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e-Yo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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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 이모 편집장의 ‘트로츠키주의선망’을 논함>
나로선 언론이란 사회적 공기이기에 서로 날카롭게 대립되는 현상에 대해선 귀기울여 양쪽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게 순서라고 여긴다. 그래서 한겨레21이야 나도 아마 적쟎이 출연한 매체라 더 아쉽다고 해야 겠다.
여기 이재훈이란 사람이 편집장이라고 되어 있다. 해서 “자칭 ‘진보’의 강자 선망”이란 제목하에 이번 호의 기사해설을 달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광물자원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한다.”
아마, 트럼프가 약소국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을 해줘야 한다는 말로 읽힌다. 그래서 우크라의 영토상실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더한다. “러시아가 군을 동원해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강탈했는데 이 지역을 포기하라는 얘기”라고 한다. 아, 이 한 문장만 놓고도 한 참을 얘기해야 하는데 좀 갈 길이 멀다. 우크라역사책도 좀 읽고, 참으로 복잡하기 한정없는 국제정치의 역학도 좀 공부하고 그랬으면 싶다.
내가 참 넋을 잃은 것은 이 대목이다. “독재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날개을 단 형국이다. 사실 푸틴의 관점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쟁이 아니다. 푸틴에게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저 서구, 그리고 서구의 세력권에 편입하려는 젤렌스키 정부에 맞서 러시아 세력권 내부의 평화를 유지하는 ’특별군사작전‘일 뿐이다. 러시아가 2014년 유럽안보협력기구의 중재로 합의한 ’우크라이나와의 전투행위 즉각 중단‘ 등을 담은 ‘민스크 의정서(민스크1)’, 2015년 프랑스, 독일과 같은 내용의 즉각 이행을 합의한 ’민스크2‘, 젤렌스키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인 2019년 합의한 휴전안을 하나도 이행하지 않은 것 역시 푸틴의 이런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비롯한 일이다.”
이어 러의 우크라 침공은 “오롯이 러시아와 푸틴의 책임”인데, 한국에서 ’진보‘을 자칭하는 일부 인사들이 젤렌스키를 조롱하고 침공을 정당화하는 점이문제라고 질타한다. 이는 ’강자선망‘ 탓이요, ’진영논리‘탓이다. 그래서 전쟁마저 이렇게 보는 것은 “푸틴이나 트럼프의 극우적 관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 혹은 팩트에 완전히 무지하면 이렇게 된다. 좋은 본보기로 삼아 널리 학습할 만하다. 박노자가 말한 것을 미러링하자면 ’우크라 네오나치의 프로파간다‘를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받아 쓰면 이렇게 된다. 왜냐 하면 모든 것이 푸틴탓이고, 이제 나아가 트럼프탓이다. 한반도가 포함되었을 지도 모를 세 개의 핵전쟁을 구상한 바이든의 네오콘도, 딮스도 다 푸틴 탓이다. 또 트럼프탓이다. 잘 하면 네오콘 바이든이, ’21세기 처칠‘ 곧 젤렌스키가 푸틴을 물리치고 러시아 레짐체인지를 할 수있었는데 그만 바이든이 레짐체인지 당했으니 이 원통함을 어찌하면 좋은가. 하필 지젝까지 인용해 “우크라이나 지지는 자유(리버티) 개념을 향한 세계적 투쟁”인지라, 바로 그래야 이 “자유”가 승리하는데 말이다.
어째 탄핵시켜야할 윤석열의 “자유”와 한겨레 21의 이 “자유”가 오늘 갑자기 이렇게 크게 울리는 것은 내가 환청이 와서 그런 걸거다. 나는 윤석열의 사고를 ‘리버럴 파시즘’이라고 본 바 있다. 자유를 말하면서 이 편집장이 짧은 글에서 네오나치의 주장을 ‘베낀’ 것은 아마 순백 자유의 나라 우크라에는 네오나치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다. 아니 2022년전에야 네오나치라는 검색어하나만 구글링하면 끊없이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저 우크라네오나치기사를 그가 단 하나도 읽지 않았기 때문일거다. 절대 나토는 동진하지 않았다. 다 러시아 프로파간다다. 단 한 치도 나토는 동진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 혹 갔다면 ‘자유’를 찾아 이동한 것일 거다. 2차 대전이후 냉전의 설계자 조지 케넌이 나토의 동진을 비판한 것은 미국의 선한 의도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심지어 키신저조차도 경고했던, 이 편집장이 나토의 동진을 말하지 않는 이유는 저 수십명에 달하는 정치인, 언론인, 학자등의 저 수많은 유명인사의 칼럼을 단 한편도 읽지 않았기 때문일거다. 오 자유여, 우크라이나여, 윤석열이여!
바로 작년일거다. 민스크2의 국제보증인 메르켈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민스크협정은 우크라재무장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민스크협정체결시 같은 자리에 있었던 전 프랑스 대통령 올랑드도 그렇다고 인정했다. 또 작년 초 뉴욕타임즈는 2014년 유로마이단 이후 미CIA가 러-우 접경지대 전역에 약 12개 가량의 비밀기지를 운영해 왔다고 했다. 우크라 정보기관과 이 때부터 항상 긴밀히 협력해 왔다고 했다. 2022년 전쟁이 나자 우크라 네오나치의 수령 빌레츠키는 이 전쟁은 2014년 내전의 연장일 뿐이라고 했다. 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도 될 전쟁이었다. 아니 이렇게 많이 죽을 이유가 없는 전쟁이었다. 2022년 4월 이스탄불에서 ‘거의’ 다 된 <우크라이나 중립과 우크라이나 안전보장에 대한 협정>을 보리스 존슨이 바이든의 지시를 받고 달려와 이 판을 엎지만 않았으면 말이다. 그 보리스 존슨이 말했다. 이 전쟁은 “서방의 패권Western hegemony” 을 위한 ”대리전쟁“이다. 아니 자유를 위한 전쟁인데 에이 이게 무슨 말인가. 최근엔 미 국무 루비오 조차도 이 전쟁은 ”대리전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아니 영국은 우크라를 도와 자유의 성전을 계속하자는 쪽인데 어떻게 트럼프의 국무하고 같은 말을 하지. 하지만 다 필요없다. 이 모든 것은 -본인의 무지를 빼곤- 푸틴때문이다, 트럼프 때문이다. 아니라고 하는 ‘자칭‘ 진보는 자신과 같은 ‘타칭 비진보’가 보기에 모조리 다 ”극우“다. 푸틴도, 트럼프도, ”자칭 진보“도 젤렌스키 욕하면 다 극우다.
젤렌스키는 단지 푸틴의 ”제국주의적 관점“의 희생양일 뿐이다. 이 순백의 결정같은 아름다운 젤렌스키는 좀 잘못이 있어도 좋다. 자유를 위해 싸우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젊은 이들이 우크라가서 좀 죽으면 어떤가. ’국익‘을 말하면 다 ’극우‘아닌가. 그리스공산당은 중국도, 러시아도 다 제국주의다. 나아가 이들과 좀 다르지만 미 네오콘 그리고 극단적 루소포빅 트로츠키주의자들도 같은 얘기를 한다. 이 무시무시한 ‘극좌파’ 트로츠키주의자의 정신세계가 이렇게 한겨레21의 기사를 통해 구현되는 이 초현실앞에서 나는 그저 무력할 뿐이다.
나는 이제 만에하나 한겨레21마저 ‘트로츠키주의 선망’의 길로 들어 설까 두렵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트로츠키주의 선망’은 ‘트로츠키주의 섬망’으로 이어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인지장애, 의식장애에서 급기야 행동장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타칭 비진보 기자가 성찰하고, 공부할 거로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망발은 여기서 그쳤으면 좋겠다. 여전히 한겨레의 그 창간의 기운과 맑은 정신을 사랑해서다.
(*참 이번 기사에 대한 책임을 물을 제도적? 방법은 좀 알아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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