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aikyu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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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규 리포트>
서평 216 : 무엇이 '혐오와 분열'의 정치를 조장하나? <정치적 부족주의>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이게 한 나라 한 민족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자유와 평등, 민주와 인권, 국가의 독립과 통일, 번영과 안정이라는 사회 공통의 가치는 사라지고 '너 죽고 나 살기, 나 살고 너 죽이기'의 혐오와 증오가 판을 친다.
윤석열 내란 사태를 계기로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심해졌다. 옳고 그름의 잣대는 온데간데없고 나 또는 내가 속한 집단에 유리하냐 불리하냐만 따지는 아귀다툼이 극성을 부린다. 윤석열은 12.3 내란 기도로 한국 사회에 서서히 자리 잡고 있던 잠재적인 분열과 갈등을 활활 타오르도록 불을 지피고 휘발유를 뿌려댔다. 그 하나만으로도 윤석열은 한국 역사에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졌다.
인간은 국가 이전에 인종, 지역, 종교, 분파, 부족에 기반을 둔 다양한 집단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집단이 부족이다. 자발적이든 인위적이든 그 집단에 속하면 유대감과 애착이 생기고 그 집단의 정체성에 고착된다. 개인적으로 얻는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고 남의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우파 기독교와 여성 혐오, 반북·반중 정서를 기반으로 한 아스팔트 극우세력이 정치적 부족주의의 대표 사례일 것이다.
<정치적 부족주의>(부키, 에이미 추아 지음, 김승진 옮김, 2020년 4월)는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은 부족주의를 잘못 다스리면 한 국가의 운명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책이다. 저자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예일대 로스쿨 교수로 있다. 미국의 백인 주류가 아닌 아시아계 이민자 가족 출신이기 때문에, 미국 안팎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부족주의 문제를 더욱 예민하게 관찰할 수 있었으리라.
저자는 미국이 강대국 중 유일하게 부족 정치를 초월하는 국가 정체성, 즉 슈퍼 집단이기 때문에 부족 정치를 몰랐을 뿐 아니라 외면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국내외에서 큰 실패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적어도 최근 반세기 동안 미국의 외교정책은 부족적 동학이 정치에 끼치는 영향을 간과함으로써 결정적인 실패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세계를 상호 배타적인 영토를 가진 국민국가들이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자유세계 대 악의 축'과 같은 거대 이데올로기에 따라 대립하는 장으로 보는 경향을 띠면서, 더 원초적인 집단 정체성을 무시했다는 얘기다. 이것이 미국 외교정책의 아킬레스건이었다는 것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인 베트남전쟁에서는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시각에 매몰돼, 베트남 사람들이 공산주의보다 훨씬 더 민족 독립을 위해 싸운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인구 비중 1%의 화교가 부의 60~70%를 장악하는 것을 혐오했는데도 오히려 친 자본주의 조치를 취하면서 베트남 대중의 분노와 증오만 더욱 키웠다.
이라크 전쟁에서도 이라크가 소수의 수니파 지배층과 다수의 시아파 피지배층이 대립하는 것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수출하면 이런 것이 금세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두 파의 분쟁과 폭력, 증오만 불러일으켰고, 이라크를 이란의 영향권으로 몰아넣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베네수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이 나라 안에서 복잡하게 얽혀 전개되는 부족주의를 무시하고 반공이니 민주주의니 하는 도식만 앞세우다가 실패를 자초했다.
대외정책뿐이라면 다행이지만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대통령이 된 것도 부족주의의 결과라고 말한다. 강대국 중에서 유일하게 집단 불문주의라는 '슈퍼 집단'의 정체성을 가진 미국에 부족주의가 본격으로 출현한 것은 경제적 불평등 때문이다. 즉, 가진 자 대 못 가진 자로 나뉜 부족주의가 발생했다. 물론 미국의 정치적 부족주의의 핵심에는 '인종'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에 대해 좌파 엘리트를 포함한 민주당 진영은 못 가진 자를 대변한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공감을 전혀 사지 못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그들과 유리됐다. 오히려 우파, 즉 트럼프는 프로레슬링과 같은 천박하지만 그들의 정서를 끌어안는 활동에 초점을 맞추면서 지지를 획득했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 동력이다.
저자는 하나의 부족이 압도적으로 지배적일 때는 마음대로 남들을 박해할 수도 있지만, 매우 너그러울 수도 있다고 말한다. 더 보편 지향적이고 더 계몽적이고 더 포용적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에서는 어느 집단도 지배력을 안전하게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민주주의가 집단 간의 파괴적인 경쟁이 되면서 완벽한 정치적 부족주의로 퇴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악순환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안으로,
'개인과 개인이 얼굴을 맞대고 하는 상호작용'을 제시한다.
한 명 한 명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생각과 이상을 확인할 때 ‘부족적 적대’가 어디에서 발원했는지 파악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사회가 맞닥뜨린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국민국가를 위협하는 위기가 닥쳐왔을 때 ‘고결한 우리’ 대 ‘악마인 저들’이라면서 서로에게 손가락질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진짜 해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생각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갑갑하지 그지없다. 과연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대립, 증오와 배제가 상당 부분 부족주의에 근원하고 있다는 점을 자각이나 하고 있을까? 또 자각한다고 해서 통합과 화해의 세계가 바로 찾아올 수 있을까?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가 머리를 싸매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렇게 해도 힘들지 모른다. 정치적 부족주의의 병폐가 더욱 심해지기 전에 근원적인 치료가 시급하다.
저자의 생각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갑갑하지 그지없다. 과연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대립, 증오와 배제가 상당 부분 부족주의에 근원하고 있다는 점을 자각이나 하고 있을까? 또 자각한다고 해서 통합과 화해의 세계가 바로 찾아올 수 있을까?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가 머리를 싸매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렇게 해도 힘들지 모른다. 정치적 부족주의의 병폐가 더욱 심해지기 전에 근원적인 치료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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