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3

[제1405호]채사장, 에펠탑을 보듯 자아를 보았으니까 [21WRITERS①] : 문화일반 : 문화 : 뉴스 : 한겨레21

[제1405호]채사장, 에펠탑을 보듯 자아를 보았으니까 [21WRITERS①] : 문화일반 : 문화 : 뉴스 : 한겨레21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

채사장, 에펠탑을 보듯 자아를 보았으니까 [21WRITERS①]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2> 쓴 채사장 인터뷰

제1405호
등록 : 2022-03-28 

크게 작게

사진=류우종 기자

2014년, 채사장(41)의 등장은 ‘사건’이었다. 당시만 해도 인문학 책을 쓰려면 박사나 교수 같은 타이틀을 갖춰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그의 첫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 1권은 갑자기 튀어나와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출판시장을 흔들었다.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지만 학계에 몸담은 건 아니고, 창업 등 여러 직업을 거친 채사장은 첫 책에서 역사·경제·정치·사회·윤리 등 ‘현실 세계’를 한 두름으로 뀄다. <지대넓얕> 2권에선 철학·과학·예술·종교·신비 등 ‘현실 너머’를 과감하게 횡단했다. 그의 책은 방대한 인문학 앞에 위축된 채 서성이던 독자에게 쉽고 친절한 지도가 됐다. 그 지도를 그리며 그는 지식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놓인 권위의 경계를 허물었다. 인문교양서 여섯 권과 2021년에 나온 첫 소설 <소마>까지, 300만 부 넘게 팔렸다. 2022년 3월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채사장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주변 사람들에게 줄 생각으로 시작
그의 글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자아는, 세계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나는 누구인가? <지대넓얕 0(제로)>의 서문은 코끼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의식 ‘파잔’에서 시작한다. 아기 코끼리가 완전히 순응해 관광객을 등에 업고 걸을 때까지 때리는 의식이다. 그의 책은 자기를 잊은 코끼리에게 그 안에 숨 쉬고 있는 영혼에 대해 묻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채사장은 돈 버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 질문과 답으로 자본주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책이) 많이 팔릴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제 주변 사람들한테 주고 같이 얘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그러다보니 부담이 하나도 없었어요. 하루에 열 군데씩 출판사에 보내보자 했는데 첫날 네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잘 팔리니까 걱정도 많이 됐던 거 같아요. 이렇게 많이 팔릴 책이 아닌데….”

2011년 그는 회사 동료들과 제주도로 여행 갔다가 큰 사고를 당했다. 버스가 몇 바퀴 굴렀고 그는 현장에서 동료의 주검을 보았다. 제대하고 세상에 적응해보려 한동안 돈 버는 일에 골몰한 그는 이제까지 공부했던 세계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죠. 불안도 있었을 거고요.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는 게 유일한 재미였는데 항상 아쉬움이 있었던 거 같아요. 친구를 만나도 계속 겉도는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우리가 최소한 공통의 뭔가를 공유한다면 그것을 기반으로 다음 얘기를 해나갈 텐데. 누구나 최소한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지대넓얕> 1권은 초고를 거의 1~2주 만에 썼어요.”

<지대넓얕>의 매력 중 하나는 구조다. 방대한 지식의 맥락을 잡아준다. 예를 들어 <지대넓얕> 2권의 열쇳말은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다. 진리를 향한 태도를 기준으로 나눈 분류는 철학, 과학, 예술 등을 엮어내는 뼈대다. “(<지대넓얕>을 쓸 때) 누구나 아는 내용이니까 구조화만 해주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뭔가 모르고 못 배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니거든요. 우리가 이미 스냅사진을 엄청나게 가지고 있으니 저는 이걸 정리하는 앨범 같은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대넓얕> 1권과 2권을 통해서 그다음 계단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왜 한 우물을 깊이 파야 하죠?
그가 독자와 함께 계단을 올라 닿고 싶은 궁극적인 지점은 ‘신비’, 자아와 세계에 대한 질문과 답이다. 2016년 이후 나온 책들, <열한 계단>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지대넓얕 0>는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그가 찾은 답을 언어로 표현하긴 쉽지 않다. 우파니샤드(고대 인도의 철학 경전)에 따르면 ‘범아일여’라 하겠다. 자아와 우주는 하나라는 거다. 우주는 마음이 만들고 마음 안에 우주가 펼쳐진다. 무슨 말일까? “저는 ‘봤다’라고밖에 얘기할 수 없는 거 같아요. 이거구나. 4~5년 전에 정확하게 이해한 시간이 있었어요. 불교, 베다, 노자가 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지금 이 감각적인 세계를 받아들이는 그 구심점이 나이지, 이거 이외에 나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없구나. 이 ‘보고 있는’ 구심점으로서의 자아는 여러 조건이 형성돼 만들어졌어요. 조건이 사라지면 이 ‘보는 자’도 사라질 거예요. 그런데 시간은 영원하고 물리적 조건은 유한하니, 언젠가 특정 조건은 반복될 것이고, 그렇다면 내 의식이 다시 발현되는 거구나. 아, 이렇게 설명하니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이 어려운 답을 설명하기 위해 <지대넓얕 0>에서 우주에 대한 가설부터 펼쳐놓았다. 빅뱅, 다중 우주, 양자물리학, 11차원… 이어 베다, 도가, 불교, 철학, 기독교 경전의 핵심을 짚었다. 책 <열한 계단>에서 그는 하루에 거의 한 권씩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고 썼다. 일부러 “불편한 책들”, 이미 알고 있는 세계에 균열을 내는 책들을 읽었다. 성서를 읽은 다음에 신은 없다고 선언한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 식이다. 그렇다 해도, 어떻게 이토록 광범위하게 공부할 수 있을까? “사실,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에요. 깊이도 없고요. 질문이 명확했던 거 같아요. 자아의 문제죠.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답을 찾아야 하니 이것저것 들춰봤어요. 질문이 없었으면 헤맸을 거 같아요. 그리고, ‘봐서’ 아는 거 같아요. 파리 에펠탑을 본 적 없으면 설명하기 어려울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대학원에 다닐 때 하이데거를 공부한 적이 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 못했어요. 알쏭달쏭한 말로 그냥 어렵게 쓰면 사람들이 뭔가 있나 싶어 좋아하나보다 했죠. 그런데 제가 자아의 본질이 뭔지 ‘보니’ 쉬웠어요. 고전의 절반은 자아의 본질에 대한 얘기거든요.”

*채사장, 자아와 세계를 여행하는 당신의 친절한 안내자 [21WRITERS②]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83.html

출간 목록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2>(한빛비즈 2014, 웨일북 개정판 2020)

채사장의 첫 책이자 밀리언셀러. 1권은 역사·경제·정치·사회·윤리 등 ‘현실 세계’를, 2권은 철학·과학·예술·종교·신비 등 ‘현실 너머’를 다뤘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웨일북, 2019)

베다, 도가, 불교, 철학, 기독교 등을 아우르며 채사장이 도달한 자아와 세계의 본질을 풀어놓았다.

<열한 계단>(웨일북, 2016)

문학·철학·종교를 아우르는 인문학과 작가의 성장과정을 교차해 담았다.

<시민의 교양>(웨일북, 2015)

세금·국가·직업 등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양을 엮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웨일북, 2017)

관계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소마>(웨일북, 2021)

채사장의 첫 소설. 가상세계 속 주인공 소마의 일생. 내면세계 체험을 서사로 풀었다.

류우종 기자

소리 내서 읽어보면
채사장이 글쓰기 초심자에게 보내는 팁

자기 안에 질문이 있어야 해요. 책을 쓰고 싶어서 일부러 질문이 있는 것처럼 짜내면 누구나 진정성이 없다는 걸 알아요. 자기 안에 분명히 있거든요. 말하지 못하고 쓰지 못할 때 마음 안에 응어리진 별 같은 게 있어요. 억눌러도 튀어나올 수밖에 없을 때, 쓸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러면 어설퍼도 누구나 진정성이 있다는 걸 알아봐요.

둘째는 형식적 측면에서 반드시 퇴고해야 해요.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서 쓰는 거라면 반드시 자기가 소리 내서 읽어보고 자연스럽게 다듬어가야 해요. 그런 과정 없이 날것 그대로 갖다주면 실패한 글이에요. 엉덩이로 쓰는 거예요.

-자기 안에 질문이 없다면?

그럼 좋은 거예요. 뭔가 약한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 마음속에서 계속 질문이 발생하는 건 어떤 면에서 불안의 증거일 수도 있어요. 이 사람들이 형이상학적인 뭔가를 찾아 헤매요. 그런 사람들이 멋져 보일 수는 있어요. 그런데 저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건강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잘 사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고 가족과 산책도 하고 맛있는 거 먹을 때 진짜 기뻐하고. 그런 건강한 사람들은 크게 질문하지 않아요. 저는 그 삶이 훨씬 나은 거 같아요. 만약 정말로 질문이 없다면 다행이에요.

김소민 자유기고가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들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808/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

채사장, 자아와 세계를 여행하는 당신의 친절한 안내자 [21WRITERS②]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2> 쓴 채사장 인터뷰

제1405호
등록 : 2022-03-28 20:52 수정 : 2022-03-29 10:28
  • 페이스북
  • 트위터
  • 스크랩
  • 프린트

크게 작게

사진=류우종 기자

*채사장, 에펠탑을 보듯 자아를 보았으니까 [21WRITERS①]에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82.html

<죄와 벌>, “인간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존재”
그의 공부법은 한 우물을 깊게 파서 전문가가 되라는 한국 사회의 주문에 반한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억압하는 분위기가 싫은 거죠. 이 사회에서 먹고살려면 기능이 있어야 하니 전문성을 기르라고 하는 분위기는 서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거 같아요.” 그는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 이렇게 썼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강요한다. 특정 분야의 제한된 역할만을 수행하라. 자본주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역할을 엄격히 구분한다. 하나의 특정 분야가 있다면 그 안에서 생산자는 전문적인 생산자의 역할로서 고정되고, 소비자는 충실히 소비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아쉽다. 왜냐하면 이러한 역할의 구분이 우리에게서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거칠게 정리하면, 세계가 내 마음이 일으킨 것이라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 만날 수 있을까? 각자가 일으킨 세계에서 꿈을 꾸는 건 아닐까? “어려운 문제예요.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서 제가 종교의 본질이 믿음이라고 한다면 나는 타인에 대한 종교를 갖고 있다고 썼어요. 논리적으로 모순돼 보이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3차원 속에 눈떠서 그런 것일 수도 있어요. 2차원 세계에선 동전의 앞뒷면이 전혀 다른 것이지만 3차원에선 하나인 걸 아는 것처럼, 지금 분리돼 보이는 것이 우리 의식의 다른(상위) 차원이 열리면 같은 얘기일 수도 있으니까요.”

서로 마주 보고 앉아도 만났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그는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타인에 대한 ‘사실’을 안다고 하지 못하고 ‘믿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소통은 가능하긴 한 걸까? 회의하면서도 그는 대화를 나누고 싶어 글을 썼다. “만약 제가 타인에 대해 기대가 크다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 알았을 때 고통스러울 거 같아요. 그런데 무인도에 있다고 해봐요. 양쪽에 컵이 달린 실전화로 대륙 너머 누군가가 얘기해준다고 생각해봐요. 어쨌든 우리가 닿고 있잖아요. 그건 참 반가운 일인 거 같아요.”

나는 누구고 어디로 가나? 이런 질문은 어른이 되면 잊기 일쑤다. 누구긴 누군가, 지금 부장에게 혼나는 자다. 가긴 어디로 가나, 회사로 간다. 그런데 그는 이 추상적 질문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대출처럼 치열하게 고민해왔다. 왜 놓지 못했을까? “그런 질문은 누구나 갖고 있죠. 숨겨져 있을 뿐이죠. 가족, 학교, 사회가 친절하게 말하잖아요.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의미 없는 질문이라고. 그런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제가 그랬어요. 그런 사람들은 이 질문을 멈출 기회를 갖지 못해요. 제가 수업이든 직장 생활이든 잘 따라가지 못했어요. 좀 늦고 모자라고.”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책을 읽지 않았다. 수학은 100점 만점에 10점이었다.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는 것만을 간신히 붙잡는” 방식으로 현실을 견뎠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행패를 부렸다. 집안 형편은 어려웠다. “선생님들이 싫어하는 학생이었던 거 같아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무기력한 아이요. 선생님한테 많이 맞았어요. 직장 다닐 때도 부장님 성질 돋우는 직원이었고요.” 고2 겨울방학 때 우연히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인간이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공부해 성적이 올랐다. 친구는 그에게 “머리가 새것”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성균관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4년간 장교로 군생활을 한 뒤 논술 강사, 주식투자 등 ‘돈 되는 일’은 다 했다. “사회생활을 잘하지 못해 적응하려고 애쓰면서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어요. 인문학 하면 덮어놓고 자본주의를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세요. 저는 그분들 삶이 그래도 괜찮아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루하루 먹고살려고 시장에서 구르는 사람들을 이해 못하니까.” 이때의 경험은 그의 글쓰기에 녹아 있다.

여러 경전을 모아 놓은 채사장의 책장. 류우종 기자

‘직접인용’이 거의 없는 이유
<지대넓얕>에서 그가 쓴 주제들은 어렵다. 그런데 쉽다. 중간중간 그가 개념을 요약해 그린 그림도 등장한다. “아이들 가르칠 때 이 방법이 효과적이었어요.” 니체, 소크라테스 등 철학자들과 대화하는 식으로 풀어가기도 한다. 그가 씹어 소화시킨 결과물을 이유식으로 먹는 것처럼 글이 술술 넘어간다. “기술적 측면에서, 어휘가 이중적으로 해석되지 않게 다듬고 단문 위주로 써요. 내용을 보자면, 중학생부터 8090세대까지 어쨌든 뭔가를 얻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대넓얕 0>를 읽고 중고등학생들이 자아의 내면을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노자와 공자가 어떻게 만났는지 등 역사를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대화체를 넣었던 건 사람들이 형식이 바뀌면 다시 집중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퇴고를 평균 여덟 번 해요. 조사, 술어가 자꾸 걸려요. 낭독했을 때 거슬리는 데가 없을 때까지 퇴고해요. 자기 글을 세 번 이상 읽으면 진짜 토할 것 같거든요. 고통스러워도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 같아요. 그게 독자에 대한 예의고요.” 그의 글엔 직접인용이 거의 없다. “‘누가 이렇게 이야기했어’ 하면 권위에 기대는 거예요. 사람들은 제가 한 인용이 아니라 제가 뭘 생각하는지 궁금해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2년에 한 번꼴로 책을 냈다. 꾸준하다. 그에게도 글쓰기 습관이 있을까. “1년 구상하고 1년 본격적으로 써요. 회사원처럼 써요. 집에서 안 써지면 카페 가고, 안되면 사무실 가고 계속 써요. 뭔가 멋있는 게 딱히 없네요. (멈춤) 인생을 돌이켜보니까 입만 열면 거짓말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자기를 포장하고 과장하고. 어느 순간에 내가 말하면서 마음이 허해지는 이유가 계속 나를 포장해서 그렇구나라는 걸 알았어요. 지금 연습 중이에요. 사실이 아니면 말하지 않으려고요. 말씀하신 습관 같은 게 있으면 멋있게 보일 것 같은데 저는 특별한 게 없어요.”

글쓰기에 언제 매혹됐냐고 했더니 “매혹된 적 없고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그가 시를 썼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 정도면 글을 향한 오랜 사랑 아닌가? “친구 따라 쓴 거예요. 현실이 고통스럽고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찾은 탈출구 중 하나였어요. 다른 짓 하면 혼나는데 시를 쓰면 혼나지 않으니까요. 글쓰기는 제게 그냥 표현 양식의 하나인 거 같아요. 랩을 할 줄 알면 래퍼가 됐겠죠.”

싱잉볼. 티베트 여행 때 산 그의 애장품이다. 류우종 기자

지금은 정원을 돌보는 시간
다시 돌아와, 그에게 중요한 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고 자기가 발견한 답을 나누는 것이었다. 그 답을 <지대넓얕 0>에서 이론으로 풀어냈다. 이 답은 개념으로 딱 잡히지 않는다. 어쩌면 체험의 영역이다. 수영을 글로 배우면 어렵지만 물에 들어가면 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체험을 나누려고 <소마> 전에 소설 세 편을 썼는데 그의 첫 책부터 만들어온 권미경 웨일북 대표가 “좋지 않다”고 퇴짜를 놓았다. 네 번째 소설이지만 출간된 첫 소설이 <소마>다. 소년 소마가 부모를 잃고 적국에서 자라난 뒤 복수를 거쳐 최고 자리에 올랐다가 추락하는 이야기는 익숙한 영웅신화의 플롯을 닮았다. 소마는 다섯 번에 걸쳐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자신의 감각기관이 하나씩 닫히면 그 목소리가 올라왔고 소마의 마음속에 우주가 펼쳐졌다. “현대인들은 내면세계의 체험이 없거든요. 다 외부에 관심이 있죠. 내면세계를 체험한다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고자 했어요.”

그의 글쓰기 동력은 질문이었다. 답을 찾고 난 뒤, 그는 무엇을 쓸까? “사실 궁금증이 해소됐어요. <지대넓얕> 1권과 <시민의 교양>은 현실 세계, <지대넓얕> 2권과 <열한 계단>은 현실 세계 너머, <지대넓얕 0>랑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초월에 대한 얘기였어요. 이론적 구조는 짜였죠. 이에 대응하는 서사가 있어야 해요. <소마>가 그 시작이고 앞으로 나올 여섯 권 정도는 소설이나 수필 같은 문학 형태를 띨 거 같아요. 계속 내면으로 침잠했을 때, 지식도 사라지고 언어도 사라졌을 때, 닿을 수 있는 가장 변하지 않는 것에서 영감을 찾으려 헤맸어요. 답을 찾았으니 이제 감각적인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어요. <소마>는 그 시작이었고요.”

그는 요즘에 “논다”. 책도 잘 읽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자기가 먹는 걸 맛보고 대지를 밟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그런 감각적인 연습을 하는 단계예요. 좀더 익숙해지면 거기서부터 또 다른 글이 나올 거 같아요. 하늘을 보느라 자기가 밟고 있는 정원이 엉망이 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그랬어요. 이제는 정원을 돌봐야죠.”

에필로그
나는 그를 오해했다. 채사장이란 필명 때문이다. 자기계발서를 쓰는 작가인 줄 알았다. 그는 “채사장이란 필명은 팟캐스트를 하면서 웃기려고 지은 거였다”고 말했다. 뒤늦게 그의 책을 읽고 놀랐다. 그의 책은 자아와 세계를 여행하는 영혼이 되라고 부추긴다. 이런 영혼은 성실한 생산자, 소비자가 되라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기 있는 인간형이 아니다.

2시간30분 동안 그와 나눴던 대화는 영원한 시간, 다중 우주 등으로 뻗어갔다. 그가 말한 자아의 본질을 나는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다만 그의 얘기를 듣다보면 나라는 존재가 내 상상으로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하고 본질적인 것에 맞닿아 있는 느낌이 든다. “내면의 빛에 닿기를.”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내게 선물한 책 <소마>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채사장은 2~3년 전에 그린 그림을 보여줬다. 그림을 모르는 내 눈에는 올챙이들이 호수 위를 떠다니는 거 같았다. 그는 여러 색감을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어릴 때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집안 형편 탓에 엄두를 못 냈단다. 여러 경전을 모아놓은 책장에는 싱잉볼이 있었다. 티베트 여행 때 산 그의 애장품이다. 싱잉볼이 그를 ‘내면의 빛’으로 이끈 힘의 상징이라면, 그림은 그가 내딛기 시작한 감각적 세계의 상징인지 모르겠다.

“어떤 구체적인 근거도 없지만 나는 이렇게 믿는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서라고. 태어나기 이전에 근원적인 내가 스스로 무엇을 배울지를 결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이 짧고 유한한 세계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이다.”(<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김소민 자유기고가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