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 (반양장) - 불굴의 도전 한강의 기적
오원철 (지은이)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200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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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박정희 정부는 한국의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어떻게 성취했을까? 박 대통령의 재임 당시 상공부 소속의 대통령 측근으로 한국 경제발전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던 지은이가 그 과정을 회고한다. 지은이가 옆에서 지켜본 박정희의 심중과 결단, 행동은 물론 1960~70년대 한국 경제의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풍성하게 담아내고 있다.
지은이는 1971년 상공부 과장 때부터 18년 넘게 대통령에게 브리핑 업무를 맡아왔다. 지은이는 체험한 것을 그대로 증언한다는 원칙에 따라 당시의 브리핑 형식을 그대로 살린 서술을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쉽고 압축적인 정보 위주의 표현, 지은이가 보고에 활용했던 도표와 그래프 자료들이 본문 가운데 다수 활용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 박정희 정부의 경제발전 전략과 그 성과를 알기 쉽게 풀이하면서 이후 IMF 체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경제사를 관통하는 시각을 제시한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구상에 발맞춘 현재 한국경제의 발전을 위한 조언을 들려주기도 한다.
목차
머리글
제Ⅰ부 박정희 대통령의 행정방식과 한국의 산업혁명
제1장 박정희 대통령의 사업추진 단계
제2장 한국의 산업혁명과 한국형 경제개발 모델
1. 전(全)산업의 수출화 전략 / 2. 한국의 산업혁명
제Ⅱ부 조국의 근대화
제1장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
1. 산업화 대장정, 경제개발 5개년계획 / 2. 외환위기제1차 5개년계획 축소 조정 / 3. 박정희 대통령의 서독 방문 / 4. 수출만이 살 길, 수출제일주의와 공업입국
제2장 한강의 기적
1. 전년 대비 수출증가율 40% 고속 행진 / 2. 꿈의 1억 달러 수출‘수출의 날’ 탄생 / 3. 수출전략 최고회의기회 있을 때 밀어붙여라 / 4. 제2의 고지 10억 달러 수출계획 / 5. 불가능은 없다. 수출증가율 40% 초고속 줄달음질 / 6. 하면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제3장 국가안보
1. 푸른 낙원의 꿈북한의 인민경제발전 7개년계획 / 2. 청와대를 습격하라월남전 방식 게릴라전 / 3. 닉슨 독트린미(美) 7사단 철수 / 4. 남북한 경제전과 북한의 6개년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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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북한의 도발은 그 후로 계속 격화되었다. 1974년 8월 15일에는 문세광 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은 세 번째의 박 대통령 암살기도였다. 이 해에는 연초부터 북한 함정의 서해 침입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방위산업 육성은 가속화해 나갔다. 그리고 75년 6월에는 재원 마련을 위해 방위세를 신설하게 된다. 75년 월남이 ...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오원철 (吳源哲)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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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간의 공직 생활은 한국경제 발전사와 정확히 그 궤도를 같이한다. 경공업에서 시작해 중화학공업까지 그를 빼놓고는 한국의 산업화, ‘압축성장’ 방식인 ‘한국형 경제개발 모형’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황해도 송화군에서 태어나 서울공대 화공과 출신의 엔지니어로 공군장교로 복무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를 만든 시발 자동차 회사의 공장장으로 일했다. 상공부에서 산업화의 시작인 제1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화학 분야)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실무 책임자의 역할을 했다. 청와대 경제수석으로서 1970년대에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 그리고 행정수도 이전계획 및 2000년대 국토계획, 기술인력 양성 및 각종 연구소 설립 계획, 중동 진출 방안 등을 입안하고 추진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과정을 통해, 미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청소년들에게 공학의 비전을 알려주고 싶었다. 접기

최근작 : <청소년을 위한 공학이야기>,<The Korea Story>,<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 (반양장)> … 총 12종 (모두보기)
오원철(지은이)의 말
"한 세대의 생존은 유한하나, 조국과 민족의 생명은 영원한 것, 오늘 우리 세대가 땀 흘려 이룩하는 모든 것이 결코 오늘을 잘살고자 함이 아니요, 이를 내일의 세대 앞에 물려주어 길이 겨레의 영원한 생명을 생동케 하고자 함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대총장에게 보내는 글)
이는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관이다. 나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노심초사 온 힘을 쏟아붓는 그의 곁에서 18년 동안 일했다. 지금도 열과 성을 다해 뛰었던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제 나는 박정희 대통령이 나라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어떻게 고심하고 어떻게 일했는가를 역사적 사실 그대로 기록하고자 한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측근 입장이다. 대통령의 공과에 대해 논할 처지는 아니다. 오로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체험한 것을 사실대로 증언할 뿐이다.
평점
분포





8.3





사료적 가치가 있는 좋은 책


청보리 2012-07-04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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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깊이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 이면에 무엇이 있었는 지 알고 싶다.


dongark 2011-10-0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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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서글픈 과거..그리고 현재..미래


미키만세 2007-11-20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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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은 한국의 마오이스트가 아니라 박태준을 만나고 싶어한다

높은 정상에 올라가면 발아래로 산 전체의 모습이 들어온다.
가끔 그런 경험을 나누어주는 책들이 있다.
캐사르의 갈리아전기는 갈리아 정복 과정 전체에서 그가 가졌던 생각들을 잘 드러내준다.
그의 행동의 결과 갈리아의 로마가 이루어졌기에 그 생각을 따라가보는 것은 꽤 흥미가 있다.
이 책도 유사한 경험을 나누어준다.
박정희 시절은 물리력을 기반한 강력한 리더십으로 국가의 경제를 만들어간 시대다.
유래없을 정도로 강했던 이 드라이브의 정치적 공과는 잠시 놓아두고 성과를 보면 아직도
많은 다른 나라가 궁금해하고 있다.
이 책은 그 힘의 가장 중심에서 자신의 브레인을 최대한 동원하여 경제를 기획해나간 비서관
오원철에 의해 쓰여졌다.
수십년이 지난 경험이라 좀 낡지 않았을까 의문을 가졌지만 기우라는 것이 금방 판명이 났다.
일을 추진해가면서 획득한 지식과 깨달음을 주는 내용은 지금도 우리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평평한 지도 하나를 놓고 이곳에는 화학공장, 저쪽에는 기계공장을 놓자 하는 한마디에
대산 화학단지가 생기고 창원 기계단지가 생겨난다.
공단과 공단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줄을 그으면 바로 길이 생기고 철도가 이어진다.
이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고위 공무원들의 재테크 노하우가 나온다.
평범한 농지와 공단의 땅값은 다를 것이기에 다들 돈 빌려 투자에 나선다.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들이 인사청문회 서면 하나 같이 나오는 투기 문제의 원조가 여기에 있다.
세부적인 산업으로 내려가보면 축적된 지식도 만만치 않았다.
포스코의 성공은 후공정 부분을 완성해 먼저 제품을 만들고 점차 전공정을 채워가는 전략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지금 돌아보면 간단한 것 같지만 북한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화학 등 다른 분야에서도 일일이 따져가면서 상대와 비교를 했고 결과는 폭넓게 해외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인 남한의 승리였다.
Tank를 만드는 것도 독특했다. 왜 소련의 탱크가 미제보다 좋을까?
답은 의외로 작게 만든다는 simple한 이치에서 나왔다. tank가 작으면 어떻게 큰사람들이 탈까?
역으로 작은 사람들만 탱크병으로 선발한다는 해법이 도출된다.
결과는 작기에 낮아서 피격되기 어렵고 철의 무게가 적어서 더 많이 만들고 빨리 기동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읽어가는 것은 때로는 박진감 넘치는 전투의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 같기도 했다.
어설프게 남의 이론 들여와서 입으로 떠벌리지만 막상 권한 주면 하나도 해결못하는 인간들이 있다.
노무현과 주변의 집단들이다.
최근 최장집 vs 조희연 논쟁이 있었다.
과연 지금 집권세력의 문제는 무엇이고 계속 집권하는 것이 사회전체적으로 바람직하냐는 논란이다.
내가 볼 때 노무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조교수 쪽은 아직도 상아탑에서 적당히 가공된 외국산 툴을 조합하고 여전히 신념에만 매달려 자신의 이론과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 현실을 외면하는 꼴 이상이 안된다고 느껴진다. 차라리 최장집 처럼 안되면 놓으라고 하는 태도가 더 솔직하지 않는가?
최근에도 보면 한홍구 교수를 비롯해서 조희연 교수와 유사한 분들이 많은데 솔직히 종이 값이 아깝다는 느낌을 넘지 못했다.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들이 한국의 마오이스트들을 만나보기 보다는 박정희 시대의 테크노크라트 - 황병태 등 - 에 훨씬 관심이 많았고 박태준을 영입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사실을 잘 음미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건데 박정희 시대의 모는 과를 안고가서는 안된다.
박근혜가 인혁당 재심논란을 자신에 대한 정치적 공세로 보고 있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정치적 선택이다.
386세대가 다시 노무현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것이 인혁당 사형까지 박정희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도 그 정도 수준에 밖에 정치적 조언을 받지 못한다면 대권을 쥐고도 노무현처럼 소규모 측근에 둘러싸야 대세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 입장에서 손쉽게 나는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우습지도 않은 개념 만들고 떠벌리고 다니는 후안무치도 없어져야 한다.
얼마전 한홍구의 글 하나를 보니 아직도 유시민에 대한 꿈을 버리지 말자며 80년대 항소이야기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때 그 글은 분명 감독적이었다. 아마 유시민이 정치인이 되지 않고 외곽에서 비판을 해나가고 있다면 여전히 어느 정도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인 특히 책임을 맡은 행정부는 그 결과물로 심판받아야 한다.
성과 나오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기회비용의 손실이고 한 마디로 밥만 축내는 밥통보다도
못한 존재일 따름이다.
그런 노시민 그룹을 변명하기 위해 추억을 들먹이는 태도는 오늘도 고난의 행군을 써먹는 모 집단의
태도와 별로 차이가 없다.
좌냐 우냐 과연 그 기준이 앞으로도 그렇게 중요할까?
자유주의,신자유주의,사회주의 모두들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장단점은 있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각자 몸에 맞는 해법을 다를 수 밖에 없다.
자신에게 맞추는 치열한 고민 없는 모든 논설은 가치 없는 프로파간다일 뿐이다.
그것이 없다면 유시민과 공병호 두 사람의 case에서 볼 수 있듯이 같은 수준의 잡다한 이야기꾼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보면 조희연,한홍구의 책 보다 분명 이 책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더 값어치 있다. 가끔 독설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자신감,기획력 그리고 폭 넓은 시야는 분명 배울 점이다.
가까운 중국이 침흘리며 사려는 경험을 우리는 너무 쉽게 내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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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7-02-03 공감(10)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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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경제철학을 한눈에.

죽은 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살아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박정희!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그의 투철한 애국애족정신이다.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를 읽고, 박정희의 경제철학을 한눈에 볼수 있는 이로움을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박정희 시대의 테크노크라트로서 아주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예와 도표까지 들어가며, 대한민국이 아시아 최빈국에서 세계 경제 10대 강국의 자리까지 발돋움할 수 있었던 비결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 사후, 역대 대통령들이 보여준 ... + 더보기
peppermint2 2006-08-03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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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 평가가 갈리고 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그는 2차대전 이래 독립한 아프리카의 식민지들과 마찬가지의 처지였던 한국의 폭발적인 경제발전을 선도했다. 일인당 평균수입 76달러, 문맹율 90%의 나라를 단 30년만에 경제력 세계10위, 수출입 세계 9위, 선박건조 세계 1위의 강대국(그렇다! 이건 확실히 강대국이다!)으로 성장시킨 과정에 있어 박정희를 제외하고는 이야기를 이을 수 없을 정도이다.
이 책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는 시발자동차 공장장, 상공부 공업 제1국장, 차관보 등을 지내면서 중화학공업화를 주도한 오원철 한국형 경제정책연구소 상임고문이 직접 펴낸 책으로, 인류가 쌓아올린 시행착오의 집결체라 할 수 있는 역사 중에서도 성공, 혹은 실패를 내포한 성공의 하나인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에 대한 ‘역사서’라 할 것이다. 경제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지금 찬찬히 흝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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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y04 2006-09-21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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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지나온 세월..


우리 국민들이 맨손으로 얼마나 힘겹게 살아왔는지.. 가슴이 아프도록 슬픈 과거사.. 그렇게 일궈낸 우리 앞세대의 풍요를 우리 현세대가 이렇게 또 무너지고 있다 암담한 우리의 미래..걱정스럽다.. 작가의 지나친 박정희 사랑이 조금 거슬리지만 최측근이라 아마도 중립적이긴 힘들었을듯 보인다.. 그것만 감안하고 읽어보면 우리 부모님들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미키만세 2007-11-20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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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한국의 열정,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게 하는 책

테크노라트...
그의 시각으로..오로지 경제적 시각으로 박대통령을 보게 한 책.
이 사회의 X세대로서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해, 드디어 균형적인 시각으로 한국과 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한 책입니다. 상당히 좌파적 성향을 가졌던 저는 이 책을 통해 균형을 가지게 되었고 1960~1970까지의 연평균성장 40%연속달성이 저의 세대가 겪었던 "월드컵4강신화"와 같은 열정의 맥락을 가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이 책을 알아야 현재의 한국경제를 이해하고, 세계화의 한 가운데 있는 한국의 정체성과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차관을 빌리러 간 서독에서의 대통령의 눈물,그리고 온 국민의 묵언의 합의!! 그리고 이어지는 강력한 리더쉽과 국민의 자발적인 순종.. 우리국민의 저력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고, 정말 시대에 알맞는 리더를 대한민국이 만났었다고 생각합니다. 100억불 수출의 목표아래 진행되었던 중화학육성정책과 임기의 문제,정책일관성의 문제..그리고 유신... 처음으로 유신을 경제논리아래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왜 대통령은 그런 사실들을 국민과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화하지 못했을까요..왜 그의 리더쉽이 국민이 자발적으로 손에 쥐어준 것임을 몰랐을까요? 왜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득시키지 못했을까요..그랬다면..적어도 나라면..이해했을 텐데...아쉬운 역사의 한 장면입니다.
세계화의 대세속에 있는 이상, 경제논리는 정치논리의 상위개념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박대통령은 그걸 아는 리더였고, 유신에 대한 설명도 당시 북한과의 체제 경쟁, 그리고 박대통령특유의 '목표지향성','지기 싫어하는 성격','끝장을 보는 성격'에 의해 대한민국호는 쾌속항진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을 통해 기성세대를 매우 매우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권위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내 가슴속의 열정과 동일한 것을 가지고 있고, 그들도 들뜬 열정의 젊음을 살아내었고, 그들 시대의 특성상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그 정열의 희생위에 그 후손인 내가 그래도 이만큼의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거라고..그리고 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책임감-누가 강요하든 않든 자발적인-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문제는 과거에 대해 왈가왈부하거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소모적인 논쟁을 할 게 아니라, 대한민국호가 계속 항진을 하도록 그 옛날 60년대처럼 국민의 정서적인 전체적인 합의가 필요하며 그것을 도출해낼 만한 리더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한 가지 생각되는 것은 정치논리로 경제를 너무도 풍비박산낸 김영삼대통령당시의 정책들이 가진 '지나치고 급진적인 개혁'들이 언젠가는 분명히 재평가되고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제는 여기서부터 잘못되고 있음을 저절로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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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n12 2006-10-06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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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672쪽 짜리 책<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을 만들었나>의 맨 뒤(661쪽)에 나오는데, 오원철에 대한 가장 잘 정리된 소개 글이다. 읽으면서 타이핑이라도 해서 알리고 싶었는데, 한 페친이 책에서 본 바로 그 글을 링크해 주셨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2006년에 쓴 글이다. 뉴스타운와 김형아 반 리스트 교수에게 감사한다. 그나저나 김교수는 아직 살아계시는지??
아무튼 읽으면서 정말 의아했던 대목인데, 전두환정부의 치명적인 오류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
===
한국형 경제건설 저자 오원철은 누구인가?
편집부
승인 2006.05.03 01:07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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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김형아 반 리스트 교수 (호주 린필-드 대학)글이다
^^^▲ 오원철 고문^^^
오원철(吳源哲)씨는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의 연대였던 1960년대와 70년대에 상공부와 청와대에서 근무하면서 한국의 주요 산업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박정희 행정부의 전형적인 테크노크라트 (Technocrat) 로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 정책수립가, "공업 조직자"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를 가르켜 "오 국보"라고 부를 정도로 그의 공헌을 높게 평가하였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마치 자신의 "팔다리"처럼 여길 만큼 깊이 신뢰한 사람이었다.
^^^▲ 공군 시절 오원철 고문^^^
그는 1928년 10월 황해도 풍천(豊川)에서 태어났으며, 해방되던 해인 1945년 4월 경성공업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같은 해 12월 방학 중 고향을 다녀온 후, 그는 북한에 남은 그의 가족과 헤어지게 되었다. 그의 가족은 1945년 말에서 1946년 초 사이에 재산을 몰수당하고 고향에서 추방당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 가족과 헤어진 그의 부친은 한국 해군에 의해 구조되어 남쪽으로 내려올 수 있었지만, 그의 모친과 여섯 동생들은 북한에 남았다. 이렇게 해서 그는 한반도 분단의 직접적 피해자가 되었다.
1946년 국립 서울대학교의 창립으로 경성공업전문학교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으로 개편된 후, 화학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해 12월 공군 기술장교 후보생 시험에 응시, 합격하여 6개월간의 훈련을 받은 후 1951년 6월 공군소위로 임관하였으며, 같은 해 9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1957년 8월 소령으로 전역할 때까지 사천(泗川), 마산(馬山), 진해(鎭海), 대구(大邱)의 항공창(航空廠)을 설립, 운영하는 데 참여하면서 엔지니어로서의 소양을 쌓았다.
^^^▲ 시발자동차^^^
군에서 전역한 후 그의 첫 직장은 한국 최초의 자동차 회사인 시발자동차 회사였다. 그는 이 회사에서 공장장을 맡아 한국 최초의 국산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1960년 4 ·19 이후 사회혼란이 가중되어 시발자동차 회사가 운영난에 빠지자, 국산자동차 주식회사 공장장으로 자리를 옮겨 다음해 5 ·16 이 일어날 때까지 근무하였다.
5 · 16 이 일어난지 불과 일주일 후인 1961년 5월 23일, 그는 군사정부에 의해 소환되어, 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조사위원회 조사과장으로 일하다가 얼마 후 상공부 화학과장으로 발령 받았다. 상공부 화학과장으로 일하는 동안, 그는 제1차 경제개발 5 개년계획(1962년 1월 13일에 발표)의 화학공업 부문을 입안하였으며, 특히 정유공장과 비료공장, 시멘트공장 관련사업을 추진하였다.
이때 경제개발에 대한 "마이크로 접근방법"과 "임팩트 폴리시(impact policy)"에 대한 아이디어를 확립했으며, 재정자금 활용방책으로는 "목돈 작전"을, 공업화 전술로는 "공업 단지화 전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이때 울산(蔚山) 공업단지 건설을 입안, 추진했다) 여기서 "목돈 작전"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해 나갈 때 필요한 자금을 미리 확보해 두는 방법을 말하고, "공업 단지화 전술"이란 공장건설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먼저 공업단지를 조성해 놓는 방법을 뜻한다.
그의 이러한 아이디어는 한국에서 최초로 성공한 공업 단지인 울산공업단지의 계획과 건설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다.
^^^▲ 경제 제2수석비서관 시절 오원철 고문^^^
1964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수출제일주의로 전환된 직후, 그는 주요 수출 업종인 경공업 분야를 담당하는 상공부 공업 제1국장으로 임명 받아 수출제일주의 전략을 직접 실행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섬유공업을 비롯한 경공업의 수출산업화와 중소기업 육성의 실무책임을 맡아 일했다.
또한 1965년 이래 석유화학공업 육성 계획을 직접 입안하여 추진하던 중, 1968년에 기획관리실장으로 승진하였으며, 1970년에는 광공전(鑛工電)차관보가 되었다. 승진한 후에도 석유화학공업 육성은 계속 책임을 맡아 울산의 석유화학 공업단지를 건설(1972년 완공)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다.(오늘날 그는 한국 석유화학공업의 대부라고 불리운다.) 또 그는 철강, 전자, 자동차, 조선 등 각종 공업분야의 정책을 수립하는 데도 많은 기여를 하였다.
1970년대에는 남북한 간의 대결이 전쟁 직전의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던 위기의 시대였다. 이때의 남북한 간의 정치적, 군사적 대결은 경제개발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요인이 된다. 1971년 11월 박정희 대통령은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그를 경제 제2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하여 방위산업 육성의 총책임을 맡겼다.
그는 방위산업 육성은 중화학공업 건설이라는 큰 틀 안에서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으며, 이때까지 각종 공업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면서 얻은 경험을 총괄하여, "공업의 단계별 육성"과 "엔지니어링 어프로치"로 요약될 수 있는 "한국형 경제개발 모델"을 정립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그는 중화학공업 건설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마련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실이 바로「공업구조개편론」이다.(1960년대가 경공업 발전의 연대였다면, 1970년대는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공업구조를 개편해 나가야 할 시기가 된다.「 공업구조개편론 」은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해 나가기 위해 상세한 조사, 계획, 추진방법을 서술하고 있다)
이를 채택한 박 대통령은 1973년 1월 "중화학공업화 정책선언"을 하게 되었으며, 이 선언에 따라 같은 해 5월 중화학공업 추진위원회와 그 산하 기획단이 창설되었다.
^^^▲ 美 카터 대통령 방문시 오원철 고문^^^
그는 1974년 2월부터 중화학공업 기획단 단장을 겸임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1979년 10 · 26 사건 때까지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보좌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한국의 산업화를 추진하는 데 다음과 같은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첫째, 그는 철강, 석유화학, 기계, 전자, 조선, 비철금속 등 중화학공업의 6대 핵심 분야를 육성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하였으며, 이를 위해 여천(麗川), 창원(昌原), 구미(龜尾), 옥포(玉浦), 온산(溫山) 등 주요 공업기지를 건설하였다. 여러개의 공장으로 구성되는 공업단지 개념은 이때부터 주택단지, 항만, 교육기관, 검사기관, 숙련근로자 양성을 위한 훈련소 등 관련시설까지 포함하는 공업기지의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둘째, 방위산업 육성과 율곡계획의 집행을 담당하면서 개인 기본병기, 각종 화포, 장갑차, 탱크, 헬기, 해군 함정, 미사일 등 현재 한국군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 장비를 국산화, 현대화하는 데 앞장섰고, 국산화가 어려운 장비들의 도입을 합리적으로 추진하여 한국군의 전력 증강에 이바지하였다.
또한 그는 원자력산업 개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였다.
셋째, 1973년 오일 쇼크 이후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중동 진출, 플랜트 엔지니어링 산업 육성을 추진하였다.
넷째, 인력 양성과 관련하여 기능사, 기술자, 엔지니어, 과학자 양성을 위한 과학 기술교육제도의 개편과 각종 연구소의 설립, 대덕 연구단지 건설 등에 관여하였다. 동시에 그는 국토 종합 개발계획의 입안과 추진을 주도하였는데, 이것이 국토의 효과적 이용, 대도시 과밀인구의 억제, 환경오염 방지 등 여러 가지 목적을 갖는 것이었다. 또 이 계획은 공해를 막기 위해 내륙지방의 공장들을 해안 몇 곳에 집중시키는 사업과 행정수도를 대전 근처로 이전하는 사업을 포함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오원철은 1) 경제건설, 2) 인력양성(기술교육, 근로의욕 고취), 3) 국토개발, 4) 자주국방을 4대 지주로 삼는 박정희 대통령의 근대화 이념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활약한 핵심적 정책 수립가였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 1965년에 받은 첫번째 훈장은 수출지향적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1964년에 한국이 1억 달러 수출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고, 1972년의 두번째 훈장은 석유화학공업 육성(한국 중화학공업이 출발)에서 발휘한 그의 지도력에 대해 주어진 것이었다.
^^^▲ 집필중인 오원철 고문^^^
1979년 10 · 26 사건 직후 공직에서 물러난 그는 1980년대의 정치적 반동 아래에서 어두운 시절을 보냈다. 그는 1980년 5 · 17의 정치적 숙청 사건 때 체포되어 정신적, 육체적으로 매우 심한 고통을 당했을 뿐 아니라(그는 거의 두 달 동안 구금된 채로 고문을 당해야 했다), 1992년까지 10여년 동안 침묵을 강요당했다.
오늘날까지도 그는 전두환 정권이 왜 그에게 개인적 공격을 가했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박정희 행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자들 가운데서, 이유야 어떻든 10여년간 사회적 활동을 중단당한 사람은 오로지 그 한 사람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1980년대에도 계속 공직을 유지하거나 정치에 참여했다.
1992년 7월 27일부터 1994년 4월 13일까지 약 20개월간 [한국경제신문]에 "산업전략 군단사"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연재한 후, 그는 [월간조선], [신동아], [월간 Win ] 등에 계속 중요한 논문들을 발표하였으며, 외국의 학술 잡지들에도 기고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현재 그는 '남은 인생'을 걸고 1992년 7월부터 집필에 매달려온 [한국형 경제 건설] 시리즈(전 10권 목표)의 저술에 힘을 쏟고 있다. 산업화 과정의 실무적인 추진과정을 각종 증언과 관련자료, 비화 등을 꼼꼼히 기록한 대하 기획물로 현재 7권까지 출판되었다.
그가 갖고 있는 소박한 바램은 1960년~ 70년대 그의 경험을 정리하고 그로부터 역사적 교훈을 이끌어내어 후대에 남김으로써 한국사회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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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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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개월은 내가 마시는 물을 있게 한 우물 판 사람들을 찾는 여정이었다.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이니!
故한필순에서 시작했다. 우리 회사의 사실상의 설립자이자 7년간(1983~1990) 사장이자, 비슷한 시기에 원자력연구원장을 역임하셨으니!! 이후 박정기, 이종훈, 김시환 등 전력산업과 원자력산업의 원로들을 알았고, 올해들어서는 故최형섭과 대덕연구단지를 거쳐, 최근에야 故오원철을 알았다.
사실 오원철 이름은 처음이 아니었다. 2004~5년에 뜻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故백영훈박사를 자주 찾아뵈었을 때(우리에게서 독일 아데나워를 봤다면서 참 소중히 여겼다), 가까운 친구 언급하듯이 언급하긴했다. 그 이후 인지 이전인지 모르겠지만, 오원철의 지론은 잡지나 신문 인터뷰에서도 접했다.
그 때 느낌은 더 이상 작동하기 힘든 박정희식 경제개발 전략(수출제일주의 등)을 설파하는 한물 간 원로 내지 머리가 굳어버린 화석 같았다.
그래서 이 책 표지를 본 지는 제법 되었으나, 흔한 박정희 찬가가 아닐까 하여, 읽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일주일 간 가방에 넣고, 서울을 오가면서 완독을 하게 되었다.
'오! 주여!'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이 위대한 굴착자를 이제사 알았다니! 오원철은 박정희와 함께, 지금 우리가 마시는 대부분의 물인 중화학공업-철강, 비철금속, 조선, 자동차(기계), 석유화학, 전자--과 방위산업을 만든 사람이다. 지금 반도체를 제외한 한국의 주력 산업은 다 박정희-오원철의 콤비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력산업과 원자력산업은 창원, 울산, 온산, 거제, 구미 같은 산업도시처럼, 항만, 공항, 고속도로, 철도, 댐처럼 산업을 떠 받치는 인프라였다.
내가 아는 한 한민족 역사에서 국정운영의 기본설계와 실행을 다 해 본 사람은 정도전과 오원철이 유이 하지 않을까 한다.(김일성도 끼워줄 수가 있겠다.) 물론 오원철의 위업이 단연 빛난다. 율곡, 정약용, 박영효 등은 그냥 입만 털었을 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
책에는 여전히 깊이 유념할 통찰과 안목이 지천이다. 책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이 휘둥그래지고, 가슴을 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특히 책 맨 뒤에 있는 가로림FTS(자유무역지대) 구상은 처음 들어본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였다. 한마디로 가로림만 일대(서산, 태안, 당진 등)에 싱가포르 같은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완전한 자치 도시이자, 영어가 공용어인 도시(인구 400~800만 규모)를 하나 만든다는 것이니!!
그리고 무슨 부정축재를 한 것 같지 않은데, 1980년 5.17 이후 두달 간 신군부에 끌려가 고문까지 받고, 대략 1992년까지 침묵을 강요당한 것도 의아한 일이다. 허화평이 기억과 생각이 온전 할 때 한번 찾아 뵙고 그 연유를 여쭤볼까 한다. 전두환 정부가 왜 박정희-오원철의 국가경영 노선을 그렇게 홀대를 했는지가 진짜 궁금하다.
나누가 싶은 대목이 수백 개는 족히 되는 듯 한데, 그럴 수는 없고......
다 아는 얘기겠지만, 외환위기와 그 이후 몇 년간의 대란은 펀드멘탈의 문제가 없었지만, 우리의 과욕, 허영, 실수가 자초한 일이었다. 독감을 무슨 중병으로 오인하여 치명적 자해를 너무 많이 했다. 그 주역은 단연 김영삼, 김대중이다.
그런데 지금은 펀드멘탈의 문제가 너무나 심각한 것 같다. 진짜 죽음에 이르는 중병, 즉 총체적 노화와 전신 암(4기)에 걸렸는데, 이를 인식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위기의 진앙은 중국의 산업과학기술 굴기다. 위기의 본질은 우리의 혼미와 무기력이다.
외환 위기 직전 몇 년 동안 큰 위기가 닥쳐 오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와 언론이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듯이, 지금도 말로는 위기라고 하면서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천우신조에 힘입어, 근대화의 주력인 우파의 대각성이 일어나고, 윤통이 복귀하여 위기 수습을 얼마간 주도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금의 위기가 재기불능의 국망 위기로 가는 것은 잠깐 막은 것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이 진짜 넘어야 할 산은 계엄과 탄핵의 산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총체적 혼미, 쇠락과 파괴적 갈등의 산이 진짜다. 한마디로 중국에 밀려 쪽박차는 것이다. 지난 5천년동안 그랬던 것처럼 중국의 부강을 높이 올려다 보고, 스스로를 비하하고, 과거 중국 황제에게 그랬듯이 중국공산당에 사대하지 않을 수없는 비참한 처지로 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 위대한 경세가를 기리는 도로 하나 광장하나 학교 하나 없는 나라가 개탄스럽다.(창원이나 대덕에는 있을 법 한데....) 게다가 국립묘지도 사회공헌자 묘역도 아닌 선산에 묻었다니 기가 막힌 배은망덕이다. 뒤늦게라도 주권자 국민께 아뢰는 진짜 간양록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내 간양록은 족탈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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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omments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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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 기념하는 날. 오늘이 53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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