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5

Heewon Kim - 파시즘에 기생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1) Heewon Kim - 이번달 <한겨레> 칼럼입니다. 신자유주의와 파시즘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글들이 있지만, 한국의... |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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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한겨레> 칼럼입니다. 신자유주의와 파시즘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글들이 있지만, 한국의 특수한 맥락에서 다시 쓰는 작업도 필요하겠지요.
<파시즘에 기생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많은 학자들은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파시즘을 태동시킨다”고 주장해왔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혁명을 불러온다”는 주장의 반대쪽 극단이라고나 할까.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위기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데, 그 위기의 시간이 과연 어느 쪽 극단으로 폭주하느냐에 관한 이야기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전자의 주장이 언제나 이기려는 모양이고, 이 암울한 예언은 안타깝게도 오랫동안 효력을 발휘할 것 같다. 자본주의의 위기 순간마다, 파시즘은 새로운 얼굴을 하고 우리에게 돌아온다. 마치 우리의 고통과 좌절을 완전히 타개해줄 것 같은 강력한 미신을 몰고, 그러나 결국은 이 위기를 이용해 먹는 자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서.
동시대 파시즘의 토대는 두말할 것도 없이 신자유주의다.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에 파시즘의 토양은 충분히 무르익은 상태였다. 역대 정부의 공공 지출은 형편없었으며, 그만큼 국민들은 시장 경쟁에 내몰린 채로 각자도생해왔다. 물론 윤석열 정부는 계엄 이전에도 빠른 속도로 민중들의 삶을 망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자유 시장’에 맡겨야 최선의 결과가 돌아온다고 선전하면서 우리의 안전도 뒷전, 생계도 뒷전이었으니까. 청년층과 노년층의 삶은 더욱 힘겹다. 일도 없고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청년층은 42만명을 넘어서면서 팬데믹 이후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취업하더라도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어서 많은 경우 ‘불완전 취업자’로 분류된다.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는 민중의 삶이 한없이 불안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파시즘의 토양이다. 정직한 노동을 끝없이 갈아 넣어도 한평생 갑질에 시달릴 것이 뻔한 세상. 경제적·사회적으로 나에게 주어져야 할 자리가 분명히 있는데, 그 자리가 나에게 돌아오지 않으니 빼앗긴 것들에 대한 박탈감은 커져만 간다. 세상이 불공정하고 뭔가 한참 잘못되었다는 울분, ‘지위 불안’, 그리고 증오로 가득 찬 이들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구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희생양을 상대로 한 폭력은 반드시 필요할 뿐 아니라 정당하다. 그들은 세상을 망치는 적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철학자 알베르토 토스카노는 ‘경제적 가치의 위기가 오는 시간’과 ‘정체성의 위기가 오는 시간’이 수렴되는 현상으로 파시즘을 설명하기도 한다.
윤석열은 사심, 사감, 또는 사리사욕을 위해 계엄을 선포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급발진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파시즘적 선동과 폭력이 빠르게 득세할 수 있는 장이 열려버렸다. 극우 유튜버들,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들, 그리고 극우 개신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포섭하고 있다. 이들의 적은 종북좌파, 북한, 중국, 그리고 “페미니즘이라는 악한 사상”과 “동성애 조장 세력”이다. 탄핵의 배후에는 중국이 있으며, 탄핵을 막아내는 것은 곧 공산화를 막는 길이다. 동시에 탄핵을 막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보수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절실한 사명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들은 ‘살기 좋은 나라’가 돌아오길 기원하면서 그들만의 이상적인 국가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숭배한다. “이물질”들이 영구히 제거되는, 무섭도록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국가의 모습이다.
극우 세력이 확산시키는 음모론, 혐오, 폭력은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했고, 한국 사회는 계속해서 분열되고 있다. 사람들이 법원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르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는데도, 갈수록 많은 이들이 거짓 정보에 빠져 헌법재판소를 불신하고, 계엄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옹호한다. 그런데도 오히려 파시즘에 기생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극우 세력에 빌붙어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이들, 파시즘에 대적할 생각은 하지 않고 권력을 잡는 것에만 관심을 쏟는 이들.
파시즘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길은 진실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모두가 평등하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고, 그 어떤 노동자도 차별받거나 착취당하지 않으며, 생계조차 이어갈 수 없는 불안정 노동이 사라지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공공 지출과 재분배 정책이 의미 있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나라 말이다. 반대로 친기업, 부자 감세, 성장 위주의 정책은 불안과 불평등을 고조시키고 더 많은 사람들을 극우화할 것이다. 앞으로 등장할 선거 공약을 잘 지켜보자. 파시즘에 기생하는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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