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가 궁금하신가요? 이 영화 한번 보시죠
권영태 시민기자
ilovetoron@hanmail.net한양여대 ESG연구소 부소장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헌정회복을 위한 헌법학자회의 실행위원상생사회일천인선언 상생대화분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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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03.23 16:01
출처 : 넷플릭스 홈페이지
포스터의 제목이 헷갈린다. '달콤한 이웃' 같다. 원제는 ‘La Dolce Villa’인데 ‘달콤한 이곳’으로 옮겼다. 넷플릭스의 최근 멜로로맨스 영화. 넷플릭스나 디즈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류다. 가볍게 머리 식히고 킬링타임용으로도 좋은데, 다 보고 나면 ‘어, 사회적 경제 교재네!’ 싶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회적’ 경제
한국에서 사회적 경제의 본격화는 한살림 운동과 사회적기업 육성법(사회적기업법)으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일제 강점기부터 협동조합은 있었고 오랜 기간 관이 정책으로 육성한 ‘겉만 사회적 경제’도 있긴 했다. 하지만 자생적인 사회적 경제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한살림운동의 지속과 성공으로 본격화 됐다고 본다. IMF 외환위기 이후 2007년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사회통합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사회적기업법이 제정됐다. 그 이후 각종 사회적 경제조직을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법이 제정되기 시작했다.
의안정보시스템을 살펴보면 2005년 제출된 ‘사회적 기업의 설립 및 육성에 관한 법률안’의 제안자에는 황우여, 맹형규, 박근혜, 김문수 등 우파 정치인들의 이름이 많이 눈에 띈다. 색안경을 끼고 보면 ‘사회적’ 기업이나 '사회적' 경제는 사회주의이고, 지금도 이런 극우적 시각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우파 의원들이 자신이 만드는 법의 내용을 제대로 몰랐거나, 아니면 다른 우파 의원들이 그저 반대 정치세력을 사회주의라고 공격하기 위한 것이리라. 어느 쪽이든 문제다.
색안경을 끼고 보면 민주주의 모든 제도와 원칙이 빨갱이짓이 된다. 마을 단위에서 자치회를 만들고, 푼돈 수준이지만 일부 예산을 주민들이 직접 결정하게 하는 참여예산이라는 제도가 있다. 전광훈 같은 세력은 이를 ‘좌파’세력의 마을 장악으로 본다. 그래서 이른바 자유마을을 만들어야 된다나. 이해는 된다. 그네들이야, 아랫것들이 훌륭하신 목사님 같은 높은 분들이 얘기하는 대로 움직이고 생각해야 되는데, 무지렁이들이 감히 자치라니, 감히 참여라니. 대통령이 계몽령이라 했으면 계몽령인 것이지, 어따대고 내란이라니.
색안경을 낀 분들은 영화 '달콤한 이곳'을 볼 필요가 없다. 어차피 대작도 아니고, 수고한 창작자들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명작이라고 할 만하지도 않다. 영화를 사회적 경제 교재라고 소개하고 있으니, 사회주의 빨갱이 미화 영화로 생각이 드신다면, 더더욱 보지 마시라. 색안경 없이 사회적 경제가 도대체 무언지 진심 궁금하신 분들에겐 도움이 될 만하기에 추천한다. 상업영화 중에서 이 정도나마 사회적 경제라고 할 소재가 나온 작품이 떠오르지 않는다.
토스카나 시장 역을 맡은 비올란 플라치도. 영화 '달콘한 이곳' 스틸컷 (사진 출처 ; https://blog.naver.com/dongi0508/223765158622)
사회적 경제의 시작, 마을을 살려보려는 시장
영화는 미국인 딸의 갑작스런 행동에서 시작된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빈 집을 산단다. 우리 언론에도 유럽에서 1유로로 집을 살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고 방치된 집을 지자체가 인수해 외국인에게 싸게 판다, 외국인은 지역으로 와서 집을 수리하고 직접 살거나 다른 형태로 활용한다.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인구도 늘어난다. 대략 이 정도의 구상이다. 우리나라에도 조만간 도입될 수 있는 정책이다.
딸을 말리려고 이탈리아로 온 사업가 아버지는 이래저래 따져보지만 결국 딸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 집수리에 동참하고 그 과정에서 젊은 여성 시장과 ‘달콤한’ 연애가 시작된다. 충동적으로 토스카나의 집을 사려고 했던 딸도 로맨스에 성공하고, 좋지 않았던 부녀 관계는 좋아진다. 정작 딸은 집수리 과정에서 인테리어 재능을 발견해, 수리업자의 추천으로 로마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러 떠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엉뚱하게도 아빠가 수리 끝난 빈집을 관리하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이탈리아를 떠나지 않고 연애도 성공하는 해피 엔딩.
영화의 주인공은 남의 나라에서 빈 집을 사려고 한 딸과 말리려던 아빠, 부녀지간인데, 시장에게 더 관심이 갔다. 시장은 1유로 빈집 판매 정책을 펴면서 동네에서도 큰 지지를 받지 못하던 중이었다. 젊은 이방인이 관심을 표하자 성사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시장이 뭐 저래?” 하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우리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이미지라서다. 공무원으로 보이는 직원이 달랑 한 명에 불과하다. 집수리 현장에 날마다 들러 온갖 도움을 준다.
우리도 지역 소멸 같은 사회적 문제가 많다. 이 문제를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많은 논쟁과 시도가 있지만, 토스카나 시장의 접근은 기존의 방식과 좀 다르다. 기존의 논쟁과 시도는 요약하면, '정부가 해결하자'와 '시장에 맡기자' 두 가지 중 하나다. 사회적 경제는 약간 다르다. 정부도 시장도 부족함이 있으니 제3의 길을 찾아 보자고 제안한다. 영화에서 시장은 직접 예산을 많이 들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사실, 해결할 수가 없다. 오늘날 어느 나라든 큰 도시를 제외하면 많은 예산을 들여 사회적 문제를 풀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그렇기에 다른 대안을 찾는다. 1유로라는 적은 돈으로 부동산을 제공한다. 들어오는 외국인은 자비로 수리도 하고 뭔가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한다. 전적으로 자비로 하는 것은 아니고 이런저런 추가적 지원은 당연하다. 시장에 맡겨 둔다면 빈집은 그냥 폐가로 끝난다. 자유 시장경쟁에서 뒤쳐진 시골 빈집을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아무런 변화도 없다. 적자생존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영화를 이미 보신 분들도 다시 보시길 권한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감을 얼추 잡을 수 있다.
영화로 보는 사회적 경제의 난관과 극복 방안
가장 큰 난관은 수리가 잘 된 집을 보고 후손이 찾아와 소유권을 주장할 때다. 다른 곳에 살던 후손은 상속받은 시골 빈집에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시골뿐만 아니라 이제는 도시에도 점점 빈 집이 많아지고 있다. 빈 집이라고 해서 소유권이 저절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관에서 빈집을 모두 일괄 구입해 활용할 수도 없다. 결국 예산 문제다.
영화에서는 알고 보니 그 후손은 다른 빈집의 상속권자였다. 영화는 해피 엔딩이지만, 현실에서 이 문제는 풀기 쉽지 않다. 빈 집뿐만 아니라 시골의 넓은 농지를 활용해 뭔가를 하려는 구상도 좌절되고 있다. 경자유전 원칙을 깰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빈 집이 폐가가 되고 흉물스런 동네가 되어가도 소유권을 강제적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국공유지를 활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대표적으로 폐교 부지 같은 것도 매입이나 임대를 하려면 웬만큼 큰 자본을 가진 기업이 아니면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국공유 재산을 사회적 경제를 하려는 사람에게 무상으로 공급하라는 주장은 무책임하다.
영화에서 1유로 하우스는 결국 요리 교실로 사업화한다. 우리나라도 지역 곳곳에서 이런 시도는 많다. 마을호텔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쉽지 않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사업화가 성공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운 좋게도 주인공이 원래 대단한 셰프 출신이다. 셰프를 하다가 레스토랑 컨설팅을 사업으로 하던 중이었는데, 딸을 말리기 위해 이탈리아로 온 것이다. 딸이 만난 인연도 비슷하다. 로마의 잘 나가는 셰프였는데, 고향에서 식당을 하던 중이었다. 요리 교실 같은 사업이 성공하려면 엄청난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현실에서 고향 마을에서 비슷한 일을 해보려고 할 때, 백종원 같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있다 하더라도 계속 고향에서 뭔가를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 어렵다. 사회적 경제의 문턱도 낮지 않다는 말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주인공이 사업가여서 집수리나 요리교실을 여는데 자본 부담이 없어서다. 결국 미국에서 하던 사업의 이탈리아 지부로 편입시키는 해피엔딩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사회적 경제에서 크게 성공한 케이스가 별로 없는 현실을 돌아보게 됐다. 일각에서는 사회적 경제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면서 정부 지원금이 떨어지면 실패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사회적 경제 육성을 위해서는 상당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근시안적 평가다. 대규모 재벌과 벤처의 육성에 들인 지원금이 푼돈이었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 사회적 경제가 안된다, 부족하다, 나쁘다는 식의 평가는 성급하다. 영화처럼 개인과 기업도 큰 투자를 할 수 있을 만큼 준비를 해야겠지만, 정부는 민간에서 큰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따뜻하다. 마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행복하게 그려낸다. 도시를 떠나 삶을 누리는 ‘삼시세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힐링을 준다. 아쉽게도 그렇게 떠나 고향과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대리만족으로 끝난다. ‘달콤한 이곳’은 사회의 문제도 해결하면서, 개인의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큰 자본과 백종원 같은 전문가가 투입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한계 또한 명확하지만, 영화는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현실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성공하는 사람이 나오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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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03.23 16:01
- 영화 '달콤한 이곳'에 담긴 사회적 경제 의미
- 1유로에 빈 집 팔아 마을을 살려보려는 시장
- 멜로로맨스면서도 지역 경제 회생 애환 그려
- 색안경 끼고 사회주의라고 비판하려면 비추

포스터의 제목이 헷갈린다. '달콤한 이웃' 같다. 원제는 ‘La Dolce Villa’인데 ‘달콤한 이곳’으로 옮겼다. 넷플릭스의 최근 멜로로맨스 영화. 넷플릭스나 디즈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류다. 가볍게 머리 식히고 킬링타임용으로도 좋은데, 다 보고 나면 ‘어, 사회적 경제 교재네!’ 싶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회적’ 경제
한국에서 사회적 경제의 본격화는 한살림 운동과 사회적기업 육성법(사회적기업법)으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일제 강점기부터 협동조합은 있었고 오랜 기간 관이 정책으로 육성한 ‘겉만 사회적 경제’도 있긴 했다. 하지만 자생적인 사회적 경제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한살림운동의 지속과 성공으로 본격화 됐다고 본다. IMF 외환위기 이후 2007년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사회통합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사회적기업법이 제정됐다. 그 이후 각종 사회적 경제조직을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법이 제정되기 시작했다.
의안정보시스템을 살펴보면 2005년 제출된 ‘사회적 기업의 설립 및 육성에 관한 법률안’의 제안자에는 황우여, 맹형규, 박근혜, 김문수 등 우파 정치인들의 이름이 많이 눈에 띈다. 색안경을 끼고 보면 ‘사회적’ 기업이나 '사회적' 경제는 사회주의이고, 지금도 이런 극우적 시각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우파 의원들이 자신이 만드는 법의 내용을 제대로 몰랐거나, 아니면 다른 우파 의원들이 그저 반대 정치세력을 사회주의라고 공격하기 위한 것이리라. 어느 쪽이든 문제다.
색안경을 끼고 보면 민주주의 모든 제도와 원칙이 빨갱이짓이 된다. 마을 단위에서 자치회를 만들고, 푼돈 수준이지만 일부 예산을 주민들이 직접 결정하게 하는 참여예산이라는 제도가 있다. 전광훈 같은 세력은 이를 ‘좌파’세력의 마을 장악으로 본다. 그래서 이른바 자유마을을 만들어야 된다나. 이해는 된다. 그네들이야, 아랫것들이 훌륭하신 목사님 같은 높은 분들이 얘기하는 대로 움직이고 생각해야 되는데, 무지렁이들이 감히 자치라니, 감히 참여라니. 대통령이 계몽령이라 했으면 계몽령인 것이지, 어따대고 내란이라니.
색안경을 낀 분들은 영화 '달콤한 이곳'을 볼 필요가 없다. 어차피 대작도 아니고, 수고한 창작자들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명작이라고 할 만하지도 않다. 영화를 사회적 경제 교재라고 소개하고 있으니, 사회주의 빨갱이 미화 영화로 생각이 드신다면, 더더욱 보지 마시라. 색안경 없이 사회적 경제가 도대체 무언지 진심 궁금하신 분들에겐 도움이 될 만하기에 추천한다. 상업영화 중에서 이 정도나마 사회적 경제라고 할 소재가 나온 작품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회적 경제의 시작, 마을을 살려보려는 시장
영화는 미국인 딸의 갑작스런 행동에서 시작된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빈 집을 산단다. 우리 언론에도 유럽에서 1유로로 집을 살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고 방치된 집을 지자체가 인수해 외국인에게 싸게 판다, 외국인은 지역으로 와서 집을 수리하고 직접 살거나 다른 형태로 활용한다.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인구도 늘어난다. 대략 이 정도의 구상이다. 우리나라에도 조만간 도입될 수 있는 정책이다.
딸을 말리려고 이탈리아로 온 사업가 아버지는 이래저래 따져보지만 결국 딸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 집수리에 동참하고 그 과정에서 젊은 여성 시장과 ‘달콤한’ 연애가 시작된다. 충동적으로 토스카나의 집을 사려고 했던 딸도 로맨스에 성공하고, 좋지 않았던 부녀 관계는 좋아진다. 정작 딸은 집수리 과정에서 인테리어 재능을 발견해, 수리업자의 추천으로 로마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러 떠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엉뚱하게도 아빠가 수리 끝난 빈집을 관리하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이탈리아를 떠나지 않고 연애도 성공하는 해피 엔딩.
영화의 주인공은 남의 나라에서 빈 집을 사려고 한 딸과 말리려던 아빠, 부녀지간인데, 시장에게 더 관심이 갔다. 시장은 1유로 빈집 판매 정책을 펴면서 동네에서도 큰 지지를 받지 못하던 중이었다. 젊은 이방인이 관심을 표하자 성사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시장이 뭐 저래?” 하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우리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이미지라서다. 공무원으로 보이는 직원이 달랑 한 명에 불과하다. 집수리 현장에 날마다 들러 온갖 도움을 준다.
우리도 지역 소멸 같은 사회적 문제가 많다. 이 문제를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많은 논쟁과 시도가 있지만, 토스카나 시장의 접근은 기존의 방식과 좀 다르다. 기존의 논쟁과 시도는 요약하면, '정부가 해결하자'와 '시장에 맡기자' 두 가지 중 하나다. 사회적 경제는 약간 다르다. 정부도 시장도 부족함이 있으니 제3의 길을 찾아 보자고 제안한다. 영화에서 시장은 직접 예산을 많이 들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사실, 해결할 수가 없다. 오늘날 어느 나라든 큰 도시를 제외하면 많은 예산을 들여 사회적 문제를 풀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그렇기에 다른 대안을 찾는다. 1유로라는 적은 돈으로 부동산을 제공한다. 들어오는 외국인은 자비로 수리도 하고 뭔가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한다. 전적으로 자비로 하는 것은 아니고 이런저런 추가적 지원은 당연하다. 시장에 맡겨 둔다면 빈집은 그냥 폐가로 끝난다. 자유 시장경쟁에서 뒤쳐진 시골 빈집을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아무런 변화도 없다. 적자생존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영화를 이미 보신 분들도 다시 보시길 권한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감을 얼추 잡을 수 있다.
영화로 보는 사회적 경제의 난관과 극복 방안
가장 큰 난관은 수리가 잘 된 집을 보고 후손이 찾아와 소유권을 주장할 때다. 다른 곳에 살던 후손은 상속받은 시골 빈집에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시골뿐만 아니라 이제는 도시에도 점점 빈 집이 많아지고 있다. 빈 집이라고 해서 소유권이 저절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관에서 빈집을 모두 일괄 구입해 활용할 수도 없다. 결국 예산 문제다.
영화에서는 알고 보니 그 후손은 다른 빈집의 상속권자였다. 영화는 해피 엔딩이지만, 현실에서 이 문제는 풀기 쉽지 않다. 빈 집뿐만 아니라 시골의 넓은 농지를 활용해 뭔가를 하려는 구상도 좌절되고 있다. 경자유전 원칙을 깰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빈 집이 폐가가 되고 흉물스런 동네가 되어가도 소유권을 강제적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국공유지를 활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대표적으로 폐교 부지 같은 것도 매입이나 임대를 하려면 웬만큼 큰 자본을 가진 기업이 아니면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국공유 재산을 사회적 경제를 하려는 사람에게 무상으로 공급하라는 주장은 무책임하다.
영화에서 1유로 하우스는 결국 요리 교실로 사업화한다. 우리나라도 지역 곳곳에서 이런 시도는 많다. 마을호텔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쉽지 않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사업화가 성공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운 좋게도 주인공이 원래 대단한 셰프 출신이다. 셰프를 하다가 레스토랑 컨설팅을 사업으로 하던 중이었는데, 딸을 말리기 위해 이탈리아로 온 것이다. 딸이 만난 인연도 비슷하다. 로마의 잘 나가는 셰프였는데, 고향에서 식당을 하던 중이었다. 요리 교실 같은 사업이 성공하려면 엄청난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현실에서 고향 마을에서 비슷한 일을 해보려고 할 때, 백종원 같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있다 하더라도 계속 고향에서 뭔가를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 어렵다. 사회적 경제의 문턱도 낮지 않다는 말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주인공이 사업가여서 집수리나 요리교실을 여는데 자본 부담이 없어서다. 결국 미국에서 하던 사업의 이탈리아 지부로 편입시키는 해피엔딩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사회적 경제에서 크게 성공한 케이스가 별로 없는 현실을 돌아보게 됐다. 일각에서는 사회적 경제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면서 정부 지원금이 떨어지면 실패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사회적 경제 육성을 위해서는 상당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근시안적 평가다. 대규모 재벌과 벤처의 육성에 들인 지원금이 푼돈이었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 사회적 경제가 안된다, 부족하다, 나쁘다는 식의 평가는 성급하다. 영화처럼 개인과 기업도 큰 투자를 할 수 있을 만큼 준비를 해야겠지만, 정부는 민간에서 큰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따뜻하다. 마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행복하게 그려낸다. 도시를 떠나 삶을 누리는 ‘삼시세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힐링을 준다. 아쉽게도 그렇게 떠나 고향과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대리만족으로 끝난다. ‘달콤한 이곳’은 사회의 문제도 해결하면서, 개인의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큰 자본과 백종원 같은 전문가가 투입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한계 또한 명확하지만, 영화는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현실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성공하는 사람이 나오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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