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1

한국인의 탄생 - 시대와 대결한 근대 한국인의 진화 최정운 - 손민석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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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운의 <한국인의 탄생>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적 자연상태와 그 속에서 사회계약의 주체로서의 한국인이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떤 특질을 지녔는지 분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제일 중요한 건 리바이어던이라는 국가가 영속하는 게 아니라 베헤모스적 내전상황과 일종의 순환적이면서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인데
 '친일파'와 '빨갱이'라는 공포가 한국에서의 그 순환을 등장시키는 계기적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저작이라고 한 거다. 
우리 내부의 친일파, 빨갱이라는 공포가 보수적 국가주의와 진보적 민족주의라는 내셔널리즘의 상이한 두 형태로 나타나면서 한국의 리바이어던을 어떻게 강화시켜나가는지 좀더 고민할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물론 저자는 꼭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지만.. 
아무튼 홉스적 관점에서 보아도 한국은 분명 일종의 내전적 상황에 놓여 있는 건 분명해보이고 친일과 친북이 각각 그 계기로 작용하는 건 분명한데 이 지점에 대한 보다 나은 이론화는.. 내가 홉스를 좀더 자세히 읽어봐야 뭐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알라딘: 한국인의 탄생
한국인의 탄생 - 시대와 대결한 근대 한국인의 진화   
최정운 (지은이)미지북스2013-10-10

Sales Point : 789 
 9.6 100자평(8)리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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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14,000원 

책소개

망국 조선,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우리 한국인은 태어났다.
해방 한국, 한국인은 그 무엇과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근대 문학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한국인 정체성을 심층적으로 재구성하다.

20세기 초에 최초로 근대 한국인의 모습이 나타난 이래 일제 식민지 시기를 거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제 시대는 일부에서 말하듯 우리 민족과 수많은 지식인이 일제에 협력하고 굴욕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던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일제 시대 내내 한시도 쉬지 않고 우리를 찾아 헤매고, 우리의 새로운 모습을 모색하며 그려가고 있었다. 특히 3.1운동 이후는 우리 민족의 본질을 찾아서 강한 조선인을 찾는 과업이 제시되었다.

1920년대에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1930년대에 이르면 우리의 지식인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며 새로운 전선에서 창조적 예술이 지적 투쟁을 전개시켜 갔고 드디어 1930년대에는 강한 한국인의 모델을 발명하였다. 춘원은 우파의 입장에서, 벽초는 좌파의 입장에서 유사하면서도 상이한 두 인물을 창시하였고 이 두 전사, 영웅의 모델은 현대 한국인에게도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목차
제1장 한국인의 정체에 접근하는 문제

제2장 홍길동과 성춘향
홍길동의 정체
천상의 영웅 홍길동 | 홍길동의 탄생 | 홍길동 신화

성춘향의 정체
사랑과 현실 | 시련 | 춘향의 출현의 의미

근대 이전의 두 인물

제3장 신소설의 인물들과 그들의 세상
신소설에 드러나는 현실
주인공 김옥련 | 신소설의 이야깃거리 | 공간의 문제 | 저항의 흔적 | 현실의 뿌리 | 주인공 김수정 | 구한말 현실과 신소설

자연상태에서의 삶과 죽음
홉스적 자연상태 | 전대미문의 상태 | 생존의 문제 | 진화 | 계속되는 삶

자연상태와 정치
강한 국가권력 신화 | 안과 밖 | 활로 | 반역 집단 일진회 | 국가가 없는 우리 | 민족주의의 탄생과 분기 | 자연상태와 정치

신소설과 그 현실의 역사적 의미

제4장 초기 민족주의자의 두 초상
두 민족주의자의 내면
두 민족주의자와 그들의 분신 | 이성과 욕망 | 속 사람 | 지평의 확대 | 사랑의 민족주의 | 한놈과 그의 세상 | 단재의 구상

두 민족주의자의 사회적 위치
새로운 존재와 그 세상 | 전략과 투쟁 | 개화민족주의자의 새로운 출발점 | 미완의 끝, 저항민족주의의 시작

두 민족주의자의 역사적 의미

제5장 만세 후에 찾은 인물들
김동인과 민족적 과제
김동인의 문체와 인물 | 약한 자 | 마음이 옅은 자 | 강함에 관한 단서

순수문학의 시도와 강한 인간의 재발견
<배따라기>를 부르는 사람 | 성과 애정의 문제 | 야성의 예술 | 지식인 바깥의 인물 | 삵과 삼룡이 | 망가진 작품

한국 근대 소설문학의 출발

제6장 대도시 지식인의 출현
기이한 생태의 대도시 지식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대도시 문명과 지식인

부활을 꿈꾸는 대도시 지식인
박제가 된 천재 | 부활의 신화

대도시 지식인이라는 종자

제7장 새로운 전사의 창조
욕망과 이성

두 번의 죽음
주인공 최석 | 첫 번째 죽음 | 결핍 | 순례자 | 첫 번째 유혹 | 두 번째 유혹 | 두 번째 죽음 | 식민지 조선과 구원

부활의 전사, 강한 조선인 만들기

제8장 민중 영웅의 창조
민중 영웅 임꺽정
천상의 영웅 임꺽정 | 벽초 식 사실주의와 ‘조선의 정조’| 임꺽정과 서림 | 임꺽정과 그의 공동체 | 민중 영웅 임꺽정

근대인 임꺽정
변신 | 유혹 | 돌아온 임꺽정 | 약동하는 심장

민중의 정체
민중의 연원 | 민중의 탄생 | 우리의 민중

반지성주의의 성격
지식인과 민중 | 저주의 안개 | 민중의 내면 | 이후의 이야기

근대적 민중 영웅

제9장 결론

접기
책속에서
P. 11
우리 근현대의 역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그런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간 엄청나게 먼 길을 왔고, 우리는 자부심을 느낄 자격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1백여 년의 역사를 통해 이런 성과를 이루어오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지적 과업을 망각하였고 결국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고 마는 또 다른 결과를 초래하였다.  접기
P. 23
근대 소설은 기성의 우주가 찢어지는 시대, 자본주의 발달이라는 특정한 환경에서 나타난 예술 작품이며, 그 예술이 창조해온 주인공들도 그런 환경에서 탄생한 인물들이었다.
P. 101-102
결국 이인직과 이해조의 신소설에 나타난 당시 조선 사회의 모습은 이른바 ‘홉스적 자연상태(the Hobbesian State of Nature)’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 영국의 정치사상가 토머스 홉스가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제시하는 국가 이전의 상황 즉 국가를 필히 만들어야 할 ‘자연상태(the State of Nature)’와 유사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인직과 이해조의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당시의 현실, 즉 사회는 붕괴되고 개인으로 흩어져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신소설이라는 새로운 이야기의 형태가 우리 역사에서 나타난 원인이었다. 루카치에 따르면 근대 소설은 “세계가 신에게 버림받았다.”는 관념에서 출발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신소설도 죄악으로 가득 찬 사회, 망한 나라, 타락한 세상이라는 판단에서 출발하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무후무한 ‘신소설’이라는 문학의 장르가 나타난 것이었다.  접기
P. 426-427
1933년 이광수의 『유정』이 발표되자 강한 조선인을 만드는 비결(秘訣)이 드디어 공표되었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랑으로 욕망과 이성의 갈등이 시작되고 두 힘 사이에 상승 작용이 일어난다. 그리고 두 힘을 최대한으로 확대시켜 그 사람을 죽게 한다. 그러면 그 죽은 이의 영혼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주변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 것이고, 그들은 끝까지 싸우는 불멸의 전사가 된다. 이것이 바로 그 비결이었다. 이는 결코 복잡한 과정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심훈은 최초로 이를 간파한 천재였고 『상록수』에서 멋지게 활용하여 불멸의 전사들을 민족 운동의 전선에 바로 배치하였다. (……) 사랑은 고통스럽지만 보람 있고 생산적인 일이었다. 소설에서 사랑은 점점 더 가혹한 시련의 과정으로 변해갔고 그 시련을 이겨나가는 과정과 마음가짐은 종교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그 극단적인 예가 이광수의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고행 그 자체로 연결되었고 작품은 더욱 더 엽기적으로, 자학적으로 변해 갔다. 1930년대 중반 조선인들은 시련과 고문에 지친 모습이었다. 한편으로는 수도승 같은 애정과 긍정의 마음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독이 바짝 오른 모습들이었다.  접기
P. 495
일본과 중국에서와 달리 한국에서는 ‘민중’이라는 말이 지워지지 않고, 되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임꺽정』이라는 문학 작품을 통해 ‘민중’이 말뿐이 아니라 피와 살로 이루어진, 그리고 생명력이 요동치는 존재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동북아 삼국에서 쓰여 온 ‘민중’이라는 단어는 서양 철학에서 말하는 ‘개념(槪念)’이라 볼 수는 없다. 지칭하는 대상을 고정시킬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어떤 범주의 사람들을 피동적으로 지배당하거나 피동적으로 혁명에 참여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 능동적으로 혁명과 저항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말하는 이상, 그 대상은 애매하며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개념’이 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을 현재 상태로 말하는 이상, ‘민중’은 개념이 되기에는 너무나 직관적인 감각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말이며 따라서 그 말의 타당성은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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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운 (지은이)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거쳐 
시카고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서양 정치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작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한국 근현대 사상사의 부재를 깨닫고 
이를 발굴, 정립하는 연구에 매진해왔다. 
전작 『한국인의 탄생』과 이 책 『한국인의 발견』은 그러한 지적 여정의 결과물이다.

지은 책으로 『한국인의 탄생』(2013년) 『오월의 사회과학』(1999년), 『지식국가론』(1992년)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푸코의 눈: 현상학 비판과 고고학의 출발」, 「새로운 부르주아의 탄생: 로빈슨 크루소의 고독의 근대사상적 의미」, 「개념사: 서구 권력의 도입」, 「국제정치에 있어서 문화의 의미」, 「권력의 반지: 권력담론으로서의 바그너의 반지 오페라」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지식국가론>,<한국인의 발견>,<한국인의 탄생> … 총 1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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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우리는 누구인가? 한국인은 누구인가?
이 책은 사회과학서이자 역사서이며 문학 비평서이며, 특히 고전적 의미에서 하나의 문학(文學)이다. 저자는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세상을 무대로 파악하며, 시대와 대결한 근현대 한국인이라는 인식틀을 관철하여 거대한 서사를 완성했다.
망국과 국권 상실, 그리고 전쟁의 참화로 점철된 혼돈의 시대를 거치며, 전대의 수많은 한국인(조선인)은 생존에 몰두해야 하는 시대, 자신이 사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시기를 살았고, 후대의 우리로 하여금 그 시대를 음미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자료를 거의 남기지 못했다. 후대의 우리 또한 혼돈의 시대를 거치며 전통과 단절되었고, 그 시대를 이해할 관점을 상실해버렸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우리를 잘 알고 있다는 그러한 막연한 고정관념을 깨는 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선 ‘한국인’에 대해 이해하고 나서야 다시 새로운 ‘우리’, 외부 세상에 맞서는 공동체로서 ‘우리나라’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보고, 근대 문학
수많은 연구를 섭렵하면 할수록 오히려 좌절을 느끼던 저자가 그 시대를 더듬으며 마침내 찾아낸 유력한 접근 경로는 바로 근대 소설문학이었다. 저자는 우리 국학계가 이미 정리를 마쳤다고 자신해온 작가와 작품들에 대해 전면적인 재해석과 재평가를 하며, 이를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과 사상사의 구축을 시도한다.
아직 지식인과 정치 지도자와 예술가가 덜 분화된 시대가 있었다. 우리의 지식인, 지도자들은 소설문학을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삼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시대와 갈등하고 대결하며 시대를 극복할 새로운 한국인상을 모색했다. 그 가운데 소설문학은 시대가 우리에게 허락한 최고의 실험실이었다. 현실의 축소판인 작중 세계에서 인물들은 진화를 거듭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우리의 문학가이자 사상가들, 즉 이인직, 이해조, 신채호, 이광수, 김동인, 나도향, 박태원, 이상, 홍명희 등이 그들의 세상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그리고 그에 맞서 어떤 인물을 창조했는지 면밀하게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점차 그 인물들이 한국인 정체성 누적의 역사라는 관점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구한말은 “홉스적 자연상태”였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근대적 소설이 나타난 것은 일본보다 약 20년 후였다. 고종 즉위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무려 40년이나 지난 후였다. 그나마도 최초의 근대식 소설인 신소설은 국문학에서 제대로 된 근대 소설로 인정받지 못한 장르다. 근대 소설 혹은 근대식 소설이 이렇게 뒤늦게 도입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구한말이 되어서야 이전의 문학 형식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대두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근대 서구의 문학 형식에 담아야 할 새로운 종류의 이야기들, 구한말 특유의 문제적인 이야깃거리들이 나타났을 때에야 비로소 최초의 근대 소설, 신소설이 쓰였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신소설 작품들에 묘사된 인물들과 시대상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신소설이 묘사한 현실은 황당무계한 허구라든가 친일파 성향의 작가에 의해 날조된 조국에 대한 음해가 아니라 철저하게 ‘사실주의’적인 현실이었음을 드러낸다. 그 시대는 이른바 “홉스적 자연상태”였다. 조선(대한제국)이 망하던 시기, 조선은 실로 지옥이었다. 만인이 만인에 대해 전쟁을 벌이는 곳이었다. 국가의 권력이 조정 바깥에 거의 미치지 못했고, 백성들은 숨죽이고 제 한 몸 건사를 도모하는 삶을 살았다. 국가가 없는 세상, 국가가 구실을 못하는 세상, 모두가 국가를 원망하는 시대가 있었다. 그것이 우리 20세기의 시작, 구한말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신소설의 세계와 인물 군상은 그런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가가 없는 우리 - 민족의 탄생
“홉스적 자연상태”에 맞서 사람들은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일진회는 그 가운데 태어난 신종 한국인들이었다. 한편 이들에 대응해 전통의 ‘의(義)’에 기반한 의병이 일어나 일진회를 숙청하기 시작했다.
일진회의 성립과 ‘반역’, 그리고 그에 자극받은 의병의 출현과 대결 와중에 조선 사람들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질문을 겪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대체 누구냐?’ 하는 문제는 마치 새로운 질문처럼 폐부를 찔렀다. 이 지점에서 ‘민족(民族)’이라는 말이 이미 1903년경에 중국의 양계초(梁啓超)에 의해 도입된 말로 비로소 쓰임새가 생기게 되었다. 나라가 없어도 민족이 가능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우리의 민족주의는 20세기 초반 이러한 홉스적 자연상태의 대혼란과 일본의 침략 와중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정체는 아직 틀에 불과했다. 그 내용은 이제부터 채워나가야 했고 민족의 본질(本質)을 얻기 위한 기갈이 시작되었다.

민족주의의 탄생과 분기 - 개화민족주의와 저항민족주의
‘민족’이란 말이 실체 있는 말로 탄생하던 즈음, ‘민족주의자’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족주의자’로 지칭된 사람들은 1880년대부터 조선 사회의 붕괴와 혼란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며 백성들을 교육하는 것만이 장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던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국민 교육으로써 “새로운 교육과, 새로운 정부와, 새로운 종교로 피나 인종(the blood or the race)”으로 바꾸고 ‘자연 상태’를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춘원 이광수가 3.1운동 직전 1917년 발표한 『무정』은 초기 개화민족주의자의 정체성 투쟁에 관한 작품이었다. 춘원이 설정한 이형식이란 인물은 춘원의 분신으로 그 출발에서부터 이미 서구에서 수입한 ‘근대인’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이성(異性)에 대한 욕망을 억제하고 사랑의 가능성을 탐색해가면서 점차 모든 민족을 사랑하는 새로운 민족주의자로 성장한다.
단재 신채호를 중심으로 형성된 ‘저항민족주의’ 또한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다. 저항민족주의는 물론 개화민족주의를 저변에 깔고 형성된 것이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개화민족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한 형태로 나타났다.『꿈하늘』을 통해 단재가 제시한 초기 민족주의자 ‘한놈’은 고독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의 개인으로 신(神)의 명령에 따라 끝없이 싸우도록 고안된 인물이었다. 단재의 ‘한놈’은 춘원의 ‘이형식’과는 달리 아예 그의 정체성에 무엇을 채워 넣을 것인지 그 기회조차 박탈당한 인물이었다. 그의 ‘님 나라’는 오로지 승리자가 되라 하며 그를 훈육할 뿐이고, 그 이유도 그 내용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한놈’은 아무런 사심이 없는 이상 어떤 과정을 거치든 간에 결국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되리라 기대되는 인물이었다.

3.1운동 이후 - 강한 한국인을 찾아서
3.1운동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민족’이라는 실체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우리 눈앞에 한때 강림했다는 사실에 있었다. 반면 뒤이은 1920년대는 이제 그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상실감의 시대였다. 당대의 ‘3.1운동은 실패했다.’는 평가는 이러한 허탈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민족주의는 이제 진짜 ‘운동’을 현실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단계가 되었다.
그 선두에는 김동인이 있었다. 초기 조선 지식인들 전체는 대체로 김동인의 주도에 따라 각 개인의 차원에서 힘을 기르는 강한 조선인이 돼야 한다는 방향으로 합의에 이르게 된다. 김동인은 ‘강함’과 ‘약함’의 문제에 천착했다. 그의 1921년까지의 초기 작품들 『약한 자의 슬픔』, 『마음이 옅은 자여』, 『목숨』은 그 ‘강함’과 ‘약함’을 구별하고 파헤치는 일련의 작업이었다. 이후 1920년대를 통해 김동인은 우리 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순수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단편 소설들을 집필한다. 소설들의 소재는 주로 남녀 간의 문제와 그로 인해 타락하는 사람들이었다. 『붉은 산』의 삵, 『광염 소나타』의 백성수의 음악, 『배따라기』의 사공, 『감자』의 복녀 등 제시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광기에 휩싸여 비참한 결말을 맞는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이 문학계의 ‘연애의 시대’는 ‘사랑’을 발견한 시대이기도 했다. 비록 타락했지만, 그들은 정열을 생산하는, 심지어 광기로 치닫는 동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지식인, 민족주의자의 추락과 부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흔히 소설가로서의 삶, 도시에서의 삶에 관한 소설로 이해하지만, 저자는 사뭇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 단적으로 구보씨는 이전 시기 이광수의 『무정』에서 영어 선생이었던 이형식이 1930년대에 도착했을 때의 모습이었다. 구보씨가 대표하는 한 세대의 조선 지식인의 생활양식은 전대미문의 것으로 그는 이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종자’였다. 구보씨는 본질적으로 시대에 ‘두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서울을 벗어나지도 못하는 인물이었다. 구보씨는 사회적으로 실업자는 아닌, ‘무직자’였다. 즉 아직 일을, 사명을 찾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런 고민스런 상황에서 나타난 과감하고, 기괴하고, 천재적인 타개책이 바로 이상의 『날개』였다. 문학예술가가 대도시에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신지식인이라면 농촌은 맞지 않다. 도시여야 하지만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꿋꿋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도시에서 오래 살다보면 삶은 서서히 무너질 수밖에 없고 다시 신선하게 예술가의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은 쉽지 않다. 이상은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인 천재를 재생(再生), 재탄생시키는 길을 정교하게 고안해 보였다.

강한 근대 한국인의 창조 - 이광수의 업적
과연 1930년대에 들어서면 새로운 지적 업적들이 산출되기 시작했다. 춘원은 다시 소설 창작에 몰두하였고 『유정』을 통해 당시 조선 지식인의 공통적인 숙제였던 ‘강한 조선인’ 만들기에 드디어 성공했고 드디어 그 비결이 공표되었다. 이광수가 『무정』의 이형식을 통해 해결하지 못한 치명적인 부분 중 하나는 그가 조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의 진실성과 또 백성이 그에 진심으로 화답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유정』의 주인공 최석은 그와는 차원이 다른 진화된 정체성을 완성한다. 최석은 이광수가 개발한 근대 한국인의 최신 모델이었고, 이 모델은 오늘날 한국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민중 영웅의 창조 - 해방 이후 민주화의 동력
같은 시대에 벽초 홍명희는 대하소설로 임꺽정이라는 새로운 영웅의 모습을 정교한 솜씨로 창조하였다. 그는 임꺽정을 통해 그 시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언급되던 비(非)볼셰비키적 혁명의 주체로서의 ‘민중’을 형상화하였다. 단재 신채호가 전개한 아나키스트(anarchist)적 ‘민중’과 ‘민중의 직접혁명’의 논리와 언어에 벽초는 뼈와 살을 입히고 피를 돌게 하여 살아 있는 영혼으로 창조하여 우리에게 보냈다. 한때 동북아시아 지역 전체에서 쓰이던 ‘민중’이라는 말은 우리를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에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임꺽정이라는 생명력 넘치는 인물을 창조한 우리 민족에게는 이 ‘민중’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싸우고 있다.

오늘날 저주의 안개 - 반지성주의와 도덕성 부재의 자리
일제 시대에 여러 전선에서 싸워나가고 스스로 힘을 기르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하기 시작한 것은 반지성주의였다. 대중은 그들 지식인 가운데 많은 이가 민족을 배신하는 것을 보았고, 또 많은 이가 『무정』의 ‘배 학감’처럼 ‘장사꾼’ 같은 사람임을 경험했다. 지식인들 스스로도 민족에 대한 의무를 다하려 했겠지만 자신들의 이율배반을 끊임없이 확인해야만 했다. 이러한 생각들이 모여 주로 1930년대부터 반지성주의가 나타났고, 오늘날에도 저주의 안개처럼 우리 사회에 스며 있다.
나아가서 강한 조선인을 찾아 온 지식인들의 노력은 다른 대가도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민족의 본질을 ‘강한 인간’에서 찾는 선택의 핵심은 1920년대 춘원이 제안했던 도덕성 회복을 통한 ‘민족 개조’ 계획을 기각한 것이었다. 우리 민족의 도덕성의 문제는 한국인이 ‘해방’되었을 때 한국인의 첫 번째 특징으로 조우하게 될 문제였다. 해방된 한국인들은 너무나 거칠었고 ‘힘’에 대한 박탈감에서 ‘힘’의 추구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도덕성이 소외된 힘의 추구야말로 1930년대 춘원을 위시한 조선 지식인들이 이룩한 ‘강한 조선인’ 추구의 대가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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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남긴 글내가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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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여러모로 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해이다. 업무가 늘기도 하고 좀 줄기도 했는데 읽은 책이 조금 늘어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재택근무의 영향이 있었던 듯 하다. 그래도 이런 일은 다신 없었으면 하며 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었는지 그 어느때 보다 교육관련 책을 많이 보았다. 전체 112권을 보았다. 늘 그렇듯 다양하게 보려고 노력... 더보기
닷슈 2021-01-31 공감 (3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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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부터 연말연초엔 그 해 읽은 책을 정리하고 있다. 훌륭하신 분들의 작업을 보고 따라하는 셈인데 나 자신의 일년을 돌아보는 거 같기도 해서 좋았지만 작업이 제법 힘들었다. 반씩 나누면 좀 나을듯 해 상반기 목록을 정리해본다. 이번 상반기는 코로나로 인해 책을 읽은 시간이 많아지면서도 줄어들었다. 쓸데없는 외출과 모임이 줄었고, 직장에서도 업무수행시간이 ... 더보기
닷슈 2020-06-30 공감 (2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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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리 사회가 반지성주의와 교육만능주의 그리고 서구에 대한 지적의존으로 인해 교육지옥과 힘의추구라는 폐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본다. 한국사회는 지난 백여년간 사회 자체와 그 속의 개인이 엄청난 정체성 변화를 겪었음에도 자신들을 성찰하는 연구가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저자가 이 독특한 한국인의 정체성의 변천에 대해 자신의 연구결과를 담은 것이 이 ... 더보기
닷슈 2020-02-04 공감 (2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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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었을 땐 과거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현재와 미래에 관한 책이다. 그러니까, 한국인이 탄생하고 성장해온 이야기를 하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그 기저에 한국인이 어떻게 탄생해야 하는지, 직접적인 언급은 철저히 자제하면서, 독자의 변형을 꾀한다. 초고수의 책이다.  구매
글레이 2013-11-26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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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바탕이 된 수업을 오래 전에 듣고 식상하게만 보였던 근 현대 한국 문학작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었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근현대사에 담긴 혼란스러움과 역동성, 그 속에서 형성되는 한국안의 정체성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구매
blue923 2013-10-30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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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심각한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해온 신소설을 바탕으로 100년 전의 한반도를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라고 분석한 부분이 특히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강한 국가권력에 대한 집착과 반지성주의 같은 ˝오래된 습관˝들의 기원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함.  구매
pin 2014-07-02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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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타분하다고만 막연히 느껴왔던 한국의 근대사, 근대문학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책으로 현재의 한국인의 정체성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 한다.  구매
summit 2014-04-28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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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책. 한국인에 대해 질문을 던지다.  구매
새들처럼 2014-02-1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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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소설로 바라본 한국인의 변천 새창으로 보기
 저자는 우리 사회가 반지성주의와 교육만능주의 그리고 서구에 대한 지적의존으로 인해 교육지옥과 힘의추구라는 폐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본다. 한국사회는 지난 백여년간 사회 자체와 그 속의 개인이 엄청난 정체성 변화를 겪었음에도 자신들을 성찰하는 연구가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저자가 이 독특한 한국인의 정체성의 변천에 대해 자신의 연구결과를 담은 것이 이 책이다. 다 읽어보니 총 두권인것 같은데 '한국인의 탄생' 편에서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를 다루고 다음편에서 현대편이 이어지는 것 같다.

 한국인의 정체성 변천을 연구하려다보니 저자는 곧 어려움에 봉착한다. 한국인의 사상과 철학을 담아놓은 체계적 저술이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상당기간동안 부재했던 것이다. 이는 거대한 혼란기로 인함인데 자신들이 신봉하던 성리학이 부정당하고, 서구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며, 일제에 강점당한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그럴만하다. 그래서 저자가 주목한 것은 바로 소설이다. 소설에 담겨진 인물상과 저자의 의도 파악을 통해 당대 한국인의 변화를 살펴볼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먼저 근대 이전의 소설에 주목하는데 우선 홍길동전이다.

 

1. 근대이전(홍길동전)

 한국인이 언제나 마음편하게 자신들의 작은 문제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소환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홍길동일 것이다. 홍길동이 비교적 편한 해결책인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로 아이같은 외모와 폭력없이 상대를 해치우는 강력한 도술이다.

 작가인 허균은 연산시절의 혼란함에서 소설의 모티브를 따왔음에도 홍길동전의 시대를 하필 세종대로 설정했다. 이는 홍길동이 시대가 불러낸 영웅이 아닌 그런 것과 상관없는 천상의 영웅임을 설정하기 위해서이고 영웅의 시대적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함이었다. 허균은 사실 역성혁명을 하기 위한 대리목적으로 홍길동을 만들어낸 것이지만 당시 역성혁명은 성리학에 반하는 것이고 이에 물든 백성들의 정서에도 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허균은 충분히 역성이 가능한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홍길동이 단지 율도국 하나만을 세우게 함으로써 혁명의 가능성만을 보여준다. 더구나 홍길동은 도술이 무척 뛰어나 적들을 농락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폭력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와 같은 폭력성과 혁명의 거칠음이 없기에 이후에도 한국인들은 부담없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홍길동을 쉽게 소환할 수 있게 된다.

 근대이전엔 소설엔 개인이 없다. 있다해도 성리학적 사고방식에 갇혀있고 선인과 악인으로 뚜렷히 구분되며 이렇다할 내면 표현도 적다. 소설의 주인공은 대개 영웅이나 특별한 주인공으로 그래서 제목도 대부분 - - 전이다. 내용도 권선징악이나 교훈을 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2. 근대소설의 등장

 서구에서 근대소설이 등장한다. 서구근대소설은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라는 시대가 낳은 것이다. 자본주의로 인한 공동체의 붕괴로 근대소설엔 개인에 등장하며 개인을 부각시키는 다양한 도구가 등장한다(내면묘사) 그래서 근대소설은 어떤 개인의 생애를 기술하기 위한 문학형식인 경우가 많으며 그 안에서 인물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며 세상과 공동체에 대항하여 맞서 갈등을 일으킨다. 근대소설은 아름다운 문체를 추구하지 않으며 천박한 문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주의를 추구하는데 이는 진짜 사실이 아닌 없는 인물을 그럴듯하게 묘사하는 사실성의 추구다. 대표적인 예로 돈키호테, 파우스트, 돈후앙, 로빈슨크루스 등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개인주의의 신화적 영웅들이다.

 서구 역시 자본주의 등장 이전인 근대엔 서사시나 비극, 영웅담이 소설의 주류였으며 주인공은 개인이라기보단 우리의 경우처럼 공동체나 민족의 염원, 꿈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이였다. 그럼에도 근대 이전의 주인공들은 홍길동처럼 아이다운 경우가 많았으며 근대소설의 개인들은 성숙한 남성성을 표출한다. 그만큼 영웅에 아닌 개인으로서 세상에 부딪히는게 거칠고 힘들기 때문이다.

 

3. 구한말-대한제국까지(신소설-혈의 누, 치악산, 화세계)

  [피동적이고 주체성없는 약한 피해자 한국인]

 구한말에서 대한제국까지의 시기는 우리 역사상 가장 힘든시기중 하나였다. 사회의 시스템과 전통적인 공동체 질서는 완전히 붕괴했고, 외세의 침략이 눈앞에 있는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시기였다. 정계에선 매관매직이 판을 쳤고, 조정은 나라보단 자신의 살길을 찾았으니 일반백성들의 삶이야 어떠했을까. 

 이런 시기 서구 근대소설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 신소설이 등장한다. 이인직의 혈의누가 최초이고 귀와 성, 치악상등이 잇달아 등장한다. 작품엔 공통점이 있는데 주인공이 김옥련, 길순이, 이씨부인으로 모두 여성이며 각자 다른 처지지만 모두 끔찍한 운명에 처했고, 성격상 주체성이나 자의식 개성없이 끌려만 다닌다는 것이다. 이들은 피동적이고 내용이 없는 껍데기의 여성피해자로 우리나라 소설상 최초의 근대인이다. 강한 남성이 개인주의적 영웅으로 등장하는 서구와는 딴판으로 당시 시대상을 잘 반영한다. 소설의 다른 인물들은 이유없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한인 경우가 많으며 이들은 물질적 성공을 위해 전통적인 의를 무시하고 악행을 일삼는다. 하지만 이시기 소설은 아직 한국인의 금기인 비극으로 치닫진 못하고 끔찍한 운명에도 어떻게든 권선징악적인 해피엔드로 작품을 끝내는 경향을 보인다.

 1910년경에 이르러서는 주체성과 개성없이 피해만 입던 주인공들은 이 시기에 적응하여 영약하고 합리적인 근대적 인간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어쨌든 당시 사람들은 혼란한 홉스식의 자연상태에 높인 상황에서 강한 국가를 원했고, 그래서 이상스레 대원군의 인기가 오래도록 신화처럼 이어진다. 개화가 이어지며 언론을 통해 대한제국 정부의 무능은 더욱 드러났고, 반작용으로 오히려 일본과의 사회계약을 통해 강한 정부를 세우려는 일진회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일진회는 한일합방후 총독부의 명령으로 허망하게 사라질때까지 무려 100만에 달하는 회원을 가진 활발한 조직이었다.  

 하지만 을사늑약과 친일파들의 부역행위가 드러나며 일진회는 그 인기를 잃어간다. 반작용으로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과는 구분되는 조선인의 차별성이 부각되었다. 조선인은 구시대적 표현이었으며 일본이 만들어낸 일본국민과도 대비되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채택되었다. 다음은 이 민족주의자의 탄생이다.

 

4. 1910년대까지(근대소설-무정)

[민족주의자의 탄생]

우리 민족이란 개념은 고통속에 탄생했다. 구한말 조선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일차 부정에 그 반작용으로 새로운 강한 권력을 찾았던 일진회를 포함한 친일행위에 대한 이차 부정이라는 이중의 부정속에서 탄생한 개념이었다. 국가가 없던 시기에 탄생했기에 대부분의 다른 국가에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일치하는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했고 이같은 성향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민족주의자들은 1880년대부터 백성의 교육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러일전쟁과 일진회의 행위에 대한 반작용, 민영황의 자결로 인한 고취는 개화민족주의를 형성했다. 이들은 교육을 통한 서구와 같은 사회건설이 목표였다. 반면 여기에 일제에 대한 강한 투쟁을 포함하는 것이 저항민족주의다.

 이 같은 분위기를 한국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받는 이광수의 무정에 반영된다. 무정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형식은 한국 최초로 내면을 갖춘 근대적 인물이다. 내면을 가졌으므로 개인은 욕망을 가진 주체이자 그것을 자제하는 주체가 된다. 구한말의 주체없는 인물에서 진일보 한것이다. 당시 민족주의자들은 민족개화를 위한 지식이 필요했으나 이는 조선자체가 아닌 유학이라는 밖에서부터 얻어지는 것이었다. 민족주의자들은 이것에 목말라 했으나 그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조선안에 있던 모든 지식과 문화가 부정되고 외세에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던 당시 상황은 지식과 체계를 모두 서구에 의존하는 지식의존주를 낳았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강력하게 한국사회에 자리잡고 있다. 당시 민족주의자들은 본인들이 민족주의자이면서도 아직 민족을 강력하게 경험하지 못했고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정엔 이형식이 사랑을 통해 민족주의자로 눈을 뜨고 유학길에 오르지만 그들에게 환호하는 조선사람들은 아직 민족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들에게 민족이 강력하게 등장한 것은 3.1운동이다. 3.1운동으로 민족이 비로서 확실히 등장했고, 일진회나 여러 다른 잘못된 길로 들어선 모든 이가 하나의 민족으로 통합하는 계기가 된다.

 

5. 1920년대(김동인의 소설들)

[강한 조선인의 추구]

구한말을 거쳐 일제시대초기까지 조선인은 피해자였고, 약자였다. 하지만 민족주의자가 등장하고 민족개념이 등장하며 비로소 강한 조선인 상이 요구되었다. 이 시기는 이런 강한 조선인을 소설상에 어떻게 상정할지를 고민한 시기로 평가된다.

 1920년대인 김동인이 있었다. 주로 연애소설을 쓴 것으로 평가되지만 저자가 보기엔 김동인은 약한 한국인과 강한 한국인을 대비시켜 강한 한국인을 꾸준히 발견하고자 노력한 사람이었다. 김동인은 -다로 끝나는 현대 한국어 문어체를 확립했다. 기존엔 -더라, -라. 등의 표현이 많았는데 -다의 표현이 자리잡아 화자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주어가 확실히 주체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김동인은 또한 그 또는 그녀라는 3인칭 표현을 확립하여 화자의 사고 구조를 근대화하였다. 그리고 이광수가 만들어낸 내면을 서간체와 고백체, 일기체등의 도입으로 더욱 소설안에 확립하였다.

 김동인은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위를 남의 행위를 의식함으로 인해 하게되는 사람들을 그려낸다. 김동인은 인간을 나누는 기준으로 약함과 강함을 독창적으로 제시하였고 약함의 이유로 당시 등장한 모더니즘 도시사회의 남을 의식하는 허영에서 찾아냈다. 그는 1920년대 말부터 소설에서 꾸준히 강한자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만든 강한 조선인은 약한자에 비해 내면도 없고 말과 생각없이 그저 강하게만 행동하는 괴물같은 존재였다.

 

6. 1930-40년대

[강한 조선인의 등장]

 1930년대에서 40년대를 거치며 서울은 대도시로 성장한다. 인구는 40만에서 100만에 달했고, 대중문화가 발달하고 익명의 대중사회가 되었다. 1910년대에서 민족개화의 의무를 띄었던 지식인들은 이젠 넘쳐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민족개화는 커녕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실업에 시달렸다. 이런 모습은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와 이상의 날개에 잘 등장한다. 

 이 시기에 등장한 이광수의 유정은 한국에서 최초로 결말이 비극인 소설이다. 주인공인 최석은 지식인이자 부유하고 경성학교의 교장으로 지인의 딸을 키우게 된다. 문제는 주인공과 지인의 딸이 사랑에 빠진다는 점이다. 교장인 최석은 실제론 사랑을 자제했음에도 모함을 받고 모든 것을 잃게된다. 가족에게서도 제자들에게도 비난받는다. 만주와 시베리아 여행을 통해 그는 자살을 선택한다. 이런 사랑안에서의 갈등이 강한 조선인을 탄생시킨 비결이었다. 사랑해서는 안될 사랑을 상정해 갈등과 고뇌를 겪게 하고 이성과 욕망사이에서 두 힘의 갈등이 최대화해 강한 조선인이 탄생하는 식이었다.

 보다 제대로된 강한 민족주의자로서 강한 조선인은 임꺽정에서 등장한다. 임꺽정은 홍길동과 마찬가지로 필요에 따라 한국인의 필요에 따라 현재도 소환된다. 차이가 있다면 홍길동은 무해함과 비전복성으로 주로 생활문제의 해결을 맞는다면 임꺽정은 체제를 전복시키는 거친인물로 필요로 하게 된다는 점이다. 실제 임꺽정은 홍길동과는 다르게 거친 외모에 백정출신이고, 홍길동의 말도안되는 도술정도는 아니고 현실적인 힘을 갖는 편이다. 또한 왠지 현실적이지 않은 홍길동과는 다르게 소설에서 강하게 현실에 뿌리박고 있다. 임꺽정 자체는 다소 비현실적인 인물이지만 그의 가족과 그의 동료들이 처한 비참한 조선의 현실은 매우 현실적이기에 꺽정도 자연스레 현실성을 얻는다.

  임꺽정에 등장하는 또 다른 두개의 독특함은 반지성주의와 민중이다. 민중은 오래전에 등장한 말로 서구의 개념이 아니고 동북아 삼국의 지식인이 만들어낸 말이다. 그러나 특유의 아나키스트적인 뜻으로 말이 탄생한 중국과 일본에선 이미 오래전에 좌우파의 공격으로 사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한국에선 임꺽정이란 소설에서 살아남아 오랜 세월을 묶다 민주화의 시기에 폭발하여 자리잡게 된다. 반지성주의는 역설적으로 당대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것이었다. 지식을 통해 개화가 되고 무언가 이루어질줄 알았지만 상황은 무기력하게만 흘러갔다. 민중은 개화되지 않고 식민지 조선은 해방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일본은 더욱 강대해져만 갔다. 일부 지식인들은 친일로 돌아서기까지 한다. 그런 무력감에 반지성주의가 작품에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소설 임꺽정에서 꺽정은 글을 모른다. 심지어 언문조차 모르며 글을 배우려는 시도자체를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알것을 다 알고 일을 처리해내가며 두목이다. 힘이 가장 센자가 두목이 되는 것은 좀 이례적인 것으로 로빈훗이나 양산박에서도 두목은 무력순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정치력과 두뇌가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임꺽정에선 무력순이다. 반지성주의가 더욱 드러나는 점은 무리중 글을 유일하게 아는 서림이 잔학하고, 세속적이며 악한 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하여튼 강한 조선인은 해방을 앞두고 마침내 등장한다. 전통문화에서 개인이 부재하고 영웅만있던 시점에서 구한말의 시대적 혼란으로 주체성 없는 피해자 개인이 등장한다. 그들은 각자도생에 성공해 영악한 인물이 된다. 그리고 조선의 부정과 일본이라는 강한 권력의 부정이라는 이중 부정을 통해 민족주의가 탄생한다. 민족주의자는 지식인이었으며 3.1운동을 통해 민족도 탄생한다. 그리고 민족을 이끌 강한 조선인 상이 요구되며 약함과 강함의 대비과정에서 강한 조선인이 탄생하고 이는 임꺽정에서 완성된다. 하지만 강한 조선인의 등장과 그 강함이 해방으로 연결되지 못한 상황과 반지성주의는 해방후 시대적 혼란속에서 반지성주의적 상황에서 힘을 추구하는 문제상황으로 연결된다. 저자는 반지성주의가 지식과 지식인에 불신과 의혹, 증오와 질투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 큰 장애를 미쳤다고 생각한다, 나아가서 개화주의자들의 교육만능주의는 이와 결합해 현재의 최악의 교육지옥을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럴듯한 분석이다.

 책을 읽으며 근대의 역사적 상황과 소설을 통한 민족적 과제 해결을 위한 한국인 상의 변천을 느낄수 있었다. 재밌고 흥미로웠다. 다음권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다소 작위적인 면도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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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슈 2020-02-04 공감(27)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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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4명 중에 3명을 괴롭혔으나, 정작 나는 전혀 괴롭지 않았던 읽쓰연의 네 번째 책. 치즈 곱창을 먹으면서 모임의 H는 물었다, “언니, 대체 이거 왜 읽자고 한 거예요?” 소주로 입을 헹구면서 대답했지.

“(네가 저번에 읽자고 한) 민족주의 책 읽고.. 한국인과 한국의 민족주의가 궁금해져서 검색해봤는데, 이게 제일 괜찮을 거 같아서.” 라 말했는 데, 뭔가 분위기가 싸했다. 그러니까 ...... 두께도 두께지만, 너무 재미도, 의미도 없다는 책에 대한 반응들.

뭐라고????!!!!!!!!!즈엉말?????????? 😳😳
나는... 재/밌/었/는/데????????????????
🤯🤯개충격🤭

H는 말을 이었다. “정희진 샘이 책 고르는 기준이 있는데 백인, 중산층, 지식인, 남성이 쓴 책은 일단 거른대요. 이 책은 심지어 서/울/대 교수고 ‘노’학자예요. 어떻게 보면 주류중의 주류?! 그래서 언니가 이 책을 골랐다는 것부터가 좀 놀랐어요.”

정희진 머모님의 그 기준은 나도 알고 있었다. 실생활에서 적용해봐야겠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음음. 보자, 좋아하는 저자의 책을 고르고, 사고 싶은 책을 사고..... 읽던 것을 읽고.. 그러고 보면 스무살 이후 내가 익숙하게 읽어온 책들이라는 건. 대부분. 남성 / (고학력의) 지식인 / 전문가-중산층 ... 뚜뚜뚜...

집에 있는 책장을 살펴봤다. 최근에 사들이기 시작한 페미니즘 책들 말고는 다들 ..... 뚜..뚜..뚜... 정말, 내가 열심히(?) 사모은 저자들일수록 더욱더.. 뚜....뚜...뚜..

그 날, 책장을 살핀 후 머릿 속을 생각했다. 헹굴 수 있다면 좀 흐르는 물에 헹구고 싶었다. 그리고 내 몸을 생각했다. 내 몸이 겪어온 서른 몇 해 동안, 당연히 체득해온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자연스럽게 흡수해왔던 윤리들을. 그것들은 모조리 누구의 것이었을까? 누구의 입맛에 맞게 살아왔던 걸까.

그러니까, 정체성. ....
한국인의.. 아니 그 이전의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

책 이야기를 하자. 난 재밌었다.
‘한국인’이라고 하면서 ‘근대’를 그것도 ‘소설’을 톺아봤다는 방식 자체가 신선하다고 여겼다. 저자가 ‘오월의 사회과학’이라는 책을 집필했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국가는 없는 데 민족의식이 싹트던 시절 조선인들은 무엇을 욕망했을까.. 궁금해하며 소설이 반영하는 당대의 사람살이를 추측해본 독서경험이었다. 저자가 구한말의 시기를 ‘홉스적 자연상태’ 쯤으로 추상화해서 논지를 전개했던 부분도 흥미로웠고, 인용된 전/신/근대 소설들을 읽는 만으로도 것도 즐거움~

망국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근대,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들은 누구보다 ‘강한 조선인’을 열망했고, 문인과 지식인들은 그 모델을 발굴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으며, 이러저러한 과정을 통해 ‘망한’‘헬조선’인들은 해방 이후 ‘무엇과도 싸울 준비가 된’‘한국인’으로 거듭나 있었다는 결론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임꺽정과 반지성주의를 연결한 부분도 좋았다.

물론 ‘작품을 선정한 기준이 뭘까?’‘아,여성작가는 1도 없네’‘이광수 너무 미화하셨네, 일제강점기 최애 시인 윤동주도 분석해주세요!’정도의 불만은 있었지만, 아주 작은 불만이어서 걸끄럽지 않았다. 아마, 같이 읽는 모임이 아니었다면, 후편인 <한국인의 발견>을 마저 읽으려 했을 것이다.

*



하지만 난 친구들과 함께 읽어버렸고, 그들의 평을 듣고 책을 읽을 때보다 더 세게 머리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지금은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를 읽고 있다. <문학을~>의 부제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 문학사’이다.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신소설은 ‘여성적인 장르’이다(p.21)” 이 글은 신소설을 통해 근대초기에 여성을 둘러싼 담론의 변화를 추적한다.

반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아보자는 <한국인의 탄생>은 신소설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신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주체성, 자의식, 개성 등을 갖추지 못한 여성들이었다. 이처럼 피동적이고 내용이 전혀 없는 껍데기만 있는 ‘여성피해자’들이 바로 우리 역사에서 나타난 최초의 근대인의 모습이었다.(p.79)”

두권의 책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주제의식은 다르다. 한 문장만 따로 떼서 평면적으로 놓고 비교할 수도 없다. 신소설의 여성주인공들을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의 영역은 내 그릇을 벗어난다.

다만, 음.
내가 적는 이 글은 다른 무엇도 아니고 ‘내 정체성’에 관한 내용이니까.

*

‘정체성’이라는 것은 어떤 집단에 대한 동일시 일 것이다.
내가 동일시하고 소속감을 느끼고 있는 집단을 살펴본다. 1차적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의 경우 민족단위의) ‘국가’일 테고 그래서 난 이 책을 집어 들었을 것이다. 한국인.
인생의 대부분은 ‘학생’으로 지냈고, 지금은 자기 먹을 밥은 자기가 버는 노동자다. 전라도출신 서울시민, 장녀, N포세대. 이념의 스펙트럼으로 따지면 진보로. 민주당과 녹색당과 민중당 어디쯤에 있는 것 같은데, 어디에 서야할지 몰라서 정당활동은 안한다.
읽어온 책만 놓고 보면 586 아재들의 뇌를 장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내가 ‘동일시’하는 집단, 혹은 정체성에 ‘여성’이라는 카테고리가 추가된 것이 아주 최근래의 일이라는 사실이.

난 얼짱녀도, 된장녀도, 그렇다고 메갈/워마드도 아니었으므로. 그 흔한 OO녀라는 멸칭들이 붇는 ‘여성’들에는 동일시를 할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은 정말 여혐민국이었고, 그 안에서 살아온 나에게 ‘여성성’은 언제나 ‘연약함’으로 상징되는 극복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책 부제의 말마따나 강한 인간이 되고 싶었는데, 남자가 아니니까 그건 좀 불가능 했던 것 같고 씩씩하고 또 싹싹하다는 수식어 정도에 만족.

혐오, 혐오, 혐오.
내안 남겨진 가부장제의 시각을 직면할 때 마다 소름이 끼친다. 심지어는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믿은 책읽기나 공부조차 그것들을 내면화하는 과정이었다.

*

그날의 모임은 이렇게 끝났다.
이 책은 ‘한국(지식인 남성)인의 탄생’에서 괄호를 과감하게 삭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쓴 ‘한국인’에 대한 책쯤으로 여기자고. “한국인=기본값이 성인 남성!!?”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저자가 일반화해서 ‘한국인’이라 언급한 인물들에 나(나의 어머니/할머니/아버지)는 없었다. ‘그래도 2013년에 나온 책이었으므로, 감안해주면 안될까’ 소심하게 의견을 피력해 보았지만, 독서 모임 친구들은 ‘시대에 맞게 지식인이면 더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게요.......
최정운 선생님, 업데이트들 하셔야겠어요........
그리고..... 나는 책 고르는 수준을 좀 더 업데이트......

요즘 읽고 쓰면서 되게 많이 반성하는 데, 독서라는 행위가 가진 속성이 ‘반성’인건지, 나이가 많이 먹어서 그런 건지.. 김중혁 작가가 했던 말마따나 초딩때 쓰던, 언제나 반성으로 끝나는 일기의 습성이 남은 건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남겨두려고 쓴다. 업데이트, 동기화.







(50)
‘사랑’이라는 말이나 관념을 가지고 있는 민족은 흔하지 않다. 서구의 ‘사랑’과 꼭 같지는 않지만, 우리의 전통문화에도 ‘사랑’이라는 말과 개념이 있다. 흥미롭게도 우리를 제외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비슷한 말은 있지만 남자와 여자 간의 성관계를 포함하는 특별한 관계와 감정으로서 정확히 대응되는 개념은 거의 없다. 한자의 ‘애愛’도 고전의 용례에서는 ‘아끼는 마음’, 예를 들어 백성을 ‘아끼는 마음’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었다. 일본에서 근대 이전에 많이 등장하는 ‘이로色’라는 말은 게이샤나 유녀들과의 관계를 이르는 말로 우리 문화나 서구 문화에서의 사랑, love와는 아주 다른 뜻이었다. .... 그러나 몇가지 중요한 특징중 상대방에 대한 욕망, 각별한 감성, 상대에 대한 배타적 정의와 의리, 그리고 특정한 ‘사랑’의 관계에 대한 결의 등은 공통적이다.

(73)
신소설은 서양식 소설을 흉내 내기 위해 시작된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일차적으로 당시에 우리 조선 말고는 어디에도 없는 희한한 이야깃거리가 나타났기 때문에 시작된 예술 장르였는 지 모른다.

(132)
근대 사회 또는 근대성이란 다양한 얼굴을 갖지만, 한반도에서는 중세가 망가지고 흩어진 파편들로서의 개인들이 근대로 나타났다. 그곳은 지옥같은 ‘정글’이었으며 거기에서 처음 발견된 근대의 생명체는 속 빈 넝마 인형 같은, 인물성이 부정된 ‘피해자여성’들 뿐이었다. 그러나 몇년 후 그 지옥의 정글에서 자라난 생명체, 즉 한국인은 생명력 그 자체였다. 생존의 대가survivalist로서의 최초의한국 근대인, 특히 여성은 누가 창조한 인위적인 피조물이 아니라 그 지옥같은 자연에서 살아남고 진화한 최적fittest의 생명체였다. 그들은 말하자면 인물성이 부정된 껍데기 밖에 없던 피해자에서 그런 존재성이 다시 부정되어 진화한 강한 자의식과 개성을 갖춘 강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나타난 고독한 남성 투사는 가족생활에 무책임하며 능력 없고, 사회정치적 행위의 합리성은 전혀 갖추지 못한 채 이 모든 것에 자존심을 앞세우는 그런 인물이었다.

(255)
1910년대에 나타난 초기 민족주의자의 두 초상의 공통점은그들은 그들의 정체의 형식을 채울 내용(內容)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각자 민족을 위해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요건을 갖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조건의 부재(不在)의 아쉬움을 아프게 느끼고 있었다....무엇이 없음(不在)을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그것을 욕망하고 있다는 것 이다.우리의 초기 민족주의자들은 욕망의 화신이었다.

(426)
1933년 이광수의 『유정이 발표되자 강한 조선인을 만드는비결(秘訣)이 드디어 공표되었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랑으로 욕망과이성의 갈등이 시작되고 두 힘 사이에 상승 작용이 일어난다. 그리고 두 힘을 최대한으로 확대시켜 그 사람을 죽게 한다. 그러면 그 죽은 이의 영혼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주변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것이고, 그들은 끝까지 싸우는 불멸의 전사가 된다. 이것이 바로 그비결이었다..... 1930년대 중반이 되면 조선에서 사랑의 의미는 전적으로 변화하였다. 사랑은 행복을 위하여 이성과 행복한 교제를 하는, 그런 일이 아니었다. 사랑은 뜨겁게 그러나 끝없이 자제해야 하는 일이며, 이는 행복한 삶을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강한 인간, 강한 의지로 끝없이 참고 이루는 인간을 만드는 더욱 진지한 일이었다. 사랑은 고통스럽지만 보람 있고 생산적인 일이었다.

(486-7)
공통적으로 ‘민중’이라는 말은 ‘백성 민(民)’에 ‘무리 중(衆)’을 합하여 ‘국가에 속하는 수많은 군중들, 큰 무리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쓰였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지혜라기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밀어붙이는 힘, 엄청난 규모의 물리적 완력에 초점이 맞추어진 말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백만민중(百萬民衆)’이라는 쓰임새는 단적으로 많은 사람이라는 군중의 규모에 착안한 말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중’이란 ‘정치적 의미를 갖는 육체적 힘으로 구성된 수많은 군중들’ 정도의 뜻으로 만들어진 말이며 그렇게 쓰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20년대 전까지는 ‘민중’이라는 말은 서서히 정치적 혁명적 의미의 작은 조각들이 그 안에 모여들고 쌓여가는 과정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민중이라는 말은 혁명을 생각하던 사람들, 나아가서 혁명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511)
전통적인 영웅이 고결한 존재였다면 임꺽정이 대표하는 우리이 그대 영웅은 누구나 부러워하고 질투할 수 있는 ‘관능적 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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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8-12-20 공감(2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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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도가 국문학계에 보내는 도전장 새창으로 보기
 

    이광수의 <무정(1917)>의 주제는 사랑이었을까? 우리가 아는 <무정>은 두 여인 영채와 선영 사이에서 갈등하던 주인공 이형식이 여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조선인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민족지도자로 거듭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사랑'은 연애얘기처럼 보여 대중의 인기를 끌기 위한  외피에 불과하다. 최정운은 <무정>을 한 조선 젊은의의 출세욕과 신분상승 과정으로 읽어 내며 독자에게 예상치 못한 충격을 가한다.(4장)

 

 이러한 <무정>독해는 단지 하나의 예일 뿐이다. <한국인의 탄생>(이하 한/탄')은 근대의 주요 문학 작품들에 대한 통념과 싸우고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가는 작업으로 가득하다. 구한 말의 '홉스적 자연상태'에서 출발한 한국인의 정체성 형성은 지식인과 민중영웅, 두 개의 줄기로 따라간다. 하나는 <무정>(이광수) -> <약한자의 슬픔 >외(김동인)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박태원); <날개>(이상) -> <유정>(이광수) -> <상록수>(심훈)의 줄기이고, 다른 하나는 <꿈하늘>(신채호)-><붉은 산>, <배회>(김동인) -><임꺽정>(홍명희)의 줄기다.  두 줄기는 만나는 곳에 '강한' 조선인을 만들기 위한 사상가들의 고투가 있다. 조선시대 춘향의 사랑과 홍길동에 대한 민초의 기억은 두 줄기 강물을 바라봄에 대조와 연속의 빛을 비추어 주는 기능을 한다.

 

<한/탄>은  근대 한국'사상'사 연구의 결과이다. 한명의 독자로서 사상을 왜 '문학'작품에서 구하는지, 한국의 '사상'과 한국인의 '정체'(identity)은 무슨 관계인지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민족과 같은 집단적 차원의 사상사를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재구성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응어리져 쌓여있는 경험과 기억 그리고 연속과 불연속의 의식과 무의식을 탐구함으로써 현재의 깊은 부분에 접근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근대의 소설은 객관적 현실에 더하여 우리가 머리과 가슴에 품고있는 더 풍요로운 '사실'의 보고일 수 있다.'(1장)

 

다시 <무정>의 마지막 장면인 홍수로 기차가 멈춘 삼랑진에서 열린 간이 음악회로 돌아가 보자. 유학길에 오른 형식과 그의 동료들의 연주에 홍수로 모든 것을 잃은 조선인들은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 박수 갈채는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유학길에 오르는 이형식을 향한 것인가? 저자가 보기에 이 갈채는 음악에 대한 환호였다. 그리고 이를 민족지식인에 대한 환호로 둔갑킨 것은 유학비를 대줄 장로의 딸 선형을 선택한 출세욕 충만한 젊은이를 민족의 진정한 지도자로 변신시킨  춘원의 속임수였다.

    

여기서 '그럴듯함의 문제'가 발생한다. 정말 그럴 듯 해야 좋은 소설이 될 수 있는데, 저자의 지적대로 속임수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럴듯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좋은 소설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럼에도) 훌륭한 작품(명작)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방법이 문학비평의 방법과는 다르다고 하면서도 <한/탄> 곳곳에서 분석 대상이 된 작품들에 대한 비평적 평가를 서슴없이 내비친다. 또한 기존 국문학계의 평가에 대해서도 '후안무치'등의 용어를 써가면 작품의 평가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한다. 이는 <유정>을 해석하는 7장에서 도드라진다. 여기서도 역시 저자는 <유정>의 심층텍스트로서 조선민족의 희생양(scapegot)으로서의 민족지식인 최석을 읽어내면서 독자의에게 큰 충격을 선사한다. 그러나 여전히 유정이 저자가 말한 것만큼 훌륭한 작품인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여기서,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은 마음의 응어리를 뛰어나게 보여줄 거란 생각은 들지만, 사상사 텍스트로서 마음의 응어리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언제나 예술적으로도 뛰어난 것인가하는 질문을 하게된다. 저자가 1장 말미에 자신의 방법론에 대해 한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접근 방법은 하나의 사회과한 방법론으로 제시될 만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중략)... , 어쩌면 결국 우리의 뛰어난 일류문학가와 예술가의 눈과 지적 능력에 의지하겠다고 둘러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모든 문제점이 그들의 탓이라고 전가할 수는 없을까? 필자로서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지극 정성으로 저술에 임할 것을 다짐하고 독자들을 지겹게나 하지 말기나 바랄 뿐이다."

 

책읽는 재미를 만끽했으므로 지겹게 하지나 않을까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좋을 듯 하다. 다만 일류 문학이라 생각한 작품이 일류가 아닐때 나타나는 책임 소재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과연 유정은 뛰어난 작품인가, 이광수는 위대한 작가인가? 이 문제는 문학비평계가 사회과학자인 저자의 진지한 도전을 받아들여 보다 섬세한 독해로 보다 높은 수준의 지적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을 때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유정>이 읽고 싶어지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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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uxer815 2013-10-25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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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가 아니라 민족의 경험에 대한 깊은 사유를! 새창으로 보기
피치 2014-05-22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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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찾기, '소외'에서 벗어나기 새창으로 보기 구매
 

단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지금 이 자리에 왔고, 지금 우리의 이 자리는 어떤 자리이며, 우리는 누구냐는 문제는 절실한 문제이며 사회과학이라든가 하는 전문 분과 학문에서의 학문 방법론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더구나 외국의 이론을 도입해서 그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이른바 ‘소외’의 절정임에 틀림없다. (p.9)

 

우리의 근현대 사상사는 전통과 근대의 수많은 사상과 문화가 얽혀 온 역사이기에 더욱 어려운 분야이다. 그렇기에 현대 한국인의 모습은 다면적이고 복잡하다. 사상사의 생명은 해석이며, 이는 결코 쉬운 무공(武功)이 아니다. (중략)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하고 또 알겠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의 어느 분야도 인정될 수 없다. 우리 사회에 대해 최소한의 식견과 철학을 갖추지 못한 국민들은 대중 선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그 정치적 사회적 판단은 어린아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정체성에 대해 관심이 옅은 사회는 안정될 수 없고 발전할 수 없다. (pp.18-19 중 발췌)

 

책머리와 서장의 역할을 하는 1장에서 순식간에 마음을 휘어잡고, 독자에게 부끄러움과 동시에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발동시킨다면 이는 실로 대단한 능력이다. 최정운 교수의 수업은 솔직히 처음부터 수강생들의 관심을 휘어잡는 수업은 아니었으나, 그가 자신의 수업에서 다루었던 지난 15년간의 연구 내용을 토대로 집필한 ‘현대 한국인의 탄생’ 1부에 해당하는 이 책은 수업보다 더 강렬하게 필자의 마음으로 들어온 것 같다. 3년 전에 필자가 근·현대 한국인의 탄생 과정에 남다른 흥미를 가지고 쏟아지는 참고문헌 목록을(수업시간에 언급되는 모든 문학 작품과 더불어 이안 와트의 『근대 개인주의 신화』 와 같이 수업의 핵심적인 바탕을 마련해 주는 책들이 포함되어 매우 방대하였다)끙끙거리면서 읽기에는 너무 어렸는지도 모른다. 분명히 노교수는 첫 수업 시간에도 정체성을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책에 나온 말과 비슷한 말을 했지만 그 때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강의가 강의로만 남지 않고 잘 정리된 책으로 다시 나온다는 것은 이렇게 ‘다시 한 번 버스를 탈 기회가 생긴’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분명 큰 행운일 것이다.

 

‘한국인은 이러이러하다’는 식의 담론은 우리 사회에 차고도 넘친다. ‘왜 한국인은 ○○○○한가?’라는 질문 몇 개 가지고도 책 한권을 금방 만들어내고, 어떤 자리에 가서도 뜨거운 논쟁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책이나 열띤 논의의 자리는 대부분 몇 가지 정해진 틀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 ‘민족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한국 민족을 추켜세우거나 비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한국의 기구한 역사를 지정학적 위치 탓으로 돌리며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한국 민족으로 모자라는 사람들은 ‘동양인’의 특성을 내세우기도 하고 모든 것이 다 유교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낯설지 않게 들어본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몇 가지의 큰 줄기로 한국인의 자화상을 그려내기는 ‘물감의 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남기 마련이다. 『한국인의 탄생』은 이런 미련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가 답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물론 저자도 모든 물감을 다 갖추어놓고 붓질만을 기다리는 팔레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새로운 시도 속에서 정체성을 규명하는 몇 가지의 확실한 조각이라도 찾고자 하는 시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책의 서두에서 제시된 ‘반지성주의’와 ‘교육만능주의’의 망조가 바로 그것인데 이는 사실상 근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민족주의의 두 가지 조류 즉, ‘저항민족주의’와 ‘개화민족주의’의 영향,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병폐‘라고 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분명히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다루어지는 주제이지만 필자는 친일파라는 낙인을 찍어대는 것에 대해 타당한 거부감을 표출할 만큼 ’민족주의자‘의 시각으로 논의를 풀어가지는 않는다. 다만 ’한국 민족‘ 혹은 한국인이 형성되는 과정을 좀 더 제대로 추적하려면 민족주의 담론을 절대로 비켜갈 수 없음을 알고 그의 기묘한 방법론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기묘한 방법론’이라고는 하지만 아주 이상할 것도 없다. 문학작품을 토대로 당시의 시대상을 파악하겠다는 것인데, 저자가 ‘사상사의 사료’로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상이 문학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저자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글이 기존의 사고와 사상을 더 정교하게 드러낼지 모르지만, 새로운 인간형, 새로운 사상의 구체적 실체로의 구상과 창조는 예술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르네상스는 예술가들이 이룩한 역사였다. 우리 근대사의 경우와 같이 상이하고 이질적인 문화와 문명이 뒤얽혀 있던 세상, 논리적으로 따지는 능력만으로는 현실의 갈피를 찾기 어려웠던 시대 상황에서는 예술적 직관력만이 앞길을 비추는 등불이었을지도 모른다(p.26).

 

이러한 주장의 설득력은 본문을 읽다 보면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데, 필자의 판단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저자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문학 작품들의 사회과학적 해석의 과정이 기존의 문학 해석과 동떨어지거나 낯선 부분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매우 억지스럽다거나 ‘끼워 맞추는 듯한’ 느낌보다는 간과하였던 부분을 날카롭게 찔러주는 통찰력에 한 표를 주고 싶다. 『이야기의 기원』에서 이론적인 배경에 비해 이를 실제 문학 혹은 예술 작품(물론 ‘이야기’를 담고 있는)에 적용하는 과정이 부실했던 것과는 상반되게 저자의 ‘방법론’은 홍길동전이나 춘향전을 분석할 때나, 이광수나 홍명희의 작품을 분석할 때다 비슷한 정도의 설득력을 가진다. 이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의 합의, 비판, 보완 및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한계로 남을 것이지만 일단 귀 기울여 볼 만한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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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923 2014-05-28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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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한국인의 정체에 접근하는 문제



"근대 소설문학이 표방하는 사실주의(realism)란─사회과학에서의 '현실주의(realism)'와는 달리─주어진 현실을 재삼 반복하고 운명으로 확언하는 과다 반복의 보수주의의 신파조 담론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사실주의는 아직은 없는 것, 없는 인물을 있을 수 있는 존재로 상상하여 흡사 이미 있는 존재로 포장하여 제시할 수 있는 언어 체계이며, 더 나아가 그 새로운 존재가 과연 현실 속에서 서식이 가능한지 실험하고 모색함으로써 주어진 현실의 대안을 시도할 수 있는 언어 체계이다." "근대 문학의 규범으로서의 사실주의는 결코 유토피아주의의 반대항이 아니다. 오히려 사실주의적 근대문학은 '영구 혁명'의 의미를 갖는다. 사실주의는 현실을 부정하는 이상의 광기를 길들이는 담론이다. 근대 소설문학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인물뿐만 아니라 존재하기를 고대하는 인물, 나아가서 존재할 수도 있는 인물 등 다양한 종류의 인물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22-3)



2장 홍길동과 성춘향



"홍길동이 큰 규모의 재물을 약탈하며 '활빈당 행수 홍길동'이라는 글을 크게 남긴 것이나 백성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준 것은 모두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홍길동이 백성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준 목적에 대해, 빈궁하고 불쌍한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거나 도와주기 위해서라는 교과서적인 답을 내놓는 것은 작가의 의도와 맞지 않는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세종 시대라는) 조선의 전성기였다.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불만을 표출한다든가 정치 사회적 질서가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은 나타나지 않는다. 홍길동은 작가 허균이 이전에 제시했던 '호민(豪民)'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이른바 주로 정론에서 논하는 이 작품의 사회적 문제의식은 일제 치하의 지식인들이 그들이 처한 상황으로 미루어 발명한 것이지 원작의 의미는 아니었다. 『홍길동전』은 전근대적 영웅 소설로서 쓴 작품이었다."(40)



"단적으로 『홍길동전』은 동명왕 전설을 조선 후기라는 공간에서 반복시킨 신화(神話)였다. 홍길동은 무엇보다 하늘이 정해준 운명을 타고난 영웅이었고, 어렵사리 집을 나서자 밝은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가 허균은 잘 알려진 대로 당시에 서양갑 등 서자 출신의 친구들과 가깝게 지냈고 그들의 불만과 울분에 익숙한 처지였다고 전한다. 잘난 사람이 조선에서 서자로 태어났다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역성혁명으로 스스로 왕이 되려는 반역의 길이 아니라면─옛날 동명왕처럼 새 나라를 만들어 왕조를 새로 여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는 누구나 수긍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해결책이었고, 이에 그 길을 상상해서 만든 초현실적인 스토리, 그것이 바로 『홍길동전』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홍길동은 '덕(德)'과 '인(仁)'의 미덕도 갖춘 마음이 넉넉한 진정한 영웅이 되었다."(42-4)



"홍길동이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처지라는 그의 '주제가'로 유명하듯이 춘향 또한 특이한 사회적 신분이 그녀의 정체성의 출발점이다. 춘향의 어미는 퇴기 '월매'이고 아버지는 양반인 '성 대감'이다. '기생의 딸'이라 불리고 기생으로 취급받기도 했지만, 춘향은 동시에 '양반집 규수'였다. 본인과 그 어미는 양반의 생활 양식을 고수하며 살았고 춘향은 기생 일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춘향이 어려서부터 서책을 가까이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계급적 조건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춘향의 신분 조건은 애매하고 논쟁적인 문제였다. 춘향의 미모는 이러한 사회적 신분의 애매함으로 인해서 더욱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신분의 애매함은 춘향과 그 어미가 그녀의 미모를 활용하여 극복해야만 하는 열등감이자 약점이며 평생의 숙제였다. 그녀의 이런 신분 조건이 없었다면 그녀의 아름다움은 이야깃거리가 될 필요도 없었고 희대의 사랑도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51)



"성춘향이라는 소녀는 천하일색의 미인에다 이몽룡 한 사람에게 정열적인 사랑에 빠져 정절을 목숨으로 지키고, 자신의 신념을 어떤 상황에서도 뚜렷하고 강하게 표현하는 당찬 근대적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전통문화의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까지 갖추고, 자아를 확신하는 여인이었다. 춘향이란 인물의 등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춘향이 원용하고 있는 사상적 기반인 성리학이었다. 성리학은 한편으로는 사회의 신분 제도와 각종 계서제를 정당화하여 봉건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도덕성과 존엄성의 문제를 나라와 학문의 궁극적 목적으로 제시하여 오히려 근대화의 가능성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춘향의 출현은 조선이라는 중세 국가의 심각한 동요를 보여주긴 하지만) 성춘향 역시 끝까지 근대적이지는 못했다. 결국 그녀도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정경부인이 되어 신분 상승을 완성하고, 전통의 품안으로 회귀하고야 말았다."(61-2)



3장 신소설의 인물들과 그들의 세상



"우리의 공식적인 국문학사에서도 신소설은 묘한 역사적 단계로 이해되고 있다. 전근대 소설과 구분되고 근대 소설과도 구분되는데, 보통은 문학적 수준이 결여된 수준 낮은 작품들로 이해된다. 사건의 진행이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우연한 사건들이 수시로 끼어들며, 스토리는 복잡하고 정신없이 전개되고, 또 인물들의 이야기를 표현함에 있어 '우여곡절', '기구한 운명'이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얼핏 개연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여성 인물들이 빈번하게 자살을 시도하는 등 과도한 흥미 위주의 전개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유로 신소설들은 역사 발전에서 비정상적인 단계로 취급되어왔다." "(을사조약 체결 1년 후인) 1906년에 신소설이 나타난 것은 뜬금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들을 유심히 읽어보면 그간 전혀 알지 못했던 대한제국의 현실이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71-2)



"이인직과 이해조의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당시의 현실, 즉 사회는 붕괴되고 개인으로 흩어져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신소설이라는 새로운 이야기의 형태가 우리 역사에서 나타난 원인이었다. 루카치에 따르면 근대 소설은 "세계가 신에게 버림받았다"는 관념에서 출발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신소설도 죄악으로 가득 찬 사회, 망한 나라, 타락한 세상이라는 판단에서 출발하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무후무한 '신소설'이라는 문학의 장르가 나타난 것이었다. 근대 소설로서 신소설의 또 하나의 특징은 대부분의 경우 결코 행복하지 못하고 극도로 고단하고 참담한 인생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드로 끝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신소설이 전대미문의 참담한 이야기들을 엽기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이었기 '해피엔드'는 더더욱 절실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이 더 독한 한(恨)을 풀어내야 했다."(102)



"홉스적 자연상태에서는 사회의 일관된 문화가 붕괴된 상태이며 따라서 개인들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규정하는 문화의 핵심적 구조가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의 선택은 한반도를 떠나는 것 특히 유학이었고, 그다음은 자신의 개화된 의지를 증명하는 자살이었다. 이런 선택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서 약자들이야말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약자들은 피해자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했다. 거의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든 그런 대로 살아 보겠다고 애쓰는 사람들이든 그들은 작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행에 서슴지 않고 가담해야 했다. 영악해야 했고 교활해야 했다.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도 하고 상대를 기만해야 했다." "근대 사회 또는 근대성이란 다양한 얼굴을 갖지만, 한반도에서는 중세가 망가지고 흩어진 파편들로서의 개인들이 근대로 나타났다. 거기에서 처음 발견된 근대의 생명체는 속 빈 넝마 인형 같은, 인물성이 부정된 '피해자 여성'들뿐이었다."(131-3)



"이렇게 사회가 붕괴되고 모든 윤리가 파괴된 시대에 이르자 기존의 사회문화와 전통문화 전체가 부정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 시대에 오면 그간 구한말을 통해 지배력을 유지했던 '위정척사(衛正斥邪)'나 '수구(守舊)'는 급격히 힘을 잃고 '개화'가 지배적인 흐름으로 부상한다. 이 흐름은 갑오경장부터 뚜렷했다. 신소설 작품들의 경우는 노골적으로 친(親)개화 입장이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기존의 문화는 비참한 현실의 주범이었다. 이런 경향은 중국에서도 사회가 붕괴된 현상을 증언하던 루쉰의 『광인일기』에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이 '예교(禮敎)' 때문에 나타났다고 하며 중국의 유교 전통을 통째로 부정한다. 구한말의 마지막 시기에는 서구 문물, 지식과 사상들이 뚜렷한 의미와 용도도 묻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수입되었다. 20세기 초에는 서구의 '신학문'은 위기에서 구원을 위한 카리스마적 존재로 나타났다."(134-5)



"이미 1880년대부터 조선에서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이룩하여 천황이 권력을 잡은 후 국가가 일변하여 나날이 발전하고 백성들의 삶도 개선되어 태평성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143) "이 시점에서 조선과 일본과 만주가 한 나라로 합쳐야 한다는 생각은 결코 민족주의적 사상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었다. 충분한 힘을 전제로 유럽의 민족 국가 체제를 생각하던 19세기 후반 마치니 식 유럽의 자유주의적 민족주의 사상을 연상시킨다. 모든 민족은 대소를 막론하고 국가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1917년에 발표한 '14개 조항' 이후의 사상이었다." "이인직의 소설에서 개화주의뿐만 아니라 친일 사상은 노골적이었다. 그의 소설에서 수구, 전통문화를 고집하는 인물들은 예외 없이 완고하고, 무지하고, 폭력적인 '악당'들이었다. 이인직은 여러 곳에서 조선의 개화를 강하게 희구했지만, 여러 요인으로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입장이었다."(146-7)



"1908년 직전에는 '민족'이라는 말이 쓰였어야 할 자리에 '인종', '종족'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었다." "동포는 '우리끼리', 주체의 하나임을 표현한 말인데 반해 '민족'은 우리를 밖에서 보고 지칭하는 객관적인 보통 명사였다. 물론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한민족', '조선민족' 등 보통 명사 앞에 고유 명사를 붙인 말이었다. 결국은 '민족'이라는 말을 선호하고 선택하게 된 것은 '민(民)'이라는 말로 정치적 의미를 부가한 종족의 뜻을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이때 정치적 종족으로 말했다는 것은 당시 우리의 정체성을 어떤 국가에 대한 소속 의식을 떠나 규정했다는 의미이고, 이는 기존의 국가 즉 대한제국의 존재를 정체성에서 지워버렸음을 뜻한다. 즉 민족은 특정한 국가와는 직접 관계를 부정하며 일반적인 국가, 말하자면 앞으로 만들 국가와의 관계를 긍정할 뿐이다. 우리의 정체성이 적어도 언어 차원에서 현재와 같이 이렇게 표현되기 시작한 것은 1908년 초였다."(157)



"신소설들이 쓰이던 시대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최저점이었다. 이 시절 우리의 모습은 너무나 부끄러워 꽁꽁 가려야만 했다. 여러 의미에서 이 시대는 현대 대한민국의 연원이었고 금단의 성지(聖地)였다." "우리는, 현대 한국인은 이 '지옥 같은' 시대의 자연상태의 불구덩이에서 태어났다." "자연상태의 고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오래된 정체를 부정했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선택했던 인공의 정체를 다시 부정해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오래된 '조선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결코 같은 '조선인'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긴 이중 부정의 여정을 거쳐 돌아온 모습은 '민족'으로, 또한 '한민족'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새로운 모습이었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집단으로서 이 자연상태의 불구덩이에서 단련되어 태어났다. 그러나 이 정체는 틀에 불과했다. 그 내용은 이제부터 채워나가야 했고 민족의 본질을 얻기 위한 기갈(飢渴)이 시작되었다."(172-3)



4장 초기 민족주의자의 두 초상



"『무정』의 주인공 '이형식'과 『꿈하늘』의 주인공 '한놈'은 각각 작가 이광수와 신채호의 분신이라고 일반적으로 평가된다. 말하자면 '이형식'과 '한놈' 두 인물은 각기 두 진영(개화민족주의와 저항민족주의)의 민족주의자들에게 애정 어린 그리고 자신들과 진배없는 인물이자 인격적으로 하자 없이 말끔한 인물이다. 그리고 두 인물 공히 경험적으로 관찰된 한국인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이상주의적으로 '이런 인물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해서 창조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인물의 최대의 공통점은 모두 외롭고 고독한 개인이라는 것이다."(179) "그런가 하면 두 인물의 조건은 대칭적이었다. 『꿈하늘』의 한놈은 아무런 뚜렷한 능력도 기술도, 남과 다른 어떤 조건도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 "반면 『무정』의 이형식은 처음부터 경성학교 영어 선생으로 더운 유월 오후의 땡볕에 여학생을 가르치러 초빙되어 김 장로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181-2)



"이형식의 '내면'이라는 공간 장치는 이형식으로 하여금 특정한 여성에 대한 욕망과 사랑이 서서히 깊어지고 넓혀져 결국은 익명의 대중, 특히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변화하도록 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었다. 이것이 근대 서구 문학 기법인 '내면'을 도입한 의미이자 용도였다. 욕망과 사랑은 인간의 생명력과 이성(理性)을 활성화시키며 특정한 관계에 있지 않은 이성(異性)에 대한 욕망과 사랑일 경우에도 못지않은 결과가 나타나며 이것이 바로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전환되는 주요 메커니즘이다. 에로스와 아가페는 다른 종류의 사랑이며 에로스에서 아가페로의 전환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지만 춘원은 이것을 『무정』에서 이형식이라는 근대인의 내면에서 추동되는 정교한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해내었다." "이형식의 민족주의는 이론에서 가슴으로, 사람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서, 삶으로서의 민족주의로 접어든 것이다."(203-5)



"민족을 위해 필요한 지식은 그냥 '앎'으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해외에서, 미국에서 배워 와야 하는 특정한 형식을 갖춘 지식이었다." "당시 조선의 전통적 사회 질서는 완전히 붕괴되고, 기존의 지배 계급이 초토화된 상태에서 이광수를 위시한 개화민족주의자들은 어떻게 조선 사회에 굳건하게 자리를 잡을 것인가가 핵심의 문제의식이었다. 공석이 된 지배 계급의 자리를 개화민족주의자들이 차지하는 일은 바로 현안이었고 어떤 명분과 어떤 전략으로 지위를 인정받을 것인가가 문제였다. 물론 신지식인들이 지배 계급의 위치를 요구함에 있어서 전과 같은 명분을 내세울 수는 없었다. 그들이 내세울 명분은 그들은 우리 민족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해외에서 들여와 가르쳐 줄 사람들이라는 주장이었다. 서양에서 배워올 지식의 타당성과 위대함은 바로 그 지식을 만들고 활용하는 서구 제국들의 부강함이 증명하고 있다."(249-50)



"거의 동시대에 쓰인 단재의 『꿈하늘』은 전체적으로 대단히 대조적인 작품이다. 근대 소설이라기보다는 구소설의 형태로 쓰였지만 이는 고도로 의도적인 것이었다. 당시의 개화된 세상의 조선인들의 이성적 판단을 부정하고 전통적인 의로운 조선인 투사를 만들어내기 위해 꿈의 세계로 가서 신의 명령에 따라 전쟁에 임하는 전사를 창조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시대착오적인 작품이었다. 구한말에 등장한 저항민족주의가 개화에 근거한 근대적 사상이었다면 이 시대 조선인들을 민족이라기보다는 우선 전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제 시대에는 '개화'에서 '위정척사'의 사상으로 회귀하던 것처럼 보인다." "결국 한놈이라는 민족주의 전사는 어떤 역사적 현실에 위치해 있지도 않으며 현실 사회 속의 어떤 자리에도 뿌리내리고 있지도 못하다." "한놈이라는 인물은 단재가 '백지(白紙)'로서 제작한 민족주의자가 갓 태어난 모습이었다."(254-5)



"1910년대에 나타난 초기 민족주의자의 두 초상의 공통점은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의 형식을 채울 내용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각자 민족을 위해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요건을 갖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조건의 부재의 아쉬움을 아프게 느끼고 있었다. 이형식은 미국 유학을 통해서만 얻어올 수 있는 지식─'지식'이라는 이름의 부적(符籍) 또는 물신(物神)─이 없고, 이것을 가지러 미국 유학을 갈 기회를 갈구하고 있다. 또한 한놈은 신의 명령에 복종하고 신의 꼭두각시가 됨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구원의 없음, 외로움을 괴로워하고 있다. 무엇이 없음(不在)을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그것을 욕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초기 민족주의자들은 밖으로부터 얻어와야 하는 것들을 갖지 못해 뼈저리게, 고통스럽게 목말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식과 구원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 그들은 욕망하는 존재였지만 그 욕망하는 것, 아직 없는 그것이 무엇일지는 알지 못했다."(255-7)



5장 만세 후에 찾은 인물들



"3·1운동의 심층에서 우리 민족 대다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우리 '민족'임을 '만세'로 고백하고, 피눈물로 회개하고, '한 민족'됨을 뼛속 깊이 느꼈다. 그들은 민족이라는 거대한 본류에 합류하였고 다시 태어났다. 그날이 1919년 3월 1일이었다. 3·1운동을 통해 '우리 민족은 하나다'라는 대명제가 요지부동으로 확립되었다."(262-3) "3·1운동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민족'이라는 실체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우리 눈앞에 한때 강림했다는 사실에 있었다. 반면 뒤이은 1920년대는 이제 그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상실감의 시대였다. '3·1운동은 실패했다'는 평가는 이러한 허탈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민족주의는 이제 진짜 '운동'을 현실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단계가 되었다. 1920년대 국문학, 근대 단편 소설문학의 과제는 우선 우리 민족이 다다라야 할 기준을 제시하는 것, 그리고 민족의 현재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바람직한 상을 그려내는 것이었다."(265-6)



"김동인은 인간을 나누는 포괄적인 기준으로 인간의 '약함'과 '강함'을 독창적으로 제시했다. 도덕과 윤리의 문제를 포함해서 인간의 모든 문제는 약함에서 비롯되며 약함에서 벗어나 강해지게 되면 자연스레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이러한 발상은 단연 니체적 시각이었다. 나아가서 김동인이 '약한 인간', '타락한 인간', '망가진 인간'을 이해하고 이러한 비극의 핵심 원인으로서 '허영(虛榮)' 즉 남의 눈, 시선에 집착하는 문제를 제기한 것은 물론 서양 문학에서 도입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문학사에서 이러한 문제 제기는 김동인만의 독창적인 것이었다." "말하자면 김동인이 제기한 개인의 강함, 약함의 문제의식은 당시에 유행하던 (민족) '개조'의 문제의식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라 독창적인 근대의 문제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또한 이 주제는 자신이 완성시킨 내면을 드러내는 고백체로 다루기에 최적의 문제였다."(312-3)



"김동인은 자신이 그간 몸담아왔던 개화주의적 입장에 대해 과감하게 회의를 던지고 다음 단계로 스스로 도약한 작가였다." "그의 작품에서 내면(內面)을 장착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약한 자들이다. 약한 자들이 왜 약한 자가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데 안성맞춤의 장치가 바로 내면이었다. 1920년대 말부터 김동인은 강한 인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원하던 강한 자는 대부분 내면이 없는 존재,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는 '블랙홀 같은', '괴수 같은' 존재였다. 가끔 이런 강한 인물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길들일 수 없는 존재였고 따라서 우리의 일부가 될 수 없는 존재, 우리가 흉내낼 수 없는 존재였다. 이제 문제는 내면이 있는, 내면이 장착된 지식인으로서 강한 인간을 만날 수는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심각한 문제는 당시에 우리 지식인들 앞에 던져진 과제였다."(318-9)



6장 대도시 지식인의 출현



"1930년대에는 민족의 존재 양태의 관념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20세기 초반에 한국인이 신소설에 최초로 나타났을 때, 우리가 그런 처참한 상태로 내버려지게 된 배경에는 바로 공동체의 분해, 공동체의 상실이 있었다. 이때부터 우리 민족은 '공동체 상실'에 시달리며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개인으로 생존에 매달려왔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이르면 조선의 지식인들을 품고 있는 공간은 전혀 새로운 공간이었다. 그곳은 대도시 문명의 익명의 '대중사회'였다. 대부분 공통적으로 생계를 위해 모여들어 이해의 기반 위에서 서로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사는 이익 사회(Gesellschaft)였다. 어느 틈엔가 조선 지식인들은 전과는 전혀 다른 생태(生態)를 갖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1930년대는 "땐쓰", "스포츠" 열풍이 몰아닥쳤고 육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다. 따라서 지식인들은 패리어(pariah), 즉 일종의 폐쇄적 소수 종족으로 전락해가는 상황이기도 했다."(328)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나오는 구보를 포함한 (룸펜형) 지식인들이야말로 물질주의적인 대도시에서 소외(疎外)의 화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외를 느끼겠지만 소외를 하소연하는 것은 바로 이 지식인, 대도시 문명에 한 발만 딛고 있는 지식인들의 의무이다. 그들은 한 발은 대도시 안에 딛고 나머지 한 발은 그 밖에 딛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대도시 문명─그리고 자신을 소외시키는 대도시 문명─이라는 서식처를 비판적으로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바라본다. 그들은 자신들이 묘한, 이중적 존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월급쟁이'와 '노는 계집'들 사이에서 이들과 구별하며 동시에 동감하며 위치를 찾는다. 구보를 포함한 대도시 지식인들은 특이한 생태에서 태어난 새로운 종자였다. 대도시에서 태어난 존재들이지만, 그 자신의 서식처를 결코 떠나지 못하면서도 동시에 매일매일 경멸하는 종자였다."(348)



"1930년대의 모더니스트 소설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지식인이 다시 태어나던 신화였다. 근대 지식인의 환경은 단연 모든 문화가 집결하는 대도시일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의 서울은 결코 식민지의 삶에 안주한 평온한 공간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지식인들은 춘원이 생각했던 민족의 선생이라는 지위를 포기하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소설가로, 지식의 생산자로 다시 태어났다. 모든 경제적 보상을 포기하는 이 선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괴로운 것이었다. 예술가의 삶이란 힘들고 괴로운 것이었다. 이상의 『날개』는 한때 좌절했던 지식인이 다시 생명력과 열정을 회복하는 신화적 생체 실험이었다. 1930년대는 정치적으로는 평온한 듯 보이는 시기였지만 조선의 지식인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 자신들의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제는 지식의 중개상이 아니라 창조자로서의 싸움이었고 이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369-70)



7장 새로운 전사의 창조



"심훈의 『상록수』에서 동혁을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민족과 농민에 대한 의무감으로 자제하며 뜨겁게 일하다 과로로 숨진 채영신은 결국 부활하여 우리 모두의 몸속에 돌고 있으며, 그 누구보다도 박동혁의 몸속에, 골수에 섞여서 영원한 생명의 힘을 주게 되었다." "1933년 이광수의 『유정』이 발표되자 강한 조선인을 만드는 비결(秘訣)이 드디어 공표되었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랑으로 욕망과 이성의 갈등이 시작되고 두 힘 사이에 상승 작용이 일어난다. 그리고 두 힘을 최대한으로 확대시켜 그 사람을 죽게 한다. 그러면 그 죽은 이의 영혼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주변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 것이고, 그들은 끝까지 싸우는 불멸의 전사가 된다. 이것이 바로 그 비결이었다. 이는 결코 복잡한 과정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심훈은 최초로 이를 간파한 천재였고 『상록수』에서 멋지게 활용하여 불멸의 전사들을 민족 운동의 전선에 바로 배치하였다."(425-6)



"1930년대 중반이 되면 조선에서 사랑의 의미는 전적으로 변화하였다. 사랑은 행복을 위하여 이성과 행복한 교제를 하는, 그런 일이 아니었다. 사랑은 뜨겁게 그러나 끝없이 자제해야 하는 일이며, 이는 행복한 삶을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강한 인간, 강한 의지로 끝없이 참고 이루는 인간을 만드는 더욱 진지한 일이었다. 사랑은 고통스럽지만 보람 있고 생산적인 일이었다."(426-7) "춘원은 개인적으로 그가 스승으로, 아버지처럼 모시던 도산 안창호가 일제에 체포되자 칩거하여 창작에 몰두하였고, 그 성과가 바로 『유정』이었다. 물론 이는 예술 작품이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강한 조선인을 독서에서, 교육에서 찍어낼 수 있는 공정(工程) 또는 '틀'의 발명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일제 후기 식민지 조선에서 생겨난 새로운 흐름, 사랑의 새로운 관념은 춘원의 업적이자 우리 근대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429-30)



8장 민중 영웅의 창조



"벽초 홍명희가 창조해낸 임꺽정은 백정이라는 천한 자리에 잘못 태어난 영웅이라기보다는 하늘이 조선 사회의 제일 밑바닥 자리를 임꺽정에게 점지해 준 것이었다. 원래 그는 백정 계급의 대표로서 백정을 포함한 천한 계급들을 규합해서 계급 투쟁을 벌이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임꺽정은 한 번도 백정 일을 한 적이 없었다. 나아가서 그는 백정이기에 사회의 밑바닥 계층으로 온갖 숨를 받지만 백정으로서의 삶의 방식이 그의 의식에 미친 영향은 전혀 없었다. 그는 물론 백정이라는 직업, 즉 소 잡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나 직업의식도 전혀 없다. 그에게 백정임은 사회의 밑바닥이라는 추상적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천한 백정이었지만 (어린 이순신을 만나기도 하고 자신을 찾아온 퇴계를 문전박대하는 등) 조선 팔도의 산천과 인물들을 섭렵했다. 임꺽정은 계급적인 인물로 출발했지만, 전국적이고 민족적 의미를 갖는 인물로 발전하는 가운데 탈계급화 되었다."(448)



"임꺽정이 맞닥뜨려 싸워야 할 조선이란 세상, 투쟁의 대상으로서 현실은 그렇게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조선의 타락한 문화가 그를 타락시키지 못하란 법은 없었다. 이에 자연인으로서의 꺽정을 보호하는 장치로 설정된 것이 바로 그의 반지성주의였다. 임꺽정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글을 못 배웠다는 것이다. 청석골에는 모사(謀士)인 서림 외에도 몇몇 두령들이 언문을 읽었지만 대장인 임꺽정은 언문도 읽지 못했다. 그가 글을 못 배운 것은 백정이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글방에 가서 아이들과 선생이 백정이라고 업신여기는 데 화가 나서 양반집 아이들을 패주고 선생의 '면상'에 책을 내던지고는 나가지 않았다." "글공부는 조선 문화의 나쁜 점으로 임꺽정이 싸워야 할 적들의 핵심적인 문화였고 임꺽정은 가까이해서는 안 될 문화였다. 천상의 이인들은 임꺽정을 반지성주의로 무장시켰던 것이다."(451-2)



"벽초는 어려서 한학(漢學)을 배우고 일본에 유학할 당시 서양 문학을 섭렵하여 당대 최고 지성인으로, '인텔리겐치아(intelligentia)'로 자신을 규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벽초에게 반지성주의는 자신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수많은 이념과 지식에 대한 혐오감과 더불어 자신이 무기력한 지식인임에 대한 자괴심과 부정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임꺽정은 벽초가 '내가 차라리 ~라면'이라 스스로 말하면 가설적으로 만들어 낸 '다른 자아(alter ego)'였다. 그렇다면 반지성주의는 벽초라는 지식인이 자신의 '다른 자아'인 임꺽정을 창조하며 그의 몸에 힘들여, 억지로 새겨준 격률인 셈이다. 임꺽정의 반지성주의는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민중'이라는 유령의 속성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임꺽정은 벽초의 '또 다른 자아' 즉 그의 개인적 심리 작용의 산물이며 벽초가 자신의 피조물의 몸에 새겨 넣은 인위적이고 가상적인 양심(良心)이었다."(501-2)



9장 결론



"(지식인들이 자신의 노력에 회의를 갖고,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품은) 반지성주의야말로 해방 이후 우리 민족끼리의 목적 없는 잔인한 싸움을 부추겼을지 모른다. 나아가서 강한 조선인을 향한 지식인들의 노력은 다른 대가도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민족의 본질을 찾는 선택의 핵심은 1920년대 춘원이 제안했던 도덕성 회복을 통한 '민족 개조' 계획을 기각한 것이었다. 이 선택을 우리가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 '홉스적 자연상태'의 상처가 생생한 상황에서 도덕성의 문제를 제쳐놓고 강한 조선인을 추구한다는 것은 사회적 조건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결코 비켜갈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도덕성 문제는 한국인이 '해방'되었을 때 한국인의 첫 번째 특징으로 조우하게 될 문제였다. 해방된 한국인들은 아직도 너무나 거칠었고 여전히 박탈감에서 '힘'의 추구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1930년대 춘원을 위시한 조선 지식인들이 이룩한 '강한 조선인' 추구의 대가였을지 모른다."(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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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35 2019-12-30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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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탄생, 소설읽기를 통한 사상의 탐구. 새창으로 보기
한국, 그리고 한국인은 어떻게 생겨먹은 나라일까. 일본이나 중국 같은 주변국가와 견주어 볼 때라거나 한국의 독특한 발전경로와 그 부작용들을 따져볼 때 부딪히게 되는 궁금증이다. 조센징은 매가 약이라느니 헬조선은 답이 없단 식의 혐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어느 민족보다 뛰어나단 식의 간지러운 상찬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늘 막연하게 그쯤에서 멈춰버린다. 답은 전혀 찾지 못한 채 경악과 감탄과 의문이 반복될 뿐이란 거다.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역사적 궤적을 좇아보려 한다. 조선이 망할 즈음, 그리고 망한 후에 어떤 집단적인 고민과 자기규정을 통해 근대 한국인이 탄생했는지 되짚기란 쉽지 않다. 이를 확인할 사료도 부족하고 사상적인 원류라 할 사상가도 부족하다는 게 저자의 고민이다. 그 결과 주목하는 것이 소설.

근대소설의 등장인물의 생각과 말, 그리고 전반적인 사회상에 대한 묘사와 논평을 빌어 당대 지식인들인 작가들의 문제의식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거다. 초기의 근대소설 주인공인 파우스트, 돈키호테, 로빈슨크루소 등이 중세와 결별하며 새로운 근대적 인간상을 서구에서 확립한 것과 같이, 한국의 초기 근대소설도 조선이 망한 자리에서 새롭게 불려나와야 할 근대 한국인상을 주조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핵심적인 생각이다.

무엇보다 접근법이 너무 참신하고 흥미로운 책이다. 이광수, 신채호, 이상, 홍명희 등이 쓴 소설들로부터 그들이 현실진단과 한국인이 갖추어야 할 바를 추출해내는 점이 그렇고, 그 작품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한국인 근대화 프로젝트'를 읽어낸다는 점이 그렇다. 결국 저자는 춘원의 소설 '무정', '유정'의 주인공과 벽초의 임꺽정을 대비시키며 당대 좌우파가 담아내려한 한국인의 원형적인 정체성에 도달한다.
소설로 우회한다는 접근법의 한계로 정밀하거나 쫀득한 느낌은 떨어진다. 소설 속 주인공을 그대로 한국인의 원형으로 상정하는 것도 리스키하다.

더 아쉬운 점은 우선 지식인 중심의 접근으로 놓친 부분들에 대한 것이다. 지식인 작가의 소설이 얻은 인기가 당대 민중의 반향을 시사하는 바로미터일 수도 있겠지만, 지식인 계층이 아닌 자들에게도 직접 목소리를 추출했다면 더 좋았겠다. 그래서 두번째 아쉬운 점, 당대 지식인이 전부 개화민족주의자 아니면 저항민족주의자였던 것처럼 단순화됐다. 요컨대 이광수는 한결같이 개화민족주의자로서 그의 소설에 일관된 문제의식을 녹였다고 봐도 될까.

마지막으로 계속 정리못하고 자문하게 되는 질문. 앞선 서양의 근대소설이 자본주의 시대 인간상을 먼저 그려냈다고 해서, 주변부 한국의 근대소설 역시 같은 역할을 기대해도 되는 건지. 개인주의화된 인간이 주체로 선 근대에 새삼 서양과 한국, 각국에 각기 다른 국적의 근대인이 디자인될 필요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저자는 책을 통해 한국인의 역사적 특수성 이상을 말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조금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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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2018-10-1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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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탄생 - 새로운 사관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이 책은 실로 오만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모든 걸 이야기해주지 않으며, 그렇지만 모든 걸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정형화된 일장일단, 하나의 미덕을 꼽으면 필히 하나의 악덕을 꼽아 균형을 맞추는 그런 식의 논평보다는 오히려 열광을 하고 싶다. 저자는 '홍길동'을 일컬어 한국인들에게 심긴 일종의 영구 혁명 프로그램이라 하는데, 나는 이 책 <한국인의 탄생> 역시 그 심장에 일파만파로 팽창해 나갈 심대한 에너지를 머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여기서 다 쓸 수는 없고, 그중 가장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 의의만을 꼽아 보려 한다.

 

이 책은 새로운 사관을 이야기하고 있다. 엄밀히는 새로운 사관이라기보다는 기존에 있는 어떤 것을 재발견하고 '사관'으로 승화시킨 것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소재는 한국의 근대 문학이다. 저자는 발표 연대가 각기 다른 작품을 거듭 분석해 가며, 그 속에 구현된 공간(배경)을 이어 붙여 한국 또는 한국을 분석하기에 적당한 대표적 공간으로, 그리고 인물을 거듭해 가며 그들을 '한국인'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어낸다.

 

작품 해석이기도 하지만, 글을 따라가다 보면 순식간에 역사 해석이 된다. 그렇게 해석이 끝나고 나면, 독자의 머리에는 시간적으로 진화를 거듭해 온, 그리고 공간적으로 한반도를 배경으로 서 있는 인물이 남는다. 역사의 어떤 거대한 흐름, 그 흐름을 떠받친 어떤 힘이 보인다. 근대 한국인의 탄생사가 보인다. 저자 최정운은 그것을 다시 두 흐름으로 가닥 잡고서, 개화민족주의와 저항민족주의라 부른다.

 

저자는 문학 작품과 당대 현실을 넘나들며 몇 가교를 놓는다. 저자는 해방 이전의 소설 작품 중에서 철저한 ‘사실주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인직의 신소설 작품, 신채호의 작품, 김동인의 작품, 이상의 작품, 이광수의 작품, 홍명희의 작품 등이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 소설 작품은 현실의 인물(창작자)이 몸담은 당대 현실에 기반하여 창조한, 미래를 예비하는 투쟁의 결과물이다. 당대 현실은 결코 단절적 시간이 아닌 연속적인 흐름 위에 있었다. 조선이 붕괴되던 구한말부터 식민지 초기, 중기, 말기까지 매 시기 인물들은 다르게 업데이트된 ‘배경’ 속에 살아갔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작품 속 가공의 인물과 그 창조자인 현실의 인물 사이에 그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을 포착하고, 잇는다. 현실 인물의 투쟁의 결과물인 ‘작품’은 ‘사실주의’의 결과로서 당대 현실에 관한 결정적인 힌트를 제공한다. 이 책은 이제 이를 발굴하는 작업이며, 그에 따르면 한국인은 '탄생'했으며 '진화'했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저자는 ‘몇 가교’ 정도에서 설명을 멈춘다. 나머지는 독자의 몫으로 보인다. 저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이, 독자의 몫으로 넘어온다. 독자가 발휘하는 상상의 힘에 따라 작품 즉 ‘신화’는 가벼운 유희가 되기도 하고 때론 단단한 삶의 근골이 되기도 하며, 궁극적으로 현실을 주조할 힘이 되기도 한다. 요컨대, 저자가 비워둔 여백은 방치가 아니라, 안배에 가깝다.

 

역사는 다수가 만드는 것이다. 혼자서 만들 수 없다. 시간은 흘러가고 이야기가 생기고, 누구든 어떻게든 무엇이든 소재로 삼아서 역사를 쓸 수 있다. E. H. 카든 랑케든 마르크스든 동원해서 쓰면 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을 사랑해준 다수에 의해 그들의 것은 ‘유력한 사관’이 될 수 있었다. 그동안 역사 서술은 이런 식으로 유력한 '사관'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그것은 거대한 흐름이며, 그 속에 콘텐츠는 넘쳐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린 학생들과 전공자들은 그 파고 속에 있다.

 

이 책은 잠시 그런 흐름, 모두가 올라타 있는 흐름에서 나온다. 그리고 우선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 그 '개인'이 어떤 인물인지 분석한다. 그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그는 그에 기반해서 어떻게 동력을 얻고 세상을 헤쳐 나가는 것일까? 우선 저자는 '한국인'이 어떤 존재인지부터 알고 나서 역사 서술을 해도 늦지 않을 것임을 일깨워준다. 우리 한국인들이 머리에 무엇을 담고서 세상을 구상하였으며, 어떤 심장을 달고서 동력을 얻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상사라고 저자 본인이 표현하지만, 사상사란 단어는 이 책이 담고 있는 원초적인 느낌을 다소간 퇴색시킨다.

 

그렇게 시대별로 공간과 인물에 대한 확인을 한 후, 몇 가교 정도를 확인하고, 서술이 멈춘다. 그렇지만 서술이 멈춘 그곳에서, 독자 자신이 그 서술을 이어갈 새로운 심장을 얻게 된다. 물론 독자 나름이겠지만 말이다.

 

1890년대

1900년대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

 

우리는 위 시기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기존의 사관은 모두 이들 시기에 대해 답을 내놓고, 이야기를 내놓고, 지식을 쌓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향유하고 공부하고 있다.

 

그 결과가 오늘이다.

 

사람들은 모두 사관이라는 단어를 잘 알 것이다. 아마도 한국의 역사를 시간축을 따라 선으로 표현한다면, 아마 단 하나의 선만 존재할 것이다. 시간축이 하나니까. 그런데 사관에 따라 그 과거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마치 여러 갈래의 평행 우주가 합쳐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사실 사관은 꽤 많다. 한국사에만 해도 꽤 많다. 가장 유명한 민족주의 사관이 있고, 민족주의 사관이 있다면 탈민족주의 사관이 있으며, 그 옆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있고, 흔히 역사의 동력은 민중이라는 식의 민중 사관이 있으며, 역사에서 정치를 거세한다는 가정을 실험한 식민지근대화론이 있다. 또 이미 1920년대부터 사회주의를 공부한 사람들에 의해 마르크스주의 사관이 있어 왔고, 구석에는 무정부주의자도 있었다.

 

식민 사관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식민사관은 전근대의 조선을 정체된 역사로 설명하는데(정체론), 1960년대 들어서 그에 반발해, 그리고 실제로 가시화되는 당시의 '발전'을 확인하면서, 조선 시대는 이미 '근대', 더 정확히는 '자본주의'를 예비한 시기였다는 취지의 내재적 발전론이 생겨났다.

 

다 생긴 것들이다.

 

이들 '사관'에 따라 역사가들은 시간축에서 ‘과거 사실’을 끄집어내어 재조립한다. 과거는 ‘사관’을 거쳐 모두 ‘달라진다.’ 그리하여 모두 ‘다른 역사’ 위에 서게 되며, '다른 미래'를 꿈꾸게 된다. 현재의 독자와 청자들에게는 '이야기'의 다른 버전이 쉴 새 없이 흘러다닌다. 역사학자들이야말로, 모종의 ‘사실주의’적 ‘투쟁’ 중이며, 이것이 바로 사관의 힘이다. <한국인의 탄생>이 사실주의 문학 작품을 소재로 했다면, 그간의 사관의 결과물 또한 ‘사실주의’ 작품으로서 취급이 가능하다.

 

그렇게 모인 이야기들이 '연구 업적'이 되고, '책'이 되고, '지식'이 되고, 심지어 '상식'이 되어 간다. 축적되고 축적되며, 사회 구성원들의 '사관'을 형성해간다. 어지간한 사회 구성원이라면, 이 세상에 대한 촌평 정도야 할 줄 아는 법이고, 낮은 의미에서 거의 모두 다 '사관'을 학습한 상태이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뉴스 좀 보다가, 상사의 잔소리를 듣다가, 엄마의 철학을 음미하다가, 시나브로 알게 된 이치 같은 것들이 모여서 생긴 모종의 '사관'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를 본다. 2010년대 들어 한국 사회를 몰아치는 주요 이슈들 가운데에는 '역사'에 관한 게 많다. 크게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개발과 분배, 발전과 복지, 이승만과 김구, 박정희와 김대중, 노무현과 이명박 박근혜, 기존의 역사 교과서와 교학사 교과서 등. 이러한 우리는 모두 어디서 온 것일까? 우리는 어떤 흐름에 올라타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결코 기계적 중립에의 희구 따위를 위한 게 아니다. 우리는 분명히 ‘탄생’한 존재들이다. 우리의 머리와 가슴 깊숙이 자리 잡은 그 ‘에너지원’들, 결코 같은 성격의 것이 아닌 것들이 거대하게 소용돌이 치고 충돌하며, 지금 한국의 뉴스 한가운데 솟아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시야를 넓혀 보면, 신문지상과 TV뉴스, 우리의 교실과 직장, 심지어 군대와 오만 곳에 다 '사관'의 입김이 스며들어 있다. 때로 혐오하기도 하고, 떠나겠다고 다짐하겠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와 정말 빼닮았다. 그 분열과 그 민족적으로 떠안은 '정의'의 모호함까지도.

 

<한국인의 탄생>은, 이 모든 한국인, 이 모든 사관, 영광과 야만을, 이광수의 <무정>을 인용한 책에서의 표현처럼 비록 신은 될 수 없지만, 굽어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물론 이 또한 하나의 단계일 뿐일 것이다.

 

아직 최정운 교수의 이 '사관'이 뭔지 그 내용을 이야기하지는 않은 것 같다. 실은 아직 그에 대한 이름도 없는 것 같다. 감히 짐작해 보려 한다.

 

인간이 한반도에 깃들고,

조선이란 나라의 시대까지 조선인이란 정체성을 만들며 잘 살아왔는데,

언젠가부터 '세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특히,

구한말로 일컬어지는 시기에 사람들은 '국가권력'이 와해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한다.

이것은 단순히 국가가 약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들의 '삶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 광경은 지옥이었다. 지옥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사람들은 조선을 저주했다. 그들은,

자살하거나, 도망(이민) 갔다. 그리고,

반역자들이 생겨났다.

반역자들은 조선의 전복을 꿈꿨다.

일본이 초대됐다.

우리 민족은 반역자들을 마주보며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에 입각해 그들을 응징했다.

새로운 권력인 일본은 반역자들을 버렸다.

조선이 무너졌지만, 일본은 무엇이 그리 다른가. 당신은 일본인인가?

반역자들은 한반도에서 살아갈 의미를 상실했다.

씨가 다른 외부 종족의 지배가 한참을 이어지는 와중에,

그렇게 10년이 걸렸다.

'민족'이 생겼다.

과거 성리학적 전통의 조선인이 아닌 민족이었다.

특이하게도 '국가'가 없었다.

국가가 없지만, '민족'은 존재했다.

전근대 조선은 폐기됐고, 일본의 지배는 현재이며, 미래는 존재했다.

민족을 만들어가는, 거대한 여정이 시작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시대에, 민족을 강하게 만들려는 것은 필연이었다.

그리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미 그렇게 살기 시작했을 것이다.

어떻게 강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민족주의의 문제가 제기된다.

'민족주의'는 최초부터 이미 개화민족주의와 저항민족주의로 나뉘었다. 

더 '개화된 조선인' 대 더 '강력한 투쟁 본능을 가진 조선인'.

이 두 흐름은 도도한 물결을 이루어가며, 점차 소용돌이처럼 맞물리며 힘을 발휘하게 된다.

 

주요한 비법은 '수입'이었다. 서구의 문명은 태양과 같았을 것이다.

그 '태양' 없이도 잘 살던 민족이, 그것에 의지하는 이상한 광경이었지만,

아주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조선의 전통에 눈을 두지 않았다.

조선의 전통이 텅 비워진 공간에 서구의 것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신식 '선비'들은 양반이 아니었다.

대개 도덕적 권위, 계급적 권위도 없었다.

게다가 자주는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긴 주역들이기도 했다.

뭣보다 지금 시대는 자본주의 ‘문명’의 시대였고, 새로운 방식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사람들을 휩쓸었다.

일본을 업고 일하는 게 역사의 참 방향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도 사람들은 먹고 사는 일에 바빴다.

도시가 건설되고, 새로운 문화가 전해졌다. 조선인은 날로 새로워졌다.

그러나 조선인은 언제나 조선인이었다.

누군가에게 문명이 고도화될수록 조선민족은 볼품없어졌다.

그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은 더욱 그러했다.

해방 직후 '조선인'은 모두 하나같이 해방을 기뻐했다. 거기에 일본인은 없었다.

 

식민지 시기 내내 지식인은 그저 지식수입상이거나 친일파(배반자)거나 돈도 제대로 못 버는 그런 존재였다.

누군가는 희망을 지식인이 아닌 다수 대중에게서 찾았다.

누군가는 그래도 그 지식인을 단련해서 민족의 지도자로 거듭나게끔 그리하여 조선인다움을 추구하게끔 만들었다.

조선인들이 어땠는가는 해방 이후를 보면 알 수 있다.

해방 당시 그 조선인들, 장차 한국인이란 이름을 가질 사람들이 그간 겪어낸 50년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렇게 해방 이후 격렬한 역사를 써나갈 수 있었는지, 역동적이고 투쟁적인 그런 역사를 써나갈 수 있었는지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2010년대의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지나온 경로를 제법 역사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표면적인 요약에 해당할 듯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밑바탕이다.

사관으로서 기능하게끔 하는 그게 무엇인가 하는 것 말이다.

일단은 그냥 '인간'이 덩그러니 남는다.

인간은 무엇도 될 수 있다.

괴물도 짐승도 악마도, 그리고 천사도 무엇도 될 수 있다.

 

한국인이란 잘생긴 얼굴 뒤에는 수많은 얼굴이 있다. 불과 1백 년 전에 양반놈네를 저주한 얼굴, 조선의 붕괴에 절망하고, 조국을 떠나고 싶어 하고, 동족을 배반하고, 이민족이 되고 싶어 하던 그 얼굴들, 그러면서도 조국을 근대화하고자 안달하고, 이민족을 몰아내고자 일치단결하기도 하고, 해외로 나가서까지 독립운동을 조직하던 그런 얼굴들도 있다. 기나긴 식민 지배를 거치는 동안에도 억압과 수탈이란 말로는 모자란 문명화, 도시화 속에 덩그러니 자기 정체가 뭔지 의아해하던 얼굴들이 있었고, 걔 중에서는 역사적 사명을 깨닫고 또는 착각하고 또는 뭐 어떻게 생각하든 분주하게 움직이는 얼굴들이 있었다.

 

이 여러 얼굴들을 포개 놓으면, 그냥 인간이 덩그러니 남는다. 그 인간들은 모두 꿈틀대는 생명체이며, 세상을 마주보고 그에 반응해서 점차 방향을 잡고, 에너지를 발산하며,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삶을 걸고서 투쟁해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사관'을 통해 심해에 잠겨 있는 과거 그들의 삶을 건져 올리고 있다. 때로는 '역사적 진리'를 위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그런 비장함을 내뿜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저자 최정운은 공간과 인물과 몇 가교를 확인하고, 일단 서술을 멈춘다. 그 끝에는 사관들의 투쟁사 역시 포함되어 있다. <한국인의 탄생>을 작품 해석이나 일차원적 시대 해석으로 이해해선 보이지 않는다. 그 광활한 행간을 봐야 한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서술이 멈춘 그곳에서부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실 그 이상은 개인 단위로 가능한 작업이라거나,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낼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역사는 다수의 힘이, 무조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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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궤도 2015-02-26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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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설로 추적해본 한국인의 기층 심리 새창으로 보기
이 책은 정치학자가 우리 개화기때 신소설을 연구하여 우리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연구서적으로 우리 민족의식이 어떻게 형성 전개되어 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역저라고 할 것입니다. 이 책을 쓴 저자가 사회과학도이기 때문에 기존의 문학연구가들의 평론과 달리 사회과학의 프레임으로 접근하여 문학적인 소설기법이나 복선등 작품의 문학성에 대한 평론은 거의 없고 한국인들이 개화기에 신문명을 만나고 어떻게 깨어나서 오늘날의 우리가 되었는지를 볼 수 있는 우리 자화상에 대한 거대한 사상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개화기 소설을 보면 짧은 기간동안 내용에 있어서 급격한 변화가 있었는데, 1920년대 김동인의 작품부터는 서구의 현대소설 기법을 대폭 수용하여 거의 현대 소설과 차이가 없을 정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다보면 조선시대의 조선사람들이 어떻게 서구문명의 세례를 받아 근대인으로 거듭난 후 오늘날의 우리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좋은 해설서이자 참고서입니다 문학 작품속에서 시대정신이 반영되어 그 시대의 고유한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바, 이 책은 문학적인 요소보다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추적하여 현대의 우리의 그것과 맥을 이어주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회과학자가 문학작품을 가지고 근대를 탐구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이 책은 새로운 시도로 아주 신선합니다. 이는 일제침략기나 해방직후에 관해 제대로 된 사료나 정부 문헌내지 자료가 거의 사라지고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설을 대안으로 분석할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일진회를 최초로 연구한 미국인)핸더슨에 따르면 그러한 대규모 운동, 소용돌이와 같은 한국의 정치는 중앙집권적 정치구조, 동질성이 강하지만 응집성이 없는 고도로 개인화된 '원자화된 사회', 그리고 매개 집단의 결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 패턴은 구한말뿐만 아니라 조선 초에서붜 일제 시대를 지나 해방이후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중략) 핸더슨의 지적은 한국인들에게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한국인들은 보통 자신들이 얼마나 개인주의적인지 잘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개인주의적이다. 물론 한국인들은 고독하게 개인으로 지내는 것을 원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한국인들이 개인화된 과정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개인화를 강요당한 셈이었고 오늘날 한국인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개인주의적 삶을 증오하며 공동체적 삶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들은 이제 돌아갈 수 없지만, 고독한 개인주의적 삶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지성주의의 원인에 대하여 서술한 것을 살펴보면"동.서양 문명이 교차하는 가운데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은 지식의 생산자로서의 위치를 포기하고 소비자와 전달자의 위치로 추락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더구나 외국에서 도입된 이념들의 거대한 투쟁 사이에서 우리 지식인들은 길을 잃고, 존재의미를 잃었다. 반지성주의는 이런 상황에 처한 좌절한 지식인들이 자신에게 던지는 거친 언어, 즉 '욕'이었다. 더욱 중요한 현실적인 문제는 서구의 지식을 배워 와서 민족을 계몽시켜야 우리 민족이 살아날 수 있다 주장하면서 자신들이 조선 민족을 이끌 지도자요 '중추 계급'을 자처하던 신지식인들 대부분이 식민지 권력의 주구가 되고 민족을 배식하는 현실이었다.(중략) 바로 이 지점에서 무엇보다 반지성주의는 조선 지식인들의 순수한 저항을 사악한 권력 지향적 지식인들과 일제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역선이었다"
라고 서술되 있는데, 이 부분은 약간 문제점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 사회의 반지성주의가 근대화가 식민지배와 동시에 전개되었기 때문에 근대적 지식을 공부하고 전달하는 것이 친일과 맥이 닿기때문에 이를 거부하다 보니 반지성주의가 나타났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의 요지인데, 이는 오히려 우리사회가 학생들에게 높은 학습을 요구하고 고전도 요약본이라도 읽도록 부추기는 등 반지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현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오히려 유교사회에서 학문을 진리탐구가 아닌 단순한 과거급제와 이를 통한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삼는 구태의연한 사고가 남아있어 신분상승의 기회가  있는 학생들에게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없는 높은 학구열을 보이지만 성인들의 자기공부나 책읽기를 등한시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장인 이부분이 좀 소홀히 논리가 엉성한 것을 제외하고는 정말 괜찮은 한국인의 기층 심리를 분석한 책이라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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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 2014-01-1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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