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현안에서 역사문제를 분리해야
한일관계 현안에서 역사문제를 분리해야
2021년 1월이 열리자마자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중요한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에게 1인당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징용 판결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을 판결한 것이다. 누구나 예상했듯이 일본 정부는 즉각 반발하였다. 주일 한국대사를 소환했고, 한국 법원의 판결에 대해 ‘국제법상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한국 측의 재판권에 복종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며 징용 배상 판결 때와 마찬가지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 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모든 언론은 이번 판결로 인해 한일관계가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로 인해 한국 정 부가 더 어려운 입장에 처할 것이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로서는 법원의 판결에 개입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 3권분립 원칙에 의해 행정부가 사법부에 개입할 수 없으며, 이러한 개입을 시도했던 박근혜 정부 시기의 문제에 대해 사법농단 사건이라는 이 름 하에 재판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일본 정부 역시 이러한 상황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미 국무성은 현재 한일관계의 복잡한 상황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는 입장을 발표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거사의 법적 책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 하여 모든 문제를 다 묻고 가야 하는가? 아니면 한일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가도록 그대 로 두고 보아야 하는가? 솔직히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뚜렷한 대 안을 제시할 자신은 없다. 무엇보다도 한국과 일본 정부뿐만 아니라 양국 사회의 과거사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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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에 대한 인식 사이에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책임 문제의 핵심은 배상이 아니라 공감대가 더 중요한 것이기에 현재의 상황을 즉각 해결하기는 더 힘 든 상황이다.
유일하게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방안은 서로가 솔직해지는 방법이다. 이는 한일 간의 협상과 합의 과정에서 나타났던 문제에서 잘 드러난다. 1965년 한일협정을 조인할 때 한 국과 일본 정부는 과거사와 관련하여 꼼수를 썼다. 1945년 이전 한국과 일본 사이에 맺어 진 협정이 무효가 된 시점에 대해서 서로 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국 정부는 1905년과 1910년의 협정이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입장이었다. 일본 정부는 두 협정은 그 자체로서는 무효가 아니지만, 일본이 제2 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시점, 또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협정이 맺어진 시점에서 무효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양국 정부는 1945년 이전의 협정은 ‘이미 무효’라고 기입하였다. 양국 정부는 각각 의 입법부에 가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대로 무효의 시점을 설명했다. 사실 1945년 이전에 맺어진 협정의 무효 시점은 식민지 시기에 대한 배상이 유효할 수 있는가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협정을 맺기 위하여 양국 정부가 선택한 무리수 였다. 물론 그 배후에는 빠른 한일협정을 통해서 동북아시아에서 한미일 삼각 안보동맹을 만들고, 한국에 대한 원조 부담을 일본에게 전가하고자 한 미국의 정책이 중요하게 작동하 고 있었다. 양국 정부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솔직했어야 했다. 한일협정에 한 항목만 넣으면 되었다. “1965년 협정을 맺으면서 1945년 이전 양국 간에 맺어진 협정은 무효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부터 무효인가에 대해서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양국 정 부는 협정을 맺은 이후에도 이 문제에 대해 양국 간의 합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연구와 시 민 사회의 교류가 계속되도록 적극 지원하기로 약속한다.” 만에 하나 1965년에 과거 한일 간의 협정에 대한 양국 정부 간의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양국 사회가 의견의 일치 를 이루지 못한다면, 이러한 합의는 아무런 소용이 없기에 더더욱 솔직한 조항이 필요했다. 2015년의 위안부 합의 역시 마찬가지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큰 의 견차가 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일부 시민 사회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한국 사 회와 의견을 같이 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관권이나 군부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일관된 입장을 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관련 문서를 공개하면서 도 자신들의 입장에 부합하는 문서들만을 내놓았다. 위안부 관련하여 일본 정부가 공개한 문서들만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주장에 맞는 문서들만 공개한 것인지는 어느 누 구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양국 정부의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양국 정부가 한 합의는 어 떤 의미를 갖는가? 이는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무엇인가와 깊이 관련 된다. 즉, 돈으로 배상하는 문제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과를 통해 앞으로 이러한 문제들이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갖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다 면, 위안부 합의는 양국 정부, 그리고 양국 사회에서 과거 위안부 문제의 실제, 그리고 앞으 로 양국 사회가 인식해야 할 그 교훈에 대한 공감대에서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2015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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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의 시점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어떠한 공감대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울러 1965년 협정과 마찬가지로 2015년의 합의 뒤에는 미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존재하고 있었 다는 점은 누구나 다 추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일 간의 위안부 합의 직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국 승전기념일 참석, 예정에 없던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그리고 사드의 한국 배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안부 합의에도 한 구절만 들어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고령임을 감안하여 양국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배상을 위하여 기금을 만든다. 단, 이 문제에 대한 양국 정부 및 사회의 공감대 형성이 미흡한 상황이기 때문에 기금의 일부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연구 및 공감대 형성을 위한 시민사회 교류에 사용한다.” 그렇다면 왜 양국 정부는 1965년에도, 그리고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15년에도 이렇게 솔직한 내용 을 삽입하지 못했을까?
양국 정부 모두 이러한 합의 방식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양국의 역사를 보면 내부에서 민 주주의 절차를 갖추고 있더라도 국가 정책에 대해서는 투명성을 갖추지 못했던 역사를 여 실히 볼 수 있다. 양국 정부는 국가의 정책 수립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을 뿐만 아니 라 기간의 정책 결정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정부 문서의 공개에 대해서도 매우 인색하다. 1965년의 한일협정만 하더라도 한국 정부는 40년이 되는 2005년 한일협정과 관련된 모 든 문서를 공개했지만, 일본 정부는 모든 문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2015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 양국 정부는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합의를 위한 협의를 진행하였지만, 합의문의 내용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제대로 공개 하지 않았다. 합의문에 있는 ‘불가역적’이라는 표현과 관련해서도 왜 이런 표현이 들어갔는 지, 누가 그러한 표현을 삽입하자고 했는지 역시 불확실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 와 이 문제에 대해 명확히 하고자 했지만, 제대로 된 사실을 해명하지 못했다. 이는 김대중 정부 이후 강화된 정부 기록의 생성 및 보관에 대한 정책이 박근혜 정부에 들어와서 약화된 것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과정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으면, 이후에 책임을 지지 않 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처럼 이웃 국가끼리는 서로 간에 이해관계의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 까? 가까이 있는 나라를 공격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충돌 때문에 가까이 있는 나 라끼리 친해지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나라와의 관계는 경 제적 번영과 국가안보에서 매우 중요하다. 제일 좋은 것은 원교근교(遠交近交)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가 솔직해야 한다. 인간관계와 국가관계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로 가 솔직하지 않고, 꼼수를 쓰다가 그 이후에 해결할 수 없는 부작용을 갖고 오게 되는 것이 다. 한국과 일본처럼 불행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양국 정부의 솔직한 입 장이 중요하고, 협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1964년 김-오히라 메모가 공개되면서 6.3 사태가 발생했던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과거 문제에 대한 솔직한 입장 표명을 통해 역사 문제를 한일 간의 현안과 분리해야 한다. 특히 과거사 문제에 대해 서로 간의 공감대가 없다는 솔직한 입장 표명 없이 계속해서 꼼수 로 해결된 것처럼 한다면, 한일 간의 역사문제는 계속해서 양국 간 현안의 발목을 잡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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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역사 문제의 최종 해결이 양국 사회의 공감대 형성에 있다면, 이는 하루 이틀 사이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양국 정부는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현안 문제도 풀릴 것이다.
아울러 한일관계에 미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 은 각각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유사동맹 국가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유연하게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한일관계를 잘 풀어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솔직한 입장 표명과 투명성을 통해 한일관계가 풀어져 나간다면, 한미일 관계 역시 잘 풀려나갈 것이다.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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