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17

실향민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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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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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유래2.2. 현황2.3. 역사2.4. 주요 정착 지역2.5. 실향민들의 성씨
3. 국내 실향민 및 2세 실존인물4. 타 국가의 실향민5. 외국의 실향민 실존인물
5.1. 중화권5.2. 일본5.3. 프랑스5.4. 영국5.5. 독일5.6. 네덜란드5.7. 루마니아5.8. 구 유고슬라비아5.9. 이탈리아5.10. 핀란드5.11. 폴란드5.12. 헝가리5.13. 그리스5.14. 터키5.15. 에티오피아
6. 관련 항목7. 실향민 캐릭터
7.1. 가상 세계관의 실향민 캐릭터

1. 개요[편집]

실향민( / refugee)은 고향을 잃은 사람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실향민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에서는 주로 6.25 전쟁 전과 중에 월남한 이북 출신들을 지칭하는 말[1]이며, 그 외에도  건설로 고향 지역이 물에 잠기거나[2] 이런저런 시설물[3]을 짓거나 문화재를 복원[4]하는 과정에서 고향이 철거돼버린 사람도 실향민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이사나 이민 또는 국적 변경을 해서 언제든 다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 경우 실향민이 아니다. 물론 도중에 전쟁이나 재난으로 고향으로 절대 돌아가지 못하거나 정치적인 문제로 모국으로부터 영구적으로 입국금지를 당하면 실향민이 되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많은 이북 출신 실향민들은 한국전쟁 이후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었다. 이 문서에서는 주로 이북 출신 실향민들에 대해 다룬다.

2. 상세[편집]

2.1. 유래[편집]

6.25 전쟁 이후에 현재까지 산발적으로 북한에서 탈출한 북한이탈주민들도 고향을 떠나 다시 가지 못하는 신세라는 점에서는 위에서 정의한 실향민과 동일하다. 이들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성향에 통일을 바라는 비중이 일반 한국인보다 많은 경향이 있다. 보수적인 북한이탈주민이 매체를 많이 타나 잘 찾아보면 민주당 지지 성향의 북한이탈주민이나 햇볕정책의 영향을 북한에서 좋게 여겼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반공학생운동기념사업회에서 1986년에 출간한 '한국 학생건국 운동사'에 의하면 월남한 청년들은 백색테러단에 많이 참가하여 테러단의 지원과 지시로 북한 지역에 원정테러를 많이 하러 갔다고 한다. 이들이 이 단체에 많이 참가한 이유는 자신들의 고향을 뺏어간 조선노동당에 대한 분노와 테러단 지도부의 교육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기회가 되면 고향에 한 번 다녀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실향민이라는 단어가 한반도에서 사용된 것은 1945년 남북분단 이후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제가 조선 양민들의 토지와 가옥 등을 모두 친일반민족행위자 및 매국노 성향의 조선인 대지주들과 일본인들에게 넘겨버렸거나 조선총독부가 총독령 명의로 소유화하는 바람에 졸지에 고향을 잃고 만주나 중국 등으로 월경하여 피난을 떠나거나 떠돌이 신세를 졌던 것을 계기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해방 후인 1945년 남북분단이 되고 1950년 6.25 전쟁 통에 자의든 타의든 남한으로 넘어오게 된 북한 출신의 사람들이 밀집하게 되고 1953년 휴전 성립이 되어서 더 이상 이북에 있는 고향에 갈 수 없게 되면서, 이 때부터 실향민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실향민은 '북한 지역에 본적지를 두고 있으나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2.2. 현황[편집]

실향민의 출신을 살펴보면, 황해도 출신이 35%로 가장 많고, 함경북도 출신이 가장 적어 남쪽과의 거리와 반비례함을 알 수 있다. 다만 이산가족의 경우 평안북도평안남도함경북도함경남도 출신이 비교적 많다.[5]

황해도미수복 경기도미수복 강원도 출신 실향민들은 남한과 가까워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평안북도평안남도함경북도함경남도 출신 주민들은 혼자 월남하거나 가족들 중 일부만 월남한 사람들이 많았다.

또, 실향민 2세를 대상으로 자신의 고향을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느냐는 설문에 응답자의 46%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말한 뒤 이북계라고 말한다.'라고 응답하였고, 응답자의 42%가 '아버지의 고향은 곧 나의 고향이므로 바로 북한의 지명을 말한다.'라고 응답하여 실향민 2세들의 계승의식이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만, 3세로 가면 전자는 몰라도 후자의 비율이 급감하는데, 10대~30대에 해당하는 3세들은 바로 북한 지역의 지명을 말했다간 북한이탈주민으로 오해받기 쉬운지라 조부모의 고향에 대한 강력한 프라이드가 없으면 그냥 남한의 출생지를 말한다. 본적지를 언급하는 사람이 아예 없진 않지만, 2세들에 비해 찾기가 힘들다.[6]

사실 실향민이라고 하면 대놓고 오해를 받을 수 있지만 오히려 가족과 이별하고 고향을 떠나게 만든 김일성 일가북한 정권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감이 남한 본토 출신 사람들보다 많거나 더 심한 경우가 많다. 실향민이 엄청나게 많은 관계로 실향민이면서 정부요직을 맡은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다.

당장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부터가 황해도 출신이다. 게다가 김구도 황해도 출신이다. 초장기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한 김형욱도 실향민 출신이며 6.25 전쟁 초기에 을 지휘한 채병덕, 초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6.25 전쟁 참전용사이자 최재형 감사원장의 부친인 최영섭베트남 전쟁 당시 당시 파월 국군 사령관을 역임했던 채명신 역시 실향민 출신이다. 6.25 전쟁 이후부터 국민의 정부까지 실향민 중 정부 요직에 오른 사람이 많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제24대 국정원장 임동원 등이 있다. 현역으로 정치활동을 하는 인사로는 김진표[7]김동길김형석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수가 꽤 많은 관계로 한국 사회에 영향을 끼치거나 지금도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다. 경제적으로도 북한의 박해를 피해 상업을 영위하고자 한 사람들이 있어 현대그룹 초대 회장 정주영이나 기타 현재까지 내려오는 식품이나 유통 관련 기업을 창업한 실향민도 있다. 그리고 일부 기업가들은 개성 상인의 후손인 사례도 있다.[8]

대한민국의 개신교 주요 인사들도 실향민 비중이 높고, 문화예술계의 인사도 있으며, 연예계에는 송해이순재현미윤여정전원주이상벽 등[9]이 지금도 유명하며, 교육 쪽으로는 경희대 설립자[10]나 숭실대 초대 총장 등 숭실대와 관련된 인사들, 성문종합영어 저자인 송성문경북대학교 총장이었던 고병간계철순장영희 교수[11]의 부친인 장왕록 박사, 소설가인 황순원박완서 등의 인사가 있다. 스포츠계에도 야구 지도자로 유명한 김응용, 마라토너 손기정 등이 있다.

사실 젊은 세대들이 고향을 남한 쪽의 고향으로 말하는게 당연하다. 일단 실향민 3세대가 되면 조부모 양쪽이 다 실향민일 가능성도 별로 없고 이미 그 실향민이었다는 조부모들도 남한에서 더 오래 살았을 마당에 자신의 조부모가 6.25 전쟁 때 피난민이었다는 정도만 인식할 뿐이다. 물론 통일에 관심이 있거나 북한이탈주민들과 가까운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이북5도위원회와 통일부가 실향민들과 그 후손들, 북한이탈주민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관리한다.

실향민의 출생연도가 20세기 초반이기에 지금은 돌아가셨거나 나이가 매우 고령이신 분들이 많다. 그래서 2010년대까지 대한민국 정부 측에서 북한과의 협상에서 중요하게 다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인데 이는 우리 쪽에 있는 실향민들의 나이가 매우 고령이고, 이들의 죽음은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남북한 간의 연결 매개체를 아예 단절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항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 문서를 참고.

실향민 중 전쟁 이전에 월남한 사람들은 주로 도시 지역에 정착했고, 전쟁 이후에 월남한 사람들은 군 지역에도 많이 정착했다는 통계가 있다. 전쟁 이전 월남자는 약 80만 명으로 추산되며, 전쟁 기간 월남자는 약 6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12]

실향민 비율이 가장 높은 성씨는 (桂)씨와 (弓)씨이다.

2.3. 역사[편집]

전쟁 이전에 월남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서울경기도 지역에 정착하였다. 1949년 인구 센서스 기준 월남자의 46.1%가 서울, 15.2%가 경기도, 10.5%가 강원도에 정착하였다. 한국 전쟁 당시 서울특별시 피난민 조사에 따르면 전쟁 이전 서울에 정착한 월남자 인구는 약 40만 명 규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중 대부분은 사대문안과 용산구 해방촌 일대, 부암동 등지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전쟁 기간 실향민들은 1.4 후퇴 때 가장 많이 남한으로 넘어왔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지금의 부산과 경상남도에까지 피난하였고, 상당수가 부산에 정착하였다. 구한말 개항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부산은 경상도 제1의 도시가 된 것을 넘어 기존의 한반도 제2의 도시였던 평양과 엎치락뒤치락 하는 수준까지 성장하였다. 이어서 부산은 6.25 전쟁으로 인해 피난민들이 몰린 것을 계기로 더욱 크게 성장하여 3위와 차이가 큰 대한민국 제2의 도시가 되었다.

현대 부산에서 가장 대중적인 향토음식이 된 돼지국밥과 밀면이 둘 다 실향민이 가져온 북부 지방 요리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음식이 대표적인 흔적이다.[13] 다양한 지방 출신의 실향민들이 부산과 경상남도 일대에 정착하였지만, 흥남 철수작전을 비롯해 동해안에서 해로를 통해 이루어진 피난민 소개 작전의 영향으로 함경북도함경남도와 강원도 출신 사람들의 비중이 높았다고 한다.

전쟁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이르자 멀리 부산까지 피난한 이들은 다시 중부지방으로 북상하였다. 고향과 가까운 곳에 거주함으로써 전쟁이 끝나면 가능한 빨리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의지였다. 이들 중 많은 수가 서울에 정착하였는데, 전쟁 기간 월남한 사람들은 전쟁 이전 월남자들과 달리 주로 성저십리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1960년 인구통계에 따르면 234만 서울시민 중 27만 명이 이북 출신이었으니, 전후 서울에 정착한 실향민이 매우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14] 그 영향으로 1950~60년대 서울에서 출생한 인구 중에는 실향민의 후손이 굉장히 많다.

2.4. 주요 정착 지역[편집]

경기도에 정착한 이들은 파주시김포시[15] 등 접경지역이나 의정부시[16] 등 북부지역, 수원시[17]와 같은 주요 도시에 정착하였다. 인천에도 적지 않은 수의 실향민들이 피란 및 정착하였다.

부산이 북한의 다양한 지방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많았다면, 인천은 특이하게 황해도미수복 경기도 출신의 실향민들이 유독 많이 내려왔는데 이는 두 지역이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화도와 교동도[18]는 개성시 및 황해도 연안군과 매우 근접하며, 육안으로도 상대방이 매우 잘 보이는 지형이다.

전반적으로 실향민은 경기도경상도와 강원도충청북도에 많이 정착을 한 반면 전라도와 충청남도에서는 소수, 제주도에서는 극소수이다. 물론 경상도에서도 부산울산창원거제김해양산 등 동남부 해안지역에 많이 분포하고 있고, 전라도에서도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이 많이 거주한다.[19]

한반도 실향민의 대표적 마을이나 지역으로는 주로 최북단 지역 등에 집중되어 있으며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에 함경도 출신 실향민 집단촌인 아바이마을[20]이 있다. 그리고 속초 외에도 강릉이나 춘천 등에도 많이 거주한다.

정감록의 영향을 받아 실향민이 정착한 곳도 있다고 한다. 영주시 풍기읍공주시 유구읍이 거론된다.

그 외에도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경남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데, 부산이나 창원 등지에는 '해방촌'이라는 이름이 붙은 동네가 한두 군데씩 꼭 있으며 이북식 정통 냉면을 하는 가게도 도시마다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특히 부산의 원도심인 중구영도구동구서구 등 항만 지역에 많이 있다.

경기 지방의 경우, 서울특별시 용산구 해방촌이나 중구 장충동, 소공동 등지에 실향민이 많이 거주했었고, 여전히 해당 지역에는 이북식 음식점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인천 중구동구미추홀구와 같은 원도심이나 강화군옹진군경기도 북부 지역에도 실향민들이 많이 거주한다.

특히 인천의 경우, 1953년 4월 인구조사에 따르면 총 인구 27만 8천 명 중 28%에 해당하는 7만 8천 명이 이북 출신이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서울에는 평안북도평안남도함경북도함경남도경기도 출신 주민의 비율이 높고, 경인 지역[21]에는 황해도경기도 출신 주민의 비율이 높다고 한다.

실향민의 숫자는 1985년에 5백만명으로 집계됐으며, 2~3세까지 합하면 8백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5백만명이 부풀려진 수치이며[22] 140만 명에 그친다는 의견이 있다. 당시 이북 지역의 인구와 전쟁 기간 북한의 인구 손실을 감안하면 실향민 인구는 140만 명으로 추정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실향민과 비실향민과의 혼인도 늘었고 정체성 파악이 쉽지 않아 정확한 자료가 도출되기 어렵다. # #

2.5. 실향민들의 성씨[편집]

간씨강씨(康), 계씨궁씨길씨독고씨동씨동방씨명씨선우씨승씨탁씨태씨현씨 등은 실향민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 성씨가 북한 지역에 더 많이 살기 때문이다.[23]

김씨이씨박씨 등 주요 성씨 중에서도 본관에 따라 실향민 출신일 가능성이 높은 경우도 있기는 하다. 대표적인 경우가 해풍 김씨이다.

3. 국내 실향민 및 2세 실존인물[편집]

실향민/대한민국실향민/북한 문서로.

실향민에 대해 알고 싶으면 5도민신문을 참조.

4. 타 국가의 실향민[편집]

20세기는 실향의 시대라 할 만큼 실향민들이 많이 발생했으며, 아래의 사례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오늘날 중국 동북 3성(만주)의 만주족들은 넓게 보면 실향민의 후손들이라고 볼 수 있다. 만주 자체가 만주족의 고향인 지역이지만 청나라의 중원 입관 이래로 만주족 대부분이 중원이나 남방으로 이주하여 오랫동안 중원이나 남방에서 살아가면서 청나라 말기에는 사실상 중원이나 남방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여기다가,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만주족이 학살당하는 바람에 혁명군을 피해 조상의 고향인 만주로 도망쳤기 때문이다. 당시 조상 대대로 만주에서 살고 있었던 만주족은 만주에 잔류한 만주족 하층민 및 청나라의 북동쪽 변방을 지키던 팔기군 소속 만주족이었는데 이들은 당시의 만주족 중에서는 그야말로 일부에 불과했다. 비록 지금은 만주, 중원, 남방이 다시 한 나라가 되었지만 이마저도 청나라의 피지배민족이었던 한족의 주도로 이루어진 통일인지라, 중원이나 남방에서 만주로 도망친 만주족은 단순한 실향민을 넘어 아예 나라 없는 민족이 되어버렸다. 현대 만주족은 중국 북부 지역에 비해 만주족 문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중국 남부 지역에 남아있는 청나라 만주족의 유산(팔기군 군영 유적, 청나라의 중국 남부 정복 후에 세워진 티베트 불교[24] 사원 등)을 보존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

독일베트남예멘의 경우 분단을 청산하고 통일이 완수되면서 자국 영토 내에서는 실향민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동독과 남예멘의 공산주의자들 및 남베트남의 반공주의자들은 통일 이후에도 각각 공산주의 성향과 반공주의 성향을 못 버린 경우 아예 각각 구 공산권과 서방 국가로 망명하여 실향민이 되기도 했다. 특히 예멘의 경우 공산주의와 반공주의를 떠나 통일국가 예멘의 혼란 자체를 피해 외국으로 망명하여 실향민이 된 이들도 많다.

그리고 독일의 경우 동서독 분단으로 인한 실향민보다는 제1차 세계 대전 및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토 상실로 인해 독일 본국으로 추방당한 실향민들이 훨씬 많았는데, 알자스-로렌동프로이센슐레지엔포메른 등 구 독일 영토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폴란드와 프랑스, 소련의 영토로 넘어가면서 연합국이 독일계 거주민들을 대부분을 추방했기 때문이다.[25]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 지역에서 추방당한 독일인 주민들의 수만 해도 800만 명이며, 중동부 유럽 일대에서 추방당한 독일인까지 합하면 최대 1,500만 명에 달한다.[26] 이들의 후손들은 동구권 내 독일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폴란드에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에게 넘어간 커즌 라인 이동의 구 동방 영토 출신 실향민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대부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로 넘어온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의 독일 측 구 동방 영토에 정착한 경우가 많다. 그 외에 폴란드의 제2차 세계 대전을 피해 망명한 폴란드인의 후손들과 동유럽의 공산화 자체를 피해 서방 국가로 망명한 폴란드인의 후손들도 실향민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폴란드 민주화 이후에 폴란드로 돌아가 실향민 신세에서 벗어난 경우도 있지만 폴란드가 민주화된 이후에도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을 겪는 모습에 실망하여 귀국을 포기하고 미국이나 캐나다 등 서방 국가의 국적을 받고 서방 국가들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다.

루마니아에서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과 불가리아에 할양당한 베사라비아[27]와 북부코비나[28], 남도브루자[29] 등의 과거 루마니아 왕국 시절 구 루마니아령 지역에서 태어난 루마니아인 실향민과 그 후손들이 존재한다.

세르비아 역시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크로아티아[30]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31] 에서 크로아티아군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군에게 쫓겨나와 세르비아 본국과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인 자치지역인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피난을 간 크로아티아/보스니아 출신의 세르비아계 실향민과 그 후손들이 있다.[32] 그러나 다만 이들은 유고 내전 당시에도 보스니아계 무슬림 집단들에 대한 인종청소 등 학살을 자행하던 이력이 있었기에 본가인 세르비아의 일부 극우파들을 제외하면 국제적으로도 큰 동정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들은 유고 전쟁 발발 후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서 전쟁을 피해서 세르비아 본국에서 와서도 세르비아 본토의 세르비아 사람들로부터 외국인 취급을 당하고 현지 기업이나 공장에서도 취업조차 거절당하는 등 엄청난 문전박대와 차별을 받아 현지에서도 적지 않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물론 유고연방이 전쟁으로 해체되고, 이후 정세가 다소 안정되면서 세르비아 또는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도피했던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사람들 중 일부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전쟁과 학살의 트라우마로 인해 원래 고향으로 되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세르비아 국적을 받고, 세르비아에서 살거나 아예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자치 지역인 보스니아 북동부의 스릅스카 공화국에 정착해서 사는 경우도 있었다.[33] 다만 전쟁 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은 세 민족이 잡거하던 지역이었기에 현재의 스릅스카 공화국 지역에서 살다가 쫓겨나온 크로아티아인, 보슈냐크인도 많다.[34]

제1차 중동 전쟁을 거치며 발생한 팔레스타인의 실향민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며, 시리아요르단레바논 등 이웃 국가들에서도 팔레스타인인 난민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요르단의 경우에는 팔레스타인 실향민이 토착 요르단 아랍인보다 오히려 더 많을 지경이다.

더군다나 팔레스타인 실향민들은 아랍인 정체성보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토착 이스라엘인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이 강해서 스스로를 토착 요르단 아랍인과 구별하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양쪽 민족이 서로 간에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35]

그러나 시리아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경우 2011년 시리아에서 시리아 내전이 터지면서 이들도 시리아 정부군과 시리아 반군, IS와의 싸움에서 교전, 폭격으로 죽거나, 전쟁을 피해 자국을 탈출하려는 시리아인 난민들의 틈새에 끼어서 터키나 요르단, 이라크, 레바논 같은 시리아 주변국들로 피난가는 등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발생한 시리아 난민들 못지않게 커다란 타격을 입고 있다.[36]

그리스와 터키의 경우에도 1923년 인구 교환으로 막대한 실향민이 존재한다. 특히 터키에서 그리스로 교환되어 온 그리스계들은 자신들이 살던 지역 이름을 따서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아테네 인근의 네아(새로운)스미르니 같은 경우. 테살로니키의 축구팀인 PAOK FC도 정식 명칭에 콘스탄티노플이 들어가는데, 원래 뿌리가 이스탄불의 그리스인 축구팀이기 때문이다.

키프로스는 터키계의 북부와 그리스계의 남부가 분단 상태를 유지하는 곳인지라 섬 내부에도 그리스계와 터키계 주민 간 실향민들이 존재한다. 터키군의 침공으로 분단되기 전 원래는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북부와 남부 등 섬 여러 곳에서 잡거하고 있었는데 전쟁으로 분단이 되면서 북부 지역에서 살던 그리스계 주민들이 터키군과 터키계 키프로스인 민병대들에 의해 대거 남쪽으로 추방당하고, 섬 남부 지역에서 살던 터키계 주민들이 그리스계에 의해 추방당하면서 북부와 남부 간 인종 비율이 바뀌었다.

대만에서는 실향민들을 외성인이라고 한다. 중국 대륙에도 타이완성 출신인 사람들 일부가 실향민으로 살고 있지만[37] 그 수가 매우 적고, 더구나 중국의 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존재감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 양측의 경우는 상대측이 평양의 공산정권마냥 말이 안 통하는 천하의 개쌍놈 꼴통집단이 아닌지라 1980년대 말기 이후로는 통행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 한편 청일전쟁 이후 대만이 일본 제국에 할양되었을 때에도 일본의 통치를 피해 중국 대륙으로 건너간 실향민이 있었는데, 이렇게 대륙으로 떠난 사람이나 그 자손으로서 대만 반환 후 귀향한 사람들을 대만에서는 반산(半山)이라 부른다.

일본의 경우는 과거 일본 제국 시대에 제국주의적 정복으로 얻은 영토[38]에서 태어났다가 나몰라라 먹튀 뒤통수 쓰리콤보를 맞고 현지에서 죽을 고생을 해가며 쇼생크 탈출을 찍고 간신히 귀국한 사람들이 실향민으로 있다. 이런 사람들을 히키아게샤라고 한다. 외지에서 인양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가라후토(사할린)와 치시마(쿠릴)에서 꼽사리로 함께 일본으로 쫓겨난 아이누의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독일을 제외한 위의 경우와 달리 제국주의 정복으로 빼앗은 땅에서 태어났다가 쫒겨난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실향민의 경우와는 달리 그다지 동정 대상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본토 일본인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을 차별하여 사회문제가 되었다고 한다.[39]

프랑스에도 피에 누아르라는 프랑스판 히키아게샤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과거 식민제국 당시 알제리로 건너가 그곳에서 터를 잡고 오랫동안 특권층으로 군림하였으나 알제리 전쟁 이후 토지와 재산 등을 잃고 프랑스로 도망쳐와야 했던 자들로 이들 역시 침략으로 남에게서 빼앗은 땅에서 태어났다가 쫓겨난 경우이기에 동정의 가치는 없다.[40]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알자스-로렌이 독일에 할양되었을 당시 이 지역에서 프랑스 영내로의 이주를 택한 실향민들이 존재했다. 물론 이들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 지역이 프랑스에 반환되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냉전 당시 제2세계의 경우 공산화를 피해 제1세계 국가로 망명한 반공 성향 주민들이 대표적인 실향민이다. 이들은 자국의 공산정권이 무너진 경우 실향민 신세를 벗어나 자국으로 돌아온 경우도 있다. 다만 냉전 종식 이후에는 반대로 제2세계의 보수적인 공산주의자들이 자국의 공산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한탄하여 중국라오스쿠바 같이 공산주의 정당의 독재체제가 건재한 국가로 망명하는 경우도 일부 존재했는데 특히 캄보디아나 루마니아 같이 공산정권이 무력을 통해 처절하게 몰락한 국가의 공산주의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다만 폴란드체코 혹은 소련 출신 국가들과 같이 공산정권의 몰락이 평화적이거나 반(半)평화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국가들은 공산주의자들이 그냥 체념하고 자국에서 계속 살아간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반대로 냉전 당시 제1세계 국가의 공산주의자들이 제2세계로 망명하여 실향민이 된 경우도 많은데, 이들은 제2세계의 붕괴로 영원히 실향민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다.

앙골라르완다나이지리아소말리아모잠비크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남수단 등 한때 내전을 겪었거나 내전 중인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내전으로 개판이 된 조국과 살던 고향이 전쟁터가 되어 고향을 떠난 아프리카 나라들의 난민 또한 실향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앙골라와 르완다, 모잠비크,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는 내전이 끝나고 정세가 나름 안정되는 등 난민들이 다시금 전쟁 이전에 살던 고국으로 되돌아왔지만 현재까지도 내전과 정세 혼란이 현재 진행 중인 소말리아와 남수단의 난민들은 여전히 답이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2011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의 시리아 주민들이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실향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죽고 다치거나 피난 도중 팔려가는 등 모진 수모를 당했다. 오직 소수의 시리아 주민만이 서유럽에 도착하여 그들의 정착지를 찾는다.

시리아 사람들이 만약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할 수 있으나,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쿠르드족 민병대, 미군러시아군 및 이란군 또 최근에는 터키군까지 개입된 가운데 그러한 생지옥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그러한 상황이기에 이들 또한 어찌보면 실향민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2016년 이후 최근에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과 IS들을 대거 토벌하면서 정세가 시리아 정부군에게 유리해져 고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당시 팔라비 왕조 당시에 공무원이나 정계의 고위 각료로 복무했다가 1979년에 일어난 이란 혁명으로 팔라비 왕정이 몰락하고 이후 수립된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정부로부터의 정치적 박해와 탄압을 피해 미국캐나다 등 서방 국가들로 망명, 이주해온 이란계 미국인과 이란계 캐나다인의 1세대 이란 출생자들도 사실상 실향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은 혁명 이후 들어선 현 이란 정부로부터 궐석재판에서 정치범으로 분류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는데 현재까지도 이란 정부에선 이들 대부분에게 내려진 사형판결을 취하하지 않고 있어 만약 이란으로 귀국할 경우 사형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고국인 이란에 돌아가지 못하고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에서 끝이 없는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41] 물론 혁명 직후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은 운 좋게나마 팔라비 왕정 시절에 모국에서 이루어 놓은 모든 재산과 부를 잃고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에서 새 삶을 시작했지만, 탈출을 하지 못했거나 호메이니하메네이라프산자니[42] 등 혁명을 주도한 신진 집권 세력들을 만만하게 여기는 등 오판을 하여[43] 이란 국내에 잔류한 사람들은 대부분 혁명 이후 수립된 이란 신정부로부터 모든 재산과 지위를 뺏기고 총살, 교수형을 당해 죽거나 주요 공직에서 퇴출되는 등 중앙 권력에서도 철저히 배제되어 몰락해버렸고[44], 혹은 뒤늦게 정신차리고 이란을 탈출해 주변국을 건너 미국캐나다유럽호주 등 서방 국가로 도주하려다가 이웃 나라 국경지대에서 탈출에 실패하여 이란군의 총격을 받아 죽거나, 발각 또는 체포되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거나 총살당하는 일들도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이들 중에는 이란 혁명 이후 성립된 현 이란 정부에 대해서 굉장히 적대적이며 미국에 망명 중인 팔라비 구 왕가를 지지하며 팔라비 왕조의 왕정복고를 주장하거나, 이란 현 정권은 반드시 무너져야 한다고 강경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물론 팔라비 왕조 말기인 1970년대나 이란 혁명 이후인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태어나 혁명 후 수립된 이란 현 정권에 대한 반감과 거부, 지속되는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제재로 먹고 살길이 막막한 나머지 이란을 떠나 미국캐나다 등 서방으로 이민 간 이란인 이민자들도 있지만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자의로 떠난 것이기 때문에 팔라비 왕정 폐지 이후에 들어선 이슬람 신정 체제 정부에게서 정치적 박해와 탄압을 피해 국외로 도주, 정착해 자기나라에 돌아가지 못하는 혁명 이전 이란 출생의 해외 이란계 이민자 1세대들보다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최소한 적어도 서방에서 살다가 모국인 이란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우크라이나와 아제르바이잔 등의 구 소련 출신 국가들에서도 1991년 소련 해체에 의한 독립 이후에 러시아에게 합병된 크림반도와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아르메니아와 벌인 전쟁에서 패해 아르메니아군에게 점령당한 아르차흐 같은 분쟁 지역에서 탈출하여 우크라이나와 아제르바이잔 본국으로 도주해나온 우크라이나인 실향민과 아제르바이잔인 실향민들이 일부 존재한다.[45]

다만 아르차흐의 경우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에게 반격하여 아르메니아가 점령한 아르차흐 지방 영토 절반과 국경 지대 일부 영토들을 아제르바이잔이 다시 수복하면서 과거 해당 지역에서 거주하다 90년대 아르메니아와 전쟁 당시 아르메니아군으로부터 쫓겨나온 아제르바이잔인 실향민들이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생겼다.[46] 대신 아르차흐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아르메니아 본토나 러시아로 망명하여 실향민이 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러시아 제국이 독일 제국에 러시아령 폴란드와 러시아령 발트 지역을 빼앗기면서 두 지역으로 이주해 살던 러시아인들이 러시아 본토로 도망쳤으며[47], 훗날 소련 해체 이후에는 러시아 본토를 제외한 구소련 국가의 러시아인들이 러시아 본토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후자의 경우 러시아 본토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해당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간 이들도 많지만... 전자에 해당하는 실향민의 후손들과 후자에 해당하는 실향민들은 오늘날 폴란드와 구 소련 출신 국가에 남아 있는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유산을 보존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상술한 유라시아의 실향민들이 워낙 유명해서 한국을 포함한 유라시아 한정으로 묻히는 감이 있지만, 후술할 내용처럼 아메리카 국가들에도 실향민들이 존재한다.

멕시코의 경우 미국-멕시코 전쟁으로 오늘날 미국의 구 멕시코령 지역이 지금처럼 미국 영토가 되면서 해당 지역에서 멕시코 본토로 망명한 멕시코인 실향민의 후손들이 존재하며[48]남북전쟁 종전 이후 미국을 떠나 멕시코로 망명한 남부연합 유민(민간인) 및 남부연합군 패잔병[49]의 후손들도 일부 존재한다.

볼리비아의 경우 과거 볼리비아 영토였던 안토파가스타 지역에서 살다가 태평양 전쟁에서 칠레로 합병된 직후 칠레군과 이 지역으로 이주해오는 칠레인 이주민들의 보복과 텃세를 피해 안토파가스타를 떠나 볼리비아 본국으로 도피해 온 볼리비아인 실향민의 후손들이 일부 존재한다.[50]

콜롬비아의 경우 파나마가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하고, 브라질에게 남부 아마존 밀림 지역을 강제 할양당한 이후에 각각 파나마의 분리독립과 브라질로의 합병에 반대하다가 콜롬비아 본토로 망명한 파나마/구 콜롬비아령 아마존 지역 태생의 콜롬비아인 후손들이 있다.

에콰도르 역시 1941년 에콰도르-페루 전쟁에서 이전 에콰도르 땅이었던 동부 아마존 강 유역 지방의 영토들이 페루에 흡수된 이후에 해당 지역에서 거주하다가 에콰도르 본토로 도피한 에콰도르인 실향민의 후손들이 일부 존재한다.

1959년 쿠바 혁명 직후 공산 독재 정권이 수립된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 혹은 이주해 온 쿠바계 미국인들 및 비슷한 시기나 그 이후에 미국을 떠나 공산화된 쿠바로 망명한 공산주의 성향 미국인들도 실향민에 가깝다.

이외에도 미군영국군 기지가 들어서면서 강제로 축출된 차고스 제도의 원주민이나 핵실험장이 들어선 비키니 섬, 에니웨톡 섬의 원주민들, 이전부터 살던 영토에서 백인 이주민들과 영국과 스페인 등 유럽 열강으로부터 독립한 아메리카 각국 정부의 영토 확장 정책에 내밀려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강제 소개된 미국캐나다칠레아르헨티나 등 아메리카 국가들의 아메리카 원주민[51],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당시 방사능 유출로 방사능 오염된 후쿠시마 지역을 떠나 큐슈, 시코쿠, 혼슈 남부, 홋카이도, 쓰시마 등 일본 여타 지역들로 이사를 간 후쿠시마현 출신 일본인들[52]중국 공산당의 탄압을 피해 중국을 떠나 인도와 미국 등 해외로 망명한 티베트인들과 위구르인들, 독재 정권 치하의 국가들에서 정치적 탄압을 받다 탈출해 유럽, 미국, 캐나다 등 서방권으로 망명한 해당 국가 출신의 정치적 망명자들도 넓은 범위에서 실향민이라 할 수 있다.

5. 외국의 실향민 실존인물[편집]

5.1. 중화권[편집]

5.2. 일본[편집]

5.3. 프랑스[편집]

★는 알자스-로렌이 고향인 1871년 이전 출생자 중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에도 프랑스 국적을 유지한 인물. 별도의 표시가 없는 인물은 프랑스의 해외 식민지가 고향인 인물. (피에 누아르 포함)

5.4. 영국[편집]

5.5. 독일[편집]

★는 서독/동독에 거주했지만 동독/서독이 고향인 인물. 별도 표시가 없는 경우는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주데텐란트 포함)이 고향인 인물.

5.6. 네덜란드[편집]

5.7. 루마니아[편집]

5.8. 구 유고슬라비아[편집]

5.9. 이탈리아[편집]

5.10. 핀란드[편집]

5.11. 폴란드[편집]

5.12. 헝가리[편집]

(이상 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토)

5.13. 그리스[편집]

5.14. 터키[편집]

5.15. 에티오피아[편집]

6. 관련 항목[편집]

7. 실향민 캐릭터[편집]

7.1. 가상 세계관의 실향민 캐릭터[편집]


[1] 북한이탈주민는 6.25 전쟁 이후 휴전선이 그인 후부터 월남한 사람이다.[2] 국내 배우 임하룡과 이병태 전 교수 등이 이 경우에 속한다. 댐으로 인해 고향이 잠기는 것을 잘 나타낸 소설로는 '강물이 흘러가도록'이 있다.[3] 대표적으로 대추리 평택미군기지, 각지에 세워진 골프장중앙선동해선 등 복선화 사업으로 인해 이설된 여러 철도 노선들.[4] 대표적으로 풍납토성몽촌토성.[5] 북한이탈주민은 이와 반대로 함경북도가 가장 많다.[6] 그러나 그렇다고 실향민 집안의 사람들에게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식의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뜩이나 조부모 내지 부모한테 "고향 땅 못가게 만든" 김씨 일가들에 대한 각종 원망 - 증오 - 분노에 가까운 발언들을 들어온 이상 당연히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 실향민 집안들의 정통주의가 센 집안은 명절에도 이북식으로 조반상을 차린다. 떡국 대신 만두국 혹은 온면냉면류로 명절 음식을 낸다고 이야기 하는 집안이 있다면 거의 그쪽 혈통이니까 참고하는 것도 좋다.[7] 다만 이 경우는 어린 아이 때 내려온 것이라 어머니가 이북에 남겨지게 되어 스스로 실향민이라는 인식은 있겠지만 이북 지역에 자신의 정체성을 깊이 결부시키지는 않는다. 비슷한 사례로는 자신의 고향이 충청도라고 한 황해도에서 태어난 가수 조영남이 있다. 분단의 아픔을 깊게 느껴 지역갈등을 싫어하여 화개장터 같은 노래를 펴낸 정도다. 이회창은 더 심하여 아버지가 충청남도 사람이지만 자주 옮겨다니다가 황해도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한다.[8] 아모레퍼시픽OCI의 창업주들이 개성 상인의 후손이다.[9] 윤여정과 이상벽을 빼면 북한 땅이나 그곳 풍습에 대한 기억이 어느 정도 있다. 현미는 아예 여동생이 지금도 북한에 있다. 이순재는 인간극장에서 탈북자인 배우 김아라 씨를 보고 동향 사람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송해 역시 전국노래자랑을 황해도에서 하고 싶다고 언급했다.[10] 그런 까닭에 실향민 2세인 문재인이 경희대에 진학했다.[11] 장영희 교수의 부친과 모친 모두 평안남도 출신이다.[12] 이인희(1986). 8.15와 6.25를 전후한 북한 출신 피난민의 월남이동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리학과 석사학위 논문[13] 부산식으로 약간의 어레인지는 되었다.[14] 이 수치는 개성시 등 인공 치하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의 실향민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었으며, 이북 출신이면서도 의도적으로 고향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경우가 당시에는 비일비재하였으니 실질적으로는 더 많은 인구가 실향민이었을 것이다.[15] 주로 경기도와 황해도 출신.[16] 주로 황해도와 평안도 출신. 2013년 의정부문화원 연구에 따르면 현재 의정부 인구의 15%가 실향민과 그 후손이며, 과거에는 전체 인구의 1/3 수준이었다고 한다.[17] 주로 강원도와 황해도 출신[18] 현재 교동도 인구 3,000 명 중 1,000명 정도가 실향민이거나 그 후손인 것으로 추정된다.[19] 특히 군산에 실향민들이 많이 거주한다. 1951년 1월 이후 황해도 해안에서 이루어진 국군의 피난민 소개 작전이 황해도 해안 - 서해 5도 - 군산시의 경로로 이루어진 바가 많기 때문이다.[20] 속초에 가면 오징어를 피로 싼 순대를 많이 보는데, 이러한 오징어순대는 원래 함경도 토속 음식이다. 그리고 함흥냉면도 아바이마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21] 경기도인천[22] 애초에 이북도민회에서 어림잡아 제시한 수치다. 북한 공산정권과의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이 수치를 그대로 채택하였다.[23] 다만 康씨나 현(玄)씨는 제주도에도 상당히 많다. 태(太)씨는 경북 경산이나 문경에도 집성촌이 있다. 길씨는 충청남도 금산, 동씨는 경기도 의정부양주에 집성촌이 있다. 차씨는 분단 이전에 이북(특히 황해도)에 약간 더 많이 살았지만, 애초에 인구 자체가 많아 남한에도 상당히 많이 살고 있었다. 따라서 차씨는 명단에서 제외되었다.[24] 청나라의 국교였다. 근현대 중국에서 티베트 불교 신자들이 중국 남부 지역에도 존재하게 된 것은 티베트의 직접적인 영향보다는 청나라의 영향이 크다.[25]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의 구실이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폴란드에게로 넘어간 구 독일 제국 영토로 인한 분쟁이었다는 점을 내세워 연합군 측이 일부러 독일계 주민들을 추방시켰다. 그러나 양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령이 된 알자스-로렌의 경우는 독일계 주민들이 독일 본국으로 쫓겨나가기도 했으나 나치 독일 점령 당시 나치 부역 행위에 대해 반성하거나 1870년 이전에 프랑스 국적자였던 현지 주민과 그 자손 중 해당 지역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희망하던 독일계 주민들에게는 프랑스 국적이 부여되거나 사면되었다. 반면 1870년 이후 독일 본토에서 알자스-로렌으로 이주한 독일 본토인 및 그 자손이나 알자스-로렌이 독일령으로 남아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한 독일계 주민들은 동구권의 구 독일령 지역 출신 독일인 실향민들처럼 끝내 독일 본토로 강제 추방당했다.[26] 그나마 동서독 분단으로 인한 독일의 실향민 세대들은 1990년 동서독 통일이 되면서 자기가 태어난 구 동서독 지역의 고향으로 되돌아가거나 동서 분단으로 잃어버린 재산이나 집 등을 어느 정도 되찾는 등 양차 대전 이후 구 독일령 지역의 승전국 편입으로 고향을 잃은 실향민 세대들보다는 적어도 양호했다.[27] 각각 해안 지역은 우크라이나에 편입되었고 내륙 지역은 몰도바라는 소련의 공화국에 재편되어 내륙 지역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될 때 몰도바로 독립했다.[28] 1991년에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 영토가 되었다.[29] 다만 여기는 역사적으로도 원래 불가리아 영토였다.[30] 일례로 세르비아의 천재적 발명가인 니콜라 테슬라도 크로아티아에서 출생했다.[31] 주권국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일부분임에 주의해야 한다. 크로아티아계와 보슈냐크계 지역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부에서도 세르비아계 지역은 스릅스카 공화국이 지금도 보스니아 면적의 49%를 차지하여 존속 중이다.[32] 게다가 심지어 이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탈리아 왕국 등 추축국의 유고 점령기에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와 보스니아의 SS 한트샤르 여단에게도 학살당한 이력이 있었다.[33] 이들 중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스릅스카 공화국조차도 불안정하고, 위험하다며 외려 세르비아 본국에서 사는 게 더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34] 가령 베드란 촐루카가 그런 경우로 아예 크로아티아로 이주했다.[35] 이는 아랍권의 공통된 문제이기도 하다. 아라비아 반도 본토를 제외한 다른 아랍권의 아랍인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아랍화된 비아랍계 토착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아랍어를 써도 표준아랍어를 쓰는 게 아니라 각각 자기 나라의 아랍어를 쓰면 스페인 본토의 스페인어와 라틴아메리카권 국가의 스페인어, 포르투갈 본토의 포르투갈어와 브라질의 포르투갈어처럼 엄청난 차이가 있다.[36] 그나마 시리아 출신의 시리아 난민들이야 전쟁이 끝나면 돌아갈 수 있는 고국이라도 있지만, 이들은 그런 것도 없다.[37] 대부분 국민당의 대만 통치에 불만을 품은 본성인들이 중국 대륙으로 망명한 경우이다.[38] 가라후토청 관할지 출신이나 만주국 출신, 일제 치하 조선 출신, 대만 출신 등.[39] 일본 본토에 있던 일본인들이 일본 본토로 쫓겨난 히키아게샤들을 차별한 것은 히키아게샤들이 애초에 식민지로 이주되기 전에 일본 본토에서 빈곤층이자 하층민(여기서 말하는 하층민은 일본의 피차별 계층이자 일본판 천민계급인 부라쿠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을 의미한다.)이던 것의 영향이 큰 것도 있다.[40] 일례로 피에 누아르 중 대표적인 인물인 알베르 카뮈의 연구에 참여한 김화영 교수는 알제리에 가서 카뮈에 대한 흔적이 철저하게 없어진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그가 보여준 알제리에 대한 인식을 똑같이 식민지를 겪은 한국인으로선 받아줄 수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고 하였다(김화영, 《알제리 기행》 참고).[41] 개중 대다수는 고향에 가지 못하고 미국캐나다 등지에서 노환이나 병으로 사망하기도 했다.[42] 강경 시아파 이슬람 원리주의자였고, 집권 후 팔라비 왕조 정부가 취했던 세속적 정책들을 다 엎어버리며 최고 종교지도자의 권위를 앞세워 이슬람 극단주의 식 정치를 앞세워 반대자와 자국민들을 수없이 죽인 호메이니, 하메네이와 달리 이 사람은 그나마 정치적으로 온건했던 인물이었다. 심지어 살아생전에 후배 혹은 동생뻘이던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정도였을 정도로 이란 정계에서의 영향력과 지지세력들이 꽤 있었다.[43] 게다가 이들 중 일부는 혁명 이후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정권 체제만 바뀌고 이란의 새 정부가 자신들의 직위를 보장하거나 새 정부 아래에서도 공직자 유임을 허락할 것이라는 생각까지 했다.[44] 게다가 현재 이란에서도 구 팔라비 왕정 체제에 복무했던 구 집권층 출신 인사와 그 일가들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거두지 않고 있어 2세대 자식, 조카와 3세대 손주 같은 후손들조차도 냉전 시대 당시 이전 대한민국의 연좌제 정책과 비슷하게 이란 정부에게서 탄압과 불이익을 받고 있다.[45] 이 두 분쟁 지역들 모두 각각 러시아인과 아르메니아인의 인구 비율이 높다.[46] 다만 이들 중에서도 아르메니아의 아르차흐 재침공을 우려하여 사실상 영원히 실향민으로 살게 되는 이들이 존재할 것이다. 아르메니아가 강대국인 러시아를 우방국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47] 이들은 훗날 소련이 러시아령 발트 지역을 수복하고 폴란드에 친러(친소련)국가인 폴란드 인민 공화국이 세워지면서 각 지역으로 돌아온 경우도 있다.[48] 다만 멕시코 본토로 망명하지 않고 그대로 미국인이 된 멕시코인들도 많았으며, 이들이 오늘날 멕시코계 미국인의 직계 기원이 된다.[49] 이쪽은 오늘날 미국계 멕시코인의 조상들 중 하나가 되었다.[50] 일부는 태어나고 살던 고장을 떠날 수 없어 칠레령이 된 안토파가스타에 남아 칠레 시민권을 받고 칠레 국민이 되기도 했다.[51]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콜롬비아, 과테말라, 니카라과 등은 식민지 독립 후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토지를 빼앗아 자국내 원주민을 원주민 보호구역에 강제소개시키지 않았으므로 제외. 다만 이들 나라들에서도 20세기까지 원주민들이 백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대접과 홀대를 겪었다.[52] 물론 위의 사례들보다는 그나마 자발적이다.[53]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원래 연고는 타이난이다. 아버지가 시안에 머물렀을 때 태어난 것.[54] 카뮈의 사망 당시(1960년) 알제리는 프랑스 영토였기에 취소선 처리. 알제리 독립은 1962년이다.[55] 현 바덴-뷔르템베르크 주[56] 구벤의 경우는 나이세강을 끼고 있던 도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 동쪽에 있는 절반이 폴란드에 귀속되었는데 하필 피크는 강 동쪽 출신이었다. 한편 동독 시절 (서부)구벤은 빌헬름 피크의 도시 구벤(Wilhelm-Pieck-Stadt Guben)이라 불렸다.[57] 게르트루트는 1994년에 오빠 호네커가 사망한지 수년 뒤인 2010년에 노환으로 사망하였다.[58] 현 튀링엔[59] 1974년부터 8년간, 1982년부터 10년간 서독 외무부 장관 역임. 당적은 자민당. 1952년 동독을 탈출.[60] 구 루마니아 왕국 영토[61] 하지만 현재도 세르비아인이 주류인 스릅스카 공화국 지역인데다(샤마츠 지역은 지금도 (2013년 기준) 세르비아인이 77%을 차지하는 지역이다. 오히려 유고 내전 직전에는 보슈냐크인이 34%로 세르비아인 28%보다 더 많았다.) 게다가 유고슬라비아 해체도 한참 전인 십대 때 베오그라드로 이사를 간거라 강제로 쫓겨나온 것도 아니어서 실향민으로 봐야 할지 애매하다.[62] 보스니아계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현재 세르비아 정교회 신자이고 세르비아 국적으로 세르비아에 살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여기에 기재. 참고로 본인은 민족 정체성을 보스니아인이나 세르비아인이 아닌 유고슬라브인으로 여긴다고 밝힌 바 있다.[63]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으로 넘어갔다.[64] 現 우크라이나 리비우[65] 고향이 북한이라고 한다.[66] 에피소드 216화 중 영삼이가 노구의 행적을 찬양하는 내용에 따르면 1950년 9월 17일 월남했다고 나오는데, 노구의 아들 노주현은 1949년생이다.[67] 수도였던 헬리시움[68] 둘 다 이케시아 출신으로 공허에 의해 나라를 잃었다.[69] 마오카이가 태어난 뒤틀린 숲은 원래 자운 근처의 리그 경기가 벌어지는 오염된 숲이었으나, 이후 그림자 군도 패치로 그림자 군도에 있는 숲으로 설정이 변경되었다.[70] 올드 시즌에서는 단순히 원수 그 이상이나 이하도 아니였지만, 뉴 시즌에선 둘 다 고향인 갈리프레이를 상실했다는 점을 공유하면서 닥터가 마스터를 미워하면서도 동정하게 되었다.[71] 디아블로 2에서 세계석이 파괴되어 아리앗 산이 붕괴당한 이후.[72] 쿠라스트가 증오의 군주 메피스토의 영향에 의해 몰락당한 이후.[73] 1편에서 초월체의 침공으로 수도성이자 고향별인 아이어를 잃었다가 공허의 유산에서 크나큰 희생을 여러 번 치른 끝에 간신히 탈환했다.[74] 아이어에 그다지 애착이 없는 탈다림이나 이한리는 해당되지 않는다.[75] 지구 집정 연합의 전신으로 지구 집정 연합과 체제가 동일하다.[76] 다만 코프룰루 구역 정착민 2세대와 그들의 후손인 현 테란의 경우 태어날 때부터 코프룰루 구역에 거주하고 있는데다가 지구는 고향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없다.[77] 태사다르가 차우 사라의 정화를 해 버리면서 생명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어버렸다. 공허의 유산 에필로그 이후 시점인 스타크래프트 에볼루션에서도 이끼 정도만 자라고 있으며, 차우 사라 실향민 모임이 있는 묘사가 있다.[78] 원래는 사망했으나 감염으로 부활하면서 지구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인류의 순수성을 종교처럼 떠받들고 있는 UED의 지구로 돌아가서 처형당하거나 죽지 못해 돌연변이 실험체로 비참하게 살 바에 저그로서 사는게 꽤 나을 것이다. 스투코프 본인도 지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고[79] 생물은 물론 사이보그가 아닌 로봇이지만 바이오성이 피보가 제조된 행성으로 바이오성은 작 중으로 500년 전에 바이오 평화 연합과 반 바이오 동맹의 내전으로 멸망한데다 반 바이오 동맹의 일원인 바이오 헌터 실바를 제외하면 피보가 작 중에서 바이오성의 유일한 생존자다.[80] 아만가 행성의 주민 중 한명이자 공주였던 대성단 고즈마의 간부다.[81] 기라스 행성의 주민 중 한명이자 전사였던 대성단 고즈마의 간부다.[82] 아마조 행성의 주민 중 한명이자 여왕이었던 대성단 고즈마의 간부다.[83] 원래 이카루스 행성의 왕자로 이카루스성의 멸망 이후 성왕 바즈에게 거둬진 후 바즈의 양자이자 대성단 고즈마의 황태자로 있었다.[84] 원래 지구인이 아닌 히스 성인으로 본명은 유이 이부키다. 추가로 히스 성인의 유일한 생존자로 체인지맨이 소속된 지구수비대의 사령관이다.[85] 진을 비롯한 플래시맨 5명은 플래시 성인이 아닌 지구인이었지만 개조실험제국 메스에 의한 유괴를 당하다 플래시 성인들에게 구출되어 플래시성에서 자랐는 데 이로 인해 반플래시 현상을 겪어 20년만에 돌아온 지구에 정착하지 못하고 플래시성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실향민이라 할 수 있다.[86] 원래는 사자자리의 눈동자에 해당되는 L-77성의 울트라 일족의 왕자 형제였으나, 사벨폭군 마그마 성인과 그의 수하 괴수인 기라스 형제에 의해 고향이 멸망했다.[87] 드레나이는 원래 에레다르라는 종족으로 모성은 아르거스였지만 드레나이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예언자 벨렌의 지도 아래 아르거스를 탈출한 에레다르들을 제외한 대부분이 타락하여 만아리 에레다르라는 악마가 되어버린 동시에 아르거스가 불타는 군단의 모성이 되어버렸다.[88] 두 종족 모두 대격변에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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