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는 교사다.
학교는, 그리고 교실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과도 같아서 아이들의 언어생활을 관찰하고 있노라면 한국이 얼마나 혐오, 차별이 만연한 사회인지를 일상적으로, 수시로 느낄 수 있다.
가깝게는 부모로부터 시작해서 주변 어른들로부터, 미디어로부터, 그리고 선생님으로부터 그들은 그 언어들을 학습, 아니 체득했을 것이다. 그들보다 먼저 난 어른으로서, 한 명의 교사로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지난 날의 내 성찰 없던 언어사용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앞으로 좀 더 섬세하고 배려가 깃든 말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1. '부모님께 갖다드리세요', '부모님 사인(도장) 받아오세요'
-학교에는 다양한 가정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있다.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조손가정,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등등.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두 사람의 부모가 있는 집을 정상가족으로 상정하고 발화되는 '부모님'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포괄하지 못하는, 폭력적인 언어가 될 수 있다. 그런 가정 형태가 아닌 학생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다. '보호자' 로 바꿔 쓰면 무리가 없다.
2. 외모평가
-여학생이든, 남학생이든 교사가 학생의 외모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 같다. 외모는 재능과 마찬가지로 우연적으로 타고난 것이어서(물론 후천적 노력에 의해 가꿀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설령 그것을 칭찬하는 것이라해도(부정적으로 언급하는 건 말 할 것도 없다) 교육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가령 어떤 반에 가서 A라는 특출난 외모의 학생을 다른 급우들 앞에서 칭찬하는 순간 칭찬받지 못한 나머지 학생들은 상대적 열등감을 느끼게 될 수 있다. 특히 청소년기는 외모에 대해 예민한 감성을 갖는 시기이기도 하다. 타고난 것보다는 노력한 것을 칭찬하는 것이 교육자의 자세인 것 같다.
3. 여자애가~~~, 남자애가~~~
-교무실은 사랑과 관심의 공간일 때도 있지만, 차별과 억압의 공간이기도 하다.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혹은 상담하면서 교사들이 내뱉는 각종 언어들에는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문제적 언어들이 넘쳐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성 고정관념적 인식에 기반한 말들이다.
*여자애가 왜 그렇게 (목소리, 웃음소리가 크냐 / 나대냐 / 조신하질 못하냐 / 차분한 맛이 없냐 / 험하게 노냐 / 칠칠치 못하냐 / 깔끔하질 못하냐/ 자기관리를 안 하냐 등등)
*남자애가 왜 그렇게 (의리가 없냐 / 소심하냐, 자신감이 없냐, 용기가 없냐 / 한 입으로 두 말하냐 / 치사하냐 / 사나이, 남자답지 못하냐 / 약속을 안 지키냐 / 교실에만 처박혀있냐 등등)
-이런 차별과 고정관념의 실제 용례의 목록들은 무한대로 나열할 수 있다. 그만큼 아무 성찰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성장과정에서 자신의 여러가지 '인간'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긍정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성 발달의 기본전제조건이다. 이 나라의 교육목표인 '민주시민'은 어떤 인간인가?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주체적인 태도를 내면화하고, 그 힘으로 타인존중과 배려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런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는 학교의 교실, 교무실, 운동장에서부터 평등의 언어를 경험하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민감해지고, 기꺼이 더 불편해져야 한다.
교사대상 요런 연수 기획해보는것도 좋을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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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경
100% 공감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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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희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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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he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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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혼자 있는 어린이에게 '엄마 어디 있니?'라고 말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어요. 엄마가 없던 아이였는데... 두고두고 그 부끄러움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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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종
공감의 따봉을 바칩니다.
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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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ojin Choi
기꺼이 불편해지려고 애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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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순간순간 알아차리기 위해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오늘 일찍 깨서 지금 이시간에 이글을 보고 있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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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jun Alex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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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마음을 담는 거울이라 늘 상대방을 존중하는 말을 앞에서나 뒤에서나 사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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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윤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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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섭
좋은 글 마음에 새겼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제껏 교사답지 못한 적 많았는데, 그 중 많은 부분은 언어 사용이 부적절한 데 있었던 듯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민감해지고, 기꺼이 불편해지'는 일을 교직 생활의 과제로 여기며 지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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