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글을 마무리 해야 할 때가 왔다. 앞선 두 글에서 현대 ‘중화민족’ 개념의 형성과정과 진시황의 천하통일이래 사마천의 사기가 기초를 닦은 중국의 대일통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설명했다. 지금의 현실적 상황을 보자면, 대일통 이념을 우선시하는 (중국공산당)중앙은 지방에 대해 압도적인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이와 결합된 중화와 중국인 정체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여론형성과 전파의 매커니즘이 형성돼 있다.
중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세계체제의 주변적 위치에서 핵심부로 진입하고 있다. 또, 일개 국민국가 차원을 넘어서는 제국의 위상도 갖고 있다. 그러니 민족주의 담론을 탈피할 때가 됐지만, 전환은 쉽지 않다. 내외적인 여러가지 이유때문에 아직 충분히 안정적인 동적균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연한 시스템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체제내의 시장중심사회로 이행한 후 사회주의 이념과 원칙은 퇴색했다. 불가불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의존한다. 그걸 중국특색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는 설명”이라고 하더라도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피할 수는 없다. 노동자들의 자주적 노동조합설립을 지원하던 마르크스주의 청년이상주의자들이 중국 정부의 극심한 탄압을 받는다거나, 신장 등지에서 더 이상 소수민족의 기초적 자결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초기 공산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홍콩에서도 우파 자유주의자들뿐 아니라 좌파적 성향을 갖고 있던 풀뿌리 조직들조차 모두 와해시켰다. 모두 외부불순세력의 준동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렇게 내부적인 불관용을 그 특징중 하나로 하는 ‘중국특색’이 지속되는 한, 나는 보통의 중국사람들이 소극적인 의미의 ‘중화주의’를 탈피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느끼게 된다.
실은 보통중국사람뿐 아니라 지식인도 마찬가지이다. 이건 중국인 개개인의 자아가 원래 비대해서라기보다 어떤 의미에서 소위 대국의 지식인으로 태어난 숙명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보편담론을 다뤄야 하는 중국의 공공지식인들은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한국의 장년세대 지식인들의 거대담론 선호도 이들과 잘 통하는 편이다. 1990년대부터 2010년까지 동아시아 담론을 이끌며 중국 혹은 일본의 지식인들과 활발히 교류하던 모습이 그러하다. 권위주의적인 시진핑 체제가 들어서기 전, 미국주도의 신자유주의질서에 거부감을 느끼던 많은 한국의 진보지식인들은 중국의 공공지식인들이 주장하는 새로운 천하체제의 복원에 큰 관심을 가졌었다. 세계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대안담론으로서의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앞의 글에서 소개한 중국 출신의 인류학자 샹뱌오는 이전 세대의 중국 공공지식인이 가진 이런 면모를 문화대혁명을 겪은 그들의 역사적 경험을 배경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청(知識青年)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아마도 사회학적 상상의 과잉일지 모른다. 반대로 인류학적 상상력은 부족하다. 미국 사회학자 밀스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제창했다. 즉 자기의 인생경험과 사회구조를 연구하고, 역사의 변화와 연관시켜서 이해를 하는 것이다. 중국의 지식인, 특히 지청학자들에게는 거의 타고난 능력이다. 개인 생활의 궤적이 국가의 중대한 실천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개인 인생의 의의는 국가의 거대서술안에서만 체현될 수 있었다. 이런 서술바깥에서 어떤 다른 담론체계도 의의를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서술바깥으로 벗어나는 대량의 경험은 모두 일상생활의 자잘한 요소밖에 없다. 굳이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논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 받은 것들만 계속 이야기 하는 것은 같은 틀안에서의 반복일뿐 사상적인 돌파구를 찾기 힘들다. 인류학적 상상력은 구체적인 인생경험과 곤혹스러움에서 출발한다. 자기의 경험을 살려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해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살려, 자신의 대안적 생활의 가능성을 상상해야 한다. 보통사람의 경험과 목소리 그 자체가 무기가 된다. 반드시 이론화가 되는 것을 기다린 후에야 사람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줄 필요는 없다. (샹뱌오 “지식청년시대의 종언” http://thetomorrow.kr/archives/13724)
위의 글을 번역하면서 나는 비교적 근거리에서 관찰할 기회를 여러번 얻었던 중국의 삼농문제 전문가 원톄쥔 선생을 떠올렸다. 그는 실천과 실증적 조사를 무던히도 강조하는 활동가이자 정치경제학자이다. 하지만 미국을 필두로 하는 서구사회와 중국의 대결구도가 기반이 되는 지정학을 세계체제론의 틀에서 설명하는 것도 그의 주요한 주장이다. 그의 관점과 태도는 역시 앞의 글에서 샹뱌오가 비판한 중국학파 혹은 이를 확장한 동아시아서사를 만들고 싶어하는 욕망을 벗어나기 힘든 것 같다. 그가 지식청년시대의 지식인중 한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적 경험을 떠나서 아주 통속적인, 인간의 정치경제적 조건도 이런 의식을 형성한다. 한번 상상을 해보자. 내가 인구가 수천만명쯤 되는 중국의 모모성에서 태어났는데, 공부를 꽤 잘해서, 어려서부터 수재소리를 듣고 자랐다. 성안에서도 몇손가락안에 드는 성적을 거두다가, 베이징에 있는 명문 모모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그중에서도 베이징대학이나 칭화대학이라면 그야말로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게 된 것이다. 베이징에는 이밖에도 분야별로 ‘모모중앙’혹은 ‘중국모모’의 명칭을 가진 학교들이 많다. 이를테면 미술분야의 최고학부로 꼽히는 중앙미술학원과 한국으로 치면 연극영화학교에 해당하는 중국희극학원이 있다. 나는 이제 왠만한 나라의 규모에 버금가는 지역에서 일등 수재로 꼽히다가, 마침내 제국의 수도로 입성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중앙’의 일원이라는 자의식을 획득하게 됐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나를 우러르고 떠받든다. 나는 이제 ‘천하의 일’을 주관할 예비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서울대학교 혹은 SKY에 진학한 청년들이 누리는 사회적 특권과 이들이 형성하는 아비투스를 제국의 규모로 확장해서 상상해보는 것에 대해 동일한 문화권의 한국인들은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상상도 필요없다. 이미 미국 유수의 대학에 진학해서 제국의 글로벌엘리트 계층에 포함된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나는 중국에서 출간되는 책들의 서평을 쓰면서 2년 가까이 중국의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글이나 팟캐스트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들은 소위 문화 KOL (Key Opinion Leader,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acronym)로서 주로 1선도시, 그중에서도 베이징과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으며 문화와 테크놀로지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또, 중국정부의 가혹한 검열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이나 전세계에 거주하는 화인, 중국인 유학생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통해 글로벌 문화지식조류를 거의 실시간으로 소화하고 있다.
샹뱌오의 책은 이 그룹중에서도 상당한 대표성을 갖는 단독(單讀), 단향공간(單向空間)이라는 멀티미디어출판집단에서 출간됐는데, 이 기업의 대표는 쉬즐유엔(許知遠)이라는 베이징대학출신의 스타지식인이다. 그는 아마도 중국에서 대학을 비롯한 체제내에 포함되지 않은 지식인중 가장 유명한 사람중 한명일 것이다. 불과 100여명 정도가 일하는 소수정예집단인 그의 그룹도 성원들 중 상당수가 베이징대학 출신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와 일하는 젊은 대표 에디터가 운영하는 팟캐스트가 있는데, 작년 연말 방송에 출연한 그의 발언이 상당히 인상깊었다. 그는 자신의 그룹이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서구유럽 선진국의 초일류 문화집단의 그것과 비교해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 수준일 것이라고 자평했다.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는 그의 이런 ‘근자감’은 꼭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중국 혹은 중화권에서 가장 뛰어난 문화예술지식인을 늘 접하고 있으며, 이 네트워크는 글로벌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샹뱌오는 영국 옥스포드대학의 인류학과 교수이고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사회인류학 연구소에도 적을 두고 있다.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서 당대 글로벌 지식과 문화의 최전선을 접하면서 동시에 중화권 문화예술계의 전위가 되고 있다는 자부심을 ‘공갈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물론 그의 이런 발언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의 이 발언의 맥락은 상대적인 저임금와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자사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한 성격이 더 짙었다. 중국의 고급지식과 문화의 선봉에 선다고 하더라도, 체재내의 안정된 생활환경이나 대중미디어의 막대한 금전적 보상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반대급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항시적으로 중화권 각계의 스타들을 인터뷰하고 영상출판물로 옮기는) 자신의 일은 성격상 허영심이 꼭 필요하다고 솔직하고 ‘귀여운’ 고백을 하기도 한다.
샹뱌오 자신도 중국이 가진 이런 숙명에 대해서 “코끼리의 딜레마”, “대국의 책임감”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두 가지를 더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첫째, 저는 사회주의 원칙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는 허무주의와도 연관됩니다. 왜냐하면 현재 중국 청년들은 자신의 일상생활이나 국제사회를 논할 때 하나의 정글을 상상합니다. 일상생활은 경쟁입니다. 누구든 능력만 있다면 위로 올라갈 수 있죠. 원칙 같은 것은 우스갯소리 같은 것입니다. 국제사회도 이와 같습니다. 오늘날 왜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국제정치에 관심을 가질까요? 저는 일종의 투영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글을 살아가는 것 같은 개인 생활을 국제사회에 투영하는 거죠. 경쟁으로 가득 찬 ‘정글을 살아가는 기분’은 사람을 애태웁니다. 좋은 경험이 아니죠. 설령 경쟁에서 승리하더라도 다음번에는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정치에 이 감정이 투영되면 매우 강경한 민족주의적 입장이 나타납니다. 모든 것이 도덕적인 의미를 지닌 게임으로 변해버려요. 도의적인 원칙은 필요하지 않게 되고 도리어 더 자극적이게 됩니다. 이런 허무주의는 사람을 동물과 같이 만들어 버립니다. 작은 나라나 한 집단, 일개 개인이나 인생의 어떤 단계에서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상관없어요.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은 너무나도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아주 작은 정책 조정도 구조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고 원칙적인 문제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적인 원칙을 견실히 하지 않으면 추후 곤란한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또한, 국제사회든, 국내의 일이든 상황이 매우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만약 원칙이 없다면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중국이 50년대부터 국제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존중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는 저우언라이가 반둥회의에서 제시한 평화 5원칙[5]이 있습니다. 평화 5원칙은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명함이자 정치적 정체성입니다. 만약 이번 전쟁으로 큰 이익이 얻고 권력의 각축장에서의 중국의 입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앞서 세웠던 원칙을 우선 제쳐 두자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판단입니다. 상황이 매우 복잡해서 다른 국가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모릅니다. 명확한 원칙 없이 당장의 이익에 현혹되어 결정을 내린다면 결국 모든 판국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샹뱌오 두긴을 말하다” http://thetomorrow.kr/archives/15833 )
그렇다. 중국의 공공지식인들이 가진 “책임감”과 그들이 가진 “허영심”은 동전의 양면같은 것이고, 양날의 칼과 같기도 하다. 또, 그들이 가진 정치경제적 조건, 그리고 역사적 맥락이 그들의 이런 특성을 만든다. 이렇게 절반쯤 본질화돼 있는 존재 자체의 딜레머는 끊임없이 반성적으로 사유하면서 경계하고 실천하는 것밖에는 달리 그 위험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실존주의와 같이 실천으로 본질적 한계를 극복하고 증명해야 한다.
나는 이 일련의 글에서 샹뱌오라는 중국의 후지식청년시대의 공공지식인을 소개했는데, 그는 이런 노력을 멈추지 않는 사람으로 보인다. 또, 역시 만나보면 한없이 겸손하고 점잖은 지식청년시대의 공공지식인 원톄쥔도 개인적인 덕성의 수양정도와 실천의 진정성 측면에서는 같은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앞서 언급한 지식청년시대의 거대담론적 접근을 벗어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래서 샹뱌오라는 후지식청년시대 공공지식인의 인류학적 접근과 그가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현대의 향신”이라는 지식인 모델은 이런 딜레머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쇳말이 된다. 그는 중국을 대표하는 공공지식인중 한명으로 자리매김되지만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의 방점은 항상 향신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세대에서만 기원하지는 않는다. 저쟝성 원저우출신의 샹뱌오는 장쑤성 지역의 향신출신인 페이샤오퉁의 전통을 잇고 있다. 베이징의 지식인 집안에서 태어나 문화대혁명시기에 향촌으로 하향해 11년간의 농공병 생활을 경험하고 귀경한 원톄쥔은 역시 베이징의 관료집안출신으로 자신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베이징대학 교수직을 박차고 향촌으로 내려간 량슈밍의 전통을 잇는다.
……향신이 수도에 가서 관직을 맡는 것이 반드시 기뻐서 좋아라 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고향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장원급제를 하고 재상이 되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가족과 식솔은 대개 고향에 남아 있고 관직에서 물러나면 바로 낙향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중국이 현대화를 개시한 상징 중 하나가 관료가 은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은퇴후에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풍조가, 현대에 들어와서 중국의 중앙과 주변 그리고 도시와 농촌, 지식인과 보통군중(주로 농민)의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방에서 대부분의 지식인은 외부로 나가 관직을 맡지 않습니다. 향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위치한 곳의 소우주안에서 일종의 ‘완전체’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그들은 외재한 시스템의 인정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도 않고, 갈망하지도 않습니다. 바깥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는지, 그가 쓴 글이 널리 유포되는지 그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들이 자신의 작은 세계의 사정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일상 세계의 디테일을 신경쓴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면 누가 누구와 다툰다든가, 결혼, 장례, 부모와 자녀의 관계, 이런 게 매우 의미심장한 일로 느껴집니다.
…… 제 생각에는 차이가 큽니다.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공공지식인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 보편가치원칙입니다. 이론을 제시하고, 지식, 도덕, 행위상의 전범을 들어서, 비판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향신은 상당히 온화합니다. 향신은 보편가치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작은 세계로부터 세상을 봅니다. 거대담론을 내세우며, 세상을 굽어보는 화법을 구사하지 않습니다. 체제에 대해서도 도덕적 우월감을 갖지 않습니다. 향신이 중시하는 일은 마을의 우물물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닭서리가 심할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냥 원칙만 내세워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겨울에 곧 설이 될텐데, 농촌에서 사람들이 닭을 훔친다면 그 배후의 원인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이런 문제와 공공지식은 상당한 차이를 갖습니다. 또, 두가지 다른 유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샹바오 “방법으로서의 자기”)
그는 현대적인 향신을 자신의 민중주의적 성향과 결합시켜 그람시가 이야기한 유기적 지식인에 빗대기도 한다. 그리고, 현대중국의 중앙과 지역이 조화롭게 유기적인 발전을 지속하려면 이런 지식인들이 중국 전역에 되도록 많이 생겨나야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런 제안에 착안해서 나도 중국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관점과 중국과의 관계맺기 방법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게 바로 이 일련의 글의 주제이다. 이제 에둘러 돌아온 끝에 결론을 맺어야하겠다.
“이제 ‘중국’을 잊어라”. 여기서 말하는 중국은 우리가 상상하는 민족국가, 국민국가, 네이션스테이트(nation state)로서의 중국이다. 미국에 거주하고 계신 ‘페친’ 이정훈님이 베이컨의 우상론을 상기시켜 줬는데, 왜 지금까지 이런 고전적인 이론을 머리속에 떠올리지 못했는지 부끄러울 지경이다. 지금 한국인들이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지나치게 국민국가화돼있다. 자기나라인 대한민국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 중화민족, 혹은 한족을 바라보는 관점도 우리가 단일민족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한민족과 비슷한 느낌이다. 한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무엇이든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의 대립구도로 사안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건 베이컨이 말한 전형적인 종족의 우상에 해당한다. 우리 종족은 이러하기 때문에, 이웃부족도 우리와 같은 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것으로 전제한다. 또, 소위 ‘국민여론’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에 대한 상상도 그렇다. 중국사회는 앞의 글에서 설명했듯이 사회구조상 여론의 레이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이상, 한국처럼 인터넷과 레거시미디어가 상호작용하며 여론을 증폭시켜서 단일한 ‘국민여론’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자신의 키보드 배틀상대인 중국네티즌이 중국 보통사람의 생각과 관심을 대표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물론 이런 인터넷여론에는 민족주의라는 극장의 우상, 온갖 페이크뉴스나 과장된 사실을 진실로 믿게 만드는 시장의 우상, 중국과 중국사람에 관한 개인적 경험을 절대화하는 동굴의 우상이 고루 버무려져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선 주로 ‘종족의 우상’을 들어 우리의 대중국관을 조정하려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중국을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나는 샹뱌오가 이야기한 지역성, 일상성, 물질성 그리고 이를 대표하는 향신의 관점이 답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도 이제 “중국의 지역,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뼈와 살로 이뤄진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나는 물론 중국에 별 관심이 없는 한국 사람들이 억지로 중국을 만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에 살면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중국을 의식하지 않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많든 적든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돕기 위해서 실질적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마도 한국의 미디어와 지식인, 문화예술인들일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들을 오랫동안 사로잡아온 관점은 “종족의 우상”이데올로기만 강화시키는 추상적인 중국담론과 매우 얕은 수준의 스테레오타입 경험들이었다. 다소 의도적으로라도 중국의 지역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맛집찾기나 지역의 기이한 풍속을 쫓아 다니는 여행콘텐츠 활성화 수준에 그치기 십상일 것이다. 지역의 보통 중국사람들의 생활과 그 정서를 이해하기 위한 장기적인 체험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긴 안목으로 성별 혹은 권역별로 중국 각 지역의 전문가 네트워크와 유무형 지식자산의 데이터베이스와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위한 정책 등이 필요할 것으로 짐작되지만, 이건 내가 언급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광둥지역을 예로 들어 이야기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민간의 문화교류를 돕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광둥지역의 개인과 단체의 만남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한국사람들은 중국사람들 못지않게 매갈로매니악인데다 중앙지향적이기 때문에, 중국과의 교류나 협력을 이야기할 때 무턱대고 중국을 대표하는 무엇인가를 찾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중앙과 만나야 “뽀대도 나고” 스스로도 뭔가 제국의 수준, 대륙의 수준으로 격상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광둥지역, 혹은 주강삼각지역이나 다완취(大灣區, Great Bay Area)를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광둥성의 GDP가 얼마전 한국전체의 GDP를 초과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또, 광동지역은 상주인구만해도 1억이 넘는다. 왜냐하면 주강삼각지역은 남방의 지역색이 강하면서도 중국 경제를 대표하는 곳 중 한곳이기 때문이다. 그냥 일반적인 하나의 성정부로 볼 수 없다. 또, 광둥성안에는 중국의 4개 일선도시중 두곳에 해당하는 광저우와 션전이 있고, 다완취에는 홍콩이나 마카우도 포함이 된다. 어지간한 G10 국가규모의 실력을 갖춘 곳이다. 그렇다면 한국을 광둥지역이나 다완취와 비교하는 것은 절대로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애초에 급이 너무 다르고 조직의 운영방식이나 구조도 다른 “중국”과 비교하자면 훨씬 더 맞춤한 스케일로 다가온다. 같은 관점을 중국의 다른 지역에 적용해 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쓰촨성의 청뚜(成都) 같은 곳. 청뚜는 윈난, 구이저우 등과 함께 쓰촨성을 묶어서 흔히 서남지역이라 부르는 큰 지역의 중심도시이다. 마찬가지로 시안(西安)같은 도시는 소위 서북지역의 중심이 된다. 이런 지역들은 모두 인구가 수억에 이르고, 자체적으로 완결된 문화경제역량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중국은 베이징과 상하이로 등호가 쳐지지만 실제 중국은 바로 이러한 수많은 지역들로 이뤄진 곳이고, 여기에 더 많은 중국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다. 만일 내가 중국사람들과 그리고 중국의 어떤 영역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면, 이제 무조건 베이징과 상하이로 달려가는 선택지는 지양해야 한다. 오히려 다른 지역 거점들을 찾아서 이곳에 어떤 사람들이 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재미있고 효율적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중화주의의 다른 이름 즉, 중앙의 자의식을 덧쓰고 있지 않으므로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더 환대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려 할 가능성이 높다. 베이징과 상하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중국을 대표한다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나 단체보다는 베이징을 비롯한 화베이(華北)지역, 상하이를 비롯한 화둥(華東)지역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낫다.
중국 내에서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중국 바깥에서 중국사람들을 만났을 때도, 이런 접근 방법을 취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상대방을 중국사람으로 의식하기에 앞서, 이 사람이 중국의 어느 지역 출신이고 그래서 그 지역의 어떤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좋다. 마치 한국에서 먹는 중국음식들이 실제 현지의 중국음식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처럼, 이 사람이 즐겨 먹는 자신의 고향음식은 당신이 알고 있는 중국음식과는 전혀 다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정우성이 주연했던 “호우시절(好雨時節)”이라는 영화를 꽤 좋아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한국영화들은 중국을 그릴 때 베이징, 상하이 그리고 조선족들이 거주하는 중국 둥베이지역을 배경으로 한국인들의 머리속에 부호화한 중국 비주얼을 다루지만, 이 영화는 드물게, 쓰촨성 청뚜라는 도시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2015년 청뚜를 처음 방문했을 때 영화속에서 정우성이 여자주인공 가오위안위안의 권유로 맛을 보고 기겁을 했던 페이창펀(肥腸粉)을 첫 끼니로 삼았다가 호된 신고식을 치뤘다. 연약한 내 위장이 쓰촨 본토의 강한 마라향과 매운맛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맛을 좋아하게 돼, 마을의 쓰촨충칭(四川重慶)면관을 자주 찾는 편이다.
이들의 정체성이 꼭 고향으로 국한될 필요는 없다. 자신이 공부하고 일하고 생활하는 거점도 대상이 된다. 이를테면 내 파트너는 장시(江西)성이 고향이지만, 이미 광둥지역에 10년 넘게 살고 있고, 이곳이 호구소재지이자 일터이기 때문에, 남방, 화난(華南), 링난(嶺南)으로 불리는 이 지역에서 자신의 제2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내 설명이 여전히 추상적이거나 감상적으로 들리는 것은, 아마 구체적인 사례가 결여돼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해야겠다. 중국에 정착한 한국인들 대부분의 사례는 여전히 베이징, 상하이 그리고 둥베이 지역에 집중돼 있고, 중국인들과의 관계맺기 형식도 과거의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오프라인 관계가 더 많이 필요하고, 결과적으로는 한국에 머무는 중국사람, 그리고 중국에 머무는 한국사람들이 이런 소소한 사례와 디테일을 많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국에 와있는 중국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좋다. 중국은 큰 나라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중국내에서 한국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여전히 쉽지않은 일이다. 당장 내 파트너만해도 한국보다는 일본문화와 자신이 방문학자로 머물렀던 북유럽문화에 더 관심이 많다. 역으로 유학생을 포함해서 한국에 장기간 머무는 중국 사람이라면 원래 한국사회와 한국문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결국 이들을 통해 중국을 만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며, 중국을 만나기에 앞서, 이들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한 중국의 특정 지역을 이해하는 것이 중국을 이해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수많은 중국유학생을 받아들였음에도 제대로 교육과 생활이 이뤄지도록 환경을 갖춰주지 못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이 문제가 한중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반대로 한국어와 한국문화와 사회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매우 뛰어난 사례들도 있는데, 이는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한중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한다(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9582.html, https://m.khan.co.kr/world/china/article/202202190955001?fbclid=IwAR2JtrUDqdD0CRxoDk2EKBrG2on4RAEwUTh-0OnL-U3OeY2sA-_yprR9ezE#c2b). 한국사람들이 중국의 매체나 관방에 직접 목소리를 전달하려고 하기 보다, 이런 중국출신 인재들이 한국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고, 나아가 이들이 중국사회에 한국의 다양하고 심층적인 면모를 전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한국은 사실 조선족 동포라는 디아스포라의 이중정체성 집단을 통해서 수교 이후 초기에 이와 비슷한 이점을 누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와있는 조선족 동포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누적되면서, 조선족 동포들의 반감을 사게 됐다. 그래서 중국에 있는 젊은 3세대, 4세대 조선족 동포들은 한족 주류사회에 편입하는 것을 선호하고 한국과 한국어를 멀리하는 경향도 눈에 띈다. 확산되는 반중감정이 한국에 들어와 있는 유학생들을 조선족 동포들처럼 오히려 한국에 거부감을 갖는 집단으로 키우게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필자와 같이 중국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인들도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 그리고 아마도 이 지점이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한중관계 빌드업의 초석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중국은 결국 하나의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국대륙 자체나 중화권이라는 거대한 물리적, 관념적 지역을 의미하기도 하고, 중국과 그 동맹국들이 미국의 압력에 맞서기 위해서 구축하고 있는 하나의 더 큰 진영이나 세계를 의미할 수도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천명한 이후 에너지무역 교역로를 포함한 자신의 라이프라인을 구축하려고 했고, 아프리카나 중남미, 다수의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국가들에도 코비드 백신이나 방역물자를 제공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북중러를 군사적, 경제적 동맹으로 묶는 효과도 가져오고 있다. 한국의 새 정부는 시대착오적인 미국중심의 대외관에 빠져 미일동맹에 필요이상으로 근접하고 있지만, 여전히 절반이 넘는 한국인들은 반중감정과 무관하게 이런 외교전략에 찬성하지 않고 있다. 중국과의 지나친 갈등과 대립이 장기적으로 한국에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200년전처럼 중국의 세계관과 영향력에 일방적으로 포섭되는 번속국의 위치도 우리가 바라는 바는 아니다. 중국, 일본, 미국이라는 종주국 위치가 한바퀴 돌아 다시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에 불과하다. 중국이 굴기하는 과정에서 특히 중국의 경제적 성장은 한국인들의 피부에 와닿는 가장 큰 위협요소이다. 중국의 기술적, 문화적 역량이 높아지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경제는 블루오션을 찾아 지금까지와 같은 일종의 윈윈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내 생각에 그런 답을 찾기 위한 방법중 하나는 더 많은 한국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중국에 와서 활동하는 것이다. 마치 많은 한국 청년들이 미국과 서구사회로 진출해서 공부하고,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삶속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고 일상의 구체적인 필요를 나누면서 맺는 관계는 결코 녹녹한 것들이 아니다. 삶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모든 과정과 여기서 마주하게 되는 문제들은 게임이나 영상과 달리 하나도 그냥 스킵하고 건너 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K-컬쳐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한한령을 장기간 유지하고 있고, 언제 이를 해제하겠다는 기약도 없다. 내가 판단하기에 K-컬쳐의 팬덤문화와 이의 정치화는 중국정부를 비롯한 권위주의 정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에르도안의 터키에서도 K-컬쳐를 제한한다는 소식이 이를 방증한다. 그래서 중국 자체의 대중문화에 대한 검열과 제약도 무척 심하다. 물론 해외문화에 대한 수입통제이든, 자국문화에 대한 검열이든 표현의 자유에 익숙해져있는 한국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수긍하기 힘든 면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크리에이터가 중국내에서 컨텐츠를 만들고 유통시키기 위해서는 현지의 요구를 따르는 수 밖에 없다. 부정적인 제약이든 긍정적인 문화요소이든 어쨌든 현지화한 K-콘텐츠가 이렇게 생산될 수 있다.
끝으로 중국 혹은 중앙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무엇무엇은 없다”라고 선언한다고 그 존재가 사라질 수는 없으니까. 직업외교관이나 국가대표처럼 국가 대 국가로 중국을 만나야 하는 경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민간에서 어떤 의미로든 중국을 대표하는 자의식을 갖는 집단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에 대한 검토이다. 이를테면 중국 기업 알리바바나 텅쉰을 보자면 확실히 이런 기업들은 특정 지역이나 집단이 아니라 중국을 대표하는 플랫폼의 성격을 띌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늘 자신들을 허브로 설정하고 외부세계를 대한다. 상대방은 자연히 온전한 하나가 아니라 1/N이 된다. 이것은 지나치게 마음쓰지 말고, 그냥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 플랫폼은 규칙에 맞게 사용하면 되는 도구이지, 인격을 부여하고 그 관계와 과정에 정서적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가 SF문학의 한중교류사례에 대해서 언급한 글의 일부를 소개한다 (http://thetomorrow.kr/archives/15723).
미래사무관리국과 거울의 후속 교류가 원활하지 않아서 추가적인 판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탓인지 당시에 각각 한국어와 중국어로 번역이 됐던 양국의 작품들은 현재 일반 독자들은 읽을 수 없게 됐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아쉬움이 있다. 만약에 이런 기회가 더 활성화하거나 지속되기를 원한다면, 필요한 노력들에 대해서 한중문화교류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작은 조언이 있다. 당시 한국측 교류 담당자였던 김주영 작가의 인터뷰 기사 (http://mirrorzine.kr/features/124982)와 미래사무관리국측의 소개글 (https://mp.weixin.qq.com/s/9pLz5M-nC5VmzQ4ieB_p_w)을 읽어보면서 짐작한 것들이다. 중국통인 김주영작가의 노력으로 이 프로젝트가 성사됐지만, 한국측은 김주영 작가 개인의 수고가 없었다면 아마 실현되지 못했을 것 같다. 중국측은 조금 더 조직적으로 일을 하긴 했지만, 한국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들과 거의 동시적으로 이런 일들을 추진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떨 때는 중국측이 일정 약속을 잘 못지키는 경우도 있었고, 약간은 곤란한 사정도 있었다고 한다. 이 상황은 한중교류 혹은 한중관계의 한단면을 잘보여준다. 즉, 중국이 스스로를 일종의 허브나 중심으로 설정하고 한국을 수많은 파트너중의 하나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 반면, 한국이 중국을 대할 때는 한-중간의 일대일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물론 위의 사례는 한중교류가 중심이 되기때문에 중국은 당연히 동등한 관계를 설정하도록 프로토콜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실제 일이 진행되다 보면 불가불 이런 관점과 입장의 차이가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인들은 냉정하게 이런 현실적인 차이를 받아들이고 이런 경험들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 좋다. 중화주의의 마이크로 어그레션(micro aggression)에 지나치게 민감해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중국이라는 플랫폼을 상대하는 것과 중국사람 혹은 중국의 지역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만일 중국이라는 추상적 대표성을 갖는 집단이나 개인을 만나게 될 때는, 이를 한국과 같은 나라나 개인으로 보기보다는 탈인격화한 거대한 인공지능 플랫폼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좋다. 플랫폼은 바꿔말하면 우리가 이용하는 도구에 가깝다. 그래서 김주영 작가가 여전히 미래사무관리국의 해외교류사업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개인적으로 초청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플랫폼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에 중국과의 교류를 원하거나 중국시장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막연히 초대를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이 이 플랫폼에 적극적으로 올라타는 것이 유리하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중국이 아닌 다른 플랫폼(영미권)에서 성과를 얻어 중국플랫폼의 초청을 받는 방법도 있다. K-콘텐츠는 지금 후자의 길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플랫폼의 성장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포트폴리오는 늘 고려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에 벌어진 숏트랙과 한복 해프닝의 기저에는 문화시장을 포함한 중국의 성장이 잠재적으로 자신의 미래 밥그릇을 위협할 것을 염려하는 한국 청년 세대의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다.
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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