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1

일본군이 30명의 한국인 위안부를 학살하였다고



ON THIS DAY
3 years ago








Sejin Pak
1ntSi dMaurfpscocnehusS ofr20uedt18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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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서울대 연구팀(이하 “그들”로 줄임)은 20년 전에 아사노라는 한 명의 일본인 연구자가 발견한 사실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자료를 내세우면서, 그로부터 반 걸음도 나가지 못한 채, 일본군이 30명의 한국인 위안부를 학살하였다고 무모하게 주장하였다. 아래 아사노 교수의 글을 보니 개탄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우선 다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그들은 자신들이 2016년에 “수집”한 사진의 실체와 이번에 미국국가기록원에서 ‘발굴’한 19초 분량의 동영상의 대상이 같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맞다. 그런데 그들은 2016의 사진이 마치 자신들이 새로이 ‘발굴’했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아사노 교수는 그 사진을 20년 전 [아시아여성기금]의 보고서(http://www.awf.or.jp/pdf/0062_p061_088.pdf)에서 소개하였고, 1999년과 2008년에 발표한 두 논문에도 게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서울시와 서울대 연구팀이 ‘발굴’해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그들이 주장하듯이 이번에 '발굴'한 동영상이 2016년의 사진과 같은 내용이라면, 그 동영상은 오히려 큰 가치를 갖지 못한다). 위안부 문제 전문가로서 이러한 사실을 모를리 없다. 이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
둘째, 아사노 교수에 따르면 미군의 “30명 사살”은 버마(현재 미얀마)인의 증언이다. 다시 말하지만, 미군의 체계적 조사 결과가 아니다. 여하튼 이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조사해야할 엄청난 문제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20년 전에 일본 연구자가 소개한 자료와 같은 자료(19초 분량의 동영상)를 들이대면서, 새로운 자료나 논리 없이 “한국인 위안부 30명 학살”을 주장하였다.

 학자로서 이렇게 비약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그들은 20년 이전으로 퇴행했다. 그 결과는 국민과 동료 연구자들을 속인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도 해명해야 한다.

셋째, 아사노 교수는 옥쇄가 성내 북서쪽 모퉁이에서 행해졌다는 점, 미중 연합군에게 함락되기 바로 전날 밤에 일본군들이 위안부들(아사노 교수에 따르면 그들 6명 모두가 한국 여성들이라고 볼 수도 없다)을 시신이 발견된 성 밖의 山斜面으로 데려나가 학살할 여유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학살”로 볼 수 없다고 말하고있다. 그들은 지난 2년여 시간동안 이러한 점을 검토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아사노 교수의 세 편의 글로부터 이러한 추론의 실마리를 발견하지 못하였나? 지적으로 게으르거나, 상식적인 사고능력조차도 결여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답해야 한다.
넷째, 지금이라도 아사노 교수의 상기 의견에 대해 답하기 바란다.



Toyomi Asano
1ntSi dMaurfpscocnehusS ofr20uedt18t ·

この写真は、山の斜面で、しかも埋められていないことから、虐殺ではなく砲撃の犠牲になったことを20年前のアジア女性基金の報告書で紹介した。
http://www.awf.or.jp/pdf/0062_p061_088.pdf ようやく韓国社会の世論の注目を集めていることは感慨深い。しかし、この報告書は、だいぶ改良されて、岩波の世界の99年11月号の論文、および軍事史学2008年の日中戦争再論に掲載された論文となった。
 ビルマ人の証言で30人を日本軍が殺したと言う資料がある事は無視できない反面で、玉砕が北東の城壁の角で行われていること、外に城壁を守るための陣地はあったものの30人を連れ出して外で虐殺できるような余裕は守備隊になかったと考えられること、写真が城壁の外に遺体があることを示していること、城壁内に追い詰められる前の段階で城壁の外で虐殺されていたとすれば、ご遺体の腐乱は相当進んでいたはずであること、台湾人朝鮮人日本人の慰安婦が生き残って中国軍の捕虜となり写真まで取られていること。
 以上を考えると、朝鮮人慰安婦のご遺体の写真は、城壁の穴から最後の夜に集団で日韓台の慰安婦達が脱出したときに迫撃砲弾を浴びて散会した際に犠牲になった女性である可能性が高いとおもう。もしかしたら脱出の混乱の中で射殺された慰安婦がいたかもしれないけれど、それは日本の守備隊自体が玉砕する過程で道ずれにされたのではなかろうか。脱出と玉砕がせめぎあう混乱の中で一緒に死を選ぶべく射殺された慰安婦がいて、その現場から飛び出したのが日韓台の慰安婦達であったのかもしれない。
 いずれにせよ、何を歴史の事実としてみようとするのか、韓国人と日本人には相当な違いがある。1970年代にようやく高度成長が一段落して、あちこちで、戦争の記憶が再生した際に、さまざまな玉砕やそれにともなう強制が沖縄を中心に問題となったことも思い出される。しかし、戦闘の過程の力学をプロセスとして理解していくことで、不毛な対立を超えて、国民感情の伴う心からの自主的な謝罪と許しや自然な和解ができるのではないか。それを願い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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ソウル市、旧日本軍の「朝鮮人慰安婦」虐殺映像を初めて公開
ソウル市が三一節(抗日独立運動記念日)99周年を記念して27日に開催した韓日中「日本軍慰安婦国際カンファレンス」で、旧日本軍の朝鮮人慰安婦虐殺を見せる映像を初めて公開した。終戦前の1944年、中国雲南...




ソウル市、旧日本軍の「朝鮮人慰安婦」虐殺映像を初めて公開
ⓒ 中央日報日本語版2018.02.2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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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雲南省騰沖で朝鮮人慰安婦が虐殺されて捨てられる場面を撮った写真。米軍写真兵フランク・マンウォレン(Frank Manwarren)氏が撮影した。(ソウル市・ソウル大人権センター提供)ソウル市が三一節(抗日独立運動記念日)99周年を記念して27日に開催した韓日中「日本軍慰安婦国際カンファレンス」で、旧日本軍の朝鮮人慰安婦虐殺を見せる映像を初めて公開した。

終戦前の1944年、中国雲南省騰沖で朝鮮人慰安婦が虐殺されて捨てられる場面を見せる19秒間の白黒映像だ。ソウル市とソウル大人権センターが2016年と17年の2回、米国立公文書記録管理局(NARA)を訪問して資料調査と発掘作業を行った結果、撮影から70余年後に映像が公開された。

映像には朝鮮人慰安婦が旧日本軍によって殺害された後に捨てられる残酷な場面が映っている。周辺では遺体を埋葬しにきたとみられる中国軍兵士2、3人の姿も見える。連合軍164通信隊写真中隊のボルドウィン兵士が1944年9月15日に撮影したもので、映像の場所は中国雲南省騰沖と推定される。

ソウル市とソウル大人権センターはこの映像資料1点をはじめ、写真資料2点、当時の米中連合軍が作成した作戦日誌をはじめ、旧日本軍の慰安婦虐殺を裏付ける文書14点も共に公開した。映像と共に公開された連合軍情報文書には騰沖が陥落する直前の1944年9月13日夜、旧日本軍が朝鮮人女性30人を銃殺したと記録されている。旧日本軍が慰安婦を虐殺したという証言、記事などが公開されたことはあるが、朝鮮人慰安婦を含む旧日本軍の慰安婦虐殺現場が撮影された映像が公開されたのは今回が初めて。

朴元淳(パク・ウォンスン)ソウル市長は「国を失って力がない祖国で女性と少女がどんな苦痛を経験したのか、あまりにも胸が痛む現実を私たちは直視している」とし「このような不幸な歴史も記録して記憶してこそ二度と繰り返さないだけに、今後もソウル市が可能なすべての力と資源を集中し、歴史を記憶して正す作業に率先していく」と述べた。


일본군, 조선인 위안부 학살 영상 서울시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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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일본군이 조선인 '위안부'를 학살한 증거를 보여주는 영상이 27일 최초로 공개됐다.
서울시 주최로 이날 오전 시청사에서 열린 3·1절 99주년 기념 한·중·일 일본군 '위안부' 국제컨퍼런스에서 공개된 이 영상은 아시아·태평양전쟁 패전 직전인 1944년 중국 등충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이 학살된 후 버려진 모습을 담은 19초 분량 흑백영상이다.



영상에는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한후 버려진 참혹한 모습이 담겨있다. 주변으로는 시신을 매장하러 온 것으로 보이는 중국군 병사 2~3명도 보인다.
이 영상은 연합군 164통신대 사진중대 B파견대의 볼드윈(Baldwin) 병사가 1944년 9월15일 촬영한 것이다. 영상속 장소는 중국 운남성 등충성으로 추정된다.
일본군이 '위안부'를 학살했다는 증언, 기사 등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조선인 '위안부'를 포함해 일본군의 '위안부' 학살 현장이 촬영된 영상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군이 위안부를 학살했다는 기록은 당시 중국 국민당 기관지 '소탕보(1944년 9월18일)'와 중앙일보(1944년 10월16일) 등에서 기사화된 바 있지만 미군의 공식 작전일지와 정보보고에 기록된 것은 이번 자료가 유일하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서울시와 서울대 연구팀이 앞서 2016년 수집한 조선인 '위안부' 학살현장 사진 원본(2장)과 같은 곳에서 촬영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영상은 서울시와 서울대인권센터 정진성교수연구팀이 2016년과 지난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을 방문해 자료조사와 발굴 작업을 거친 끝에 확보됐다.

이밖에 당시 미·중 연합군이 일본군의 조선인 '위안부' 학살을 분명히 인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연합군 보고문서도 이날 함께 공개됐다.

서울시와 서울대연구팀은 사진자료 2점, 당시 미·중 연합군(Y군)이 작성한 작전일지를 비롯해 일본군의 '위안부' 학살 사실을 뒷받침하는 문서 14점을 이날 공개했다.

이 자료는 1944년 9월 중국 송산과 등충에 주둔했던 일본군을 공격한 중국-버마-인도 전구(戰區, CBI Theater) 미·중 연합군(Y군)이 생산한 것이다.

시와 연구팀은 "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특히 전시에 여성을 전쟁터로 동원하고 성적 '위안'의 도구로 사용하다가 최후에 '특종군수품' 폐기라는 발상으로 학살하는 일은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며 "이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사과해야만 이런 상황의 반복을 막을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정부가 위안부 학살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 말기에 조선인 '위안부'가 처했던 상황과 실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원순 시장은 "나라를 잃고 힘이 없는 조국에서 여성과 소녀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너무나 가슴 아픈 현실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다"며 "이런 불행한 역사도 기록하고 기억해야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 만큼 앞으로도 서울시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과 자원을 집중해 역사를 기억하고 바로 세우겠다"고 말했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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