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joo Jeong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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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고발 11년 1개월 만에,
<제국의 위안부> '삭제' 가처분을 취소하는 가처분결정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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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025년 7월 15일, 서울동부지법 제21민사부에서
"1. 위 당사자 사이의 이 법원 2014카합10095 도서출판등금지 및 접근금지 가처분 사건에 관하여 이 법원이 2015. 2. 17. 한 가처분결정 중 채무자들의 패소 부분을 취소한다.
2. 제1항에서 취소를 명하는 부분에 해당하는 채권자들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한다."
는 결정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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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 당사자 사이의 이 법원 2014카합10095 도서출판등금지 및 접근금지 가처분 사건에 관하여 이 법원이 2015. 2. 17. 한 가처분결정 중 채무자들의 패소 부분을 취소한다.
2. 제1항에서 취소를 명하는 부분에 해당하는 채권자들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한다."
는 결정이 나왔습니다.
고소고발에서 11년 1개월이 지났고, '34곳을 삭제하지 아니하고는 판매... 등을 해서는 아니된다'는 가처분 일부인용 결정으로부터 10년 5개월이 지나서 나온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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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의 이유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고 인격권을 침해하지도 않았다는 형사-민사재판의 판결과 거의 같은데,
판단의 이유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고 인격권을 침해하지도 않았다는 형사-민사재판의 판결과 거의 같은데,
그래도 숱한 기사와 글들이 갖다붙이는 '매춘부, 동지적 관계'라는 공격 프레임이 무슨 의미였는지, 재판부의 독해가 담겨 있는 결정문 대부분을 아예 붙여둡니다.
(제가 100% 흡족한 건 아닙니다만.) 재판과정 정리된 부분부터요.
기사/글을 쓰실지 안 쓰실지 모르지만, 그전에 꼼꼼히 읽어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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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무삭제 원본복원판' 준비에 들어갑니다.
제가 11년 동안 줄곧 얘기해왔던 것처럼, '법정이 아니라 광장에서'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이제 '무삭제 원본복원판' 준비에 들어갑니다.
제가 11년 동안 줄곧 얘기해왔던 것처럼, '법정이 아니라 광장에서'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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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국의위안부] <고소고발 11년 1개월 만에, '삭제' 가처분을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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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판소 판결문 중의 사진에 나온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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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이 사건 도서의 출판금지가처분 신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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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채권자 등은 2014. 6. 17. 이 법원에 채무자들을 상대로 주위적으로는 '채무자들은 이 사건 도서의 출판, 발행, 인쇄, 복제, 판매, 배포, 광고를 하여서는 아니 되고, 채무자 박유하는 채권자 등과 채권자 등 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접근 및 취재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내용의, 예비적으로는 '채무자들은 이 사건 도서 중 별지 3 목록 기재 53군데의 밑줄 친 부분을 삭제하지 아니하고는 출관, 발행, 인쇄, 복제, 관 매, 배포 및 광고를 하여서는 아니 되고, 채무자 박유하는 채권자 등과 채권자 등 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접근 및 취재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의 도서출관금지 및 접근금지 가처분을 신청하였다(서울동부지방법원 2014카합10095호). 이에 대 하여 이 법원은 2015. 2. 17. 채권자 등의 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이 사건 도서 중 별지 2 목록 기재 34군데의 밑줄 친 부분을 삭제하지 아니하고서는 위 도서의 출판, 발행 등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일부인용결정(이하 위 결정 중 채무자들 패소 부분을 '이 사건 가처분결정'이라 한다)을 하였다.
2) 채무자 박유하는 2015. 6.경 위 가처분 결정에서 인용된 표현 부분을 빈칸으로 처리한 후 '제국의 위안부(34곳 삭제판)'를 재출간하였다.
바. 관련 형사사건의 진행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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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채무자 박유하는 2015. 12. 7. 2013. 8. 12. 서울 마포구 서교동 541-28에 있는 '뿌리와 이파리' 출판사에서, 범죄일람표1 기재 35개 표현2)과 같이 허위의 사실이 적시된 이 사건 도서를 출판하고 그 무렵 전국 서점 등을 통해 배포함으로써 공연히 채권자 등을 포함한 고소인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공소사실로 기소되었다(이하 관 런 형사사건'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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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울동부지방법원은 2017. 1. 25. 범죄일람표1 기재 표현이 명예훼손죄를 구성한다거나, 채무자 박유하에게 명예훼손의 고의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로 채무 자 박유하에 대하여 전부 무죄를 선고하였다(서울동부지방법원 2017. 1. 25. 선고 2015 고합329 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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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위 제1심 관결에 대하여 검사가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로 항소하였다. 서울고등 법원은 2017. 10. 27. 공소장변경으로 인한 심판대상의 변경으로 원심판결을 직권기
하면서, 범죄일람표23) 순번 5, 7, 10, 11, 16, 20, 23, 26, 27, 30, 34 기재 표현의 경우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고 명예훼손에 대한 채무자 박유하인의 고의도 인정된다는 이유로 검사의 항소를 일부 받아들여, 원심관결을 파기하고 위 표현 부분에 대한 명예훼손죄 를 유죄로 인정하되, 다만 나머지 표현은 의견의 표명에 불과할 뿐 구체적 사실의 적 시라고 볼 수 없다고 보아 이유에서 무죄로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7. 10. 27. 선 고 2017노610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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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위 항소심 판결에 대하여 채무자 박유하와 검사는 법리오해를 이유로 각 상고 하였다. 대법원은 2023. 10. 26. 위 항소심 판결의 이유무죄 부분에 대한 검사의 상고 이유는 배척하였으나, 유죄 부분에 대하여는 명예훼손죄의 사실 적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관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으므로 파기되어야한다고 판단하였고, 다만 위 파기 부분은 이유에서 무죄로 판단한 부분과 일죄의 관계에 있으므로, 위 항소심 판결 을 전부 파기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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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법원의 파기 환송 취지에 따라, 서울고등법원은 2024. 4. 12. 채무자 박유하 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24. 4. 12. 선고 2023노3351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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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관련 민사사건의 진행 경과
1) 한편 채권자 등은 2014. 6. 17. 서울동부지방법원에 채무자들을 상대로 '채무자 들이 별지 2 목록 기재 표현이 담긴 이 사건 도서를 집필하고 출판함으로써 채권자 등 의 명예를 훼손하고 인격권을 침해하였으므로, 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으로 연대 하여 채권자 등에게 각 3,000만 원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소(서울동부지방법원
2014가합104726호)를 제기하였고, 제1심법원은 2016. 1. 13. 채무자 박유하가 이 사건 도서에서 사용한 별지 2 목록 기재 표현들 중 순번 19, 25를 제외한 나머지 표현들이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여 채권자 등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채권자 등이 피해자라는 사 실을 왜곡함으로써 채권자 등의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여, 채무자 박유하는 채권 자 등에게 가 1,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일부인용관결을 선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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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 제1심 판결에 대하여 채무자 박유하가 항소하였는데(서울고등법원 2016나 2009351호), 항소심법원은 2025. 1. 22. 별지 2, 3 목록4) 기재 표현은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므로 채무자 박유하가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여 채권자 등의 명예를 훼손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고, 위 표현이 모욕적이고 경 멸적인 인신공격 혹은 사실을 왜곡하는 공표행위에 해당하여 채권자 등의 인격권을 침해하였다고 인정하기도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채권자 등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는 판결 을 선고하였고, 위 판결은 2025. 2. 19. 상소기간 도과로 그대로 확정되었다(이하 확정된 위 항소심판결을 '이 사건 민사관결'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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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당사자들의 주장 요지 가. 채권자들의 주장 요지
채무자 박유하는 이 사건 도서 중 별지 2 목록5 기재 각 표의 표현' 부분(이하 '이 사건 기재 부분'이라 한다)과 같이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그 모집에 응하여 자발적으로 성을 제공한 매춘을 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를 일 본군의 '동지'이자 전쟁의 '협력자'로 표현하였다. 이는 단순한 의견이 아닌 사실의 적 시이며, 허위사실일 뿐만 아니라, 허위 여부를 떠나서 그 자체로 사회로부터 받는 객관 적인 평가를 침해하는 명예훼손에 해당하므로, 집단표시에 의하여 채권자 등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만약 이 사건 기재 부분이 채무자 박유하의 의견표명에 불과하다고 하더 라도, 이 사건 기재 부분의 표현은 채권자 등의 인격권을 침해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막고자 신청취지 기재와 같은 가처분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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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채무자들의 주장 요지
1) 이 사건 기재 부분은 채무자 박유하의 의견 표명에 불과하여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지 않고, 이 사건 도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집단의 개별 구성원을 지칭하 지 않았으므로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성립하지 않는다. 또한 채무자 박유하는 양국의 상호이해를 통한 한일관계의 개선을 목적으로 이 사건 도서를 출간하였을 뿐, 이 사건 도서에서 일본군에 의한 강제동원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위안부들을 자발적 매춘부라고 표현하지도 않았고, 위안부가 일본군에 애국적 • 자긍적으로 협력하였다고 서술하지도 아니하였다.
2) 이 사건 민사판결에서 채무자들의 명예훼손 및 인격권 침해의 불법행위를 인정 할 수 없다는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었는바, 이 사건 가처분신청의 본안소송에서 피 보전권리의 부존재를 이유로 채권자들이 패소하였으므로, 이 사건 가처분결정은 민사 집행법 제288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사정변경의 사유가 있는 경우로서 취소되어야 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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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판단
가. 관련 법리
1) 명예는 생명, 신체와 함께 매우 중대한 보호법익이고 인격권으로서의 명예권은 물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배타성을 가지는 권리라고 할 것이므로 사람의 품성, 덕행, 명성, 신용 등의 인격적 가치에 관하여 사회로부터 받는 객관적인 평가인 명예를 위법 하게 침해당한 자는 손해배상 또는 명예회복을 위한 처분을 구할 수 있는 이외에 인격 권으로서 명예권에 기초하여 가해자에 대하여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침해행위를 배제 하거나 장래에 생길 침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침해행위의 금지를 구할 수도 있다.
다만, 표현행위에 대한 사전억제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검열을 금지하는 헌법 제21조 제2항의 취지에 비추어 엄격하고 명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허용된다고 할 것인바, 출판물에 대한 발행 • 판매 등의 금지는 위와 같은 표현행위에 대한 사전역 제에 해당하므로 원칙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다만 그와 같은 경우에도 그 표현내용이 진실이 아니거나 그것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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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명예훼손 여부에 관하여
앞서 소명된 사실에다가 이 사건 기록 및 심문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인정할 수있는 아래의 사실 내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기재 부분은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고, 채무자 박유하가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여 채권 자 등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된다고 보기 어렵다.
1) 채무자 박유하는 오랜 기간 대학의 일어일문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 문학과 한일 근현대사를 연구하였다. 채무자 박유하는 한일 갈등의 핵심에 조선인 일본군 위 안부 문제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구축할 수 없다고 보고, 그 해결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여 연구결과를 저서로 출판하였다. 이 사건 도서는 위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학문적 표현물로 보인다.
2) 채무자 박유하는 이 사건 도서 집필 과정에서 국내외의 다양한 문헌과 사료를 조사하여 이 사건 도서에 직 간접적으로 인용하였고, 기록상 채무자 박유하가 이 사 건 도서 집필 과정에서 인문• 사회분야 연구자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연구윤리를 위 반하여 사료 등 연구 자료를 위조, 변조하였다거나, 학문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는 부정행위를 하였다는 사정은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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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사건 도서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추어 보면, 채무자 박유하가 일본 군에 의한 강제 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하였다거 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하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 사건 기재 부분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위 표현이 그러한 주장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이 지도 않는다.
오히려 채무자 박유하는 이 사건 도서에서 강제로 끌려가는 이들을 양산한 구조를 만든 것이 일본 제국 또는 일본군이라는 점은 분명하고,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 제국의 구성원으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식민지인으로서 일본 제국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모순된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밝히고 있다.
이 사건 각 표현 전후의 맥락이나 채무자 박유하가 밝히고 있는 이 사건 도서의 집필 의도에 비추어 보면, 채무자 박유하는 이 사건 도서 전체를 통해 채무자 박유하 의 주제의식, 즉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하여 일본 제국이나 일본군의 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제국주의 사조나 전통적 가부장제 질서와 같은 다른 사회 구조적 문제가 기여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으므로, 전자의 문제에만 주 목하여 양국 간 갈등을 키우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주장 을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 주제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이 사건 기재 부분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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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학문적 표현행위로 인하여 피해자 개인이 입는 인격권 침해의 정도는 그 표현이 가리키는 대상이 넓어지거나 표현의 내용이 일반화, 추상화될수록 희석될 수 있고, 이는 역사적 사실에 관한 표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이나 구성원 개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이나 비교적 균일한 특성을 갖고 있는 집단에 관한 과거의 구체적 사실의 표현은 비교적 진위 여부의 증명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표현으로 인한 인격권 침해의 효과가 희석되지 아니한 채 피해자에게 그대로 미치게 된다. 반면 이를 넘어서 는 범위의 집단에 관한 일반화되고 추상화된 표현은 증명 가능한 구체적 사실이라기보 다는 시대상(Bt4CE)을 정의하는 것과 같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연구자 개인의 종합 적 해석이나 평가로서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볼 여지가 커진다.
일본군 위안부의 전체 규모는 적게는 30,000명에서 많게는 400,000명까지 추산되고 있으며, 그중 조선인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50% 이상으로 추정된다. 채무자 박유 하는 이 사건 도서에서 '위안부'라는 표현을 출신국에 무관한 일본군 위안부 전체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일본군 위안부 중 조선인을 칭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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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를 구성원 개개인이 특정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으로 정의하기는 어렵고, 피해자들이 증언하고 있는 다양한 연행 경위나 피 해 양상에 비추어 균일한 복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고 볼 수도 없다. 채권자 등은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사람들 중 생존한 자들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중에 서도 일부 집단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이 사건 기재 부분이 피해자 개개인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의 진술에 해당한다고도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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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학문적 표현에 사용된 용어의 개념이나 범위에 관하여는 다양한 입장이 존재할 수 있다. 이 경우 국가가 다양한 학문적 견해 중 어느 하나의 견해만이 옳다고 선언하 는 것은 학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학문적 표현이 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용어의 개념이나 포섭 범위에 대한 다 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해당 표현에서 취한 개념이 실제 학계에서 봉용되는 것이거나, 통용되지 않더라도 문언의 객관적 의미나 대중의 언어습관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으 며, 해당 표현이 용어에 대한 특정한 학문적 개념정의를 전제로 한 것임이 표현의 전 후 맥락에 의하여 확인될 수 있는 경우에는, 사실의 적시가 아닌 학문적 견해 표명 내 지 의견 진술로 보는 것이 학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들어맞는다.
채무자 박유하는 이 사건 도서에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의 연행 과정에서 일부 일본 군인의 일탈행위가 있었으나, 그것만으로 일본군의 '공적 강제 연행'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국가나 군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개입이 존재하여야 이를 '공적 강제 연행'으로 부를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다양한 해석이나 주장이 가능하 고, 채무자 박유하의 위와 같은 주장이 학계에서 주류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문언의 객관적 의미나 대중의 언어습관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수준 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위와 같은 표현이 공적 강제 연행'에 대한 학문적 개념 포섭을 전제로 한 것임은 표현 전후의 맥락에 의하여 충분히 확인될 수 있다. 따라서 채무자 박유하가 '공적 강제 연행'에 관하여 서술한 부분이 사실의 적시 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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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학문적 표현, 특히 역사적 사실에 관한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에만 주목하여 손쉽게 시에 의한 사실을 적 시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으므로, 최소한 학문적 표현에 포함된 특정한 문구에 의 하여 그러한 사실이 곧바로 유추될 수 있을 정도의 표현은 있어야 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할 여지가 있다
채무자 박유하는 이 사건 기재 부분을 포함하여 이 사건 도서에서 '자발성' 혹은 '동지적 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전후 맥락에 비추어 이는 '위안부가 된 경위나 위안소에서의 경험에는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 제국의 구성원으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식민지인으로서 일본제국에 협력 할 수밖에 없는 모순된 상황에 처한 존재였다'는 채무자 박유하의 주장을 설명 내지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즉, 이는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의 처지와 역할
에 관한 채무자 박유하의 학문적 의견 내지 주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일 뿐, 이와 같은 표현이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들은 자발적으로 위안부에 들어간 것이다', '조선인 일본 군 위안부들은 일본군과 동지의식을 가지고 일본 제국 또는 일본군에 애국적, 자긍적 으로 협력하였다'는 명제를 단선적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 인격권 침해 여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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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명된 사실에다가 이 사건 기록 및 심문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인정할 수 있는 아래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기재 부분이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 혹은 사실을 왜곡하는 공표행위에 해당하여 채권자 등의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점이 소명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1)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여성들을 강제로 연행하여 위안부로 만드는 것이 일본 국이나 일본군의 공식적인 정책은 아니었다'는 취지의 서술을 하고 있다. 채무자 박유 하는 일본국이나 일본군이 법령이나 지시 등의 공식적인 정책을 통해 조선인 여성들을 유괴하거나 물리적으로 강제연행하여 일본군위안부로 만든 사실은 없고, 위안부들을 동원한 주체로서 민간인 중개업자나 포주가 존재하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위 와 같은 표현을 한 것으로 보인다. 채무자 박유하는 위안부의 모집 과정에서 공장에 취업시켜 주겠다는 등의 거짓말로 여성들을 꾀어낸 뒤 팔아넘기는 사기적 수법과 유 괴, 납치 등의 강제적인 수법이 있었던 점 및 위안부들이 위안소에서 강제노동에 가까 운 혹사를 당했으며 감시를 받으며 폭행 등 가혹행위를 당하였다는 점을 여러 증언을 직접 인용해 가면서 서술하고 있다. 위와 같은 불법적 모집, 가혹행위 등을 한 주체가 민간인 중개업자, 포주 등이었고, 일본군은 전시상황에서 위안부를 발상하고 모집하며 불법적인 모집을 방관하였다는 점에서 책임을 져야하는 첫 번째 주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군의 위안부 모집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민간업자들이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사건 도서의 여러 곳에서 일본 군인 에 의해 물리적으로 강제연행되어 일본군위안부가 된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는 하나, 이를 '예외적인 사례'에 불과한 '개인적 차원의 범죄'로 파악하고 있다.
학문적 연구라 하더라도 그 결과가 대중에게 공개될 경우,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예상치 못한 감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채무 자 박유하의 위와 같은 서술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예상치 못한 감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이 부분 관련 서술의 목적은 위안부가 모집된 원인을 파악하고자 하는 데에 있으며, 모집 방식에 여러 사례가 존재함을 학문적 • 책 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뿐 채권자 등을 지칭하여 일본군에 의해 강제연
행되지 않은 위안부에 해당한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위와 같은 서술로 인해 채권자 등이 다소 감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불이익과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적 가치를 비교 • 형량해 보았을 때 채무자 박유하가 수인 한도를 넘어서 채권자 등의 인격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2) 또한, 이 사건 도서의 전체적인 내용을 고려할 때 채무자 박유하가 채권자 등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함으로써 채권자 등의 인격권을 침해 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가) 채무자 박유하는 '일본에서는 근대 초기부터 어린 소녀들을 유괴하다시피 데려가 외국으로 팔아넘기는 일이 많았는데, 그 여성들은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 만들어진 공창으로 팔려나갔으며, 이런 여성들을 고향 사람들이 '가라유키상'이라고 불 렸다'고 하면서, 사람들은 가라유키상을 군인에 빗대어 '남자군'이라고 부르기도 했으 며, 이는 "국가의 욕망 실현을 위해 동원되었던 이들이 어느샌가 국가의 세력 확장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 '국가를 위한' 역할을 하는 이들로 인정받게 되면서(물론 동원을 위한 국가의 수사일 뿐이다) 생긴 말이었다. 훗날의 위안부들 역시 '낭자군'이라고 불러 었고, '위안부'들은 그렇게 국가와 남성에 의한 피해자이면서 국가에 의한 '애국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했던 이들이기도 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국가간 '이동'이 더 쉬워진 근대에, 경제 • 정치적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타국으로 떠났던 남성들 (군대도 그 하나다)을 현지에 묶어두기 위해 동원되었던 이들이 '가라유키상'이었던 것 이다.", "그 안에서 차별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위안부의 불행을 만든 것은 민족 요인보다도 먼저, 가난과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였다.", "무엇보다, 성노 동의 가해자는 여성을 '교육'에서 배제시켜 경제적 자립의 기회를 주지 않고 아버지나 오빠가 물건처럼 팔 수도 있었던 시대, 여성의 소유권을 남성이 가졌던 시대의 가부장 제적 국가였다.", "위안부는 일본의 전시에만 존재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지금의 기지촌 여성들 역시 현대의 '위안부'이고, 군대가 존재하는 곳이면 '위안부'는 어느 곳이건 존재했다.", "가난한 여성들의 해외이동을 조 장한 것은 가부장제와 국가주의뿐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자국의 세력을 해외로 넓히려 했던 제국주의였다.", "'위안부 문제'는 국가의 문제일 뿐 아니라 더 본질적으로 자본의 문제다. •• 위안소는 표면적으로는 군대의 전쟁 수행만을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본 질은 그런 '제국주의'와 인간을 착취하여 이윤을 남기려고 하는 자본주의에 있다.", "가 부장제와 자본주의에 의해 지탱되어온 근대 국민국가 체제는, 국가세력을 확장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조직했고 고향을 떠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그들을 '위안'할 여 성들의 조직을 유지해왔다. 그런 의미에서는 러일전쟁 시대의 일본인 위안부도, 태평양 전쟁 시대의 조선인 위안부도, 해방 후 한국에 주둔하게 된 미군을 위한 위안소도, 기 본적으로는 모두 똑같이 국가(안보 혹은 경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동원된 피해자들 이다."라고 서술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채무자 박유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 발생의 근본적 원인이 국가주의와 제국주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등의 사회구조적 측면에 있다고 파악하는 입장을 전제로 하여, 일본에서 '가라유키상'으로 불렸던 사람들과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는 모두 국가의 세력확장 과정에서 사회의 최하계층인 가 난한 여성들이 국가에 의하여 동원되었다는 측면에서 동일한 점이 있고, 오늘날 가난 한 여성들이 매춘업에 종사하게 되는 것과 과거 조선인 여성들이 일본군위안부가 되었 던 것에는 모두 이러한 사회구조적 원인이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일 뿐,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는 것 으로 보이지 아니한다.
나) 또한 채무자 박유하는 "일본군에 의한 성폭력은 일회성 강간과 납치성(연속성) 성폭력, 관리매춘의 세 종류가 존재했다. '위안부'들의 경우 이 세 가지 상황이 조 금씩 겹치는 경우도 있지만, 조선인 위안부의 대부분은 앞에서 본 것처럼 세 번째 경 우가 중심이었다."라고 서술하였는바, 그와 같이 조선인 위안부의 경우 대부분은 '관리 매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또한 '일본군에 의한 성폭력'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시하였다. 또한, "그런 쿠마라스와미조차 '위안부'의 상황을 '강요된 매춘'으로 인식하 고 있다. 위안부들을 세 가지 - 자발적인 매춘업, 음식점이나 세탁부로 갔다가 '위안' 을 하게 된 경우, 강제연행 - 로 분류하는 등 '위안부'의 모습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 도 알고 있었다. 1996년 시점에 '위안부'란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 안에 있던 여성들이 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서술하였다.
위와 같은 여러 서술 내용을 보면, 채무자 박유하는 위안소의 상황을 군의 관리하에서 포주들이 위안부들에게 강제로 성노동을 시키고 그 대가는 포주들이 착취하 는 '강요된 매춘'으로 인식하면서 그 형태('틀)가 매춘, 즉 성매매업소였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매춘의 요소가 있다'는 표현은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종사 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일본군 위안소는 관리매춘의 '형태로 운영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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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사건 도서의 전체적인 내용을 고려할 때 채무자 박유하가 채권자 등을 포함한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군의 '동지'이자 전쟁의 '협력자'로 표현함으로써 채권자 등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가) 채무자 박유하는 이 사건 도서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 발생의 근본적 원인은 국가주의와 제국주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등의 사회구조적 측면에 있다는 기본 입장을 취하면서,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식민지인으로서 일본 제국의 일원이 되어 일본의 전쟁 수행을 위한 역할을 담당한 조선인 위안부들은, 일본군과 전 쟁을 벌이던 적국의 여성들과 일본군에 대한 관계에서 차이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채무자 박유하는 이러한 조선인 위안부의 전쟁 수행을 위한 역할 담 당에 대해서 "군인들을 신체적 • 정신적으로 위무하고 사기를 북돋는 역할", "국가가 멋 대로 부과한 역할", 일본 제국'의 일원으로서 요구된 '조선인 위안부'의 역할"이라고 표현하는 한편, 위안이라는 이름의 노동이 대부분의 위안부들에게 성과 신체를 혹사 당하는 가혹한 노동이었다", "(위안부는) 일본의 제국 화장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동원 된 존재", "(위안부는) 가혹한 성노동을 강요당했던 '피해자""라고 하는 등, 위와 같은 역할이 일본 제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부여되었다는 취지로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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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채무자 박유하는, 위안부 생활을 하는 동안 간호원 역할을 하기도 했다거나, 기모노를 입고 연예회를 하고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다는 증언, 군인들과 고향 이야기 를 나누기도 하였다는 증언, 일본인 위안부들이 '나도 나라를 위해 몸바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일본인 업자의 증언, 군인들을 위로해주기도 했고 군인들로부터 '사랑한다,
'결혼하자'는 말도 들었다는 위안부의 증언, 전쟁이 끝난 뒤 일본으로 와서 전쟁범인을 수용하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는 위안부의 증언 등을 직접 인용하면서, 그러한 증언이 나타날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한 나름의 분석이나 추측을 제시하고 있다.
채무자 박유하는 '벗어나고 싶은 공간인 위안소에서 사랑과 평화가 존재하였다'는 모순적인 상황을 설명하고자 '동지', '협력자'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 로 보인다. 채무자 박유하는 그렇다고 해도 위안소가 지옥 같은 체험이라는 사실은 변 하지 않는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으며, 그러한 지옥을 살아내는 방법으로 연민과 공감, 운명론적 자세를 취하는 개인이 있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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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또한, 위안부들의 '긍지'나 '애국'에 관하여 위안부가 '자신을 팔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 경우가 있더라도 "그 적극성은 포기와 체념, 혹은 그저 살기 위해 자신 에게 부여한 트리이었을 수도 있다."라고 서술하거나, "눈앞에 주어진 '거짓 애국'과 '위 안'에 몰두하는 것은 그녀들에겐 하나의 선택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 다.", "그들의 성의 제공은 기본적으로는 일본 제국에 대한 '애국'의 의미를 지니고 있 었다. 물론 그것은, 남성과 국가의 여성 착취를 은폐하는 수사에 불과했지만 ··"이라고 도 서술한다. 이는 채무자 박유하가 표현하는 바에 따른 "위안부의 '애국심'이나 '자긍 심" 역시 진정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특히 조선인 위안부'란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저항했으나 굴복하고 협려했던 식민지의 슬픔과 굴욕을 한 몸에 경험한 존재다. '일본'이 주체가 된 전쟁에 '끌 려'갔을 뿐 아니라 군이 가는 곳마다 '끌려' 다녀야 했던 '노예'임에 분명했지만, 동시에 성을 제공해주고 간호해주며 전쟁터로 떠나는 병사를 향해 '살아 돌아오라'고 말했던 동지이기도 했다. •• 말하자면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의 모순'을 가장 처 절하게 살아낸 존재였다.", "그것은 그들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건 조선이 식민지가 되는 순간부터 걷어낼 수 없게 된 모순이었다."는 서술, "협력해야 했던 '위안부'의 슬픔" 을 언급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들이 식민지배에 저항 하였으나 굴복하고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위와 같은 표현을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채무자 박유하는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는 당시 식민지배 하에서 일본 제국의 일원으로 취급되어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 수행을 위해 국가에 의해 동원되었던 존재이며, 그런 의미에서 일본군과 적이 아닌 동지와 같은 관계로 평가될 수 있다'고 보면서, '위안부들은 가혹한 상황을 견뎌내기 위해 자신에게 부여된 군인들에 대한 정 신적 위안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긍지나 애국심을 가졌을 수도 있다'는 주관적인 추측 을 제시하고 있다. 채무자 박유하가 "가혹한 성노동을 강요당했던 피해자라고 해도 제
국의 일원이었다"는 표현을 하고 있기는 하나 이는 거시적으로 볼 때 어쩔 수 없이 위 안부에 끌려간 자들에게도 위안부로서 전쟁에서 담당하는 기능적인 역할이 있었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일 뿐, 위안부가 긍지나 애국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전쟁에 가담하 였다는 취지로 읽히지는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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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채무자 박유하가 위안부와 관련한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채무자 박유하는 일본군이 전시상황에서 위안부라는 존재를 발상하고 모집하였으며, 불법적인 모집이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집 자체를 중지하지 않았다는 점 에서 일본군은 책임을 져야 하는 첫 번째 주체이며, 위안부의 강제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식민주의와 국가와 가부장제의 강제성에도 있음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위와 같이 위안부를 직접적으로 모집한 자는 민간인 중개업자 등이고, 위안부가 유괴
되거나 자발적으로 팔려갔다고 해도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 제국권력의 결과인 이상 일본에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채무자 박유하는 이 사건 도서의 서문에서 그 집필 목적을 밝혔는데, 그 대략적인 취지는 다음과 같다. 즉 채무자 박유하는 우선, 위안부 문제가 20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과 일본 양국 국민들의 인식 사 이의 괴리는 더욱 커져가고 있으며, 양국 사이의 갈등과 대립 또한 더욱 악화되고 있 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지적하였다. 채무자 박유하는 그러한 상황의 가장 큰 이유는 실 제로는 '위안부'는 결코 하나로 설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우리(국민)들의 '위안부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하였고, 취사선택된 정보들만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이미지와 기억만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로 인한 결과로 일본 국민들 사이에 한국에 대한 혐오 또는 무관심의 감정이 서서히 커져 온 상황, 그 원인으로 한국 국민 들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이 위안부 지원단체나 소수의 연구자들에 의하여 좌우되 고 있는 상황 등을 기술한 다음, 한일 양국의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상호 신뢰와 평 화를 이루기 위하여 이 사건 도서를 저술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위 서문에 나타 난 채무자 박유하의 상황 인식이나 원인 진단이 타당하고 적절한지 여부에 대하여는 논란의 소지가 있으나, 그러한 서문의 내용과 이 사건 도서의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보 면, 채무자 박유하가 이 사건 도서를 저술한 주요한 동기가 '한일 양국의 상호 신뢰 구 축을 통한 화해'라고 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부정하기 는 어렵다. 따라서 채무자 박유하가 일본에 책임이 없음을 주장하거나 채권자 등의 개 별 인격권을 침해하기 위해 이 사건 도서를 저술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러한 목적으로 이 사건 도서를 서술함에 있어서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의 명예감정에 다소간의 손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상 가치와 비교 • 형량하여 보았을 때 채무자 박유하에게 위법성을 인정할 정도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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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채부자 박유하는 이 사건 도서를 통하여 '일본군위안부들은 위안부가 된 경위나 위안소에서의 경험 모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였는데, 그 동안 우리는 그중 하나의 모습, 즉 10대 소녀 시절에 일본 군인에 의하여 직접 강제로 연행되어 위안부가 된 사람의 모습만을 알고 있었으나, 그와 다른 모습의 위안부도 있었다는 점도 알 필요가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기본적인 입장을 전제로 채무자 박유하는 이 사건 도서에서 종래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다른 일본군위안부의 모습에 주안점을 두고 서술하
고 있고, 그러면서도 종래 우리가 알고 있는 위안부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혹은 '예 외적인 경우였다'라고 할 뿐 그러한 모습의 위안부는 거짓이라거나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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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채무자 박유하의 견해는 조선인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견해들 중 많은 지지를 받지 못하는 온당치 못한 견해일 수는 있으나, 이는 관련 학계 내부의 동료평가 및 사회의 자유로운 공개토론 등의 과정을 통하여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상적이지 않거나 다소 불편할 수 있는 견해가 제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견해 내지 주장, 표현들로 인한 불법행위 책임을 쉽게 인정하게 된다면, 이는 자유롭게 견해 를 표명할 자유를 지나치게 위축시킬 수 있으므로 신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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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또한, 이 사건 도서에서 학술적인 주장과 그 근거 등을 전개하면서 반대되는 사실, 다른 주장 등이 소개되지 아니하였거나 누락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채권자 등의 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고 채무자 박유하가 의도적으로 이를 누락하였다고 볼 자료는 없으며, 이 사건 도서 출판 당시 정대협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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