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0

[서의동 칼럼]한·미 동맹 ‘중독’에서 벗어날 시기 - 경향신문

[서의동 칼럼]한·미 동맹 ‘중독’에서 벗어날 시기 - 경향신문

한·미 동맹 ‘중독’에서 벗어날 시기
입력 : 2025.03.19 
서의동 논설실장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에 지정한 배경과 관련해 조지프 윤 주한 미국대사대리는 한국인들이 로스앨러모스, 아르곤 등 미국 국책 연구소에서 반출해선 안 되는 자료를 빼내려던 사건들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원폭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최초의 핵무기 개발을 주도한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는 아르곤과 함께 핵개발 및 원자력 기술 개발의 핵심 연구소다. 이들 연구소가 핵·원자력 외에도 여러 분야를 연구하고 있고, 어떤 이가 무슨 자료를 빼냈는지 공개되지 않아 ‘사안의 민감도’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민간인의 일탈행위에서 비롯된 단순 보안사고 때문에 미국이 오랜 동맹국을 ‘불량국가’로 분류했을 것 같진 않다. ‘큰 문제(big deal)’가 아니라는 조지프 윤의 외교적 수사 뒤에 가려진 배경과 맥락을 더 살펴봐야 한다.


여권의 핵무장론과 대통령 윤석열의 불법 계엄이 ‘민감국가’ 지정과 관련 있다는 야당의 주장은 방증은 충분치 않지만 설명력이 있다. 미국은 윤석열이 2023년 1월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한 이후 한국의 핵 관련 동향을 주시해왔을 것이다. ‘트리거’는 윤석열의 불법 계엄이다. 사전통고 없는 계엄 자체도 충격이었겠지만, 미국이 특히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은 군대와 HID가 동원된 내란 과정에 주한미군이 말려들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었을 것이다. 계엄 이후 미 행정부와 의회에서 강한 비판과 경고가 분출한 데는 자국 군인이 파병된 동맹국에서 있어선 안 될 일이 벌어진 데 대한 충격도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성취한 한국은 바이든 정부에 ‘민주주의 진영의 쇼룸’이었다. 바이든이 주도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의 미국 외 첫 개최국도 한국이다. 지난해 3월 서울 회의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한국이 자유, 인권, 법치를 수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국제사회와 연대”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쇼케이스가 끝난 뒤 얼마 되지도 않아 관리자가 미쳐 날뛰며 쇼룸을 박살 낼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미국에 찰떡처럼 붙어 ‘고 투게더’를 외치던 윤석열의 느닷없는 망동에 바이든이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더 이상한 일이다. ‘민주적 통제가 불가능한 한국과 첨단기술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가’란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이런 기류가 몇차례 ‘보안 사건’에 대한 공직사회의 태도를 경직화한 결과가 ‘민감국가’ 지정이 아니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임 정부에서 불거진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동맹 관계를 자원 낭비로 여기는 데다 한국에 대한 감정도 좋은 편이 아닌 트럼프가 ‘민감국가’ 지정을 쉽사리 해제해줄 것 같진 않다. 트럼프 정부 인사들이 무역흑자, 비관세 장벽을 빈번히 거론하며 한국을 압박하는 걸 보면 ‘민감국가’ 해제를 위해 적잖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전 세계 국가의 ‘공통과목’인 관세전쟁 외에 한국에 추가로 닥칠 ‘트럼프 폭풍’은 한반도 정세에 거대한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9차 당대회가 열리는 2026년이나 이르면 연내 시작될 북·미 협상에서 트럼프가 핵동결 및 군비통제를 대가로 관계 개선에 합의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2018~2019년과 달라진 것은 트럼프의 대북 협상 의지가 더 강해졌고, 참모들도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트럼프는 북·미 협상 타결로 한반도 긴장을 해소하고, 미국의 힘을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시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북한의 핵동결과 군축을 이끌어내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감축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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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한반도에서 펼칠 행보는 한·미 동맹의 기본 구도를 뿌리째 흔들 것임을 예고한다. 북·미 대화에서 한국이 ‘패싱’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마이너스만은 아니다. 한반도 긴장완화는 외교 목표이기도 하고, ‘군사주의’의 거품을 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비핵화 대신 핵군축이라면 안보 우려가 높아질 것 같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니다. 기존 관성에서 벗어나 ‘트럼프 게임’에 능동적으로 호응하는 과정에서 해법을 도출할 수 있다고 본다.


윤석열의 내란으로 균열이 발생한 한·미 동맹은 ‘동맹 브레이커’ 트럼프 시대 들어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다. 한국 사회가 이런 변화를 겁내며 한·미 동맹에 더 집착한다면 그만큼의 대가를 추가로 지불해야 할 것이다.



서의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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