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ik Kim
15 uFebpru6ariyo 1sart8 5e011:36 ·
하오징팡의 <접는도시>
하오징팡의 이 SF소설은 2016년 휴고상 중편 수상작이다(중국에선 2014년 출간). 한글판이 나와 있지만, 내손에는 없기 때문에 중국어판을 읽었다.
베이징이 중첩된 세개의 공간으로 묘사되는데, 계급분화에 대한 직접적 은유이다. 흥미있는 건 베이징이라는 하나의 공간뿐 아니라, 중국 사회를 세개의 계층으로 나눈 이중적 상상이다. 여기서 제3계층세계는 농촌에 해당하다고 나는 추측한다. 소설중에 제2계층공간에 있는 대학원생이, 나중에 제1계층 세계로 올라가려면, 제3계층세계의 관리경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잘아시겠지만 엘리트 공산당원이 고위층으로 올라가려면 주니어 시기에 농촌 근무경험下鄉이 있어야 한다. 시진핑도 다른 간부들도 다 그런 코스를 거쳤다. 이렇게 직접적인 비유를 하다니, 상당히 놀랍다. SF라서 가능했을 것이다. 중국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의 독자가 애호하는 장르문학은 비교적 자유로운 집필이 가능하다. 그래서 미스테리/추리 소설과 SF소설에서 (현실을 은유하는) 상상력이 뛰어난 재미있는 작품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하오징팡이 지금 이런 소설을 쓴다면, 해당문장은 검열을 통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공동부유 정책이 시작되고 나서 계급분화담론을 주류매체나 문화예술분야에서 더 이상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오징팡처럼 국제적 인정을 받은 인기작가라면 이제 도리어 표현에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인기 미스테리 작가 즈진천이 차기작으로 계급분화 얘기를 쓰려고 했지만, 이전 작품들이 2019년 드라마화돼 엄청난 성공을 거둔 셀럽이 돼버렸다. 그래서 2년째 해당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저나 나도 뇌피셜로 중국을 ‘문화경제’기준으로 세개의 세계로 구분했는데, 중국인 작가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으니, 뭔가 확인을 받은 기분이다.
"현대중국은 문화경제적 차원에서 두세개의 레이어Layer로 구성돼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간단히 도시와 농촌을 분리해서 볼 수도 있다. 나는 이를 조금 더 세분화해서 중앙을 의미하는 1선도시들, 두번째 레이어로 지역의 중심을 의미하는 각 성의 수도나 그 하위 행정구역인 시市의 중심인 2~3선 도시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소도시와 한국의 군청 혹은 읍면소재지 등에 해당하는 현성縣城과 향진鄉鎮을 중심으로 하는 농촌지역을 묶는 세단계로 분류한다. 가장 발언권이 많은 지역은 당연히 베이징, 상하이, 션전과 광저우라는 상주인구가 2천만에 가까운 초대형 1선도시들인데, 특히 이 지역에 거주하는 젊은 문화소비계층은 정보와 문화의 유통측면에서 해외와 적지 않게 동기화 돼 있다. 2선도시들 중 인구가 천만명 전후이고, 문화와 상업이 매우 발달한 곳들은 신新1선도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10개가 넘는 이런 도시들을 다시 1선도시와 묶어서 생각해보면, 중국내의 도시문화와 여론을 형성하는 지역의 인구, 즉 첫번째 레이어에 속하는 사람의 수는 거칠게 말해서 14억중 1~2억 정도로 볼 수도 있다. 이는 단순히 숫자로만 보면 10%전후에 해당하기 때문에 다수는 아니지만, 중앙의 담론권력을 가진 엘리트, 중산층, 도시민들은 대부분 이에 속하므로 결국 여론 형성의 향배를 결정하게 된다. “
http://thetomorrow.kr/archives/15247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118036002

SEOUL.CO.KR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세 개로 접힌 하나의 도시
고독 깊은 곳/하오징팡 지음/강초아 옮김/글항아리/416쪽/1만 4000원, 새벽 다섯시는 이 도시가 가장 북적이는 시간이다. 이제 막 일을 끝낸 사람들이 노점에서 정신없이 식사를 하는 사이, 쓰레기 처리장 직원 라오다오는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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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n Yang
혹시 완샹펑녠의 <후빙하시대 연대기> 도 읽어보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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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ik Kim
아 양쪽 글들을 읽다보니 대강 짐작이 가게 됐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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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ik Kim
14 uFebpru6ariyo 1sart8 5e201:14 ·
천현우님의 청강대 졸업축사를 보고 가슴이 정말 웅장해짐. 올림픽 금메달을 딴 소감보다 백만배 울림이 크다. 중국어 버젼이 없는 게 아쉬울뿐. 雄獅少年의 주제가 無名的人이 바로 같은 내용이다. 한국에도 영화와 주제가 모두 소개되면 정말 좋을 터인데. 애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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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不易【無名的人(電影《雄獅少年》主題曲)】HD 高清官方完整版 MV
歡迎訂閱:海蝶音樂/太合音樂 Taihe Music-精選 頻道https://goo.gl/pxkmV7海蝶音樂/太合音樂 Taihe Music 頻道https://goo.gl/6bYRSp由毛不易演唱,錢雷作曲,唐恬作詞的動畫電影《雄獅少年》主題曲《無名的人》2021年12月14日上線,獻給所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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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ik Kim
14 uFebpru6ariyo 1sart8 5e201:01 ·
중국어 번역본 있으면 좋을듯. 周晓蕾 중국 청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我的二本学生 생각이 납니다.Ziruo Li

천현우
14 uFebpru6ariyo 1sart8 5e131:52 ·
청년이 청년에게.
청강대 졸업축사 원고를 이제 슬슬 공유해도 될 것 같습니다. 최종본은 연설의 특성상 좀 많이 요약했는데요. 글은 좀 더 길어도 될 듯해 원본으로 게시했어요. 조금씩 청년이란 나이에서도, 평범함의 기준에서도 벗어나고 있지만, 아직 그 정체성을 쓰고 말하는 걸 용인해주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살다 살다 졸업 축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보통 이런 일은 해당 분야에서 이룰 거 다 이룬 분들이 하잖아요. 근데 뜬금없이 여러분에게 낯선 제가, 낯선 방식으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네요. 반갑습니다, 청강 문화 산업대학교 졸업생 여러분. 창원에서 용접과 글로 먹고 사는 천현우라고 합니다. 복장에서 미루어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굳이 분류하면 실패에 훨씬 가까운 사람이죠. 가난이 싫어서 취업 빨리 하려 실업계를 갔고, 그래도 대학물 먹어야지 싶어서 전문대를 나와서, 중소기업을 10년 넘게 전전했어요. 변변한 경력도 못 쌓고 나이만 먹었더니, 이젠 대기업에선 받아주지도 않고, 빚 갚느라 쌓아 놓은 재산도 없습니다. 말하고 보니 속이 쓰리네요. 이제껏 뭐하고 살았나 싶기도 해요. 하지만 이런 삶을 살아왔기에, 여러분이 지금 겪고 계실 불안함과 두려움의 정체도 잘 알고 있어요. 저 역시 지금도 하루하루 살얼음 뜨기 시작한 빙판 위를 걷는 느낌으로 살아가니까요.
우리 세대는 아주 심각해진 불평등을, 아주 쉽게 체험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공무원의 성벽은 너무나 높고 두터운데, 입성하지 못한 대다수가 쥐꼬리만 한 월급과 하루살이 같은 고용에 떨어야 해요 지방엔 일자리가 없고 직장 찾아 서울 오면 월세는 내 월급의 절반 가까이 되죠. 갚지 못 한 대학 등록금은 두고두고 우릴 괴롭힐 테구요. 정말이지 우리는 이렇게나 힘든데, 정작 SNS 보면 대다수가 행복하고 자기 삶을 멀쩡하게 잘 살아내는 것처럼 보여요. 현실에 거의 없는 예쁘장한 남녀들끼리 맨날 맛있는 음식과 멋들어진 여행지 사진을 올려요. 대학 서열을 매기고 연봉을 자랑하며 외제차 키와 통장 잔액을 인증하지요. 이렇듯 행복은 평범한 사람들이 갇힌 울타리 바깥에 전시되어 있어요.
그럼 우린 어떻게 행복을 찾아야 할까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노력해서 성공하면 될까요? 아니면 평생 금수저들 욕하면서 정신승리를 하면 될까요? 제가 보기엔 둘 다 비효율적인 방법 같아요. 둘 다 결국 타인과 비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질 못하잖아요. 비교는 위안거리까진 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행복까지 닿을 순 없어요. 행복은 우선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싹이 트지 않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 자신을 사랑해야 할까요? 사람마다 각자의 행복 기준이 달라 참고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하면서부터 행복에 가까워졌습니다.
제가 용접을 접한 건 2014년 말쯤이었어요. 그때 집에 빚이 너무 많아서 주야로 자동차 공장 다니면서 주말은 막노동을 했거든요. 정확히는 조경 일이었어요. 가로등 설치하고, 곳곳에 벤치도 깔고, 다리를 놓기도 하면서, 여러분들이 핫플이라고 칭하는 공간을 만들었지요. 주말마다 포터 몰고 절 데리러 온 아저씨가 있었는데 이 분이 용접을 참 잘했어요. 용접은 배우면 어디든 도움이 된다고 해서 옆에서 구경했거든요. 용접면 처음 써보니까 진짜 아무 것도 안 보여요. 과장 안 하고 눈 감은 거보다 더 어두워요. 햇빛도 달빛보다 어둡게 보일 정도니까요. 그 상태로 눈앞에서 용접이 시작되면 맨 눈으론 못 보던 빛 안쪽이 보입니다. 주홍빛 쇳물이 8자를 그리는 손놀림에 맞춰서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옮겨갑니다. ‘용접’, 녹여서 붙인다는 뜻처럼 용접봉이 지난 곳은 열이 식으면서 철과 철 틈 사이가 메꾸어집니다. 쇠에다 대고 하는 바느질이라고 생각하심 편하실 거예요. 이렇게 메꿔진 흔적을 비드라고 하는데요. 이 비드의 모양으로 용접 실력을 가늠합니다. 좌우 간격이 똑바를수록, 푹 꺼졌거나 위로 볼록하지 않을수록, 눈으로 봤을 때 예쁠수록 ‘좋은 용접’인 셈이죠. 잘 된 용접은 금속판 위에 그린 그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선 용접사는 예술가와도 닮아 있습니다. 이 ‘좋은 용접’을 해내기 위해 지금도 지구촌 곳곳의 용접사들이 불꽃을 튀기고 있을 거예요.
저는 이 일이 아주 근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결과물이 바로바로 눈에 보이잖아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의심할 필요가 없는 거죠. 글 쓰다보면 이런 점이 참 답답했거든요. 나름 잘 썼답시고 탈고하고 내보면 반응이 시큰둥해요. 이런 일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원고에 집중을 못하죠. 용접은 그렇지 않았어요. 눈앞에 있는 일에만 온전히 정신을 쏟아 부을 수 있었거든요. 용접의 생명인 비드는 운봉이라는 손기술에서 판가름 나요. 운봉은 용접이 최대한 예쁘게 나올 수 있도록 쇳물을 퍼뜨려주는 기술이에요. 용접의 목적. 각 금속마다 다른 속성. 금속의 두께와 간격, 위 아래 수직 수평 같은 방향까지. 이 모든 변수를 감안해 움직임을 조절하지요. 일류 용접사의 운봉 기술은 시계 장인들의 그 섬세한 손짓과 궤를 같이 합니다. 특히 민감한 금속은 과장 없이 0.1초 차이로 쇳물이 덜 녹아 용접이 안 되거나, 과열로 인해 철판에 구멍이 뚫려요. 이런 재료는 용접하기 진짜 피곤해요. 장갑 집어 던지고 욕도 하고 한숨도 쉬죠. 그런데 동시에 호승심이 막 생겨요. 여러분들은 혹시 어려운 게임에 도전하신 적 있나요? 이미 70프로 정도 블록이 차있는 테트리스 같은 것들. 하다보면 정말 짜증나지만 깨고 싶은 욕망도 생기잖아요. 제겐 용접은 그런 어려운 게임인 셈이죠.
어디에나 다 쓰인다는 점도 맘에 들었어요. 밖으로 나와서 잠깐만 둘러봐도 용접이 안 들어간 사물이 참 드물잖아요. 가로등이며 신호등, 수많은 자동차와 빽빽한 빌딩 안쪽, 지하철의 몸체와 그 아래 깔린 레일까지 말이죠. 제가 로템 하청에서 잠깐 일했는데요. 거긴 본사가 창원이라 우리가 만든 물건이 어떻게 쓰이는지 잘 몰라요. 그러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탄 순간 알게 됐죠. 객차 맨 앞과 뒷칸이 짧았던 이유는 노약자석 때문이었구나. 출입문 바로 위 공간이 비었던 이유는 역 안내 표지판이 붙기 때문이구나. 검사원이 천장에 붙는 파이프 용접이 중요하다고 자꾸 강조한 이유는 손잡이가 달리기 때문이었구나. 남들은 알 리 없는 고생의 이유가 눈에 보였을 때. 어쩐지 콧잔등 비비고 싶은 뿌듯함과, 우리가 만든 물건이 온전히 제 역할 다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의 보람참. 그리고 내 일이 세상에 도움 되고 있단 사실에 행복함을 느꼈어요.
물론 저도 한땐 용접하는 자신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어요. 제 일을 바라보는 대다수 외부 시선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공부 못하면 기술 배워라.” 마치 패배자나 택하는 2등 노동처럼 말하죠. 특히 창작하시는 분들. 정말 죽어라고 열심히 쓰고 그리는데 정작 집에선 노는 사람 취급 받은 적 있지 않나요? 그때 무슨 감정을 느끼셨나요. 모멸감이 막 치솟기도 하지만, 가슴 한 쪽에선 외롭다고 느끼진 않으셨나요? 저는 정말 오랫동안 억울했거든요. 열심히 내 할 일을 할 뿐인데 왜 사람들은 날 이해 못 해주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내 가치를 깎아내리려 들지? 홀로 TV도 컴퓨터도 없는 타지에서 돈 벌며 겨울을 나는 동안, 스스로 계속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다가 결론에 도달했죠. 나는 용접을 좋아한다는 것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타인의 평가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 물론 이게 말처럼 쉽지 않을 거예요. 특히 타인의 선호로 돈을 벌어야 하는 창작계통에서는요.
청강대 여러분은 창작을 업으로 삼는 분들이 굉장히 많죠? 다들 이런 고민 한 번쯤 해보셨을 거예요. 내가 만들고 싶은 창작물과 돈이 되는 창작물이 다를 때. 더군다나 그 돈 되는 창작물을 도저히 만들 수가 없을 때. 내가 괴로운 건 둘째 치고 먹고 사는 것조차 위협받잖아요. 저는 1990년 10월부터 2021년 4월까지. 31년 간 단 한 번도 글쟁이로서 성공을 경험한 적이 없어요. 어릴 때 상 몇 번 타고, 유료 연재에 잠깐 성공하면서, 몇 번의 국지전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딱 그 정도였어요. 웹소설 공모전에서 계속 낙방했고 몇 번이나 등단의 높은 문 앞에서 좌절했죠. 제 글 기술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엔 언제나 못 미쳤어요. 이렇게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현실, 재능, 노력, 좌절 따위 단어가 쌓여선 꿈의 천장을 내려앉혔죠. 결국 글로 돈 벌기를 포기했지만 일기랑 소설은 꾸준히 썼어요. 글쓰기를 끝끝내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제가 그나마 잘하는 일이 이거 하나였거든요.
자소서나 독후감을 대필해주면 꼭 따랐던 이야기가, “글 잘 쓰는데 이 재주로 뭐라도 해보지.”였어요. 처음엔 그 말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어요. 반복해서 듣고 나서야 어느 정도 글에 숙달이 됐다는 사실 정도는 인지하게 됐죠. 빅데이터 시각화 자료처럼 어지러이 놓인 단어를 하나씩 골라 문장을 만들고, 울퉁불퉁한 문장을 다듬어 매끈한 문단을 만들고, 그 문단으로 하나의 완성품까지 도달하는 공정. 그 공정이 마치 조선소에서 소조, 중조, 대조로 크기를 불려나가는 블록 작업처럼 체계화가 되어 있었던 거죠. 세상은 이걸 글 근육이라 표현하더군요. 딱히 벌크업을 의식한 건 아니고, 그냥 이십년 가까이 무던하게 글 쓰다 보니 효율 좋게 할 방법이 보였어요. 그렇게 계속 써나가다가, 우연찮은 계기로 신문에 칼럼 지면도 얻고, 제가 몇 번이나 공모전 낙방한 출판사에서 먼저 책 내자고 제의도 받았어요. 다 내려놓고서 한참 지나서야 기회가 찾아온 셈이죠.
아까 전에 “좋아서 하는 일에 타인의 평가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고 했었죠? 타인의 평가는 본질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이를테면 간식 같은 거예요. 먹으면 맛있을 수도, 속이 더부룩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안 먹어도 그만이란 거죠. 오히려 남들 평가에 너무 신경 쓰면 자의식 비만이 와요. 제 경우 네이버와 다음 소설 카페부터 디시인사이드 갤러리까지 쭉 둘러보면서 여러 작가들과 친해졌어요. 그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류가 바로 이 자의식 비만에 걸린 분들이었어요. 남들 평가에 너무 신경 쓰다 보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죠. 사람은 선플 백 개보다 악플 하나에 훨씬 민감하니까요. 이 분들은 떨어진 자존감을 다른 작품을 냉소하고 깔아뭉개며 비난하면서 채우려고 해요. 창작물의 급을 나누는데 익숙해져서 본질에 집중하질 못 해요. 그러다 최후엔 돈도 안 되는 글 따위 쓰지 말 걸, 하고 후회하면서 펜을 꺾더군요. 개중엔 저보다 실력이 훨씬 뛰어났던 분들도 계셔서 안타까웠어요. 물론 창작이 정말 외로운 일임은 잘 압니다. 어두컴컴한 길의 출발선에서 자기 두 발로 종점까지 달려가야 하죠. 의지할 곳이 없으니 타인의 시선을 빌리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요. 그럴 때일수록 단호해져야 합니다. 기본에 충실해야 해요. 습작을 계속 만들고, 성공한 작품을 분석하면서, 꾸준히 자신을 갱신해나가는 거죠.
다만 기술에만 너무 몰두해서도 안 돼요. 학교에서 배운 기술만 계속 파고들어선 한계가 있어요. 요즘은 컨텐츠의 시대잖아요. 컨텐츠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에요. 물론 수십 년 넘게 한 분야에 몰두한 장인들의 기술은 그 자체로 컨텐츠가 됩니다만. 아직 젊은 우리는 장인들의 기술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자신만의 컨텐츠를 구축할 필요가 있어요. 저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글 쓰는 용접공으로 작은 유명세를 얻어 방송과 라디오에 나오게 됐습니다. 공장 노동을 글로 녹여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죠. 그나마 옛날 노동 문학들도 일이 얼마나 힘들며 돈은 얼마나 적게 주는지에만 중점이 가있죠. 작가 분들이 10년 넘게 공장 일을 하던 게 아니니까요. 글의 기교야 저보다 월등히 뛰어나지만 그 세계를 이해하는 깊이는 저보다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이 비웃고 무시하던 일을 오랫동안 하면서 느꼈던 감정. 들었던 생각들이 글 기술과 결합해 제 컨텐츠가 된 셈입니다.
쇠와 매연, 공장과 작업복의 회색지대가 저의 세계였듯. 여러분 역시 각자 자신의 세계가 있을 거예요. 저는 여러분이 자신의 세계를 부끄러워하지 않길 바랍니다. 오히려 더욱 더 선명하게 그 세계를 완성해나가길 바랍니다. 다만, 내 세계를 더욱 또렷하게 하기 위해선, 공부와는 약간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꾸준히 우직하게 정진해나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예전부터 관심 가던 분야, 혹은 옳다고 생각하던 분야, 재밌다고 느꼈던 분야를 찾아 꾸준히 넓게 파고드는 게 중요해요. 까고 말해서 덕질하자는 거죠. 거창하게 ‘뭐뭐학 개론’ 같은 두껍고 재미없는 책부터 읽을 필요 없어요. 유튜브나 나무위키도 괜찮습니다. 어떤 경로건 정보의 가지를 계속 뻗어나가는 게 중요해요.
저 같은 경우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들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쾌척하는 분들의 생각이 늘 궁금했어요. 아무리 봐도 합리적인 소비가 아니잖아요. 그 심리를 쫓다보니 행동 경제학이란 학문을 알게 됐어요. 관련 책과 기사, 방송을 꾸준하게 보다보니, 사람이 돈을 이성적으로 쓰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됐고, 그 과정에서 저의 세계가 또렷해졌어요. 선명해진 나의 세계와 학교에서 열심히 갈고 닦으셨던 기술이 합쳐졌을 때, 아주 근사한 자신만의 컨텐츠를 만들어내실 수 있을 거예요.
용접부터 시작해 창작 얘기를 지나왔습니다. 사실 아는 거 하나 없는데 잘난 듯 떠들 때마다 참 겸연쩍네요. 맺음 인사 전에 잠깐 인사말로 돌아가 볼까요? 맨 처음 가난하고 스펙도 안 좋은데다 직업조차 변변찮은 제가, 어떻게 행복에 가까워졌는지 말씀드렸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기로 했고,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기로 했죠. 하지만 이것만으론 행복에 가닿기 부족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일만큼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는 기술도 중요하거든요. 하여 저만의 마음 호신술을 여러분과 짧게 공유하려고 해요.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선 무엇보다 냉소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제 삶은 설령 인간극장에 나와도 논란이 될 만큼 처절하고 지저분한 불행의 연속이었어요. 그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냉소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여러분과 마주할 수 있는 이유도 그 덕분이구요. 냉소는 인간의 가장 나쁜 감정입니다. 분노나 증오마저 마음먹기 따라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지만 냉소는 그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 뿐이에요. 대상을 이해할 생각도 없고 공감하지도 못하니 무슨 발전이 가능하겠습니까. 냉소란 마음의 비만하고 같아서 떨쳐내는 방법도 단순하지만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다이어트하기 위해선 먹는 걸 줄이고 몸을 계속 움직이잖아요? 냉소하지 않는 방법도 똑같습니다. 남이 떠먹여주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받아먹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보 과잉을 넘어 폭주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터넷의 알고리즘은 편향된 정보만 죽 나열해주기 일쑤죠.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의 사고로 움직이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생각이 정답인지 오답인지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핵심 목적은 사고의 근육을 기르는 거니까요.
앞으로 여러분이 살아 견뎌야 할 세상은 분명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포기하지 않다보면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자신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되면서, 누구도 감히 흔들 수 없는 자신을 완성할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 냉소하지 맙시다. 자신과 일상, 동료들과 일, 오늘과 내일을 진심으로 사랑합시다. 내 주변에 내가 의식한 모든 것들이 우연이고 행운이며, 이를 소중하다고 여길 때, 비로소 내 삶의 주체가 완벽하게 오롯하게 내가 되고, 그때가 되면 반드시 행복은 따라옵니다. 여러분 모두의 행복을 기원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평범한 이의 말씀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周晓蕾
좋은 글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이 뭉클하게 하면서 생명력 넘치는 글이네요. 우리 학생들에게 공유하도록 할게요.
Yuik Kim
周晓蕾 네 베이와이 학생들에게 직접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겠지만 ㅎ, 2,3본 대학이나 技校재학생처럼 훨씬 더 많은 중국의 평범한 젊은이들에게도 필요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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