도쿄도(東京都)만 24%-이고, 오사카권과 나고야권이 점하는 비율도 각각 19%와 
8%이다. 전체 대학 입학자 수 중 약 70%가 이른바 3대 대도시권에 집중된 셈이다. 반면, 아오모리현(青森県) 청년의 지역이동을 다룬 『지역청년, 왜 떠나는가』(2014)에 따르면, 아 오모리현 내 대입 정원은 고교 졸업자 수의 1/4에 불과해,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 중 상당수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중산층 이상인 가정의 학생일수록 도 쿄권 대학에 진학하는 경향이 강해, 지역이동에서 계층적 불평등마저 나타나고 있다.
 
01
  교육환경만이 아니라 지방의 고용여건도 청년의 대도시 유출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1980년대 이후 가속화된 국제경쟁으로 인해, 고졸자에게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했던 지방의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며, 지방에서 괜찮은 소득을 올릴 고용기회가 줄어들었다. 대 신 야근을 동반하는 의료・ 복지 분야의 일이나 주말에도 쉴 수 없는 판매 업무 등과 같은 서 비스업으로 취업 분야가 제한됐다. 지방에서도 공무원이나 교사는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인구감소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와 학교 등이 통폐합되면서 이런 공공부문의 일 자리도 줄어들고 있다. 결과적으로, 진학과 취업을 위해 지방에서 대도시로 청년층이 계속 유출되면, “지방소멸”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와는 달리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労働政策研究・研修機構)가 2015년에 발간한 「청년의 지역이동(若者の地域移動)」이라는 보고서는 현재의 20대 (1980년대생)는 앞선 세대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 머물려는 성향(地元志向) 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이런 경향은 출신지가 도시지역인 청년에게서도 나타나지만, 지 방 출신 청년층에게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방 출신 고졸 남성 중 50-60대(1940년 대-1950년대생)의 약 39%, 30-40대(1960년대-1970년대생)의 약 23%가 취업을 위 해 대도시로 이동했다면, 20대는 불과 약 12%만 대도시로 이주했다. 반면, 고졸인 20대 남성의 87% 이상이 줄곧 지방에서 살며 일하고 있다. 지방 출신인 20대 대졸자 남성도 33%가 출신지에서 대학을 나와 취업했고 29%가 타지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고향으로 U 턴했다. 따라서 지방 출신의 대졸 남성도 앞선 세대보다 10%~20% 이상 고향에서 살기 로 선택한 것이다.   최근 들어, 적극적으로 지방살이(地方暮らし)를 선택하는 젊은이 도 늘어나고 있다. 환경친화적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독자를 대 상으로 하는 잡지 『소토코토(ソトコト)』의 편집자인 사시데 카즈마 사(指出一正)는 『우리는 지방에서 행복을 발견한다(ぼくらは地方で幸せを見つける)』(2016)에서 동일본대지진 때 자원봉사활동을 한 것을 계기로 도호쿠(東北) 지방으로 이주한 젊은이, 대도시에서 일하다가 고향에 돌아와 지역 특산품을 소개하는 잡지나 지역주민 이 교류하는 카페를 연 청년, 지방의 한 마을을 거점으로 삼고 전국
『우리는 지방에서 행복을 발견 을 돌아다니며 각종 이벤트를 기획하는 청년단체 등을 소개한다. 한다.(ぼくらは地方で幸せを
見つける)』(2016)
  이를 통해 사시데는 무리해서 경제적 성공이나 사회적 지위 향상 을 추구하기보다는 지방에서 지내면서 행복을 실감할 수 있는 일을 추구하는 젊은이가 늘 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청년이 지방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것이 야말로 지방 재생의 첫걸음이라고 제시한다. 2008년부터 이미 총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상황에서 지방의 인구를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지방살이에서 행복을 찾는 청년을 매개 로 지방과 인연을 맺는 사람, 즉 관계인구(関係人口)를 늘리는 것이 더욱 유효한 지방 재생 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청년이 지방에서 대안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류 학자인 낸시 로젠버거(Nancy Rosenberger)는 고향으로 돌아가 유기농업을 추구하는 한 젊은 여성의 삶을 통해 이를 보여준다. 이 여성은 부모님의 도움으로 토지는 확보했지만, 
 
02
주변 농민에게 유기농업의 가치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 간 의 관계를 중시해 재배한 농산물을 도쿄까지 직접 배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농산물을 문 앞에 놓고 올 뿐 소비자를 만나 친환경 농업의 의미를 이야기할 기회는 좀처럼 없다. 더구 나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그나마 늘어나고 있었던 소비자의 수도 다시 줄어들고 말아, 경 제적으로 자립할 길은 더 멀어졌다. 결국, 이 여성은 각지에서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청년 과 때때로 교류하며 버티고는 있지만, 장소나 토지의 면적이 협소함을 뜻하는 관용구-고양 이의 이마(猫の額)-에 빗대어, “저는 그저 개미의 이마만큼 바꾸고 있을 뿐이죠.(I’m just making an ant’s forehead of difference)”라고 자조한다. 
  한편 지방살이의 행복을 이야기하지만, 대안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지방에서 지내는 젊은이와는 다른 유형의 청년도 있다. 사회학자 아베 마사히로(阿部真大)는 『지방에 머무는 청년들: 도시 와 시골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회(地方にこもる若者たち: 都会と田舎の間に出現した新しい社会)』(2013)에서 지방도시를 “그 럭저럭 괜찮은 천국(ほどほどパラダイス)”이라고 여기는 젊은이 들의 생활세계를 묘사한다. 그에 따르면, 오카야마현(岡山県) 오카 야마시와 같은 지방 중소도시에 머무는 젊은이는 과거처럼 도쿄에
서의 생활을 동경하지 않는다. 혼잡하고 생활비만 많이 들며 아는 『지방에 머무는 청년들: 도시와 사람도 없는 도쿄에 굳이 나가지 않더라도, 태어나고 자란 곳(地元) 회(地方にこもる若者たち: 都 시골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 会と田舎の間に出現した新し
에서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럭저럭 괜찮은 소비 및 여 い社会)』(2013) 가생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교외와 지방도시에 생겨난 대형쇼핑몰-대표적인 예로 이온몰-덕분에, “지 방에 머무는 청년”은 전혀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주말마다 자가용을 타고 가족이 나 친구들과 함께 대형쇼핑몰로 나가서 여가를 즐긴다. 최신 유행의 혹은 최고급의 패션은 
아니더라도, 이곳에 입점한 각종 스파(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브랜
드 매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품질의 옷을 구매하면 충분하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 그리고 영화관이나 볼링장 같은 여가시설이 대형쇼핑몰에 모여 있어서, 어 릴 적부터 어울려온 동네 친구들과 주말을 즐겁게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방에 머무는 청년”에게 대형쇼핑몰은 말 그대로 “그럭저럭 괜찮은 천국”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청년의 지방살이도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방도시에서 구할 수 있는 일 자리가 제한적이어서, 다수의 젊은이는 요식업, 소매업, 복지 분야 등의 서비스 업종에 종 사한다. 지역주민을 직접 상대하는 일이라 보람을 느낄 수는 있지만, 대체로 연간 소득이 200만 엔에서 250만 엔에 불과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지방도시 에서의 생활이 그럭저럭 괜찮다고 여기는 이유는 결혼 후에도 부모님과 동거하거나 부모 님 댁 근처에 살면서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에 머무는 청년”이 교우 관계만이 아니라 가족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은 순수한 가족애에서 비롯된 것 이라기보다 생활상의 불가피함 때문일 수 있다. 또한, 가족이 사회적 안전판이라는 점에서, “지방에 머무는 청년”의 삶은 여전히 전후 일본사회가 구축한 사적인 생활보장 시스템에 의 존하고 있는 셈이다. 
 
03
  “지방에 머무는 청년”이 고향의 친구와 가족에 의존하며 고향을 등지지 않으려는 심 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현재 일본의 젊은이는 태어나서부터 경제가 불황이 거나 저성장인 상태밖에 경험하지 못했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2014) 에서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古市憲壽)가 지적한 것처럼, 미래가 지금보다 크 게 나아지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면,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보다 현재에 만족하고 주 변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자기충족적(consummatory) 태도를 나타내는 것은 일면 타당하다. 따라서 현대 일본의 젊은이에게 가족은 물론이고 같은 초등・중학교를 졸업한 동급생끼리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어울릴 수 있는 지역 공동체(地元)는 쉽게 떠날 수 없는 생활의 기반이다. 
  그러나 이 공동체는 지방청년이 살아가는 데 필수 불가결한 토대가 되기도 하지만, 이들이 특정 계층에서 벗어나지 못하 게 하는 사슬이 되기도 한다. 젊은이는 지방에서 단순히 머무 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生きる) 존재이다. 키시 마사히코, 우치코시 마사유키, 우에하라 켄타로, 우에마 요코(岸政彦・打越正行・上原健太郎・上間陽子)가 공동으로 집필한 『지 역 공동체를 살아간다: 오키나와적 공동성의 사회학(地元を生きる: 沖縄的共同性の社会学)』(2020)에는 공동체가 미치
는 영향이 계층에 따라 달라지는 양상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지역 공동체를 살아간다: 오키 있다. 자영업자 가정 출신의 젊은이들은 주점(酒店)을 열고 を生きるー沖縄的共同性の社나와적 공동성의 사회학(地元
会学)』(2020) 운영할 때 지연, 학연, 혈연 등을 최대한 활용한다. 이로써 아 주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지역사회에서 그럭저럭 살만한 사회경제적 기반을 닦아 나 간다. 반면, 저소득 가정 출신으로 중학교만 겨우 졸업하거나 고등학교를 중퇴한 청 년들은 동네 선후배 모임을 통해 건설현장에서 일할 기회를 얻지만, 열악한 노동환경 과 그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폭력, 그리고 일을 끝마친 후에도 지속하는 위계적 관계에 힘겨워한다. 지방에서 살 수밖에 없는 비(非)엘리트 젊은이에게 지역 공동체 는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장소(居場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자유와 삶의 경로를 제한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방에 계속 남아서 생활하거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지향성을 가진 일본 청년의 모습에는 명암이 존재한다. 청년세대가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보다 성숙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가치를 추구하며 사회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반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 계속 머물려는 청년의 모습에는 고향에 대한 애 정보다는 희망의 부재(不在)와 불안감이 아른거린다. 그럭저럭 행복한 지방살이의 근거인 대형쇼핑몰은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띠고 있어 지역의 고유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지방도시에서의 편리한 소비・여가생활은 청년 본인의 불안정한 노동과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의 지원으로 근근이 유지될 뿐이다. 심지어 지방살이의 장점 중 하나로 간주하는 끈끈한 네트워크는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청년의 삶의 범위와 가능 성을 제한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일본의 젊은이들이 드러내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04
 
곳에 대한 지향(地元志向)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
  그렇다고 지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동하는 것을 주저하는 일본의 지방 청년들을 패기가 없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이들이 현재지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결국 저 성장 사회로 변한 일본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기 어려운 시대에 나름 적응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지방의 열악한 고용 현실을 고 려할 때 지방 청년들을 독려해 고도경제 성장기의 젊은이들처럼 대도시로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는, 지방의 거점도시에 많은 기능을 집중시켜 생활 의 편의성을 향상하는 한편 행정의 효율성을 증대해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러기 에 앞서 지방 어디-중소도시 혹은 농산촌(農山村)-에 살든 청년 개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원하는 방식으로 추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은 사회의 의무가 아닐까? 인류학자 김현경이 『장소, 사람, 환대』(2015)에서 지적했듯이, 우리가 적어 도 근대를 산다고 말할 수 있으면 “개인에게 자리/장소를 마련해 주고 그의 영토에 울 타리를 둘러 주는 것이 바로 공동체의 역할인 까닭이다.” 
 
박지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