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1

민주화 이전의 한일관계 < 손민석 2024

민주화 이전의 한일관계 < 손민석의 털어놓고 말하자면 < 연재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매일노동뉴스

손민석의 털어놓고 말하자면
민주화 이전의 한일관계기자명손민석
입력 2024.08.20

▲ 손민석 <지록위마의 시대> 작가

이쯤 되면 어느 책의 제목처럼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자연스럽다. 후계자로 보이는 여당 대표한테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으면서 21번의 거부권 행사부터 채상병 특검, 대일관계 등에 이르기까지 야권 전체에 대한 도발을 이어 가고 있는 걸 보면 검사 출신이라 자신이 법적인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그만큼이나 확신하는 건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후보 시절의 말을 빌리자면….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어요.”

특히 한일관계가 그렇다. 대일관계 개선이 최대 업적이라 생각해 집착하는지 모르겠지만, 한일관계는 애당초 ‘임기 5년’의 대통령이 좌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민족공동체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를 지도자의 ‘고독한’ 결단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은 결과를 지금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영구집권을 꾀한 권위주의적 지도자조차 해결 못 한 문제를 고작 임기 5년의 대통령이 국민의 절반을 배제한 채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으니 ‘그의 운명’에 대한 걱정이 들 수밖에.

한일관계의 핵심에는 ‘식민지배’가 놓여 있다.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한국과, 법적인 책임이 없다며 도의적인 책임만 내세우다 이제는 그것마저도 지지 않으려 하는 일본 간의 대립은 식민지배에 대한 상이한 이해에서 비롯됐다. 1945년 8월15일을 ‘해방’으로 기억하는 한국과 ‘제국으로부터의 분리’로 여기는 일본의 인식 차이를 어떻게 좁힐 것인가? 1951년 도쿄의 연합국 최고사령부 회의실에서 개최된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예비회담장에서 있었던 한국측 대표 양유찬 주미대사와 일본측 대표 치바 히로시 교체수석대표 간의 다음의 대화는 이 문제의 지난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지난날 당신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배상 같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겠다. (…) 이제 우리 화해하자.”(양유찬)

“화해할 게 뭐 있습니까?”(치바 히로시)

냉전이라는 국제적 조건은 이러한 인식의 격차를 국익이라는 ‘현실’을 내세우며 강제적으로 봉합하게 만들었다. 비록 ‘제국 일본’이 ‘민주화된 일본’으로 바뀌었지만, 그들이 주변 민족들을 대하는 태도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제국’이 폭력을 앞세워 식민화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다면 ‘민주화된’ 일본은 권위주의적 정부들과 결탁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다. 심지어 법적인 논리를 앞세워 식민지배 문제 자체를 ‘완전히’ 해소하는 식으로 제국 일본을 긍정하고자 했다. 한국의 독재정권과 일본의 민주정부 간 ‘결탁’은 김대중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이 한국의 민주화를 일본의 민주주의와 연결시키면서 많이 형해화됐지만 제도적으로는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한국의 뉴라이트는 바로 그 틈을 파고 든다. ‘민주화된’ 한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일본의 책임은 도외시한 채 식민지배 및 그것을 정당화한 독재정권의 ‘유산’을 그대로 수용하라고, 그래야 ‘근대적’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뉴라이트가 악당이라, 매국노라, 친일파라 이런 주장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독재정권이었을지라도 과거의 한국 정부가 일본과 맺은 관계는 지금의 우리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잘라내 버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이 문제는 민주화된 한일이 어떤 인식에 기초해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논할 때 해결될 수 있다. 타인을 예속시키는 식민지배에 대한 무반성은 양국 모두의 인권·민주주의 등을 후퇴시킨다. 예컨대 위안부가 ‘매춘’을 했다고 한 반일종족주의자 이우연은 N번방 피해자들을 비난한 적이 있다. 매춘부든 아니든 국가가 여성의 성을 착취해서는 안된다는 인권의식의 부재가 현재로 이어지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식민지배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는 인권도, 민주주의도 지킬 수 없다는 인식을 한일 양측에서 이끌어 낼 때 비로소 영구적인 해결이 가능해진다. 대통령이 할 일은 그 인식의 통일을 위한 단초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 정권 바뀌면 엎어질 ‘치적’을 쌓는 게 아니다. 지금이라도 그나마 남은 대화의 여지를 없애는 일을 멈추기를 대통령께 간청한다.

<지록위마의 시대> 작가 (fpdlakstp@naver.com)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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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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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문제는 결국 '주체'의 문제이다. 제국주의 일본이 주변 민족들과 맺었던 억압적인 관계가 냉전적 굴절을 거치면서 '민주화된 일본'에서도 지속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한국의 권위주의 정부들은 이에 반발하기도 했지만 결국 경제성장 등의 '국익'을 이유로 이를 용인하였고 뉴라이트 또한 결과적으로 경제성장 등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고 큰소리치는 것이다. '주체'를 억압하는 대신 그것을 물질적 번영 등의 수치로 치환하는 것, 이것이 식민주의의 본질이 아닌가 한다. 물론 독재정권과의 상호작용이 마음에 안 든다 하여 지워낼 수는 없지만, 일본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은 당연히 필요하다. '신냉전' 운운하며 이 주체의 문제를 또 지워버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부정해버려 생긴 문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결국 일본 내부의 리버럴-좌파들과 연대하며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형성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지난한 길이지만 걸을 수밖에.. 한국 진보진영은 이걸 자꾸 옳고 그름의 문제로 치환하는데 그래서는 답이 없다. 한국은 피식민국가로서 최초로 제국주의 모국과의 관계 재정립에 나서는, 세계사적인 사건을 경험하고 있다. 이걸 잘 해야 된다 정말..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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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전의 한일관계
 원래의 글의 제목이 "민주화된 한국과의 관계맺기에 실패하는 일본"이었는데, 그 제목이 더 나은 것 같네요. 한일관계는 결국 '식민지배'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고 이는 '민주화된 한국'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무능이 그 원인입니다. 뉴라이트가 파고 드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지요.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봅니다. 많은 질정 바랍니다.
"한일관계의 핵심에는 ‘식민지배’가 놓여 있다.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한국과, 법적인 책임이 없다며 도의적인 책임만 내세우다 이제는 그것마저도 지지 않으려 하는 일본 간의 대립은 식민지배에 대한 상이한 이해에서 비롯됐다. ...
냉전이라는 국제적 조건은 이러한 인식의 격차를 국익이라는 ‘현실’을 내세우며 강제적으로 봉합하게 만들었다. 비록 ‘제국 일본’이 ‘민주화된 일본’으로 바뀌었지만, 그들이 주변 민족들을 대하는 태도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제국’이 폭력을 앞세워 식민화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다면 ‘민주화된’ 일본은 권위주의적 정부들과 결탁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다. 심지어 법적인 논리를 앞세워 식민지배 문제 자체를 ‘완전히’ 해소하는 식으로 제국 일본을 긍정하고자 했다. 한국의 독재정권과 일본의 민주정부 간 ‘결탁’은 김대중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이 한국의 민주화를 일본의 민주주의와 연결시키면서 많이 형해화됐지만 제도적으로는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한국의 뉴라이트는 바로 그 틈을 파고 든다. ‘민주화된’ 한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일본의 책임은 도외시한 채 식민지배 및 그것을 정당화한 독재정권의 ‘유산’을 그대로 수용하라고, 그래야 ‘근대적’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뉴라이트가 악당이라, 매국노라, 친일파라 이런 주장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독재정권이었을지라도 과거의 한국 정부가 일본과 맺은 관계는 지금의 우리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잘라내 버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이 문제는 민주화된 한일이 어떤 인식에 기초해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논할 때 해결될 수 있다. 타인을 예속시키는 식민지배에 대한 무반성은 양국 모두의 인권·민주주의 등을 후퇴시킨다."
Sung Won Kim
국제 정치와 외교도 좀 공부하고 고민하고, 국제 연대 시야도 넓히고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17 h17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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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김성원 ㅠㅠ 그러게요..
17 h17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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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 Won Kim
손민석 예전에 한국이 '아시아의 미국'을 꿈꿔야 한다고 하신 것 같은데, 세계 10위권 국력으로도 사방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꼴을 보니 불가능한 꿈 같아 보이지만 미국의 국력과 유럽의 복지를 모두 보유한 나라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현실은 정말 녹록치 않은 상황이지만 말이죠.
17 h17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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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손민석
김성원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어려워 보입니다.. 제가 속해 있는 진영이 세를 얻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이네요. 그저 나중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잘 정리해두어야겠다는 게 지금 제 생각입니다.
17 h17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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