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3

장애인권 법안 들고 이준석 장애인권 활동가- 인권에 소구력이란 없습니다 :한겨레21

[제1407호]인권에 소구력이란 없습니다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21

인권에 소구력이란 없습니다

장애인권 법안 들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만났던 장애인권 활동가가
이 대표에게 보내는 편지

제1407호
등록 : 2022-04-02 07:33 수정 : 2022-04-0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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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8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장애인단체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준석 대표님께.

안녕하세요. 2021년까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에서 정책 실무를 담당했던 활동가 변재원입니다. 전장연에 관한 대표님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보며, 오해가 있는 것 같아 대화를 나누고 싶어 이 편지를 드립니다. 우선 현재 저는 전장연 담당자가 아님을 밝히며, 제가 아래에 기술하는 내용은 전장연의 공식 입장이 아닌, 당시 실무 담당자로서 이 사안을 복기하는 것임을 일러둡니다.

휠체어를 탄 대학 선배 이야기를 한 이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와의 면담은 2021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부와 국회 예산안을 검토하는 시기에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필수 공약과 예산을 알리는 과정에서 전장연은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당대표’와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 면담 촉구 캠페인을 진행한 끝에 약속이 성사됐습니다. 국민의힘과 그해 8월 만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자료를 준비한 제가 당대표 면담에 들고 간 것은 ① 법안 자료 ② 예산 자료였습니다. 장애인 권리 예산과 더불어 법안의 경우,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장애인권리보장법’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 ‘장애인평생교육법’ 등이었습니다. 위 법은 발의돼 국회 심사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소위 안건 상정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양당 대표를 만나 관심을 요청했습니다. 예산안은 위 법안이 실효성 있게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액수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당시의 면담 자리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2021년 6월 국민의힘 당대표 취임 이후 당파를 떠나 청년이 정치에 자리잡았으면 하는 마음에 국민의힘에 새로운 피가 들어와 기성 정치인의 문법과는 다르게 노력하지 않을까, 기대 섞인 희망을 갖기도 했습니다. 면담 당일 약속 시간보다 늦게 왔고, 착석하고 나서도 졸던 대표님 모습이 아직 기억에 선합니다.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장애 시민과 면담해주는 당대표가 어딨겠나. 이 자리에 앉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느꼈으니까요.

그때 설명한 법안의 대표발의 의원에 국민의힘 의원이 없어 난감했을 수도 있겠지만, 대표발의가 아닌 공동발의 의원 명단에는 국민의힘 의원도 많았습니다. 당시 대표님은 장애인 정책에 공감해줬습니다. 특히 하버드대학 재학 중 휠체어를 탔다는 선배 이야기를 하며, ‘우리 당 이종성 의원과 함께 장애인 정책에 각별한 관심을 두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씀한 것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뿐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이준석 당대표는 각 법안의 소위 담당 의원과의 면담 자리를 추진하고 이야기가 더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으나, 전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됐나요?

① 장애인평생교육법안의 경우, 대표 발의한 유기홍 의원이 교육위 위원장직을 내려오면서 국민의힘 의원 법안 발의로 해가 지나 새로이 진행하는 상황입니다. 대표가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한 것과 달리 이 법안은 완전 표류하는 상황이라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누가 떼쓰고 있나 말하기 전에
②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완전개정안의 경우, 대표는 ‘일부 시내버스 노선의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추진 의견을 낸 것 말고는 실제 이 법의 통과를 위해 어떤 조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2021년 12월8일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 당선자가 서울 혜화동 대학로를 방문했을 때 장애인 운동가들이 윤 당선자에게 기습 면담 요청을 하여 그다음 날 안건 상정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이 논의도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저희가 소통하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몇 번의 투쟁 때마다 제가 대표님 카카오톡으로 투쟁 상황을 공유하고 사회적 약자의 이동권 관련 법안 안건 상정을 위해 노력해달라 했으니까요. 대표님도 노력하겠다고 말했지만, 진행된 바는 없었습니다.

③ 장애인탈시설지원법과 장애인권리보장법의 경우에는 아무런 이야기도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전장연과 대표님이 ‘만났다’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무언가를 추진했냐는 질문에는 전혀 이루어진 바 없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산은 더욱 그렇습니다. 언제나 기습 시위 또는 투쟁을 해야만 겨우 다음 대화가 이루어졌다 보는 게 옳겠습니다.

인권단체로서, 시민단체로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목적은 당시 야당 대표와 기념 인증사진을 남기는 게 아니었습니다. 집 밖을 감히 외출조차 하지 못하고, 교육도 받을 수 없고, 출퇴근은 꿈도 꿀 수 없는 장애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활동의 목표입니다. 덧붙여 말하건대, 국민의힘만 쫓아다니지 않았습니다. 당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재명 또는 송영길’만 검색해도 민주당을 지독하게 쫓아다녔던 많은 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희가 한 번의 면담만으로 ‘무리한 요구’의 이행을 요청하는 게 아닙니다. 비공식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지속적으로 대화를 요청하고 또 검토를 요청하는 무수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대선 TV 토론회 당시에는 모든 대선 후보를 대상으로 장애인 정책 개선을 위해 약속해달라는 메시지를 안고 지하철에 탑승했고, 당시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TV 토론회에서 약속했습니다. 국민의힘만 끝까지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누가 떼쓰고 있나 이야기하기 전에, 누가 소통하지 않는가에 대해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활동가와 시민들의 트라우마가 걱정
이제부터 제 진심을 말하겠습니다. 저는 이 지하철 선전전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서울 시민 중 한 사람입니다. 전장연이 소구력을 다했다고 하는데, 인권의 문제에는 소구력이 없습니다. 전장연이 아니더라도, 장애인권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그 어떤 소구력의 제한 없이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요청합니다. ‘기념사진 찍는 자리’ 말고 250만 장애인의 삶, 특히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중증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도록 책임을 갖는 정부의 기조를 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십시오.

이제 만날 시간입니다. 여당 대표로서 비난의 자리가 아니라 소통의 자리에 책임을 다해주십시오. 국민 통합을 언제나 염두에 둔다 했으니, 그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당대표 취임부터 2021년 말까지 대표와 소통하던 마지막 애정을 담아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으로서 부탁드립니다. 저를 위한 것도, 대표를 위한 것도, 전장연을 위한 것도 아닌, 국민을 위해 나서주십시오.

변재원 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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