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8

아버지의 조선식산은행 (前 한국산업은행) 통장 : 네이버 블로그

아버지의 조선식산은행 (前 한국산업은행) 통장 : 네이버 블로그

아버지의 조선식산은행 (前 한국산업은행) 통장
지풍화수
2020 5 18

1947년 개설하여 사용하셨던 아버지의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 통장과 할아버
지의 통장을 어머니가 보관하고 계셨고, 2015년 경 어머니의 이삿짐을 정리하며 통
장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1947년이면 해방이 된지 2년이 지났지만 아래 사진에
서 보듯이 여전히 통장은 일제식민통치시기에 만들어진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더구나 할아버지 통장은 1952년(단기4285년)에 개설되었지만 역시 일제시기 통장
이 사용되고 있었다.
이는 아무래도 인쇄해놓은 통장이 많아 폐기하느니 그냥 사용해왔던 것이 아닐까 생
각한다. 어찌 되었든 선대 어른들이 남긴 오래된 통장을 보며 조선식산은행이란 어
떠한 은행이었고 어떻게 설립되었을까? 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이 글을 끄적
거려본다.
조선식산은행은 현재의 한국산업은행 전신으로 일본식민통치시기에 만들어진 은행
이었다.
전신(前身)은 全 조선에 산재했던 농공은행(農工銀行) 6개가 합병하여 다이쇼(大
正)7년(서기1918년)자본금 1,000만엔으로 설립되었다.
농공은행 6개는 다음과 같이 경상(慶尙), 평안(平安). 전주(全州), 광주(光州), 함경
(咸鏡), 한호(漢湖)은행이 있었다. 한호 농공은행이 경성의 조선식산은행 본점이 되
었으며 후에 좌우로 증축을 하여 면적을 넓혔다.

이들 은행들이 합병하게 된 계기는 조선의 산업발전을 위해서는 개별 농공은행이나
동양척식이 융자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하세가와 요시미치 총독(長谷川
好道 1916 - 1919 재임)의 조선식산은행령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다이쇼14년(서기1925년) 증자가 이루어져 자본금이 3,000만엔으로 늘어났으며, 쇼
와(昭4 和)11년4(서기1936년)이 되자 18은행 부산지점 등 9개의 해외지점을 흡수하여
사세를 확장해 갔다.

쇼와3년(서기1928년)이 되면 全 조선에 있는 식산은행의 지점은 총 57곳으로 늘어
난다. 물론 경성 본점을 포함한 숫자이다.
즉 경기도 3곳(인천, 수원, 개성) 충청북도 2곳(청주, 충주) 충청남도 5곳(공주, 조
치원, 대전, 논산, 강경) 강원도 3곳(춘천 철원 강릉) 전라북도 7곳(전주, 군산, 뒷리,
정읍, 김제, 남원, ?포) 전라남도 7곳(광주, 목포, 여수, 벌교포, 영산포, 제주도, 송정
리) 경상북도 4곳 (대구, 포항, 김천 상주) 경상남도 6곳 (부산,마산, 통영, 진주, 부산
진, 신마산) 황해도 2곳 (해주, 사리원) 평안북도 6곳 (의주, 신의주, 박천, 선천, 영
변, 강계) 평안남도 3곳 (평양, 진남포, 안주) 함경북도 5곳 (청진, 나남, 성진, 웅기, 회
령) 함경남도 2곳 (원산 함흥)이 있었다.

식산은행의 업무는 산업금융, 공공금융, 보통은행업무, 저축예금업무 등 4가지로 나
누어져 있었다.
식산은행은 1945년 해방 후 9월 일본 조선식산은행이 폐쇄되고 한국식산은행으로
개칭된 후 1954년 한국산업은행으로 발족되었다.

일본식민통치시기 일본에서 정식으로 경제학을 배운 조선의 엘리트들은 조선은행
(전 한국은행)과 조선식산은행에 앞 다투어 들어갔고 해방 후 이들은 한국은행 설립
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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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 특별당좌예금 통장의 표지면

표지면을 펼치면 나오는 2면인데 우측면의 좌 하단부에 "이 통장은 후일 필요에 따라 국어로 작성함을 약속함" 이라고 스탬으로 찍혀있다.
3면의 모습으로 조선식산은행 대전지점장 최00, 수입증지가 붙여져 있는 모습
4면에 통장개설 당시의 입금액이 기록되어 있다.
할아버지 통장의 표지면 모습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다.

할아버지 통장은 청주지점에서 개설된 것으로 시기는 단기4285년(1952년)으로 기록되 있다. 이 시기에는 조선식산은
행에서 한국식산은행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위 사진에서 보듯이 조선 옆에 한국(韓國)이란 한자 스탬프가 찍혀 있다.
에금 인출할 때 사용되는 특별당좌예금청구서 용지 이것도 역시 일제시기 사용했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진출처 하나은행 공식 블로그> 1907년 충주농공은행·공주농공은행이 한성농공은행에 합병되면서 한호농공은행(漢湖農工銀行)으로 개칭되었다.

<사진출처 하나은행 공식 블로그> 한호농공은행을 증축하여 넓혀진 조선식산은행 본점으로 주소는 경성부 남대문통2정목(현재 서울 중구 남대문로 2가) 현 롯데백화점 자리에 있었다.

<사진출처 하나은행 공식 블로그> 조선식산은행 은행원들의 집무 모습
<사진출처 하나은행 공식 블로그> 조선식산은행 창구에서 업무를 기다리는 고객들

<사진출처 나와 유의 오감 만족기> 1937년 건립되어 조선식산은행 대전지점으로 1997년까지 한국산업은행으로 사용되었다.

1939년(昭和14年)에 발행된 조선식산은행 주권으로 1주에 50원으로 10주 주권이다. 소유자는 기무라 쥰사이다.

자료출처 중앙선데이 중앙은행 오디세이

서울의 남대문로는 일제식민통치시기 남대문통으로 경성의 월스트리트라고 할 정도
로 많은 금융기관이 산재되어 있었다.
지금이야 여의도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금융중심지가 되었지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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