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y Kimmers - <동학난 vs. 동학 혁명> 아래는 얼마전 우연히 소개 받은, 김용삼 기자의 유튜브 내용에... | FacebookJay KimmersnsdtoSrpoe814561acmc: hga1tg7f00a ih72lh3201f gl7uggMltrm7hc ·
<동학난 vs. 동학 혁명>
아래는 얼마전 우연히 소개 받은, 김용삼 기자의 유튜브 내용에 바탕한 개인적인 생각을 간략히 요약해 본 것임:
전봉준은 대원군 이하응 파였고
따라서 동학난은 분명 "혁명"이 아니라, 봉건화, 복고화 또는 수구화를 위한 난이었음.
우물안 개고리 동학 1,2대 교주들이 뭣도 모르고, "외세 배척", "우리식" 고집하다가, 3대교주 손병희인가가 일본에 피난가서 살아보니, 지들이 우물안 개고리였음을 절실히 깨달아서...조선에 동학교도들에게 러일 전쟁시 일본군에 협조하라고 지시했다... 이것이 동학의 친일 행각의 시작점이 됨. 다시 말해서, 반일에서 180로 돌아, 친일의 선봉에 서게 됨.
동학교주들이 국제 정세의 reality를 일찌기 깨달았다면...우금치 전투란 것에서 무슨 부적을 붙이고 일본군의 총탄 세례에 무모하게 돌진하다가 3만 5천 명이나 되는 무고한 농민군들의 생명을 앗게 하는 일이 불상사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임.
사실 러시아와 청나라 그리고 아마도 일본을 제외한 거의 모든 다른 나라들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조선에 일말의 관심을 가졌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고 한다.
그전에 영국군이 거문도를 점령했던 것은 한반도를 통한 러시아의 남하에 신경이 가 있었기 때문인데, 동학난-일청전쟁 후에 영일 동맹을 맺음으로 영국은 사실상 한반도를 일본에게 넘긴셈이 되었다고.
현재 후조선 좌빠루들이 동학이 혁명인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1930년대에 쓰여진 무슨 소설에 나오는 내용에 바탕한 typical 한 조선식 왜곡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란, 동학난을 전문으로 연구해온 어느 학자의 결론이 있다고 하는데, 전적으로 사실일 것이라고 봄.
동학난은 이씨 조선의 돌이킬 수 없는 무능과 열악함을 드러내고, 지배층의 권력 다툼에 무지한 군중을 동원해서 희생시키고, 결국은 한반도를 외세간의 전쟁터로 전락시키고, 이씨 조선의 멸망을 가속화시킨 fiasco 에 해당하는 일대 사건이었음.
그럼에도 작금 이것을 미화시키면서, 그 후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코메디 같은 일이 벌어지게 한 것은 문재인 좌파 변태 정권이었고.
왜 코메디인지 아마도 저들은 이해할 필요도 느끼지 않을 것임. 동학의 본질은 봉건적/수구적 이념인데, 명색이 진보라는 세력이 난(riot)를 조장하기 위해서 그것을 미화시키고 있으니...북조선 정권이 홍경래 난등을 미화시키는 것과 연장선에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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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지요?
그렇다면 걸핏하면 역사를 왜곡하는 민족에겐 더욱 더 미래가 없겠네요?
불과 일이백년, 또는 일이십년도 안된 역사에서도 수 없는 왜곡을 일삼는 민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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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책은 페친 차명수님 포스팅에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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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comments
Most relevant
서민영삼일 독립선언서 서명자중 천도교측이 많았죠
나중에 변절자도 대부분 동학교도
Jay Kimmers서민영 1919년 삼일 운동이 1917년 볼쉐비키 혁명의 영향를 받지 않았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Wilson 의 민족자결주의 영향이란 통설은 어쩌면 매우 부분적인 진실만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볼쉐비키 혁명에는 소수의 조선인들도 참여했었고, 조선민족의 정신구조상 공산주의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한 것과 무관하게 그 이상주의적 이념이 훨씬 더 appeal 되었을 가능성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차세계 대전 종전 직후1920년대 초,
유럽을 비롯해서 전 세계적으로 공산주의 열풍이 불었습니다.
Charles Kim · 조선말기보다는 낮겠지만 지금도 국제정세를 모르는 우매함은 생각보다 많은것 같습니다..
Charles Kim · Jay Kimmers /
설령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되어도, 그 생각을 솔찍하게 인정하고 생각을 바꿀 "용기"가 없는 민족이라 구차하게 요설들을 늘어 놓게되지요.. 잘못된 생각을 고치는 것은 자신의 발전인데, 마치 승부에서 진것처럼 생각하는 옹졸한 마음이 있는거지요. 소인배들이지요..
정양희전봉준은 수년간 대원군의 식객이었고 심지어 일본의 대류낭인들과도 접촉한 적이 있음.
그의 동상을 종로 한복판 구 포도청 자리에 떡하니 앉혀놓고 귀신 부르는 잡배들.
바로
그 자리는 이승만과 이상재가 투옥되어있던 감옥 자리라는 건 모름.
Jay Kimmers1919년 삼일 운동이 1917년 볼쉐비키 혁명의 영향를 받지 않았을 수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Wilson 의 민족자결주의 영향이란 통설은 어쩌면 매우 부분적인 진실만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볼쉐비키 혁명에는 극소수이지만 조선인들도 참여했었고, 조선민족의 정신구조상 공산주의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한 것과 무관하게 그 이상주의적 이념이 훨씬 더 appeal 되었을 가능성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차세계 대전 종전 직후1920년대 초, 유럽을 비롯해서 전 세계적으로 공산주의 열풍이 불었습니다. 윌슨은 1920년 선거에서 재선되지 못했고 그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 되면서 그의 정치적 영향력도 급속히 감소했으므로, 결과적으로 1920년대에는 이미 그의 영향력은 소멸 되었는데... 1919년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에 대해서도 조금은 회의적 기분이 들고요.
따라서 소위 삼일운동의 지도자들의 이념적 성격에 대한 좀더 엄밀한 분석이 필요해 보이는데, 신뢰할만한 사료라고 할 수 있는게 얼마나 남아 있을런지...?!
정양희Jay Kimmers 일본은 안보의 적인 짜르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해외주재 무관을 동원해 레닌을 조종. 반면 조선인은 레닌의 썰레발을 금과옥조로.
그때나 지금이나 겉핧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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