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8

[신영복과사람들] 역사학자가 말하는 '통혁당 사건의 진실'-한홍구 평화박물관장(4편)


신영복과사람들] 역사학자가 말하는 '통혁당 사건의 진실'-한홍구 평화박물관장(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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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9 views  Feb 13, 2023  #역사 #역사학자 #신영복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가 말하는 '통혁당 사건의 진실'

#신영복  #한홍구 #역사학자  #더불어숲  #역사

*감옥으로부터의사색 필사반 모집  
 👉 https://forestogether.org/archives/45356

* 더불어숲 붓글씨 모임 서여회書如會 20주년 전시회안내
    우이 신영복 붓길을 잇다
 장소:갤러리인사아트   기간: 2023.2.15_2023.2.20



사단법인 더불어숲 
서울시 성북구 창경궁로35다길 20, 1층
전화 02.2274.1941
이메일 forestogether@gmail.com
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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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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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사실이
토익탕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최고형이 징역 2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인 사실은
방 국가단체 구성 예비 음모죄로 기소가 됐는데
말을 듣고 저도 이제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저는 그
통역단이 좀 있다 하시고 그 예를 들어서 그 재판 그게
딱 트잖아요 대단히는 그런게 없었고 선생님이
단데서 얘기를 하셨을 가능성도 높지 않고 그랬는데
왜냐면은 선생님은 재판을 다운 받으셨단 말이에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건 사형을 구형하면서 그 사용 구형한 법무관들이 비슷한 돈이거든요
처음에는 가볍게 가다가 이제 위에 방침이 바뀌는 바람에 그 사용을 고용하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말라니 판결도 사용이 나고 했는데 나는 그게 일부러 엑스맨이 있었다고 생각을 해요
그만큼 황태성 사건에서도 그거를
그 사건에서도 그런데 말도 안 되게 뭐가 있었냐면 국가보안법을 적용을
하면은 행위시의 법률을 적용해야 하잖아요 법률가가 아닌데도
하는 건데 신 국가보안법을 적용을 해요 그러니까 이제 이거는 가서 법률도
대법원에 가서 지적을 하면은 팔기 환송이 나올 수밖에 없는 내가
봐도 법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렇게 법률을 적용을 하는데 이건 보면은 그
일부러 그 재판을 늦추고 황태성인을 죽이지 않으려는 그런게
아니었을까 미국 분도 있고 뭐 이거 하니까
밝기는 밟아야 하는데 그건 고역적인데 여기는 아마 법무관들한테 사용을 시키라고 이제 그
구현하려고 압력에 내려오니까 일부러 법조경을 잘못해서
형성되고 시간 끌고 뭐 그러다가 도끼가 빠지면 사건이라는게 도끼가 있거든요 그 도끼가 빠져야
이게 좀 [음악]
관점도 떨어지고 이제 그 시간을 벌기 위한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제 그 너무 걱정 마세요의
진짜로 걱정 안 해도 이거 저 사용도 안 날 겁니다 위에서 시키니까 우리
합니다라고 표현은 못하지만 그런 뜻이에요 저는 그렇게
인상을 받았습니다 [음악] 법무관들 마음대로 하는게 아니고
중앙정보부에서 오다가 떨어졌을 거예요 [음악] 그러니까
통역당 사건을 이렇게 발단이 되는게 그 임자도 사건이라는게
있거든요 임자도 사건이 먼저 터지고 청맥터지고 그 다음에 이제 통역방
터지고 또 해방 전략 당사건 이제 같이 그 터지게 되고
이것들이 어찌 생각하면 따졌다던데 이걸 하나도 묶어서 판을 키우는 그리고 그의 중앙정보부에 조직 개편
과정하고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군 법무관들 입장에서는 이제 어떤 그게 뭐 어떤 이유든간에 신용복을
억울함을 알고 그걸 이제 이렇게 좀 포기를
그때 하기 완성이 됐는데도 다시 사용
그리고 이제 선생님이 돌아가실 팔자는 아니었던게 그
판을 키우는게 김형욱이었고 그리고 비서실장하고 사이가 계속 안 좋잖아요
그러니까이 견제하는 힘도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그 부분이 내가 제일 의문인게 선생님 저 인터뷰 할 때는
제가 아니었지만 그 후에 제가 재혼을 하면서
같이 사건이 터진 그 해방 전략상사건의 그 당시에
실제로 사용 관계를 갖고 사용이 굉장히 빨리 집행이 됐어요 1년이 시간 돼서 1년이 아니라
재판 끝나고 나서는 뭐 한 두 달 석 달 만에 사유가
됐습니다 왜 사용이 집행이 됐는가 그 다음에 김진락보다도 빨리 사용이 집행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신 부분도 분명히 중요한 요인이었고 권력관계에서
그런데 왜 그 해방 전략당 사건이
통역하고 하루 차이인가 그래요
사람들이 잘 모르시거든요 그러면 아예 하면서 봐 뭐 우리 저 뭐 아세요
김진락과 인문계에 대해서 잘 모르죠 저도 사실은 잘 모르고요
사실은 관심이 없으면 그거에 대해서 정확하게도 모르고 관심 분야가 아닌
이상했는지 깊게 안 파고들려고 하는 것도 있는데 사실은 제가 이제 신영복 선생님 좋아하는게 책을 보고 이제 그래서
이제 신영복 선생님이 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이제 저희 이제 뭐 mz세들한테도 막 이렇게 책을
사서 주고 막 하는데 그 친구들이 얘기를 하더라고 도대체 통역당이 뭐예요 이렇게 계속
물어보더라고요 그거를 좀 교수님께서 쉽게 설명을 해주셨으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내가 대학에서 그러니까 아마 내 강의가 인기가 없어지는데 일단
분명히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왜냐하면은 그 가장 김대중이나 노무현
내 강의를들은 사람들은 나랑 비슷한 내가 강의 처음 시작할 때는 나보다 연배가 위임 청중들도 많았고 뭐
어쨌거나 그 같이 그 시각을 겪었다는 그 공감대가 있으니까
우리는 뭐냐면 김대중 해머님은 그 안에 모든 것에 담겨 있고 그걸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에요 노무현 하면은 노무현이 그
높은 때 또 그 다음에 청문회에 처음 등의 촌놈이 누구냐 사람들 깜짝 놀라면서
관심을 갖고 기대를 하고 빠져들게 되고 그런 과정들을 겪은 사람들하고
자기도 어렸을 때 유치원 때 대통령이었어
그러니까 이제 달라졌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건 뭐냐면 김대중이
누군지를 설명하고 역사를 써야 하는 거하고 김대중이라고 봐도 시작하는 거 하고
굉장히 차이가 있어서 역사는 한 10년 20년마다 현실적으로 5주년 청중이 바뀌기 때문에 독자가
바뀌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다시 어렸을 때 굉장히 심하게 생각했던게
아주 현실적인 거구나 생각을 했고 지금은 통역사를 하면은 아무도 모르죠 신영복
선생님을 아는 사람들은 자기가 뭐 사전에서 찾아봐서도 통일당 사건이라는 그런 그 사건이 있었고 이게 사실은
보면은 한국판 68혁명 우리는 68 혁명의 부재를 늘 얘기하잖아요
악화시킨 상태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53년부터 치면 68년이면 딱
15년쯤 되는 애인데 그러면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그리고 한국은 일본과
국교정성을 하고 이제 막 산업화가 되고 변화하기 시작하는 속에서
속이고 국제정선을 본다면 월남에서 그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그 상황은 거기에다가 개입을 하기 시작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
한국에서는 한국의 민주화 문제를 어떻게 받아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건 민주주의
문제다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은 그걸 좀 더 깊이 있게 이거는
분단의 문제 외세의 문제가 되어 있고 결국
회사에서 분단된 걸 극복하려면 우리가 통일해야 한다 통일을 해야 하는데 거기서 통일을
하는 과정에서 남한과 북한이 어떻게 만나야 하느냐
거기에서 이제 보면은 그 입장이 좀 걸리는데 나는
복잡하고 흐릿한 거는 흐릿하게 해야지 그걸 선명하게 해놓으면 그게 돼요 그래서이
부분은 조금 그 복잡하더라도 좀 이해해 주셔야 하는데 사회주의 운동의 전통에는 일국 일당
원칙이라는게 있습니다 그 혁명을 하는데 지도부가 머리가 많으면 이게
복잡해지니까 이걸 통일해야 한다 사회적 운동의 역사 속에서 나온 그
뼈저린 경험인데 일국일당 원칙인데 한국은 그러면은 조선 노동당이라는게
있잖아요 그래서 전국적인 단위의 혁명을 하는데 그런데 이게 이제
분단이 되고 이렇게 현실적으로 갈라졌는데 일국이 있다고 무슨 현실적으로 다른 성격의 혁명 그래서
독자적인 혁명에 참부모가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측과 그 다음에 북한이 아무래도 이게
어떻게 대들하냐 북한이 이게 실체가 있고 역사가 있고 이건 국가
조직을 갖고 있으니까 힘에서 벌써 차이가 나니까 저쪽에 주도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그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이제 흔히 얘기하기를 통역당은 부계주도성을 인정하는
독자적인 집단 남쪽에 독자성을 강조하는 집단 그렇게 알려져 있는데 수영복 선생님하고 얘기를 해보니까 그
아마 그게 이제 수영복 선생님의 통역당에 살아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핵심이면서도 통역당과 일정한 거리를 두실 수밖에 없는 그 지점이었는데 수영복 선생님만
하더라도 남쪽에 독자성을 굉장히 강조했습니다 그
점이 통역당을 다 싸잡아서 북한의 주도성을 인정하고 북한을
어떤 상부도 그 설정하려고 했었다 그 부분이 이제 오해가 되는 거고 그걸
중앙정보분 덮어씌운 거고 그게 원숭이 똥구멍에서 백두산을 끄집어내서
반도산만이 아니라 반도 삼천리안이에요
이건 우리 입장에서는 그래도 북한이 어떤 역사적인 그 부분들 그 항일
무장 투쟁을 했고 이제 이런 부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남한
혁명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을 져야지 북한강에 가서 이렇게 뭐
북한하고 상의하고 협의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음악] 점에서 통역과 인혁의 차이를 너무 과도하게
설정하는 것은 또 문제가 있다 그런 과정에서 부풀려진 사건을 통역당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고 신흥국 선생님이 거기에 가능하신 건 맞지만
입장이 분명히 중앙정부에서 말한 입장과는 달랐다
당명을 조사과정에서 처음 들었다고 하니까 그 강명도 모르셨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다음에 그 당명을
중앙정보부가 100% 조작한 거라고는 또 말씀을 안 하세요 김정태
간 사람이 통역당의 김정태 찜질나게 삼촌이거든요
그이 김종태 같은 사람이나 김진락 같은 사람이 부계 갔을 때는이 민족
해방전선 신영복 선생님의 관계는 민족 해방 전선을 통일 통일 혁명당에
어떤 실체라고 얘기를 하면서 좀 조직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아마 그 그렇게 얘기했을 가능성이 크고 그 밑에서 예 북한에서 거기에
뭐 통합 혁명 연구에 이제 cc의 경우에는
독자적인 학생운동 서클인데 예 서클인데 그것을 마치 통역방향의
산하단체인 것처럼 그 얘기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남북한의 성과주의
중앙정보부의 선거제 분명하죠 실천론이 많은데 이거는
극복되게 한 거고 그리고 이제 그 가장 김정태 같은 사람을 김정철 평가를
굉장히 예민하고 민감한 문제이긴 한데 사실은 북에서도 평가가 높지 않았어요 [음악]
뭐 거긴 하지만 북에서도 그 때밀한 자료나 뭐 이렇게
보면은 이문균을 더 높이 평가했던 거 같고 또 임자도 있었던 그
채용도 그쪽을 중심으로 생각했었던 거 같고 여기가 통역당이라고 하지만 통역당
서울시 의상이 서울시장입니다 중앙이 만들어진게 아니었나 우리가
그냥 중앙중앙 이제 그렇게 이제 부르는데 그분은 잘못인 거 같고 이제
그런 점에서 선생님은 남쪽의 독자성을 이제 강조한 너구리가 흔히
통일당 하면은 북의 종속되어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 점을 이제
강조했습니다 제가들은 걸로 그림을 보니 그때 통상 정보에서 같은
방식이 통역당이라는게 일부 실체가 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리고 이제
잔존 사회주의 그룹들이 있었고 자생적인 학생운동 단체나 운동권이 있었던 거죠
근데 그게 이제 동시에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했던 건데 그걸 전체를
통역이라는 이름을 씌우는 거예요 그래서 통역이라고 하면 일단 북한의 추종을 하고 사주를 받고
북한에 갔다 온 사람들도 있고 그냥 기본적으로 빨갱이 프레임이 되는 것이고요 신형호 선생님은 이쪽 통역 원래하고
거리 관계가 없어요 근데 그걸 여권은 그림 속에서 무관하지 않은 걸로 이제 그림이
그려졌고 그 사람들 중에서는 김진락 씨 정도만 알고 있을 정도예요
그런데 그거는 꼭 그렇게만 얘기할 수 없는게이 사람들이 김종태 김진락
이문규라는 통역당에 이제 우리가이 지도부라고 하고 거기에 그 북에 있는
그 사역과 출신 그 이진영은 이제 같은 조직에 그 있었는데 거기는 이제
조국 전선에서 김종태 이문규가 하는 조국 전선이 있었고 김진락 20명이
하는 어 민족장이 있어서 그 전선 두 개를
합쳐서 통역당이라고 김재락이나 이문규가 보고한 거는
맞는 거 같다 그리고 이제 중앙정보부는 그거에 근거해서 네가 통일당에 핵심 아니냐고 그다음에 이제
현실적으로는 김정태 사형당하고 이문세 사형당하고 김진락 사역 당하고 이진영은
북에가 있을 때 사건이 터져서 근데 요즘 못했습니까 [음악] 그러면은 그 중앙정보부가 지목한
관련자 중에서는 신영복 선생님의 사연이 제일 높아지는 거예요 하기도
[음악]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도 그런 어 좀 이상한 위치 그거는
한국 그 시대에 상황 속에서 사실 만들어지기는
그러니까 신영복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중앙정보부장은 불안은 성과주의자들과
김종태를 중심으로 한 그 일종의 남쪽에서도 그 혁명 운동을 하겠다고
하면서 국가의 관계 설정에 북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그러나 자기 밑에 있는 자기와 같이
얘기하던 그 수영복 선생님 같은 분에게는 그것을 감추고 그냥
북한 관계를 가져야 국가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 자체까지는 이제 뭐 선생님도 그거는
우리가 통일을 할 때 당연히 그걸 배제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죠 그 소 생각을 가진 분들이 굉장히 위치가 애매해졌고 그것 때문에
그러니까 이게 정말 그 도깨비 빤스처럼 그
속에서 한국 사회에 좀 더 근본적인 민주화가 무엇인가 통일과 외세의 문제까지를 포함한
그리고 민족의 민정해방까지를 포함한 그런 근본적인 좀 더 깊이 있는 민주화를 생각하고
그런데 이렇게 지금 여기 뭐 제가 또 안 쓸 수 없다 당대 최고의 역사가
이렇게 팩트를 얘기해 주고 상식적으로 봐도
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누구나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이런 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뭐 이해는 돼요 그럴 수도 있어요 사람이 자기가 믿고 싶으면 믿는데 그리고 이런 방법은
국회의원이다 언론인이다 하는 이른바 그 참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그냥 싸잡아가지고 말이죠 이렇게 분명하게 보일 수 있는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이미 자꾸 하신 분을 맡아도 이렇게 하는 거에 대해서 진짜 개탄스럽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역사 연구자로서 그런 그 개탄스러운 그런 모습을 볼 때 어떠세요 느낌이
아무튼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그러냐 아니에요
내가 너무 열을
홍준표 같은 사람은 제가 볼 때는 멀쩡한데 이야기를 떠는 거고 김문서는
정신병이라고 밖에는 얘기를 못 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람이 이제 그 저도 김문수 같고
옛날에도 이렇게 증상이 심해지기잖아요
미쳐도 곱게 미쳐서
[웃음]
나가려면 그대로 쓰면 안 됩니다 x가 두 개 들어가요 위에다가
하고 그 다음에 뒤에 거는 차에다가
인기가 떨어진 거랑 관계가 있다고 보는게 인터넷이나 이런게 이제 일반화되고
나서 이제 그냥 확증 편향에 자기의
확신을 강화할 수 있는게 무수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래서 믿고 싶은 것만 믿을뿐 아니라 여기에 정체성까지
들어가잖아요 신용복 선생님 관심이 아니야 신영복 선생님을
지지하고 동의하고 그 양반하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싸잡아
공격하는 하나님의 소환된 이유는 신영복 선생님의 책임 때문에 거기
감동받아서가 아니라 문재인 공산주의자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라고요 그런게 있지만 실제로 신용보 선생님을
좋아하고 그 따로 했던 사람들은 성격이
강퍅한 운동권들이 아닌 사람들이 많잖아요 사실 그 선생님도
운동권 굉장히 강한 그 한 시대에 가장 가장 그 급진적인
말씀도 보면은 하나같이 우리 그 집에 비유해서부터
그러니까 아주 따뜻하고 밑바닥에서부터 그 출발한 그러니까 인간에 대한
탐구가 깊은 것을 우리가 느끼게 되죠 그런데 사실
80년대 우리 민자 운동이 지금 그 이제 젊은 세대들한테
똥86석이들 듣는 중요한 이유가 인간을 안 보고 2년만 쳤던 부분이
컸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사람들이 어떤 지점에서 고통받고 상처받고 아파하고
무엇을 개선하려고 하는지 그런 거 생각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이렇게 이것만 추구하다가
보니까 요게 약간 이상해지면
[음악] 지금 그 말씀
듣다가 보니까요 저기 자기 개조라는 글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어서 제가 가져왔습니다 그 선생님 쓰셨으니까 그 인터뷰 하셨으니까 그
처음에는 사용이 근거 없다고 생각했지만 곧 아이 정권은 충분히 사용을 집행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신용보험 그 뒤로 심각하게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근데 이게 이제 아까도 언뜻 뭐 그런데 우리가 대화를 나눴습니다만은 제가 보기엔 참 실존적 장면이다 이렇게
느끼는데 그 인터뷰 하실 때 이게 뭐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그 선생님께서 느끼는 감정 같은 거 읽으실 수
있던게 있었어요 그 혹시 기억나시는게 있는지 뭐 안 나실 수도 있겠지만 공덕새
얘기를 해줬던 대낮에
음주에서 죽지 않고 햇빛 보면서 죽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신 거 있었고 제가
조금 더 이제 여쭤봤었던 건 그 전향의 문제 선생님은
남쪽에서는 전향을 그렇게 깊이 있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그런
시절이고 그렇게 깊게 고민을 안 했다고 말씀하셨고 그러면서 좀 생각하시면서 내가 아마
깊게 고민을 했었어도 전혀 했을 거야 왜냐하면 그 뭐 선생님 그
추구하시는 바 하고는 뭐 그거하고
징역을 오래 살면서 비전 현장 기술을 보면서 나중에 다시 이제
그거를 이제 일반적인 전향 뭐 일본에서 얘기하는 천황제에 대한 뭐
지지로 사회주의에서 그리고 넘어가는이 얘기를 하면서 아까 서준식 선생
얘기도 했잖아요 그 당시에 말지에서 이제 서준식 선생이 전향을 안 한 거
하고 신용보험 선생이 전향한 걸 가지고 뭐 간단한 인터뷰하고 글도 쓰고 그런게 있었는데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서 신 선생님이 뭘 전향했어야 되는 거냐 그래서 전향을
했다는데 뭘 어디로 갔다 와 저녁인데 자기가 간바가 없어요
근본적으로 이게 전향을 했다라고 본인 뭐 그걸 쓴 건 사실이니까
근데는 본인이 그걸 안 쓰일 이유가 없었던가 특별한 특별한 거니까
맞아요 그때 당시에는 그러니까 뭐 선생님 같은 건 남쪽이셨고 아까 최용욱 선생님
말씀하신 요소가 분명히 뭐 있었고
난파됐던 간첩의 경우에는 전향이라는 문제가 명백하게
존재하잖아요 그걸 부정할게 간첩도 아니고
간첩 문제가 남쪽에서 심각하게 된 이후에는 나는 박정희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박정희 자신이 아니라 이건 배신자죠 배신자였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콤플렉스가 작용을
한 거예요
하여튼 시간상 우리가 좀 넘어가야 될 것 같은데 그 어쨌든 그 이제
대중들이 많이
감동을 받아야 되는게 많아요
감동을 받아야 되는 그런 부분이 어디였냐면 사실은 제가 아까 실전적인 그
부분을 이제 대중들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근데 어쨌든 중요한 거는
시대에 어떤 그 한국 현대사라고 하는 그 질곡의 끼인 개인으로서의 희생자였던 측면이
너무 많다 이렇게 제가 정리를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래서 출수한 이후에 이제 선거에 대해
자리를 잡으셨단 말이죠
이 시절에 일단은 이거부터 한번 여쭤보고 싶어요 그 20년
20년에 그 대학생활을 어떻게
한국 현대사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 그 한 선생님은 대학생활
20년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봤을 때는 성공에 대해 가장 정신적인 지주 현실적으로는 이제중 총장이 살림을
맡아서 하다가 이제 좀쟁이 떠나면서 이제 제가 또 이제 지금 순경은 안 계셨고 김성수 주교님의
좋은 분이시지만 학교에 대한 어떤 뭐 그 뭐라고
표현할까 했던 그 전까지 학교와 관계가 성공회의
학교와는 아주 가까운 관련이 있었던 분은 아니고 그리고 조희연 선생이
그때는 선생하고 두 분이 중심이 그
듣던 시기고 선생님 개인으로서는 느티나무 우리 학교에 다
죽어서 [웃음]
거기가 우리가 늘고 있던 데가 만날 정도로 그늘도 없고 이제 다 죽어서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만으로 성공에 대한 아주 할까요
근데 이제 그 선생님 돌아가신 다음에 참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하다 보니까 나하고 김동춘 선생님 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전에는
많았거든요 우리
학교가 교사의 3%가 교육감이 됐단 말이야
그러네요
굉장히 추웠잖아요 저는 그런 점에서도 또 좀 더
찬바람을 맞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가 안타까운 거는 성공에다가 좀 그 잘 발전을 했어야
하는데 선생님 가시고 난 다음에 점점 학교에 어떤 위상이랄까 뭐 역량이랄까
이런 것도 이제 줄어드는 과정 그런 과정이 좀
걱정 마십시오 우리 또
[웃음]
근데 그 20년이 감옥 20년 얘기하신 거 아니었나 그
20년이 나오셔서 나와도 가보죠
편치 않으셨을 거예요 아마 그래도 선생님한테 위안을 받는
사람들이 많고 또 선생님도 거기에서 또 힘을 얻으시면서
당신이 그러니까 아마 처음에 나와서는 나오셨을 때는 그 부분은 내가
직접적인 인터뷰를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으셨을 텐데 그래서
이제종 총장님의 그 말씀을 했어요
교단을 썼다가 잡혀가신 분을 교단을 세우는게
사실 모셔서 학교 선전이 무지 많이든 거죠 성공회대 입장에서는
진짜 조그맣고 작았었거든요 지금도 작지만 지금보다 훨씬 뭐 1/10밖에 안들 그 학교가
이렇게 커지게 되는데는 이재정 총장의 노력도 있었지만 신영복 선생님의 어떤 속망 그게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을 했고 신용복 선생님이 계셔서 성공했는데 지원했다는 말씀들이
옛날로 나갔습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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