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메라 - 만주국의 초상
- 야마무로 신이치 (지은이),윤대석 (옮긴이)책과함께2024-02-08원제 : キメラ―満洲国の肖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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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쪽
책소개
1932년에 중국 동북지방에서 건국되었다가 1945년에 태평양전쟁에서의 일본의 패망과 함께 홀연히 자취를 감춘 나라 만주국. 이 책은 만주국이 왜 건국되었고 그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운영과정은 어떠했고, 일본인과 중국인은 이 과정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등 만주국의 전체상을 알 수 있는 입문서다. 일본의 인문학자 야마무로 신이치는 이 만주국의 초상을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머리는 사자, 몸은 양, 꼬리는 용인 괴물 ‘키메라’에 빗대어 그려 나갔다. 2009년 나온 번역본에서 번역 오류를 바로잡고 애매한 문장을 좀 더 명확하게 고쳐 새로이 출간했다.
목차
옮긴이의 말
서장: 만주국에 대한 시선
1. 만주국의 그림자
2. 괴뢰국가 만주국
3. 이상국가 만주국
4. 키메라로서의 만주국
제1장 일본이 살아날 유일한 길
─ 관동군의 만몽영유론
1. 만몽─ 고르디아스의 매듭
2. 만몽 영유 계획의 발진
3. 자급자족권 형성과 국가 개조
4. 조선 통치와 적화 차단
5. 대소 전략 거점
6. 일미전쟁과 세계 최종전론
7. 만몽 영유의 정당성 근거
제2장 만몽에 거주하는 각 민족의 낙토가 될지니
─ 신국가 건설공작과 건국이념의 모색
1. 독립국가 건설로의 전환
2. 성정부 독립공작과 이시하라의 전환
3. 위청한과 보경안민 비양병주의
4. 만주청년연맹과 민족협화
5. 다이유호카이와 흥아의 큰 파도
6. 다치바나 시라키와 자치의 왕도
제3장 세계정치의 모범이 되려 함
─ 도의입국의 기치와 만주국 정치의 형성
1. 건국 동기 만들기와 장의부조(仗義扶助)
2. 순천안민・오족협화의 왕도낙토
3. 용의 귀향─ 복벽을 꿈꾸며
4. 집정은 전 인민이 이를 추거한다
5. 정부 형태와 통치 실태의 괴리
6. 만주국 정치의 네 가지 주요 개념
제4장 경방의 장책은 항상 일본제국과 협력동심
─ 왕도낙토의 차질과 일만일체화의 도정
1. 근화일조(槿花一朝)의 꿈─ 쫓기는 나날
2. 왕도주의의 퇴각─ 얼어붙은 건국이념
3. 형극의 길─ 만주국 승인과 정샤오쉬
4. 국화와 난초─ 제제 만주국과 천황제의 수입
5. 일만일체의 배리─ 통치를 둘러싼 대립
6. 메타모르포제─ 키메라의 변신
7. 사생존망, 손을 놓을 수 없어─ 일본주국(洲國)의 운명
종장: 키메라, 그 실상과 허상
1. 만주국의 양면성─ 민족의 협화와 반목
2. 안거낙업─ 눈은 칼과 같이
3. 왕도국가─ 국민 없는 병영국가
4. 키메라의 사멸
후기
보론: 만주와 만주국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증보판 후기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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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기
책속에서
P. 15~16 서장 만주국에 대한 시선
일찍이 만주국이라는 국가가 있었다. 1932년 3월 1일 중국 동북지방에 홀연히 나타나, 1945년 8월 18일 황제 푸이(溥儀)의 퇴위 선언과 함께 졸연히 모습을 감춘 국가, 만주국. 그 생명은 겨우 13년 5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거기서 살았던 일본인에게는 오히려 국가의 종언이야말로 진정한 만주국 체험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소련군의 침공, 본국 귀환, 혹은 시베리아 억류* ─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필설로는 다할 수 없는 처참함을 경험한 뒤에야 비로소 개개인은 만주국이란 무엇이었던가, 그 자신은 만주국에 어떻게 관계해 왔던가 하는 물음을 되물으며 다양한 만주국상을 그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만주국의 다종다양한 형상의 편린들은 수많은 수기와 회상록 속에 아로새겨져 있어 지금도 우리들은 그것을 살펴볼 수 있다.... 더보기
P. 49~50 제1장 일본이 살아날 유일한 길
만몽이 일본의 생명선이라 불린 것은 그것이 식민지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소련과 중국에 대한 국방상의 최전선으로 간주된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니까 만약 소련이나 중국이 만몽에서 압도적인 세력으로 일본을 구축(驅逐)하게 되면 일본의 조선통치 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우려가 만몽에서 일본이 세력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되었던 것이다. 1924년 5월 외무성 ·대장성 ·육군성 ·해군성의 협정으로 작성된 〈대지(對支)정책강령〉이 “만몽의 질서 유지는 해당 지역에 대한 중대한 이해관계, 특히 조선 통치상 제국에 아주 중요하고 이를 위해 항상 최선의 주의를 기울”인다고 규정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타가키도 또한 “만약 러시아가 국경을 넘는다면 조선 영유는 시간문제”라고 하며 소련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조선 방위를 위해서라도 만몽 영유가 불가결함을 역설했다.... 더보기
P. 81 제2장 만몽에 거주하는 각 민족의 낙토가 될지니
이시하라는 22일의 방침안에 대해 “9월 19일의 만몽 점령 의견을 중앙이 일고(一顧)도 하지 않고, 또한 다테카와 소장조차 전혀 동의하지 않아 도저히 이를 수행할 수 없음을 알고 만곡(萬斛)의 눈물을 삼키며 만몽 독립국안으로 후퇴하였다. 최후의 보루는, 호기가 다시 찾아오면 곧 만몽 영토론이 실현되는 날이 있음을 기약하는 것이었다”라는 의견을 기록하고 있다. 만곡의 눈물을 삼키며 후퇴하여, 기회가 되면 숙원인 만몽 영유 실현으로 전환하기 위한 최후의 진지, 그것이 이시하라의 만몽 독립국안이었다. 1928년 이래 이시하라를 중심으로 관동군이 가다듬어 왔던 만몽영유론은 그것이 실시되기 직전에 육군 중앙의 거부로 어쩔 수 없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보기
P. 203 제3장 세계정치의 모범이 되려 함
이처럼 만주국 정치를 결정했던 것은, 괴뢰국가 ·보호국화라는 국제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표면상으로는 현지 중국인의 자주적 발의의 의해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관동군의 지도하에 일계 관리에 의해 일본의 통치 의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실현하는가 하는 요청이었다. 일만 정위이건, 일만 비율이건, 총무청 중심주의건, 내면 지도건 모두 국법상의 권한과 사실상의 권한이라는 양면성을 표상하면서도 그 어긋남을 호도하기 위한 미봉책이며 권모술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러한 표면과 내면의 괴리라는 모순을 가지고 있으면서 만주국으로 하여금 “영원히 우리 국책에 순응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일 ·만 관계의 기조가 되었던 것이다.... 더보기
P. 264~265 제4장 경방의 장책은 항상 일본제국과 협력동심
이 증언을 소개한 오쿠라는 그것이 결코 중국인 측에서 나온 일방적인 견해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재만 일본인의 증언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신국가에 대한 불평의 원인으로는 아편 전매관・헌병・경찰관의 횡포, 일계 관리의 전횡, 자위를 위한 총기의 몰수 등을 들면서 “만약 지금 군대가 물러난다면 일본인은 전부 살해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 있으며 또한 군부 고관도 “지금 만약 일러전쟁이 일어난다면 일본군 가운데 10개 사단 정도는 만주인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들 일본인의 증언은 아마도 현지에서 일상적으로 타민족과 접촉하고 있던 사람들의 거짓 없는 실감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 증언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중국인 고관이 든 것 대부분을 관동군과 일계 관리가 사실로 인정하고 있었다. 접기
P. 43 이시하라 등이 만몽 영유가 불가결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것에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절실한 현안이 있고, 그것이 또한 일본의 국운을 좌우할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일본의 국운을 결정하는 과제였던가.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이 총력전 수행을 위한 자급자족권의 확립이라는 과제인데, 이것은 당연히 일본의 국가개... 더보기
P. 85 일본 국내에서는 ˝만주사변에서 군부가 정부를 끌고가는 것처럼 보인 것은 실제 여론이 정부보다도 오히려 군부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군부가 정부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론이 정부를편달했던 것이다˝라는 관찰이 있을 정도로 관동군의 행동을 지지하는목소리가 높았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로는 우선 1929년 가을 이래 세계공황에 의해... 더보기
P. 86 다라˝ 국민이 만몽에서 그에 대한 해결을 구했다는 경제적 배경을 들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장쭤린 폭살 사건으로 만몽 문제를 단번에해결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군부가 ˝앞으로는 반드시 여론의 후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여론을 환기시킬까를연구하고 조직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기를 도모하면서 매우 정력적으로 여론... 더보기
P. 116 만주청년연맹은 관동군 사령관 혼조 시게루에게 <만몽 자유국 건설 강령>을 제출했다. 거기서는 ① 둥베이 4성의 철저한 문호개방, ②현주 각 민족협화의 취지에 의해 자유평등을 지향하고, 현 주민으로 자유국민을 구성한다. ③ 군벌을 배제하고 철저한 문치주의로다스리며 병란이 잦은 중국 본토로부터 분리하여 둥베이 4성의 경제적... 더보기
P. 120 다이호카이는 총 30명 남짓으로, 만주청년연맹과는 달리 대외적 선전활동 같은 것은 하지 않았고 모임으로서의 강령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어떤 주장이나 목적을 가지고 행동했는지는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가사기를 중심으로 하여 그 사상에 공명하는 자들의 동지적 결합이라는 색채가 점차 농후해졌는데, 기아시아부흥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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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야마무로 신이치 (山室 信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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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중의원 법제국 참사, 도쿄대학 사회과학연구소 조수, 도호쿠대학 조교수,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교토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법제관료의 시대》, 《근대 일본의 지와 정치》, 《사상과제로서의 아시아》, 《유라시아의 해변에서》, 《헌법 9조의 사상수맥》, 《러일전쟁의 세기》, 《복합전쟁과 총력전의 단층》, 《일본 헌법 9조와 비폭력 사상》, 《아시아의 사상사맥》, 《아시아 사람의 풍모》, 《현대의 기점 제1차 세계대전》(전4권, 공저) 등이 있다. 이 책 《키메라》로 요시노 사쿠조상을 수상했으며, 그 외에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하세가와 뇨제칸상, 아시아・태평양 특별상, 시바 료타로상을 받았다. 접기
최근작 : <키메라>,<일본 헌법 9조와 비폭력 사상>,<사상과제로서의 아시아> … 총 43종 (모두보기)
윤대석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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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대구 출생.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및 국어교육연구소 겸무연구원으로 근무하며 ‘김윤식 강좌 선정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동아시아 식민지 담론과 근대 문학교육, 일제 말기 제주문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식민지 문학을 읽다』, 『식민지 국민문학론』, 『근대를 다시 읽는다』(전2권, 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키메라』, 『국민이라는 괴물』 등이 있다.
최근작 : <한국문학사의 두 공간, 세 가지 글쓰기>,<언어 중심의 교과 융합 교육>,<다문화 시대의 문화교육 커리큘럼> … 총 19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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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북메이커>,<히스토페라>,<영화, 그 매혹의 정치>등 총 217종
대표분야 : 역사 11위 (브랜드 지수 357,592점), 초등 한국사 18위 (브랜드 지수 2,32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만주국, 일제가 급조한 괴뢰국이었는가
아니면 실패한 유토피아였는가
“나는 만주국을 머리가 사자, 몸뚱이가 양, 꼬리가 용인 괴물 키메라로 상정해 보고자 한다. 사자는 관동군, 양은 천황제 국가, 용은 중국 황제 및 근대 중국에 각각 대비시키는데, 그 의미는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가운데 명확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1932년에 중국 동북지방에서 건국되었다가 1945년에 태평양전쟁에서의 일본의 패망과 함께 홀연히 자취를 감춘 나라 만주국.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은 만주국이 왜 건국되었고 그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운영과정은 어떠했고, 일본인과 중국인은 이 과정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등 만주국의 전체상을 개략적으로 알 수 있도록 제시한 입문서다. 일본의 인문학자 야마무로 신이치는 이 만주국의 초상을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머리는 사자, 몸은 양, 꼬리는 용인 괴물 ‘키메라’에 빗대어 그려 나갔다.
만주국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오늘날 만주국은 ‘일제가 세운 괴뢰국’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1932년 만주국이 건국될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각자의 기대와 이상을 품고 이 국가의 건설에 투신하였다. 관동군, 제국주의자들, 국민당 정부와 대립한 중국의 실력자들, 마르크스주의자를 비롯한 지식인들, 마지막 황제 푸이까지 각자의 유토피아가 실현될 곳이 바로 만주국이었다. 순천안민(順天安民), 오족협화(五族協和)의 왕도낙토(王道樂土)가 실현될 이상국가, 그것이 바로 만주국의 건국이념이었다.
지은이는 이처럼 많은 이들이 각자 다양한 기대를 품고 만주국 건설에 참여하는 과정을 1~3장에 제시한 뒤 이러한 이상이 삽시간에 변질되고 바스러지는 과정을 4장에서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일본인 지식인의 표현으로 “서구의 제국주의 지배를 배제하고 아시아에 이상국가를 건설하려는 운동의 장”이었던 만주국은 일제의 ‘세계전쟁’ 야욕을 위한 병참기지, 영하 30도의 날씨에도 갓난아이를 벌거벗겨 키울 수밖에 없는 참혹한 약탈과 착취의 땅으로 전락해갔다.
만주국은 우리의 현대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주국의 육군군관학교 출신인 박정희를 비롯해, 대동학원 출신의 최규하, 겐고쿠대학 출신의 강영훈, 민기식 등 만주국에 참여했던 식민지인들이 대한민국의 국민국가를 경영하는 주체가 되었던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만주국의 무엇이 이들을 매료시켰는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만주국의 역사는 우리가 세계와 만나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만주국의 멸망 후 겐고쿠대학의 조선인 학생은 일본인 조교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고 한다. “선생님, 조선이 일본의 예속에서 해방되고 독립해서야 비로소 한국과 일본은 진정으로 제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패망하여 후퇴해 가는 일제에게 뼈아픈 충고인 동시에 오늘날 세계 시민의 입장에서도 새겨들을 만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책은 2009년 나온 번역본에서 번역 오류를 바로잡고 애매한 문장을 좀 더 명확하게 고쳐 새로이 출간한 것이다. 다시 재현된 만주국의 초상을 통해 21세기 만주국의 초상이 그려지길 기대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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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알지도못하면서 2024-02-06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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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재출간하게 되어 너무 기뻤다. 무엇보다 번역이 너무 매끄러워 좋았다. 만주국을 여러 각도에서 객관적으로 다룬 내용에서 많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할 책이다.
honeybee 2024-03-14 공감 (2) 댓글 (0)
‘영원한 현재‘로서 다뤄져야 하는 만주국의 초상
만주국은 불과 13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가졌으나 당시 식민지 국가였던 조선, 중국 등 주변국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45년 이후 만주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지만 대한민국의 뿌리와 관련이 깊어 들여다볼수록 마음을 무겁게 한다. 현대 일본은 과거의 영광을 꿈꾸며 그 역사를 되짚어보지 않을지. 사실 일본인이 만주국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견해가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이 책은 만주국의 성립부터 소멸까지의 과정을 그리며 전체상을 개략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하는 입문서적 성격을 지녔다. 입문서답게 분량도 적당해서 부담도 없고 만주국에 대해 본격적인 탐색에 들어가기 전에 핵심 개념을 정리하고 간다는 생각으로 읽으면 될 것 같다. 1989년 <최후의 ‘만주국’ 붐을 읽는다>라는 글이 발표되었을 때 저자는 고도성장기가 끝나고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질 무렵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저자의 생각에서 출발하여 만들어졌다.
개인적으로는 만주국을 괴뢰국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저자는 만주국이 괴뢰국가이고, 국가 형태를 취한 식민지지배의 통치 양식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구의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나 통합 아시아를 꿈꾼 이상국이기도 했다고 이야기한다. 솔직히 이상국가라는 이야기는 선뜻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서 왜 그렇게 말하는지 뒷 이야기를 지켜보기로 했다.
1920년대 만주와 몽골에 대한 권익 싸움으로 중국과 일본은 격렬하게 대립 중이었다. 1928년 10월 이시하라 간지가 관동군 작전주임참모로 부임했다(그는 향후 이타가키 세이시로와 만주사변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이시하라는 장쭤린 폭살 사건 전 1927년부터 이미 만주와 몽골을 영유해야 한다는 생각(만몽영유론)을 가지고 있었다.
만몽 영유가 불가결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것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절실한 현안이 있고, 그것이 또한 일본의 국운을 좌우할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일본의 국운을 결정하는 과제였던가.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이 총력전 수행을 위한 자급자족권의 확립이라는 과제인데, 이것은 당연히 일본의 국가개조와 맞물려 있었다. 그리고 둘째로 들 수 있는 것은 국방·전략상의 거점 확보라는 과제인데, 이것은 또한 조선 통치와 방공(防)이라는 이데올로기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다. 물론 이 두 가지 과제는 연관되어 있어 일련의 문제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만몽 영유를 달성하면이 과제들이 한꺼번에 해결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한 "국내의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대외 진출에 의존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작동하고 있었다. - P43
관동군은 국제적으로 1929년 세계경제공황의 상황으로 미국과 영국이 정신이 없을 때, 중국이 통일을 위해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대결로 전력을 기울이고 있어 만주사변을 일으킬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국내적으로는 여론이 정부보다는 군부를 지지했던 이유도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로는 우선 1929년 가을 이래 세계공황에 의해 "자본주의 일본의 국민경제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국민이 만몽에서 그에 대한 해결을 구했다는 경제적 배경을 들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장쭤린 폭살 사건으로 만몽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군부가 "앞으로는 반드시 여론의 후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여론을 환기시킬까를 연구하고 조직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기를 도모하면서 매우 정력적으로 여론 조작을 추진한 것도 한 원인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1월에는 사회민중당도 만주사변 지지를 결의하고, 12월11일 와카쓰키 내각의 총사퇴에 의해 시데하라 외교가 종언을 맞이하는 등 사태는 급전되었고, 만몽 처리에 관해서는 관동군이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 P85~86
만주국 건설에는 만주 현지 지역의 군벌과 친일 단체 협조의 힘이 컸다.
장쭤린의 책사이자 평톈 지방자치유지위원회 의원이었던 위청한은 장쉐량 군벌 및 난징 정부의 입김에서부터 벗어나 자체적인 이상적 왕도정치를 실현시키고 군대를 폐지한 뒤 군사적 기능을 일본에 위임하겠다 했다.
또한 만주청년연맹은 ① 둥베이 4성의 철저한 문호개방, ② 현주 각 민족협화의 취지에 의해 자유평등을 지향하고, 현 주민으로 자유국민을 구성한다. ③ 군벌을 배제하고 철저한 문치주의로 다스리며 병란이 잦은 중국 본토로부터 분리하여 둥베이 4성의 경제적 개발을 철저히 한다는 것 등이 강조하면서 위청한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구미에 맞는 것이었다.
중국 본토로부터 단절된 왕도국가를 건설해 아시아 부흥의 초석으로 삼는다는 생각은 가사기를 중심으로 한 ‘다이유호카이’라는 단체도 꿈꾸던 바다.
만주국 정치를 결정했던 것은, 괴뢰국가·보호국화라는 국제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표면상으로는 현지 중국인의 자주적 발의의 의해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관동군의 지도하에 일계 관리에 의해 일본의 통치 의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실현하는가 하는 요청이었다. 그리하여 표면과 내면의 괴리라는 모순을 가지고 있으면서 만주국으로 하여금 "영원히 우리 국책에 순응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일·만 관계의 기조가 되었던 것이다. - P203
1929년 세계 공황 이후 일본 경제 막다른 길에 몰린다. 일본 농촌은 노동 쟁의가 최고조에 이르고 실업자 수도 상당했으며 결식 아동이 속출하고 생활고로 부모자식이 동반 자살, 딸을 파는 부모도 많았다고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만주국에서 희망을 찾겠다는 만주국 붐을 일으킨다. 하지만 과대하게 선전된 만몽의 자원과 이권에 일본인의 활동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정적 자원에 수요는 많으니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만주국 건국을 둘러싸고 정부 계열 간 균열이 발생하면서 자치지도부 사람들이 중앙정부로부터 배제되는 상황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1932년 만주국 승인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되고 <일만의정서>에 의해 만주국 통치의 실권은 일본이 법적으로 장악하게 되었다. 쇼와 천황은 무토 노부요시 관동군 사령관에게 “장쉐량 시대보다도 한층 선정을 베풀도록 노력하라”는 훈시를 했다.
일본인은 만주국의 제제를 천황제와 유사한 형태로 만드는 것에는 이상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천황제의 황실에 대응하여 제실이 만들어졌고, 국문장에 대응하여 제제 실시 후 일본식으로 난화(花)가 문장이 되었다. 이외에 궁성(宮城)에 대응한 제궁(宮), 행행(行)에 대응한 순수 나중에 순행), 어진영(御眞)에 대응한 어용(御容: 나중에 어영御影), 황위에 대응한 제위, 황후에 대응한 제후라는 식으로 만주국제제는 천황제의 모조)로서 만들어져 갔던 것이다. - P255
일본은 이렇게 천황제 시스템을 이용하여 만주국 체제를 이용하여 구성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일본과 만주국은 마치 마주보고 있는 거울상처럼 일본은 만주국의 상 속으로 각각을 투영시켜 무한의 상을 겹쳐간다.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이 자기이고 그 모든 것이 타자인 것처럼 진위를 가리기 힘들게 되어 간다.
그러나 일본과 만주가 긴밀하게 이렇게 움직이려 했으나 전쟁 상황은 날로 악화일로를 걸어갔고 상황은 점점 어려워져갔다.
일. 만 관계가 진정으로 새로운 이념하에서 독자적인 국제관계를 창출했다고 한다면, 그것을 말하는 데 적합한 개념과 체계로써 구미의 정치학이나 법률학도 납득시킬 수 있을 만큼의 설명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노력 없이 구미의 정치학과 법률학에서 말하는 ‘괴뢰국가의 개념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시아 역사 자체가 용납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가 바로 지적 오만이고 지적 제국주의의 다른 형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또한 만주국을 괴뢰국가로 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아시아 역사 자체"란 도대체 어디의, 어떤 역사란 말인가. 건국 이래 일관되게 만주국을 괴뢰국가로 지탄해 왔던 중화민국과 삼십 몇 만이나 되는 반만항일군 전사들, 그리고 앞에서 든 겐코쿠대학의 중국인 학생은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아시아를 거론할 때 우리들 일본인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항상 아시아 담론을 기만의 방패로삼아 왔다. 만약 자신의 삶을 경멸할 생각이 없다면 21세기에는 이러한 ‘아시아‘라는 담론으로 자신과 타자를 함께 속이는 일만큼은 절대로 하지 않았으면 하고 절실히 생각한다. - P334
재만 조선인은 만주국 시대에 일본인=‘동양궤이즈(東洋鬼구)‘에 다음가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얼웨이즈(鬼)‘로서 전후에는 참혹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지만, 경제적 이유 등으로 귀국도 할 수없어 112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만주에 잔류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족은 일본인 다음가는 "만주국 중요 구성분자"로서 국방의 책무를 담당했는데, 동시에 ‘황국신민‘으로서 징병 · 징용되어 중국·남방전선에 동원됨으로써 전범이 되거나 시베리아에 억류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패전 후에는 일본국적을 상실했기 때문에 보호나 보상의대상에서도 제외되었다. - P399
윗 구절을 읽으며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일본이 만주국을 통해 설사 이상향을 꿈꾸었다고 해도 그 방향은 분명 평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고 주변을 핍박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고 여긴다.
책의 말미에는 보론을 싣고 있다. 책의 특성상 간단하게 다뤄져 언급하지 못했던 질문을 추려 저자가 답을 하는 형태여서 독자가 궁금해 가려웠던 부분을 긁어주었다.
1945년 만주국이 무너지고 나서 일본인은 어떤 상황에 처했을까. 급속도로 증가했던 재만 일본인은 중국의 내전으로 일본으로 귀환하려다 상당수가 목숨을 잃거나 시베리아에 억류당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일부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현지에 남아 전문 지식과 기술을 중국인에게 전했다고 한다. 현지에 자발적으로 남은 이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잘 몰랐던 부분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알게 됐다.
대한민국 정부의 탄생에도 여러 인물이 만주국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국가 탄생 이후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친일 청산과 현재도 뿌리 깊은 이념 때문에 벌어지는 색깔 논쟁은 고질병이 된 것이 아닌가 싶어 씁쓸해진다.
이미 소멸해버린 만주라는 공간, 만주국이라는 국가를 거론하는 것은 일종의 시대착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무참한 희생을 조금이나마 보상하고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인류의 예지를 이끌어내어 후세에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은 그것을 과거의 사실로 망각할 수는 없는 게 아닐까.
만주국이 그러한 사상과제를 가지고 있는 이상, 그것은 ‘영원한 현재’로서 계속 존재할 터이다. - 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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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4-05-31 공감(1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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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은 어떻게 건국되고 변형되었는가
만주국은 관동군의 전략거점으로 시작되었으나, 그 발상은 민족협화, 왕도낙토라는 이념으로 다양한 행위자들을 불러모아 “이상국가를 건국하려는 운동의 장”으로 포장되었다. 머리는 관동군, 몸통은 천황제, 꼬리는 근대 중국으로 구성된 ‘키메라’ 만주국에서 민족협화와 왕도낙토 따위의 이념은 분식에 불과하였을 뿐 만주국은 관동군 중앙독재의 ‘국방국가’였다. 변형을 거듭하여 완성된 모조(模造)천황제 만주국의 천황을 위한 전력투구는 만주국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보여준다.
만주에 대한 일본의 집착은 일본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선반도를 확보해야한다는, 주권선과 이익선에 관한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연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0년에 제기된 아먀가타 아리토모의 이익선은 더욱 확장되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의 국권회수운동과 국민당의 북벌에 직면해서는 “전쟁으로 전쟁을 유지하는” 총력전을 위해서, 나아가 세계최종전으로서의 일미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전략거점으로서 만주를 영유해야한다는 관동군 참모 이시하라 간지의 만몽영유론으로 발전되어 나타난다. 만몽영유론은 육군 중앙부의 반대로 독립국가 건설로 전환되기는 하였으나 이후 관동군 주도의 건국 공작은 육군 중앙부와 외무성의 통제 밖에 있었다.하지만 갑작스레 만주에 새로운 국가가 수립되어야 하는 이유에 관동군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 덧붙여진 정당화가 현지 세력을 동원한 건국 공작과 왕도국가론이다.
관동군은 장쉐량에 반대하여 만주 지역의 독립성을 주장하던 세력들과 청조 복벽을 꿈꿔온 선통제파를 중심으로 하여 자발적 분리에 따른 독립국 건설이라는 방식을 취한 후 선통제 푸이를 집정으로 내세웠다. 동시에 만주국은 재만 중국인들의 자발적 운동으로 성립된 독립국이어야 했기 때문에 관동군은 '자발적인' 건국운동 단체로서 자치지도부를 발족시켰다. 자치지도부는 장쉐량과 군벌, 국민정부를 모두 패도정치로 규정하고 민중자치의 왕도국가 건설, 일·조·중·만·몽의 공존공영이라는 민족협화, 안거낙업, 순천안민의 낙토를 실현한다는 일념으로 건국운동을 주도하였다. 하지만 자치지도부의 건국운동은 “메이지 천황의 위대한 뜻을 받들어, 진정 일본이 짊어질 대사명의 제일보를 이 인연 깊은 만몽의 땅에 내리려는 데 있다.”라고 하는 <지방자치 지도원 복무심득>에서 알 수 있듯이 천황제 국가 일본의 '자민족 중심주의'가 짙게 밴 것이었고 이것이 만주국의 본질이었음은 만주국의 통치체제에서 드러난다.
관동군의 만주국 통치 기본방침은 만주국의 국방을 일본에 맡기고 일본의 말을 듣게끔 하여 "일만일체의 국방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자치지도부와 같은 건국운동 단체들은 퇴조될 수밖에 없었고 관동군과 총무청 중심의 중앙독재주의에 가까운 통치체제가 성립되었다. 이후 만주국은 두 가지 변화를 통해 ‘일만일체’를 이뤄가는데 하나는 1934년 제제만주국으로의 이행이고, 다른 하나는 행정테크노그라트 관료의 진출이다. ‘2키 3스케’로 대표되어 전후 일본에서도 영향력을 미칠 행정테크노그라트 관료들은 일본 각 성에서 파견되어 일·만 행정의 일체화를 꾀하였고 1937년에 이르러서는 기시 노부스케를 중심으로 통제경제를 주도하였다. 이렇게 일만일체를 이룩한 모조(模造)천황제 혹은 ‘상사형(相似形)’천황제 만주국은 태평양전쟁 이후 ‘일본의 식량 창고’로서 기능하였거니와 당초의 왕도국가, 민족협화로부터 멀어진 일본의 국방국가, 병영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왕도국가, 민족협화를 위해 만주국에 뛰어든 몇몇 자들의 순수한 신념까지 비난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만주국을 만들어내고 변형시켰던 것은 일본 민족이 정치의식이 미약한 중국을 지도해야 하고 일본 민족이 아시아의 부흥을 주도해야 한다는 기시감이 느껴지는 극도의 ‘자민족 중심주의’였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야마무로 신이치가 규정하듯이 키메라 만주국의 몸통이자 근대 일본의 본질인 ‘천황제’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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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소리 2024-04-23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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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북결산, 읽고 사고 살고
요즘은 당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벌써 5월이 끝났다니…
아무튼 5월 북결산이다. 업무로 노트북을 계속 들고 다니고 있어서 종이책을 읽기 어려웠고 주말에도 출근을 한 적이 많아서 억지로 이북을 좀 읽었다.
읽은 책들이 전반적으로 평타 이상이었다.
김기태의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역시 좋았다. 앞으로를 기대하게 하는 작가가 될 것 같은데 부디 계속 건필하기를!
제이미슨의 책은 롤러 걸을 기존에 읽었었는데 그 책도 좋았지만 나는 이 책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눈여겨보는 주제와 관심사라면 아무래도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만주국에 관한 입문서, 만주족에 대한 역사서도 잘 읽었다.
최근에는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하늘 한 번 쳐다보기도 어려워서 사진도 찍지 못하고 지냈다.
이번주 볕은 따뜻한데 바람이 불어서 하나도 덥지 않은 그야말로 미친날씨였다.
어제, 오늘은 도무지 가만 있기는 아까워서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나가서 걸었다.
올 여름 장미도 못 보고 지나가나 했더니 장미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5월이 끝나기 직전 책을 샀다.
12.12 사건을 다룬 책과 이번 달 여성주의 책, 그리고 주역을 샀다. 셋 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 집히는 대로 샀다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 보관함에 있던 책들이니 막 고른 것은 아니다^^;;;
6월은 제발 안 풀리던 일이 좀 풀려서 원하는 페이스대로 살 수 있는 날이 되면 좋겠다.
모두 행복한 달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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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4-06-02 공감 (2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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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간 소식]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

만주국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책이 야마무로 신이치의 <만주국, 키메라의 초상>인데
국내에는 소명출판에서 2009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어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소명출판은 절판도서라도 주문을 넣으면 소량제작으로 판매하여 저는 그렇게 구매했습니다.
2주쯤 전에 저 책을 중고로 내다팔았는데 이렇게 다시 복간되니 다시 사라는 시그널인가 싶네요.
표지갈이만 한 거 아니냐 싶지만 출판사 서평을 보니 일부 번역 오류를 바로잡았다고 합니다. (그 책을 산 분한테는 약간 미안해지네요)
만주국을 단순히 일본의 꼭두각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관동군, 마르크스주의 지식인, 만주인 등 여러 집단이 만주국 건설에 참여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족협화 등의 이념이 어떻게 작동했고 각 집단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등 만주국의 역사를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역작입니다.
구 번역본에서 일부 내용 발췌
"이시하라가 만주국에 부임한 1937년에는 이미 만주국은 건국에 가담한 사람들의 손에서 훨씬 멀어져 능리형 군인, 행정 테크노크라트, 특수회사 경영자라는 철의 삼각추에 의해 운영되는 체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체제를 상징하는 것이 '2키 3스케'라 불린 호시노 나오키, 도조 히데키, 기시 노부스케, 아유카와 요시스케, 마쓰오카 요스케이다." (242~243)
"제국주의적 지배에 대한 반발과 그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만주국 건국 이념에도 불구하고 만주국 통치의 정당성 근거는 결국 서양 근대가 낳은 법에 의한 지배에서 구해졌고, 그것이 또한 만주국의 문명화이자 근대국가로서의 표징이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즉 '문명을 보급시키는 사명(mission civilisatrice)'이 지배의 정당화 근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일본도 또한 자신이 비판한 바로 그 서양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244~245)
"일본과 만주국은 마치 마주보고 있는 거울상처럼 일본은 만주국의 상 속으로 만주국은 일본의 상 속으로 각각을 투영시켜 무한의 상을 겹쳐간다.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이 자기이고 그 모든 것이 타자인 것처럼 진위를 가리기 힘들게 되어 간다. 그렇게 하여 일본도 만주국에서 반사되는 빛에 의해 자신의 상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고 한다면, 만주국이라는 한쪽 거울 면이 파괴되어 사라짐으로써 일본도 또한 본래의 자기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기왕에 더 추천해보는 만주국 관련 도서



프라센지트 두아라, <주권과 순수성>
래너 미터, <The Manchurian Myth>
한석정, <만주 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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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4-02-10 공감 (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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